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크백 마운틴 - Brokeback Mount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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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서 최고의 영화라고 해서 드뎌 이 명작을 봤다. 

히스 레저의 명 연기를 볼 수 있다길래.. 

잔득, 기대에 부풀어서.. 

 막상 다~보고 나니, 뭐랄까..음...다 좋은데, 왤케 재미가 없는지 모르겠다..

브로크백산의 절경을 감상하는 것도

두 주인공의 섬세한 연기도

마지막 엔딩도...다 좋았다.... 

근데, 재미가 없다...

도체 뭐가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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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0-07-20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그런거 있잖아요~다 좋은데 재미는 없는--; 이게 설마 문제는 아니겠죠^^; 그냥 그럴수도 있는거죠?

yamoo 2010-07-20 23:00   좋아요 0 | URL
그럴수도 있습니다만...대부분 작품성 좋고 배우 연기가 좋은 영화 쳐놓고 재미 없는 영화는 아주 드문데, 이 영화가 바로 그 드문 케이스 같습니다. 아마도 동성애 영화라서 그런 걸까요..순전히 개인적이라서요..ㅎㅎ
 
두려움과 떨림 : 변증법적 서정시 지만지 고전선집 348
쇠얀 키르케고르 지음, 임규정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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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차례
서언
조율
아브라함께 드리는 찬사
문제제기

 1. 토로하고 싶은 심정 
 2. 문제1: 윤리적인 것이 목적론적인 유보라는 것이 있는 것일까? 
 3. 문제2: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 의무라는 것이 있는 것일까? 
 4. 문제3: 아브라함이 사라나 에리나나 이삭 앞에서 자기의 게획을 침묵에 붙여 버린 것을

                그가 윤리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것일까?
끝맺는 말
부록
<두려움과 떨림>이 성립하게 된 유래- 에마누엘 히르쉬
키아케고어 평전- 루돌프 카스너
키아케고의 파토스론- 강학철
역자후기


대학교 2학년때인가..민음사에서 나온 키에르케고의 <두려움과 떨림>을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워낙 인상깊게 읽어서 인지 키에르케고르 하면, 항상 <죽음에 이르는 병>과 <두려움과 떨림>이 떠오릅니다.

당시 도서관에서 빌려보아서, 이 책을 사기 위해 동분서주 해봤지만 구할수가 없더군요. 민음 이데아 총서 시리즈 중 한권이었는데, 민음사 측에 문의를 해 보니, 절판이고 더이상 발행하지 않는다는 군요. 완전 실망~

할 수 없이 헌책방을 전전하면서 찾아 봤지만 헛수고. 그러다가 2007년 대구의 헌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해 냉큼 샀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애지중지하면서 생각나면 탐독하고 있지요.

<두려움과 떨림>은 크리스트교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그의 외아들 이삭과의 관계를 윤리적-종교적 실존의 영역에서 분석한 키에르케고르의 초기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이 작품은 후기 대표작인 <죽음에 이르는 병>과 함께 그의 실존 변증법적 사고 방식을 가장 알기 쉽게 안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저작물입니다.

이 책의 처음을 펼치면 서론 다음에 '조율'이라는 장이 나옵니다. 성경 창세기 22장 1절부터 13절 까지의 내용인 아브라함에 대한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시려고 그에게 말합니다. "네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데리고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에서 그를 번제로 나에게 바쳐라."

바로 이 내용은 어린 키에르케고르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나 봅니다. 그래서 어른이 된 키에르케고르는 다음과 같이 회고 하고 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어떻게 시험하였고, 아브라함은 어떻게 이 시험을 이기고 신앙을 지켜서, 기대와는 반대로 아들 하나를 다시금 얻었는가라는 저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었다"(p15)

'조율'에서는 이 황당한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의 인간적인 면이 4가지 시각으로 드라마틱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꼭 짧은 단편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입니다.

이 후의 장인 '아브라함께 드리는 찬사'와 '문제제기'는 위 상황에 대한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적 논평입니다. 윤리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위이지만 그리스도교적 실존에 따를 때 이 행위의 위대함이 드러난다고 설파합니다. 그리고 그 행위는 오로지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한 유일한 사건입니다.

이 책의 타이틀은 보시다시피 사랑의 변증법적 서정시라는 부제가 붙은 <두려움과 떨림>입니다. 책을 번역한 분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성경적으로 해석하여 이와 같은 타이틀을 붙인 것 같습니다.

빌립보서 2장 12절에 보면,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만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구절이 신앙인의 경건한 생활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한다면 <두려움과 떨림>이라는 주제 아래서 아브라함의 믿음은 다루어 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려움과 떨림>은 개신교 신학과 실존철학 및 실존주의문학의 원천적 사상이된 기념비적인 책이라고 합니다. 특히 이 책은 사르트르와 게오르그 루카치 등을 통해 실존사상의 입문서라는 격찬과 추천을 얻기까지 애독된바 있습니다.


[책에서]  


현대에는 아무도 신앙에 머물러 있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들이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묻는다면 아마 낯간지러운 일이 될 것이다. 이와 반대로 내가 사람마다 제각기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이는 거의 처세술과 교양의 표적이 되리라.  p11

믿음을 갖지 않는 자들에게는 모방이란 가장 쉬운 일이다. 믿음은 모방을 곤란하게 한다.   p43

철학은 신앙을 제공할 수 없고, 또한 제공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철학은 자기 자신을 이해해야만 하고, 자기의 능력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철학은 인간으로부터 아무것도 아닌 듯이 무엇을 빼앗거나 편취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  p48

사려 깊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결코 잊지 않는다. p63


현재 이 책이 두 권 번역되어 출간되었습니다. 2007년 다산글방에서 임춘갑님의 역으로 <공포와 전율>(키에르케고 선집4)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고 2009년에는 지만지고전천줄에서 임규정님의 역으로 <두려움과 떨림>이라는 민음사판과 동일한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제가 읽은 책은 91년 출간된 민음사 이데아 총서 시리즈 중 44권째인 <두려움과 떨림>(강학철 역)입니다. 알라딘 DB에 목록이 없어 동명 출간서인 지만지고전천줄판에 할 수 없이 리뷰를 남깁니다~ 책 내용은 동일한 거 같아서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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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8 1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19 1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롬파리 위드러브 - From Paris with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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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 영화를 검색하는 와중에 누가 재밌다는 말을 해서 <서틴>과 같이 봤다. 

근데, 두 영화에 모두 존 트라볼타가 나와서 좀 짜증났다. 

<프롬 파리 위드 러브>에는 이녀석이 주인공으로 나온다..ㅎ 것두 아주 터프하게~ 

흐음~ 뭐, 나름 재밌게 봤지만, 이걸 극장에서 봤다면 돈 아까와했을 영화다.. 

러닝 타임은 짧고 반전도 없으며, 매우 진부한 내용으로 일관한다는 거.. 

사건의 개연성도 없어 보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 만했던 것은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 때문이다. 

그가 주연으로 열연한 미드 <튜더스2>를 너무도 재밌게 봐서 그런지, 영화에 그가 나와서 넘 반가웠고(이 영화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봤다) 존 트라볼타 보다는 그의 연기를 보는 것이 내내 즐거 웠다.  

키도 그리 크지 않은 넘이 어찌 그리도 수트가 잘어울리는지.. 

오락영화의 정석을 충실히 따르는 진부한 영화지만 그래도 두 캐릭터의 힘이 영화를 볼만하게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무료해서 미쳐버릴 것 같은 분이라면 강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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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틴 - Katy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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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카틴 숲 학살 사건을 영화한 기록영화. 

1939년 8월 23일 소련의 비야체슬라프 몰로토프와 독일의 요하임 폰 리벤트로프 외상이 모스크바에서 독소불가침 조약을 체결한다. 

이를 계기로 독일과 소련은 폴란드를 분할 점령하는데, 무장해제 당한 폴란드 군에 대해서 사병은 독일이 장교는 소련이 포로를 관리하게 된다. 

독일군 점령 지역에서는 대학을 폐교하고 교수들까지 강제노동에 동원한다. 소련군 점령지역에서는 소련이 동구를 공산화하는 계획이 스탈린에 의해 진행되어 간다.  

그 일환으로 소련은 폴란드 엘리트 장교 22000명을 카틴 숲에서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당시 소련은 포로에 대한 처우를 정한 제네바 협정에 서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만행이 가능했다. 

1943년 4월 13일 독일의 비밀경찰에 의해 발견된 시신에 의해 이 학살 사건은 만천하에 공개 됐는데, 정작 폴란드에서는 점령군 소련 때문에 비밀에 붙쳐진 사건이다. 

이 사건이 놀라운 점은 스탈린이 폴란드 독립을 100년간 막고자 폴란드 군에서 독립의 근간이 될 만한 엘리트 중의 엘리트들의 씨를 말리고자 했다는 사실이다. 

무장해제된 상태에서 장군을 비롯한 정예 장교들은 무참하게 학살당한다. 포박되어 뒤에서 두개골을 향해 권총 세례를 받는 처참한 학살 장면이 여과 없이 영화를 통해 보여진다. 

자신들의 만행이 독일에 의해 공개되자 소련은 조작된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어 그 책임을 독일에 떠 넘기고 폴란드에서 카틴에 대한 발언을 금지한다. 폴란드인 누구를 막론하고 카틴에 대해 말하면 그 즉시 소련 비밀경찰에 의해 잡혀가 감금된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영화는 그대로 전달한다. 사건의 전말을 전혀 모르던 나와 같은 사람에게도 이 영화 한 편은 카틴 숲 학살 사건이 어떤 의미인지 리얼하게 체험할 수 있게 한다. 

22000명의 장교와 그 가족들까지 학살되는 와중에 이 영화의 주인공인 안나와 그 가족은 어렵게 살아남았다. 창기병 연대장 안제이가 포로 생활에서부터 처형에 이르기 까지 적은 수첩이 유품으로 발견되면서 소련의 만행은 구체화되고 영화의 토대가 되어졌다.  

소련에 의해 처형된 장교 가족들의 애환이 얽히면서 영화는 이 사건이 폴란드에게 얼마나 큰 아픔이었는지 전달한다. 카틴 숲에서 자신의 동생을 잃은 고등학교 교장이 소련에 항전할 것이라는 딸의 말에 조국 폴란드는 100년간 독립 할 수 없다는 자조 섞인 말 속에 이 상실감이 잘 나타나 있다. 

정말 우연치 않게 25일날 KBS에서 본 영화인데, 축구 중계 이후에 봐서 앞 부분을 놓쳤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보는 내내 충격적이었다. 다시 보고 싶어서 영화를 구해서 어제 다시 봤다. 역시 충격적이었고, 조국 폴란드의 아픈 실상을 생생하게 알게 된 영화였다.  

생생한 당시 필름을 영화에 삽입해 카틴 숲 사건의 의미를 사실적으로 전달하는 이 영화는 최고의 기록영화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한다. 

지난 4월 10일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과 관료들이 카틴 숲을 방문하려다가 사망한 것은 이 가슴아픈 폴란드 역사를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카틴 숲 사건이 뭔지 모르시는 분들에게 강추한다. 보면서 일제시대 우리나라에서 행한 일제의 만행이 생각나 폴란드의 애환이 가슴깊게 다가 왔다. 조국 폴란드의 재건을 보지 못하고 스탈린의 욕심에 개죽음을 당한 폴란드 엘리트 장교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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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생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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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생>의 겉표지에는 파스칼 키냐르의 ‘장편소설’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작가의 책을 처음 펼치는 사람이라면, 일반적으로 서가에 진열되어 있는 소설작품 중 한 권을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아무생각 없이 책을 읽기 시작한 사람은 몇 페이지를 넘기다가 말고 이상한 책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페이지를 더 넘기면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소설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전통적인 산문도 아닌 것이, 거기다가 시도 아닌, 참으로 난감한 문장들과 단락들만이 계속 이어진다. 하지만 그런 것도 잠시, 예상을 뛰어넘는 감탄스러운 문장을 만나게 되고 계속 줄을 긋게 된다.

소설이라는 전통적인 장르 개념을 파괴한 이 작품은 무엇보다 이러한 독특한 형식이 주목을 끈다. 체계 없이 그냥 생각의 편린과 같은 단락들이 무수히 연결되어 나아가지만 결국에는 단일한 주제의식을 전달하고 있다. 키냐르가 개척한 새로운 장르라는데, 이 형식적 이질감으로 인해 가독성은 현저히 떨어지고 있음은 부인할 수가 없다. 어떤 장르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든 장르에 속하는 형식의 한 변형이라는 데 어지럽기는 매한가지다.(키냐르는 왜 한 가지 장르에 얽매여서 사고를 빈약하게 하는가?, 왜 모든 장르의 이점을 활용하면 안되는가?라고 반문한다)

이 작품을 형성하고 있는 53개의 장들은 각기 소설, 신화, 전설, 묘사, 대화, 희곡, 아포리즘, 평전, 음악과 미술에 대한 평론 등의 독자적인 장르를 취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단지 한 두 문장으로 이루어진 극히 짧은 장과 단편소설 분량의 호흡이 긴 장들이 어지러이 섞여 있다. 이러한 체계없는 구성 속에서도 각 장들 간에는 나름대로의 연관성이 느슨하게 유지되는가 하면, 26장처럼 전혀 이질적인 장이 끼어들어 흐름을 방해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어지러운 방식이 “설명할 수 없는 삶을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표현하려는 작가의 의도된 전략임”을 알기 전에는 그저 당혹스러울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들쭉날쭉한 53개의 장을 읽는 방법도 평면적이어서는 이해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책을 번역한 송의경씨에 의하면, 키냐르 책은 그에 걸맞은 독법이 필요하단다. “모자이크를 바라보듯 부분과 전체를 한눈에 아우르는 노력을 이중으로 진행시킬 때 가장 이상적인 독법이 된다. 이러한 독법으로 읽다 보면, 작품의 층위에서 그 자체로 한 점의 동판화인 53개의 장들이 모여서 다시 한 점의 판화를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부분과 전체가 팽팽히 긴장하며 서로가 서로를 떠받치는 가운데 작가가 새기는 동판화 <은밀한 생>도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프랑스 평단에서는 키냐르의 소설들에 대해 ‘시적 산문’ 혹은 ‘산문시’라는 찬사를 늘어놓는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시처럼 아름다운 문장을 만나볼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아름다움이 키냐르의 글쓰기 방식, 어휘의 선택, 아포리즘적 문장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작품에서 시적인 메타포를 건저올리게 하는 것일까? 송의경씨의 말을 들어 보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아름다움은 일체의 기교가 배제된 극도로 예민한 감수성이 강렬하게 표출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솟아오른다. 그곳에서 단순히 ‘문제’가 아닌, 육체(작품)에 깃든 영혼과도 같은 한 목소리가 예리한 칼처럼 느닷없이 우리의 가슴을 겨눈다.” <르몽드>지가 “그의 작품들은 <시학>이 시에 부여한 영역을 단번에 획득하여 점령한다.”라고 언급한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다.

책은 굉장히 사적(私的)이다. 자신의 단상들을 적어 놓은 일기장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여주인공을 등장시켜 마치 자기 얘기를 하는 판토마임극과 같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저자는 사랑하던 여인을 잃고 은둔지를 찾아 끊임없이 사회로부터 이탈하면서, 기원의 탐색, 잃어버린 첫사랑의 기억, 은밀한 삶의 방식이라는 주제들을 표출해 나간다. 키냐르의 표현을 빌면, 그를 비롯한 모든 인물들은 모천을 향해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인간들’이다. 이러한 것을 키냐르는 ‘모천회귀’라고 명명한다. 키냐르에 있어 모천회귀 여행은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이루어진다.(그는 하루도 독서를 하지 않는 날이 없다고 한다) 독서는 책과 1:1로 대응하는 침묵의 여행이다. 또한 글쓰기는(키냐르식으로 말하자면) “말을 함으로써 사회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사회에서 자신을 사라지게 하는 방식이다.”

키냐르가 이 책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독서와 배우기 그리고 사랑은, 태아가 어머니와의 융합상태에서 느꼈던 완전한 일치감을 제공한다고 한다. 사랑을 통해서 키냐르는 끊임없이 그런 순간들을 찾아 헤맨다. 그 궤적은 다음과 같다.

1. 최초의 사랑(어머니) ← 2. 첫사랑(네미) ← 3. 사랑의 그림자(M)

1은 최초이며 지금은 잃어버린 불가능한 사랑, 곧 어머니이다. 현실의 어머니가 대신할 수 없는 사랑이다.
2는 첫사랑이다. 적어도 키냐르에게는 최초의 사랑에 가장 근접할 수 있는 사랑은 첫사랑뿐이다. 일생에 단 한 번뿐인 첫사랑은 이미 두 번째이므로, 네미의 머릿글자가 N인 것은 전혀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 N은 M다음에 오기 때문이다. 이 책의 화자인 ‘나’는 이렇게 말한다. “네미 사틀레라는 이름은 가짜다. 이 세상에 존재했었으나 이제는 어벗는 내가 사랑했던 한 여인을 나는 그렇게 부를 것이다.”
3은 사랑의 그림자이다. 최초의 사랑을 잃고, 단 한 번 뿐인 첫사랑을 잃으면 그 아음부터의 사랑은 그림자에 불과하다.

키냐르에 따르면, 옛날과 옛날 이후. 전자와 후자가 분리되는 시점은 언어를 습득하면서부터라고 한다. 우리는 원래 말하는 존재였던 것이 아니라 그런 존재로 변화된단다. 언어의 인칭대명사가 ‘나’와 ‘너’와 ‘그’를 구분하자 틈이 벌어지고, 엿보는 자가 생기고, 사회가 나타난다는 것. 언어의 개입으로 분리된 두 가지 시간은 관계를 분열시킨다.

이 책은 언어로 분열된 두 시간을 언어로 통합시키고자 필사적으로 애쓴 저자의 산물이다. 키냐르는 말할 수 없는 부분, 말 할려해도 혀 끝에서만 멤도는 그러한 부분만을 사랑이라는 보편적 주제로 환원시켜 전달한다. 포장은 ‘사랑’이지만 본질은 인간 실존 문제에 대한 언어적 고민이다. 하나의 범주로 가두기에는 그의 사상과 문체가 너무도 심대하다~ 

 
<책에서> 

“진정한 모든 사랑에는 사랑이 싹튼 무렵보다 더 오래된 무엇이 자리잡고 있다. 바로 이 다른 곳으로부터 사랑이 드러난다.” p154

"우리의 매혹, 우리의 출생, 우리의 유년기, 우리의 나체, 우리의 약점, 이런 것들이 가장 확실하게 우리를 죽이는 무기들이다. 그래서 우리가 남자들과 여자들을 죽여야만 한다는 사실, 즉 그들이 우리를 죽이기 전에 먼저 재빨리 그들을 습격해서 죽여야만 한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칠 때, 그것이 사회적 삶이라는 것이다. 사회에서는 비명소리에 조차도 동족인 인간의 죽음이 끈질기게 따라다닌다. 사회에서는 꽃들마저도 동족의 죽음에 사로잡혀 있다. p 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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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좋아 2010-09-27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무님 은밀한 생. 다음달 책 모임에서 읽기로 했어요. 제가 읽자고 추천했어요 ㅋㅋㅋ 야무님 추천 받고 목차르 훑어봣는데 너무 읽고 싶은거였지요.ㅋㅋ
책 읽고 야무님 리뷰 읽어 볼께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