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은빛 설산
임현담 지음 / 초당 / 2001년 2월
평점 :
절판
나이 서른 여섯 먹어, 왜 살지? 너는 누구냐. 의문이 생겨, 느닷없이 인도로 떠났던 사람.
그이가 다시 히말라야로 떠나 스승을 찾아 떠도는 이야기다.
확실히 인도에서 하층민들 다비하는 모습이나 쳐다보던 <텅빈 인도>편에 비해서 영적으로 충만해가는 과정을 배우고 온 느낌이 강하게 밀려든다.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아둥바둥거리는 세상을 벗어난 히말라야, 그 설산 위에서 옷도 버리고, 음식도 버리고, 오로지 형형한 눈빛 하나로 살아가는 지적 스승들을 만난 이야기는 졸리운 봄날 오후에도 정신은 행복하게 했다.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가르치다보면, 근검을 자식들에게 일깨우는 대목이 나온다. 우리의 눈과 입이 유혹에 약해서 맛있는 것을 탐한다고. 뱃속에 들어가면 마찬가지로 변해버릴 것을 탐욕스럽게 갈구한다고. 검소해야 한다고. 검소하지 않으면 우리가 가진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구나. 배운 오후.
눈쌓인 예봉이 날카롭게 하얀 배경으로 짙푸른 하늘빛만 형형한 사진에서, 잿빛 인도에서 휑한 가슴 쓸어안던 저자의 마음이 더욱 깊은 진리에 다가가고 있음을 선뜻하게 느낄 수 있다.
먼 옛날, 누군가가 히말라야에 앉아있던 붓다에게 깨달음에 대해 물었더니, 이렇게 답이 돌아왔다.
차라이베티 : 걷고 걸어라...
털실로 버선을 짜주던 천사 프랑스 여대생을 생각하며, 덩치만 어른이지 정신연령은 유아 수준인 우리 대학생들을 돌아보고,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를 곰곰 생각하게 한다.
옴기리바바지라는 구루(?)를 우연히 만나 좋은 음식을 먹어라, 좋은 말을 해라, 좋은 걸음으로 걸어라, 잠을 적게 자라는 배움을 듣는데, 그의 이야기가 별로 실감나지 않는다. 이야기란 직접화법으로 듣는 것과 간접화법으로 읽는 것에는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리라.
옛날 중국 탕왕의 욕조에는 이렇게 씌어있었다지.
날마다 그대자신을 완전히 새롭게 하라.
날이면 날마다 새롭게 하고, 영원히 새롭게 하라.
그 형형한 정신을 되새기며, 저자가 잠들기전 외우던 기도문을 나도 읊조려 본다.
이제 나는 내 의지와도 상관없는 무의식의 세계로 떠납니다.
삶의 휴식과도 같고 죽음과도 같은 세계로 떠납니다.
내 모든 것을 당신 손 안에 드리오니 깨어나는 새 아침까지 함께하여 주소서.
진실로 나를 만나고 싶은 날, 껍데기같은 하루하루를 만나는 너풀거리는 꽃잎처럼 가볍고 초라한 오후,
히말라야에서 쩡하고 울리는 소리는 크레바스 벌어지는 소리인지,
삶이란 너를 만나는 것이란 걸 깨우치는 다원적인 신의 할인지...
저자 덕분에 수도자들의 삶의 태도와, 일상에서 삶에 대해 어떤 마음으로 만날 것인지를 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