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상태의 인간은 자신이 손에 넣을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사회적 질서가 수립된  국가의 단계에 이르면 인간은 이같은 자연적 자유를 포기한다. 그 대신 인간은 사회적 자유와 그가 소유한 모든 것에 대한 소유권을 부여받는다. 자연적 자유는 사회적 자유로, 소유는 소유권으로 대체된다. 그 이외에도 사회적 질서가 수립된 국가에서 인간은 도덕적 자유를  획득하게 되는데, 인간을 진정한 의미에서 자신의 주인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이 도덕적 자유뿐이다. 왜냐하면 충동적 욕망에만 사로잡혀 있는 것은 노예적 상태인 반면 우리가 자신에게 규정한 법률에 복종하는 것은 자유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 P238

양국가 모두 이런 결과를 처음부터 예측하고서 어리석은 경쟁을시작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경기의 결과가 자신들이 원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으므로 이제 두 국가는 원래대로 상황을 되돌려 그 상태 그대로 머물기로 하는 합의를 하지 않을까? 오직 두 국가만을 계속 상정한다면 위의 두 질문은 타당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여러 국가가 존재하는 조건에서라면 이들 중 한 국가는 보복의 위험을 무시해도 될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보호무역주의로 치닫는 경쟁이 일단 시작되면 각 국가가 자국의 눈앞의 이익을지키기 위해 그 경쟁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 문제이다.  - P265

세력균형은 일부 국가가 의식적으로 이를 자신들의 정책 목표로 삼고 있기에 존재하는 것일 수도 있고,  다른 국가들의 주도권 추구에 대해 일부 국가들이 반자동적으로 반응하면서 생기는 것일 수도있다. 세력균형론에 반대하는 이들이 국가의 정책을 관장한다고 하더라도 그들 또한 세력균형을 영속화하거나 새로이 수립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경향을 보일 것이다. 이들이 세력균형 정치를 아무리말로써 비난한다고 해도, 그러한 비난이 아무리 진심에서 나온 것이라 하더라도 세력균형 정치의 필요성에는 변함이 없다.  -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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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우리는 소외에 대한 논의에 이르게 된다. 자본주의 문명에 대한 보수적 비판자들과 급진적 비판자들이 힘을 한데 모으는 것이 바로 이 문제에 대해서다. 앞서 언급했듯이, 소외는 공식교육의 미덕이라고 주장된 잠재력의 실현에 정반대되는 개념이다. 소외는 우리 자신, 우리의 ‘참된 본성‘, 곧 우리의 진정한 잠재력으로부터 우리 스스로가 멀어지는 과정을 말한다.  - P143

자본주의 문명의 세계는 양극화된 그리고 양극화해나가는 세계다. 그런데도 그것이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바로 이 문제를 둘러싸고 득실표에 대한 공개토론이 시작된것이다. 이제까지 이 체제를 유지시켜주었던 것은 개혁이 증가되고 결국엔 격차가 메워지리라는 희망이었다. 논쟁 자체가 이런 희망을 이중으로 부추겨놓았다. 미덕들에 대한 주장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체제의 장기적인 이득을 믿도록 했다.  - P146

따라서 국가의 행위가 그때그때의 상황에서 득이될 것인가 아니면 해가 될 것인가 하는 가능성에 따라서, 자국에대한 생산자집단들의 태도 역시 항상 변화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언제나 변함없는 것은 강력한 생산자들  중 일부는 국가를 통해 자신들의 시장에서의 지위를 높이려고 하며, 국가는 이러한 요구에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왔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자본주의 경제의 불변요인이 아니었다면, 자본주의 문명은 결코 번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 P152

그러나 개인주의는 또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지구문화적 과제들의 딜레마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개인주의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경쟁을 아주 악랄한 방식으로 부추기는데,  이는 개인주의가 단지 소수 엘리뜨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에 대해서 이런 경쟁을 정당화해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경쟁은 논리적으로 어떠한 한계도 없는것이다. 실제로 근대의 수많은 철학적 ·사회과학적 담론들은 철저한 이기주의가 이처럼 사회적으로 그대로 방치될 경우에 따르는 집단적이고 개인적인 위험들에  초점을 맞추어왔다.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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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체제와 87년체제
김종엽 지음 / 창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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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단체제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남북한 각각의 체제로 이루어진 한반도는 일정한 자기재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내재적으로 불안정한 하나의 체제이다. 이 체제는 세계체제의 하위체제로서 존재하며, 지정학적 이유에서 동북아시아라는 중간 영역의 정치군사적/경제적 조건에 민감하게 의존한다. 분단체제는 그 아래 존재하는 남북한 각각의 체제의 지배자와 민중 사이의 대립을 주요모순으로 하는 사회이며, 남북한 각각의 지배층은 적대적이지만 동시에 상당 정도 상호의존적이다. 이런 분단체제가 그 안에 사는 민중에게 고통만 야기한 것은 아니다. 냉전체제의 경계면에 있던 남북한 사회는 한편으로는 냉전기 미소 양진영의 체제 경쟁 덕분에 다른 한편으로는 스스로의 내적 역동성에 힘입어 상당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그리고 남북한 각 사회의 지배층 또한 자신들의 취약한 헤게모니로 인해 지속적으로 민중생활의 복지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만큼 분단체제의 유지는 냉전체제에만 의존하지 않으며, 그것의 형성 또한 냉전에 의한 것만도 아니다. 이런 체제에서 통일과 변혁(또는 개혁)은 우리가 떠안고 있는 두개의 과제가 아니라 분단체제 극복이라는 하나의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_ 김종엽, <분단체제와 87년체제> , p27/326


  김종엽의 <분단체제와 87년체제>는 백낙청이 제기한 '분단체제론'과 분단체제 상황 아래서 1987년 변곡점이후의 체제인 '87년체제'를 비교하고, 이들의 현대적 의미를 살펴보는 책이다. '세계체제-분단체제-남북측 사회'의 틀에서 분단상황을 바라보는 '분단체제'에서 1987년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저자는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으로 1987년 이전과 이후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특징이 있었음을 지적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단순히 87년체제는 6월 민주화항쟁의 결과로만 해석될 수 없을 것이다. 


 87년체제라는 용어가 쓰이는 일차적인 이유는 우리 현재의 직접적 뿌리가 1987년 민주화 이행에 닿아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는 1987년이 우리 사회에서 전환점인 동시에 그 전환방식이 이후 우리 사회에 구조적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전환점으로서의 1987년은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으로 확인된다. 정치적으로 1987년은 권위주의체제의 종식과 형식적 민주주의의 제도화를 의미하며, 나아가서 이런 수준의 민주화로부터의 정치적 후퇴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 일종의 사회적 합의와 의지로 자리잡았다.  경제적으로 우리 사회는 박정희식의 발전체제에서 벗어났다... 사회문화적인 영역의 경우 정치나 경제 영역처럼 명확한 지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몇가지 사례를 통해 근본적인 전환을 확인할 수 있다. 1987년 이후 실질소득의 증가로 인한 대중소비사회로의 진입이 그런 예의 하나이다. _ 김종엽, <분단체제와 87년체제> , p86/326


 이렇게 탄생한 1987년 6공화국의 헌법. 저자는 87년체제를 분단체제에서 '변화된 형식'으로 파악한다. 87년 체제에서 바뀌어진 형식은 더 많은 기회를 열어주었으나, 내용적인 변화까지 가져오지는 못했기에 분단체제의 수호세력들과 87년체제 수호세력들은 적대적 공생(共生)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87년체제를 절차적민주주의 또는 게임규칙을 확립하는 측면에서 본다면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87년체제가 체제 수립 후 30년이 흐르면서 다원화된 사회의 요구를 수용했다 보기에는 내용적으로 부족함이 많았기에, 87년체제에 대한 개헌(改憲)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 


 87년체제는 모든 사회세력에게 경쟁할 기회를 제공하는 형식적 틀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체제의 고삐를 쥘지 미리 말할 수 없다. 오직 형식에 의해 열린 공간을 더 잘 활용하는 쪽에 손을 들어준다. 분단체제는 적과 동지를 구별한다. 그렇기 때문에 체제의 고삐를 누가 쥐어야 하는지 미리 정해져 있다. 그것은 분단체제의 이편에 선 자이며, 그렇게 이편에 선 자가 이편이 누구에 속하는지도 정한다. 그렇게 구성된 분단체제의 이편에 선 자들은 스스로에게 발부한 면책특권을 가지고 저편에 있는 사람에게 공격성을 풀어놓는다. 그러므로 87년체제가 제안하는 우정의 정치와 분단체제가 제기하는 적대의 정치는 비대칭적이다. 분단체제를 수호하는 행위가 87년체제의 수호자에게는 '점진쿠데타'이고, 87년체제를 지키는 행위가 분단체제의 수호자에게는 체제전복 행위이다. 그런데도 87년체제를 지키는 자는 자신을 적이라고 부르는 분단체제의 수호자를 친구라고 부르며 그를 우정의 정치로 초대해야 한다. 랑시에르는 상상도 해보지 못한 거대한 규모의 '불화'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_ 김종엽, <분단체제와 87년체제> , p23/326


 87년체제의 틀은 분단체제와 87년체제 수호세력들의 적대적 공생의 장(場)이 되어버렸다. 정치적으로는 '공산주의',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라는 구호는 진영결집의 이데올로기가 되버렸고, 이들 아래에서 다양한 목소리들은 묻힐 수밖에 없었다. 이런점에서 본다면, 87년체제는 분단체제를 대체하는 새로운 체제가 아닌 분단 상황하의 과점상태이며, 한계점을 노출한 체제라 할 것이다.   


 민주화와 87년체제의 수립이 분단체제를 지양한 것은 아니었다. 87년체제는 다만 분단체제로부터 발원하는 보수파와 민주파의 대립을 민주적으로 제정된 절차안으로 밀어넣을 뿐이다... 그들은 내용의 힘으로 형식을 붕괴시키려 하고 있다. 그것이 그렇게 간단치는 않을 것이다. 후기구조주의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표는 기의를 능가하낟. 즉 형식이 내용을 제어하고 전치할 수 있는 것이다. 분단체제를 재안정화하려는 시도는 분단체제가 더 깊게 동요하고 있음을 방증할 뿐이며, 87년 체제에서 제정된 절차의 힘을 폐기할 수 없을 것이다. _ 김종엽, <분단체제와 87년체제> , p243/326


 제20대 대선과정에서 선거제 개혁이 주요 논점이 되었던 점도 87년 체제의 한계와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5공화국에서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의 상당 부분을 6공화국에서는 의회로 넘겼지만, 이는 권력의 독점(獨占)을 과점(寡占)상태로 바꾸는 것에 불과했고, 그나마 1990년 삼당 합당(三黨 合黨)으로 인해 과점 상태는 양분상태로 변화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는 과거 역사를 돌이켜본다면, 실제 형식의 틀은 87년체제보다 더 악화된 90년체제에서 크게 바뀌지 못한 듯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20대 대선 결과는 앞으로의 전망을 더 어둡게 만들었다.


 보수파와 자유파 간의 타협에 의해 제정된 1987년 헌법 또한 상황을 악화시켰다. 개헌에 참여한 두 세력은 어느 쪽 후보가 당선될지 불확실한 대통령의 권한은 약화시키고, 자신들이 일정한 지분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 의회권력은 강화했다. 민주화 이후 의회권력은 시민사회를 지역주의적으로 분할하는 데 성공하기만 하면 각 세력이 분점하는 것이 가능했다. 결과적으로 국가권력을 손에 쥔 집단은 언제나 규율하기 어려운 사회세력, 그리고 다루기 어렵거나 대통령의 권한을 상당 정도 무력화할 수 있는 의회권력에 직면했다. _ 김종엽, <분단체제와 87년체제> , p106/326


 모두가 알 듯이 87년체제하에서 선거법의 근간은 단순다수제에 의한 소선구제이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모두 그렇게 선출된다. 이런 식의 선거에서는 불가피하게 승자독식이 일어나고 낙선자들이 받은 표는 무가치해진다. 승자독식이나 표의 부등가성 같은 문제를 전면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헌이 필요할 것이다. 사실 대통령제는 승자독식을 본질로 하기 때문에 대통령제를 버리지 않는 한 이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p227)... 하지만 국회의원을 단순다수제 소선구제에 의해 선출하는 것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많은 문제제기가 있어왔다. 그것이 지역패권주의의 제도적 토대이며, 표의 등가성이나 사표 방지 같은 규범적 요구에서 크게 어긋나기 때문이다. 더구나 선거법개정은 개헌처럼 의회의 3분의 2나 국민의 과반수라는 높은 문턱을 넘을 필요도 없다. _ 김종엽, <분단체제와 87년체제> , p228/326


 이처럼 <분단체제와 87년체제>는 분단체제와 87년체제의 관계를 다룬다. 세계체제의 하위구조로서 분단체제안에서 87년체제는 남한사회의 체제를 말한다는 점에서 87년체제는 분단체제의 하위구조다. 동시에, 분단체제로 회귀하려는 세력과 87년체제의 수호하려는 세결들의 대결장이기도 하며, 87년 이후 사회과제를 충분히 담아내지는 못한다는 한계로 인해 이제는 극복해야 할 형식적 틀이기도 하다. 


 저자는 글의 마지막에 촛불혁명을 말한다. 이것은 아마도 87년체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힘으로서 촛불혁명과 정신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5년 동안 촛불은 그 갈 길을 찾지 못했고, 이제 다시 분단체제 회귀세력이 절차적 민주주의를 통해 과거의 질서로 회귀하려하고, 아직 분단체제 수호세력과 87년체제 수호세력이 있는 상황에서 촛불정신은 어디로 향해야 할 것인가...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다. 


 일단 항쟁 레퍼토리에 편입되자 촛불이 가진 레퍼토리로서의 자질은 탁월한 것으로 드러났다. 촛불은 아름다움, 고요함, 밝음, 빛으로 전환되며 소멸해가는 물질의 '희생', 바람에 일렁이지만 쉽게 꺼지지 않는 힘, 작은 것의 아름다움, 작고 힘없는 것들이 모여 이루는 거대한 빛의 일렁임 같은 풍부한 의미와 물질적 상상력을 유도하며, 그런 의미에서 고유한 미학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그런 미학은 정서적 정화를 경유해서 어떤 행동 규율 내지 윤리학에까지 이른다. 촛불이라는 집회 도구 자체가 참여자는 물론이고 그것을 바라보는 관찰자 그리고 그들을 통제하려는 이들에게까지 행동을 평화화(pacification)하는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_ 김종엽, <분단체제와 87년체제> , p304/382


이렇게 집권세력의 도덕적 위기와 민주화 이전 체제로부터 연원하는 구습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문화의 위협성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 사회가 심층적인 도덕적 퇴행을 겪을 위험을 낮게 평가할 수는 없다. 어쩌면 현재 일어난 공적 문화의 퇴락은 부분일식에 그치지 않고 개기일식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_ p141/326 - P141

87년체제를 통해서 이 세 정파 간의 갈등은 지속되었고 때로 격렬하기도 했지만, 관찰자 시점에서 보면 상당한 수렴이 발생했다. 앞서 지적한 세 차원 가운데 사태 차원에서는 이견이 지속되었어도 사회 차원에서는 대중정당론이 지배성을 획득했으며, 혁명적 정세가 세계사적으로 소멸함에 따라 시간 차원에서도 ‘임박한 과제‘ 대신 ‘선거 주기‘가 들어섰다. 하지만 오래된 습속으로 인해 그렇게 수립된 대중정당 자체를 ‘패권주의적‘으로 장악하려는 시도는 계속되었으며, 그런 시도는 진리의 정치에서 발원하는 독단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_ p226/326 -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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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변동과정에 대한 평가와 별도로, 2007년 현재 널리 퍼져 있는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진단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병행 발전이 한계에 직면해가고 있으며, 경제적 민주화의 진전 없는 민주주의의 진전은 절반의 민주화일 뿐 아니라 그로 인해 성취된 정치적·사회적 민주화조차 밑에서부터 잠식될 수 있음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파와 자유파 간의 타협에 의해 제정된 1987년 헌법 또한 상황을 악화시켰다. 개헌에 참여한 두 세력은 어느 쪽 후보가 당선될지 불확실한 대통령의 권한은 약화시키고, 자신들이 일정한 지분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 의회권력은 강화했다. 민주화 이후 의회권력은 시민사회를 지역주의적으로 분할하는 데 성공하기만 하면 각 세력이 분점하는 것이 가능했다. 결과적으로 국가권력을 손에 쥔 집단은 언제나 규율하기 어려운 사회세력, 그리고 다루기 어렵거나 대통령의 권한을 상당 정도 무력화할 수 있는 의회권력에 직면했다.

촛불항쟁은 사회적 합의도가 매우 높았을 뿐 아니라 유례없이 대규모 동원을 이끌어낸 운동이다. 그렇게 된 것은, 민주화된 삶의 경험이 축적되어 국가의 물리적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고 더불어 참여비용이 아주 낮아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정부와 정면으로 대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 도심 한복판을 자유롭고 평화롭게 차지하는 대규모 대중동원이 가능했다. 이렇게 대규모 대중집회가 지속됨에 따라 참여자의 구성은 거의 전 사회 성원을 포괄할 정도로 확장되었다.

이런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압력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양 날개를 펴야 한다. 하나의 날개는 국민국가가 더욱 민주적이고 국민적일 것을 요구하는 투쟁이며, 다른 하나는 자본의 지구화에 대응하는 시민사회의 지구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권위주의적 정부의 전복은 통상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를 따른다. 먼저 광범위하게 축적된 불만이 존재한다. 정당성을 결여한 정부는 통상 경제적 수행성을 통해서 이 불만을 극복하려고 하지만 그것에 실패한다. 그런 과정에서 특정한 의제를 중심으로 불만이 조직된다. 조직된 불만이 항의와 집회로 발전하고, 이로 인해 정부와 대중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발생한다. 정부의 무리한 진압은 대중의 투쟁을 더욱 고양하고, 이제 정부는 유화책을 시도한다. 하지만 이번엔 너무 많은 양보가 두려워 너무 적게 양보하려고 한다. 실망한 대중의 투쟁은 더 격화되고 전면화된다. 이렇게 투쟁에 나선 대중 앞에서 경찰과 군대는 자신의 친지와 이웃이 어른거림을 발견한다. 진압명령이 작동하지 않고 권위주의 정부는 급격히 몰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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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치러진 19대 대통령선거를 이전 선거와 대조해보자. 2002년 16대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는 "이회창 후보와 노무현 후보의 차이가 ‘샛강’이라면, 노무현 후보와 저 권영길의 차이는 ‘한강’입니다"라고 열변을 토했고, 민주당 편에서는 민주노동당에 투표하는 것은 사표라고 노골적으로 선전했다. 또 2007년 17대 대통령선거 때는 이명박 후보의 당선도 정상적인 정권교체이며 그의 당선이 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져올 것이라는 것은 민주당에 의한 ‘두려움의 동원’일 뿐이며, 남북관계는 보수 후보가 당선되어도 후퇴할 일이 없다고 말했던 많은 진보 지식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민주당의 몰락을 진보정당 약진의 기회로 생각했다. 하지만 2017년 대선에서 정의당과 더불어민주당 사이에는 상호 존중이 이루어졌고 갈등과 잡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내가 보기엔 최소화되었다. 두 당은 동반상승을 시도했고 그것만이 가능한 길임을 잘 알고 있었다.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은 국민국가 문제를 다룬 저서에서 중국, 한국 그리고 일본을 두고 "종족이라는 면에서 거의 또는 완전히 동질적인 인구로 구성된 역사적 국가의 극히 희귀한 사례"1라고 말한다. 그런데 한·중·일 가운데서도 이런 동질성이 가장 높은 나라는 한국이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한반도 주민이 국민국가를 형성하기에 지구상에서 가장 좋은 종족적 토대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런 우리가 70여년 동안 반으로 갈라져 통상적인 국민국가와는 전연 다른 국가 형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례는 국민국가에 대한 모든 논의를 한계까지 몰아간다고 할 수 있다.

시가 의미를 혁신한다면, 개념은 이런 의미를 응축하고 총괄한다. 예컨대 헤겔(G. Hegel)의 ‘인정투쟁’, 맑스(K. Marx)의 ‘잉여가치’, 뒤르켐(E. Durkheim)의 ‘연대’, 베버(M. Weber)의 ‘카리스마’ 같은 개념은 수많은 의미를 불러 모아 응축하고 있으며 사유를 새롭게 전개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생성된 새로운 의미를 다시 총괄할 수 있는 거점이 된다. 의미의 장을 형성하는 힘을 가진 말, 그것이 개념인 것이다.

요컨대 분단체제론이 구성하는 개념적 단위들인 근대성?세계체제?(동아시아)?분단체제?남북한 사회 등의 연계는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이론적 쟁점들을 포함하고 있다. 분단체제론으로서는 이런 연계를 더 이론적으로 충실하게 해야 하는 동시에 그 과정에서 더 개방적으로 다양한 이론과 논쟁하고 교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런 논쟁의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적 역량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분단체제론은 분단이 한반도 주민의 삶에 가한 근본적 제약에 주목해왔다. 이 제약은 지정학적이거나 지경학적인 제약처럼 객관적인 것에 머무르지 않고 주관성 안으로 범람해 들어온다. 그렇게 해서 주관화된 제약은 우리의 선호체계에도 관철된다. 이렇게 사회의 구조적 제약의 영향 아래에서 선호가 그것에 맞추어 변경된 경우를 "적응적 선호"(adaptational preference)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분단체제론은 해방 후 한반도에 수립된 두개의 국가인 한국과 북조선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하나의 체제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이렇게 보면 한국사회는 분단체제의 하위체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상위체제인 분단체제와 하위체제인 한국사회가 어떤 관계를 갖는 것일까? 상위체제가 하위체제에 대해 갖는 결정력은 하위체제가 상위체제에 대해 갖는 결정력보다 큰 법이다. 하지만 상위체제의 결정이 하위체제의 구체적 형태를 세세하게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상위체제는 하위체제의 가능한 형태와 불가능한 형태의 경계를 확정한다고 할 수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한정(limitation)한다고 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87년체제론이 현재 우리 사회의 상황, 그것이 신자유주의적 체제 재편이든, 민주주의의 위기이든, 6·15공동선언 이후 형성된 분단체제의 형태 변화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든, 이런 상황을 체계적으로 조망할 능력을 입증하는 것일 터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 나는 87년체제의 궤적을 스케치해보고자 한다. 불가피하게 축약적일 이 논의가 자임한 과제를 감당하기는 역부족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당면한 문제들, 특히 2007년 봄 내내 진행된 ‘진보논쟁’에서 드러난 몇가지 편향에 대해 비판적 논평을 제기할 수는 있을 것이다.

촛불항쟁과 관련해서는 특히 정보통신기술의 활용에서 나타나는 여성의 능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뒤에 좀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촛불항쟁처럼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거의 일체화되다시피 하는 항쟁에서는 특정 집단의 동원 맥락을 규정하는 데 중요한 것이 정보통신기술의 활용능력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정보통신기술 활용, 예컨대 휴대전화나 인터넷의 활용은 양적으로 남성에게 별로 뒤지지 않을뿐더러 질적으로는 더 농밀하다. 남성들은 정보통신매체에 도구적 태도를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여성들은 그것을 친밀성의 소통매체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예로 든다면,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동호회 활동에 훨씬 열심히 참여할 뿐 아니라 더 내밀하게 교류한다. 촛불항쟁을 통해서 ‘82cook’이나 ‘소울드레서’ 같은 여성 중심의 인터넷 동호회들이 보인 정치적 활동성은 단지 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이 먹을거리라는 좀더 여성적 의제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이 보여준 것은 축적된 문화적 능력, 즉 긴밀하게 소통하고 연대하는 능력이 정치적 자기계몽과 결합할 때 어느 정도로 힘을 발휘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87년체제를 통해서 개혁진영은 보수적 헤게모니에 굴복하여 ‘극복 없는 적응’에 경사될 때가 많았고, 진보진영은 ‘적응 없는 극복’을 외쳤을 뿐이다. 그 결과 대중을 극복 없는 적응의 길로 내몰았다. 이 궁지에서 벗어나 극복/적응의 이중과제를 구현하는 제도적 비전을 마련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대중이 모순적이고 갈등적인 이 체제와 그 체제의 환경에서 적응하면서 극복하는 길, 극복을 성취하는 적응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면, 촛불항쟁은 지금 그렇듯이 87년체제의 보수적 재편에 제동을 거는 것에서 더 나아가, 87년체제를 민주적으로 재편함으로써 긴 교착의 상태를 끝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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