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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김점선 - 개정판
김점선 지음 / 깊은샘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김점선. 그는 천상 화가다. 그림쟁이다. 이름은 비록 점선이지만, 성격은 직선이다.
노래 잘 부르는 남자를 술자리에서 만난다. 야, 너, 나랑 결혼하자. 그래서 그는 결혼한다. 집에서 반대하는 결혼을...
그리고 아이가 어느 날 수학을 포기하려 한다. 야, 너, 달력 가져와. 달력을 찢어서(아, 얼마나 훌륭한 교사인가. 집에서 가장 칠판만큼 넓은 종이는 달력 아닌가.) 수학을 푼다. 아이가 수학에 자신을 갖게 된다.
그러나, 그는 천상 화가다. 죽도록 그림을 그리려고 하고, 그림에서 의미를 찾는. 그의 그림을 보면, 그의 성격이 드러난다. 쫀쫀한 거 질색이고, 은근한 거 못하고... 맺음과 끊음이 있을 뿐이지, 이해 타산을 따지고 수지를 계산한다는 법은 애초에 그의 인생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점. 선.이다. 곡선도 있고 포물선도 있는데, 하필이면 그의 인생은 '점선'인 것이다. 뚜렷이 직선으로 가는 듯 하다가는 사라지고, 길이 없는 듯 하면 다시 곧은 선으로 살아나는...
그의 글도 결코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파스텔톤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그의 그림처럼 붉고 노랗고, 연둣빛으로 가득한 글이다. 원색의 향연이고, 본뜰 필요 없는 대담한 직선의 글들이다.
그는 농부들을 보면서 천천히 걸어 집으로 돌아오며 이렇게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 마을에 몇 명의 성인이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눈이 내린 날 새벽 산 속으로 산책을 나가 보면, 어느 새 비탈길엔 눈이 치워져 있다. 모래나 연탄재가 뿌려져 있기도 하고, 더 미끄러운 길은 흙을 파서 발 디딜 자리를 만들어 놓은 곳도 있다. 그런 길을 밟고 걸으면서 나는 또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살고 있는 이 조그만 산골에도 하느님에게만 보이는 표지를 몸에 지닌 성인이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상을 완전한 성실로 채우는 사람들, 하찮은 일들을 정성껏 해내는 사람들, 사람들과 말하기보다는 하느님과 말하기를 더 즐기는 사람들.'
왜 나는 학교에서 그 성실한 선생님들을 매일 만나면서도 이런 생각들을 하지 못했던가. 우리 학교에는 얼마나 많은 성인들이 살아 움직이는데...
김상유 선생이란 분이, 결혼해서 애기를 낳고 길러 보아야 인생을 알고 그림을 그린다는 말만 듣고 그는 결혼을 결심한다. 참 아무 생각 없는 사람이다. 그저 생각이 나면 할 뿐, 따지고 재는 모습은 이 책 어디도 없다. 그래서 그의 결혼관은 정말 확실하다.
"... 결혼은 백마 탄 왕자와 골빈 여자가 학예회 하듯이 벌이는 연극이 아니다. 결혼은 내 진보적인 친구가 거품 물고 떠들어 대듯이 합법적인 매춘도 아니다.
결혼은 망상도 도피도 아니다.
결혼은 완전한 사람으로서 살기 시작하는 일이다.
나의 전체를 사용해서 책임지고 독립해서 스스로 사는 것이다. 내가 아는 모든 지식을 이용해서 밥 짓고 빨래하고 나 스스로를 위해 내 주변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그것도 꼭 나같이 멍청하고 자신 없고, 쭈뼛거리며 겨우 살아있는 사람과 모여서 서롤르 거울처럼 비춰보며 우리끼리 사는 것이다.
결혼은 씩씩하고 힘찬 생활의 시작이다.
이제까지는 눈만뜨고 일어나서 부엌에 가면 언제든지 먹을 게 있었고, 아무 때고 옷을 벗어 던져 놓으면 다시 깨끗해 졌다. 나는 보호자 밑에서 벌레처럼 조금만 움직이면서 살아만 있었다.
그렇다. 결혼이란 허영도 망상도 타락도 아니다.
결혼은 건강하고 씩씩하고 힘찬 생활의 시작이다. 뭐든지 스스로 하는, 두 또래끼리 모여서 모든 걸 그들끼리 결정하고 실천하는 모험과 실험의 생활이다.
탐구여행이다.
나는 이제까지...결혼 생활에 구역질을 느끼며 결혼을 싫어하고 있었다.
그렇다. 나는 바로 내 식으로 결혼하고 내 식으로 생활하며 내 식으로 만들어 갈 것이다.
나는 그들과 다르다. 나는 그들과 다르게 살 수 있다. 나는 그렇게 할 것이다."
나중에 아이들이 내가 늙었을 때, 주례사를 해 달라고 한다면(아무도 안 하면 더 좋고) 이 말을 꼭 읽어주고 싶다.
그는 자기 아이를 <인격>으로 대우한다.
"아이를 어떻게 가르칠까를 생각하기 이전에 어떻게 자기 자신이 ㅇ?어른이 돌까 하고 생각해야한다. 아이는 가르칠 의도로써 가르치는 것보다는 스스로 자기 일을 꿋꿋이 해나가는 사람을 봄으로써 더 큰 것을 얻게 된다."는 그의 의견에는 전적으로 동감이다.
전에 어느 분의 리뷰를 읽고, 김점선의 책을 모두 도서관에 사 두었다.
참 잘한 일이다.
오늘은 내가 나에게 칭찬을 한다. 그리고, 겁많은 나에게 용기를 주어야 겠다.
내가 어렸을 때, 늘 소심하고 겁이 많아서 목소리도 작게 내고 했는데, 아무도 내게 격려나 용기를 심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 나는 나에게 칭찬을 하고 격려를 한다. 너, 잘 살아라... 하고...
나는 그처럼 솔직한 글을 쓰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처럼 열심히, 치열하게는 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