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너무 짧고 프루스트는 너무 길다." 아나톨 프랑스가 1913년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권 출간에 부쳐 쓴 말이다.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표현이다. 나머지 6권은 아직 출간되지도 않았는데 그에게는 벌써부터 프루스트가 "너무 길게" 보인 것이다. 기억의 심연을 파고드는 그의 철저한 추적이 어디까지 가게 될지 그 누구도, 프루스트 자신조차도 알지 못했다. 이 책은 앞으로 질주하는 시대를 거슬러 과거를 언어로 담아내려는 시도였다. - P154

이 책은 이런 황금 같은 말들로 시작한다. "오래전부터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프루스트는 이 말로 녹초가 되어버린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정곡을찔렀다. 카프카에서 조이스까지, 무질에서 토마스 만에 이르기까지 한 번이라도 자정 전에 잠드는 데 성공하면 일기에 자랑을 늘어놓았던 것이다.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 이것은 점점 잠이 부족해지기만 하는 모더니즘의선봉장들에게 우울, 음주, 무의미한 기분전환, 앞으로 돌진하는 시대에 맞서는 가장 용감한 투쟁으로 보였다. -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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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0-13 23: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프루스트의 의식의 흐름이 너무 길다는 거겠죠? ^^ 엄청나게 긴 저녁식사 이야기 생각이 나네요 😅

유부만두 2021-10-14 07:25   좋아요 2 | URL
의식의 흐름도, 문장도, 이야기의 묘사도 다 길어서 이렇게 쓴 것 같아요. ^^

mini74 2021-10-14 00: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길면 기차. 뒷 부분은 다음 분이 ㅎㅎ아직 전 ㅠㅠ 자괴감이 듭니다 ㅠㅠ

유부만두 2021-10-14 07:26   좋아요 3 | URL
길면 기차,
기차는 도시락(???? 제 의식의 흐름은 이렇습니다;;;)
 

되다. Becoming, a Devenir. 

다른 누구(의 무엇/누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는 것. 그것이 충만한 인생일 것이다. 그 길고 짧은 여정 동안 무수한 실패와 과오가 있어도 (부정하거나 감추지 않고, 과오를 인정하며) 그래도 목적지는 자기 자신. 다른이들과 함께 하는 자기 자신. 세계 속의 나 자신을 인식하는 것.


보부아르의 일흔 여덟 해 동안 '지저분 한 시기'와 '치열한 시기' 더해서 '회고하는 시기'를 며칠에 걸쳐 구경하면서 질리기도 여러 번이지만 다른 이의 인생을 읽으면서 나 자신을 더불어 깊게 생각할 수 있었다. 이 나이 먹어서 만나는 보부아르는 몇십 년에 걸쳐 보아온 소설가, 철학가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내가 나이 드는 동안 그가 기다려 주면서 조금씩 다른 모습이 된 것 같기도 하고. 특히 노년의 모습, 고민, 다른 여성들과 미래의 여성들을 생각하는 모습에 감동했다. 보부아르 다큐 중 '낙태 합법화' 시위에서 여러 여성들과 함께 외치는 구호 Solidarite (연대)가 크게 크게 울려 퍼진다. 


자,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고 덮었으니, 다른 책들 읽기로 나의 연대감을 표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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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1-10-13 08:3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다 읽으셨어요????
리스펙 몇 개를 드려야 할지...^^
며칠 전 이 책 장바구니에 담겨 있었는데 살째기 빼고..다른 책으로 자리 바꿈 했었어요.ㅋㅋㅋ
보부아르의 나이 든 노년의 모습이 궁금한데...나이 차 가는 유부만두님을 기다려 준 듯 하다고 느끼셨다면 푹 빠져 몰입 독서 하신 듯하게 느껴집니다..절로 몰입하며 읽어 보는 만두님의 감상이기도 하구요~~저도 요사이 줄곧 보부아르란 위인에 대해 늘 생각하는 하루 하루네요^^

유부만두 2021-10-14 07:29   좋아요 3 | URL
그쵸?! 이 책의 저자 케이트 커크패트릭에게 리스펙을 곱배기로 드립니다.

책은 읽을 때와 장소,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이해된다는 데 정말 크게 공감하고 있어요. 보부아르는 여성 독자의 나이대에 따라 그에 맞는 조언을 해줄 수 있어요. 뭐 저야 재미있는 (여러 의미로요) 책을 읽을 땐 늘 푸욱 빠져서, 과몰입하면서 읽습니다. 사르트르의 노환 장면에선 (이 책은 묘사도 꽤 좋습니다) 시부모님 생각도 나고 (으응????) 그랬다니까요.

단발머리 2021-10-14 21: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반 정도 읽다가 멈춤 상태거든요. 근데 사르트르 노환 장면 때문에라도 이 책 읽어야겠어요. 무지 궁금합니다요.

유부만두 2021-10-15 07:51   좋아요 2 | URL
전 나이가 들면서 작가들의 노년에 대한 글, 과거 이야기에 더 눈길이 갑니다.

공쟝쟝 2021-10-25 11: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두 보부아르처럼 늙고 싶어요. 사르트르와 대비되서 더욱더 훌륭하게 느껴졌던 그... 아 놔, 보부아르 페이퍼쓰겠다고 해놓고 아예 잊고 있다 유부만두님 서재 들어와서 생각나버림...ㅋㅋㅋ (도리도리 다시 잊자)

유부만두 2021-10-27 22:50   좋아요 1 | URL
다시 생각 났으니, 어쩔 수 없는겁니다. 보부아르 페이퍼를 멋지게, 쟝쟝님 스타일로 써 주시는 겁니다. 그걸 읽고 우리들 가슴엔 불이 타오르겠....(아, 제가 왜 이러지요? 응?)
 

표지의 광고문이 하이스미스와 듀 모리에를 언급했고, 나도 읽으면서 자꾸 <리플리>와 <레베카>를 떠올렸다. 과연 이 소설 속의 앨리스와 루시는 두 명인가, 실재하는 인물인가,가 내내 걸리적거렸고 (디테일이 부족했는지 몰입이 힘들었다) 광복/해방 직전의 혼란스러운 모로코의 상황과 이국적인 (다분히 유러피언/어메리컨들의 오리엔탈리즘에 쩔어있는) 북아프리카 묘사에 불편한 심정이 들었다. 


소설의 투박한 전개는 작가의 첫작품이 주는 신선함 탓이라고 생각했고 어디선가 본듯한 플롯은 억지로 만든 복고풍 영화라고 생각하면서 1950년대 배경의 소설을 읽었다. 이 소설의 의의는 그 유명한 영화 <가스등>을 이제라도 찾아서 보게 만들었다는 데 있다. 영화가 이 소설보다 훨씬 재미있고 또 생각할 바가 크다. <레베카>는 읽었으니 뿌듯한 마음이었고, 고전이 되어버린 소설을 떠올리게(만) 하는 소설은 그 원전격인 고전을 읽는 편만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듀 모리에와 하이스미스, 정말 대단한 작가들이야.



가스등, 그루밍이 언급될 때마다 나오는 뉴스의 자료 화면이지만 전체 영화를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비가 주룩 오다 말다, 하는 우울한 시월의 어느 수요일, 이 영화가 이렇게 재미있다는 걸 왜 아무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느냐고, 혼자 흥분하고 있다. 눈에 띄게 오버하는 옛날 배우들, 처음 부터 누가 캥기는지 죄를 지었는지 착한지 다 보이는데, 그래도 이 나쁜 사람이 제대로 혼나기를 바라는 마음과 '가스라이팅'에 바보같이 (하지만 그저 행복을 바라는 심정으로) 고개를 숙인 여주인공 칼라를 탓하는 마음이 번갈아 두근거렸다. 


영화는 매우 매우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난 후, .... 잠깐만,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단 말이지... 하는 주제 넘은 독자, 혹은 관객이 된다. (+ 런던에 10년 동안 비워 놓는 단독주택 있고, 참 부럽다)


덧: 주인공 폴라네 집에 새로 고용된 젊고 싸가지가 바가지인 하녀로 스무 살의 안젤라 랜즈베리가 열연한다. 짝다리에 껌 짝짝 씹는 이미지로. 잘 알려진 제시카 여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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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1-10-06 18:2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앗, 미안합니다. 저라도 가르쳐 드릴 걸.ㅠㅋㅋ
옛날 영화가 참 좋은 게 많죠. 챙겨 보기가 쉽지 않지만...
위의 책은 저도 기억했다 읽어 보도록하겠습니다.^^

유부만두 2021-10-06 21:27   좋아요 3 | URL
스텔라님의 좋은 영화 추천을 기대하겠습니다. ^^
<탄제린>은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어요. 하지만 너무 큰 기대는 마시고요.

Falstaff 2021-10-06 19:1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매우매우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샤를 보아이에를 처음 봤는데 아주 매혹적이더라고요.
근데 사실은 내용은 거의 잊어버렸습니다. 하도 오래라... 그로테스크한 화면의 기억만 잔뜩 남았습니다. 아, 진짜 오래 전이군요!

유부만두 2021-10-06 21:30   좋아요 5 | URL
이미 이 영화를 보셨군요. 전 괜히 이 영화가 지루하리라고 짐작해서 안봤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재미 있을 수가!!!!
내용은 단순하게 ‘가스라이팅‘ 하면서 부인을 정신병자로 몰아가는 남편과 그의 정체를 말하는 건데요, 아주 클래식한 추리소설을 읽는 기분도 들었어요. 장면들도 꽤 정성들였고요.

붕붕툐툐 2021-10-06 2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가스라이팅 얘기 나올 때 듣기만 한 영화인데, 유부만두님 재밌게 보셨다니 저도 찾아보고 싶네요~ 혹시 어떻게 보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유부만두 2021-10-06 23:12   좋아요 2 | URL
가스등(1944, 잉글릿드 버그만 주연) 영화를 네이버에서 1000원에 다운로드했어요. 그런데 화질이 별로에요. ;;;

붕붕툐툐 2021-10-08 00:23   좋아요 1 | URL
오~ 감사합니다~ 화질이 별루여도 볼 수 있는게 어딥니까?하하!!

독서괭 2021-10-06 23: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고전이 되어버린 소설을 떠올리게(만) 하는 소설”이라니 ㅎㅎ 안타깝지만 그런 작품이 종종 있는 것 같아요..
가스등은 저도 말만 많이 듣고 못 봤는데 그렇게 재밌단 말이예요?? 보고 싶네요~

유부만두 2021-10-06 23:14   좋아요 2 | URL
네! 재밌어요! 꼭 보셔요!
그리고 소설 <탄제린>도 재밌게 읽었어요, 다만 제 기대가 너무 컸나봐요. ^^;;;

mini74 2021-10-07 08: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가스등 묘하게 무섭고 어두웠던 느낌의 영화, 이 영화의 남주인공이 전 살인마보다 더 섬뜩했어요 ~~

유부만두 2021-10-08 08:29   좋아요 1 | URL
맞아요. 저 남주인공 너무 무서웠어요. 영화 마지막에서 죽여놓질 않아서 분이 안 풀림요.
 

곰돌이 푸우와 이솝 우화 느낌도 나고 어쩌면 명상 잠언집 같기도 하지만, 그림! 그림! 그림! 


더해서 해프닝 같은 과정의 자국과  환상 여행이, 아니 일상과 인생이 담겨있다. 책 서두에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여덟 살 독자, 또 여든 살 독자에게도 읽고 생각할 거리를 줄 수 있다. 책 소개에 미리 보기로 그림이 보이기도 하지만 스포일러는 되지 않겠습니다. 직접 확인하세요. (두더지가 귀여울 수도 있다니 놀랍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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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씨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송은주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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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트우드가 다시 쓴 ‘템페스트‘
마녀의 아들 칼리반이 주인공인 소설인가 했더만, 그게 아니다.
감옥에서 수감자들과 함께 ‘템페스트‘ 공연을 복수 프로젝트로 준비하는 프로페로스 필릭스. 외딴섬은 감옥이 되고 그의 강박적 복수, 딸아이 미란다이기도 했다.

필릭스가 이끄는대로 ‘템페스트‘ 를 찬찬히 읽고 영상 및 관객 참여형 공연을 준비하며 캐릭터의 본질, 자유와 속박, 다시 못믿을 인간을 고민해본다. 많은 것이 이중의 겹으로 구성된 템페스트 처럼 이 소설에서 미란다를 둘로 나눈 것은 신의 한 수였다. 다시 쓰고 다시 공연하는 템페스트의 통쾌한 난장은 400년 묵은 희곡을 생생하게 살려낸다.

아, 애트우드는 진정한 이야기의 마녀라네! 경배할지어다!

——


“이게 말이 된다고 보나,아리엘?” 필릭스가 8핸즈에게 묻는다. “자네 생각에는 이런 식으로 고쳐도 괜찮을 것 같나?”
8핸즈가 대답한다. “그건 미처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하지만 말이 되는데요. 안될 게 뭐가 있나요? 근사해요.” (3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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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9-28 22: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애트우드 책 사놓고 계속 밀리네요. 이야기의 마녀라니^^

유부만두 2021-09-28 22:26   좋아요 3 | URL
이 책 꽤 재미있어요! ‘템페스트’ 읽고 만나시면 더 좋습니다. (식후30분 느낌으로) ^^

scott 2021-09-28 22:2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 이책이 번역이 되었었네요 ㅎㅎㅎ

유부만두 2021-09-29 10:20   좋아요 2 | URL
네! 호가트 프로젝트를 잠시 잊고 있었는데 계속 나오고 있었어요.
햄릿을 다시 쓴 길리언 플린이 기대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