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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예찬 - 정글을 헤매는 행복 ㅣ 예찬 시리즈
최재천 지음 / 현대문학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바야흐로 여름이 왔다. 여름이면 서늘한 극지방으로 갈 수도 있지만, 사람들은 가장 따가운 바닷가로 모여든다. 여름이란 계절에 잘 어울리는 곳이 또한 열대가 아닐까. 우리에겐 여름이라야 열대와 조금 비슷해 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난 <열대>란 말에 특별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열대란 말에는 원시림, 그 rain-forest(우림)의 진초록과 풀벌레의 비명에 가까운 울음, 쥬라기 공원과 어울린 파충류와 양서류의 끼-ㅇㅣㅋ 거리는 괴성들, 언뜻언뜻 비치는 좁은 하늘 사이를 나는 낯선 새들... 이 가운데서 길을 잃은 듯한 감각이 <열대>란 두 글자에서는 묻어 나온다.
최재천은 내가 즐겨 읽는 작가 중의 하나다. 가장 큰 이유는 그의 관심사가 동물, 그 중에서도 곤충이지만, 윤무부의 새나 그외 늪 같은 생물학 책이 주는 백과사전식 서술에서 그의 글은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이전의 그의 책들이 <인간과 생물의 사회사> 정도를 적은 글들이었다면, 이 책은 그가 미국에서 연구원으로 있던 시절, 남미의 코스타리카의 밀림에서 겪은 색다른 경험들을 입담좋게 적어낸 책이다. 다른 책에 비해서 더 재미있다.
부제도 정글을 헤매는 행복인 만큼, 그는 열대의 생물 연구를 통해 여전히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유홍준을 통해 문화 유산이 대중에게 다가섰다면, 신비의 세계를 책으로 만날 수 있는 것은 최재천의 몫이 크다. 그러나 그는 <과학의 대중화>는 하향 평준화의 느낌을 준다며 <대중의 과학과>라는 말을 좋아하는, 글을 제법 아는 과학자다.
그가 이전에 얻은 추천서에서 '그의 글은 정확성, 경제성, 그리고 우아함을 고루 갖춘 글을 쓴다'는 찬사를 받은 일이 있다고 한다. 아... 과학자의 글에서 이 이상의 어떤 찬사가 필요할까. 과학에서 서술의 핵심인 정확성, 그리고 전달의 정수인 경제성, 게다가 감동의 깊이를 이루는 우아함까지...
우리가 글쓰기에서 얻고자하는 것이 그런 것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그의 글들, 특히 이 책에서 흠을 잡는다면, 경제성이 떨어지는 측면들이 간혹 보인다는 것이다. 최재천 교수의 글은 중학교,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한 편씩 수록될 만큼 정확한 과학적 지식을 사회 현상과 연관지은 날카로움으로, 그리고 경제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주장을 우아하게 전달하는 글의 본보기로 평가하는 편이다.
이 책에선 간혹 자신의 경험담이 경제성을 떨어뜨리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이 책을 과학 수필이 아닌 <과학자의 수필>로 읽게 하는 정서적 거리를 좁히는 구실도 하는 듯 하다.
생물의 사회와 인간의 사회를 비교해 보고, 비유도 하고, 꼬집기도 하고 한탄도 하면서 그는 무한의 소재를 가진 과학도이면서, 언젠가는 시를 쓰고 싶어하는 글쟁이로서의 양면을 위태위태하게 이어가는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데 성공하고 있는, 보기드문 자연과학자라고 생각한다.
그런 그의 글쓰기가 미국에서 학위를 하면서 체득하고, 미국의 교수들에게서 보고 배운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가르치는 사람의 한 명으로서 깊은 반성을 한다.
생각을 하게 하고, 그것을 글로 정확하고 우아하게 옮기는 연습을 하게 하는 것이 교사의 몫임을 나는 간과하고 살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저 시험문제 몇 개 푸는데 그토록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는 아이들의 삶에 도움을 주기 어렵다는 쉬운 진리를 새삼 깨닫는다. 아이들에게 삶을 가르치는 길은 결국 살아있는 글을 쓰게 만들도록 도와주는 일이라는 쉬운 진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