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흔들리는 분단체제
백낙청 지음 / 창비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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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체제'라는 낱말이 한갓 수사를 넘어 개념의 수준에 이를 때 비로소 '분단체제극복을 위한 통일운동'이라는 표현은 - '분단극복을 위한 통일운동' 이라는 동어반복과는 달리 - 구체적인 내용을 갖게 된다.(p11)... 세 가지 의미의 '체제'를 동일선상에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일견 복잡성을 더해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혼란을 제거하는 데 이바지 한다. 곧, 세계체제와 그 속의 분단체제 그리고 후자를 구성하는 두 분단국가의 '체제'는 각기 다른 차원에 속하면서 구체적인 상호관계를 맺고 있는 현실이다. _ 백낙청, <흔들리는 분단체제> , p14/172

일국 사회 역시 사회분석의 기본단위일 수는 없고 '세계체제'의 하위체제(sub system)에 해당한다는 것이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 등의 세계체제분석에서 일관되게 강조되는 시각인데, 그렇다고 이것이 일국사회의 존재를 부정하는 발상이 아님은 물론이다. 근대세계체제는 자본주의 세계경제라는 하나의 토대를 지닌 사회이면서 많은 수의 일국사회들이 모인 열국체제를 상부구조로 하는 사회이다. 따라서 경제적 실체로서의 계급은 엄밀히 말해 세계체제 전체 차원에서 규정되지만, 그 자기형성과정이나 정치투쟁의 전개는 일국사회 차원의 고려를 떠나서는 무의미해진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계급담론은 어떤 경우에도 단순해질 수 없는데, 단지 그 점이 한반도처럼 분단체제라는 특이한 중간항이 끼여들었을 때에 더욱 도드라질 따름인 것이다. _ 백낙청, <흔들리는 분단체제> , p25/172

분단체제라고 할 때는 그 대랍항을 분단되어 있는 남과 북으로 잡기보다는 남과 북의 수구세력이 극과 극으로 대치하고 있으면서도 어떤 의미에서는 교묘한 공생관계에 있는 그러한 체제와, 그 공생관계에서 소외되고 그로부터 고통을 받는 남북한의 다수 민중, 이 둘이 대립을 이루고 있다, 이렇게 보는 견해입니다. _ 백낙청, <흔들리는 분단체제> , p94/172

저자는 분단체제를 '세계체제-분단체제-남북 내 체제'의 구조 속에서 이해한다. 세계체제의 흐름이 90년대 이후 '자본주의(資本主義)' 일방으로 흐르는 반면, 분단체제의 흐름은 남북 수구 세력의 현실고착화 움직임으로 유지되고, 각 체제 내부에서는 생태, 계급, 민족, 여성 문제 등의 다양한 사회문제가 대두되는 상호연결적 관계. 저자는 분단 문제를 단순한 남북의 대립 구조 안에서 파악하지 않는다.

남북한이 각기 완결된 체제가 못 되는 이유가 이처럼 단순히 세계체제의 하위범주라서만이 아니고, 분단이 되지 않은 국가들과는 달리 남북한이라는 두 개의 하위체제의 경우에는 그들이 세계체제에 참여하고 세계체제의 규정력이 그 내부에 작동하는 방식이 일정하게 구조화된 분단현실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분단체제'라는 또 하나의 체제 개념이 끼여들 수밖에 없다. _ 백낙청, <흔들리는 분단체제> , p15/172

'운동'이라는 말은 일상성과의 미묘한 관계를 함축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무언가 일상성의 틀에서 벗어난 목표를 이루려는 노력이 운동이면서, 다른 한편 그 노력이 하루이틀에 끝나지 않고 그야말로 하나의 운동으로 지속되자면 일상생활 속에 자리잡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_ 백낙청, <흔들리는 분단체제> , p11/172

이처럼 분단의 문제를 체제의 관점에서 서로 다른 차원에서 발생하는 서로 다른 힘들이 충돌로 해석한다면, 이것을 화해로 이끄는 과정은 단순한 방적식이 아닌 복잡한 방정식의 형태를 띨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보다 안정적인 세계경제상황 아래에서 남북 양측의 수구세력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자유와 평등을 기반으로 하는 지속가능한 복지사회가 사회적, 인류적 차원에서 합의된다라면 각 체제의 모든 변수(變數)를 만족시킬 해(解)가 되겠지만 이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경우 해찾기 방법은 '시행착오법 trial and error'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분단체제극복의 과정에서 그때그때의 정세에 따라 남북 정권이 각기 얼마만큼 장애가 되고 얼마만큼의 이바지를 할 수 있을지는 민중의 입장에서 판별하여 대응할 일인바, '민중의 입장'이라는 것 자체가 남북 민중들의 때로는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포괄하는 복합적인 성격을 띠는 만큼 남북의 정권 및 정부에의 대응도 다원고차방정식(多元高次方程式)의 일부로 지혜롭게 풀어가야 할 것이다. 이 다원방정식에는 당연히 분단체제의 상위체제인 세계체제의 작동이 반영되어야 하고, 특히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들을 중요한 변수로 대입해야 한다. _ 백낙청, <흔들리는 분단체제> , p17/172

남북민중의 일차적 과제는 남북 각각의 현장에서 벌이는 독자적인 현실개혁운동 겸 분단체제변혁운동이다. 또한 분단체제가 스스로 완결된 체제가 아니고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하위체제 가운데 하나이므로 남북 민중이 연대한 이 운동은 곧바로 세계적 차원의 현실개혁운동이며, 현존 세계체제가 인간다운 삶에 대한 세계 민중의 욕구를 실현할 수 없을뿐더러 생태계파괴를 통한 인류공멸의 운명을 재촉하는 체제임을 인식하는 모든 사람들과 국경을 초월한 연대를 가능케 하며 또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_ 백낙청, <흔들리는 분단체제> , p65/172

모든 조건이 충족된 최선(最善)의 해를 찾는 대신, 분단과 맞닿아 있는 모든 분야에서 점진적으로 개선을 이루어가면서, 그때마다 상황에 맞는 해를 찾아가는 방식. 이 방식이 저자가 말하는 '변혁적 중도론'과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닐까. <흔들리는 분단체제>라는 책 자체는 1998년에 출간된 오래된 책이다. 그렇지만, 책이 담고 있는 내용 - 분단을 이데올로기의 대립의 차원에서 파악하지 않고, 1953년 판문점 체제가 역사의 흐름 속에서 보다 영속적인 체제로 굳어지는 과정에서 이해집단들의 견제와 균형이 만들어 낸 세계체제의 일부로 파악 - 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분단이라는 상황과 사회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많은 부분에서 오히려 악화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상황을 인식해야 할 것인가.

불안정성 또한 하나의 운동으로 인식하고, 변화된 환경 속에서 이전 과는 다른 해법을 우리는 고민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우리는 통일 이전에 분단체제의 문제를 풀기 위한 준비가 부족한 것은 아닌가, 지난 20대 대선 과정에서 보여준 사회적 갈등을 단순히 위기상황으로 보는 대신 오히려 문제 해결을 위한 첫걸음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를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시행착오 과정에서 일어난 하나의 잘못된 풀이가 훗날 해찾는 묘수가 될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리뷰를 갈무리한다...

중요한 것은 물론 통일 한반도의 모습을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점이다. 우리가 당장에 선택할 방어적 전략의 내용도 여기에 좌우될 것이다. 그런데 분단체제는 어디까지나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한 하위체제요 세계체제의 수명은 이 하위체제보다 길 것이라는 전망이 정확하다면, 분단체제가 극복된다 해서 우리가 곧바로 시장경제의 논리에서 벗어날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_ 백낙청, <흔들리는 분단체제> , p48/172

'정신'으로 근본을 삼자는 정산의 주장을 단지 종교인의 '거룩한 말씀'으로 치부하기는 어렵겠다. 물론 사람마다 수양이 완벽해진 후에야 통일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면 이는 통일이건 건국이건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이야기나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그러한 절대적인 선후관계가 아니라 일의 본말로서 어느정도의 정신자세 확립이 근본이 된다는 주장이라면 이는 얼마든지 용납할 만한 주장이며, 그 실제 내용이 얼마나 사리에 맞느냐가 문제일 따름이다.(p146)... 다수 민중의 수준높은 정신수양이 갖춰지기 전에 강압적으로 물질적 평등부터 구현하고 보자는 '현실사회주의식' 방법은 잘못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로 현실사회주의 실험의 실패는 바로 평등사상의 그러한 '진실한 가치'를 드러내지 못한 결과라는 해석이 오늘날 적지 않은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_ 백낙청, <흔들리는 분단체제> , p149/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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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사람들이 구상해야 할 것은 우리의 구체적 역사체험에 걸맞은 새로운 연방적 구조이며, 그같은 구상이 없이는 ‘국가연합이라는 에움길’마저도 실패하기 마련이다. 이 새로운 연방 구상에 반영될 체험은, 한편으로 적어도 10세기에 걸친 정치적 통일성과 아울러 예외적으로 높은 인종적·언어적 동질성을 지금껏 지니고 있으면서 다른 한편 분단의 오랜 지속과 엄혹함 탓에 이미 상이한 국민형성의 몇몇 단초적 양상을 보이고 있기도 한 주민집단의 경험을 당연히 포함한다. 동시에 그 구상은 국가연합적 ‘에움길’의 체험 그 자체도 반영해야 할 텐데, 국가연합의 성립은 영구분단론자들에게는 십중팔구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가하는 한편, 현재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인구이동의 적절한 통제 및 점진적이고 상호협상에 의한 군비축소를 위해 ‘민족에 대한 공화주의적 또는 민주적 관점’에서는 일반적으로 감안되지 않는 합법적 근거를 제공할 것이다.

남북의 기득권세력들이 분단의 유지에 어느정도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분단체제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분단이데올로기는 남한의 극우반공논리로 한정될 수 없다. 북한식 통일지상주의 역시 그것이 북쪽의 분단정권 유지에 필요할뿐더러 객관적으로 남쪽의 반공세력을 강화하는 작용마저 한다는 점에서 북한판 분단이데올로기라 하겠으며, 이렇게 극좌와 극우를 오가며 변신할 수 있는 것이 분단이데올로기라면 상황에 따라 또다른 변종도 낳을 수 있다고 보아야 옳다.

굶주리는 동포를 우선 돕고 보자는 공감대는 이제 남한에서도 뒤늦게나마 확산되고 있다. 이때 제시되는 가장 흔한 논리는, 기근 또는 그에 준하는 상황에서는 인류애와 동포애가 먼저고 이런저런 정치적 고려를 개입시킬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타당한 논리인 동시에, 극우세력 일부가 최소한의 인도적인 조치에 대해서조차 ‘군량미로의 전용’ 운운하면서 아직도 제동을 걸려고 하는 작태를 볼 때 이 ‘비정치적’ 논리가 그나름의 정치적인 효험을 지니기도 한다.

따라서 변혁의 전망은 분단체제를 넘어 당연히 그 상위체제인 세계체제까지도 대상으로 삼을 줄 알아야 한다. 이 경우에도 일정한 역사적 여건이 무르익기 전에는 부분적인 개선 이상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자본주의 세계경제요, 따라서 특정 지역에서의 혁명조차도 세계체제의 맥락에서는 개량에 불과하거나 심지어 개악일 수 있다는 인식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분단체제의 변혁 또한 세계시장의 논리 자체를 철폐하는 세계사 차원의 변혁에는 미달하리라는 것이 냉엄한 현실인데, 그러나 이 부분적인 개선작업이 성공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것이 어쨌든 인류사회의 개선이지 개악이 안 되도록 하기 위해서, 세계체제의 실상에 근거한 변혁의 비전이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다수 민중의 수준높은 정신수양이 갖춰지기 전에 강압적으로 물질적 평등부터 구현하고 보자는 ‘현실사회주의식’ 방법은 잘못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로 현실사회주의 실험의 실패는 바로 평등사상의 그러한 ‘진실한 가치’를 드러내지 못한 결과라는 해석이 오늘날 적지 않은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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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세 가지 의미의 ‘체제’를 동일선상에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일견 복잡성을 더해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혼란을 제거하는 데 이바지한다. 곧, 세계체제와 그 속의 분단체제 그리고 후자를 구성하는 두 분단국가의 ‘체제’는 각기 다른 차원에 속하면서 구체적인 상호관계를 맺고 있는 현실이다.

남북한이 각기 완결된 체제가 못 되는 이유가 이처럼 단순히 세계체제의 하위범주라서만이 아니고, 분단이 되지 않은 국가들과는 달리 남북한이라는 두 개의 하위체제의 경우에는 그들이 세계체제에 참여하고 세계체제의 규정력이 그 내부에 작동하는 방식이 일정하게 구조화된 분단현실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분단체제’라는 또 하나의 체제 개념이 끼여들 수밖에 없다.

남북한에 걸친 분단체제와 이에 맞선 남북한 민중을 대립의 기본축으로 잡을 경우, 남북한 당국의 합의는 어디까지나 남북한 민중의 이익을 최대한으로 증대하게끔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결말이고, 이 과정에서 쌍방 정권들의 입장이 얼마나 대등하게 반영되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이러한 분단체제극복 구상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물론 한반도에서 새로운 전쟁이 터지는 사태다. 전쟁재발은 설혹 그 결과가 6·25보다 더욱 심한 한반도의 초토화와 민족의 대살상까지는 안 갈 수 있다 하더라도 민중의 창의력이 발휘되는 통일에는 결정적인 타격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전쟁의 가능성은 단순히 기득권세력의 선동이나 협박으로 돌릴 일이 아니고 민주화운동·통일운동의 입장에서도 진지하게 검토할 문제이다.

일국사회 역시 사회분석의 기본단위일 수는 없고 ‘세계체제’의 하위체제(subsystem)에 해당한다는 것이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 등의 세계체제분석에서 일관되게 강조되는 시각인데, 그렇다고 이것이 일국사회의 존재를 부정하는 발상이 아님은 물론이다. 근대 세계체제는 자본주의 세계경제라는 하나의 토대를 지닌 사회이면서 많은 수의 일국사회들이 모인 열국체제를 상부구조로 하는 사회이다. 따라서 경제적 실체로서의 계급은 엄밀히 말해 세계체제 전체 차원에서 규정되지만, 그 자기형성과정이나 정치투쟁의 전개는 일국사회 차원의 고려를 떠나서는 무의미해진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계급담론은 어떤 경우에도 단순해질 수 없는데, 단지 그 점이 한반도처럼 분단체제라는 특이한 중간항이 끼여들었을 때에 더욱 도드라질 따름인 것이다.

그는 17세기의 네덜란드, 19세기의 영국, 2차대전 이래의 미국 등 세 개의 패권국가가 그때그때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가운데 자본주의 세계체제가─자본주의적 근대라는 큰 틀 안에서지만─세 개의 상이한 ‘근대’를 경험해왔다고 주장한다. 그중 첫 단계의 특징을 중상주의, 둘째 단계를 산업주의라고 한다면 미국이 주도하는 제3단계는 ‘대량소비’의 세계요,

중요한 것은 물론 통일 한반도의 모습을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점이다. 우리가 당장에 선택할 방어적 전략의 내용도 여기에 좌우될 것이다. 그런데 분단체제는 어디까지나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한 하위체제요 세계체제의 수명은 이 하위체제보다 길 것이라는 전망이 정확하다면, 분단체제가 극복된다 해서 우리가 곧바로 시장경제의 논리에서 벗어날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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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이후 정치지형은 급변할 것이다. 막판까지 우세를 유지한 윤석열이 집권에 성공한다면 ‘칼바람‘까지 불면서 기존 정치세력이 일대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부패세력 척결  등의 이유로처음에 지지를 받은 것처럼 ‘칼정치‘가 어떤 국민에게 시원한 느낌을 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민을 주축으로 한 정치의 복원 없이는 어떤 정치도 ‘정글민주주의‘의 연장과 심화일 뿐이다.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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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벼락처럼 찾아왔다. 조선변호사시험 합격자들에게는 대규모 판검사 임용이라는 엄청난 기회의 문이 열렸다. 그러나 모두가 그 기회를 잡은 것은 아니었다. 좌익이나 중도성향의 변호사들에게 그 문은 유난히 빨리 닫혔다. 문이 열렸다는 기억을 간직하기도 어려울 만큼 짧은 순간이었다.

적산(敵産)은 점령지대 안에 소재하는 적국 소유 또는 적국국민 소유의 재산을 말한다. 승전국인 미국 입장에서는 조선에 있는 일본재산은 모두 미국 것이었다. 승전국에 귀속된다는 의미에서 ‘귀속재산’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런데 조선인 입장에서 보면 ‘적산’은 일제가 식민통치 기간 동안 수탈한 우리 재산이었다. 여기에서 수많은 혼선이 빚어졌다. 1945년 9월 25일의 군정법령 제2호는 조선 내 일본의 국공유 재산, 일본군 소속 재산을 군정당국 또는 미국이 접수할 것을 규정했다. 적산의 매매·취득·양도는 금지되었고, 일본인들은 귀국 시 현금 1000원만을 들고 나갈 수 있었다. 다만 사유재산은 ‘정당한 수속’을 밟아 매매할 수 있었다. 일본인들은 자기 재산을 조선인에게 헐값으로라도 처분해서 현금화하려고 했다. 한동안 적산은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였다. 적산 처리는 남한에서 부자와 가난한 자가 갈리는 첫 분기점이었다. 정치적 힘이 곧장 경제적 힘으로 연결된 계기이기도 했다.

법원과 검찰의 실권은 빠른 속도로 조선인의 손으로 돌아왔다. 다른 어느 분야보다도 빨랐다. 문제는 일본인 판검사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채우기에 턱없이 부족해 조선인 법률가의 숫자였다. 이런 공급부족 상황에서도 고위직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은 치열했다. 경쟁에서 밀려난 법률가들, 정치를 비롯해 다른 진로를 꿈꾸는 법률가들 틈새에서 사회주의에 기반한 아예 다른 세상을 꿈꾸는 법률가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기존의 일본식 법률가 양성 시스템을 통하지 않은 미국식 통역권력도 등장했다. 북한에서 내려온 법률가들은 ‘사다리 걷어차기’에 좌절하면서도 조금씩 입지를 넓혀나갔다. 혼돈이지만 아직 서로를 잡아먹는 단계에는 이르지 않은 법조 생태계였다.

장도영과 오제도는 평북 출신이라는 공통점 외에도 영락교회에 다니던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했다. 오제도는 1948년 영락교회 청년면려회 지육부장을 지냈고, 평북 선천의 오래된 기독교 가문 출신인 장도영도 월남 후부터 계속 영락교회를 다녔다. 평북 의주, 용천, 선천 출신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영락교회는 1955년을 기준으로 했을 때 교인 중 평북 출신이 3000명, 평남 출신이 1000명, 황해도 출신이 300명이었다. 서울 출신은 400명에 불과했다. 한국전쟁 중 오제도가 횡령혐의로 위기에 처했을 때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가 구명성명서에 참여한 것도 이런 인연 때문이었다. 오제도는 그런 인연들이 엮어낸 과장된 ‘반혁명’ 사건의 창피스러운 조연이었다. 이번에도 오제도는 도피를 선택했다. 그의 도피를 도운 것도 영락교회 동료들이었다.

일제시대 시험에 붙은 사람들을 법원에서 내쫓는다고 해서 일제유산이 깨끗하게 정리되는 것도 아니었다. 근본적으로는 법조계만큼 해방전후 구분이 의미없는 분야도 없다.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1945년 8월 15일 해방 당일의 경성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 이미 몇차례 운을 띄운 이법회 문제다. 이법회는 유태흥 대법원장이 말하는 ‘열패고’를 이해하는 열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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