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ott님의 가즈오 이시구로 어머니 이야기와 무라카미 하루키 부인에 대한 포스팅에 얼마전 읽었던 유명한 '작가의 부인'들에 대한 기사와 이야기들이 생각나서 정리해본다.


이 부담스럽게 순박한 (아저씨 가슴 좀 여미세요) 70년대의 가족 사진 속 아버지는 희대의 살인마와 엽기 범죄를 그려낸 작가 스티븐 킹이다. 부인과 해로한 그는 그저 심플 패밀리 맨.


작가가 포기하려던 '걸작'을 부인 타비타가 알아보고 구해내 결과적으로 그의 커리어와 가족의 생계를 보존한 일화로 유명하다. 그의 <유혹하는 글쓰기>에도 나와있듯이 킹이 쓰레기통에 버린 원고를 부인이 주워다가 남편이 다시 작업하도록 독려했다고 한다. 

Stephen King's Wife Dug Carrie Out Of The Trash And Made Him Finish It (groovyhistory.com)



비슷한 일화는 <롤리타>에도 해당한다. 나보코프의 부인 베라는 유능한 편집자이기도 했기에 그녀의 심미안은 믿을만 했다. 베라 나보코프는 23살 때 독일에서 세 살 연상의 나보코프를 만나 결혼했다. 그녀는 이미 러시아 작품을 영어로 번역하고 편집자로도 일하고 있었다. 1939년 파리에서 남편이 친구들에게 <롤리타>의 기초가 될 '짧은 이야기'를 낭독하기 훨씬 전에 험버트 험버트라는 캐릭터를 잘 다듬도록 도와준 사람은 베라 나보코프라고 믿어진다. 그로부터 10년후 미국에서 교수직을 갖고 경제적으로 어느정도 안정된 다음, 나보코프는 계속 손보던 롤리타 원고를 집 뒷뜰의 쓰레기통에 불태우려고 했다. 베라가 인터셉트. 그는 이 소설 원고를 시한폭탄이라고 불렀고 출판에 대해 처음에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1953년 뉴욕으로 출판 상담차 여행을 떠날 때, 베라가 직접 500쪽에 가까운 원고를 직접 갖고 이동했다. 유럽으로 출판 관계차 여행을 하면서 콜럼비아에서 받은 연봉을 거의 다 썼을 정도로 이 책의 출판은 부부에겐 큰 프로젝트였다. 


소설의 미국 출간 후 1958년 뉴욕에서 열린 파티에서 기자들은 나보코프의 멋진 은발 부인에게 큰 관심을 가졌는데 그녀의 존재는 '롤리타 처럼 보이지 않'아서 남편의 도덕적 위장을 해준 셈이었다. 그녀는 하지만 언론 인터뷰에서 소녀 롤리타의 괴로움, 그녀의 외로움을 강조하기도 했다. 베라 나보코프는 롤리타가 어떤 순수함의 상징이 아니라, 그저 무방비하게 버려진 아이, 세상에 취약한 상태로 던져졌지만 삶을 살아내려 애쓴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베라의 더 큰 액션은 남편의 유언 '오리지널 오브 로라'를 불태우라는 말을 무시했다는 점이다. 미 대법관 고 루스 긴즈버그의 회고록에 따르면 나보코프의 문학 강의에 베라가 뒷줄에 앉아 청강하면서 남편 강의에 고개를 젓는 리액션을 취하기도 했다고 한다. 


Véra Nabokov Was the First and Greatest Champion of “Lolita” | The New Yorker



이렇게 편집자로 (아니면 속기사나 원고 정리자로) 작품에 큰 도움을 준 부인들 덕에 소설을 '제 시간 안에' 완성시킨 작가들로는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가 있다.

‘사랑, 일, 그리고 죽음’을 함께 한 러시아 작가의 아내들 - Russia Beyond (rbth.com)



더해서 얼마전 타계한 존 르 카레의 두번째 부인, 발레리 제인 유스타스 역시 편집자였다.


남편 사후 두 달후 사망한 그녀는 순애보의 주인공 같이도 보이는데 수십 년 간 남편의 작업을 함께 했다. 물론 공식적으로 그녀는 자신의 기여도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아들 닉 콘웰 (작가)의 글에 따르면 부부는 수십 년 간 항상 함께 하며 작업했다고. 그녀의 손을 거치지 않은 르 카레의 소설은 없었으나 그녀는 사진이나 인터뷰 등으로 언론에 노출되기를 극도로 꺼렸다. 

My father was famous as John le Carré. My mother was his crucial, covert collaborator | Books | The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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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3-25 20:3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나보코프 부인 베라에 관한 책 편지글 모조리 읽어봤지만(솔직히 나보코프는 베라 없이 이정도로 성공 못함)
르 카레옹의 두번째 부인의 헌신적인 사랑은 전혀 몰랐네요.
언론에 단 한번도 기사나 노출 된적 없었는데ㅜ.ㅜ

줄리언 반즈 부인도 영미권 명 편집자중 한명이였죠
와이프 외조 하는 남편들의 순애보는 없는 듯 ㅎㅎ

우와 링크 해준 사이트 중 러시아 비안드 기사들 전부 흥미롭네요.
유부 만두님 소개 캄솨~*

유부만두 2021-03-25 22:58   좋아요 3 | URL
지난달에 르 카레, 나보코프 기사를 연달아 접하고 링크를 모아 두었더랬어요. 그리고 오늘 스콧님의 포스팅을 보니까 생각이 나서 기사 내용이랑 유명한 부인들 에피소드들 정리를 했습니다. ^^

작가 부인을 외조하는 남편은 정말 보기 힘드네요. 로버트 브라우닝 정도? 일까요?

줄리언 반즈 부인도 편집자였군요. 참,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경우가 좀 있다고 들었어요.

얄라알라 2021-03-25 20:3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와! 스티븐 킹 같은 작가도, 작가되기를 포기할 뻔 했던 시절이 있었군요. 눈이 매섭고, 깊게 꿰뚫어보는 이들이 가까이에 있다는 게 얼마나 복받은 일인지.. 이런 문학동네 뒷얘기를 통해 배우는 즐거움이 크네요^^

scott 2021-03-25 20:36   좋아요 4 | URL
눈에 ㅋㅋㅋ매서움 저도 느꼈어요 ^^

유부만두 2021-03-25 23:00   좋아요 2 | URL
부인들의 매서운 눈! 첫번째 독자이며 가장 무서운 눈이겠죠.
그런데 그 눈을 무시한 작가들, 배우자를 무시하고 학대한 사람들도 있었으니 참 ...

페넬로페 2021-03-25 22: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정녕 여자들이 있기에 남자들이 빛나네요!

유부만두 2021-03-25 23:01   좋아요 3 | URL
그들이 작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잡아주고 도와준 부인들의 공이 크죠.

잠자냥 2021-03-25 22:1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나보코프는 진짜 베라가 절반은 만든 것 같아요. 아 그리고 위에 스콧 님도 말씀하셨지만 줄리언 반스 부인도요. ㅎㅎ 재미난 글 잘 읽었습니다.

유부만두 2021-03-25 23:02   좋아요 2 | URL
줄리언 반스 검색해 봐야겠어요. 작가-편집자의 팀워크는 공과 사를 넘나드는군요.

잠자냥 2021-03-25 23:06   좋아요 2 | URL
반스는 부인 죽고 나서 굉장히 쓸쓸해 했어요. 작품마다 맨 앞에 ‘팻에게’라고 서문을 썼는데 그게 아내 이름이랍니다.

유부만두 2021-03-25 23:10   좋아요 1 | URL
아.. 애틋해라. (전 반스를 하나도 안 읽어봤어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영화로 본 게 다에요;;; )

미미 2021-03-25 22: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르카레님의 아들도 작가군요! 덕분에 귀한 정보들 얻어갑니다^^*

유부만두 2021-03-25 23:02   좋아요 2 | URL
스티븐 킹 아들 처럼요. ^^

희선 2021-03-26 0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신은 못 알아봐도 다른 사람이 알아봐서 좋았을 듯합니다 그런 사람이 아주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었네요 그런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군요 르 카레 부인은 르 카레가 죽고 두달 뒤에 죽다니...


희선

유부만두 2021-03-26 12:17   좋아요 1 | URL
르 카레 부인은 암으로 투병중이었는데 (80대 고령) 남편의 사망에 충격을 받아 병세가 악화되었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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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3 1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리나라 개봉 포스터에는 여자 주인공의 얼굴을 지워버렸다. 매우 중요한 인물인데. 

더이상 신참자가 아니라 베테랑, 그 동네 니혼바시의 유지가 되어버린 <신참자>의 형사 카가의 이야기 (의 어쩌면 종결판)다. 


두 명의 집나간 어머니들. 두 가지 이유와 두 명의 버려진 아이들. 두 명의 남겨진 아버지들의 사망 후, 성장해 어른이 된 그 아이들이 만난다. 어머니들의 가출에 얽힌 사연과 범죄, 그리고 비틀린 사랑(이라고 주장하는)의 이야기를 꾸역꾸역 무대에 올려 놓았고 쇼는 머스트 고온. 막이 내려간 다음 그 무대와 관객석, 혹은 무대 뒤의 연출석에서 뒷수습은 어찌 해야할까. 예전에 읽었던 일본 소설 <고백>에서도 느낀 찜찜함이 다시 올라왔다. 지금 여기의 범죄와 사연에 어찌했건 과거의 '엄마'를 불러오는 서사. 속죄거나 아니거나 '순수한 의도'를 위해서 공식처럼 깔린 사망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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