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그요정
김호준 지음 / 양철북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이 문학은 참 풍성하다.

어린이들은 그래서 읽을 거리도 많고, 제법 독서 교육도 받는다.

중학생이 되는 순간, 왠지 '중딩이 읽어야 할 소설/수필/시/고전' 등

수능에 등장하는 낯선 시대와 낯선 주제들이 학생들의 뇌를 두렵게 한다.

 

청소년 문학은 필요하기도 하고, 그 수준이 애매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지구상의 200여 국가 중에서도

단연 지옥같은 경쟁일변도의 '비교육' 상황에 놓인 아이들 입장에선

이런 숨구멍이 있어야 한다.

숨구멍이 없으면, 이 소설 주인공 수능이처럼 자살을 되뇌며 '잔다.'

 

아이들은 수업에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 이유는 수천만 가지다.

수업이 재미있는 아이들은 선천적으로 지능이 높은 아이들 뿐이다.

아무리 수업 개선을 외쳐봐도,

경쟁 일변도의 교실에서 아이들의 고개는 처박힐 뿐.

 

이 소설의 첫장면에 등장하는 것처럼

완벽을 기하는 여선생님 스타일의 타이트한 수업 역시 아이들에겐 무용지물이다.

고2가 되면 수학 선생님은 자습 지도도 힘들고, 영어 선생님은 몇 명만 두고 수업하게 마련.

그렇다고 국어 선생님이라고 재미있는 수업이 가능한 게 아니다.

수능형 문제 풀이는 어떤 문학 작품도 호랑이 풀뜯는 맛으로 변질시키기 때문이고,

특히 비문학 지문은 뭐, 국어라고 보기 힘든 종합적 독서 문제다.

 

'디그'라는 것은 배구 용어다.

배구 경기에서 상대 팀의 스파이크(spike)나 백어택(back attack)을 받아내는 리시브를 말한다. 공의 방향이나 착지 지점을 예측하는 능력과 몸의 유연성과 순발력을 요구하는 수비 동작이다.[네이버 사전]

 

사전을 찾아보면 각종 경기에서 열라 '파는' 동작을 디그로 표현한다.

배구에서는 강한 속도로 날아오는 공의 속력을 죽이면서 세터에게 패스하는 기술을 말하는 것이다.

 

삶에서 그런 강한 공격에 그대로 강하게 맞받아치면 실패하게 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양아치 소년들에게 봉수 선생은 배구를 권한다.

청소년 소설답게 아이들은 배구에 재미를 붙이고 인생을 배운다. 현실과는 다르게...

 

삶은 시도때도 없이 스파이크가 날아와.

너와 나는 어린 나이에 스파이크가 뭔지도 모르고 맞고 말았잖아.

난 이제 어디서 스파이크가 날아와도 상관없어.

강하면 달래고 죽어가면 살릴 거야.(182)

 

어려서 연주암에 버려져서 연주인 여자아이의 도움말이다.

그게 디그다.

강하게 맞서지 않고, 고무처럼 충격을 흡수하면서 공을 살리는 디그 요정이 되자는 이야기.

 

수능이, 연주를 중심으로

서울법대나온 통닭집 사장님과,

배구 지도하는 별종 봉수 선생님,

그리고 수능이 아버지라는 김성기오 선수...

 

당근처럼 단단해져버리는 신체를 가진 발기찬 청소년들에게

웃음과 함께 뭔가 삶을 낭비해버리지만은 말자는 도움말을 전해주는 청소년 소설이다.

 

아이들 삶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어 재미있으면서

아이들에게 힘을 실어줄 것 같은 소설.

작가가 교사여서 조금 도식적인 스토리이기도 하지만,

연주와 아버지 이야기나, 수능이의 동생과 연주 아버지의 스토리는 제법 잘 짜여 재미도 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의 교전 1 악의 교전 1
기시 유스케 지음, 한성례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좀 잔인하다.

800페이지가 넘는 책인데,

1권에서는 스토리가 재미있는데, 2권에서는 그저 추적씬과 살해장면만 반복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가타기리의 순발력과 해결이 좀더 얽혀있었더라면 더 재미있었을 거란 아쉬움...

 

사람은 모두 마음속에 지옥을 품고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억지로 고통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경험하지 않은 사람 이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고통입니다.

하지만 거기서 도망치지는 못합니다.

아무리 매일이 고통스럽고 무섭고 절망적이라 해도 계속 살아가야 합니다.(1권, 439)

 

하스미세이지라는 '악한'을 잘 만들었는데,

대량 학살은 좀 심했다.

 

미즈오치 사토코같은 카운슬러와의 대화같은 내용은 교훈적이고 재미있으며,

기요타의 아버지를 살해하는 스토리, 네코야마의 해부 등

전문적인 내용과 스릴러가 미묘하게 연합되는 스토리는 재미있다.

교사와 학생의 연애나 동성연애까지도 소설이니 그러려니 하고 볼만 하다.

 

'살인귀'를 뜻하는 '모리타트'라는 음악을 찾아 들어보았다.

뭔가 삐에로가 이상한 짓을 하고 음흉하게 사라지는 느낌을 받게하는 음악이다.

 

일본어에서는 きょうてん(敎典)이라는 말이 '규범, 전범'이라는 말로 쓰이는 모양이지만,

번역할 때는 '전형'이나 '전범'으로 썼으면... 한다.

우리말에서 '교전'이란 交戰이란 전투의 뜻으로 먼저 떠오르니...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17-12-22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2017년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글샘 2017-12-24 22:24   좋아요 1 | URL
아 올해도 발표했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눈먼 부엉이
사데크 헤다야트 지음, 배수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란이라는 나라는 축구를 잘하는 정도,

아이들이 예쁘게 생긴 나라, 이슬람 국가... 뭐 아는 바가 없다.

 

외국인들이 보기에 한국도 그런 나라가 아닐까?

해외여행도 금지되었던 90년대 초반까지의 대한민국은,

자국 내에서 고문으로 사람들을 죽이고, 평생 감옥에 넣어서 빼지 않는...

27년 감옥생활한 만델라가 와서 보고는 깜놀한 장기수가 많은 나라였다.

 

조국 찬가를 부르짖고, 아, 대한민국을 부르지만, 가장 폐쇄적인 나라였던 곳.

숨어서 철학 책을 읽고, 마르크스를 보던 젊은 시절을 떠올리면,

기형도의 책이나 이런 책이 낯설지만은 않다.

 

삶에는 마치 나병처럼 고독 속에서 서서히 영혼을 잠식하는 상처가 있다.

하지만 그 고통은 다른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

타인들은 결코 그런 고통을 믿지 못하고

정신 나간 이야기로 치부할 뿐이다.

만약 누군가 그 고통에 대해서 묘사하거나 언급이라도 하게 되면,

사람들은 남들의 내도를 따라서

혹은 신경쓰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의심 섞인 경멸의 웃음을 지으며 무시해버리려고 한다.

아직 인간은 그런 고통을 치유할 만한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일한 방법이라면 술을 마시고 망각해버리는 것.

그러나 이런 방법은 오래가지 못한다.

고통은 잦아드는 것이 아니라 잠시 후 더욱 격렬한 형태로 되돌아오고 만다.(7-8)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기형도, 빈 집)

 

보잘것 없는 나라의 보잘것 없는 언어로 쓴

보잘것 없는 시인의 시는 암울하다.

 

내가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사실은 현실과는 관련이 없는

착각과 망상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10)

 

마치 꿈속의 몽상을 따라가는 듯한 이야기들은 뜬금없이 시작되고 연결된다.

 

인간은 누구나 가면을 뒤집어쓴 채 살고있는 것이 확실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면은 당연히 더러워지고 주름이 생기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인간은 계속해서 그것을 쓰고 다닌다.

그들은 낭비가 싫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도 어느 일정 나이에 이르게 되면 어쩔 수 없이 깨닫는다.

최후의 마스크가 소멸하고 남은 자리에 드러나는 것이 그들의 진정한 얼굴이다.(13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재인이 드립니다 - 더 이상 꿈꾸지 않는 이 땅의 청춘들을 위한 포토 에세이
문재인 지음 / 리더스북 / 201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충고하는 사람에게 드리는 충고...

애정을 담은 진지한 충고를 하십시오.

딱 거기까지만 하시고 그 다음은 그 사람에게 맡기십시오.(211)

 

대통령이 되고 나서 그분의 행보는 확고했다.

앞서 나가지 않고 뚜벅뚜벅 걷고 있다.

민감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

 

소주 한잔 합니다.

탈상이어서 한잔, 벌써 3년이어서 한잔,

지금도 친노라는 말이 풍기는 적의 때문에 한잔,

노무현재단 이사장 관두고 낯선 세상 들어가는 두려움에 한잔,

저에게  거는 기대의 무거움에 한잔,

그런 일들을 먼저 겪으며 외로웠을 그를 생각하며 한잔.(253)

 

학습효과는 크다. 고맙고 고맙다.

아직도 외로울 것이다.

법원이 적이고, 언론이 적이다.

국민의 기대와 달리 날이 선 야당의 헛소리는 온통 적이다.

 

가장 큰 적은

나만을 고집하는 나 자신 아닐까요?(255)

 

자신을 벼리지 않으면,

자신을 내려놓지 않으면,

<문재인정식>이 중국 메뉴의 인기몰이를 하기 힘들다.

힘겹게 한걸음씩 나가고 있는 모습이 듬직하다.

 

민노총이나 전교조에서는 당장 합법화를 외치지만,

나는 국민 정서라는 탈을 쓴 언론의 칼날과 맞선 깊이가 느껴져 오히려 좋다.

에둘로 인권위원회에서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좋다.

 

이 세상에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257)

 

이런 철학이 정치가에겐 필요하다.

홍준표의 악담도, 안철수의 꽥꽥 소리도 안을 수 있어야지, 내쳐버리면 정치가 아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들으며 삽니다.

그것들 중 대부분은 꼭 보고 듣지 않아도 되는 것들입니다.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들어서

오히려 꼭 보고 들어야 할 것들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49)

 

텔레비전 다큐에서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분이

"신이 나를 못든는 사람으로 태어나게 한 것은 내면의 소리를 더 잘 들으라는 뜻이고,

못 보는 사람으로 태어나게 한 것은 온전히 나 자신만 바라보라는 뜻"이라는 말을 본 소감이다.

텔레비전에서 많은 인생을 만날 수 있는데,

사람은 너무 불필요한 것들을 많이 만난다.

 

돈밖에 모르는 자들이 만든 병원에서 아이들이 여럿 죽었다.

돈의 신을 섬기는 자들이 변형시킨 의학전문대학원 시스템, 병동 시스템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여 생긴 인재다.

생과 사가 오가는 소아 중환자실에 주말 당직 의사가 얼마나 실력자였을는지...

 

돈의 신을 섬기는 국가를 가진 백성은 헌신짝보다 못하게 변한다.

그걸 눈뜨고 보아야 하는 슬픔을 날마다 담는다.

 

어려울수록 원칙으로 돌아가라.

어려울 때 원칙을 지키는 일이 어렵습니다.

'어려울수록'과 '원칙', 모두 중요합니다.(79)

 

비트코인이 광풍이다.

어려워서 생기는 일이다.

 

스스로 자신이 없는 사람일수록

큰사람의 옆자리를 욕심냅니다.

자리로 자신을 과시하려 듭니다.

누군가의 옆자리에 서려 하지말고,

누군가를 내 옆자리에 서고 싶게 만드십시오.(89)

 

사법연수원에서 차석을 해서도 판검사 임용에 떨어져 변호사가 된 그.

그 인연으로 노무현이라는 큰 산을 만나게 된다.

 

고마움을 저축하십시오.

친절을 베풀고 당장 대가를 바라지 마십시오.

그 사람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

내게 받은 이상의 친절을 베풀 것입니다.(91)

 

법정 스님의 책에서 <친절>을 만나 반가웠다.

내가 늘 가슴에 품고 살았던 한마디였으니...

상선약수란 그런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친절에 대가를 바라지 말라는 말.

 

행복은 자신의 인생에 감사하는 것이고,

불행은 남의 인생을 흉내내는 것.(113)

 

이 책은 2012년 부정선거 전에 만든 책이다.

참 힘든 시기였을 것이다.

쥐는 부정선거로 닭을 당선시켰다.

아직도 쥐는 멀쩡한 것이, 더러운 세상이다.

그러나, 오늘 죽어가는 이에게 그 더러움은 아무것도 아니다.

 

남의 인생에 너무 관심가지면 불행해진다.

오늘 나의 일정에 감사할 일이다.

 

아침잠을 포기하고 영어학원에 다녔는데,

주말도 잊은 채 열심히 일했는데,

자투리 시간에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는데,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성공은 다른 세상 얘기 같다고요?

괜찮습니다.

당신은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성장했을 것입니다.

이제 곧 성장이 성공으로 바뀔 것입니다.

정말 위험한 것은 성장 없이 찾아온 성공입니다.(137)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어제 목숨을 놓아버린 젊은이에게 들려줬으면 하는 말이다.

괜찮다고, 다 괜찮다고...

 

빈틈없는 계획이 섰다면

여행을 떠나지 마라.

여행은 틈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165)

 

나는 자유여행을 하지 않는다.

아니 못하는 것이 가까울 것이다.

자유여행을 위해 애쓰는 것이 싫다.

패키지 여행을 따라다니면서

쇼핑할 정도로만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 좋다.

내가 운전을 하면서 온 신경을 길찾기에 소모하는 일은 두렵다.

틈을 즐기면서

버스를 타고 졸다가 놀다가

그런 여행이 좋다.

 

나는 선거에서 심상정을 찍었더랬다.

가족들도 모두 그러자고 꾀었다.

그건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그렇지만 답답이 고구마였다 생각했던 대통령이

너무 잘해주고 있어서 감사하다.

이 책을 읽노라니,

힘겹게 한걸음씩 나가고 있는 행보라는 진심이 보여 더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음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기 대장이 죽기 전에 쓴 글,

세이난 전쟁 때 적에게 깃발을 빼앗긴 이래,

사죄하기 위해 죽자, 죽자, 하면서도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의미의 구절을 볼 때

35년간 죽자, 죽자 하면서 죽을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야.

그런 사람에게 그때까지 살아온 35년이 고통스러울지,

아니면 칼로 배를 찌른 한순간이 더 고통스러울지를 생각했네.(273)

 

'마음'은 '보이지 않는 거'다.

마음의 실체는 없지만, 기실 마음이 없다면 인간도 없다.

<코기토 에르고 숨>, 생각해야 존재한다는 것도 마음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어제 젊은이들 부고를 둘이나 들었다.

서른 넘은 개그우먼 최서인의 난소암 소식과,

스물 일곱 샤이니 종현이란 가수의 자살 소식을...

정치권엔 죽일 놈들이 천지건만 그들은 멀쩡하고...

 

<유서 일부>

 

접힌 부분 펼치기 ▼

 

그래도 살으라고 했다.

왜 그래야하는지 수백번 물어봐도, 날위해서는 아니다. 널위해서다.

날 위하고 싶었다.

제발 모르는 소리 좀 하지 말아요.

왜 힘든지를 찾으라니. 몇번이나 얘기해 줬잖아. 왜 내가 힘든지. 그걸로는 이만큼 힘들면 안돼는거야? 더 구체적인 드라마가 있어야 하는거야? 좀 더 사연이 있었으면 하는 거야?

이미 이야기했잖아. 혹시 흘려들은 거 아니야? 이겨낼 수있는건 흉터로 남지 않아.

세상과 부딪히는 건 내 몫이 아니었나봐.

세상에 알려지는 건 내 삶이 아니었나봐.

다 그래서 힘든 거더라. 부딪혀서, 알려져서 힘들더라. 왜 그걸 택했을까. 웃긴 일이다.

지금껏 버티고 있었던게 용하지.

무슨 말을 더해. 그냥 수고했다고 해줘.

이만하면 잘했다고. 고생했다고 해줘.

웃지는 못하더라도 탓하며 보내진 말아줘.

수고했어.

정말 고생했어.

 

펼친 부분 접기 ▲

 

 

스스로 세상을 버리는 글에서도 예술감각이 살아있다.

그래. 정말 수고했던 마음이 느껴진다.

마음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자살' 이야기로 흐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죽는 사람도 있지.

부자연스러운 폭력으로 말이야.

자살하는 사람은 다들 부자연스러운 폭력을 쓰는 거겠지.(74)

 

철학에서 고민해볼 만한 문제가 '자살'이라고 했던 카뮈도 생각난다.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을 때, 삶은 너무 힘들다.

우울은 마음의 감기라지만, 감기는 나약한 마음을 피폐하게 한다.

 

선생님은 왜 책에 흥미를 가질 수 없는 거죠?

딱히 이유는 없지만, 말하자면

아무리 책을 읽어도 그만큼 훌륭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 탓이겠지.(75)

 

그래, 책은 남들의 이야기다.

남들의 이야기는 참고할 만한 항목이고, 각주일 따름이지,

결코 본문은 될 수 없다.

본문의 큰 글자는 자신만이 새길 수 있는 것이다.

책에서 남의 마음을 엿볼 수는 있지만, 자신의 마음이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는 일은

늘 역겹다.

 

선생님의 친구 K는 조금 강박적인 성향이었다.

 

어설프게 옛 고승이나 성자의 전기를 읽은 그는

툭하면 정신과 육체를 분리하려는 버릇이 있었지.

육체를 단련하면 영혼의 빛이 더해진다고 느끼는 일조차 있었을지 모르네.(200)

 

다시 읽는 책을 <고전>이라고 강유원 강의에서 들었다.

다시 읽으니 전혀 다른 부분을 읽을 수 있다.

 

정신적으로 향상심이 없는 사람은 바보라네.(239)

 

이 한마디가 대화를 단절시키고, 흔들리던 자를 격발시켰다.

좋은 상담사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겠지만,

거꾸로 자신이 힘내서 잘 살때 상담사는 좋은 사람이라 판단할 수도 있다.

자신이 힘들 때는 어떤 상담도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정말 힘을 내라고 다독거린 말인데도,

비수가 되어 날아들 수도 있는 일이다.

이것이 마음이 하는 일이다.

 

난 책략으로는 이겼어도 인간으로서는 졌다.(254)

 

질투가 사랑의 다른 일면이 아닐는지.

나는 결혼하고 나서 그 감정이 점점 옅어지는 것을 자각했네.

그 대신 애정도 결코 처음처럼 맹렬하진 않았지.(223)

 

젊은이의 죽음 소식은 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하지만, 오늘을 살아있는 자신들은 돌아보아야 한다.

정말 신이 나서 살고 있는 것이냐고...

 

그런 것들을 바라보는 '마음'은 늘 힘겹다.

그렇지만 그 마음에 애써 힘을 주어야 한다.

그게 삶일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