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이지누의 인물로 세상읽기/
찬바람이 불때마다 늘 깊은 회한에 젖게 하는 사람이 있다. 안 그래도 한 달 전, 새로운 곳으로 옮긴 작업실의 책장을 정리하면서 그 사람과 관련된 무엇을 펼쳐들곤 정리는 나 몰라라 한 채 너덧 시간이나 상념에 빠진 적이 있었다. 덕분에 책장 정리는 다음날로 미뤄지고 내 눈길은 망연히 허공만 붙잡을 뿐이었다. 그렇게 잊었다가 가을이 깊어지니 흩날리는 낙엽소리처럼 마음이 스산해지며 다시 그 사람이 생각이 난다.

그 사람은, 아니 지금은 어엿한 아가씨가 되고도 남았을 법 하지만 그때만 해도 아이라고 불러도 될 만했다. 그녀는 지금껏 내가 만나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 중에 가장 어린 축에 드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드물게 더 이상 예전의 모습으로 살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 사실 어엿한 아가씨라고는 했지만 그것을 세속에서 부르는 호칭이라고 한다면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성숙한 아가씨라고 불리지도 않는다. 속(俗)을 넘어 승(僧)의 세계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신이 보낸 사람…이지누”라는 쪽지


2001년 늦가을, 후배가 그쪽 언저리로 간다기에 그 집은 어떻게 됐는지 가보라고 했다. 더 이상 아무도 살지 않는 집에 다녀 온 후배는 불쑥 찢어진 쪽지 하나를 내밀었다. 그곳에 그녀가 쓴 짧은 글이 남아 있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신이 보낸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은 이지누다” 그 글을 보는 순간 나는 멍해지고 말았다. 한참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경직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 글을 쓴 사람은 지금 도혜(道慧)라는 법명으로 불가에 귀의해 수행정진 중이지만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산골소녀 영자다.

그녀와 나의 인연은 이랬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1997년, 영자가 15살 때였다. 도계읍의 육백산 말기에 있는 황새터와 같은 오지마을을 찾아다니며 산골문화에 대한 조사를 할 때였다. 그 무렵 육백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사무곡이라는 지명을 알게 되었고 마을 사람들로부터 그곳에 영자부녀가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 후, 해를 걸러서 서너 번 찾아갔을까. 그것이 전부다. 그리곤 그녀가 17살이 되던 1999년 이맘때에 모 잡지에 영자 이야기를 쓴 적이 있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그녀의 주소지를 묻는 전화가 걸려왔고 모르쇠로 일관했지만 그 집요한 사람들은 이내 그녀가 사는 곳을 알아내고 말았다. 그들은 기어코 그녀에게 텔레비전 카메라를 들이댔고 그녀의 집에 전기나 전화가 없다는 것이나 혹은 그 집에 가려면 오로지 걸어서만 가야 하는 불편함을 오히려 내세워가면서 말이다. 사람에 굶주린 도회지의 사람들은 그 모습에 열광하며 무방비의 그 아이를 소비하기 시작했다.

사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방영되기 전부터 나는 그 아이에게 책을 보내주고 있었다. 시인 신경림이나 기형도 그리고 소설가 이순원을 특히 좋아한다는 그 아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 했었고 또 잡지에 나간 기사를 보고 책이나 다른 것들을 보내 주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섣불리 그 아이의 주소를 아무에게도 알려 주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이 보내려는 책을 모두 나에게 보내라고 했다. 도서목록을 만들어 서로 겹치는 것은 사양했으며 옷을 보내 주겠다는 것 또한 사양했다.

그렇게 작업실에 책을 쌓아 놓고는 한 달에 15권 이상을 보내 주지 않았다. 아무리 책 읽는 것을 좋아 한다고는 하지만 한 달에 15권 이상을 읽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더러 학용품은 보내 주었지만 굳이 옷과 같은 생활용품들을 사양했던 것은 도회지의 옷이 그 산골에서 잘 어울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문화란 자신의 생활환경이나 습관에 견주어 돋보이는 것이 아니라 잘 어울리는 것이라야 한다. 차라리 몸에 걸쳐도 겉돌기만 할 도회지의 옷을 보내 줄 양이면 그 보다 그 아이가 날마다 끼고 사는 라디오의 건전지 하나를 더 보내 주는 것이 훨씬 나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먼저 굳이 책 이외의 그 무엇들을 보내 주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 보기에 영자는 별다른 아쉬움이 없는 아이였다. 아버지와 미미 그리고 꼬꼬라는 닭 두 마리면 충분히 행복했던 것이다. 간혹 아버지와 함께 도계읍이나 삼척으로 장도 볼 겸 나들이를 나가는 것만으로도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던 아이에게도 나름대로 존중해야 할 문화의 생산과 소비양태는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도회지 사람들 앞다퉈 책을 보내

그러나 도회지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저 자신들과 같지 않음을 안타까워하며 무엇이라도 그녀에게 나눠 주지 못해 안달이었다. 한 사람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양은 생각지도 못한 채 서로 앞 다투어 그녀에게 책을 보내기를 원했다. 문학을 꿈꾸는 소녀이었기에 텔레비전 덕분에 공개되어버린 주소로 무지막지하게 책은 배달되었고 이윽고 그녀의 방은 책으로 넘쳐 결국 마당 한쪽에 책을 보관하는 광을 따로 지어야 했다. 과연 그것이 그녀를 위한 일이었을까. 아니면 책을 보내려던 자신을 위한 일이었을까. 자못 궁금한 일이다.

나는 그 작은 마당에 만들어진 책 광을 보고는 아연실색해 입이 쩍 벌어지고 말았었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아직도 세상이 메마르지 않아서 서로 도우며 살아가려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생각 때문이고, 또 하나는 그녀가 광에 쌓인 책을 모두 읽으려면 아무리 후하게 잡아도 십년은 족히 걸리고도 남음이 있을 만한 양이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자신이 읽고 싶은 책과는 상관없이 장르를 가리지 않고 각종의 책들로 채워져 있었다. 아무리 모든 책이 삶의 양식이 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을 다 읽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였던 것이다.

서로 도와가며 세상을 살아 갈 마음을 먹는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것이며 실행한다는 것은 더없이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나의 도움이 상대에게 지나치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배려까지 할 수 있으면 그것은 보약이 될 수 있으되 그렇지 못하면 독이 되고 말 것이다. 결국 우리들은 그녀에게 독을 선물한 꼴이 되고 말았다. 그리곤 그녀가 처했을 입장과는 상관없이 나도 그녀를 도왔다는 자족감에 젖어 만족했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결국 내 삶의 풍족함을 위해 다른 한 사람을 소비했다는 말과도 같다. 이 말이 지나치기 전에 우리들의 행동은 이미 지나쳤다. 나는 그녀가 텔레비전에 나오고부터는 더 이상 책을 보내지 않았었다. 그리고 그녀와 내가 나눴던 그 소박한 사랑의 마음들을 더 이상 나눌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아야만 했다. 영자의 얼굴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에 나올 때나 그 후에도 영자의 순박한 미소는 압권이었다. 그러나 그 이전을 아는 나에게는 그것마저도 이미 달라진 것이었다.

자족감에 젖어 ‘독’을 선물한 꼴

처음 그녀를 만났던 날, 살가운 대접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한나절이나 마당을 서성이자 그제야 곁을 주었었다. 내가 지니고 있는 사진기에 대한 호기심을 영자가 견디지 못한 것이다.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자 그녀는 대뜸 자기가 그것을 들여다보고 싶다고 했던 것이다. 사진기를 보기는 했지만 자기가 만져보기는 처음이라고 했었다. 조물조물 사진기를 만지던 그녀가 찍어도 되냐고 했고 이윽고 파인더를 들여다보며 놀라던 표정을 나는 잊지 못한다. 간혹 렌즈를 바꿔 끼워주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던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사진기를 이리저리 들이대다가 나를 보며 짓던 미소는 지금껏 내가 본 미소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날 영자는 좁은 마당을 이리저리 다니며 36장짜리 흑백필름을 예닐곱 통이나 찍고 난 후에야 사진기를 내려놓았다. 그 후, 그녀에게는 좋은 일만 생기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나침의 경계를 지키지 못한 우리들 탓으로 연이어 불행한 일들이 생겨났다. 2001년, 잡지를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던 어느 날은 슬픈 소식 앞에서 눈물을 머금어야 했다. 눈 내리는 창가에 앉아 망연히 밖을 보다가 그녀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 소식을 앞에 놓고 나는 한없이 부끄럽고 외로웠다.

사람이 사람에 대한 욕심으로 한 사람을 잔인하게도 난도질한 것이나 다르지 않으니 암담했으며 처연했다. 그 빌미를 제공한 사람이 나였다는 생각에 몸 둘 바를 몰라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지금에야 고백컨대 난 그 이후로 우리 땅 골골샅샅 헤매고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다. 아니 분명 만난다. 그렇지만 더 이상 그들을 세상에 알리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옳겠다. 그 이후, 참 많은 것을 깨달았다. 사람이거나 돌 혹은 나무이거나 풀과 같은 것들조차도 제자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있는 자리가 그들이 있는 곳보다 경제적으로 윤택하거나 문화적으로 다르다 할지라도 그들에게 내 자리로의 이동이나 동참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그저 두고 볼 뿐이다. 세상 살아가는 것이 공짜가 없다고 하더니 과연 그렇다. 사람을 배우며 치른 수업료 치고는 너무도 가혹한 것이었지만 이제 나는 더 이상 나를 위해 다른 사람을 소비하지는 않는다. 되돌아보라. 당신들은 사람을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 말이다.

이지누/글쓰는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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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6-11-10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기억납니다.영자.!! 그랬었군요.그래요....

글샘 2006-11-10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옷과 이름이 있는 법이죠.
그걸 인정해 줘야 살기 좋은 세상인데 말입니다.
 

모두를 위한 도구가 되어 보세요!

    한겨레신문 2006. 10. 31 권복기


나무를 싫어하는 분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셸 실버스타인의 그림책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보면 아낌없이 주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랑이 책을 읽는 사람의 마음에 울림을 줍니다.

이 책에서 알 수 있듯이 나무의 삶은 성자의 삶과 닮았습니다. 나무는 자신의 환경을 탓하지 않습니다. 어디에 심어졌든 묵묵히 자라 봄이면 싹을 틔워 여름이면 그늘을 만들어 냅니다. 이산화탄소를 들이마시고 동물에게 이로운 산소를 뿜어냅니다.

제가 좋아하는 한 선배는 나무를 ‘내가 없다’는 뜻으로 풀이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나무는 햇빛을 피하는 그늘도 되고, 성글지만 비를 피하는 우산도 됩니다. 아이들 놀이터도 되고 그네를 매는 기둥도 됩니다. 베어져서는 집을 짓는 재료나 땔감으로도 쓰입니다.

어디에 쓰여도 좋은, 내가 없는 마음이 바로 나무의 마음입니다. 프란체스코 성인께서는 당신을 평화를 위한 도구로 써 달라고 하늘에 기도하셨습니다. 도구는 무엇이 되겠다고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무엇이 되어도 좋다는 마음, 바로 그게 나무의 마음이 아닐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무엇이 되고자 하지 도구로 쓰이고자 하지 않습니다. 조직 안에서도 빛나고 훌륭한 일만 하려 하지 궂은일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나를 넘어 모두를 위한 어떤 도구도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세요.

나라는 생각이 없어 나무는 수승화강(水昇火降)이 됩니다. 물 기운이 위로 올라가고 뜨거운 기운은 아래로 내려감을 뜻합니다. 건강한 사람이 그렇게 됩니다. 머리는 시원하고 아랫배는 따뜻한 것이지요. 그런 나무의 마음으로 살아보세요. ‘나’라는 생각 대신 우리를 위해 산다고 생각해보세요. 나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담고 있는 조직도 함께 좋아집니다. 건강도 좋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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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11-09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닉네임과 서재소개문이 변신한 11월 저녁에요
나무라.....요즘 저 하는 일과 상통합니다.
근데 왜 닉네임을 바꾸셨을까요...

글샘 2006-11-09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만우절도 아닌데...
한글로 써 놓고 보니깐, 반월 공단(지금은 안산인가요?)에 있는 삼성 아파트 주민같네요. ^^

드팀전 2006-11-10 0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이 훨씬 정이 가네요.저는.왠지 무슨 도사나 무협지에 나오는 주인공같아서..끙
곧 익숙해지겠지요.

글샘 2006-11-10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바꿔 본 겁니다. ^^ 저도 영 이상하긴 해요.

프레이야 2006-11-15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바뀌었네요. 이미지와 닉네임이 바뀌니까 완전 새로운 느낌이에요. 인터넷의 장점일까요. 아무튼 아기자기한 맛에 귀여움까지.. 좋아요.
나,무,에 대한 색다른 해석이네요. 신선합니다.^^

글샘 2006-11-16 0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을 한 5년 썼더니, 그게 내 이름인 것 같애서... 바꿔버렸습니다.
뭐든지 오래 쓰면 거기 애착이 붙고, 욕심이 나고 그래서요.
 

남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항상 사람들의 마음을 얻게 되고,
위엄과 무력으로 엄하게 다스리는 자는
항상 사람들의 노여움을 사게 된다.
- 세종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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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뜯어보기 109 : 강연] 한미FTA, 성장주의 패러다임의 극복은 불가능한가?

 "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지난 15년 동안 <녹색평론>을 발행하면서 탐욕스러운 자본주의, 산업주의를 극복할 것을 주장해온 김종철 발행인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과 같은 최근 정세를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파국이 임박해 있는데도 산업주의, 자본주의에 속박된 대다수 사람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채 일상생활의 톱니바퀴 속에서 파국을 가속화하는 데에 기여하는 현실. 바로 이런 상황이 지금 한국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종철 발행인이 보기에는 한미 FTA는 이런 파국을 더욱 앞당기는, 파국을 향해 돌진하는 열차의 액셀러레이터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냥 절망하면서 고작 이민을 생각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까?
  
  김종철 발행인은 더 늦기 전에 지금 서 있는 곳에서 연대하고 행동할 것을 강조했다. 개인은 약하지만 그 작은 개인이 연대하고 행동하면 이 거대한 파국을 향한 움직임을 원천적으로 막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미래를 준비하는 근거지는 마련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프레시안이 창간 5주년을 맞아 준비한 연석 기획 강연의 첫 번째 순서로 진행된 이 강연은 26일 서울 서대문 충정로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회의실에서 2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대담자인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와 추첨을 통해 참석한 30여 명의 청중은 김종철 발행인과 열띤 토론을 벌이며 한국 사회의 미래를 함께 고민했다.
  
  다음은 이 날 진행된 강연과 토론의 전문이다.

▲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프레시안

  오늘 이 자리에 오기 전에 <프레시안>에 들어가 보니 신영복 교수의 강연 녹취록이 올라와 있었다. 그 분의 메시지는 '하방연대를 하라'는 것이었는데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말씀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 교수는 강연 서두에서 '앞으로 이 연속 강연에서 김종철, 최장집, 박원순이 각론을 펼칠 것이므로, 나는 원론만을 얘기하겠다"고 했다. 나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처지가 됐으면 좋겠다. 오늘은 원론에서 조금 더 들어간 이야기가 돼야 할 텐데 원론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채 끝낼지도 모르겠다.
  
  오늘 대담의 제목은 '한미 FTA, 성장주의 패러다임의 극복은 불가능한가?'이다. 이 제목은 프레시안 측에서 지어준 것인데, 이 제목에 준해 오늘 이야기를 한정시켜 보려고 한다. 사실 나는 한미 FTA에 대해 상식 수준을 벗어난 이야기를 해드릴 만한 처지가 못 된다. 다만 명색이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서, 또 오랫동안 문학 공부를 하다가 <녹색평론>을 발간, 편집하는 일을 해 온 사람의 입장에서 한미 FTA라는 재앙 앞에서 생각을 조금 정리해보려는 것일 뿐이다.
  
  <국부론>을 쓴 아담 스미스는 경제학자이기 전에 도덕철학자로서 영국의 시대 상황에 대한 예민한 사색을 전개했다. 우리가 사회과학자가 아니라고 해서 이 시대의 핵심적인 정치, 경제, 사회적 현안에 대해 외면하는 것은 옳지 않다. 내 생각에 한미 FTA는 경제적 문제일 뿐만 아니라 철학적, 도덕적 문제이기도 하다. 지금 '인문학의 위기' 운운하고 있지만, 한미 FTA에 인문학자들이 별로 관심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인문학의 위기'를 확실히 증언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한미 FTA 언젠가는 한번 닥칠 필연적인 상황"
  
  한미 FTA에 대해서는 다들 잘 아시리라 생각하지만, 우선 말해두고 싶은 것은 노무현 정부가 너무나 한심한 정부라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오고, 사회적 약자에게 굉장한 재앙이 될 것이 명백한 한미 FTA를 "서민의 이익을 대변하겠다"는 약속으로 집권한 정부가 자신의 '마지막 업적'으로 삼겠다고 돌진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더구나 주류 경제학자들조차도 이 협정이 실제로는 별로 남는 장사가 될 것 같지 않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좀더 깊이 이 문제를 들여다보면, 한미 FTA는 노무현 정부가 아니더라도 언젠가 한번은 닥칠 문제라고 봐야 한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그동안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려 온 한국의 급속한 경제발전은 대외의존을 심화시키는 성장방식에 기반을 두고 이루어져 왔다. 만약 이러한 경제성장 패턴을 계속해서 확대하는 것 외에 어떤 근본적인 방향전환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정당이 집권을 한다고 해도 결국 언젠가는 새로운 성장동력이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한미 FTA를 추진하겠다고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떠한 집권세력이라도 그게 부르주아 정당에 기반을 둔 이상, 그 정부는 지금까지의 성장패턴으로부터 재미를 보아 온 기득권층의 이해관계에 충실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하필 노무현 정부냐 하는 생각도 들지만, 우리가 벼락을 좀더 '빨리' 맞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한미 FTA라는 사태는 어떤 점에서 필연적인 상황이다.
  
  그간 한국 사회에서는 '성장주의' 경제발전을 견제하거나 거기에 저항할 만한 세력이 거의 없었다. 실은 이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1970년대 이후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힘이 너무나 센 터라, '세계화'라는 새로운 세계 지배 구조에 비판적인 사람들조차도 신자유주의 세계화 그 자체의 논리에 대해서 어떻게 효과적인 공격을 할 것인지 엄두를 못 내는 것이 그동안의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한미 FTA는 근본적으로 어떤 특정 정당, 어떤 특정 집권자의 문제로 돌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노무현 대통령과 이 정부의 행태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노무현 정부의 한미 FTA 협상을 넋 놓고 바라봐서는 안 된다. 최후의 순간까지 이를 저지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싸움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거슬러 올라가 따져 보면, IMF(국제통화기금) 위기 후 IMF의 지시를 충실히 따르며 신자유주의 노선을 강화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김대중 정부였다. 김대중 정부는 한국의 주요 기업을 해외에 매각하는 등 경제적 주권을 현저히 약화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었다. 대통령 개인의 자질, 특정 정권의 철학과 역량이 중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한미 FTA 문제를 노무현 개인이나 현 정부의 문제로 좁혀서 보다 보면 정작 진짜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놓치게 될 우려가 있다.
  
  "경제중심주의와 생태주의의 갈등, 이 시대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
  
▲ ⓒ프레시안

  한미 FTA에 관련해서 우리가 이 시점에서 반드시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될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간단히 말해서 '경제중심주의와 에콜로지(생태주의)의 갈등'이라는 문제로 환원시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온 세계가 거의 예외 없이 초국적 기업이 주도하는 성장 중심의 '세계화' 경제 논리에 입각해 돌아가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다른 대안은 없다"는 슬로건이 끊임없이 반복되어 왔다.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그리고 세계무역기구(WTO) 등 세계화를 주도하고 있는 경제 기구를 자기 마음대로 부려가면서 오늘날 초국적 기업들이 수십 년간 추구해 온 자본증식 수단의 최신 형태가 바로 FTA이고, 우리에게 그 치명적인 결정판이 한미 FTA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한미 FTA에 대해 논의하려면 그간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받아들여 왔던 세계화의 논리를 먼저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된다.
  
  세계화란 결국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새로운 세계 지배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식민주의의 또 다른 형태임이 분명하다. 직접적인 군사력에 의한 지배라는 형태가 아니라, 개발이니 성장이니 하는 이름으로, 좀 더 세련된 형태의 경제적 지배를 통해서 자본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구도다. 그런데 이러한 세계화의 논리에 의해서 무역이 활발해지고 교역량이 증대되고, 전반적인 생산과 소비가 늘어난다고 해서 과연 지구사회의 고질적인 빈곤문제가 해결되고, 빈부격차가 줄어들고, 사람들이 보다 건강한 환경에서 살 수 있게 되었는가? 세계 전체적으로 볼 때, 좋아지기는커녕 거의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고 하는 게 정직한 판단일 것이다.
  
  <성장의 한계(Limits to the Growth)>라는 로마클럽의 보고서가 나온 것이 1972년의 일이다. <성장의 한계>에 담긴 메시지는 종래와 같은 성장 논리에 입각한 경제발전이 이 추세대로 계속된다면 1972년을 기점으로 100년 안에 인류문명은 자연적 한계에 도달할 것이며, 문명사회는 필연적으로 붕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즉, 유한한 지구에서 무한한 물질 성장을 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가 나온 뒤 이와 비슷한 내용을 담은 자료와 문헌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당시 세계의 많은 지식인들과 미국 대통령 카터를 비롯한 일부 정치지도자들은 이 보고서의 내용을 굉장히 충격적인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그 후로 30여 년이 지났다. 하지만 세계의 주도적인 정치와 경제 시스템은 아직까지 이런 메시지를 귀담아 들었다는 흔적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물론 이 문제에 관련된 논의를 위하여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유엔환경개발회의(UNCED)의 지구정상회담은 인류문명사에서 획기적인 전기가 될 뻔했다. 하지만 인류문명의 존속 여부가 달려 있는 이 중대한 회의는 당시의 미국 대통령 부시 1세가 "미국적 생활방식은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말로 불참함으로써 절름발이가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회담은 결론적으로 '지속가능한 개발(sustainable development)'이라는 개념을 제시하였고, 세계의 주류 미디어는 마치 이 개념으로 앞으로 지구 사회가 경제와 환경의 조화 속에서 발전할 수 있는 돌파구가 열린 것처럼 법석을 떨었다.
  
  하지만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개념은 논리적으로 양립 불가능한 두 개념을 하나로 묶은 것이라고 봐야 한다. 실제로도, 이 말에서 방점은 '지속가능성'에 있지 않고, '개발'혹은 '성장'에 있다는 것이 갈수록 분명해졌다. 그러니까 이 개념에는 자본의 증식 속도를 늦추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환경위기 때문에 굳이 종래와 같은 경제발전 방식을 멈출 필요가 없다는 합의가 들어 있었을 뿐인 것이다. 이 개념이 수사에 불과하다는 것은 그 이후의 상황에서 계속적으로 드러났다.
  
  한국에서도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지금 '지속가능발전위원회'란 것이 있는 걸로 아는데 거기서 뭘 하는지 모르겠다.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말에 조금이라도 진정성이 있다면 새만금 간척 사업, 천성산 터널 공사, 방사성폐기물처분장 건설 결정 같은 노골적인 환경 파괴 사태가 벌어졌을 리 만무하다. 이것은 새로운 환경 정책을 도입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경제정책의 기본 노선을 바꾸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다. 내 생각엔 이 기본 노선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파국을 향해 돌진하는 기관차 속 무기력한 승객으로 남을 것인가"
  
  나는 이런 생각이 가끔 든다. 인간이 작정하고 지구를 망쳐서 사람과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면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 경제 시스템은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정말 더할 나위 없이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세계화는 결국 극심한 경쟁을 구조화하고 있는 체제다. 그러므로 가장 희생당하는 사람들은 경쟁력이 없는 사회적 약자일 수밖에 없고, 사회적 약자들은 단순히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서로 피나는 싸움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과정에서 삶의 근본을 성찰하고, 자연환경을 배려할 수 있는 물리적, 심리적 여유는 사회 전체적으로 갈수록 줄어들게 마련이다. 그 결과는 전 세계적으로 드러나는 공통한 현상이기도 하지만, 한국에서는 특히 노골적으로 나타나는, 바로 농업의 전면적 몰락이다.
  
  한국은 더 이상 농업국가라고 할 수 없다. 수십 년간의 경제성장의 결과 한국사회는 싱가포르나 홍콩 같은 중개무역으로 먹고사는 비농업 사회와 비슷한 길로 가고 있다. 이만한 국토와 몇천만 명이나 되는 인구를 가지고 있는 사회가 농업을 방기하고도, 자신의 역사와 문화를 가진 국가로서 존속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광기에 다름 아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우리는 흔히 서구에서 수백 년에 걸쳐서 이룩한 근대화를 몇십 년 만에 압축적으로 했다고 자랑삼아 얘기한다. 나는 바로 이 '압축적'인 근대화 과정이 필연적으로 농업 몰락 현상을 불러왔다고 생각한다.
  
▲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 ⓒ프레시안

  농업이 완전히 몰락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겠는가? 이른바 '근대화'에 성공하여 자본주의 소비사회로 더 깊이 들어갈수록 이 사회는 거의 해결이 불가능해 보이는 온갖 모순과 갈등, 부패와 불의(不義), 재난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사회로 변하고 있다. 대기오염, 식품문제, 도시 교통문제를 비롯한 환경문제, 토지투기, 부동산 문제, 사회 양극화, 비정규직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양육과 교육문제 등, 이 사회는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모든 단계, 온갖 국면에서 사람다운 삶을 살 만한 분위기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 사회적 약자들뿐만 아니다. 설사 기득권층이라 하더라도 이 사회는 인간다운 위엄과 보람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성숙한 사회가 되기에는 너무도 요원해 보인다.
  
  바로 이것이 '압축적'인 근대화, 경제성장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정부가 주장하는 대로 설사 한미 FTA가 한국경제의 성공적인 성장 동력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되면 더 많은 인간적 손상을 일으키고, 더 강도 높은 환경파괴를 가져올 것이 틀림없다고 보아서, 엄청난 비극이, 아니 결정적인 파국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발제 아닌 발제의 마무리를, 내 오랜 고민을 털어놓는 것으로 대신하려 한다. 지금 우리는 굉장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 오늘날 누구나 지구 환경이 위태롭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어린아이도 아는 사실이다.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빠른 속도로 녹고 있다"는 뉴스에 접하지 않아도, 서울 시내만 나가 봐도 이런 공기를 마시고서야 아이들을 낳고 기르는 게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1972년 로마클럽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가 허다히 나타나고 있다.
  
  이런 환경위기에 대해서 인간이면 걱정하지 않을 수 없고, 사실 다들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당장 자신의 생활로 돌아오면 너나 할 것 없이 하루하루의 생계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다. 장기적 안목에서 지구의 건강을 생각하고, 사회와 개인의 관계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당장 달마다 돌아오는 대출금 이자를 갚고, 신용카드 결제를 하는 것만도 벅차다. 자본주의 시스템의 본질상 살아남으려면 성장을 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모든 조직은 조직대로 자신의 덩치를 조금이라도 더 크게 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부심한다. 아마 <프레시안>도 내년에는 금년보다 회사규모나 매출액이 더 커지는 것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저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에 열중하다 보면 결국 지구는 더욱더 파국적 위기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나서서 '제로 성장'을 제안하면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제로 성장이라면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실업, 비정규직 등과 같은 단어를 연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연상하도록 오랜 세월 동안 세뇌되어 온 것이다. 한국에서 녹색당의 가능성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그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유권자가 성장을 멈추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표를 주겠는가? 그렇다고 명색이 녹색당이라면서 성장논리를 지지한다면 그것은 이미 녹색당이 아닐 것이다.
  
  생계(livelihood)와 삶 혹은 생명(life) 사이에 존재하는 이런 근본적인 모순, 충돌이야말로 자본주의 시스템의 지배를 받는 한, 우리가 영영 벗어날 수 없는 기본적인 딜레마일지 모른다. 이 딜레마를 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것이 15년 동안 <녹색평론>과 더불어 살아오는 동안 늘 내게서 떠나지 않는 핵심적인 고민거리였다. 여러분 중에서 묘수가 있으면 좀 말씀해 주시기 바란다.
  
  오늘도 결국 또 원론적인 이야기밖에 할 수 없었다. 지금 세계화 경제라는 기관차는 벼랑 끝을 향해서 질주하고 있다. 우리 각자는 이 죽음의 여정에 동참한 기관차 속의 무기력한 승객이다. 한미 FTA는 바로 이 기관차의 속도를 높이는 액셀러레이터가 될 것이다.
  
우석훈 : 나는 공식적으로는 경제학자다. 그런데 사실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시인이 되고 싶었다. 한국 사회가 오늘날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은 지난 10년 동안 시인이 입을 다물어서라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장정일은 1980년대 후반에 쓴 '햄버거에 대한 명상'에서 맥도날드로 대변되는 세계화에 대한 장정일 씨의 불편한 마음을 잘 드러냈다. 시인이란 이런 것이다 사회에 문제가 있으면 불편해 하는 게 그들이 하는 일이다.
  
  방금 김종철 선생은 '경제중심주의와 에콜로지의 갈등'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정작 경제학자 중에서 괜찮은 사람은 '성장을 많이 해야 한다'는 따위의 주장은 하지 않는다. 사실 이런 사고가 경제학에서 수용된 것은 1960년대 이후다. 그 전까지는 '축적(accumulation)'이란 말이 쓰였고, 1960년대 들어서야 '성장(growth)'이란 말이 경제학 교과서에 등장했다. 거시경제학 교과서의 '성장론(growth theory)'이 차지하는 비중은 교과서 끄트머리 5쪽밖에 안 된다.
  
  국내에서 발전(development)을 위해 경제를 성장(growth)시켜야 한다는, 이런 '발전경제학(development economics)'은 이른바 '서강학파'에 의해 주도됐다. 박정희 정권의 경제성장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한 일부 경제학자의 주장에 불과하다. 그나마 박정희 정권은 노무현 정부보다는 나았다. 당장 '국민소득 2만 달러' 이런 얘기는 박정희는 물론 전두환, 노태우 정권 때도 안 나온 이야기다. 숫자로 한 사회의 목표를 내건 건 처음 있는 일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보릿고개를 없애겠다" 따위의 얘기를 했지 노무현 대통령처럼 "국내총생산(GDP)을 2만 달러 수준으로 올리겠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지 않았다. 당장 파병할 때도 마찬가지다. 베트남 파병 때 박정희 대통령은 "세계 평화에 기여하겠다"고 파병했는데, 노무현 대통령은 "국익을 위해서 파병 하겠다"고 한다. 숫자로 한 국가가 나아가야 할 목표를 삼고 모든 것을 '국익'으로 환원하는 한국 사회는 분명히 과거와 다른 낯선 사회다.
  
  새벽에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이런 고민을 했다. 생태학에서는 다양성이 사라지면 생태계 전체의 안전성(stability)이 깨진다는 것이 정설이다. '한국 사회의 생태학'이라는 것이 있다면 지금 이 생태계는 비정상이다. 모든 것을 시장 논리로 환원하려는 충동과 그 충동에 몸을 내던지는 한 종의 '동물'로만 가득하다. 이런 상황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당장 연말부터 내년 대선 때까지는 또 모든 문제가 대선에 묻히지 않겠는가? 이런 정녕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말이다. 정말 모든 사람이 갑자기 착해지지 않는 한 탈출구가 있을지 회의적이다.

  "고르고 풍요로운 사회를 향한 꿈, 여전히 유효한가"
  
  오늘 대화가 순탄치 못하겠다.(웃음) 확실한 것은 지금처럼 성장만을 최우선의 가치로 신봉하는 사회에서는 어지간한 사람의 심성은 다 나빠지게 돼 있다. 당장 아이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착한 심성을 내던져야 사다리의 꼭대기에 성공적으로 갈 수 있는 게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그래서 지금 이 사회에서 성장에 대한 문제는 경제학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사람답게 사는 것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의 관심사가 돼야 한다.
  
  지금 이 경제 체제에서 희생당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개 힘이 없고 정직한, 착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렇게 희생당하는 착한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도 독하게 연대해서 이 공고한 시스템을 뿌리로부터 공격해서 변화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말한다. "대안이 없으면 비판도 하지 말라." 그런데 눈앞에서 벌어지는 터무니없는 상황을 보면서 어떻게 지식인이 비판적인 발언을 하지 않을 수 있는가? 내가 <녹색평론>을 만들면서 쓸데없이 자료를 많이 봐서 그런지 몰라도 지금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고 있는 것은 틀림이 없다.
  
  최근에 리영희 선생이 지적 활동의 마감을 선언했다고 보도되었다. 이제는 연로하신 분이 건강도 좋지 않아 지적, 정신적 능력이 많이 떨어진 탓에 더 이상 예전처럼 치열한 지적 활동을 하실 수는 없다는 말씀인 것 같았다. 그런데 리영희 선생께서 이렇게 지적 삶의 마감을 선언한 데에는 그런 이유 말고도 내가 보기에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프레시안>에도 기사가 나왔지만, 그 기사 중에 이런 대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 ⓒ프레시안

  즉, 리영희 선생이 "내가 산 시대가 지금 시대하고는 상황이 많이 다르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한계를 느낀다"고 얘기하셨다는 것이다. 리영희 선생은 식민지 시대가 끝난 후 좌우의 이념 대립, 분단과 한국전쟁, 독재 시대, 그 속에서 살아야 했던 민중의 고난 등을 몸으로 겪으며 냉전체제, 독재체제 하의 경직된 정치, 사회적 상황에서 지적 몽매주의를 깨는 데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 오신 분이다. 리영희 선생은 한국 현대사에서 핵심적인 지적, 사상적 과제를 정면으로 감당해 왔고, 그런 의미에서 그 분의 지적 생애는 우리나라 현대 지성사에서 가장 기억할 만한 창조적인 흐름의 하나를 대변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가만 생각해보면, 리영희 선생 같은 분이 왕성한 지적 활동을 전개하고 있던 상황의 핵심적인 과제는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핵심적 과제와는 뭔가 본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작년에 나온 선생의 회고록 <대화>(한길사 펴냄)의 후반부를 읽어 보면, 민주화가 어느 정도 성취되고 난 상황에서 리영희 선생이 오랫동안 고생만 해 오던 부인과 함께 해외여행도 하시면서 좀 느긋한 생활을 갖게 된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 이야기 중에서 그 분이 프랑스를 방문하던 중 파리의 에펠탑을 보면서 느낀 감상을 얘기하면서, 가령 이런 대규모 인공구조물을 세울 수 있을 만큼 이미 18세기에 프랑스나 서구사회가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적 지식과 사회적 역량을 가지고 있었던 사실에 대해 새삼 감탄하는 대목이 있다. 그러면서 그 무렵 우리 조선 사회는 대체 뭘 하고 있었는가, 따져보면 우리에게는 아무 것도 없지 않았느냐 하고 개탄하는 구절이 있다. 나는 이런 구절을 읽으면서 비록 오랫동안 리영희 선생이 젊은 세대의 사상적 스승이었지만, 이제 변화된 상황에서 리영희 식의 사고방식과 철학으로는 더 이상 우리의 핵심적인 시대적 과제에 대응하는 것이 미흡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제 우리는 경제지상주의, 혹은 과학기술만능주의가 활개 치고 있는 상황에서 그동안 우리가 그토록 따라잡기 위해 고심해 왔던 서구 근대적 문명, 물질적 풍요라는 가치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근원적으로 묻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시점에 도달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파리의 에펠탑과 같은 인공구조물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 배후에 무수한 민중의 희생과 피눈물이 있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그런 거대 구조물이 만들어진 시점은 바로 자본주의, 산업주의가 비서구 지역 토착민들과 유럽 자신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하여 야만적인 공격을 노골화해가는 상황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상가 이반 일리치에 따르면, '좋은 삶'이란 거창한 구조물을 건축하거나 뛰어난 문화재를 남기거나 하는 그런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풀뿌리 민중이 자신의 이웃과 함께 일하고, 서로 돕고 보살피는 가운데서 생을 즐기는 데 있다. 이반 일리치는 지배하는 자의 입장을 철저히 배격하는 사상가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민중의 평화로운 삶'이다.
  
  그리고 일리치의 관점에서 볼 때, 경제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공유지'의 사적 점유야말로 민중의 평화를 깨는 가장 원천적인 폭력이다. 그는 오늘날 세계의 민중이 평화를 되찾으려면 무엇보다도 민중의 자립적, 자치적 삶의 기반을 뿌리로부터 파괴하는 경제발전의 논리를 배격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리영희 선생 같은 분이 서구의 물질문명에 감탄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식민지 시대를 겪고, 분단과 전쟁을 거치면서 우리나라는 너무도 황폐해졌고, 지독히 가난했다. 아마도 지난 100여 년간 좌우를 막론하고 한국의 사상가, 지식인들에게 공통한 것이 있었다면 우리도 빨리 근대화, 산업화에 성공하여, 인간다운 풍요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되는 상황에 대한 염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좀 더 평등한 사회를 지향하는, 양심적인 사상가라면 '고르게 풍요로운 사회'를 꿈꾸어 왔을 것이다.
  
  나는, 어떤 점에서, 리영희 선생은 드물게 명민한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이제 와서 "지금 시대는 자신이 살아 온 시대와 다르다"고 할 때, 확실히 설명은 못하더라도, 이제는 자신의 지적, 사상적 능력으로 감당하기에는 벅찬, 뭔가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의 문제가 시대의 핵심과제가 되었다는 것을 예민하게 느끼는 지적 감수성을 그 말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연로한 지식인들 중에서 이처럼 자기 자신이나 자기 세대의 지적, 사상적 한계를 느끼고, 그것을 정직하게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이제 한국의 소위 진보적 지식인들은 리영희 선생이 자신의 한계를 고백하였듯이, 자신들이 의존해 왔던 사회진보의 논리, 세계관이 이미 낡아버린 구식의 사고방식이 아닌지, 다시 근원적으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고르게 풍요로운 사회'에 대한 꿈이 임박한 생태적 위기의 상황에서도 과연 아직도 유효한 것이 될 수 있는지 깊이 물어봐야 한다. 가령 오늘날 한국의 상당수 진보적 지식인들은 스웨덴과 같은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체제가 우리의 사회발전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과연 그게 타당한 방향일까?
  
▲ ⓒ프레시안

  사민주의가 성공적으로 작동하려면 결국 경제성장을 극대화할 수밖에 없다. 당장 미국, 유럽의 황금시대가 종말을 고하는 1970년대부터 북유럽 사민주의가 안팎의 도전에 직면한 것은 그 한 예다. 세계화가 본격화되면서 그 도전은 더욱 더 거세지고 있다. 물론 내가 스웨덴의 이번 정권 교체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며 '호들갑'을 떠는 조선일보 등 수구언론의 입장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도대체 스웨덴의 보수파는 한국의 그것과는 격이 다르니까. (웃음)
  
  물론 합리적인 사민주의자는 경제성장의 한계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래봐야 '과일나무를 키우는 정원사'의 입장을 벗어나지 못한다. 과일이 많이 열릴수록 자기에게 많은 이익이 돌아올 것이므로 정원사는 가능한 한 많은 과일을 생산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과일을 더 많이 생산해낼 수만 있다면 장기적으로 토양 생태계에 미칠 악영향을 생각하지 않고 화학비료와 농약을 마구 쓸지도 모른다. 아마도 이것이 바로 현재 진보진영의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벗어나기 어려운 함정일 것이다. 요컨대 계속해서 생산력을 높여 나가야 한다는 성장논리에서 시원하게 벗어나 있는 사람을 지금 소위 진보적 진영에서 발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청중 : 한미 FTA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여러 분의 글을 보면서 '돈 없으면 죽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때마다 한미 FTA를 막고 또 성장 중심주의를 탈피하는 데 힘을 보태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일상에서는 당장 먹고사는 문제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기 힘들다.
  
  청중 : 성장을 멈추자, 이런 얘길 들을 때마다 주류 시스템에 예속되기를 거부했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예를 들어 소규모 자급자족 공동체를 꾸리거나, 아니면 거지, 탁발승이 돼 유랑하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이렇게 구조를 이탈하는 것보다 구조 안에서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청중 : 나는 비정규직이다. 한때는 어엿한 정규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마흔 가까운 나이에 100만 원대 월급을 받고 생계를 꾸리고 있다. 만약 한미 FTA가 체결되면 결국 중산층이 몰락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럼 나 같이 지금도 중산층 아래에 있는 이들은 앞으로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가?
  
  청중 : 한미 FTA의 부정적 효과, 성장주의 문제 등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깊이 공감한다. 그러나 정작 내가 하는 일은 한미 FTA의 긍정적인 대목을 설파하는 일이다. 일상에서는 한미 FTA에 찬성하고, 성장주의를 부추기는 일을 하면서도 정작 머릿속의 이상으로는 한미 FTA 반대, 성장주의 반대를 외치는 '불일치의 삶'이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청중 : 한미 FTA에 대해서 불안한 마음이 많이 든다. 오늘 얘기를 들으니 이게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2대, 3대 더 나아가 인류가 직면한 엄청난 문제라는 생각이 더 든다. 몇 년 전 멕시코에 다녀왔는데 10살 미만의 많은 아이들이 생계를 위해서 거리를 헤매는 것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직업도 없이 고작 몇천만 원 저축해 놓은 것밖에 없는데, 정말 이민이라도 가야 한다는 말인가?

  
우석훈 : 간단히 내 생각을 말하겠다. 한미 FTA가 체결되면 비정규직은 더욱 더 힘들 것이다. 최근에 정부가 발표한 '비전 2030'을 보면 가능하면 노동을 비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대신 월급 하락을 막겠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 같았다. 방향이 완전히 잘못됐다. 이런 노동시장에서는 결코 숙련된 노동자가 나올 수 없다. 숙련된 노동자 없이 어떻게 세계를 선도하는 산업을 키울 수 있는가?
  
  사실 한미 FTA가 체결되기 전인 지금도 비정규직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대다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 지난 3년 새 이민이 크게 는 것은 단적인 증거다. 특히 농민이 이민을 많이 간다. 노무현 정부, 또 노무현 정부가 추종하는 철학으로는 결코 희망이 없다. 한미 FTA를 가지고 잘 살 수 있다는 이 정부의 주장은 도박판에서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부리는 호기라고 봐야 할 것이다.

  "서구 선진국은 결코 우리가 모방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우석훈 박사가 '이민'이라는 탈출구를 제안했다. 적극적으로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사실 이민 가는 농민, 괜찮은 가능성이다. 우리사회에 농촌공동체가 사라지는 것은 비극이고 크나큰 재앙이 되겠지만, 농민 개인으로 볼 때, 어차피 희생양이 될 게 뻔한 상황에서 농사 짓는 곳이 한국이든 뉴질랜드든 무슨 상관이 있는가? 국가가 언제 농민 편이 되어준 적이 있었는가? 하지만 호기롭게 이런 얘기를 하면서도 마음이 쓰린 것은 어쩔 수 없다.
  
  지금 중국에서 농업문제 전문가로서 중요한 발언을 하고 있는 원 티에쥔(溫鐵軍)이라는 지식인이 있다. 그는 동아시아 국가들, 중국, 한국, 일본은 근본적으로 소농에 기반을 둔 농업중심 국가로 가야만 장기적으로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그동안 동아시아 국가들이 탈아입구(脫亞入歐)의 노선에 따라 서구문명을 모방하여, 이른바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하여 일방적인 공업화의 추구에 매진해 옴으로써 농업, 농촌, 농민을 방기해 왔는데, 이것은 엄청난 착각에 의한 것이었음을 지적한다.
  
  서구국가들이 이른바 선진국이 된 것은 식민주의, 제국주의적 지배의 결과였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원 티에쥔은 역설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국제 농산물 시장에서 막강한 경쟁력으로 세계의 농민의 생계를 망가뜨리고 있는 거대 농업국가들, 예를 들어서 미국이나 호주의 기업농이 자랑하는 대규모 농경지만 해도 그렇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서구에 의한 식민주의적 착취, 수탈, 토착민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의 산물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결코 우리가 부러워할 만한 농업모델도 아니고, 현실적으로 모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현재 아메리카, 아프리카, 호주 등에서 흩어져 살고 있는 백인들과 서구 국가의 인구를 모두 합해보자. 약 10억 명이 된다. 서구가 식민지 침략을 하지 않았다고 가정하면 그 인구는 전부 지금 좁은 유럽 땅에서 모여 살아야 한다. 그러면 유럽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아마도 복지체제는커녕 당장에 자기네 국민들을 먹여 살리기도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지 않을까?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생각하면, 미국, 유럽의 길을 좇아가자는 것은 결국 대외적으로는 다른 민족에 대한 억압, 대내적으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격을 구조화하자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그런 구조가 얼마나 지속성을 가질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다시 한 번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미국, 유럽을 선진사회라고 할 수 있겠는가? 대내외적으로 엄청난 폭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사회가 어떻게 선진사회냐? 우리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내가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알고 있다. 그것은 지금이라도 우리 모두가 농업을 살리고, 농민과 농촌을 보호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인다면 희망이 생긴다는 것이다. 결국은 동아시아 사람들의 머릿속에 100년 동안이나 깊이 박혀 왔던 편견에서 벗어나서, 농업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을 바꾸는 것만이 사는 길이 될 것이다. 동아시아의 역사적, 사회적 조건에서는 소농에 기반을 둔 농업중심 사회가 후진사회이기는커녕, 가장 바람직할 뿐만 아니라 가장 현실적으로 열린 활로(活路)라고 하는 원 티에쥔의 의견에 나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 ⓒ프레시안

  한미 FTA를 추진하거나 지지하는 사람들은 기업가, 관료, 언론인, 정치인을 막론하고, 내심으로 "농업은 포기하자"고 생각하고 있다. 농업이 경제발전에 걸림돌이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의문을 품는 것은 과연 그게 경제학적으로도 타당한 운산일까? 우선 지금과 같은 세계화 경제 시스템 속에서는 갈수록 해결 불가능한 문제가 되어 가고 있는 실업문제만 하더라도 농업의 회생에 의해서만 비로소 치유의 희망이 있다는 점을 그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아직도 인간이 종사하고 있는 대부분의 일은 농사일이라는 기본적인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소농에 토대를 둔 농업중심 사회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수많은 고용 인구를 안정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겠는가?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사태를 근본적으로, 장기적으로 볼 수 있는 상상력이다. 그런데 그러한 상상력은 사심없이 양심적인 눈으로 보는 사람에게만 가능할지 모른다. 농업은 포기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그런 발상은 결국 권력 엘리트나 기득권층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안목에서만 나올 수 있는 것이다.
  
  한미 FTA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헷갈린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이 한미 FTA 때문에 어떤 운명에 직면할지를 생각하면 해답을 발견하는 것은 조금도 어렵지 않다. 그동안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추진해 온 이론가들은 온 세계가 개방된 시장의 혜택을 누림으로써 지구의 빈곤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실제 현실은 세계화가 확대, 심화될수록 지구 사회의 불평등 구조는 돌이킬 수 없이 심각해지는 양상을 보여 왔다. 단적으로 이것은 대기업의 노동자와 최고 경영자 사이의 소득 격차가 10년 만에 수십 배에서 수백 배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 같은 데서 확연히 드러난다.
  
  밑바닥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일수록 돈 없이도 생존을 누리고, 인간답게 위엄있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염원한다. 그동안의 경제개발을 통해서 한국사회는 전체적으로 물질적 자본은 크게 부유해졌는지 모르지만, 이른바 사회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은 거의 소진되어 버렸다. 예전에는 현금이 없어도 이웃끼리의 상호부조적 관계에 의지해서 생존, 생활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제는 가족도, 이웃끼리의 도움도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돈 없으면 죽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렇게 본다면 과연 우리 사회가 경제성장을 통해서 부유해졌다고 할 수 있는가? 오히려 진정한 의미에서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이 인간적으로 빈곤한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겁 먹지 말고 용기를 가지고 서로 연대하고 행동하자"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의 관점에서 본다면,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건 장구한 인류사에서 '찰나'에 불과하다. 인간은 본래 오랜 세월 인간관계의 네트워크 안에서 살아 왔다. 그것이 인간으로서는 훨씬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를 끝없이 갈라놓고 상호대립, 경쟁을 강요하고 있는 이 경제 시스템 속에서 산다는 것은 인간다운 내면적 리듬이 적응하기 어려운 굉장히 부자연스러운 체제임이 분명하다. 그러면 당장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탈출구를 마련할 수 있을까?
  
  나는 우리가 성장논리에 맞서서, 우리 자신을 노예가 되라고 강요하는 시스템에 대한 단호한 저항과 불복종을 조직하는 것밖에 길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폭력으로 맞설 수는 없는 일이다. 간디가 영국산 직물 대신에 인도 사람들이 스스로 물레를 돌려서 옷을 손수 만들어 입는 방식을 통해서 보여준 '보이콧'의 정신과 방법에 따라, 가장 중요한 것은 자립의 공간을 넓혀가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일은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우선 생각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 연대와 협력의 네트워크를 형성해갈 필요가 있다. 사실 주류 미디어가 무시, 외면하고 있어서 우리들이 모르고 있지만, 지금 세계 곳곳에서,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도, 그러한 네트워크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다. 농산물 직거래운동을 포함한 생활협동조합 운동, 지역화폐 운동, 이자 없는 은행, 노동자 자주관리 기업, 도시농업 운동, 대안학교, 에너지 자립 운동, 자전거 운동 등등, 다양한 방식이 가능하다.
  
  이반 일리치는 칠레의 아옌데 대통령과 친구 사이였다. 좌파연합의 승리로 아옌데 대통령이 집권하여 주요 광산을 국유화하는 등 사회주의 정책을 시작하였을 때 일리치는 아옌데 대통령에게 이런 충고를 하였다고 한다. "당신의 사회주의적 프로그램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당장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칠레 도시의 주된 교통수단이 되게 하라. 자동차로는 절대 사회주의에 도달할 수 없다." 이 충고는 철학적으로 매우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다.
  
  자동차는 배타적인 기술이지만, 자전거는 공생의 도구다. 일리치를 포함한 많은 근본적인 생태주의 사상가들은 근대적 과학기술을 거부하며 "과거로 회귀하자"는 몽상가들이라는 비난과 조롱을 많이 받아 왔다. 하지만, 일리치가 찬미하는 자전거야말로 고도의 근대적 기술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이러한 사상가들은 결코 과학기술 자체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 바로 '특정한' 과학기술을 비판하고 있을 뿐이다.
  
▲ ⓒ프레시안

  우리가 지향해야 할 네트워크는 어떤 것일까? 옛날에는 혈연, 지연, 혹은 학연에 바탕을 둔 인간관계의 네트워크가 주류였다. 그러나 지금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는 네트워크는 공통한 세계관과 사상에 바탕을 둔 네트워크다. 앞으로 이런 네트워크가 실업자,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들을 중심으로 확산될 날이 올 것이다.
  
  한미 FTA가 없더라도 이 추세로는 한국경제는 희망이 없다는 게 확실하다. 많은 전문가의 예측대로 2010년을 전후해서 '석유 생산 정점(Peak Oil)'이라는 것이 현실화되면, 석유가격은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폭등할 것이 틀림없고, 석유에 기반을 둔 세계의 산업경제 부문, 그 중에서도 특히 취약한 한국경제는 대재앙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이런 위태로운 전망이 목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가 새로운 성장 동력이라고 말하는 정부 사람들은 도대체 뭘 보고 사는지, 한심할 따름이다.
  
  내 얘기의 결론은 방향 전환을 위해서 열심히 싸우되, 동시에 타이타닉 호에서 뛰어내릴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대로 질주하면 빙산에 부딪칠 게 뻔한 배 위에서 엉뚱한 잡담이나 늘어놓고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이 빼앗겨서는 안 된다. 우리가 타고 있는 배가 타이타닉 호가 아니라고 고집 부리는 사람들을 굳이 설득하려고 하는 것은 부질없는 노력이 될 가능성이 크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영혼들과 함께 우리 각자에게 가능한 행동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행동은 어차피 인간으로서 우리 자신의 실존적 한계 때문에 철저히 '지역적 행동들(local acts)'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꺼번에 사회 전체를 먼저 바꿀 수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개인으로서 가능하지도 않지만, 엄청난 교만심의 발로일 것이다.
  
  최근에 인문학의 위기를 둘러싼 논의가 분분하다. 나는 이 시점에서 한국의 인문학이 살아나는 길은 한미 FTA라는 돌발적 상황에 직면하여, 우리가 주어진 역사적, 사회적 조건에서 대체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가 어떤 것인지를 놓고 치열한 대화를 나누고, 토론을 전개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토론이 활발히 일어나야 할 필요가 있다. 다가오는 불길한 사태에 대하여 겁먹지 말고, 용기를 가지고 서로 연대하고 협력하여 세계화 경제의 시스템 바깥에서 위엄있게 살아갈 수 있는 네트워크를 끊임없이 모색해 보자.
   
 
  정리=강양구,노주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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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10-30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menu/search_thema.asp?article_num=168
한미 FTA 뜯어 보기...
 

한 늙은 인디언 추장이 자기 손자에게 말했습니다.

" 얘야,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서 두 늑대가 싸우고 있단다. 한 마리는 악한 늑대로 그 놈이 가진 것은
화, 질투, 슬픔, 후회, 탐욕, 거만, 자기 동정, 죄의식, 회한, 열등감, 거짓, 자만심, 우월감 그리고 이기심 이란다.
다른 한 마리는 좋은 늑대로, 그가 가진 것은
기쁨, 평안, 사랑, 소망, 인내심, 평온함, 겸손, 친절, 동정심, 아량, 진실 그리고 믿음이란다. "
"어떤 늑대가 이기나요?" 손자가 묻자, 추장은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먹이를 주는 놈이 이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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