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초선은 여포가 동탁의 시비와 사통한 데서 모티브를 따온 허구의 인물이다. 정사의 단편적인 에피소드 2개를 엮어 동탁과 여포의 사이가 틀어졌음을 나름대로 논리적으로 풀어간 소설 삼국지가 더 재미있다. 양자라고 해도 한 여성을 두고 부자가 싸우는 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니 두 사람 모두 패륜으로 몰아 비난한 것이다.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왕윤은 황실의 부흥을 위해 동탁을 죽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후한서/왕윤전』의 기록을 그대로 믿는다면, 동탁을 죽인 후 그는 실수를 연발했다. 결과적으로 왕윤은 동탁을 죽인 후 뒷수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가 뒷수습마저 잘했다면 정국은 다시 통일과 평화로 전환되어 삼국지 자체가 탄생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실제와 역사와 달리 소설 삼국지는 유우를 ‘나약한’ 지방관으로 각색하여 유비의 화려한 데뷔를 빛낸 조연으로 전락시켰던 것이다.

우리는 유우를 다른 군벌들과는 다른 잣대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군웅할거 상황을 설명한 여러 책과 지도에서, 유우는 여타 군웅과 구별되지 않은 채 그중 한 명이었던 것처럼 설명되곤 한다. 하지만 유우는 엄밀한 의미에서 단 한 번도 군웅의 한 사람이었던 적이 없다.

명장의 자질을 갖춘 황보숭과 주준이 자신의 처세보다 국가와 대의를 더 생각했더라면, 후한 말의 혼란은 어쩌면 일찍 종식되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랬다면, 동탁 집권 이후 조정이 급속한 권력 쇠퇴를 겪은 것과는 정반대로 다시 권력과 위엄을 되찾고 지방 세력을 복종시켜 좀 더 오래 황실이 보전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조연을 연기하는 데 만족했다. 문신인 왕윤과 유우가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자기 목숨을 던진 반면, 무장인 황보숭과 주준은 역적 동탁을 제거할 기회도 버리고 자신의 영달을 꾀했다. 그들의 선택은 당시 중국인들에게는 뼈아픈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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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국과 승상은 원래 진나라와 전한시대 재상의 벼슬로, 후한 조정은 통치상의 이유로 한 명만 임명되는 상국과 승상직을 폐지하고 3명의 재상, 즉 삼공(태위·사도·사공)을 두어 서로 견제하게 해 재상의 권력을 약화시켰다. 재상이 한 명일 때보다 세 명일 때 권력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그런데 동탁은 스스로 상국이 되었고, 이로써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최고 권력자로 부상했다. 아마 동탁은 전혀 깨닫지 못했겠지만, 그의 이 행위로 위진남북조시대 내내 관찰되는 ‘찬탈’의 조건 하나가 마련되었다. 이후 숱하게 벌어지는 찬탈의 과정에서, 신하된 자의 상국 또는 승상 취임은 그가 황제가 되기 위해 거치는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단계로 자리매김한다.

동탁은 그 외에도 주비周毖와 오경伍瓊, 정태鄭泰, 하옹何?, 순상荀爽, 진기陳紀, 한융韓融 등 조야의 명망 있는 인물을 대거 발탁했다. 그러면서 직속 부하나 총애하는 무장들의 벼슬을 중랑장과 교위校尉에 묶어두는 지혜도 발휘했다. 이렇듯 집권 직후 동탁이 보인 행보는 적어도 외형상 공평무사한 것이었다.

『삼국지/제하후조전』에는 하후돈과 하후연夏侯淵, 조홍曹洪, 조인曹仁, 조휴曹休, 조진曹眞, 하후상夏侯尙 등이 함께 실려 있다. 조홍과 조인, 조휴는 조조와 같은 항렬의 동생들로, 이들은 나중에 조조의 아들 조비가 황제가 되면서 황실 일족이 된다. 즉 이 ‘특별한 조씨’들과 하후씨가 함께 실린 것은 후자도 황실 일족 혹은 그에 준하는 대우를 받았음을 암시한다. 즉 조씨와 하후씨는 사실상 동족으로 볼 수 있다.

후한시대에는 출세를 하려면 평판이 좋아야 했다. 특히 관리가 되려면 남들의 추천이 있어야 했다. 이를 ‘타천他薦’이라고 한다. 후한에는 ‘향거리선’이라는 관리 등용 제도가 있었다. 군국의 태수와 상은 인구 20만 명당 1명을 ‘효렴’으로 조정에 추천할 권한이 있었다. 그러면 조정의 사도와 상서가 이들을 시험한 후 관직을 주었다. 그 외에 ‘관리 아버지’를 둔 덕으로 벼슬을 얻는 ‘임자제任子制’와, 부서의 장이 추천해 사실상 사후에 중앙정부로부터 임명받는 ‘벽소제?召制’가 있었지만, 주된 출세 코스는 효렴으로 추천을 받는 것이었다.
그런데 효렴으로 추천을 받으려면 지방(고향)에서 평판이 좋아야 했다. 그리고 이 평판이란 ‘효렴’이라는 명칭에서 보이듯이 주로 효심이나 덕망에 관한 것이었다.

원술은 표를 올려 손견을 행파로장군行破虜將軍 예주자사로 추천했다. 하지만 말이 표를 올려 추천한 것이지, 사실상 원술이 손견을 파로장군과 예주자사로 임명한 것이었다. 대신 원술은 남양군을 넘겨받았다. 관직과 땅을 주고받은 두 사람의 거래는 서로에게 이익이었다. 막장은 동탁만 저지른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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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 Principles
레이 달리오 지음, 고영태 옮김 / 한빛비즈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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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실수를 한다. 중요한 차이는 성공한 사람은 실수에서 배우지만, 실패하는 사람은 실수에서 배우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수하는 것이 용납되고 실수에서 배울 수 있는 문화를 창조한다면 발전 속도가 빨라지고 실수는 줄어들게 될 것이다. _ 레이 달리오, <원칙> , p455/710

오랫만에 경영/자기계발서를 읽었다. 레이 달리오(Ray Dalio)의 <원칙 Principles : Life and work>에는 성공한 투자자로서 자신의 인생과 일에 대한 깨달음이 담겨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잘한 부분과 잘못한 부분을 진솔하게 짚으며 그로부터 얻어진 교훈을 독자들과 공유하며 상세하게 자신의 원칙을 책 전반에 걸쳐 설명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세한 설명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독자들은 저자가 살아온 수십 년간의 깨달음을 결과물로 책을 접하고, 성공적인 삶을 위한 지름길을 찾으며 원칙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고자 할 것이다. 그렇지만, 저자의 원칙이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닌 무수히 많은 시도와 시행착오의 결과물임을 잊기 쉽다. 저자의 교훈은 실패를 통해 자연스럽게 삶의 일부로 저자에게 흡수되었을 것이나, 독자들은 그렇지 못하다. 때문에, 저자의 원칙이 '~ 해야 한다'는 당위의 법칙으로 느껴지고, 원칙적인 긍정을 넘어서기 힘들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것은 사실 <원칙>의 장단점이라기보다 자기계발서가 갖는 구조적인 문제이긴 하지만.

셰이퍼들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다른 사람이나 사물이 자신들의 대담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독립적인 사고의 소유자들이다. 이들은 일을 어떻게 추진해야 하는지에 대한 확고한 설계도를 머릿속에 가지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현실 세계에서 이것을 시험하고 더 잘 실현될 수 있도록 일하는 방식을 바꾸려는 의지력을 가지고 있다. 셰이퍼들은 자신들의 꿈을 실현하려는 욕구가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고통보다 훨씬 더 강하기 때문에 실패에서 회복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셰이퍼들은 원래부터 통찰력을 가지고 있거나, 자신이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사람들에게서 통찰력을 얻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보다 통찰력의 범위가 더 넓다. _ 레이 달리오, <원칙> , p128/710

레이 달리오의 <원칙>에는 소수의 선각자들인 셰이퍼, 영웅의 이야기가 나온다. 다른 이들보다 더 깊은 통찰력과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실패로부터 일어나서 결국 성공을 거두는 성공사례는 독자들에게 동기부여와 함께 좌절의 이유가 된다. 자기계발서에 언급된 이들의 영웅담은 언제나 긍정적인 부분만 발췌되어 소개된다. 인물 평전과 신화에 있는 인간적인 약점등은 책의 목적 상 소개되지 않기에, 독자들은 이상화된 영웅을 따라하려 노력하지만 현실 속에 드러나는 자신의 인간적인 약점에 스스로 낙담하고 포기하게 된다.

영웅들은 평범한 세계에서 평범한 삶을 살다가 모험에 대한 부름을 받는다. 이것이 싸움, 유혹, 성공 그리고 실패로 가득한시련의 길로 영웅들을 이끈다. 이 길을 따라가면서 영웅들은 종종 자신보다 먼저 여정을 떠난 사람들과 멘토들의 도움을 받는다. 또 자신들보다 뒤처진 사람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도와준다. 이들은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하고 싶은 강한 투지를 통해 싸움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영웅들은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더 강해지고 더 많은 것을 성취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기 때문에 점차 실패보다 더 많은 성공을 이룩한다. _ 레이 달리오, <원칙> , p143/710

2023년 새해를 맞아 새로운 계획을 세우려고 꺼내든 레이 달리오의 <원칙>. 레이 달리오는 분명 성공한 삶을 산 현인이고 투자자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책에 담긴 그의 조언은 분명 후배들을 향한 그의 사랑이 담겨 있다. 그렇지만, 그의 상세한 조언에 너무 매달리며, 성공하기 위해 '~ 해야만 한다'는 원칙에 너무 구애받지는 말자. 독자들에는 분명 태어나면서부터 셰이퍼/영웅인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많지 않다. 오히려, 자신이 영웅의 세계관에서 지나가는 인물임을 받아들여 영웅의 중압감에서 자유로울 때, 그리고 지금 자신이 해야할 일에 눈을 돌리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지 않을까.

아무리 작은 실천이라도 지금 내게 필요한 일, 해야할 일에 눈을 돌리지 않고 지금 실행하고 하나씩 나아간다면, 그런 작은 발걸음이 모여서 레이 달리오의 원칙이 당위가 아닌 삶의 습관으로 긍정되지 않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원칙>에서 취할 부분은 리뷰의 처음에 언급된 '실수'에 대한 부분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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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2-12-31 12: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쩜 겨울호랑이님 말씀대로 평범한 사람들이 더 많아요. 꼭 어느 분야의 영웅이나 대가일 필요는 없는거죠. 평범한 삶도 저는 만족합니다. 겨울 호랑이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언제나 행복하시길~

겨울호랑이 2022-12-31 12:30   좋아요 1 | URL
네 기억의집님 말씀처럼 평범한 삶을 살더라도 자신의 현실에 눈 돌리지 않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자체가 큰 원칙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기억의집님께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

베텔게우스 2023-01-01 00: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하지만 그것을 통해 배우며 날마다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겨울호랑이님 2023년 계묘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겨울호랑이 2023-01-01 09:0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베텔게우스님께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원하시는 바를 많이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

thkang1001 2023-01-01 14: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베텔게우스님! 겨울호랑이님! 두 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겨울호랑이 2023-01-01 15:23   좋아요 0 | URL
thkang님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원하시는 바 많이 이루는 한 해 되시길 기원합니다! ^^:)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3 - 통일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3
로타르 갈 외 지음, 오토 브루너 외 엮음, 라인하르트 코젤렉 외 옮김, 한림대학교 한림과 / 푸른역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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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작품의 통일은 예술작품을 결정하고 예술작품들과 함께 제공된다. 예술작품을 포괄하는 더 상위의 통일, 즉 한 나라 안에서 한 시대 안에서의 예술의 통일, 문학의 통일도 역시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현존하는 현상으로 확인된다. 동일한 것이 부분적으로 하나의 언어와 문화 공동체로서 한 민족의 통일에도 적용되고, 약간 더 작은 규모로 그것이 한 나라의 역사가 되었든(뫼저), 인류 전체의 역사가 되었든(헤겔), 역사의 통일에도 역시 적용된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3 : 통일>, P83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 1923 ~ 2006)의 개념사 사전 23번째 주제는 통일(Einheit)이다. 나누어진 것을 하나로 통합한다는 의미에서 보여지듯, 단어의 전제는 서로 다른 개별자들로부터 보편자로 향하는 방향성이 단어 안에 들어있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이러한 방향성은 두 개념의 대립으로 나타난다. 중세시대에 대립은 '교권-세속권'의 모습으로, 근세 이후에는 자유주의의 영향을 받아 사상적으로는  '보수주의 - 자유주의'의 모습으로, 정치적으로는 '연방-중앙집권주의' '오스트리아 중심의 대(大)독일주의-프로이센 중심의 소(小)독일주의'의 대립으로 발전된다.


 "민족국가적" 독립의 주창자들이 최고 보편 권력을 요구했던 제국과 교황권에 대항해 투쟁할 때 자신들 주장의 근거를 끌어온 것도 바로 이 통일사상이었다. 유기체적으로 구상된 "기독교적 통일"이라는 개념은 언제나 교권 sacerdotium과 세속권 imperium의 대립에 의해 위협을 받았다. 13세기에 이러한 보편적 권력들의 붕괴와 더불어 유기체적인 통일이라는 이념은 이제 개별 국가의 차원으로 옮겨졌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3 : 통일>, P15


 중세가 끝나는 시점 이후로 통일 관념은 두 개의 방향으로 발전해갔다. 한편으로는 세속권력의 그리고 교황 절대주의의 이론가들에 의해 매우 엄격한 방식으로 형성된 중세 전성기의 통일 개념이 이제 막 등장하기 시작한 영방국가 - "단 하나의 그리고 분할될 수 없는 공화국 republique une te indivisible" - 에 전용되어 쓰였고, 다른 한 편으로는 연방적인 통일 이념이 계속 살아 있었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3 : 통일>, P23


 에드문트 외르크 Edmund Jorg는 1863년 다음과 같이 썼다. 오직 하나의 "대독일적 제국"안에서만 "진정한 권위"가 생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통일의 법칙 안에서의 진정한 자유"다. 외르크의 눈앞에 중앙집권주의라는 끔찍한 유령이 서 있었던 것이다. 그는 오직 독일의 연방적 체제에서만 자유가 보증될 것이라고 믿었다. 오스트리아가 주도하는 하나의 "대독일적 제국"의 이념은 하나의 "정치적 연방주의"를 찬성하는 그의 입장에 부응했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3 : 통일>, P76


 개념어 발전과정에서 중세시대의 '교권-세속권'의 관계가 극적으로 변화된 것은 '자유'라는 개념과 깊이 연관된다. 라틴어 중심의 보편적 질서에 대항하여 중세 말 이후 자국 언어로 쓰여진 작품들과 언어 안에 담긴 민족정서는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이었으며, 이것은 인간 이성(理性)과 자유(自由)에 대한 강조로 표현되고, 이러한 기조는 '통일'의 개념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통일은 동시에 자유에 입각한 자결 사상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바로 이 사상이 민족적 통일 안에서 체현된다는 것이고, 통일은 그 사상이 계속 전개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준다는 것이다. '통일'과 '자유'의 개념들은 무엇보다도 그 때문에 아주 밀접한 관계에 들어서는데, 왜냐하면 정치적 현실, 독일연방의 지배적 "체제"는 이 두 개념의 본질에 반대하는 쪽으로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3 : 통일>, P47


 18세기에 이('통일'이라는) 새로운 개념 안에 의식적으로 의미가 채워져 가는 이 과정은 외관상 당시 사람들이 관심을 두던 정치적-사회적 영역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문학과 예술 이론 분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개념은 여기서 '예술작품의 통일'로 연결되면서 일찍이 확고한 표어로 자리잡는다. 사람들은 문학과 예숙의 다양한 장르들에 이들 자신의 내적인 통일성 Einheitlichkeit에 대한 문제를 제시했고, 예술적 통일 안에서, 형식과 내용의 화합 안에서 하나의 예술작품의 가치 평가를 위한 결정적인 기준자를 발견했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3 : 통일>, P26


 결과적으로,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 기준은 점차 역사와 인류로 확대되면서 '미학(美學)'은 단순한 미적 취미에 대한 담론이 아닌 판단의 기준이 되었으며, 이러한 판단의 심판대 위에 19세기 독일 통일이라는 시대적 과제가 올라서면서, 오스트리아 중심의 대(大)독일주의와 프로이센 중심의 소(小)독일주의가 충돌하게 되었음을 본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8세기 애국적인 제국 법률가들은 영방국가적 주권사상과 그것의 통일 모델을 강하게 거부하면서 "독일 제국의 통일"을, 제국헌법의 시의 적절하게 개혁된 기본법들과 제도들의 토대위에서의 "다양성 속의 통일"로, 다양한 정치적 힘들의 "합일"로 이해했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3 : 통일>, P35


 독일의 정치적 통일 관념들에 전형적인 현상으로서 '연방'과 '통일' 개념의 결합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발견된다... 슈타인메츠는 "독일에서의 통일"이 오직 하나의 "프로이센-독일적 연방"을 통해 보증될 수 있다고 보았다. '통일'과 '연방'이라는 두 개념은 그에 의해 하나로 명명되었다. 독일의 통일이 하나의 연방이라는 국가적 형태 안에서 실현되는 것은 여기서 곧 자명하고 논라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전제되었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3 : 통일>, P40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3 : 통일>을 읽으며, 미학(aesthetics)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통일'의 개념어 과정에서 드러나듯 미학의 판단 기준이 확장되어 하나의 시대 흐름을 만들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미학을 그 자체로 볼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인식틀로 봐야 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낭만주의 사조에 드러나는 자연에 대한 경외(敬畏)의 감정 그 자체도 중요하겠지만, 경외라는 감정이 표현되는 전후 관계가 바로 사상가들의 시대에 대한 인식과 밀접하게 연관지을 수 있겠다. 이러한 이유로 칸트, 헤겔, 니체 등 철학자들의 미적 판단이 '아름다움(美)'을 넘어선 '진리(眞)'와 '선함(善)'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임을 '통일'이라는 개념어를 통해 다시 생각하며 글을 갈무리한다...


 <두 독일인의 서신 교환>에는 헤르더의, 다음으로는 괴테에 의해 계속 전개된 민족의 문화적 통일에 대한 사상이, 언어와 문학에서의 "공통의" 정신적 유산을 통해 하나로 통합시켜 묶고 있는 "하나의 공통의 공중"에 대한 사상이, 동시에 이 사상 안에 담겨 있는 정치적 동기가 매우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3 : 통일>, P45


"노동자들의 합일"은 그들을 "계급"으로 보이도록 만들었다. 마르크스의 계급 개념은 프롤레타리아의 통일을 암시했고, 프롤레타리아의 "정당"으로의 법제화를 표현했다. 프롤레타리아가 하나의 사회적 단위로 연합된다는 것은 마르크스에게 역사의 필연적인 과정이었고, 그렇지만 동시에 거대한 체제전복적 변혁의 과정에서 하나의 단계이기도 했다. - P69

정치적 발전의 과정은 그래서 자유주의의 관념세계에서 원래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던 ‘통일‘과 ‘자유‘라는 두 개념을 쪼개버렸고, 자유를 통일 뒤로 물러나도록 했거나 아니면 자유가 통일로부터 나오도록 만들었다(p72)... 그와 더불어 전선이 명확히 그어졌다. 민족통일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모든 상황에서 정치적 진보를, 자유주의적 헌법 형식을 향한 발전을 포함하는 원리를 의미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유가 없는 통일은 수용될 수 없는 것이었다. - P74

연방주의적-보수주의적 통일 개념과 중앙집권적-민주주의적 통일 개념은 따라서 독일 통일의 문제에 관한 논의에서 화해할 수 없을 정도로 적대적이었다. 1871년의 제국은 이 두 개념들에게 공격 목표를 제공해 주었다. 왜냐하면 이 제국의 헌법구조가 통일을 지향하는 요소들뿐만 아니라 연방적인 요소들도 포함하고 있었고, 또 그 안에는 보수주의적인 경향들과 자유주의적인 경향들이 한데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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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12-30 21: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호랑이님 이제 토끼해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ㅎㅎㅎ 어려운 책들 잘 풀어내주시고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연말 가족분들과 행복하게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2-12-30 23:44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저 역시 미니님의 좋은 영상과 글들로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 감사드립니다. 내년 한 해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거리의화가 2022-12-31 2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한해동안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매번 댓글을 남기질 못해서 죄송해요. 하지만 늘 잘 보고 있습니다. 내년에도 좋은 글 계속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겨울호랑이 2022-12-31 23:23   좋아요 1 | URL
거리의화가님 감사합니다. 저 역시 거리의화가님 좋은 글과 말씀 그리고 격려 덕분에 많이 배웠던 지난 한 해였습니다. 저 역시 댓글을 남기지 못하는 편이라 죄송합니다.. ㅜ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에도 역사와 관련한 거리의화가님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가설을 잘 세우려면 적어도 몇 가지 문제를 우선 고민해야 한다. 첫째 분자 기전을 밝히는 문제, 둘째 원인과 결과의 본성 또는 속성을 규정하는 문제, 셋째 조작적 정의operational definition를 내리는 문제 그리고 마지막으로 논문 게재의 필요 조건과 관련된 문제다.

여기서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과학적 발견의 중요성에 대한 판단은 다소 주관적이며 얼마든지 오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멘델의 유전 법칙 등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발견의 중요성은 시간의 함수로 발견이 시의적절해야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중요성과 영향력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21 또한 페니실린이나 방사선동위원소 등의 사례처럼 발견 당시에는 임상적 중요성을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과학적 발견의 감수성이란 최초 목격에서 아이디어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가 얼마나 잘 형성되어 있느냐를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937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알베르트 폰 센트죄르지Albert von Szent-Gyorgyi가 일찍이 "발견은 누구나 보는 사실을 보는 것과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는 사실을 생각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라고 말한 바와 일맥상통한다.

다마지오에 따르면 인간의 마음은 외부와 내부 상태에서 오는 두 종류의 데이터를 이미지로 표상하여 종합한다. 내부 상태란 바로 느낌이며 주관성을 가진 ‘의식’의 기초가 된다. 주관성이란 나 자신을 인식하는 것으로 이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의 정보에 근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문화는 느낌의 산물이다. 느낌의 존재 목적이라 할 수 있는 항상성 유지가 생존에 유리한 사회적 행동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결론에 도달하려면 느낌에서 출발하여 주관성을 가진 의식의 탄생, 상상의 산물을 믿는 인지 혁명, 인간 사이의 대규모 협력이라는 몇 번의 창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신석기는 작은 진보가 아니라 문명의 역사에서 결정적인 단계였다고 볼 수 있다. 돌에서 금속으로의 도구 변화는 재료의 특성만 놓고 보면 엄청난 변화지만 신석기를 만든 발상에서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생각의 흐름으로 볼 수 있다. 어찌 되었든 금속의 사용은 인간의 기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전자는 직접 행동을 지시하지 않는다. 동물의 행동은 신경회로neural circuit라는 신경계의 기능 단위가 산출하는 출력물이며, 유전자의 역할은 이러한 신경회로의 형성과 작동을 조절하는 간접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말하자면 유전자는 행동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신경회로를 통해 행동을 가능케 한다.
따라서 행동유전학의 목표, ‘유전자에서 행동까지’의 통합적인 이해를 위해서는 유전자와 행동을 매개하는 신경회로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불소는 충치를 예방하고 통제하는 열쇠다. 여기에는 분명한 과학적 합의가 있다. 과학적 증거는 불소가 개인과 공동체 수준 모두에서 충치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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