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 모지스 할머니 이야기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지음, 류승경 옮김 / 수오서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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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taxtalk1/220866993464

 

브뤼헬의 미술 세계

 

일흔이 넘어 그림을 시작했다는 모지스 할머니 이야기는

별달리 감동스럴 것도 없지만,

아~ 평화스런 잘 사는 나라에서 살아간 사람의 행복한 이야기구나

이런 자격지심을 갖게 된다.

 

이 땅에서 짓밟힌 삶을 살았던 정신대 할머니들의 삶과 너무도 대조되어 그렇고,

특별할 것도 없는 그림들을

극찬하는 전시회들을 평화롭게 바라볼 수 있었던 사람들의 삶이 부럽기도 해서 그렇다.

 

예쁜 그림들을 좋아합니다.

예쁘지 않다면 뭐하러 그림을 그리겠어요.(263)

 

그저 예쁜 것이면 되는 세상. 부럽다.

 

그림 그리는 일은 서두르지만 않는다면

아주 즐거운 취미가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여유를 갖고 꼼꼼하게 그림을 완성하는 걸 좋아합니다.(254)

 

나이들어도 그림은 그릴 수 있다.

바느질에는 떨리는 손이라도...

 

이제 서두르지 않고 살아야 할 나이가 되어 가는 느낌을 받는다.

그림도 괜찮은 취미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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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문학동네 시인선 101
문태준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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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봄이 앞에 있으니 좋다.
한파를 겪은 생명들에게 그러하듯이.
시가 누군가에게 가서 질문하고 또 구하는 일이 있다면
새벽의 신성과 벽 같은 고독과 높은 기다림과 꽃의 입맞춤과
자애의 넓음과 내일의 약속을 나누는 일이 아닐까 한다.
우리에게 올 봄도 함께 나누었으면 한다.
다시 첫 마음으로 돌아가서
세계가 연주하는 소리를 듣는다.
아니, 세계는 노동한다.(작가의 말)

 

비님이 오신다.

오랜만에 오시어

메말라 터진 대지를 위무해 주시니

좋다.

참 좋다.

 

대지는 '앓고 난 후에

말간 죽을 받은' 아이처럼

침없이 웃으며 비님을 받는다.

 

비님은

'흰 미죽(糜粥)을 떠먹일 때의 그 음성으로'

차갑게 굳은 아스팔트를 적신다.

누군가의 서럽던 눈물도

누군가의 욕망의 액즙도

또 누군가의 수고로운 땀방울에도

아... 그리고 높은 곳에서 속절없이 떨어져

비인간이 된 누군가의 핏자국도

 

어루만져 주시는

비님이 내리신다.

위로나 적선의 속내도 없이

비님은 오신다.

 

 

흘러오는 내처럼

긴 예문(괴석, 부분)

 

그의 시는 고요한 응시로 변화하고 있다.

침잠한 기도 속으로

하염없이 들어간다.

 

뜨겁기보다는 뭉근한 언어로 가득하다.

뜨겁게 좋지는 않지만

뭉근한 온기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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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넘어 함박눈
다나베 세이코 지음, 서혜영 옮김 / 포레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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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로 유명한 작가 다나베 세이코가 1928년 생이란 걸 이 책 보면서 처음 봤다.

그럼 지금 90이 넘은 할머니란 이야긴데,

소설을 읽어 보면, 마치 지금 서른인 여성이 쓴 것 같은 느낌이다.

 

세이코씨가 서른일 때는 50년대 후반이니 일본이 경제성장을 막 하는 시기였고

조금은 가난에서 벗어나는 시기였다는 도움을 입기도 했을 것이다.

 

여성의 시선에서 본 조금은 달콤하고 시큼한 연애 이야기나

남자들을 바라본 이야기,

여성의 속내가 드러난 이야기들이 짤막하게 들어있다.

 

노처녀란 늘 신경이 거꾸로 서는 데가 있다.

남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말도 그만 비늘에 걸리고,

비늘 아래 살을 할퀴어 아파하곤 한다.

아마도 내가 얘기하기 편한 남자를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얘기하기 편한 여자를 최고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가 비교적 마음이 잘 맞는 건지도 모른다.(140)

 

제목의 '보탄유키'는 한자로 '모란설'이다.

모란은 풍성한 꽃이니 함박눈으로 표현하기 좋은 느낌인듯...

 

세이코 씨의 시대엔 '만담'이라는 장르가 유행이었으리라.

소설 속의 유머 코드는 만담에 가깝다.

 

대사와 대사를 가로지르는 엇나감과 마주침이

해학을 빚어내면서 사람 사이의 갈등을 무마하는 형식인 듯...

 

칸트는 '유머는 인생의 비극적 측면을 희극적인 것으로 승화시켜

인간의 삶에 내재한 고난과 역경 그리고 절망을 뛰어넘게 하는 인간만의 초월적 행위'라고 했다.(279)

 

이런 해설을 곁들이기 이전에

이 소설들은 충분히 경쾌하고 유머스럽다.

만담 속에는 유머가 없을래야 없을 수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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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요일의 기록 - 10년차 카피라이터가 붙잡은 삶의 순간들
김민철 지음 / 북라이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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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의 유일한 특권은

좋은 선배의 좋은 점은 배우고

나쁜 선배의 나쁜 점은 안 배우면 된다는 거지.

 

아, 이런 순수한 선후배간의 이야기만 있다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어제오늘은 안희정과 김기덕, 남궁연과 그 아내 이야기를 귀너머로 듣게 된다.

누군가는 안타까워하고, 누군가는 욕을 한다.

나는 그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더이상 말할 것도 없을 터인데... 하는 생각을 한다.

 

세상엔 온통 나쁜 선배의 나쁜 점 뿐일 때,

후배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떤 선배도 이렇게 살아가자고 손내밀지 않을 때

그녀들은 얼마나 힘겹게 살아왔을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안희정은 농사지으러 가면 되는 것이 아니라 감옥엘 가야 옳다.

김기덕도 조재현도 남궁연도 마찬가지다.

피해자의 삶을 생각하면 '내가 무릎이라도 꿇을게요. 앞으로 우린 어떻게 살라구요.'하는 변명은 하품난다.

그동안 그들은 어떻게 살아왔을지 생각해 보란 말이다.

그런데도 자지를 꺼내 흔들었다는 고은은

외신에 당당하게 시를 쓰겠다고 한단다. 뻔뻔했던 시대가 이미 지나고 있음을 그들은 모른다.

촛불의 힘이 얼마나 지속적일지를 그들은 모른다.

 

나는 검은 건반이었다.

마음 어딘가에 늘 어두운 부분이 있고

그 부분을 밝히기 위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

아무리해도 천성 저 바닥 밑까지 밝은 빛이 어리기엔

나는 좀 많이 어둡고 어느 정도는 불협화음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 사람이 있다.

나 역시 어느 정도는 검은 건반의 반음에 경도된 사람이었다.

바이엘을 칠때도 단조를 치거나 반음을 누를 때의 느낌이 좋았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이렇게 잘 살아 왔으면 되었다.

김민철 씨도 '에보니 엔 아이보리'처럼

흑단나무 검은건반 역시 상앗빛 흰건반과 어울려 힘겹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열심히 쓰고 읽고, 사진도 찍는 자기만의 세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환한 곳처럼 찬란한 순간은 적을지라도,

적어도 어둠 속으로 숨고 싶어질만큼 심경의 변화를 덜 겪을 수도 있단 장점이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렇게 자신의 부족한 점과 긍정할 지점을 있는 그대로 보는 자신감인지도 모른다.

김민철씨도 그런 자신감을 부끄레 내놓는 사람 같다.

그의 ~~~ 여행도 기회가 되면 읽어볼 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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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학년 3반 료타 선생님
이시다 이라 지음, 박승애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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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 시작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학기말과 학기초,

교육 이야기를 읽게 되어 좋았다.

 

료타 선생은 똑부러지거나 바른생활 사나이는 아닌,

조금 멍청하고 뒤떨어지는 선생님이다. 마음은 따스한...

 

숨을 못 쉬겠어요.

숨이 막혀서... 죽을 것 같아요.

내 마음이 조그만 돌멩이처럼 쪼그라드는 것 같아요.(50)

 

뛰쳐나가는 아이 하나라도 놓칠 수 없는 료타의 주변에는

반듯한 교사도, 의뭉스런 교사도 가득하다.

 

학교는 공격은 할 수 없고 수비만 가능한 시스템으로 싸우는 셈이다.(82)

 

사건 사고에서 학교는 늘 수비적일 수밖에 없다.

시스템 자체가 그렇다.

 

전날까지 불가능하던 일이

어느날부터 힘들이지 않고도 가능하게 되는 경우처럼

아이들의 성장은 참으로 눈부신 감동으로 다가왔다.

자기가 가르쳤다기보다 아이들 스스로가 지닌 생명력으로 쑥쑥 자라는 거다.

다른 어떤 직업으로 이런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까.(127)

 

씨앗을 싹틔우는 일은 무던한 기대와 기다림을 전제로 한다.

의심과 불신의 시간을 담보로 하는 그 시간 덕에,

재크의 콩나무처럼 성장하는 황홀을 볼 수 있다.

 

획일적 사고방식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개성적인 인간으로 자라긴 힘들지.

아이들한테 잘난 척하고 떠들기 전에,

선생이 먼저 개성적이고 창조적인 인간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니야?(186)

 

지식으로 심어준 것은 그저 앵무새처럼 되풀이할 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스스로 이해하고 몸으로 체득한 답이라야 다른 문제를 만나도 응용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이해하는 속도를 기다려줄 필요가 있다.(202)

 

교사로서 고민하지 않는 생활인이란 참 재미없다.

그렇지만 사회 자체가 고루하므로, 교사의 개성이나 창조적 성향보다는

전통적인 관습에 따르는 사람들이 돋보이는 곳이다.

그래서 공부가 필요하다.

그래서 의심과 회의가 필요하다.

 

교육현장이란

결국 지식이나 기술의 전달장이 아니라,

그 교사가 가지고 있는 인간성이 시험되는 장소(275)

 

좀처럼 내가 생각한 대로 움직여주질 않는다니까.

연애나 교육, 또 아이들까지

일단 사람을 상대로 하는 일은 일방적인 신념이나 강제적인 방법으로는

절대로 잘 안 풀리지. 그런데도 상대가 조금만 움직여주면 될 텐데 하는 생각에

강요하게 되는 경향이 있지.(347)

 

대상이 미성숙한 아이들이다 보니

강요하기 쉽다.

그러나 강요는 전달보다는 배달 착오를 일으키기 쉽다.

수취인이 없는 강요의 사이에서 교사는 인간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교사의 임무는 그 나무가 올바른 방향으로 잘 자라도록 받쳐주는 버팀목이면 된다.

실제로 성장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은

그 나무인 아이들이다.(379)

 

아이들은 성장한다.

아이들의 성장을 교육이라 한다.

어른은 버팀목이고 물뿌리개의 한 방울 물이다.

성급하게 <알묘조장>한다고 교육이 되지는 않는다.

 

아이들의 생명력을 믿고,

무던히 적당한 관심을 뿌려주는 일이 교육이다.

마음을 조급히 먹지 말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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