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가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듣건대 도곡은 아들을 교훈할 수 없다고 하였는데, 도병이 어떻게 합격할 수 있었겠는가?" 급히 중서에 명령을 내려서 복시(覆試)를 치게 하였더니 도병은 다시 합격하였다. 이어서 조서를 내렸다. "조사(造士)의 선발은 사사로운 은혜를 심는 것이 아니니 세록(世祿)을 가진 집안에서는 의당 평소의 업무를 돈독하게 하라. 예컨대 당여(黨與)를 만들어서 자못 용납하고 가만히 입김을 불어 넣는 일이 있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문형(文衡)이라는 공기(公器)가 어찌 의당 사사롭게 남용되어야 하겠는가? 지금부터 거인(擧人)은 무릇 녹봉을 받아먹는 집안과 관계가 있다면 중서에 위탁하여 복시(覆試)를 치루라."

"길에서는 모두가 말하기를 호부시랑 맹공신(孟拱宸)의 집을 교방사(敎坊使)인 원승진(袁承進)에게 준다고 합니다. 옛날에 고조(高祖)가 무용수인 안질노(安叱奴)에게 벼슬을 주어 산기시랑으로 삼으려 하여 온 조정에서 모두 비웃었습니다. 지금 비록 원승진을 시랑으로 삼지는 않았지만 시랑이 살 집을 하사하시니 일이 역시 비슷합니다." 남당의 주군은 백(帛)을 하사하여 그가 용감하게 말한 것을 나타냈지만 그러나 끝내 고칠 수는 없었다.

소사온은 야율색진(耶律色珍, 斜軫)을 천거하여 나라를 경륜(經綸)할 재주를 가졌다고 하자 요주가 말하였다. "짐은 그를 아는데, 안일하게 호탕하기만 하니 어떻게 얽어 매여 굴복시키겠소!" 소사온이 말하였다.
"밖으로는 안일하고 호탕하지만 중심은 아직 헤아릴 수 없습니다." 마침내 불러서 당시의 정치에 관하여 물었더니 가리키고 진술하는 것이 알맞고 절실하여 요주는 그를 그릇으로 중히 여겼으며, 즉시 절제(節制)서남면제군으로 명령하여 하동(河東)을 돕게 하였다.

국가는 고요한 것을 귀하게 여기는데, 천도(天道)에는 악이 가득 찼고 앞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험한 것을 믿는 나라인데 듣건대 이번 전역(戰役)은 부고에 있는 재물을 고갈시키고 백성들의 힘을 소진하며 충성스런 마음이 용약(踊躍)하여 각기 규유(窺?, 틈을 봐서 행동하다)를 갖고 있습니다. 전하여 지는 말에 ‘이웃 나라가 후해지면 군주는 엷어진다.’고 하였는데, 어찌 난가(?駕, 황제의 수레)를 돌려 도읍지로 돌아가는 것이 상당(上黨)에 군사를 주둔시키는 것과 같겠습니까! 여름에 그 보리를 거두고 가을 그 벼를 거두게 하고 역역(力役)의 징발을 느슨하시는 것이 탕평책입니다.

"벌목을 하는 데는 먼저 가지와 잎을 없애고 그 후에 뿌리를 빼앗는 것입니다. 지금 하동(河東)은 밖으로 거란의 도움을 받고 있으며 안으로는 사람과 호구가 부세를 내니 가만히 생각하건대 한 해가 지나고 몇 달이 지나도 떨어뜨릴 수 없을까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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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권력에 관한 것, 즉 누가 권력을 쥐어야 하고, 권력은 어떻게 통제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지만, 모든 권력관계가 정치적 관계인 것은 아니다.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 대한 페미니스트의 지적은 본래적으로 정치적인 본성을 둘러싼 것이라기보다는 그 관계를 다루는 데서 보이는 정치의 태만을 둘러싼 것이다. 현재까지 다양한 형태를 취해온 정치권력은 남성과 여성 사이에 존재하는 특유하게 친밀한 관계에 대한 적절한 매개 변수를 설정하지 못했다. 정치권력의 태만은 많은 점에서 지적할 수 있다.

다문화 사회에서 다른 집단이 품고 있는 문화적 가치관에 대한 경의가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것은 중요한 선(善)의 하나다. 아울러 정치적 올바름을 약화시키는 것에 굴복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어떤 문화가 자유와 평등?특히 여성을 위한 자유와 평등?에 적대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경우, 설령 그렇게 하는 것이 불쾌감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더라도 아주 강력하게 그 문제성을 주장하기를 주저해서는 안 된다.

나는 앞에서 우리가 페미니즘과 다문화주의를 정치철학의 오랜 물음들을 대체하는 것으로서 볼 것이 아니라 그런 물음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제기하는 것으로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로서는 이제 그런 견해가 정당화되었기를 바란다. 페미니스트와 다문화주의자들은 우리에게 정치권력, 자유, 민주주의, 그리고 정의에 관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생각하도록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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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23-12-05 0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2023년 서재의 달인. 북플 마니아 선정되심 축하드립니다. 겨울호랑이님의 성실함에 대한 작은 보상 🎁 이라고 생각해요.
한해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앞으로도 함께 합시다!

겨울호랑이 2023-12-05 08:1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나와같다면님을 비롯한 이웃분들께서 부족한 글에 관심을 많이 가져주신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잘 부탁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서니데이 2023-12-05 2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올해의 서재의 달인과 북플마니아 축하드립니다.
따뜻한 연말 좋은 시간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3-12-06 09:57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항상 좋은 격려와 말씀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우리는 영케어러 정책 타깃이 19~34세 같은 청년층인 데 비해 그곳에서는 5~6세 아이들부터 열심히 들여다보더라. 부모가 입원해 있는데 어린아이가 간병하고 있는 경우 등을 병원에서 적극적으로 찾고 있었다." 허 조사관은 청년기가 되어서야 발굴되는 영케어러는 이미 손쓰기 늦었을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 케어 기간이 오래될수록 우울이 깊고 학업 중단 확률이 높다. 자립 기반을 잡을 기회를 이미 놓쳐버린 청년에게 뒤늦게 생계비를 주고 임대주택을 지원하는 것보다, 어린 나이에 일찍 찾아내 가족돌봄의 굴레에서 애당초 벗어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 P11

 "가족돌봄은전 생애를 관통하는 연속적인 과정이며,
특정 연령기에만 나타는 현상이 아닙니다. 지원의 목적은 가족과 아동을 분리하거나 가족돌봄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 돌봄의 상황 속에서도 또래 아동과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국가가 아동이 돌봄의 주체로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돌봄의 대상‘이라는 이유만으로 정책대상에서 배제한 채 별도의 지원대책을마련하지 않고 있는 것이 과연 유엔아동권리협약 비준국으로서 ‘아동 최상의 이익(제3조)‘과 ‘생존과 발달을 보장할 권리(제6조)‘를 고려한 아동보호정책을 수립한 것인지 우려가 됩니다." - P13

 실제 지난해12월 대법원은 2012년 문화방송(MBC)파업이 정당하다는 최종 판결을 내리면서 "방송 공정성은 방송의 결과가 아닌제작·편성 과정에서의 민주적 의사결정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라고 판시한바 있다. 즉, 사용자가 경영권을 남용해서 방송의 제작, 편집, 송출과정을 통제하려 한다면 공정방송 의무를 위반한 위법행위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 P28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는 "결국 민주당이 의지가 없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국회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가 ‘여론을 만들어오세요‘다. 민주당 환노위 구성이 바뀔 때마다 노란봉투법의 기원부터 새로 설명해야 했다." 한국노총, 민주노총도 관심이 적기는 마찬가지였다. " 손배는 파업을 한 이후의 일이라, 그동안은 양대 노총의 주요 의제가 되지못했다. 정권이 바뀌고 지난해 6월30일 손잡고에서 손배 판결문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기자가 단 두 명 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손배 이슈가 좀처럼 힘을 받지못했다." - P33

2010년대 한국 사회는 금융 교육 공백기였다. 이 기간에 미국이나 영국에서전개된 사회적 논의를 한국 사회는 경험하지 못했다. 금융 교육을 최대한 어릴 적봄 부터 시켜야 한다는 점, 금융 교육이 반드시 ‘자문‘과 함께 병행될 필요가 있다는점, 금융 교육을 할 때에는 대상자의 마음건강에도 유의해야 한다는 점은 이제 막 우리가 본격적으로 협의하고 자원을 분배해야 할 문제가 됐다. - P41

인공지능 분야에는 두 가지 서로 다른 가치관이 존재해왔다. 하나는 ‘파멸론자(Doomer)‘라고 불리기도 하는,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집단이다. 이들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인공지능이 갖가지 위험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다. ‘인공지능의 대부‘이자 오픈AI 전이사 일리야 수츠케버의 스승인 제프리힌턴이 대표적이다.  - P43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시장과 국가의 역할에 관한 패러다임 전환이 나타나고 있다. 팬데믹과 전쟁은 글로벌 공급망 구축이 상품 부족 같은 위험을 낳을 수 있다는 교훈을 주었다. 따라서 각국에서 효율성보다 회복, 경제통합보다 안보를 중시하는 흐름이 강화되었다. 핵심산업의 공급망을 우방국들 사이에서 확립하려는 노력도 전개되고 있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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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 인터뷰
로렌스 R. 스펜서 엮음, 유리타 옮김 / 아이커넥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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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지각 있는 존재는 불멸의 영적 존재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여기에는 인간도 포함되지요. 단순하고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나는 조어(造語)인 'IS-BE(이즈비)'라는 단어를 사용할 것입니다. 불멸의 존재 본연의 모습은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함(is)'이라는 영원의 상태에서 사는 것이고 그들이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는 그들이 '존재함(be)'을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사회적 지위가 낮다 하더라도 모든 이즈비들은 나 자신이 다른 이로부터 받고자 하는 존중과 대우를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습니다. _ 로렌스 R. 스펜서, <외계인 인터뷰>, p96

지난 7월 미국 하원 미확인 변칙현상(UAP, Unidentifed Anomalous Phenomena)과 관련해서 청문회가 있었고, 잠시나마 인터넷 상에서 화제가 되었다. 당시 별다른 관심은 없었지만, 아는 지인으로부터 <외계인 인터뷰>라는 책을 읽어본 적이 있느냐는 말을 듣고 읽었다. 책의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 또는 이것을 믿는가 믿지 않는가 하는 부분은 일단 넘기자. 처음에는 단순히 로스웰 사건, 51구역(Area 51)과 같은 음모론과 관련한 책으로 생각했지만, 책 내용에는 음모론을 넘어서는 부분도 함께 담겨 있었고, 우리에게 생각할 여지를 남겨둔다.

과학은 물질의 종교입니다. 과학은 물질을 숭배합니다. 과학의 패러다임에서는 창조된 것이 전부이고 창조주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종교는 창조주가 전부이고 창조된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지요. 이 두 극단은 바로 감옥의 쇠창살입니다. 과학과 종교는 상호작용하는 전체로서의 모든 현상들을 관찰하고 주시하지 못하도록 막습니다. _ 로렌스 R. 스펜서, <외계인 인터뷰>, p210

개인적으로는 과학과 종교에 대한 과도한 맹신을 경계하는 문단이 인상깊게 느껴진다. 외계인 에어럴은 과학도 종교도 근원적인 것이 아닌 진실을 왜곡하는 수단에 불과함을 말한다. 진실은 양 극단 어느 한 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학과 종교가 말하지 않는(또는 말할 수 없는) 그 사이 어느 곳에 놓여있으며 진정한 자기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 길을 찾을 수 있다는 메세지 속에서 간결하지만 작은 울림을 느끼게 된다.

모든 피라미드 문명은 무지와 두려움과 무력으로 인류의 노예화를 지속시키기 위한 통제 방법으로 종교를 이용합니다. 부적절한 정보, 기하학적 디자인들, 수학적 계산과 천체의 정렬이 해독 불가능하게 뒤범벅된 것도 지구 이즈비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게 할 목적의, 불멸의 영이 아닌 딱딱한 물질에 기반을 둔 날조된 영성의 한 부분입니다. _ 로렌스 R. 스펜서, <외계인 인터뷰>, p152

인류가 살아남으려면 현재 당신들 존재가 처해있는 어려운 여건을 풀 효과적인 해법을 찾기 위해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또한 인류는 한낱 생물학적 몸뚱이에 불과하다는 개념을 초월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현재 어디에 있고 자신들은 이즈비이고 그리고 진정 이즈비로서 자신들이 누구인지 알아 자신들이 갖고 있는 인간의 형체를 넘어서서 일어나야 합니다. 이러한 깨달음이 있어야만이 당신들이 처한 이 수감상태를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즈비에게 지구에서의 미래는 없습니다. _ 로렌스 R. 스펜서, <외계인 인터뷰>, p232

어쩌면 <외계인 인터뷰>의 주제는 다음의 한 문장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 같다. 너 자신 안에 있는 신성(神性)을 깨달으라는. 누군가에게 그 신성은 성령(聖靈)이 될 수도 있겠고, 다른 이에게는 불심(佛心)이 될 수도 있겠고,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과도 통하는 바가 있다 여겨진다.

이런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여전히 당신이고 앞으로도 항상 당신일 것입니다. 또한 저 깊은 곳에서 당신은 당신이 누구이고 당신이 아는 것이 무엇인지 여전히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늘 당신 본질 그대로입니다. _ 로렌스 R. 스펜서, <외계인 인터뷰>, p207

마지막으로, <외계인 인터뷰>는 사실일까?에 대한 물음을 생각해본다. 어쩌면 사실일 수도, 아닐 수도 있겠다. 만약 책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지상에 유배된 '기억이 소실된' 이즈비인 내가 진실을 아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고, 책의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면 상상력의 산물일 것이다. 그리고, 사실인가 아닌가는 개인들의 믿음과는 관련이 없는 부분이기라 생각되기에 가장 적절한 답은 <논어 論語><先進> 편을 옮기는 것으로 대신한다.

季路問事鬼神 子曰 未能事人焉能事鬼
敢問死. 曰未知生 焉知死.

계로(자로)가 귀신을 섬기는 것에 관하여 여쭈었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아직 사람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면서,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단 말인가?" 이에 우직한 계로가 다시 여쭈었다 : "그럼 이번에는 감히 죽음에 관하여 여쭙고자 하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 "아직 삶을 모르면서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 _ 도올 김용옥, <논어한글역주 3>, p258

PS. 만약, <외계인 인터뷰> 자체가 <베다>처럼 진실을 담고 있다면, 이 책 자체도 하나의 거대한 은유로서, 마틸다 오도넬 맥엘로이(Matilda Macelroy) 여사의 뜻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사실 여부는 경전의 오탈자와 같은 부수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글을 갈무리한다...

씁쓸한 일이지만 베다 찬가를 배운 사람들은 베다 찬가를 신의 말씀이라며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졌습니다. 결국 베다의 내용은 글자 그대로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사람들은 베다의 완곡한 표현이나 비유적인 표현들을 교조적 사실로 수용하여 실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베다에 담긴 철학은 무시되고 찬가는 지구상의 거의 모든 종교의 실천교리가 되었다는데, 특히 힌두교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_ 로렌스 R. 스펜서, <외계인 인터뷰>,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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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도의 이해 (수정판)
데이비드 파렐 지음, 전용주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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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일에 우리 유권자는 투표하며, 그 후 승자와 패자는 누구인지, 각 정당등은 몇 석을 얻었는지, 그 결과를 기다린다. 바로 여기서 득표수를 계산해 의석수로 전환시키는 것이 바로 선거제도의 기능이다. 이제 선거제도를 정의해보자. 선거제도는 공직자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표를 의석으로 전환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이다. _ 데이비드 파렐, <선거제도의 이해>, p24

데이비드 파렐 (Farrell, David M.)는 <선거제도의 이해 Electoral Systems>에서 선거제도를 '유권자가 행사한 표를 의석으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정의한다. 이는 개인이 명시적으로 표시한 의사표시를 전체 집단의 의지로 해석하는 여러 방법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문제는 '집단 의지'에서 어디까지를 집단으로 볼 것인가 하는 부분이라 여겨진다. 유권자의 다수만을 집단으로 볼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소수 의견까지 집단으로 포함시켜야 하는가의 문제. 이로부터 비례성의 문제가 발생한다.

득표수를 의석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기준으로, '비례적(proportional)' 결과와 '비(非)비례적(non-proportional)' 결과를 낳는 선거체제로 분류하는 것이다. 비례적 선거제도의 핵심은 각 정당의 의석수를 자신들이 얻은 득표수에 가능한 한 근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반대로 비(非)비례적 선거제도에서는 한 정당이 다른 정당보다 더 많은 표를 확실히 얻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강력하고 안정된 정부를 구성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_ 데이비드 파렐, <선거제도의 이해>, p24

저자는 본문을 통해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다른 제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수한 제도임을 말한다. 그렇지만,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또한 단점을 갖고 있다. 유권자는 자신의 후보를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며, 특히 폐쇄식 정당명부제의 경우에는 이러한 문제가 극대화된다. 부분으로 개인 의지와 전체로서 집단 의지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개인의 선택이 오히려 제약받게 된다는 점은 최선의 선거제도를 도출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여러 형태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선거 공학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선거제도라는 사실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음이 입증되고 있다. 이 제도는 분명히 정당 지도부에게 상당한 정도의 통제력을 부여한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는 제도 개혁가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비례성이 매우 높고,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여성이나 소수 인종 집단의 대표성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우수성을 감안한다면, 언젠가 모든 국가가 결국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은 타당해 보인다. _ 데이비드 파렐, <선거제도의 이해>, p149

특정 선거제도의 비례성과 정부나 정치체제의 안전성 정도 사이에 존재할 것이라고 추측되었던 상반관계는 대부분의 경우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눈길을 끈다. 나아가 비례대표제에서 정부 안전성 정도가 높다고 결론짓는 것이 더 정확해 보인다. _ 데이비드 파렐, <선거제도의 이해>, p351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선거법 개정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선거법과 관련한 주요 논쟁은 정당의 이해관계 범위를 크게 넘어서지 못하는 듯하다. 선거법 개선을 말하는 이들이 주장하는 내용도 크게 군소정당의 입지를 늘리자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진정한 선거제도 개혁의 초점은 정당이 아닌 유권자에게 맞춰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를 생각하게 된다.

비례대표제를 병립형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연동형으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중요하겠지만 그 이전에 선출되는 대표가 누구인가가 더 중요한 문제라 여겨진다. 다소 극단적으로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왜 우리는 공간(空間)으로 구획된 지역대표만 선출해야 하는가? 시간(時間)으로 구획된 세대별 대표를 선출할 수는 없는 것일까? 20대와 30대 유권자를 대표할 수 있는 의석 수를 해당 세대에 맞게 배부하고 이에 대해 비례대표제 방식으로 선출할 수도 있지 않을까. 더 나아가 성별 비율도 함께 접목시켜 의원을 선출한다면 보다 근원적인 대의제가 확립될 수 있지 않을까 잠시 생각해본다.

스치듯 지나가는 아이디어라 이러한 생각에 문제점이 있으리라는 점은 인정한다. 그렇지만, '대표없는 곳에 과세 없다(No Taxatioin without Representation)'는 말처럼 의무만 부담하고 권리를 행사할 방안을 갖지 못하는 계층, 집단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함을 선거법 개정과 관련한 논란을 보며 마음 깊이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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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11-30 15: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개인적으로 비례대표제가
이상적인 제도라는 점에는 동의
하지만, 2023년 한국에서는 현실
적으로 불가능해 보입니다.

현실정치는 상대방의 선의를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간을 시간과 세대로 바꾸어야
한다는 의견에는 공감합니다.

겨울호랑이 2023-11-30 16:11   좋아요 1 | URL
그렇지요... 제도 개선에 대한 전체의 공감대 형성이 된 상태에서 제3자에 의한 제도변경이 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의견수렴 노력도 없는 상태에서 국회의원들의 이해와 직결된 문제를 다룬다는 것 자체가 문제있다고 생각됩니다.. 진정한 개혁을 위해서는 제3의 독립기관에서 추진하는 편이 더 바람직해 보입니다. 이도 쉽지 않은 문제인 것을 보면 아직 갈길이 멀어보이네요...레삭매냐님 감사합니다. ^^:)

호시우행 2023-11-30 1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을 더 많이 뽑는 것은 그들만의 리그이므로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나는 절대 반대합니다. 비례대표 국회의원제도 없애야 합니다. 그 속에 감추어진 은밀한 뒷거래의 민낯을 보면 구역질이 납니다. 바로 매관매직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공정한 경쟁에도 위배되는 행위입니다.ㅠㅠ

겨울호랑이 2023-12-01 08:09   좋아요 0 | URL
호시우행님 말씀처럼 기득권을 가진 정당들이 정치판을 거의 양분하는 현 구조에서 비례대표제는 분명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를 위해 소수정당이 자리잡을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소수정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가, 그리고 거대정당 외 다른 정당에 대한 선택이 가능할 수 있는 상식적인 국정운영이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 여겨집니다... 매번 선거때보다 보다 진전된 논의를 위한 선택이 아닌 이데올로기의 거대 담론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상황이 계속되어 피로감이 많이 쌓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