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아퀴나스 새길에큐메니칼문고 4
박승찬 지음 / 도서출판 새길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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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아퀴나스>는 13세기 중반 스콜라 철학 융성의 배경, 토마스 아퀴나스의 생애와 사상에 대해 간략하게 다룬 요약서다. 저자인 박승찬 교수는 스콜라 철학과 토마스 아퀴나스에 대해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 책 자체가 120페이지 남짓의 요약서인 관계로 빠르게 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 상세하게 설명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 존재 증명' 다섯 가지 길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신 존재 증명 전에 중세 초기 기독교 철학자였던 아우구스티누스와 스콜라 철학 전성기 철학자 아퀴나스 철학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모든 진리는 신의 '은총의 빛'을 통해 조명될 때 비로소 발견된다고 주장한다. 세상 모든 것을 형이상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은 '이데아'를 강조하는 플라톤의 사상, 특히 신플라톤주의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이에 반해,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을 시작하면서 철학(과 기타 인문과학)과 신학의 영역을 구분한다. (p51) 아퀴나스에게 '신학'은 아우구스티누스처럼 '은총의 빛'에 의존하지만, '철학'은 '이성의 빛'에 의존하는 것이며 경험적인 것과 통한다. 또한, 아퀴나스에 따르면 신학과 철학은 각각 고유의 영역이 있고 아퀴나스의 철학은 신학 내에서 양자의 조화를 지향한다.


"신이 주는 은총은 피조물들이 지니고 있는 본성을 말살시키는 것이 아니라 완성시키는 것이다. (Gratia non tollit naturam, sed perficit.)" (p52)


 '신 존재 증명' - 다섯 가지 길- 은 <신학대전> 제1부, 제 2문제, 제3절에서 다루어진다. 


1) 첫 번째 길 : 운동들의 원인


(1) 이 세계 안에는 어떤 것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확실하며 또 그 사실은 감각으로 확인된다. (2-A) 그런데 움직이는 모든 것은 다른 것한테서 움직여진다. (2-Ba) 그러므로 어떤 것이 그것에 의해 움직이게 되는 그것이 움직인다면 그것 또한 다른 것한테서 움직여져야 하며 그것은 또 다른 것한테서 움직여져야 한다. (2-Bb) 그런데 이렇게 무한히 소급해갈 수는 없다. (3) 우리는 다른 어떤 것한테도 움직여지지 않지만, 첫 움직이게 하는 자(제1동자)에 필연적으로 도달하게 된다. 모든 사람이 이를 '신(神)'이라고 이해한다.


박승찬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z-> Y -> X .....-> ....(무한히 갈 수 없기 때문에 A가 올 수 밖에없다.) A : 우리는 신이라고 이해하는 존재 (p56)라고 요약될 수 있다.


2) 두 번째 길 : 능동인의 질서


(1) 우리는 이 세계안에서 아버지가 아들의 원인이 되고 할아버지가 아버지의 원인이 되는 것과 같은 수많은 능동인 질서를 경험한다. 그 아들이 자신이 존재하고 싶어서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닌 것처럼 (2-A) 이런 세계에서 어떤 것이 자기 자신의 능동인으로 발견되지도 않으며 또 그런 것은 가능하지도 않다. (2-B) 그런데 능동인들에 있어서 무한히 소급할 수는 없다. (3)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제1능동인을 인정해야 하며, (3') 이런 존재를 모든 사람들은 신이라 부른다. 


3) 세 번째 길 : 자체 필연유


(1) 우리가 사물 세계에서 존재할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생성소멸하는 것을 발견한다. (偶然有) 모든 것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면 어떤 때에는 사물계에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만일 이 세계가 모두 우연유로만 이루어졌다고 가정하면, 어떤 것도 존재하기를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에, 모든 존재자는 필연적인 것이 있어야 한다. (2) 그런데 모든 필연적인 것들은 자기 필연성의 원인을 다른 데에 갖거나 갖지 않을 것이다. (2') 그런데 그 필연성의 원인을 다른 데에서 갖는 필연적인 것들의 계열에 있어서 무한히 소급될 수는 없는 것이다. (능동인의 경우에서 증명) (3) 따라서, 우리는 자기 필연성의 원인을 다른 데에 갖지 않고 다른 것들에게 필연성의 원인이 되는 어떤 것, 즉 '그 자체로 필연적인 어떤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이 자체 필연유를 우리는 신이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부터 세 번째 길까지는 유대 철학자 마이모니데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우주론적인 증명'이라고도 한다. 우주론적인 증명의 특징은 경험적 사실에서 출발하되, 이러한 사실의 원인을 찾아서 윗단계로 올라간다. 그리고, 위로 올라가는 것이 무한히 계속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의 근원이 되는 '하나의 원인'을 만나게 되고, 사람들은 이 존재를 '신(神)'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첫 번째 길에서 세 번째 길까지 논의는 일종의 '무한급수' 설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일상 경험에서 출발하여 결국 '신(神)의 존재'에 수렴한다는 논리 구성으로, '신'의 존재가 이미 기반에 깔려 있는 증명이다. 우리의 인식 저편으로 무한히 넘어가는 영역에 신이 있다는 아퀴나스의 우주론적인 증명은 중세(中世)가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논리적으로 보여지지 않는다. 


4) 네 번째 길 : 최고 완전자 존재(안셀무스 <모놀로기온>, 신플라톤주의)


(1) 우선 선함과 참함과 같은 (초월적) 속성들을 지니고 있는 사물들이 최고도로 있는 어떤 것에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확정한다. 이것과의 멀거나 가까운 정도에 따라서 그 속성들이 지니는 단계가 결정되는 것이다. 이 최고의 것은 바로 그 속성들이 최고로 높은 단계로 그것에 속하는 존재자이고 그 자체로 가장 높은 존재로 존재하는 것이다. (신플라톤주의, 유출설) (2) 그 다음에 그 최고도의 것이 자기에게 연관을 맺고 있는 속성들, 그러므로 그 존재의 측면에서 그 사물의 원인이다. (3) 결론적으로 그 최고도의 것이 세상 사물들의 최고의 존재 원인으로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신이라고 부른다. 


네 번째 길은 아퀴나스가 비판한 안셀무스의 '신 존재 증명'의 방식을 빌려온 것이며, 신플라톤주의의 위계질서에 근거한 것이다. 안셀무스의 '신 존재 증명'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신은 그보다 더 큰 것이 상상될 수 없는 존재다.(가장 큰 존재다.)

2. 이런 신의 개념은 인간의 지성 속에 존재한다. (즉, 그런 개념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다.)

3. 신이 실재가 아닌 마음 속에만 존재한다고 가정하자.

4. 그것은 마음 속에 한정된 신보다 더 큰 개념이므로, 그보다 더 큰 것이 상상될 수 없는 존재라는 신의 정의에 모순된다.

5. 따라서 신은 실제로 존재한다. (출처 : 위키피디아)


네 번째 길은 사물들에 내재되어 있는 특정 속성에서 출발한 논증이라고 하지만, 신플라톤주의의 영향과 안셀무스 증명방식을 활용하고, '신의 속성은 완전성을 포함한다'는 기독교의 신앙을 기반으로 한 증명이다.


5) 다섯 번쨰 길 : 우주 안에서의 질서


(1) 우리는 이성에 의해서 목적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자체에는 이성이 결여된 사물들이 목적에 알맞게 행동하고 있는 것을 경험한다. (2) 그런데 인식을 갖지 않는 것들은 인식하며 꺠닫는 어떤 존재에 의해 지휘되지 않으면 목적을 지향할 수가 없다. (3) 그러므로 모든 자연적 사물들을 목적에로 질서 지어주는 어떤 이성적 존재가 있다. (3') 이런 존재를 우리는 신이라고 부른다. 


다섯 번째 길은 세상 만물이 '목적' 이 있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진 논증으로, 이 세상이 '우연의 결과'로 이루어졌다는 이들(리처드 도킨스 등 진화론자)에게 특히 공격받고 있는 논증이다. 아퀴나스의 증명 중 네 번째 길과 다섯 번째 길에서는 모든 것의 '원인'과 '목적'이 언급이 된다. 이 부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4가지 원인 (질료인, 형상인, 운동인, 목적인)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 논증으로 알려져 있다. 


아퀴나스의 신 존재 증명을 살펴보면 다섯 가지 길의 증명은 기본 전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중세에 받아들여진 기본 전제 중 하나는 '세계가 조화롭게 이루어져(창조되어) 있으며, [원인- 목적]의 관계로 형성되어 있다.'는 전제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전제 위에 '다섯 가지 길'은 유신론자에게는 아름다운 신앙고백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무신론자들에게는 말도 안되는 궤변으로 인식되는 것이라 생각된다.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참조) 

 개인적으로는 아퀴나스의 '신 존재 증명'이 '신앙의 빛'과 '이성의 빛'의 조화를 추구한 아퀴나스의 노력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그 논리가 객관성이 부족하여 철학사적 의의는 거의 없는 논증으로 여겨진다. 이 논증의 의의를 찾자면 당대 스콜라 철학자들의 인식구조를 파악하는 정도가 적정하다고 판단된다.


<토마스 아퀴나스>에서는 '다섯 가지 길'을 다른 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위와 같은 다섯 가지 길 이외에도 <신학대전>에 나타난 아퀴나스의 인간관과 윤리학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비잔틴제국 유스티아누스 황제의 아카데미아 폐쇄 이후 유럽에서 사라졌던 아리스토텔레스였다.  <신학대전>에서 사라졌던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떻게 중세인들에게 받아들여졌는지 간략하게 알고 싶은 이들에게 <토마스 아퀴나스>는 유용한 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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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0 15: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10 15: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10 16: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10 16: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6-10-10 2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이 논리로 증명될 수 있다고 방향 잡은 중세인들 사고 방식과 계기가 더 궁금해집니다. ^^

겨울호랑이 2016-10-11 04:10   좋아요 0 | URL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처럼 지금 우리들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네요.. 한편으로는 그만큼 신의 존재를 확신한 것 같기도 하구요..여러 면에서 현대인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 아퀴나스 : 신앙과 이성사이에서 지식인마을 26
신재식 지음 / 김영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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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그리스도교 교리를 정립한 아우구스티누스와 중세 스콜라 철학을 대표하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을 살펴보는 입문서.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신앙과 이성과의 관계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앙은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앙은 '믿기 위해 이해한다.' 로 요약된다. 이러한 관계의 연장 선상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라톤 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은 반면,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우구스티누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아 그 사상 체계를 정립하는 것으로 정리된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기초 위에 두 사상가의 신앙을 정리한다. 이 책에서 다루는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우구스티누스 편에는  플라톤 사상의 영향, 아우구스티누스의 조명론, 삼위일체론, 마니교와 펠라기우스주의와의 대립 등과 관련한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 편에서는  아퀴나스와 아우구스티누스 철학의 차이,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수용, 안셀무스와 아퀴나스의 하느님 존재 증명(하느님 존재 증명의 다섯 가지 길) 등이 소개되어 있다.

 

두 사상가의 주요 핵심이 잘 소개되어 있어, 이를 바탕으로 이해를 심화시키면 좋을 것이라 생각된다. 다만, 내가 가진 책의 출판년도가 2008년으로 되어 있어, 이후 출판된 좋은 저서에 대한 소개가 빠진 점은 다소 아쉽게 생각된다. 그렇지만, 이 부분은 '깊이 읽기'에 소개된 서적의 참고 문헌과 서평을 참고해서 읽는 것을 통해 그리스도교에 대한 이해를 심화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게 되는 점이 하나 있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은 당대에 충격을 주었지만 바로 수용되지 못했다. 오히려, 그는 죽은 지 1년이 지난 1275년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하게 되는 등 이단시 되었다. 그러다가, 1375년 복권되고 현재는 가톨릭 신학의 주류로 인정받게 된다. 결국, 신학 교리도 끊임없이 변화되어 온 것이다.

 

신앙은 개인의 믿음의 문제지만 이처럼 사회의 발전에 따라 변화되고(비록, 수용속도가 느릴지라도) 있다는 것을 볼 때, 새로운 문제제기에 대해 신앙인들의 열린 자세가 필요한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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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6-09-03 11: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늘 올려주시는 리뷰 잘 보고있습니다.^^
리뷰 잘 쓰시는 분들 너무 부러워요.
맛있는 점심 드시고 행복한 주말 되세요.^^
고맙습니다.^^

겨울호랑이 2016-09-03 11:50   좋아요 1 | URL
후애님 부족한 글 잘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도 후애님께서 유쾌하고 밝게 쓰신 리뷰를 보면 많이 감탄합니다. 또 후애님의 다른 글처럼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는 리뷰를 보면서 유용한 정보와 함께 과제를 부여받는(?) 학생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항상 넓은 세상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후애님^^ 즐거운 오후 되세요
 
자유의지론 교부문헌총서 10
아우구스티누스 지음, 성염 옮김 / 분도출판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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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지론>은 아우구스띠누스와 에보디우스간 '악의 근원은 무엇인가', '자유의지란 무엇인가' 등의 주제에 대해 대화 형식으로 진행된 작품으로 전체 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은 전체 450 페이지에 달하지만, 사람의 능력에 따라 유효 페이지는 달라진다.

라틴어를 독해하실 수 있는 분은 유효 페이지가 450페이지이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225페이지만 읽어도 된다.(그럴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배경과 기본 철학에 대한 사전 이해가 없다면 읽기가 쉽지 않은데, 저자 성 염 교수의 '해제'가 <자유의지론>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전체3권의 내용을 통해 아우구스띠누스는 죄악의 원천은 인간의 '자유의지'이며, 자유의지의 올바른 사용은 최고선(最高善)인 하느님으로의 지향인 반면, 잘못 사용할 경우에는 물리악을 당하게 됨을 말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결과는 모두 인간의 책임이며, 선하신 하느님의 책임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왜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주어져서 죄악으로 떨어지도록 만드셨는가?' 에 대한 질문에 자유의지는 '중간선'으로 선(善)으로 갈 수도, 악(惡)으로 갈 수도 있는 선택지라는 대답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자유의지론> 3권에서는 이 외에도 '영혼의 기원', '어린이의 고통과 죽음', '짐승들의 고통', '첫 인간의 범죄와 구원'에 관하여 포괄적인 논의를 하고 있는데, '자유의지'와 '악' 초점을 맞추어 정리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정리한 내용은 성 염 교수의 "해제" 부분을 주로 활용하였다.)


 
제1권 인간과 자유의지


1권에서 하느님이 악(惡)의 장본인인가?(1.1)에 대한 질문에 대해 아우구스띠누스는 악의 조성자가 하느님이 아니며, 악이란 이성이 욕정에 굴종하는 것으로, 자유의지가 죄악의 원천이라는 주장을 한다. 

아우구스띠누스는 악(惡)을 2종류의 악, 즉 우리가 행하는 악(윤리악)과 우리가 당하는 악(물리악)으로 구분한다. 이 중에서 윤리악만이 고유한 악이고, 물리악은 윤리악의 결과로서, 물리악은 윤리악의 결과라는 사실을 주장한다. 
또한, 윤리악은 인간이 학습되거나 모방되는 사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주장(1.10.20; 3.14.39) 하고, 하느님은 선하고 정의로운 존재이기 때문에 하느님 역시 악의 조성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악의 본질은 무엇인가? quid sit malum

악한 행위를 규정하는 요소로서 정욕(精慾)과 법률(法律)이 제기되면서, 구체적으로 간통, 살인, 신성모독 등의 행위를 통해 욕정(libido)가 악행의 모든 영역을 장악하고 있는 뿌리임이 드러난다.(1.3.8)  욕정은 '탓할 만한 정욕', 또는 '자기 의사에 반하여 빼앗길 수 있는 것에 대한 사랑'으로 정의 된다.  또한, 아우구스띠누스는 영원법 개념을 도입하면서 '영원법은 불변하고 정당하다'(1.6.15)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인간과 영원법을 연관시키면서 '현명한 인간(sapiens)'은 '질서있는 인간(ordinatus)'이라는 도식을 확립한다. 정욕은 이성의 지배를, 이성은 그보다 상위에 있는 존재의 지배를 받는 것이 '존재론상의 위계'에 부합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욕에의 굴종'은 영혼에 대한 죄벌이 된다.

'모든 인간은 행복해지기를 원하면서 행복해지려는 욕구만 있지 그것을 옳게 달성할 의지가 모두에게 있는가?' 하는 부분은 의심스러우므로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고 올바로 그것을 바라고 달성할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요구된다.(1.14.30) 그리고, 의지가 바로 '자유의지'가 된다. 

사람에게 있어서 진정한 자유는 바로 영원법에 종속하는 것이며(1.15.31) 이것은 선한 의지의 사용을 통해서 가능하게 된다.


제2권 하느님과 인간의 자유의지


그렇다면, 하느님은 왜 인간들에게 의지의 자유 선택을 부여하였는가?(2.1.1) 


여기에 대해 아우구스띠누스는 하느님은 존재하시며, 모든 선은 하느님으로부터 나온다는 것과 의지 또한 선이라는 내용의 답을 한다.

아우구스띠누스는 "진리로부터의 신존재 증명(argumentum ex vertiatibus aeternis)"을 통해 신을 증명한다. 여기서 아우구스띠누스는 내적 감관이 외적 감관을판단하기 때문에 내적 감관이 우월하며, 이성은 내적 감관보다 더 우월한 것임을 입증한다. 그러나, 이성은 가변적인 것이기 때문에, 영원하고 불변하는 상위의 존재가 있으며, 이 존재가 '하느님' 이라고 논리를 편다.

결국 인간이 추구하는 근원적 진리가 최고선이자, 인간을 궁극적으로 행복하게 하는 최고선 즉 하느님이라는 결론을 아우구스띠누스는 내린다. 이에 따라, 모든 선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며, 형상을 지닌 모든 존재는 선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2.17.46)

2권에서 마지막으로 아우구스띠누스는 자유의지란 그것 없이는 아무도 선한 일을 못하는 능력이므로, 분명히 선이지만 중간선(선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악용할 수 있는 선)이라고 주장한다. (2.18.50) 그리고, 인간의 의지는 불변의 선을 등질 수도 잇고 하위에 있는 선을 선택하는 것에서 인간의 죄악이 발생하게 된다.


제3권 자유의지는 인간의 선으로서 하느님께로부터 유래했다


아우구스띠누스는 하느님이 완전하시므로 모든 것을 예지하시지만, 미리 예지하시는 바와는 달리 무엇이 일어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우리 의지를 예지하신다고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자유의지로 예지하시기 때문에, 그 예지가 (인간의) 원하거나 원치 않는 의지를 박탈하지는 않게 된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예지와 하느님의 정의를 어떻게 상합하는가?


여기에 대해 아우구스띠누스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우리 영혼은 비록 죄악으로 시드는 일이 있더라도, 저 가시적 빛으로 환원될 수 있는 그 무엇보다도 훨씬 숭고하고 훨씬 더 선하다... 그래서 죄짓는 영혼을 비록 질책하기는 하지만 그것 때문에 그런 영혼들은 차라리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으리라고 중얼거릴 정도로 심한 동요를 느끼지는 않는다. '(3.5.12)

결함(vitium)이라는 것은 결함이 있는 바로 그 사물의 자연본성에 배치된다는 뜻에서가 아니면 어느 면에서도 악이 아니기 때문에(3.14.41), 결함 자체가 질책을 받을 만한 것이 아니게 된다.(3.15.42) 결론적으로, 인간의 죄악은 창조주 하느님께 돌리는 일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참말임을 에보디우스의 말을 통해 이야기된다.(3.16.46)

그리고, 자유 의지의 선택의 결과 '사람이 무엇을 해야 올바로 행함인 줄은 알고 그렇게 하기를 원하면서도 정작 그렇게 할 능력이 없다면' 그 결과는 '인간의 단죄(1권에서 말한 물리악)'으로 나타나게 된다.


<자유의지론>에서는 플라톤의 사상적 영향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플라톤이 <국가>에서 강조한 지혜, 정의, 용기, 절제가 <자유의지론>에서도 선한 의지를 갖춘 사람이 지녀야할 덕목으로 강조된다. 그리고, 이성보다 우월한 존재(하느님)을 증명하는데 있어, '수(數)의 진리'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수학을 중요시한 플라톤의 영향을 확인 할 수 있다. 그외에도, 욕정과 이성, 그리고 최고선과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있어서는 '신(新)플라톤주의(플로티누스)의 유출설' 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는 등 어느 정도 플라톤 사상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후대의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은 사상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니,  이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플라톤 : 아우구스띠누스=아리스토텔레스 : 토마스 아퀴나스'


<자유의지론>은 기본 전제가 '하느님은 선(善)하다.'라는 내용이며, 최고선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기초위에 출발한다. 증명의 '마지막 2%'라고 생각되는 이 부분은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공감받을 수 있겠지만,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은 그 내용에 대해 쉽게 공감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된다. 이 부분이 <자유의지론>의 논리적 한계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러한 논리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책 <자유의지론>은 초기 기독교에 있어서 마니교의 '선악이원론'의 논리에 대항하여 초기 기독교 교리를 확립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역사적 사실과 '자유의지'를 인간의 구성적 능력으로 간주했다는 철학적 측면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이 교부(아우구스띠누스)의 인식론에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은, 하느님에게 귀의하는 심정으로 믿고 그 다음에 그 믿음의 내용을 이해하는 방향이 정방향(正方向)이고, 사변적 이해에서 신앙으로 나아가는 것은 역방향(逆方向)이라는 입장이다.(p30)

(토론자) 양편 다 또는 과연 무엇이 진리에 더 상합한지 분명치 않은 모든 의문을 다룸에 있어 우리의 논증은 반드시 다음 사실에 귀결되도록 힘썼다. 즉, 그런 의견 중 어는 것이 참이든간에 반드시 하느님이 찬미받으실 분으로 믿겨지고 그런 분으로 드러나셔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의지론> 재론고 p429)

결함vitium이라는 것은 결함이 있는 바로 그 사물의 자연본성에 배치된다는 뜻에서가 아니면 어느 면에서도 악이 아니다.(3.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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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6-08-22 16: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라틴어 병기라니 사고싶네요.
리틴어 공부도 하고 싶거든요.
좋은 책 소개해주셔 감사합니다 ^^

겨울호랑이 2016-08-22 16:43   좋아요 1 | URL
^^: 시이소오님 멋지세요..라틴어도 도전 하시는 군요. 홧팅입니다!! 참고로 분도출판사에서 나온 ˝교부철학˝ 시리즈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도 라틴어 병기서적입니다^^

루쉰P 2016-08-23 0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옵 역시 대단하세요 요즘은 또 파스칼에 댕겨서 팡세를 읽고 있는데 ㅋ 파스칼이 바로 아우구스띠누스를 놓고 예수회와 격론을 벌였더라구요 양심예학이란 부분에 대해서요 ㅎ 그래서 아구스띠누스를 한번 읽고 싶다 생각했는데 이 글을 보니 진짜 천주교에 있어서 엄청난 분이라 생각 드네요 ㅋ

겨울호랑이 2016-08-23 09:4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루쉰P님
루쉰P님도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으시네요.ㅋ
아우구스띠누스는 초기 기독교에서 교회론과 개인의 은총/구원의 교리 수립에 큰 공헌을 한 교부(敎父)로 알려져 있습니다. 직접 읽으시면 더 많은 부분을 아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나와같다면 2016-08-23 16: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um lingae sanctae 거룩한 혀
mors et vita 죽음과 생명이
victimae 희생제물에게
laudes 찬미를 드려라
redemit 구했네
innocens 죄없으신..

mementomor
veritas lux mea

나와같다면 2016-08-23 16: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arpe diem 카르페 디엠 memento mori 메멘토 모리 amor fati 네 운명을 사랑하라 veritas vos libertas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라틴어는 사어지만 많은 언어들의 어원이라는 점.. 원어민이 존재하지 않아서 국적에 상관없이 누구나 후천적으로 배워야 한다는 매력

나와같다면 2016-08-23 16: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학때 라틴어를 배웠던 적이 있어요..
라틴어로 기도하는 강동원 보려고 영화 `검은 사제들` 보러 갔었다는 --;;

겨울호랑이 2016-08-23 16:31   좋아요 0 | URL
와~! 나와 같다면 님께서는 라틴어를 공부하셨군요.

알라디너 분들 중에서 강호에 숨은 실력자 분들이 많으세요

진정 멋지십니다.^^: 언어를 잘 하시는 분들 보면 부러워요..^^: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 금장본
200주년신약성서번역위원회 엮음 / 분도출판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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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에 대한 주석서

성경 본문에 대한 참신한 번역과 성경 전반에 대한 해설이 장점이면서도, 궁금한 구절에 대한 설명은 좀 아쉬운 부분이 있다.

기존의 번역서는 예수의 말씀을 명령문으로 번역하여 다소 강압적인 부분이 있었으나, 200주년 기념 성서에서는 완곡한 청유문의 형태로 되어 있다.

요한복음 10장 1절 구절이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의 정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신개역한글, 대한성서공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이에 반해 200주년 신약성서의 같은 구절번역은 다음과 같다.

˝진실히 진실히 당신들에게 말합니다. 양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들어가는 자는 도둑이요 강도입니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번역본은 친밀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개인적으로 예수께서 말씀하셨을 때 자신과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은 제자들에게 반말투로 말씀하신 것으로 보기 어렵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배경하에서 부드러운 청유형의 번역이 내게는 더 가슴에 와 닿았다. 뜻을 살린다는 측면에서는 200주년 성서주해의 번역이 더 좋았다.

신약성경 27권의 상세한 해설은 좋았다. 성경에 나타난 사상적, 집필 배경 등이 서술되어 이해를 쉽게 한다. 때론 본문보다 상세한 해설이 독자의 풍부한 이해를 돕는다. 다만, 궁금한 부분에 대한 해설은 오히려 간략해서 아쉬움이 있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10장 33절에서 ˝ `내가 너희를 신들이라 말했다` ...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들을 신들이라 말했고..˝라는 구절을 보자. 이 말씀이 불교의 성불과 관련있는가?하는 개인적인 의문이 들어 주석을 봤다. 주석을 보니, `시편 82, 6 참조` 라고 되어있다. 이 책이 신약성서 주해니 구약 내용은 없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어 구약성경을 찾아 펼쳐 본다. 천주교 주교회의판으로 보자.

˝하느님께서 신들의 모임에서 일어서시어... ˝내가 이르건대 너희는 신이며 모두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들이다.˝ (시편 82:1-6)

신들의 모임이라니... 기독교는 유일신관인데. 이해가 잘 되지 않지만, 아쉽게도 자료의 한계상 지금은 더 이상 궁금함을 해결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또한, 루가복음의 저자가 복음서를 헌정한 대상으로 되어 있는 `데오필로님`의 경우에는 가상의 인물로 Theos + Philos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라는 의미인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맞는 것일까? 해당 부분을 찾아 보자.
해당 부분의 주석은 `데오필로는 실제 인물일 수도 있고 가상의 인물일 수도 있다.`라는 간략한 설명이 되어 있다. 기대에 못 미치는 설명에 다소 아쉬움이 들었다.

다소 상세한 주석해설이 아쉽지만, 참신한 번역과 성경에 대한 전반적인 해설이 좋은 책이다. 다만, 한 번 보기에는 다소 비싼 가격이 부담이기에 가톨릭 신자가 아닌 경우에는 도서관 활용을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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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6-07-15 0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구야 기독교의 세계는 정말 깊구먼요...주석 책도 따로 있구요. 저걸 어찌 읽으신데...
대단하십니다....정말 한 종교를 안 다는 것은 평생 걸려도 못 파겠어요 @.@

겨울호랑이 2016-07-15 04:1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루쉰P님 저도 주석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못봤어요. 관심있는 부분을 찾아 봤습니다 ㅋ 저도 잘 몰라서 지금 보고 있어요 ^^: 정말 제대로 아는 것은 어느 분야 어느 것이든 어려운 과정인 것 같아요

clavis 2016-08-13 2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200주년 번역의 존댓말 예수님을 반가워하고 사랑하는 1인으로서 겨울호랑이님의 페이퍼가 고맙게 느꺼집니다 좋은 여름밤 보내셔요
 
고백록
아우구스티누스 지음, 성염 옮김 / 경세원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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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록>은 가톨릭의 교부 성(聖)아우구스티누스의 인생 회고와 천지 창조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담긴 책이다. 1권부터 10권까지는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여, 라틴 문학과 수사학에 열중하던 시기, 마니교에 심취하던 시기, 기독교로 개종하기까지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11권부터 13권까지는 기독교의 창조론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담겨 있다.


10권까지의 신앙 고백에 대해서는 많은 리뷰가 있기에, 11권부터 13권까지의 내용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11권에서는 "태초에 하느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창세기 1:1)"는 구절을 통해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론이 주된 내용으로 다루어진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생각하는 '시간'이라는 개념은 신(神)적인 개념이 아니라, 인간의 개념이다. 하느님(神)의 시간은 영원이며 불변이다.

 '시간'과 '공간'마저 창조된 것이기 때문에, '창조 이전의 시간'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시간은 인간에게 있어, '현재'로 존재한다. 인간에게만 시간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영혼 안에서 시간을 재게 되고, '미래->현재-> 과거'라는 일련의 흐름으로 통해, 생명의 확장이 일어나게 되고, 끊임없는 시간의  확장을 통해 하느님께  영혼이 흘러간다는 것이 아우구스투스의 '시간론'이다.


"차라리 시간은 셋인데 과거에 대한 현재, 현재에 대한 현재, 미래에 대한 현재라고 하는 편이 적절하다. 이 셋은 영혼 속에 존재하는 무엇이고 다른 곳에서는 이것들이 안 보이며, 과거에 대한 현재는 기억(記憶)이고 현재에 대한 현재는 주시(注視)이며, 미래에 대한 현재는 기대(期待)다.(11권 20,26)"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기대에 해당하는 영역은 짦아지고 기억에 해당하는 영역은 길게 연장된다.(11권 28.38)"


12권은 "태초에 하느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에 감돌고 있었다. (창세기 1:1 ~2)"에 대한 주석이다. 이 부분에서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답이 나온다. 


"주님, 당신께서는 무형의 질료로부터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모든 날 이전에 만드셨던 무형의 질료에다 보이는 형상을 부여해서 만드신 것입니다.(12권 8,8)"


여기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형상론에 의해, 질료와 형상이 시간의 선후를 설명하는 것은아니어서(태초 이전의 시간은 없었으니까), 두 존재는 함께 창조된 것이라고 해명한다.(해제 p45)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인론'에 근거하여 "말씀(logos)"을 '창조의 도구인(道具因)'으로 설정하여, 결국 말씀을 통해 무형의 질료를 만들었고, 이를 통해 천지가 창조되었다는 이론이 성립하게 된다.(해제 p46)


13권은 '6일 창조'에 대한 명상이 주된 내용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6일 동안 피조물들이 순차적으로 창조되고 나서,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는 구절에 대한 주석이 이루어진다. 하느님은 선(善)하기에, 그 분이 만드신 모든 것은 선한 것이고, 이것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논리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게 되고, 이를 통해 '선'을 향해 갈 수도, '악'을 향해 갈 수도 있다.) 이에 반하여, 하느님의 자유는 하느님의 사랑에 상응하며, 이에 따르면 창조 역시 하느님의 사랑이 된다. 의지와 사랑은 동일한 것이므로, "사랑하시기 때문에 창조하셨다."는 해답이 나온다. (해제 p49)


여기서, 하느님의 '창조'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 모두 '하느님의 사랑'으로 표현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아울러, 하느님의 영(靈)이 창조계를 정화시켜 근원으로 복구시키는 역할을 묘사함으로써 특유한 '성령론'을 진술하기도 한다.(해제p47)


"달려가거라! 내가 안고 오리라. 내게 데려오리라. 거기서 내가 안고 오리라!(6권 16,26)"


<고백록>은 사실 이번에 두 번째로 읽는다. 

 처음에는 고(故) 최민순 신부의 번역본으로 읽었는데, 많이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아름다운 고문체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주석이 거의 없어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에 대한 이해가 어려웠던 반면, 성 염 교수의 <고백록>은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사상적 영향을 준 신플라톤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에 대한 설명과 주석 등이 수록되어 있다. 10권까지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기존 번역본으로도 큰 무리가 없지만, 11권부터 시작하는 고백록의 후반부 이해에는 주석 등 별도의 설명이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책을 읽기 전 앞의 해제가 전체적인 뼈대를 잡는데 큰 도움이 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신(新)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았으며, 마니교의 기본 사상인 '선-악 이원론' 극복이 핵심이다. 그래서, '악(惡)'은 실존하지 않으며, 단지 '선의 결핍' 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창조주가 선(善)하기 때문에, 창조된 것도 선한 것이다.


"무엇이 존재하든 선하고, 악이란 실체가 아니니 만일 실체라면 선일 것이다...그렇게 해서 당신께서 모든 것을 선하게 만들었음과 당신께서 만들지 않으신 실체는 아예 아무것도 없음을 내가 깨달았고 그 점은 내게 확실히 드러났습니다.(7권 12,18)"


<고백록>을 읽으면서 '악은 선의 결핍'으로 규정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설명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악'이 '선의 결핍'이라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에 따르면, 선(善)은 측정할 수 있는 정량(定量)적인 개념이 될 것이고, '최고선'인 하느님과 '아주 미미한 선'으로 세상을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유한한 인간은 결코 '최고선'인 하느님처럼 생각과 행위를 할 수 없을테니, 끊임없이 '차선'을 선택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어 죄인이 된다는 원죄설은 논외로 하더라도) '악은 선의 결핍'이기 때문에 인간은 끊임없이 악(惡)을 행할 수 밖에 없는 죄인(罪人)이라는 이야기가 성립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독교 고전인 <고백록>을 일반신자에 불과한 내가 몇 번 읽어서 모든 것을 알기는 어려울 것이다. 여기에, 신앙을 가지지 않는 일반인들에게는 와 닿지 않은 책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이유로 고전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독자층의 한계가 있는 것이 현실이라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1권의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한 '모든 시간은 현재로 존재한다.'는 명제는 신앙의 문제가 아닌 이성의 문제로 일반인들도 충분히 고민할한 문제라고 생각된다. 최소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은 바로 지금이고, 지금 이 순간 열심히 살자!'는 것은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달려가거라! 내가 안고 오리라. 내게 데려오리라. 거기서 내가 안고 오리라!(6권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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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13 1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6-07-13 12:56   좋아요 2 | URL
안녕하세요? 오거서님^^ 아 그렇게도 현실적용이 되겠네요.ㅋㅋ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선`을 채우는 것을 통해, 밝은 길로 갈 수 있다고 하는데, 그 분의 경우에는 좀처럼 `선`을 채우기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五車書 2016-07-13 12:58   좋아요 2 | URL
그렇군요. 채우는 것이 더 중요하겠어요. 그리고 늘 채워진 상태를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할 테니.

겨울호랑이 2016-07-13 13:00   좋아요 2 | URL
^^네 채우는게 중요한데 저는 `밑빠진 독`이라 좀처럼 채워지지가 않네요.. 재빨리 빠져나가기 전에 채워야 겨우 쌓일 것 같아요 ^^

五車書 2016-07-13 13:05   좋아요 2 | URL
겨울호랑이 님은 차서 찰랑거리는 것 같아요. 그보다 저가 더 걱정이 됩니다. 채우려고 노력한 적이 없어 비어있을 테고 서둘러 채우기 위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오늘도 좋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16-07-13 13:06   좋아요 2 | URL
^^ 항상 부족한 글 읽어주시고, 모자란 저를 격려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五車書 2016-07-13 13:11   좋아요 2 | URL
매번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지만 좋은 글을 써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읽고 있습니다. 덕분에 저는 행복하고요, 겨울호랑이 님께서도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clavis 2016-08-13 2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끊임없는 차선을 향해 용맹정진하겠습니다^^아..그러려면 먼저 잠부터 이뤄야할텐데요ㅠㅠ

겨울호랑이 2016-08-14 00:52   좋아요 1 | URL
많이 더운 날이 계속 되어 다들 지치는 것 같아요..지금은 잘 쉬는 것이 `가장 좋은 차선`인 것 같네요. 하느님께 수면 천사를 청해보시는 것은 어떨 까요. ^^; 주님 품안에서 편한 밤 되세요.

clavis 2016-08-14 0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댓글을 받으려고 여태 불면의 천사께서 제 곁을 지키셨던듯ㅋㅋ

clavis 2016-08-14 0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이현주 목사님의 좋은 책 좀 추천해주셔요ㅠ수면 천사님을 부르는 화살 기도 한 방과 함께요

겨울호랑이 2016-08-14 01:06   좋아요 1 | URL
제가 이현주 목사님 저서를 잘 몰라서요... clavis님께서 편하게 주무시도록 화살기도는 쏘겠습니다... 쏟아지는 유성우처럼 좋은 밤 되세요, clavis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