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을 읽었다. 한마디로 대실망이었다. 근데, 이게 베스트셀러를 넘어 스테디셀러가 되어가고 있어 심히 의아스럽다. 

욕심많은 칸과 등신같은 인조가 답답한 전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냥 보여주는 것으로 끝나는....그냥 무참하게 읽은 작품이다. 역사소설이라는 탈을 쓰고 있지만 결코 역사소설일수 없고, 그렇다고 역사에세이도 아닌, 한마디로 이도저도 아닌 글이 되버렸다는.. 

아름다운 문체로 살아 생동해야할 캐리터를 죽여버렸다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다. 역사교과서에 길어야 한 페이지 분량 정도 인것을 한 권으로 보여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서날쇠로 대변되는 민중의식의 싹을 보여주기에는 너무 약했다.  

한국 문학계에서 문체하면 떠오르는 작가 중 한사람이 김훈이다. 김훈이라는 브랜드는 언제나 간결한 문체의 미학과 함께 간다. 그런데, 이 소설은 김훈 브랜드가 맞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물론 읽어보면 김훈 브랜드라는 걸 바로 알 수 있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그가 지향하는 스타카토식 글쓰기에서 완전히 벗어난 부분이 너무 많았다. 이게 과연 김훈식 글쓰기인지 의아스러웠다.

문장으로 발신한 대신들의 말은 기름진 뱀과 같았고, 흐린 날의 산맥과 같았다. 말로서 말을 건드리면 말은 대가리부터 꼬리까지 빠르게 꿈틀거리며 새로운 대열을 갖추었고, 똬리 틈새로 대가리를 치켜들어 혀를 내밀었다. 혀들은 맹렬한 불꽃으로 편전의 밤을 밝혔다. 묘당에 쌓인 말들은 대가리와 꼬리를 서로 엇물면서 떼뱀으로 뒤엉켰고, 보이지 않는산맥으로치솟아 시야를 가로막고 출렁거렷다. 말들의 산맥 너머는 겨울이었는데, 임금의 시야는 그 겨울 들판에 닿을 수 없었다. (9페이지) 

책의 처음 시작하는 부분에 나온 이 묘사가 이 책 전체의 분위기를 대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보여지는 이 아름다운 문장들...무생물을 생물에 비유하는 이러한 비유는 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짜증을 유발한다. 급기야 중간을 넘어서도 계속되는 이런 문체가 살아 움직여야할 캐릭터의 역동성을 옴짝달싹 못하게 묶어두는 구실을 하게 되었다. 김훈의 문체에 갇힌 캐리터들은 한 없이 평면적이었고 답답했다.

파주를 막아낼 수 있다면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서울을 버려야 할 일이 없을 터이지만, 그 말이 옳은지 아닌지를 물을 수 없는 까닭은 적들이 이미 임진강을 건넜기 때문이었다. 반드시 죽을 무기를 쥔 군사들은 반드시 죽을 싸움에 나아가 적의 말발굽 아래서 죽고, 신하는 임금의 몸을 막아서서 죽고, 임금은 종묘의 위패를 끌어안고 죽어도, 들에 살아남은 백성들이 농장기를 들고 일어서서 아비는 아들을 죽인 적을 베고, 아들은 누이를 간음한 적을 찢어서 마침내 사직을 회복하리라는 말은 크고 낲았다. 하지만 적들은 아미 임진강을 건넜으므로 그 말의 크기와 높이는 보이지 않았다. (18-19페이지)

보기 드물게 긴 문장이다. 스타카토식으로 짧은 문체를 구사하는 김훈의 문체와는 좀 멀어 보인다. 내용은 마지막 문장인 적들이 이미 임진강을 건넜으므로 급박하다는 거. 그 상황을 이렇게 장황하게 서술하고 있었다.
 
김훈의 장황한 문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고의 압권은 35-36페이지에 나열되어 있다. "성의 지세가 물을 두르고 산에 기댄 장풍국이라고하나~시간과 더불어 말라가니 버틸수록 약해져서 우밎ㄱ이지 않아도 해롭고, 버티고 견디려면 트인 곳을 막아야 하는데 트인 곳을 막으면 안이 또 막혀서, 적을 막으면 내가 나에게 막히게 되니 막으면 갇히고, 갇혀서 마르며, 말라서 시들고, 적이 강을 차지하니 물이 적의 쪽으로 흐르고, 안이 먼저 마르니 시간이 적의 편으로 흐르는 땅이 바로 여기라고 말하는..(중간생략)..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무려 한 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을 한 문장으로 내리 썼다. 이런 만연체의 문장은 한 문장을 길게 써야 미덕이라는 판사들의 글쓰기에서나 볼 수 있었는데 바로 김훈의 소설에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것두 스타카토식의 문장을 구사하는 대명사로 이름을 날리는 작가에게서 볼 수 있다는 거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런 만연체 문장은 소설 곳곳에 넘쳐난다. 캐릭터가 문체에 갇힌 소설은 무참하게 읽을 수밖에 없다. 기대가 커서 그랬는지 실망을 달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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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20-04-17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을 참 편협하게 읽으시네요 무조건 짧고 간결해야 미학이라는 개... 평생 독서하실일 없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섹스 마네킹 - Love Object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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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느 모임의 지인이 (내가) 멜리사 세이지밀러를 좋아한다고 하니 그럼, <섹스마네킹>을 봤냐고 물어서, 못봤다고 했다. 그러자 그분은 꼭 한 번 봐보라고 강력 추천해 줬다.

근데, 제목이 좀 난감해서 XXX등급 아니냐고 했더니, 전혀 그렇지 않고 매우 잘 만든 스릴러물이란 사실도 덤으로 알려줬다.

영화를 본 결과, 이 영화의 제목을 붙인 넘은 싸대기를 수십 번 맞고도 남아야 한다는 거...원제는 Love Object. 원제와 영화 전체 내용을 상징하는 걸로 <섹스마네킹>이라니..이건 상업적 속물근성을 넘어 작품 자체를 아예 왜곡시키는 개념을 망각한 타이틀이다!

  2

『‘마네킹 페티시즘’에 사로잡혀 리얼 돌을 사람으로 여기고 사람을 인형으로 취급하는 지경에 이르는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의 제작진이 만든 최신 에로틱 스릴러』

2005년 7월 15일 개봉한 <섹스 마네킹>의 광고 문구이다. 영화의 내용은 단 하나의 주제인 남자의 왜곡된 성(性)으로 수렴한다. 하지만 결코 진부하지 않다.

영화의 주인공 케네스는 유능한 샐러리맨이지만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으로 인해 매사에 적극적이지 못하다. 그의 생활은 너무나 건조하고 단조롭다. 일과 집을 오가는 것이 생활의 전부다. 연애에 있어서는 완전 쑥맥이다.

어느 날 사장은 그의 능력에 걸맞는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긴다. 사장은 케네스가 힘들어하지 않게 업무보조자까지 붙여준다. 이게 문제였다. 케네스는 자신의 업무보조자로 채용된 리사를 보고 한눈에 반해 버린다.

'케네스'는 소심한 성격으로 인해 '리사'에게 접근하지 못한다. 그는 솟구치는 자신의 욕망을 다른 곳에서 풀려고 한다. 급기야 그는 맞춤형 섹스마네킹인 니키를 주문하면서 리사에 대한 성(性)적 판타지를 해소하기 시작한다.

케네스는 컴퓨터로 니키의 선택옵션을 업데이트하면서 리사의 성적 환타지를 충족시키는 요소들로만 채워나간다.

케네스는 낮에 리사를 보고 그려지는 거의 모든 환타지를 집에 와서 니키에게 투사한다. 케네스는 니키를 식사할 때도 식탁에 앉혀 놓고 식사하고 TV를 볼때도 옆에 앉혀놓는다. 침대에서도 섹스 후 같이 잔다. 진짜 살아 있는 애인을 대하듯이 한다.

그런데 케네스가 갑자기 리사와 가까워 지면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케네스의 니키에 대한 애정이 리사로 전이되면서, 그는 니키에게 미안한 마음을 느끼게 된다. 리사를 더 사랑할수록 니키는 버려진다. 버려진 니키는 인간처럼 케네스를 공격한다.

케네스는 자신이 섹스마네킹을 사랑했다는 사실을 리사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하고, 니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교차하면서 그는 편집증적인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영화는 케네스의 정신분열증으로인한 일상의 섬뜩함을 강조한다.

영화는 종반으로 치달을수록 손에 땀을 쥐게 한다가 마지막에 대반전으로 보는 이의 뒤통수를 후려갈긴다! 진짜 감탄할 만한 반전의 묘미라 할만했다.

3

무엇보다 이 영화를 빛나게 한 것은 감독의 연출력과 배우의 힘이다.

이 영화는 그저 그런 B급 포르노 영화가 절대 아니다. 감독인 로버트 파라기는 한 편의 영화를 통해 잘못된 사랑의 소유욕이 낳을 수 있는 극단점을 모두 보여주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성적 욕망에 대해서 말하면서, 정상과 사이코의 차이는 무엇이고 사랑과 성적 욕망의 차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영화는 이 물음에 대한 감독 나름의 해답이라 할만했다.

연출력도 신인감독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훌륭했다. 주인공의 편집증적인 상황을 소품과 시선을 사용해 생활 속의 공포감을 조장하는 면이나, 경쾌한 음악과 절제된 침묵 속에서 주인공이 엽기적인 행적을 보여주는 것은 감독의 역량을 가늠하게끔 했다. 특히 끝의 기막힌 반전처리는 압권이었다.

케네스라는 다소 이중적인 캐릭터를 신들린 듯 표현한 데스몬드 해링턴의 연기는 이 영화를 서스펜스 스릴러라는 장르가 되도록 한 일등공신이다. 그가 없었다면 웃기는 3류 영화로 전락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와 호흡을 맞춘 멜리사 세이지 밀러의 무난하면서도 섹쉬한 매력 또한 영화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하나의 요소이다.

 

4

한가지 놀라운 점은 한달전인가, 미국에서 소개된 섹스마네킹 뉴스이다.(우리나라 언론에서도 소개되었다!) 마네킹 이름은 까먹었지만 여자 섹스마네킹을 본 순간 너무도 소름이 끼쳤다. 바로 <섹스마네킹>에 나온 니키와 너무도 닮았기 때문에..

처음 제목 때문에 혹 주저하는 분이 있다면, 주저 말고 함 보시라 권해드린다~ 이만한 완성도를 자랑하는 쓰릴러물은 별로 없다~

PS 
안타깝게도 멜리사 세이지밀러가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얼굴이 완전히 망가졌다~ 이 영화가 그나마 멜리사 미모의 마지노선이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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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경제학자의 유쾌한 에세이
폴 크루그먼 지음, 김이수 옮김 / 부키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6부으로 이루어져 있다.
1. 일자리, 일자리, 일자리,
2. 우파의 문제
3. 세계화의 뜬구름
4. 성장이란 환상
5. 투기꾼의 무도회
6. 시장을 넘어서

1부는 일자리 주제에 대한 온갖 혼란스러운 생각에 대한 것이다. 어설픈 이론가에서는 최근들어 다시 인기를 얻고 있는 아주 오래된 한 가지 오해를 논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행해지는 노동의 양은 제한되어 있고, 따라서 생산성이 향상되면 구할 수 있는 일자리 수는 감소된다고 하는 생각을 논파한다. <다운사이징 다운사이징>에서는 일자리에 대한 인식과 현실의 간격을 논하면서 로버트 라이시를 조소하고 있다.<속류케인즈 주의자들>에서는 자본주의가 과도한 생산성으로 인해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생각에 동조하는 어설픈 케인즈주의 논객들을 비판하고 있다. 1부 마지막 에세이는 실업에 대한 프랑스의 슬픈 사례에 관한 것을 다루고 있다.

2부에서는 공급중시경제학이라는 괴상한 이론을 맹렬히 비난하고 있다. 공급중시 경제학을 지지하는 밥돌을 비롯한 정치가와 우파경제학이 왜 잘못됐는지를 주요 저서와 정치가들의 입장을 분석하면서 그 잘못의 급소를 찌르고 있다.

3부는 세계화에 대한 잘못된 환상을 지적하고 있다. 국제무역과 투자는 세계경제 전체보다 빠르게 꾸준히 성장하고 있고, 그 결과 국가단위의 경제는 갈수록 상호의존적이 되고 있다.(101) 이 상호의존성과 영향이 둘 다 과장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며 지식인들 사이에서 그에 따른 모든 현상을 사악한 것으로 몰아붙이는 경향이 강하데, 크루그만은 바로 그 사악한 현상이 사악한게 아니라고 강변한다. <세계가 하나가 아니다>는 그런 경향을 바로잡기 위해 쓴 글인데, 이 글이 비판의 십자포화를 맞자(세계화의 결과로 제3세계의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혜택을 보게 될거라고 말한 대목) 그에 대한 보론으로 쓴게 <값싼 노동력을 찬미하며>이다. <적자에 시달리는 동아시아>는 일부 석학들과 정치가들이 신흥공업국의 등장(특히 중국)으로 세계적인 공급과잉이 초래될 것인데, 중국같은 나라는 생산만 하지 소비는 하지 않으며 수출만 하지 수입은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견해를 비판한 글이다. 여기서 쉬운 무역수지 경제학을 맛볼 수 있다.

4부에서는 경기순환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대대적인 논전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도 공급중시 경제학은 크루그만의 비판의 주 대상이 되고 있다. 언론을 통해 득세하는 새로운 패러다임론의 잘못된 점을 비판하하면서 그 새 패러다임이 통화정책을 통해 가능한 일과 불가능한 일을 혼동하여 경기순환과 장기성장 간의 차이에 과한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옹호한다>에서는 유럽의 가격안정 정책 입장을 반작한다. 그리고 <일본은 무엇이 문제인가>에서는 일본경제가 침체한 원인이 소극적인 통화정책 때문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끝으로 <물결의 규칙을 찾아서>에서는 경제학과 역사학에 대해 그리고 경기순환이 결코 종식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말하고 있다.

5부에서는 금융과 환율투기에 대한 의미를 밝히고 힜다. 세계구리사장에서 스미토모 사의 초창기 성공적인 매점에 관한 놀랄만한 이야기를 다룬 <카퍼씨는 어덯게 파멸하게 되었는가>. <테킬라 효과>는 94년말 멕시코 및 다른 라틴아케리카 국가들의 통화위기를 <바트화 현상>에서는 97년 아시아 통화위기에 대한 내용. 끝으로 <조지 소로스로부터 안전한 세계 만들기>라는 에세이는 97년 3월 런던에서 열린 G30 회담 발표문으로서 유럽의 통화위기에 초점을 맞추어 좀더 폭넓은 조망을 하고 있는데, 이 책에서 가장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다.

6부에서 묶인 글은 대체로 가격과 가치의 차이 그리고 그 차이를 분명히 밝혀주는 경제학적 분석에 관한 것. <지구의 대차대조표>에서는 환경보호정책에 빗대어 중요한 희소장원에 제값이 매겨지지 않으면 시장이 왜골될수도 있다는 생각에 대해 새로운 분석을 시도하고 있으며 같은 주제로 교통혼잡 문제를 다루고 있다. 두 경우 모두 시장실패는 정부개입의 강력한 근거가 된다. 그런데 민주주의 정치 자체가 정치과정을 통해 고쳐져야 하는 시장실패에 의해 똑같이 시달림을 받고 있는 실정을 <합리적 민주주의>에서 논하고 있다. <의학적 딜레마>는 의료기술 향상으로인해 야기되는 심각한 도덕적 정치적 쟁점을 논한 글이고 <소비자물가지수와 과당 경쟁>은 인플레이션과 삶의 의미에 대해 논한 글이다. <과거를 돌아보며>에서는 뉴욕타임스 매거진 100주년 특집호에 기고한 것으로 서기 2026년의 시점에서 되돌아 본 필자들의 전문 분야에 대한 기고 요청에 응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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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호라이즌 - Event Horizo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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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 중에서 배경이 우주인 영화는 흔치 않다.

우주 공간의 폐쇠된 우주선은 뭔가가 나올것만 같은 기괴함을 일깨운다.(망망대해의 버려진 유령선과 동일하다)
 
사실 영화는 중반 후반까지 빼어난 공포감을 조성하고 궁금증을 유발하지만 마지막에 가서 허망하게 헬레이져분위기로 빠져버려 많은 아쉬움을 남긴 작품이다.

샘닐의 섬뜩한 연기가 볼 만했다. 여기서 처음으로 로렌쉬 퓌시번이 멋진 배우라는 걸 알았다.

 이 작품은 주로 에스에프 계열로 분류하지만 것보다는 정통 공포물로 분류하는 게 좋을 듯하다. 그렇다고 에일리언과 같은 괴물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시종일관 뭔가 나올거 같지만 나오지는 않고 캐릭터 각자가 안고 있는 내면의 공포심이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간다는 내용. 

우주의 끝(여기서는 지옥)까지 갔다온 우주선 이벤트 호라이즌. 우주선은 그곳에 사람들을 내려놓고 지옥을 탑재하고 우주를 떠다닌다.
 
하여간 공포물 중에서 아주 특이하고 나름대로 꽤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는데 전달력에서 많이 미흡했다고나 할까...

참고로 이벤트 호라이즌은 직역하자면 사상의 지평선이라는 의미...사유하는것과 실제계는 우리가 눈으로 지각하는 지평선 안쪽일뿐이며 지평선 그 뒤에는 무슨일이 있는지 모른다는...그런 내용~

의미를 갖고 다시 보면 꽤 심오한 영화다..

개인적으론 3번 봤는데, 볼 때마다 B급 영화치고는 꽤 좋은 영화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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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여, 나뉘어라 - 2006년 제30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정미경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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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연휴가 시작되던 날 반디문고에 가서 책구경을 하다가 이상문학상수상집 코너가  있길래 그자리에 주저 앉아 읽었던게 이 2006년 이상문학상 소설집이었습니다. 수상작들은 구광본의 <긴하루>, 함정임의 <자두>, 김경욱의 <위험한 독서>, 김영하의 <아이스크림>, 전경린의 <야상록>, 윤성희의 <무릎>이었습니다.  

시간상 최종 대상후보에 올랐던 3작품 전경린과 정미경 김경욱의 작품만 읽었습니다. 그리고 정미경의 이 작품과 치열한 경합을 벌였던 전경린의 작품은 솔직히 이 전작인 <환과 멸>과 별반 차이가 없어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이게 최종까지 심사위원들에게 고심하게 만들었다는데 의아했습니다.  

하여간 전경린의 모든 작품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실망스러웠는데 말입니다. 평론가들의 취향이 수상작을 결정하는데 한몫한다는 걸 알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이 대상수상작에 내 나름의 시선이 삐딱해집니다.  

이 글은 서점에서 읽은 즉시 떠오른 생각들을 매모해두었다가 다시 정리한 글입니다. 좀 삐딱하게 읽는거.. 이런 수상작들을 보는 즐거움중 하나입니다. 나는 평론가들과는 생각이 다르다..라는...나만의 읽기...하여간 관심있는 분들도 읽어보시고 나름의 평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에 2등은 없다는 광고 카피가 생각난다. 난 2등이 좋은데...세상은 1등만을 기억한다는 그 카피는 지금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언명이다. 2등의 위치. 2등의 가치를 모르는 거 같다. 우리선수가 은메달을 따면 실망하면서도 수영에서 2등인 은메달을 따면 난리다. 경중의 차이인가..세상은 1등만을 기억하는 건 아니다. 그러면서도 대학순위나 기업순위는 뻔질나게 매긴다. 학생 석차매기듯이.. 국가순위도! 우리나라 서울대 세계대학 순위는 63위. 글로벌기업에 삼성은 10위에 들지 못한다.  우리가 그렇게도 호들갑떨었던 세계축구 4위. 2등은 저~ 위에 있는 도달할 수 없는 가치일 수도 있는 것이다.

  누구나 학창시절 성적표를 받았을 것이다. 우리는 그 석차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노력하면 내가 어느 등수에 들어 장학금을 탈수 있을지에서부터 저녀석한테만은 뒤질수  없다는 치기어린 결심에 이르기까지..

  정미경의 <밤이여 나뉘어라>는 바로 학창시절 치기어린 경쟁심과 열등의식이 우리사회의 엘리트들의  의식속에 어떻게 각인되는지 형상화한 소설이다.(적어도 나에겐 그렇게 보였다!)학창시절의 그 의식이 계속 사회속에서 성공의 단계라는 변화하는 옷을 입고 어떻게 진화하고 파멸하는지 이 소설은 보여준다. 우리사회의 엘리트라는 평론가들로부터 "주제의 진정성"이라는 찬사를 받은 이 작품은(대상 수상작으로선정된 이유가 주제의 진정성이었다) 오로지 그런 의식을 공유할 수 있는..아니 적어도 한번 쯤은 경험한 엘리트들의 열등의식의 심연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영화감독인 나는 함부르크에서 자신의 영화시사회가 열리는 것을 맞아 노르웨이 오슬로에 있는 친구이자 평생의 우상이던 P를 만나기로 한다. P는 학창시절부터 1등만을 해온 독선적이고 천재성이 번뜩이는 그런 친구다. 뷰티풀마인드의 주인공 존 네쉬처럼 인격에 장애가 있는. 나와 P는 의대에 진학하지만 천재성에 도취된 P의 독선적인 태도로 P는 졸업과 동시에 미국행길에 오른다. 미국 유명병원에서도 그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P는 돌연 노르웨이로 거쳐를 옮겨 신약개발에 참여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집에서 머무르는 단 3일동안 P의 아내이자 한때 내가 사랑했던 M으로 부터 P가 알콜중독자가 됐다는 절규어린 소리를 듣게 된다.
 


  <밤이여 나뉘어라>는 바로 학창시절부터 계속된 치기어린 경쟁심과 열등의식이 이후의 생활에도 나와 P의 관계에 끊임없이 계속되는 그 관계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천재성을 가진 P를 노력파인 내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내면의 열등의식을 표출시키면서 한 천재의 인간적 파멸을 그리고 있다. 천재이고 모든것을 갖춘 P가 알콜중독자로 밝혀지는 과정을 통해 내가 나의 생을 살지 못하고 타인을 의식하면서 사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소설은 얘기해 주고 있었다.
 
  주인공 나는 2등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P로 인해 열등감에 사로잡힌 삶을 살고있다. (그가 유명 영화감독이 된 지금도!) 2등은 1등 뒤로 숨을 수도 있고 따라가야 할 분명한 목표 1등이 있기에 공허하지 않다. 계속 앞에 있는 목표가 있으니 그 목표가 도달할 수 없을 만큼의 천재라면 2등의 성장은 웬만한 1등 부럽지 않게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사회에서는 주인공처럼 좌절하는 엘리트들이 훨씬 더 많은 거 같다. 그래서 평론가 이어령은 "이루지 못할 꿈을 쫓는 인간 존재의 허무" "인간의식의 파멸과정"이라 평한지도 모르겠다. 이런 문제의식은 엘리트일수록 더 깊게 느끼고 그것이 이 작품을 대상수상작으로 선정한 이유일 듯 하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평범한 주제인데도 불구하고 평론가들이 뜻을 공유했다라는 건 적어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내면적으론 비록 엘리트는 아니라하더라도 자기나름의 그런 열등의식을 갖고 있다는 의식의 보편화를 염두해 두었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이 작품을 삐딱하게 읽는 나로서는 왜 이작품이 이상문학상 대상에 선정되었는지도저히 동의할 수 없다. 이 작품이 그토록 높게 평가받으려면 다음과 같은 보편적인 전제가 뒷받침되야 한다.

 "우리는 모두 우리를 뛰어넘을 수 없는 어떤것에 우리의 생을 투사하며 그것으로부터 끊임없이 인정받으려하고 그것으로인해 끊임없이 열등한 실체임을 자각해야하는 비극을 지닌 존재라고"

  2등에 아파하는 자 이 소설의 대상 이유인 주제의 진정성에 동의할 것이다. 2등에 만족하고 자기 앞의 생에 만족하는 사람에게 이 소설은 그리 큰 무거움으로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학교에서의 성적과 사회의 성공이라는 것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어찌 이런 것에 문제의식을 느낄 수 있겠는가?

 
 나와 P의 관계에서 만족과 행복은 없다. 오직 보여주기와 인정받기 위한 애씀만 있다. 다름 사람의 평가는 다 무시하고(이 작품의 주인공은 영화감독이다. 대중의 평가와 지지가 가치있을!) 오로지 내 우상의 평가만을 맹목적으로 갈구하는 "나"에게 자유와 행복이 어찌 공존할 수 있을까. 성공한 영화감독인 나를 있게한 것도 P에 대한 열등감이며 P를 만나러 오슬로에 가는 것도 결국은 P에 대한 열등감의 발로다.

  M의 절규와 P의 파멸과정으로 인해 나를 괴롭히던(적어도 지금의 "나"를 있게한) 그 열등감은 어떻게 되었는가? 없어졌는가? 상대에 대한 열등감은 없어지지 않는다. 2등으로 괴로워한자 1등이 없어졌다고 1등이 돼지 않는다. 적어도 그 자신의 자아는 안다. 그는 1등이 아니라고. 1등이 없어져버리길 간절히 소망하지만 1등이 없어져도 쾌재를 부르지도 않는다. 

 그래서 소설가 서영은은 대상수상작 평에서 이 사실을 "내가 P에게 씌운 자기욕망의 신기루가 걷힌 뒤에도 깨달음으로 바뀌지 않는다. 존재의 자기증명이 가장 극명해지는 것은 무엇을 이루었느냐하는 결과로서보다 긴장감을 사는 바로 그때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비범함은 이 메시지에 있다"라고 썼다.

 
 나도 평론가들이 흔히 평하는 걸 흉내내서 이 소설을 평해 보겠다. 이 소설은 엘리트만이 느낄 수 있는  치기어린 열등감이 인간의식의 파멸과정에서 어떤 작용을 하고 있는지 평론가인 엘리트의식속에 성공적으로 각인시켜 주제의 진정성을 획득한 작가의 비범한 선취의식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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