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7대 총선의 의의

1) 탄핵에 대한 국민투표적 성격 -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는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으로 국민들에게 요약.
87년에 6월항쟁으로 이루어 놓은 대통령제를 무너뜨리려 함.  
이를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으로 국민들이 이해.

2) 개혁적 자유주의 세력의 집권 - 6월항쟁에 뿌리를 둔 민주화 세력이 의회의 다수파를 차지 여당이 다수당이 된 것은 민주화 이후 최초의 현상

3) 지역주의 완화, 수구 보수 세력의 퇴조, -반민주 냉전 세력과 그들의 특정 지역 기반이 상대적으로 약화

4) 진보 세력의 원내 진출 -그동안 한국 정치에서 배제됐던 노동자와 여성이 의회에 진출한 것도 주목할만한 변화. 계급계층에 기반한 투표행태가 나타남 - 수도권 고소득자 밀집지역에서 높은 한나라당의 높은 지지율과 서울 강북지역의 열린우리당 지지율, 울산, 창원 지역에서 민주노동당 후보의 당선과 노동자 밀집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정당 지지율은 계급과 계층적 기반에 따른 투표성향의 뚜렷한 분화를 보여줌.

5) 이미지 선거, 미디어 선거의 시작
유권자들의 감성을 자극, 감정에 호소 - 정책이 실종된 선거판, 정당들의 정책생산 능력의 부재를 드러냄. 현재의 한국정당의 실상과 한계.

6) 민주주의 진전과 공고화를 가져 온 '결정적 선거(critical election)'로 많은 학자들 주장.  1987년 이후 지연된 민주화가 제한적으로 완성 - 형식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가 동시에 심화될 수 있는 계기.
시민사회와 정치사회의 ꡐ비조응성(非調應性)ꡑ을 단숨에 뛰어넘은 선거로 민주화의 ꡐ제2단계ꡑ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음.

하지만 이번 총선이 정당체제의 재편을 초래하는 중대선거(critical election)로 평가될 수 있을지는 의문- 정치지형과 선거과정에서의 변화가 정당체제의 재편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음.

어떤 선거가 중대선거로 평가되려면 유권자의 재정렬(realignment)을 야기해야 하고, 그러한 재정렬이 이후 선거에서도 지속돼야 함.

이후에 영호남에서의 지역투표가 완전히 사라지는가 하는 문제와 민주노동당에 대한 계급계층적 투표가 이후에도 진전하여 의회정치에서 유의미한 수준을 넘어 항상적인 수준으로 이후의 선거를 통해 지속되는가를 지켜봐야함.


1-1 지역주의 문제

* 한국의 지역주의는 단순한 지역감정, 또는 영호남 대립 차원의 문제가 아님.

- 중앙권력에 소외되어왔던 지방 사람들의 자기 이익 추구의 한 양상으로 형성됨.
  즉, 지역민의 입장에서 계급정치나 이해의 정치가 없는 실정에서 가능한 이해추구 전략은    자기지역의 대표가 중앙정치무대에서 힘있는 인물(정당의 대표 또는 대통령)이 되어 지역    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실질적으로 힘이 되어주는 방법이 유일함.

- 역사적으로 지역주의는 냉전하의 우익독점의 정치, 그리고 중앙의 지방 지배의 귀결이며.  지방의 소외가 해결되지 않고, 전국적인 정책정당이 건설되지 않고서는 재현될 가능성이    있음.

- 80년대 민주화운동 이후 ‘헤게모니 교착 상태’에서 보수세력의 주요한 이데올로기적 수단으로 형성.   즉, 추락하던 보수세력이 지역주의에 기대어 자기방어를 하고, 개혁자유주의세력은 시민사회세력의 투쟁에 의존하면서 경쟁하는 정치지형이 지속됨.

- 선거시기의 지역주의는 복잡하게 얽힌 현실의 불만이 합리적 대안을 가지지 못한 가운데,    정서적이고 감정적인 형태로 표출되는 이데올로기적(왜곡과 허구로서) 투표행태.

- 이번 선거에서 충청지역에서 자민련의 몰락과 열우당의 압승은 신행정수도로 상징되는     지역민의 이러한 현실적 욕구가 반영된 것임.  따라서, 개력과 변화의 차원에서는 반드시 긍정적이라고 볼 수만은 없음.  이러한 현상은 지방분권운동이 자칫 지역토착세력이 중심이 된 지역이기주의로 흐를 가능성을 우려해야하며, 분권운동의 주체형성, 방식에 대한 고민이 매우 필요한 시점임.  

- 이러한 점에서 민노당의 전국적인 고른 지지는 대단히 의미심장함.
  또한 이를 가능케한 정당명부식비례대표제의 확대를 정치개혁의 차원에서 더욱 진전시켜야할 필요성이 제기됨.

1-2 미디어 선거의 문제  

- 미디어 선거는 이미지 중심의 선거로 흘러 후보자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차단되고, 국회    의원선거까지 중앙정치중심으로 재편되는 폐해가 발생함.
  이미지 중심의 선거가 진행될수록 지역에서 지역민과 밀착하여 정치적 참여의 과정을 아    래로 부터 형성해온 사람들은 중앙정치에의 진입이 갈수록 멀어질 수 있다.

- 특히 정책 차이가 드러나지 않는 보수 지역정당체제하에서 도입된 미디어 정치로 인해     각 정당은 상대당과의 정책적 차별성을 부각시키기보다는 도덕성 부각과 이미지 연출을     유권자 동원의 주된 수단으로 이용함.   이는 현재의 지역대결 구도를 정책 혹은 이념대결 구도로 전환시키는 데 있어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음.

- 이는 현행 선거법이 정치부패와 돈선거 문제에 집중하면서, 그 원인을 후보자가 대중과     만나는 접촉점에서 부패가 발생한다고 인식하여 이 접촉점을 차단하거나 줄어야 한다는     논리로 후보자가 유권자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줄이게 됨. 이 결과 유권자들은 후보자에    대해 알 수 있고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적어지게 됨.

- 이 결과 대중과 정치의 관계가 대중매체의 개입으로 차단됨.
  이러한 현상이 앞으로 정치적 무관심이 증대되고, 정치의 참여를 줄이는 효과로 작용할     수도 있음.

- 특히 시민사회에서 대중매체와 언론의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매스미디어가 정치의 중심적 역할을 하게되는 역기능이 나타날 우려가 있음.  이는 시민사회와 정치사회의 조응성(調應性)을 균열시키고 매스미디어를 장악하는 세력이나 사람이 정치를 장악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음.   즉 메스미디어가 정당의 역할을 대체하게 되는 사회의 탈정치화의 기제로 작용할 수도 있    어 선거법에 대한 재고가 정치개혁의 측면에서 고려되어야 할 것임.


1-3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

1) 민주노동당 원내진입의 요인

- 13%라는 득표율은 민노당이 잠재적 지지계층에 호소해서 획득한 표라기보다는 전체적인    선거국면이 탄핵으로 급격하게 요동치는 과정 속에서, 사회 저변층이나 계급.계층적인 이익을 대변할 필요성들이 필요하다는 대중들의 자각이 민주노동당에 표가 쏠리게 했음.

-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도입이 절대적이었음.(유권자는 표를 2개 갖음)

- 이미지 선거가 판치는 속에서 민주노동당의 차별화 전략이 주효했음.
  오직 민주노동당만이 차별화된 정책을 표방하고 이성적 판단에 의한 선택을 유권자들에게    호소했고 적지 않은 유권자들이 이 호소에 응함.  계급 문제 중심의 한정된 시야에서 벗어나 사회복지, 환경 문제, 소비자 권리, 성차별 문제 등 시민적 관심 영역에 눈을 돌린 것이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주요인.

2) 민주노동당 원내 진입의 의의

- 노동없는 민주주의에서 노동이 정치적으로 대표되는 정치의 시작(최장집)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주화는 이번 17대 총선에서 시작됨.

- 한국사회에 이미 존재하는 계층적, 이념적 갈등을 제도정치의 틀로 끌어들인다는 점에서는 사회통합과 사회적 갈등의 관리에 도움이 될것이라 판단.

3) 민주노동당의 전망과 한계

- 열린우리당은 개혁적인 이미지를 활용하기 위해서 굳이 민주노동당과 연대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성과로 가져가려 할 가능성이 있음.  따라서 민주노동당을 상대적으로 주변화시키면서, 시민단체와 조응할 가능성이 큼.  즉 열린우리당과는 갈등하고 대립할 부분이 너무도 분명하게 보이고 이를 부차화시킬 것    임.


- 민주노동당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제대로 된 대안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음.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와 극복의 구체적인 방법과 대안은 무엇인가에 대한 대중적 설득력이 없음.- 이제는 구호가 아니라 정책과 비젼으로 다가와야.. 노동자 서민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느냐 하는 점에서는 정책적 대안과 그것을 수행할  인적역량, 프로그램 측면에서 볼 때 민주노동당이 제공해 줄 수 있는 능력보다 나타난 표의    요구가 더 강하다고 보아야함.

- 현재 보수세력과 개혁자유주의 세력으로 양분된 시민사회에서 진보진영의 진지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며 노동친화적 문화를 만들어 내기 위한 정치력과 활동방식이 필요함.

- 민노당의 민주주의에 대한 사고 정치에 대한 사고가 대중적으로 드러나야 함. 사회의 공공 영역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인식의 문제 - 공공영역 또는 시민사회를 헤게모니의 관점에서만 파악하는 것은 아닌가. 인간의 삶에서 정치적 자유가 갖는 의미에 대한 인식의 문제. 토의(심의)민주주의, 결사체 민주주의의 의의 또는 한국사회에서 공화주의의 인식의 확산에 대해서 더 적극적으로 사고해야 하지 않나.  

- 민노당은 노동사회와 산업 사회를 넘어서는 어떤 비젼과 삶의 양식을 제시하고 있는가.     민노당에서는 노동 중심사회를 넘어서는 다중 활동적인(multi -active) 삶과 문화적 사회   구성에 대한 비전이 잘 보이지 않음.

- 당내부의 문제로
* 노동계급의 참여의 취약성을 극복하는 문제 -이는 단기적으로는 호전될 것으로 예상
* 노동조합과 정당의 상호긴장, 갈등을 조정하는 문제
* 내부의 노선의 차이와 이견대립을 조정하는 문제
* 새로운 리더슆 형성의 문제-최근의 겸직금지와 당대표 선출 문제 등.(민주성,리더슆 비젼)
* 세 마리의 토끼를 쫓아야하는 어려움
  -노동정치를 수행해야하는 과제,
  -노동 계급형성을 위해 노력해야하는 과제(이는 민노총의 과제만이 아님),
  -대중정당으로서의 이념성의 문제와 안정성의 문제

4) 지역에서의 시사점

- 선거시기만의 당활동의 한계
- 일상적 당활동이 드러나지 않음.
- 지역의 운동, 지역의 정치에의 참여나 활동이 취약함.
- 선거공간에서 대중적인 인물의 개발에 지속적으로 실패.
- 당의 새로운 리더쉽, 대중적 외연의 확대가 필요하지 않나..


1-4. 열린 우리당과 노무현 정권과 개혁.


- 열린우리당이 보수정당의 색깔을 탈피한 수준
  그러나 개혁의 방향이나 정치적 이념의 지향이 그 이상으로 진전되지는 않을 것.
  정동영 전의장의 실용주의 노선이 이를 나타냄.

- 전체적으로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유지할 것.
  신자유주의의 핵심은 금융시스템의 자유화와 노동시장의 유연화.
  재벌규제나 세제는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부분이 있지만 큰 틀은 신자유주의.
  고용안정의 문제, 복지제도등 사회적 안전망의 문제를 과연 해결할 수 있을까 ?

- 안보와 경제등의 역역에서는 보수적인 기조를 유지하고 노동, 복지, 반부패, 인권등 정치 의 역역에서는 보수적 기조를 탈피하는 정도에서의 개혁적일 것임.
  냉전질서의 청산을 위한 국가보안법의 개폐, 언론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언론개혁등의     개혁작업은 진행할 것으로 예상. 이라크 파병, 남북문제등에서는 큰 변화를 보일수 없을 것.

- 전체적으로 정치의 역역에서는 약간의 변화와 개혁을 예상할 수 있으나, 경제, 사회 외교의 부분에서는 변화할 힘과 주체가 없음.  

- 오히려 작은 개혁에 치중하며 작은 정치만을 생각하기 보다는 한반도의 전망을 생각하는  전략의 정치를 생각해야할 때가 아닌가.


2. 시민운동의 문제와 진로

1) 경과와 상황

- 이번 선거의 의의는 정치사회가 국가로부터 분리되어 시민사회와 결합하는 계기가 됨.  서구의 신사회운동과 다른점.

- 우리나라 시민운동은 냉전 상황에서 계급정치가 발전하지 못했고 일반 민주주의도 완성 되지 못한 상황에서 그동안 여론형성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해왔음.
  87년 이후 민주화 이행의 과정에서 정치의 중심이 시민사회에 있었다 할 수 있음.
  정치지체와 ‘대의의 대행’으로 종합적 시민운동은 준정당적 기능을 갖음.
그동안 제도정치의 폐쇄성, 반민주성, 왜곡성으로 인하여, 정치적 시민사회운동의 ‘영향력 의 정치’가 과잉대표됨.
  즉 한국의 시민운동은 국민들의 정치 불신에 대한 반사이익을 배경으로 자신의 능력에 비해 과대평가되고 비정상적으로 확장되어 온 측면도 없지 않았다.

- 그러나 변화된 한국의 정치 판도(제도정치의 정상화와 정책정당의 지향)는 필연적으로 시 민운동의 형식과 방식의 변화를 요구하게 될 것이며, 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다면 한국의 시민운동은 급속한 사회적 영향력의 상실은 물론, 운동의 급격한 퇴조를 맞을 가능성이 있음.

- 최근에는 사회운동의 선도성이 대중의 역동성을 따라가지 못함.

- 이러한 속에서 이제 시민운동은 시민사회에 대한 이해와 성찰을 새롭게 하고 정치적인  것에 대한 이해를 다시 하여 민주주의와 삶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세우고 제시해야할  과 제가 대두됨.
  제도정치가 정상화하는 상황에서, 민주주의담론의 급진적 확장의 과제가 제기됨 - 문화적  차원, 생활세계적 차원으로 확장함과 동시에, 글로벌한 차원으로 확장.

2) 전망

- 국회의 특권제한 운동등, 의회권력, 사법권력과 시민권력의 불균형 시정 작업
  
- 감시운동의 전문화가 필요.
  이제는 의정활동의 내용, 사법적 판단의 내용을 둘러싼 감시가 필요.
  그리고 의회의 주요 활동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행정부의 임무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  지에 대한 방향설정에서 예산 집행, 법안 내용검토, 외국의 사례 검토 등에 이르는 전문화 된 감시운동이 필요.
  특히 조세의 집행에 대한 감시뿐만 아니라 조세 지출의 우선순위에 대한 논의로 중심이     이동해야 함. - 국가정책의 방향성의 문제에 대한 감시
  

- 중앙권력 감시운동에서 지역정치활성화 운동, 주민참여운동으로 무게중심 이동 필요
- 이익단체의 충돌, 정부와 이익단체의 충돌 시 갈등 조정자의 역할  
  시민운동은 이익집단의 행정/정치 장악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함.

- 신자유주의의 문제에 대해서 더 이상 회피해서는 안된다.
  사회가 정치로부터 분리되는 현 시점은 사실상 사회가 경제에 식민지화되어 있는 상황임.  6,70년대의 성장지상주의는 이제 효율성 지상주의로 모습을 바꾸어 급기야는 생활세계 전 반을 완전히 식민화 하였음.
  
이제 모든 문제에서 사회는 경제를 보조하는 영역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독자적인 것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를 둘러싼 본격적인 논쟁과 갈등이 시작.
   시민운동은 이에 대한 응답과 태도를 가져야 함.

- 전반적으로 시민운동은 이제 지역주민운동과 공동체 운동 그리고 유럽적 의미의 새로운    사회운동으로 크게 위치이동을 해야 함.

- 또한 앞으로 시민운동은 본격적으로 국제사회에 눈을 돌려야함.
  한국의 문제는 동아시아 문제, 미국 문제, 그리고 세계 자본주의 문제와 점점 더 분리될     수  없음.   특히 아시아에서 한국 시민운동의 리더로서의 역할에 전망을 갖아야 함.

- 종합형 시민운동은 그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고 새로운 자기변화의 시점에 서 있다.


4. 17대 총선과 지역운동


- 17대 총선의 여러 긍정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분위기는 무겁다. - 왜일까

**  지역운동에 대한 반성 -시민운동을 중심으로

1). 시민운동에 대한 이론적 검토가 없었다.
  - 연합운동, 노동운동을 중심으로한 민중운동, 좌파의 일부를 중심으로 한 정치운동에 대한 문제제기를 이론적으로 검토 수용한게 아니라, 기존의 운동이 가지는 현실적 한계를     우회하려는 방식으로 시민운동이 등장하지 않았나 하는 점을 반성해야 한다.
  - 이점에서는 초기 시민운동 형성기 주체형성, 운동의 내용, 지향점에 대해 고민이 별로    없었다는 점을 반성해야한다.

2). 주체설정의 논의가 없었던 점이 기존의 운동세력과의 분화. 단절로 이어졌다.
   - 의도와 관계없이 중산층운동 전문직 운동으로 비쳐지고 나타남.

3). 이러한 분화와 단절이 시민운동의 재생산 구조가 미약함으로 드러나고, 후배 그룹들의   좌절감으로 이어졌다.

4). 지역운동에 대한 담론형성의 기능을 담당하지 못했다. 즉 일정한 정도에서 새로운 운동 으로 시민운동은 성장하고 뿌리를 내렸지만(집단.단체로서는 뿌리 내렸지만 내용적으로     운동으로는 성장하지 못했다) , 변혁운동으로서 지역운동 내에서 담론을 형성하는 기능은 수행하지 못하고 일부에서는 배타적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게 된 것 아닌가.

5). 지역운동에 대한 의제설정, 기획이 소수에게 집중되고 소통과 담론형성을 위한 공개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지 못하였다.
   - 대전지하철 반대운동을 못한점.
   - 대선시기 토론회 한번 열지 않고 입장정리를 못한점.

6). 일부선배들이 행세주의적인 처신( 좋은게 좋다는 식의 )으로 일관했다.
  - 상호 비판과 반성을 전제로하는 발전을 가로막는 보신주의, 자리지키기, 의리중심주의    를 낳게되고 이러한 것은 페밀리라는 비아냥거림으로 통하게됨 - **페밀리, **사단,        ** 마피아.  
  - 앞에선 사람은 행세주의, 뒤에선 사람은 처신주의 , 전체적으로는 대세주의 ...
지난 시기에 알만한 선배 한분이 가는 곳 마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      한다는 말”로  대동단결을  이야기하고 다녔다. 나는 이 선배가 미래의 전망이나 자기확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은 적도 없고 전해들은 바도 없다. 이러한 태도가 문제다.
단결은 중요하다. 더구나 우리사회에서 아직은 약한 전력으로 전선에 임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이 말은 너무도 지당하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단결이고 무엇을 하자는 단결인 지를 말하지 않는 대동단결론(그냥 우리는 민주화운동의 동지이니까 !)은 우리 스스로를     우민화의 동화세력으로서의 운동권으로 자리메김 하는 것이던지, 아니면 대중이나 운동의  동료 후배들을 운동정치를 위한 동원과 배치의 대상으로 쉽게 바라보는 옳지 못한 태도라고 밖에 할 수 없다.

  - 전략적 사고를하는 집단으로 기능하지 못했다.
    즉 전략적 사고를 하는 활동가들이 부족하다-활동가들의 자질의 문제
    구체적 전술을 세우고 이에 필요한 자원을 동원하고 관리하는 방식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 아마츄어리즘에서의 자기만족은 아니었는지.
  - 겨레모임, 지역운동을 생각하는 작은 모임, 대전 시민포럼은 왜 깨졌나.
  - 지역의 학계와는 왜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나.(기능적으로는 성과가 있음)
    
7). 지역시민사회의 분화와 확산, 심화라는 관점에서 일을 풀어가지 못하고 소수의 능력에   바탕을 둔 기획력으로 지역운동에 대응하였다.
    - 지역언론 문제, 인권센터 문제, 지역운동지원센터 등등 ..


** 총선시기 활동의 반성

- 그동안 지역운동에서 정치의 문제를 줄곧 지역정치의 활성화와 새로운 정치주체의 형성,    그리고 정치세력화의 문제로 논의해 왔음.

- 총선을 대응하며 이러한 문제의식은 돌연 실종하고 정치진입의 문제로 변화.
  시민운동가들의 정치진출이라는 협소한 틀에서 문제를 보게되고 그것도 공론화하는 과정    을 생략하고 선점적 배타적으로 진행하여 결과적으로 대중들의 지지와 참여를 배경으로     하는 정치진입에 실패.

- 지역정치의 문제를 선거의 문제로, 정치공학의 문제로 생각하게 됨.
  결국에는 지역정치를 정상화, 활성화하는 문제와 지역시민사회를 확장 심화 시키는 문제가 동시적으로 주어져 있었고 이에 대한 문제의식과 대응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음.

-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과정, 절차의 정당성, 주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며 표류하게 됨.

- 탄핵국면으로 낙천 낙선운동은 실종.
- 촛불시위에서도 대중의 역동성이 사회운동을 압도함.

- 그 결과 자민련을 대체하는 열린우리당으로 씁쓸한 결론.    

- 아직도 지역사회는 보수적 시민사회의 헤게모니가 확고하다.
  지자체의 각종 건설사업이나 불하사업 과정에서 기업의 로비와 유착은 확고하다.
  검찰, 경찰, 변호사들과 범죄 집단 간의 연께가 있고, 지역 자영업자들과 이들 간의 유착이 존재한다.
  향우회, 산악회, 해병전우회, 동문회, 지역 언론 등으로 거미줄처럼 엮인 지역 시민사회는    최근에 시민운동등의 사회운동 조직을 압도한다. 지방의회는 보수적 자치단체장을 보수적으로 옹호 호위하는 토착 권력의 거점이 되어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는 풀뿌리 전망부재와 일없음의 연속이다..

- 이제 지역운동은 새로운 고민으로 지역의 정치와 지역의 운동과 지역민의 삶에 대한 고 민과 대안을 준비하고 성찰적으로 자기 자세를 분명히 해야 한다.



5. 청년의 역할


- 우리의 운동은 어찌 보면 정치의 과잉 이었다.
- 우리가 운동이라 불렀던 많은 것들은 사실 정치운동이었다.
  학생정치운동, 시민정치운동 등등..
  그러나 그러한 정치가 생활의 정치, 문화의 정치, 정체성의 정치이었던 것 같지도 않다.
- 그리고 우리는 어쩌면 민주주의와 민주화를 그렇게 이야기하고 부르짖었으면서도 정작   민주주의가 무언지, 민주주의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 고등학교 정치경제시간 이외에는  별로 공부하고 생각해본 것 같지도 않다.

-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 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 이제 정치가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지금이야말로 사회운동이 반대운동으로서가 아니라    창조적 운동으로서, 그리고 특정한 이념과 가치를 가진 조직적 실체로서 다시 서는 시기 가 아닐까.  
- 그럼에도 정치의 규정성이 크고 중요하다면, 이제 정치를 변화의 문제, 쟁취의 문제, 공학 적 문제로 보는 습성에서 벗어나서.
  정치적인 것은 무엇인가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공화주의는 무엇인가
  헌법은, 자유는 통일은, 진보는 ....
  차분히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닐까.

- 나의 삶과 가치의 문제로서 정치와 인간과 세계를 보는 새로운 출발이 필요.
- 그러기 위해서는 사유는 서사적으로 큰 틀에서,
  실천은 차이와 다양성 속에서 구체적으로 자기정체성을 형성하는 방향으로....

  우리의 정신과 상상력을 해방시켜 보자..

운영위원장
우연히 지난 자료를 보다가, 그러고보니 040603, 만3년, 4년째를 내달리고 있군요. 총선뒤 평가를 겸해서 발제한 내용을 퍼갔습니다. 이렇게 잊어버리고 3년째 다시보니 다른 느낌으로 다가섭니다.

6월항쟁 20주년이기도 하고, 우리에 대해 너무 잘 잊어버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세를 구하고, 정세연구를 숱하게 하는데, 어디에서도 그 연구한 것을 되짚어보고, 판단착오에 잘못에 대해 아프게 상처를 확인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어떻게하다 전부 남이 되고, 타자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계파가 한 정세만이 최선이며, 모두 다른 남,타자로 전락해버리는 것이 우리가 갖고 있는 집단건망증이 아닌지 말입니다. 일에 묻혀 반성할 겨를 조차 없는 것이 현실인데, 이렇게 반추하는 것 역시 퇴물이나 하는 것이 아닌지 싶기도 합니다.

<소통과 전망>을 이야기하기엔, <소통과 성찰>을 이야기하기엔, 우리가 너무 이르고 늪에 빠져버린 것은 아닐까요? 아파하고, 상처를 보듬어 안고 펑펑 울어야하는 것이 아닐까요?

일시적 반성과 전망만 하다가 그냥 가면 되는 것일까요? 아무도 자신의 전망과 고민에 대해 복기를 하지 않아, 어디가 아팠던 것인지? 잘못했던 것인지? 그렇게 우둔하게 판단했던 것인지? 왜 그렇게 나쁜 쪽으로만 판단했던 것인지? '우리의 상처'로 돌아볼 수 없다면, 그 속에서 길과 친구를 찾지 못한다면, 또 그렇게 4년은 지나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추억은 아련하고 향수에 젖어들게 만들지만, 추억 속에 아픔을 현재로 가져오지 못하면 그 또한 자칭 '진보'일뿐, '우리진보'는 아닐 듯 합니다. 성찰하지 못하고, 아와 피아를 구분할 줄 모르는 그런 '진보'는 언어를 정확하게 써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꼬리> '진짜문제'가 품어지지 않는 것은 아닐까요? 바쁘다는 핑계로 그냥 지나치고 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 시각에서 흔적남깁니다. 모임의 폄하나 왜곡은 아니니 혹 불편하더라도 양해바랍니다. 06.05. 11:41 - 삭제
운영위원장
만 3년전, 그때로 돌아가, 현실과 시간만큼의 간극, 차이속에 함께 꿈꾸거나 나눌 일들이 보이는 것은 아닐까요? 설령 그렇게 꿈꾼다고 그렇게 많이 달라질지도 의문이기는 합니다. 활동하는 분이나, 활동할 분이나, 관심갖고 있는 분들이 응시할 지점이 있지 않나 싶어 대부분 느끼고, 아는 이야기를 중언부언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고 좋아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혼자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겠지만, 현실을 인정하고 정확히 보려는 꿈, 꿈에 대한 나누고, 섞는 일마저 없다면, 고민을 가져가는 사람마저 없다면... ...고민을 품는 사람마저 없다면... ... 더욱 더 자맥질하고, 더 자신을 학대하게 되지 않나 싶어 흔적 남깁니다. 이로 인한 오해, 부담은 오로지 제 책임입니다. 06.05. 11:58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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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7-06-05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ㅅ 대표의 3년전 발제문이다. 다시 눈에 들어와 옮긴다.
 

 

 탈식민주의 관려 책들을 고르다가, 지적욕구가 , 앎이 일상으로 녹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머리 속에만 채우는 일이라는 것을, 그 앎이 온통 머리만 살지우는 일일지도 모른다 새삼스럽지 않은 것을 새삼스러운 듯 느낀다. 그것이 자신을 표현하기위한 도구일 뿐, 습속과 무관한 별개의 것이라고 여겨야 하는데. 그랬다가는 머리도 몸도 남아나지 않아 진작 합리화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들(거꾸로 생각하면 이 생각도 파쇼적이다. 앎이 일상으로 녹아내려야 한다고 강박하는...상황적인 이야기다.)

그래서 몸으로 읽고 녹아내리게 만드는 것이 별개의 일이 되어버리고 만다는 사실을 진작 알아야 했을 터인데

앎은 행복한가, 앎이 행복한 시대에 살고 있는가

삶은 행복한가, 삶이 행복한 시대에 살고 있는가

앎을 즐기는가

삶을 즐기는가

앎과 삶이 만나는 곳은 없는가

이미 즐기는가로 만났음에도 앎과 삶은 그렇게 유별한가

이간질은 누가-어떻게-왜 하 ㄴ,ㄹ 것인가

 

 

 조급하지만, 조급하지 않은 흔적,

 곧 대선이고, 이후 곧 총선이다.

 어김없이 다가오는 선거국면에 냉소를 떨기위해 덧보태는 것은 아니지만,

 한번 되새김길, 아니, 족적에 대해 아픈거나 기쁜 일들에 조율할 줄아는 능력을

 아니, 그럴 대면에 대해 느끼고 싶은 감정이 사실이다.

 

 범벅으로 우리에 대해 흐느끼고 나누는 것에 대해 반기를 드는 것은 더구나 아니지만,

 함께 무엇을, 즐기고, 나누거나 하고싶은 점에 대해

 대변이 아니라 한 꼭지 공유하고 싶은 마음은 한결 같은 터,

 

 그 동선까지 자네는 고민하고 있는지, 품고 있는지,

 지금만 생각하고 있는지, 지난 일만 생각하는 것인지

 나누고 품고, 고민하는 것은 별개의 일인지...   ...

 

 당신은 무엇을 품고, 나누고, 하고픈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어떻게 자양분이 되는지,

 고추 잎처럼 쑥쑥 커버리는 지,

  자고 큰일에 대해 함께 품어나 본 것인지?... ...

 

080807  메모

1과 3연대(비움과 나눔의 사치)

목표하는 것의 1/3을 덜고 생긴 것을 환산하고, 셋으로 나눕니다.
어떻게에 대해 3배수로 고민을 숙성합니다.(3번의 다른 방향, 다른 의견)


자自계計부
줄이기 - 4끼가 아니라 3끼, 인스턴트 1/3로 줄이기, 가공식품 1/3로 줄이기, 육식 1/3로 줄이기, 1/3 차량이용, 1/3로 줄이기, 언플러그 1/3로 해보기
모으기 --- 모으고 3으로 나누는 방법에 대해 세번,세사람, 세번 해보기

늘리기 - 자계부의 소통, 3달 해보기, 3달치 나눠보기
만들기 -


환산하여야 합니다. 철저히 - 자본으로 환산하고 인간과 사회적 가치로 역환산하는 것만 유통될 수 있습니다.

세번을 다르게 품는 이유 - 앞으로 생길 일에 대한 근기와 생명력을 불어넣습니다. 다르면 다를수록 현실감은 더 있습니다. 이해하지 말고, 논쟁하고 토론하여야 합니다. 내 입장이 아니라 우리의 입장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입장으로 논쟁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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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파란여우 > 쌀이 있어야 글을 쓸 수 있다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3월

 

 


 

그의 적은 출판사이고 출판사 편집장이다. 그의 적은 매스컴의 위력을 등에 업은 기자와 편집장이 작당한 연합세력이다. 그의 적은 수없이 많다. 그의 적은 자본의 조직에 복속되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원초적으로 불가능한 산업사회 전체다. 그의 적은 속물근성에 가득 찬 더러운 독자들이다. 이 독자들은 끊임없이 소설가의 포즈를 보기를 원한다. 그는 이 독자들에게 반가사유의 포즈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는 독자들을 쫓아버린다. 그의 적은 또 있다. 가장 무서운 저은 그 자신의 생물적 조건이다. 쌀이 있어야 글을 쓸 수가 있다. 그에게는 천만 원씩 나누어주는 은혜로운 정부도 없다. 그는 한 편의 소설을 써서 그걸로 겨우 밥을 먹으면서 그 다음 소설을 쓴다.

-김 훈,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中-


몸이 불편하니 마음이 갑갑하다. 겉으로는 멀쩡한데 청소기하나 윙윙 돌리지 못하니 마음이 돌 지경이다. 몸이 쾌활하게 열지 못하니 마음이 우중충하다. 몸이 닫히니까 마음도 덩달아 문을 닫는다. 어제는 온종일 사박사박 비가 내렸고 집 앞 논에는 물이 가득하다. 물. 맑음과 정돈의 성질을 지닌 물의 속성은 흙탕물로 번졌다가 이내 고요로 정제된다. 반드시 그 발광의 몸살을 앓아야 만나게 되는 평화다. 몸과 마음이 갇힌 오월에 오후 내내 창가에 앉아 물에 잠기는 들판을 바라봤다. 한 시간, 두 시간... 열고 받아들인다는 실체를 눈으로 확인하며 몸의 언어를 떠올린다. 몸의 언어는 곧 마음의 언어다. 그래서 김 훈은 문체는 몸의 일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흐르고 흘러가지 않아도 물은 고적함과 더불어 안식을 준다. 호수의 물을 바라보며 사람들이 눈물을 닦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제까지 흐르는 것만 정결의 세상을 찬양하는 줄 알았다. 몸에서는 밥도 요구하고 햇살의 아늑함도 요구한다. 그러니까 작가는 자신을 뜯어 먹으려고 덤비는 그 많은 상어 떼들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 방어 장치가 필요하다. 간신히 쌀을 준비하고 쓴 글이니 더더욱 그렇다. 몸과 밥을 옹호하고, 적과 공업적인 사유를 거부하는 김 훈, 그다운 글이다.


오늘은 햇살이 눈부시다.
이제 막 제색을 찾기 시작하는 오월의 대지는 

방금 색색으로 물들여 놓은 옥양목처럼 너울너울 씩씩하게 펄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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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7-05-17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이 불편하니 마음이 갑갑하다.  몸이 쾌활하게 열지 못하니 마음이 우중충하다. 몸이 닫히니까 마음도 덩달아 문을 닫는다. -  반드시 그 발광의 몸살을 앓아야 만나게 되는 평화다.- 몸과 마음이 갇힌 오월내내 물에 잠기는 들판을 바라봤다. 하루, 이틀... 열고 받아들인다는 실체를 눈으로 확인하며 몸의 언어를 떠올린다. 몸의 언어는 곧 마음의 언어다몸에서는 밥도 요구하고 햇살의 아늑함도 요구한다.  몸과 밥을 옹호하고, 적과 공업적인 사유를 거부하는 파란여우님다운 글이다

여울 2007-05-17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찌 이리 글을 잘 쓰실까! 몸의 언어는 곧 마음의 언어다. 몸에서는 밥도 요구하고 햇살의 아늑함도 요구한다. charm진보는 몸의 언어와 마음의 언어로 교감하고, 몸과 마음의 밭에 뿌리내려야

파란여우 2007-05-22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쿠~ 남우세스럽게~~~-따라쟁이 여우 ㅋ-
 

 

어제 새벽도 꿈, 선잠처럼 생각은 고리를 물고 일어난다.

운동(활동)은 환경에서 말하는 지속가능성을 갖고 사고하는가? 30년 이제 만들어지고 있는 유아기는 아닐까? 머리와 몸의 소통, 어디에서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몸탓을 하는? 누구나 <먹물>이라고 사전 소통을 차단하는 유아적 발상이 있는 것은 아닐까? 문화의 힘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편안하게 행동하고 느끼는 것. 몸의 목을 당겨 우물로 가라고 끌어대는 것은 아닐까? 먹물은 다 글러먹었다고 폄하하지는 않았을까? 함께보고 함께 갈 수 있는 문화는 있는가? 유아기에 둘러보거나 함께 볼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지구적 시각을 갖게 된 것은 당대인이 갖는 행운이 아닐런지? 헛갈리지 않는 행운을 얻었으면서도 함께- 시간이란 축을 길게 늘려서 라이프사이클 운동(활동)을 기획할 수는 없는 것인지? 이념을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물려주는 것이, 미숙에서 성숙으로 조금 더 나아가는 것은 아닐까?

미숙함은 만든다는 관점이 생겨나지 않는다. 개인주의에 사로잡혀, 혼자 땅속깊이 지식의 구덩이를 파고 있어, 나눈다는 함께한다는 기대는 버릇만 있어도, 몸의 역할로 소통할 수 있음에도 지식인들은 자기 땅만 파고 아닌가보다, 절망감만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자리 하고 싶으면 정말 치열하고 깊숙히 하여 제대로 바꿀 것이며, 문화-예술-철학의 관점을 보태고 즐기고 싶으면 그렇게 하고, 혼자가 아닌 우중의 삶의 자락과 고민을 안을 수 있는 대안적 삶을 누려보고 싶은 것이 정말 다른 일일까?

용기있고 똑똑한 자들은 살아남지 못하는 세상, 그 속도를 늦추거나 방향을 바꾸는 일은 살아남은자들의 공동기획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닐까? 머리만 말고 몸..서로 섞여 누가누구인지 구별되지 않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마음을 비우고 마음을 채우는, 다양한 반찬을 맛보는 일이 그렇게 귀찮은 일일까?

밥벌이에 귀천이 없어야 하고, 밥벌이하는 것은 신성한 책무이며, 삶이다. 나머지에 대해 나머지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 밥을 지키는자, 번 것을 나누는 자의 노력은 문화를 풍부하게 한다. 자양분...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갖고 있는지, 많이 소유하고 있는지? 정말 렛츠처럼 10분의 1이 버거운 일일까? 관점의 해체, 분화를 요구한다. 우리는 충분히 잘 살고 있고, 많이 가지고 있다. 지고 있는 장롱은 너무너무 가벼워 다 버릴 수 있는 것임을...가난하지만 부유한 관점의 전환과 네트워크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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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

월 50만원으로 할 수 있는 사회활동

 

혼자 해 볼 수 있는 일

1. 줄일 수 있는 일들

- 자전거 출근이동하기 20만

- 술모임 한번 절약  5-10만

- 아이들 과외 한번 직접하기 5-10만

- 좀더 작은 집에서 살기  5만

- 아나바다  5만,  남은 금액 사회곳간에 쌓아두기

-

2. 남은 돈으로 할 수 있는 일

- 친환경농산물 먹고

-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업체 상품 1개월간 끊기

- 저의가 없는 제도곁의 사회단체 교육비로 투자하기

- 충동구매 - 사치품 줄이기, 재활용

 

3. 관점, 조금씩 줄이기/늘리기

- 주거에 대한 소유욕/자식에 대한 소유욕/

- 노후에 대한 대비책 - 공적공간만들기 - 가르치기/기술나누기/렛츠해보기-무형의 것을 돈으로 환산해보기

- 품, 노력을 환산해보기, 그리고 남에게 배려해보기

-

 

혼자는 잘 되지 않지만 함께 품어볼 일

 

 

공간만들기

- 번 돈의 절반만으로 가능한 활동반경 생각해보기

- 무상 수혜를 자본으로 환산해보기, 일년동안 그림자노동량 계산해보기

-

문화만들기

- 내가 맛볼 줄 아는 음식(김치의 종류, 젓갈의 종류, 국산주의 종류...)

- 내가 맛볼 수 있는 이념의 수

- 내가 즐길 수 있는 음악의 가지수 늘리기

- 함께 본 공연의 횟수, 마당...늘리기

- 내가 싫어하는 정치인의 이름대어보기

- 내가 느낀 선사의 종류, 종교.....

 

예술만들기

 

일상의 폭 줄이고/늘리기

- 아이들을 텔레비전에서 방목하지 말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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