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깊이가 돋보이는 절제된 풍경화

 

 

작년인가그림을 보고 정제되고 쓸쓸한 느낌이 들어 낙찰받은 그림이 있다. 20호 정도의 그림이라 서재에 걸어놓고 보기 딱 좋아서 구매했다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 서사가 있거나 느낌이 있는 그림이기에이 그림은 후자 쪽나름 만족하고 있는데그림 좀 보러 다니는 지인이 놀러 와서 이 그림을 보고 한마디 했다아마추어 작가가 습작한 그림 같다고.

 

습작이라 평했다는 건아마도 현대 미술의 파격적인 실험성이나 극적인 묘사보다는 전통적인 구도와 차분한 기법을 택했기 때문일 거다하지만 그림을 객관적으로 뜯어보면단순히 '취미로 그린 그림'이라고 하기엔 작가의 의도된 통제력이 돋보이는 지점들이 분명히 존재한다기법과 표현 면에서 이 작품이 왜 아마추어의 습작이 아닌지 나름대로 변명해 보겠다.




이경률, 풍경, 73×60.6cm, 캔버스에 유채


 

 

1. 색채의 절제와 정서적 깊이

이 그림의 가장 큰 미덕은 '감정을 담아내는 색의 농도'. 소위 수채화 느낌이 나는 유채. 유화 물감을 얇게 펴 바르거나 희석하여 사용한 기법은 화면에 공기감을 불어넣는다. 이는 캔버스를 꽉 채우는 유화 특유의 답답함 대신, 막힌 공간에 어울리는 '숨 쉴 틈'을 만들어준다. 아울러 파스텔 톤의 컬러 사용이 돋보이다. 자칫 촌스러울 수 있는 초록과 갈색을 아주 낮은 채도로 눌러서 표현했다. 이는 작가가 단순히 눈에 보이는 색을 칠한 것이 아니라, 작가 자신이 느낀 '쓸쓸함'이라는 정서를 위해 색을 조율할 줄 안다는 증거.

 


2. 의도된 구도와 시선의 흐름


아마추어의 그림은 화면 전체를 일률적으로 묘사하려다 평면적으로 변하기 쉽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다르다. 수직과 수평의 대비 구도가 명확하다. 왼쪽에 묵직하게 자리 잡은 나무(수직)가 화면 전체의 기둥 역할을 하며 안정감을 준다. 그 너머로 흐르는 수평적인 물가와 능선은 시선을 멀리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 묘사의 완급 조절까지 보인다. 전경의 풀잎들은 짧고 날카로운 터치로 리듬감을 준 반면, 먼 산은 형태를 흐릿하게 뭉개버렸다. 이러한 '원근에 따른 묘사의 밀도 차이'는 공간의 깊이를 만들어내는 숙련된 기법이다.

 


3. '습작'이라는 혹평에 대한 반론


혹평하는 이들은 아마도 '나무 줄기의 단순함'이나 '정적인 구성'을 지적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는 기교의 부족이라기보다 대상에 대한 담백한 접근으로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화려한 기교가 들어간 그림은 처음엔 눈길을 사로잡지만 금방 피로해질 수 있다. 반면, 이 그림처럼 감정의 여백이 있는 작품은 매일 보는 서재에서 감상자의 기분에 따라 매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이 그림을 구해하게 한 '그림에 담긴 감정'의 실체가 아니었을까.

 

 

결론: 객관적인 미학적 가치

이 그림은 '정적이지만 단단한 구조를 가진 서정적 풍경화'. 기교를 뽐내기보다 감상의 농도를 조절하는 데 집중한 작품으로, 20호라는 크기는 서재라는 개인적인 공간에서 그 쓸쓸함의 정서를 오롯이 느끼기에 최적의 규격이 아닐까 한다. 한마디로 정서적 깊이가 있는 좋은 그림이라는 거.



[덧]

작가가 알려진 작가가 아니라서 적절한 평가를 못 받는 듯하다. 이런 무명작가들은 많다. 화력이 깊은 작가들인데 말이다.  전라도에서 소위 30년 화력을 갖고 지방에서 활동하는 화가도 전국적으로는 무명작가로 통용된다. 검색하면 나오는 이력이 없으니까. 그래도 열심히 찾아보면 개인전 20회 이상 단체전 100회 이상의 화력을 갖춘 작가들임이 밝혀진다. 이렇게 무명작가들을 찾아가는 즐거움이 있다. 이경률 작가도 그런 작가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여 열심히 찾고 있다.ㅎㅎ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감은빛 2026-04-02 03: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림을 사서 걸어두는 삶이 어떤 삶일까 전혀 상상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글에 거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네요. 제가 야무님 글을 종종 읽고 참 좋아하지만, 그런 생각이 먼저 듭니다. 그만큼 그림을 구매한다는 행위 자체가 일상과 거리가 먼 어떤 특권층들만 가능한 행위라는 인식이 이미 형성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주변에 그림을 구매해서 집에 걸어두는 사람은 전혀 없거든요.

2026-04-02 0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90년대 초반 미국의 저명한 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21세기는 심리학의 시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심리학은 부지불식간에 우리 곁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조직관리에서부터 소비에 이르기까지 심리학의 응용분야는 나날이 늘어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헌데 심리학은 타 학문과 달리 그 범위가 넓습니다. 정신분석학을 포함시키느냐의 여부도 하나의 논쟁이 될 정도이죠. 어쨌거나 심리학 분야는 매력적입니다. 매우 정치한 이론서에서부터 자기계발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걸쳐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책을 읽느냐가 중요합니다. 피가 되고 살이되는 심리학 명저 33권을 선정해 봤습니다. 제가 읽어 보고 좋았던 책입니다. 저도 추천받아 읽었던 책인데 나만 알고 있긴 아까워 리스트를 공유합니다.



 

 



















































심리학 명저 33선 

 

1. 윌리엄 제임스, <심리학의 원리>, 민음사

2. 지그문트 프로이트, <꿈의 해석>

3. 칼 구스타프 융, <무의식의 분석>, 선영사

4. 알프레드 아들러, <아들러 심리학 입문>, 스타북스

5. 대니얼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 김영사

6. 에릭 호퍼, <맹신자들>, 궁리

7. B. F. 스키너, <자유와 존엄을 넘어서>, 부글북스

8. 대니얼 길버트,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김영사

9. 에리히 프롬, <인간의 마음>, 홍신문화사

10. 아빈저 연구소, <상자 밖에 있는 사람>, 위즈덤아카데미

11.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에리히 프롬 <프로이트 심리학 심리학 비판>, 선영사

12. 스탠리 밀그램, <권위에 대한 복종>, 에코리브르

13. 로버트 E. 세이어, <기분의 문제>, 청림출판

14. 장 피아제, <지능의 심리학>, 양서원

15. 스티븐 핑커, <빈 서판>, 사이언스북스

16.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알마

17. 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 <라마찬드란 박사의 두뇌 실험실>, 바다출판사

18.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청아출판사

19. 도널드 A. 노먼, <디자인과 인간심리>, 학지사

20. 자크 라캉, <욕망이론>, 문예출판사

21. 크리스토퍼 차브리스, <보이지 않는 고릴라>, 김영사

22. 칼 매닝거, <인간의 마음, 무엇이 문제인가> 선영사

23. 토머스 A. 해리스, <마음의 해부학>, 21세기북스

24. 구스타프 르봉, <군중심리>, 간디서원

25. 프로이트, <정신분석학 입문>, 범우사

25. 조 내버로 & 마빈 칼린스, <FBI 행동심리학>, 리더스북

26. 말콤 글래드웰, <블링크>, 김영사

27. 하워드 가드너, <다중지능>,

28. 에드워드 드 보노, <수평적 사고>

29. 배리 슈워츠, <선택의 심리학>, 웅진지식하우스

30.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창의성의 즐거움>, 북로드

31. 로버트 치알디니, <설득의 심리학>, 21세기북스

32. 아르투어 슈니츨러, <사랑의 묘약>, 문예출판사

33. 슈테판 츠바이크, <초조한 마음>, 문학과지성사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26-03-30 1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정말 이걸 다 읽으셨다구요? 그렇지 않아도 고양이라디오님 서재에서 <심리학의 원리>보고 과연 읽을만한가 넘 어렵고 고루하지 않나? 물론 전 아마 못 읽지 싶긴한데 읽을만한가 봅니다. <인간의 마음 무엇이...>는 저도 오래 전에 읽었는데 3권으로 나와 있군요. 저 읽을 때만해도 두 권이었는데. 옛날엔 심리학 엄청 흥미로웠는데 언제부턴가 시들하더군요. 다시 붙들 날이 있으면 참고하겠습니다. ^^

yamoo 2026-03-30 16:50   좋아요 1 | URL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읽어온 책들이에요. 프로이트와 프롬 마르쿠제의 책들은 학부때서부터 읽었던 거에요. 모두 완독한 책은 아닙니다. 제임스의 심리학 원리의 경우 1권은 완독했지만 2권과 3권은 발췌독 했어요. 나머지는 거의 다 완독한 책입니다.ㅎ
메닝거의 책은 3권이 아니라 2권으로 출간됐어요. 알라딘 책을 넣다가 같은 책을 두번 클릭했던 거 같습니다. 2권이 맞아요. 항상 심리학책들은 나중에 가면 시들합니다. 정신분석학 빼고요. 다시 읽으실 날이 있겠죠. 아들러 심리학부터 시작해 보는 것도 좋을 듯싶어요..^^

카스피 2026-03-31 0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심리학 책 저도 한 두권 읽어 봤는데 단순한 호김심으로 끝까지 읽기 힘들더군요.저 많은 책을 다 읽으셨다니 참 대단하십니다n.n

yamoo 2026-03-31 11:00   좋아요 0 | URL
20여 년 동안 읽은 책이라....대단할 것도 없습니다요..ㅎㅎ
심리학의 원리는 좀 오래 걸렸던 듯합니다. 나머지 책들은 뭐 쉬운 책도 있고 그렇지 않은 책도 있긴 하지만 읽을만했습니다..ㅎㅎ
 



그렇다. 어제 용아맥에서 거금 22,000원을 주고 본 올 개봉 영화 1탄이다. 영화 전문가 중 한 지인이 내게 개봉 전날부터 참을 수 없이 흥분되는 영화가 개봉한다고 해서 찾아보니, <마션> 작가의 영화다. 박평식 형님이 무려 7점을 준 영화.


<마션>은 재밌게 봤기에, 더군다나 주연으로 라이언 고슬링이 나온다기에 추천해 기반해 나도 예매했다. 갑자기 그제 뭔 신기가 들렸는지 어제 날짜로 용아맥을 검색해 보니 11시50분 영화에 몇 자리가 남아서 바로 예매할 수 있었다.


나도 기대에 차서 봤다. 2시간 30여분이 휘딱갔다. 헌데 이상하게도 인상적이지가 않았다. <인터스텔라>를 보고 자막이 올라가는 동안 경험했던 그 강렬한 기억과 비교하면 참으로 밋밋한 감정이었다.


압도적인 비주얼, 음향, 연기, 연출, 음악, 미장센 등 따로 떼어서 보면 나무랄데가 없다. 자본이 억쑤로 들어간 잘 만든 영화다. 그런데 아이맥스로 봤음에도 불구하고 더 보고픈 마음이 없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인터스텔라> 만큼 서사적 깊이가 부족해서일지 않을까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비주얼 : 9

음향 : 8.5

연기 : 8.5

연출 : 8

미장센 : 9

종합 :7.5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 영화는 내게 <브로크 백 마운틴>과 비슷한 류의 작품으로 기억될 듯하다. 잘 만들었는데 이상하게도 재미가 없는 뭐 그런 영화 말이다. (하지만 <브로크>처럼 재미없지는 않았다!)


여튼 기대가 너무 과했나 보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신파를 볼 줄은 몰랐다. 22,000원의 값어치는 못했다는 게 내 주관적인 평의 요체. 원작은 어떨지 원작을 읽어볼 요량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스피 2026-03-22 0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원작소설 자체가 약간 신파 느낌이 나서 그럴 겁니다.주인공 과학 선생님이 뜬금없이 지구를 살리기 위해서 우주 비행사로 나선다는 것 부터 시작해서 외계인 로키와 우정을 나누는 등 마치 오래전 영화 ET와 같은 감성을 느끼게 해주는데 ET와 비교해서 더 세련된 영상미를 보여주고 있어 영화 자체로는 흠잡을 데가 없지만 인터스텔라와 같은 감동을 기대하긴 좀 힘든 영화지요.
다만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실제 과학적인 추론(특히 외계행성과 외계인관련)을 거친 장면들이 많고 또 실제 현실 우주 비행사들이 겪었던 이야기들이 영상 속에 녹아 들어 있기에 영화 자체로는 잘 만들었다고 여겨집니다^^

yamoo 2026-03-25 09:19   좋아요 0 | URL
원작 자체가 신파 느낌이 난다는 거죠? 그니까 영화 메인 줄거리는 소설과 같다는 거죠? 흠...재밌다고 하는데...일단 원작을 읽어보고 나서 뭔가 비교점이 생길 듯합니다.

영화 자체는 정말 비주얼이 끝내줍니다! 그 비주얼을 서사가 받쳐주지 못하는 느낌?..여튼 원작을 얼른 읽어봐야 겠습니다!^^

카스피 2026-03-28 12:54   좋아요 0 | URL
책 내용 자체는 과학적 추론과 설명이 들어간 하드 SF소설이지만 주인공의 행동이 약간 뭐랄까 그래비티나 인터스텔라의 영웅적 주인공의 모습보다는 찌질한 일반인의 모습이 있어서 즉 보다 인간적이이서 위 두 영화 보다는 감동의 깊이가 덜한 것 같습니다.영화는 소설의 내용을 영화 상영시간에 맞추다 보니 내용을 덜은 부분이 있는데 소설을 읽으시면 영화와 좀 다른 점이 있다는 사실을 아실거에요.소설로 읽으시는 것도 강추드립니다.

그레이스 2026-03-23 14: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 막내는 소설 보고 넘 재밌다고, 아이맥스 영화 예매했던데,,, 보고 와서 감상을 들어봐야겠네요.

yamoo 2026-03-25 09:20   좋아요 1 | URL
원작 소설을 본 분들이 모두 재밌다고 난리라서 영화를 먼저 본 건데....
일단 얼른 원작을 읽어야 겠습니다~
본 다음 리뷰를 작성할 듯합니다...ㅎㅎ 영화와 비교점..^^;;

2026-03-29 14: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난 주 토요일, 단체전 <화이위조>가 끝났다. 올해 첫 전시. 작년에 신진작가 개인전을 통해 선발된 선정작가들과 기존 중진 작가들을 모아 갤러리에서 기획전의 형식으로 분기마다 한 번씩 하기로 했다고. 그 첫 스타트다.

 


단체전 참가 작가 13인 중 교수급 3명, 중진 작가 2명이다. 중진 작가 2명 중 한 분은 한국미협 이사. 어쨌든 모두 10년 이상 아트페어와 다수의 개인전 및 부스전 이력을 갖고 있는 작가들이다. 이들과 같이 단체전을 할 기회는 많지 않은데 갤러리 관장님이 소속 작가들의 유대감을 높이고자 기획한 전시라 의미 있는 전시였다

 

요즘 입학 시즌이다. 요새 미대 입학하는 분들 중 일부는 40대 이상이신 분들이 있단다. 같이 선발된 작가분 중 한 분이 40대 중반의 나이에 추계예술대 미대를 졸업하고 올해 홍대 미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단체전 전시 오프닝 때 같이 전시한 중대 교수분이 요즘 늦게 미대에 입학하는 분들이 많다고 하셨다.

 

지난 11, 3 학생이 미대 진학 예정이었나보다. 커뮤니티에 미대에서 대학레벨이 얼마나 중요한지 묻는 질문을 올렸다. 그러자 대다수가 대학 레벨은 무시하지 못한다는 조언을 남겼다. 미대 출신이 아니더라도 작가로 성공한 분들이 꽤 많다. 장욱진 화백도 살아생전에 미술은 가르쳐 배워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분명히 밝히기도 했다. 서울대 교수였던 분이 말이다.

 

미대 나와서 작가 생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인데 반해, 어제 소개 받은 한 분은 인사동에서 30년 이상 액자집을 운영하다가 3년 전부터 작가로 데뷔해서 한 점에 수백만 원 하는 그림이 전시회에서 10점 이상씩 꾸준히 팔린다고 했다. 물론 미대 출신이 아니다. 미대 가서 배우는 건 우리나라에서 기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하다. 우리나라 미술교육은 작가로서 가장 중요한 걸 가르쳐주기 않기 때문.

 

디자인과 미술에서 학벌보다 중요한 게 실력이다. 실력은 실기 능력에서 오는 게 아니다. 실기 능력은 일종의 기능이자 테크닉이다. 시간만 들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기능이다. 미술과 디자인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게 생각하는 능력이다. 다르게 생각할 줄 아는 능력. 이건 우리나라 미술대학 커리큘럼에 완전히 빠져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미대는 그냥 이름 어느 정도 알려진 대학 아무대나 들어가 인문학을 열심히 공부하는 게 작가로서 성공하는 가장 빠른 길일 듯하다. 실기는 C 학점 정도로 하고, 나머지 모든 시간을 역사, 문학, 철학, 미술사 등에 투여하는 거. 그럼 3학년 정도부턴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미술이나 디자인에서 실기보다 더 중요한 게 철학과 기획력이기 때문.

 

맨날 미술학원에서 입시 미술만 하는 게 우리나라 미대 입시생의 현실. 학부 때는 교수가 그리라는 대로 그려 학점 따고(교수 말 안들으면 학점 안 줌), 졸업하면 작가적 철학이 부재한, 그림그리는 기능인으로 전락하게 된다. 어떻게 작가 생활을 해 나갈까. 미술대학에서 성공하려면 아이러니하게도 실기보다 인풋이 중요한데, 이건 각자의 몫이 된다. 학교 커리에 없으니까.

 

인문학적 지식이 깊을수록 사물을 다르게 볼 수 있는 능력이 커지고 그게 디자인과 미술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간과되고 있는 실정. 제일 중요한 걸 대학에서 가르치지 않는다는 거. 현재 우리나라 미대 출신 중 잘 나가는 작가들은 모두 낙제생이었다는 건 무얼 말하는 걸까? 한국 미술대학 교육의 부실함은 오래전부터 계속 회자되어 온 문제다.

 

나 역시 미술 비전공자다. 비전공자로 한계도 있지만, 장점도 있다. 생각에 있어 자유로움, 이게 창의적 작품활동에 큰 동력을 제공한다. 무엇보다 나같은 비전공자는 전공의 역할이 작업에서 빛을 발한다. 이게 미술대학 출신들과 차별점이다. 어떻게 보면 미술과 관계없는 전공이 작가 생활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된다.

 

보통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게 재능이다. 이 재능을 어렸을 때부터 그림 잘 그리는 능력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작가 활동을 해 보면 안다. 작가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재능이 마케팅 능력이란 것을. 이 재능 하나로 작가로서의 성공 여부가 결판난다. 그래서 경영학과 출신 작가들이 큐레이터 보다 홍보를 잘하는 경향이 있다. 그림만 잘 그려서는 작가로서 절대 성공할 수 없다.

 

미술대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이나 학부모에게 다시 한번 당부드린다. 한국 미술대학에서 대학 레벨은 아무 효용이 없다. 미술대학을 정말 가고 싶다면 아무 정규 미술대학 아무 곳이나 가서 문학, 철학, 역사 공부를 가열차게 하시라. 실기는 대충 따라가고 앞의 공부를 찾아 열심히 하면 작가로서 성공할 기회가 훨씬 많아질 거다. 작가로서 성공하고자 한다면!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스피 2026-03-17 0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야무님 말씀에 120% 찬성하지만 학력위주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에술에 문외한인 사람들은 아무래도 작품 그 자체보다는 작가의 간판(주도 대학이나 입상경력)에 더 집착하는 것이 사실이지요.물론 재능이 엄청 뛰어난 천재적인 작가라면 굳이 대학 간판에 연연할 필요는 없지만 보통의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아무래도 대학에 연연 할 수 밖에 없다고 여겨집니다.이른바 인 서울 상위권 미대라도 나와야 화가로서 큰 명성을 떨치지 못해도 다른 방향으로 자기 밥 벌이는 할 수 있기 떄문이겠죠ㅜ.ㅜ

yamoo 2026-03-17 09:41   좋아요 0 | URL
미대 졸업생들이 대개 비슷비슷하다 보니 학벌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듯합니다. 광고인 이제석의 경우를 보면 실력이 출중해도 학벌 때문에 외국 유학했는데...지금은 과거와는 좀 분위기가 많이 변한 거 같습니다. 기업에서 디자인 졸업생 선발할 때 실력 위주라고 합니다. 작가 중 잘나가는 분들 보면 서울대 홍대 출신 아닌 분들도 많아요. 뭐, 작가가 학벌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만은...^^;;
 

최근에 6호 그림이 팔렸다. 이전 포스팅에서 팔린 그림을 올려 보았다. 당시 내 그림을 구매하면서 그분이 하신 말씀이 놀라웠다. 그림 가격이 너무 저렴해서 감사하다고. 내 그림 가격이 저렴한 건 갤러리 관장님도 인정한 부분이라, 올해부터는 가격을 인상할 예정이다.


어쨌든, 내 그림을 판 돈으로  아주 큰 그림을 낙찰받을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풍경화! 이런 정도의 풍경화를 아트페어나 갤러리에서 구입하려면 최소 천 만원 정도가 소요될 듯하다. 엄청난 실력자의 풍경화는 갤러리에서 그만한 가격을 설정하겠지.


일단 어떤 그림을 구매했기에 이런 호들갑인지 구매한 그림을 올려볻다.


[유성, 강변의 가을 정취, 115.5cm×80cm, 캔버스에 유채, 2015]


50호에 가까운 그림이다. 내가 참 좋아하는 구도의 풍경화. 작가는 북한 공훈예술가. 1963년 출생이니 30년 이상 그림을 그린 중견 북한 화가이다. 공훈예술가이니 말해서 뭣하랴. 우리나라로 치면 미술관에서 관리하는 작가쯤 된다. 


북한 인민예술가나 공훈예술가의 그림은 정말 좋다. 우리나라 굵직한 근대미술가가 그린 풍경화와 비견될 정도로  좋은 그림들이다. 근데 정말 저렴하게 우리 시장에 유통되고 있다. 온라인 경매에 간혹 올라오는데, 내 취향의 그림이 올라오면 바로 구매하는 편이다. 이 그림은 내 그림 팔아 구매한 최초의 그림이다! 6호 그림을 보내고 50호 그림을 데려왔으니 이런 횡재도 없을 듯싶다.


이전에도 내 페이퍼에 언급했다시피 북한화가의 사실화는 나름의 희소한 가치가 있다. 60년대 화풍을 현재까지 지속하며 지켜온 나라는 북한이 유일하기 때문. 어찌보면 촌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헌데 2010년 즈음, 네널란드에서 북한 화가 전시회가 열였을 때 모든 그림이 순식간에 완판됐다고 한다. 50호 유화 그림이면 수천만원에 거래됐다나. 그 이유가 그 촌스러움에 있다고. 세계 어떤 화가도 저런 구식(?)으로 그리지 않기에.


북한의 그림은 조선화라고 해서 장지에 채색을 한 작품이 대다수다. 유화는 그 수량이 적고 30호 이상의 유화는 그 수가 매우 적다고 한다. 통일이 되면 엄청난 가치를 지닌다고 하는데, 그건 현재 잘 모르겠고, 내가 좋아하는 풍경화라 소장해서 즐겨 보고 있다. 북한 그림은 현재 이상할 정도로 저렴하게 거래되고 있다. 30년 이상 그려온 대가들인데 우리나라 신진작가들의 갤러리 그림보다 훨씬 저렴하니, 구매 안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원화는 상상을 초월하게 비싼대 말이다. 


어쨌거나 이 그림 낙찰받기 전에 얼마나 조마조마 했는지. 경쟁이 붙고 시작가가 올라가면 포기 모드라. 헌데 운좋게도 내게 왔다! 액자가 없어 액자를 해야 하지만 액자 비용 포함해도 거져나 다름없다. 얼른 액자해서 방에 걸어놔야 겠다. (끝)


[덧]

최근 변월룡 화백의 그림을 보면서 더욱 북한 그림을 찾게 됐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스피 2026-02-28 1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속적으로 그림이 팔리셨다니 이제 야무님을 화백님 이라고 불러야 될 듯 싶어요.그림판매 축하드립니다^^

yamoo 2026-03-03 16:15   좋아요 0 | URL
저도 놀라고 있습니다만...아직까진 응원의 차원으로 보입니다. 화백이라니...어림도 없어요. 10년차도 미술계에서는 햇병아리입니다.^^;;

그레이스 2026-02-28 2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근대화가들 중 월북작가들 그림은 좋아합니요. 변월룡 그림도 좋았구요. 소마에서 전시회 할때 접하고 책으로도 접하면서 그들의 그림을 찾아보게 되었죠. 덕수궁에서 중국화가들 그림 보면서 비슷한 느낌을 받는 그림을 발견하기도 했구요. 북한 그림이 인기가 있다니...유렵에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낙찰받으셨다는 그림 멋있네요. 색채나 구도가 어떤 면에서는 그렇게 말할수 있지만... 훈련되고 뛰어난 기교로 나름 생각을 담아 공들여 그린 그림이란 느낌을 받아요. 실물은 더 멋지겠죠? 암튼 축하드립니다. 그림만 잘 그리시는게 아니라 보는 안목도 높으신듯 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책 중에 <알아야 산다> 라는 책이 생각납니다.^^

yamoo 2026-03-03 16:21   좋아요 1 | URL
그래서 변월용 화사를 다룬 책도 구매하려고 합니다. 현재 2권 나와 있더라구요..ㅎㅎ
그레이스님도 위 그림 좋게보셨군요! 사실화..곧 풍경화나 정물화가 북한화가들이 자신의취향에 맞게 자유로울 수 있는 범주입니다. 제약받지 않는 주제에서 자신의 화풍이 나오죠. 저는 저런 그림을 좋아합니다!^^

알아야 산다..라는 책이 궁금하네요. 사서 봐야겠어요~~ 책 소개 감사합니다!ㅎㅎ

그레이스 2026-03-03 16:43   좋아요 0 | URL

사서 보실 책인가 싶긴 해요
그림경매 관련 책인데,,,, 그 단계는 넘으신듯 합니다.

잉크냄새 2026-02-28 2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림 판매 축하드립니다.
북한 미술이 촌스럽고 구식으로 평가받나 보군요. 위 그림만 놓고 보면 전 참 좋아 보입니다.ㅎㅎ

yamoo 2026-03-03 16:2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ㅎㅎ
저두 저 그림이 참 좋습니다! 누가 뭐라 그래두..^^;;

2026-03-02 0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3-04 1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