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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론 ㅣ 고전의 세계 리커버
존 스튜어트 밀 지음, 김만권 옮김 / 책세상 / 2025년 3월
평점 :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은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책이다. 홍신문화사 판본으로. 너무 오래돼서 무슨 내용인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윤석열 정권 내내 유시민이 토론이나 유튜브에서 한 발언들로부터 얼추 기억을 되살리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자유론>을 꼭 한 번 더 정독해 보고 싶었다. 집에서 계속 굴러다니던 책세상 문고본(2006년판) 때문이기도 했다. 헌책방에서 1천 원에 팔기에 오래전에 구입한 건데, 스프링 제본을 했기에 책 취급을 안 했더랬다. (근데 갖고 다니면서 읽기는 편하다!)
눈에 밟히는 책이라 들고 읽기 시작했다. 유시민이 자기 인생에서 지대하게 영향을 끼쳤던 책 중 한 권이라고 해서 확인도 해볼 겸. 그런데 잘 읽히지 않는 거다. 출퇴근 이동 중에만 읽어서 그런 거 같아, 도서관 가서도 읽어 봤지만 매한가지. 결론은 번역 때문이었다.
<자유론>(책세상, 2006) 번역은 진짜 가독성을 현저히 떨어뜨렸다. 역자는 서병훈. 이 사람은 번역기 돌린 문장을 양산하지는 않지만 알아먹기 힘들게 문장을 구성하는 습관이 있는 듯하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문장. “사람의 행동에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의 평판을 떨어뜨리고 좌절시키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보다 더 나쁜 것을 동원하는 것이다.” (p155)
전형적인 비문(非文)인데 이걸 처음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3~4번 같은 챕터를 반복해서 읽으면 왜 가독성이 떨어지는지 파악되는 문장. 한길사의 <의미의 논리>보다는 훨씬 낫지만 그래도 평균적인 독자가 읽기에는 매우 어려운 판본이 됐다. 더 이상 서병훈 역자의 책이 나오지 않아 다행이다.
어쨌건 처음 읽을 때는 무슨 내용인지 파악하기 매우 힘들었는데, 4번 정독하니 책이 말하는 바가 명확했다. 밀의 주장은 매우 단순하다. 하지만 처음 주장이 계속 표현을 달리하며 외연을 확장한다. 주장에 대한 다양한 예시와 논거를 읽는 것도 <자유론>을 재미있게 읽는 한 방편일 듯.
머리말에 밀이 이 책을 쓴 이유가 적시되어 있다.
“이 책은 시민의 자유 또는 사회적 자유를 중심 주제로 삼고 있다. 다시 말해 나는 이 책에서 사회가 개인을 상대로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성질과 그 한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p17)
밀이 살던 19세기까지 이 문제는 그다지 논의되지 않았나 보다. 이를 둘러싼 토론도 거의 없었다는 밀의 전언대로, 이 논의는 당시 영국에서 최초로 제기된 ‘책’이었다. 물론 17세기에 존 밀턴이 ‘사상의 자유’에 대해서 언급을 했지만(밀은 밀턴의 사상을 수용한다.) 이를 사회적 차원에서 다루면서 그 한계를 고찰한 학자는 밀이 처음이었다. (물론 영국에서)
밀이 <자유론>에서 설파하는 핵심은(책을 쓴 이유) 책의 4장에 소개되어 있다. 4장의 타이틀이 “사회가 개인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의 한계”다. 밀은 개인의 자유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그가 주장하는 개별성은 항상 사회가 전제되어 있다. 이를 놓치면 이 책을 잘못 이해하게 된다.
밀은 기본적으로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대전제를 깔고 논의를 시작한다. 책에서 밀은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라고 반복적으로 말한다. 더욱이 무너져 내릴 다리(다리 후반부부터)를 건너려고 하는 어떤 사람에게 그 사람의 통행의 자유(개별성)보다는 생명이 훨씬 중요하기에 개별성은 충분히 제한되어야 한다고. 이 주장은 맹자의 성선설에 닿아 있다.
그만큼 밀도 사람의 본성을 선하게 봤다. 그래서 개인의 생명이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개별성은 사회 안에서 최대한 보장되어야 하지만, 사회성의 가치가 커지면 개별성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밀이 3장에서 개별성이 왜 중요한지 역설하게 된 지점이다.
4장의 핵심 주장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초반부에 제시되어 있다.
“법으로 부여받은 다른 사람의 권리를 직접 침해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는다 하더라도, 타인에게 해를 주거나 그들의 이익과 상관있는 문제에 대해 사려 깊은 고려를 하지 않는 경우, 사회가 직접 법을 동원하지는 않더라도 여론의 힘을 빌려 그런 행동에 대해 정당하게 처벌할 수 있을 것이다.” (p142)
한 마디로 다른 사람의 권리를 직접 침해하지 않으면 개인의 자유(개별성)는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거. 그런데 이는 머리말에서 이미 밀이 제시한 주장이고, 2장에서도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 장을 나누고 여러 논거를 제시하고 있지만 핵심 주장은 매우 일관된다.
“인간 사회에서 누구든(개인이든 집단이든) 다른 사람의 행동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한 가지. 자기 보호를 위해 필요할 때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이라면, 당사자의 의지에 반해 권력이 사용되는 것도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유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문명사회에서 구성원의 자유를 침해하는 그 어떤 권력의 행사도 정당화될 수 없다.”(p30)
이 주장은 4장의 핵심 주장으로 인용한 문장과 대동소이하다. 그리고 이는 2장에서 주장하고 있는 핵심 내용과도 상통한다. 42쪽에 언급 되어있는 내용은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고 밀이 여느 공리주의자하고도 다른 차별적 지점을 담보한 주장이다.
“전체 인류 가운데 단 한 사람이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은 옳지 못하다. 이것은 어떤 한 사람이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나머지 사람 전부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만큼이나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p42)
2장의 모든 내용은 이 주장의 논거이자 예시이다. 존 밀턴의 ‘사상의 자유’를 발전시켜 ‘밀의 자유론’을 정립한 기념비적인 주장이다. 그 이유는 민주주의의 진정한 가치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주장을 곡해할 여지가 많은지 밀은 이를 방어할 논거와 예시를 풍부하게 들고 있는데 그게 2장의 내용이다.
물론 2장은 4장의 전제이다. 생각과 토론의 자유가 없으면 개별성은 담보하지 못한다. 즉 2장 역시 3장 개별성을 위한 전제다. 전제로부터 결론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을 관통하는 주장은 2장의 저 위대한 주장이고, 이는 장을 달리하면서 변주된다.
“나는 어느 사회든지 다른 사회를 강제로 문명화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악법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스스로 도움을 청하지 않는 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살면서 그들과 직접적인 관계도 없는 사람들이 자기들 눈에 불미스러운 일이라는 이유로, 당사자들에게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제도를 폐기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p170)
밀은 계속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개별성과 그 한계를 강조하고 있다. 이 한계 중 특히 인간의 자유와 발전에 심대한 타격을 주는 해악들이 발생하면 정부가 개입해야 한단다. 그런데 정부의 이런 개입 활동은 집단적이고 권력 집중을 발생하게 하여 폐해가 발생하게 된다.
밀은 이 폐해를 최대한 적게 하면서 인간의 자유를 저해하는 해악들을 어떤 방법으로 없애야 효율적인지 검토한다. 이게 5장의 내용이자 이 책의 목적이다. 밀은 그가 참여했던 정치적 경험을 토대로 정부의 역할을 제시한다. 이 또한 정치인들이 다루기 가장 어렵고 복잡한 문제라고 진단한다.
“나는 안전한 실천 원리 실현 가능한 이상,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고안된 모든 제도를 검증하는 기준이 다음과 같은 명제 속에 정리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효율성을 지키면서 최대한 권력을 분산하라, 그러나 정보는 가능한 중앙으로 집중시킨 뒤 그곳에서 분산시켜라.” (p207)
요컨대 밀은 개인의 개별성을 강조하면서도 사회성도 아울러 강조하고 있다. 사회성이 강화되는 것을 경계하면서 밀은 정부가 개별성과 사회성을 조화시킬 수 있는 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그 요체란 제도는 분산시키고(지방자치) 정보는 중앙집중화하는 것. 당시 시대상을 고려할 때 이는 아주 혁신적인 정책인 듯하다.
물론 장점만 있는 책은 아니다. 밀 자체가 초엘리트 교육을 받은 학자 집에서 자란 사람이라 엘리트주의적 인식이 지배적이다. ‘미성년자나 미개사회는 자유를 누릴 권리가 없다.’ 라거나 ‘사회적 약자는 결혼을 하면 안된다.’는 주장을 서슴없이 하는 걸 보면 그렇다는 결론. 아울러 공리주의자(효율을 중시한다)라서 공리주의의 근본적 한계점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도 덧붙일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론>은 지금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레거시 미디어와 가자짜 뉴스가 판치는 작금의 시대에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특히 언론 개혁이 심대하게 요청되는 시기에 밀의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생각은 경청할 만하다 하겠다. (끝)
덧
내가 읽은 판본은 2006년에 발간한 책세상 문고 고전의 세계 시리즈다. 이 시리즈가 절판되고 새로운 시리즈로 옷을 갈아입었고, 일부 역자가 바뀌어서 새롭게 나오고 있다. 책세상본으로 지금 구매할 수 있는 책은 김만권 역이다. 어쩔 수 없이 이 책으로 리뷰를 올리지만 읽은 책은 구판이기에 여기 덧붙여 놓는다. 김만권 번역도 가독성이 떨어지기는 매한가지라 개인적으로는 현대지성판을 추천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