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영화다. 화면마다 색과 동작들이 가득하고 그보다 더한 폭력과 힘이 넘친다. 1920년대 일본의 중국 침략부터 제2차대전, 일본의 패주와 국공합작, 장개석의 도주에 이어 문화혁명까지 중국 역사가 함께 펼쳐진다. 그 흐름 속에서 경극은 각 시대의 권력자와 닿아있었다. 전장터에 따라다니며 하늘이 낸 귀족 출신 장수 패왕 항우를 섬겼던 우희 처럼. 


경극학교 겸 극단에 대여섯 살 무렵 들어온 두지(장국영)은 아주 어릴 때 부터 자신의 남성성을 부정당한다. 매춘부 어머니 밑에서 숨겨져 자란 그는 '남자아이'를 감추려 애쓴 흔적 처럼 머리핀을 꼽고 당시 남자 아이와는 다르게 머리가 길다. 극단에 들어갈 수 없는 신체 조건 - 육손, 필요없이 달린 가락지-을 어머니가 강제로 잘라낸 다음 피투성이로 극단에 들어간다, 아니 버려진다. 그후 어머니는 지워진다. 


극단에서 연습하는 여성 배역 노래에 단호하게 가사를 틀리는 열두어 살의 두지, 자신의 남성을 지우기 거부하다 단장과 동료 학생들에게 폭행을 당한다. 그리고 입에 피를 흘리며 여자 역할의 노래를 부른다. 그후 그는 계속 우희가 되어 패왕을 연기하는 친구 시투에게 마음을 붙이며 살아간다. 하지만 시투가 결혼하겠다며 매춘부 출신 주샨(공리)을 데려오고 두 친구 사이에는 경극/현실 차이가 조금씩 벌어진다. 자신의 몸값을 모두 치르며 신발도 벗어두고 맨발로 술집 마담을 떠나는 당당한 주샨의 걸음이 인상적이다. 


두지를 힘으로 누르는 당대의 권력자들은 '칼'을 소유하며 두지를 위협하는데 그때마다 두지는 더 현실보다는 경극 속 우희 속에 단단하게 자리 잡는다. 어릴 적 자신의 방패가 되어주었던 시투는 어른이 된 다음엔 두지의 고통을 모른 척 눈을 돌린다. 시투는 이미 자신의 현실을 살아내기도 벅차다. 영화 내내 그는 버럭 화를 내거나 '어찌 할꼬'를 되뇌이는 모습이다. 두지와 긴 세월 동안 연적, 동맹, 모자 등 묘한 관계를 만드는 주샨은 그녀 나름대로 패왕을 사랑하고 아끼다 떠나는 현실의 우희이 된다. 하지만 시투는 그럴만한 자격을 가진 진정한 패왕이었던가.  


영화는 매우 강렬하고 폭력적이다. 한번에 보기 벅차서 여러 번 끊었다가 (현실로 돌아와 숨을 고르면서) 다시 이어서 봤다. 거세, 폭력, 갈등, 긴장 등의 테마가 노골적으로 두 시간 반 동안 반복된다. 


영화의 처음 시작은 1970년대 다시 만난 우희와 패왕, 공연 연습을 하려는 어색하고 민망한 민초의 모습이다. 이 시작과 끝 장면들은 조명도 없이 너무 어둡고, 카메라는 관객이 무대를 볼 수 없도록 돌려놓아서 우희의 고운 얼굴을, 붉고 흰 분장을 볼 수 없다. 하지만 바로 이 시작과 끝 장면들 덕에 중간 부분 피처럼 붉은 우희를, 더할 수 없이 우희였던 장국영을 더 생각하게 된다. 영화의 폭력성에 치를 떨면서도 장국영의 무대와 인생의, 더해서 영화 밖의 모습들을 자꾸 생각하게 된다. 아, 사월은 잔인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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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4-03 09:3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다시 보고싶네요. 장국영 그리워라

유부만두 2021-04-03 19:49   좋아요 0 | URL
영화 보는 내내 맘이 짠하더라고요.

얄라알라 2021-04-03 10:5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유부만두님의 리뷰를 읽으면서, 제가 이 영화를 정말 봤다 할 수 있나? 자괴감. 학부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서 과제하라고 보여주셨던 것 같은데, 괴발새발 과제 짐작이 됩니다. 장국영 넘 아름답다 이 생각만 하며 봤던 거 같아요^^:;;;;;;;이런 강렬한, 그리고 사월의 잔인함을 떠올리게 하는 강렬한 영화인데 껍질만 봤던 거네요....다시 읽어야할 책처럼, 다시 봐야할 영화 리스트도 왜 이렇게 긴지.

유부만두 2021-04-03 19:52   좋아요 1 | URL
무슨 말씀을요. 이 영화처럼 화려한 외양을 가진 게 또 있을까 싶은데요. 사람마다 받는 인상이 다르겠지요. 전 이 영화가 소설 처럼, 처절한 역사 속 인물과 경극의 고난을 그린 산문처럼 읽혔어요. 그 안에서 슬프게 떠오르는 장국영이라니. ㅜ ㅜ
다시 읽고 싶고, 새로 읽고 싶은 책과 영화들 리스트는 계속 길어져만 가네요.

붕붕툐툐 2021-04-03 11: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작년 재개봉 때 다시 봤었는데, 커서 다시 보니 감정선이 잘보여서 너무 슬프더라구요..ㅠㅠ
진짜 명작이죠~ 장국영도 볼 수 있고... 꽃미모 지키시려 그리 빨리 가셨나.. 에효~~

유부만두 2021-04-03 19:53   좋아요 1 | URL
정말 명작이에요. 힘들게 봤기에 별 다섯을 주고 싶지는 않은데 (제가 뭐라고) 계속 생각나고 계속 떠올라요.

레삭매냐 2021-04-03 11: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초한쟁패에 마지막에 등장하는 서사 하나로 만든 영화인가 보네요... 제목은 알지만 정작 본 적은 없네요.

유부만두 2021-04-03 19:54   좋아요 1 | URL
네 그 유명한 패왕별희 장면을 경극/두 배우/중국사 등 여러 겹으로 풀어낸 영화에요. 저도 유명한 제목만 알다가 이번에 처음 봤어요.
 

거실을 좀 깔끔하게 만들려고 지난달에 북카트를 구입했는데, 별 효과는 없다. 삼단 북카트 아래엔 가방과 노트북을 두었고 제일 위엔 읽을 책들인데... 읽을건데...

지금 읽는 건 꺼내 놓은 셀레스트 잉 Little Fires Everywhere.

https://youtube.com/watch?v=a_JA5G65434&feature=sh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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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4-01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런거 많이 시도해봤는데 제일 좋은 건 거실에 책이 없는 거더라구요. ㅎㅎ 옛적에 거실의 서재화도 했었는데 어찌나 책이 굴러다니는지....

유부만두 2021-04-01 10:17   좋아요 0 | URL
네. 별 효과가 없어요. ㅠ ㅠ
도서관 가방은 옆에 뒹굴고요...

잠자냥 2021-04-01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카트 있으니까 도서관 분위기입니다! 여러분 보신 책은 제발 북카트에 놓아주세요~ ㅋㅋ

유부만두 2021-04-01 10:17   좋아요 0 | URL
일단 저부터 이 ‘도서관’ 규칙이고 뭐고를 안지켜요. ㅋㅋㅋㅋㅋ

라로 2021-04-01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카트라니, 팬시한걸요!!😅👍
제게 있는 책은 겨우, 4권,, 이랬다가 유부만두님과 4권라니 대박!! 이럽니다. 사진 아주 멋져요!! 뒤에 있는 책꽂이도요!!👍👍👍

유부만두 2021-04-01 10:18   좋아요 0 | URL
뿌옇게, 그것도 일부만 찍어서 그래요. 엉망인 거실 오늘 1일이니까 청소 정리 좀 해야겠습니다. ^^;;;

scott 2021-04-01 16: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유부만두님 집에 가서 책 빌려 보고 싶돵 ~♥(ˆ⌣ˆԅ)

유부만두 2021-04-01 22:10   좋아요 0 | URL
일단 도서관 회원 가입 + 카드 신청을 하십시오. ^^

psyche 2021-04-01 2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카트 너무 이뻐서 아마존 검색하고 있었더니 남편이 보고 구박하며 지나가네. 쌓인 책만 더 많아질 거라고. ㅎㅎ

유부만두 2021-04-02 16:07   좋아요 0 | URL
하하하 맞아요! 쌓을 곳을 더 만들 뿐, 정리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전 심지어 내놓겠다고 (팔거나 버리거나) 쌓아놓은 책 탑에 먼지가 먼지가 ....


하이드 2021-04-02 05: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책 놓을 자리만 더 늘어나고, 저는 또 바닥에 책 쌓여있고 ..

유부만두 2021-04-02 16:08   좋아요 0 | URL
하하하,

제게 북카트 영감을 주신 분 께서도 그러고 계시면 어쩝니까!
전 선배님 따라서 그 길을 가고 있는데요?! ^^

단발머리 2021-04-02 07: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궁극의 샷입니다. 뒷배경 책장에 멋진 북카트에 그득한 책들까지!! 완벽합니다!!!

유부만두 2021-04-02 16:08   좋아요 0 | URL
프레임 바깥 현실에는 책이 더 많다는, 아주 더 많이 어질러져 있다는 거 아세요?
완벽은 아니고....좀 무섭지 않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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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3-30 14: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인상적이네요. 출판 년도를 찾아보고 싶어지네요. 유행인건지....

하긴 작년 올해 책 제목중에 ˝~~입니다만,˝ ˝처음입니다만˝ ˝~입니다만˝ 류의 제목이 많아서 출판계 유행이 궁금하신 했어요. 유부만두님의 예리한 포착 덕분에 해골 다시 보게됩니다!

유부만두 2021-03-30 18:00   좋아요 1 | URL
책 몇 권에서 거푸 두개골 표지가 보여서 검색을 더 해보니 유행처럼도 보이네요. 책 내용이 죽음과 관련이 있겠지요? ^^
 


나비가 bow-tie와 닮긴 했지요. [...] 그 점을 러시아인들도 귀신같이 눈치채고는 bow-tie를 그냥 나비라고 부릅니다그런데 러시아어에서 나비를 뜻하는 단어는 소녀를 뜻하기도 합니다결과적으로 bow-tie와 나비와 소녀가 다 babochka(‘바보치카’)가 되어버렸습니다. (89)










'나보코프 프로젝트'로 통칭되는, 나보코프의 인시류에 대한 연구가 어떻게 수행되었으며, 인시류학에서 나보코프의 명성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제시하고 있다. 지은이들이 판단하기에 나보코프의 인시류에 대한 열정은, 글 못지 않게 전반적인 삶 속에 스며들어 그를 움직였으며, 그 성과 역시 문학적 성과에 견줄 수 있을 정도로 탁월했다. (알라딘 책소개글) 













사진은 여수 '곤충박물관' (2019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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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3-29 16: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와! 여수에 이런 박물관이 !!!온통 블루빛 버터플라이만 전시되어 있네요 ^.^

유부만두 2021-03-29 18:31   좋아요 3 | URL
네. 자산공원 위에 작은 곤충박물관이 있더라고요. 케이블카 타러 갔다가 들렀어요. 나비 컬렉션이 멋졌고요, 다른 종류의 곤충들도 많았어요.

미미 2021-03-29 17: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 이 나비랑 같은 종류인가봐요ㅋㅋ 나보코프의 소설은 언젠가 꼭 읽어야지 싶은데 아직은 겁이나요.일단은 주섬주섬ㅋ😅

유부만두 2021-03-29 18:32   좋아요 3 | URL
같은 종류인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파란 나비를 보면서 나보코프 생각을 했어요. (라고 우겨봅니다)

바람돌이 2021-03-29 17: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설마 저 나비들이 박제는 아니겠지요?

유부만두 2021-03-29 18:31   좋아요 2 | URL
박제 맞아요;;;;

얄라알라 2021-03-30 14: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인시류...알라딘 서재 들락이면 비례적으로 배우는 게 많은데, 오늘 생전 처음 ˝인시류˝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네요.^^

유부만두 2021-03-30 18:00   좋아요 0 | URL
저도 나보코프의 나비 사랑을 알게 되면서 배운 단어에요. ^^
 

Down이 어찌 보면 up이라는 것도 아나요? Down은 원래 언덕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런 뜻으로도 쓰이고요. 그런데 언덕은 위로솟은 것 아닌가요? 잉글랜드에는 Sussex Downs라는 언덕 지대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언덕을 오르면 ‘climb up a down’ 하게 됩니다.

아래로라는 뜻의 down은 원래 off-down이었습니다. 언덕을 벗어나라는 뜻이었지요. 그래서 고대 영어에서는 언덕에서 떨어지거나 언덕을 내려갈 때 fall off-down 이라든지 go off-down이라고 했는데, 언제부턴가 귀찮아서 off를 슬쩍 빼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는 ‘downup으로 솟은황당한 세상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go downhill (내리막길을 가다)라고 하면 go down down한다는 이상한 말이 됩니다. (59)





흑인들이 사는 곳은 물론 타운이 아니었다. 타운의 한 구역, 언덕 위에 있는데도 보텀Bottom이라고 부르던 곳이었다. [...]  하지만 저기는 언덕 위인데요.” 노예가 말했다. “우리한테야 높은 곳이지주인이 대꾸했다. “하지만 하느님이 내려다 보실 때는 저기가 바닥이라고. 그래서 우리가 보텀이라고 부르는 거야. 천국의 바닥이란 뜻이지. 그러니까 최고 좋은 땅이다 이 말이야.” [...] 백인들은 오하이오 주 그 작은 강가 타운의 비옥한 골짜기에 살고, 흑인들은 매일 그 위 언덕배기에서 문자 그대로 백인들을 내려다볼 수 있다는 사실에 작으나마 위안을 얻으며 살고 있다는 것을 설명해주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보텀은 아름다웠다.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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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3 14: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8-03 2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