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자(청소년 마르셀)가 아직 알베르틴이나 앙드레를 사귀기 전, 멀리서 소녀 중 한 명이 가정교사와 함께 걷는 모습을 본다. 가정교사는 완고하고 나이든 여자인데 외모가 추함을 표현하는데 '털'을 사용해 그 효과를 극대화한다. 털이라니, 여자 얼굴에 털을 두고 밖을 나돌아 다니다니.
그 소녀는 싫지만 외양간으로 떼밀려 들어가는 짐승처럼 머리를 숙이고, 손에는 골프채들을 든 채, 자기 혹은 자기친구들 중 하나의 ‘잉글랜드 여자 가정교사‘ 일 듯한 권위적으로 보이는한 여인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으며, 그 소녀를 앞세우고 가던 여인은 차보다는 진을 즐겨 마시는 듯 안색이 붉고, 회색빛이나 무성한 코밑수염에 이어, 씹는 담배 얼룩이 검은색 갈고리 모양으로 남은, 호가스가 그린 제프리스의 초상화를 닮았다. - P557
소녀는 억지로 외양간에 끌려 들어가는 짐승처럼 머리를 숙이고, 손에는 골프채를 든 채, 틀림없이 그녀 또는 그녀 친구의 ‘영국인 가정교사‘인 듯 보이는 한 권위적인 사람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 사람은 좋아하는 음료수로 홍차보다는 ‘진‘을 더 즐겨 마시는 듯 안색이 붉었고, 무성한 회색 코밑수염이 씹는 담배로 얼룩진 카이저수염처럼 검은 갈고리 모양으로 늘어져 있었는데 그 모습이 흡사 호가스가 그린 「제프리스 가족」 초상화와 비슷했다. - P313
(민음사 번역으로는 이 가정교사를 남자로 오독할 수도 있다)
스테판 외에의 만화 버전에서는 더 꼼꼼하게 털을 그려넣었다.
하지만 그 털을 얼굴에 풍성하게 기르면서 자기 인생을 풍성하게 살았던 프랑스 여성이 프루스트의 시대에 있었다. 요즘 읽은 만화책 '걸크러시' 두 권은 이 여성 클레망틴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래서, 어쩐지 놀리는 기분도 들고 더 가볍게 느껴지는데 ... 왠걸. 줄이어 나오는 여성들은 기원전 4세기 부터 지금까지 '여성'의 생명, 몸, 권리, 꿈을 위해서 싸우고, 싸우다 죽고, 죽어서도 편견과 싸우고 있다. 이 여성들의 이야기를 경쾌한 그림으로 힘차게 만나는 책이다. 수염이 남성의 얼굴에선 권위를 여성의 얼굴에선 추함을 드러내고, 수염이 상대적으로 덜한 아시안 남성이 왜소한 인물로 그려지는 서양의 시선을 생각해본다. 털이 나지 말아야 할 곳에 나면 끔찍해지는 데 (얼굴보다 심장! 양심!) 이 발모와 탈모에는 어떤 기준이 있는지. (아, 걸크러시에서는 이런 내용을 다루지 않지만) 머리털 말고는 여성의 몸에서 털을 다 밀어버리라고 가르치는 유행은 누가 만들고 즐기는 걸까.
궁금하면 뭐다? 책 찾기.
몇년 전 재미있게 읽은 두발자유화 소재 (두발은 인권과도 연결된다! 단발령도 그 맥락 안에 있지 않나?!) 청소년 소설 <열일곱 살의 털>이 생각났고 몇 권을 보관함에 (또) 담았다.
내게는 피부를 드러낼 자유가 있었지만, 규범에 맞는 여성적 의상을 입을 때 드러나는 나의 신체 부위들은 ‘여성화’되었을 경우에만 노출에 적합하다고 평가받았다. 그리고 여성화 과정에는 종종 돈과 시간을 들여야 했다-미용산업의 주머니를 내 돈과 시간으로 배불려야 했다는 말이다. (제7장 털 난 아가씨, 별 탈 없나요?) <여자다운 게 어딨어>
나는 어깨나 등에 털이 무성한 남자를 무서워했다. 바닷가에서 그런 사람들이 지나가면 '육식동물'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곤 했다. <감각의 박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