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삐 언니 책읽는 가족 17
강정님 지음, 양상용 그림 / 푸른책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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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다 읽고 난 느낌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압록강을 흐른다>>와 너무나도 흡사한 느낌이라는 것.  

시대적 배경이 비슷해서 그런지, 아니면 비슷한 연령의 아이 이야기여서 그런지... 하여튼 쌍둥이책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그 느낌이 비슷하다. 물론 내용이 비슷한 것은 절대 아니다.  <<압록강을 흐른다>>를 읽으면서 참 마음이 따뜻해지는구나 하는 것을 느꼈는데 이 책 또한 나에게 그런 잔잔한 따뜻함을 선물해 주었다.  

저자의 출생연도를 보니 우리 부모님보다 한 살이 많으시다. 그러니 저자가 겪은 이 어린시절은 우리 부모님의 어린시절과도 같겠다.  

길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혼자서 길을 따라 가는 복이는 그 길로 보고싶은 이삐언니를 찾아가는 과정은 그대로 설렘이 되어 독자에게 전달된다.  

고모할머니 조카인 광암아저씨 내외가 겪었던 안개골짜기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읽어주면 그대로 한 편의 귀신이야기가 되겠다. 나도 읽으면서 으시시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봄이 오는 날에 할아버지를 따라 나선 이웃할아버지의 생일잔칫길에 '월'(개)이도 함께 따라 나선다. 그 집에서 월이가 그만 새끼를 낳고 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월이는 흔적없이 사라졌다. 집에 가니 새끼와 월이는 그곳을 떠난 적이 없다는 듯이 자기집에 그대로 있어서 복이를 '귀신에 홀렸나?'생각하게 만든다. 내 생각에는 월이가 강을 5번 건너가며 새끼들을 나른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가 밤에 잠을 안 주무시고 새끼들을 함께 집으로 옮겨 주신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갓 낳은 새끼에게 사람냄새가 베이는 것을 개는 싫어할테니 그것도 아니고... 내게도 미스테리다. 그 월이가 어미를 잃은 새끼돼지를 먹여 살린 이야기도 특별하다. 저 또한 새끼를 낳자마자 잃고 마는데 마침 이웃에 어미를 잃은 돼지들이 젖을 먹지 못해 죽어가는 것을 가족들이 월이의 젖을 빨려 살려내는데, 그것은 "개가 돼지 새끼를 낳았다."라는 말로 둔갑해 온 동네의 사람들이 복이네 집에 구경오게 만들어 버린다. 요즘 같았으면 카메라 몇 대 정도는 방송국에서 나왔을 사연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프로에 월이가 출연하는 건데 말이다. 그것 때문에 월이가 힘든 고역을 치룬다는 것을 <월이의 귀가>편에서 만날 수 있다.   

<날아라, 태극기>에서는 일제말에 억압받는 우리 민족의 이야기에 저절로 울끈불끈 화도 났다가 함께 만세를 부르고 싶기도 하다가... 작은 아버지의 태극기 때문에 함께 고통 받는 복이네 가족의 이야기는 그대로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가 된다. 해방의 기쁨을 책을 읽으면서 함께 느낄 수 있으니 참 좋기도 하다.  

<광암아저씨의 섬>에서는 열심히 생활하시던 광암아저씨네가 편안히 쉴 곳을 찾게 된 듯하여 또 마음이 놓인다. 이제는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속지 않아도 되고, 귀신(어시)들에게 시달리지도 않을 것이며 공기좋은 그곳에서 광암아저씨는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으리라.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참 좋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내 나이가 이제 제법 지긋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우리 아이들은 과연 이런 책에서 나와 같은 그런 느낌들을 선물 받을 수 있을까? 이 책은 독서력이 꽤 되는 아이들이 읽는다면 참 좋을 듯하지만, 잔잔하여 고학년이라도 책읽는 힘이 부족한 아이들에게는 힘든 책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너무너무 좋은 책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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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1-17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압록강이 흐른다 리뷰 써야 하는데...
이삐언니는 서재생활 하기 이전에 읽어서 리뷰는 안 썼지만, 여기에 실린 태극기가 따로 출판됐지요.

희망찬샘 2010-01-18 06:30   좋아요 0 | URL
너무 할 말이 많으셔서 못 쓰는 것 아닌가요?

요구르트소녀 2010-01-28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런 책들을 보지 못해 느낌이 팍팍 전해지지 않네요.. 다음부턴 이런 책들을 많이 읽어 보아야겠어요..

희망찬샘 2010-01-29 09:22   좋아요 0 | URL
압록강은 흐른다~는 6학년 교과서에도 나온단다. 꼭 전편을 읽어 보기 바란다. 그런데, 아이들에게는 조금 어려울지도 모르겠구나. 시대를 겪지 못해서 어렵고, 그리고 또 그 내용도 어떻게 닿을지 의문이 드네. 나도 어른 되어서 읽었는데, 늦게 읽은 것 후회했다. 거기에 비하면 이삐언니는 좀 더 쉽게 다가올 듯. 개학하는 날 책 들고 갈게. 기다려~
 
선생님은 나만 미워해 이야기 보물창고 12
이금이 지음, 이영림 그림 / 보물창고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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쩍 소리나는 중고책을 사게 되어 기분 좋고. 

그림이 예뻐 기분이 좋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미있어 더욱 기분이 좋네요. (손에 잡고 5분이면 읽어요.) 

1학년 은채는 학교가 아닌 유치원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대요. 선생님은 다른 아이들에게는 친절한데 유독 자기에게만은 그렇지 않아요. 잘못을 해도 친구가 먼저 했는데 은채만 야단치고(순간포착 때문에), 발표하려고 손 들어도 은채만 시켜 주지 않아요.  엄마도 친구 엄마처럼 학교에 매일 청소 하라 오라고 조르는 아이를 보고 선물을 주지 않아 그런가 보다 생각한 은채 엄마는 선물을 사 들고 학교로 가요.  

(이 대목에서 잠깐, 울 동기 하나가 아이의 문제 행동에 대해 학부모 상담이 필요해서 이야기를 꺼내니 엄마가 봉투를 들고 나타났더란다. 그런 거 아니라고 돌려 보내니, 더 큰 액수를 넣어 아이편에 다시 보냈다는... 아이의 행동을 고치려는 엄마의 의지가 전혀 없다는 생각이 들어 무척 실망했더라는 이야기를 들은지도 한참이다. 엄마들의 이런 오해가 어디서 빚어졌나 생각하면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내가 볼 때 내 주위의 선생님들은 다 은채 선생님 같구만, 왜 엄마들 주위에는 이상한(?) 선생님만 항상 있는 것인지...) 

선생님이 한 말이 너무 멋져서 저도 흉내내고 싶습니다.  

"은채는 맏이라서 그런지 참 똑똑하고 야무져요. 요즘엔 아기 같은 아이들이 많아서 손이 많이 간답니다. 혼자서 마흔 명이 넘는 아이들을 돌보다 보니 은채처럼 제 할 일 다 알아서 하는 아이들한테 제대로 신경 쓸 겨를이 없어요. 혹시 은채가 선생님이 저만 미워한다(선생님은 나만 미워해)고 하지 않던가요?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제 마음을 잘 모를 거예요. 주로 잘하는 아이들이 집에 가서 선생님이 자기를 예뻐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은채 어머니가 저 대신 얘기 좀 잘 해 주세요. 선생님은 의저하고 야무진 은채를 참 좋아한다고요. 그런데 다른 아이들이 샘 낼까 봐 이야기를 못 해 줬다고요."   

멋진 말이긴 한데, 은채 입장을 헤아린다면 잘 하면 잘한다고 칭찬해 주는 노력도 필요하리라 봅니다. 아이는 잘 하건 못 하건 하나하나 소중하니까 말이지요.  

준비물 사러 문방구 갔다가 오락기의 유혹을 이기지 못 하고 불우이웃 돕기 성금까지 기계에 갖다 바치고 나서 서로 "너 때문이야."를 외치면서 우는 승우와 상민이는 역시 1학년이구나! 싶은 생각에 귀엽기까지 하다. 그래도 이 문방구 아저씨는 공부 시작하려 한다고 교실로 쫓아 내 주기도 하니 양심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학년 할 때 아이가 교실에 들어 오지 않아 찾아 나서니 문방구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있는 거예요. 공부 시간에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고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러 문방구에 오면 당연히 나중에 오라고 쫓아 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 나는 소심한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화가 나서 문방구 아주머니에게 막 따졌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주머니는 아이가 학교 안 다니는 아이라 생각 했을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네요.  

이만원 분실 사고가 생겼어요. 선생님은 돈이 나오기 전까지 아이들을 집에 보낼 수 없다고 하십니다. 은채는 헤어져 사는 엄마를 만나는 날인데, 집에 갈 수 없어 눈물을 흘리는 수영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짠합니다. 손만 들면 문제가 해결 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으로 은채가 손을 든 순간 기훈이가 으앙 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고백하는 말 "우리 형이 주운 사람이 임자라고 했는데, 저는 땅에 떨어져 주웠고 그러니 제가 임자잖아요."합니다. 형도 지난 번에 세뱃돈 받은 기훈이의 돈을 그렇게 슬쩍 가져갔다네요. 나쁜 형 같으니라고! 

전학 온 새 친구랑 친해지는 이야기도 또래 아이들의 마음을 잘 나타낸 참 좋은 이야기들입니다. 1학년 은채와 함께 1학년 아이들의 마음을 따라 여행해 보니 1학년 교사로 생활하는 것도 참 즐거운 일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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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0-01-16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학년 아이들 이야기라 더 와닿으셨겠네요. 은채의 순수함에 미소가 저절로 지어집니다.
친구를 위해 손을 들어주는 용기 대단합니다.

희망찬샘 2010-01-17 07:2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아이들의 영혼은 정말 순수하지요.
 
일기똥 싼 날 보물창고 북스쿨 5
오미경 지음, 정지현 그림 / 보물창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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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랑 일기쓰기를 해 보니 나는 참 나쁜 선생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1학년 희망이의 선생님은 일 주일에 3편의 일기를 써서 매주 월요일에 검사를 맡게 하신다. 아이를 어르고 달래고 해서 2편 쓰게 하는 날이 많은 나는 요즘 들어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내 교직 경력에 2학년을 운좋게도(?) 4번을 했다. 그 때 나는 아이들에게 일기는 매일 써야 하는 생활습관임을 강조하면서 일기장을 2권 준비하게 시켰다. 전담시간이 없는 1, 2학년은 한시도 아이들에게서 눈을 뗄 수 없기 때문에 일기를 검사할 시간이 없다. 일기 검사란 내게 있어서는 '사인 해 주는 시간'이 아니라 '아이들과 소통하는 시간'이기에 검사 할 시간이 제법 필요하다. 그래서 한 권을 학교에 두고 가면 오늘 당장 쓸 일기장이 없으니 다른 한 권이 필요한 것이다. (왜 2권의 일기장을 준비해야 하는지 끝까지 이해하지 못 하는 친구도 있다. 오늘 일기장 돌려 받지 않았다고 자꾸 달라고 하기도 한다. 어머니들께도 안내장을 보내드렸으나 읽지 않는 듯했다.)나는 두 권의 일기장을 번갈아 가면서 검사를 해 주고! 그 때는 내가 아이들의 삶과 교육에 무척 애정이 많은 열혈교사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되짚어 생각해 보니, "일기 쓸 것이 없어요."를 외치는 아이들을 다그쳐서 일기를 쓰게 하느라 우리 반 엄마들은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욕(?)을 해 가면서 말이다. 그래서 가르치는 아이들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아이를 낳아 보아야하고 그리고 그 아이를 학교에 입학 시켜 보아야한다고 선배 선생님들께서 말씀 하셨나 보다.  

이 책에는 가짜 일기를 쓰는 (진짜 일기는 비밀 일기장에 쓰는) '여깡' 김예강과 일기 쓰기를 무지무지 싫어하는 '쩐새우' 전세호가 나온다. 그 아이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진정한 일기를 쓰는가가 흥미롭게 전개 된다. 

일기를 쓰기 싫어하는 전세호의 뒤에는 일기검사를 열심히 하는 선생님을 훌륭한 교사라고 생각하는 그의 엄마가 있다. 선생님은 나(세호)에게 일기는 똥싸는 것과 같은 아주 쉬운 일이라고 하시지만, 변비로 고생하는 내게는 똥 싸는 것처럼 힘든 일이다. 선생님이 제안한 '나만의 열매따기' 미션을 완수한 친구들은 선생님네 농장에 초대받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약속을 하게 되는데... 세호에게는 특별히 '일기 한 달 빠뜨리지 않기 과제'가 강제적으로 주어진다. 그 과정에서 부모의 불화로 거짓 일기를 쓰는 예강이의 모습을 선생님께 알리면서 비밀이 있을 경우 그 일기장을 접어 내면 읽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게 된다. 세호는 일기를 못 쓴 날 하루-일기를 쓴 척하고 그냥 눈 딱 감고 접어 내고 마는데! 하지만 양심은 살아있는지라 무지 그 사실이 찔리는데... 그 사실을 아시고도 선생님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세호의 미션 수행을 인정 해 주시는데!(여기서 잠깐, 나도 아이들에게 일기장 접어 내도 된다고 했는데, 어느 날 우연히 펼쳐진 일기장의 빈 페이지나 날짜만 고쳐 쓴 아이들을 보면서 마음 심란했던 나날이 있었다.) 

이야기의 결론은 그들은 행복했더란다~ 이다.  

유쾌한 글읽기! 희망이 연령대(초등1, 2학년)의 어린이가 읽으면 독서시간이 즐거울 책이라 여겨진다.  

덧붙여 둔 '꼼꼼히 읽고 곰곰히 생각하기'도 나름 유익하다. 이런 류의 글들을 나는 때로 사족으로 보기도 하는데, 이 글은 일기에 관한 여러 가지 정보(가령, 유명한 일기로는 어떤 것들이 있나? 하는)도 제공하고 있어서 내게는 도움이 되는 부분이다. 아이들에게 일기에 관해서 할 말은 무진장 많지만, 그 많은 이야기 속에 그래도 포함시키고 싶은 대목이 많이 있기 때문에 더욱 반갑다. 

얇아서 금방 읽히는 책, 거기에 재미까지 보태어지니 더욱 즐겁다.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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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거짓말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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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기대도 하지 않은 책이 허를 찌르며 다가올 때가 있다.   

아침독서 신문에 원고 쓴 댓가로 받았던 여러 책 속에 섞여 있던 <<완득이>>! 책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별 관심 없다가 그저 한 번 펴 들었는데, 그만 놓지 못했다. 이렇게 재미있는 책읽기가 얼마만인가 하면서 신나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작가를 만나고 도서관에 가서 작가의 또 다른 책이 있어서 반갑게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를 읽었다. '왜 이렇게 글을 잘 쓰는 거야?'하면서 말이다.   

내일을 준비하던 천지가 오늘 죽었다. 

뭐지? 천지가 이름인가? 그런데 죽었다고? 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가 한 아이의 죽음과 관계되었듯이 이 이야기도 그 또래 아이의 죽음과 관계한 이야기다. 두 죽음의 차이라면 죽음을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세상이 살만한 것이라는 걸 알아가던 아이의 뜻하지 않았던 죽음과는 달리 천지의 죽음은  스스로 택한 죽음이라는 차이 정도.  

천지-죽은 아이 / 만지-천지의 언니 / 미란-만지의 친구 / 미라-미란의 동생이자 천지의 같은 반 친구, 천지의 죽음에 어떤 책임을 져야 할까? / 화연-이 아이는 과연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먼저 가서  미안해요. /그래도 씩씩하게 잘 지내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 안 그러면 내가 속상하니까. 사랑해요, 엄마./ 다섯 개의 봉인실 중 그 첫 번째  

항상 부러웠던 우리 언니. / 내가 멀리 떠나도 잊으면 안 돼. 사랑해, 언니. / 다섯 개의 봉인실 중 그 두번 째   

너 참 밉다. / 그래도 용서는 하고 갈게. 나는 가도 너는 남을 테니까. / 이제 다시는 그러지 말기를. 이제는 너도 힘들어 하지 말기를 / 다섯 개의 봉인실 중 그 세 번째 (교묘하고 집요하게 긴긴 시간을 괴롭힌 친구 화연에게)

알아도 가슴에 담아 둘 수는 없었을까? / 가끔은 네 입에서 나온 소리가 내 가슴에 너무 깊이 꽂혔어. / 그래도 용서하고 갈게. 처음 본 네 웃음을 기억하니까. / 다섯 개의 봉인실 중 그 네 번째 (고통을 주는 직접적인 대상보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또 다른 이가 더 미울 수 있겠다. 항상 화연의 괴롭힘을 옆에서 지켜 보았던 미라에게)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는 이 세상을 하직하려고 하는 자신에게! 

천지는 이렇게 다섯 장의 유언장을 실뭉치 속의 실패로 만들어 남겨 두고 떠난다. 마지막 사과까지 헌신짝 처럼 팽개쳐 버린 화연이 나도 참 밉다.   

만지가 실뭉치를 풀어가면서 실패를 찾아가는 것을 보며 미스터리물을 만나는 느낌이 들었고(다시 엉켜 버린 실뭉치는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딸과 동생을 보내고도 씩씩하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남은 가족의 아픔에 짠하면서 이어지는 모녀의 복수극(?)에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막막하기도 했다. 가해자인데, 갑자기 화연이 피해자로 느껴지는 것은 또 무슨 야릇한 장난이란 말인가!

그리고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이 모든 복잡한 감정들을 일으킨 이야기들은 죽고 싶은 아이의 머릿 속에서 그려진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상상이었구나. 그래서 이 책이 '우아한 거짓말'이구나. 천지가 죽지 않아 정말 다행이구나!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글을 되짚어 보니 미란의 아버지 곽만호와 천지 엄마와의 억지스러운 만남도 어색하지 않게 짜집기가 된다. 작가는 이렇게 나를 한방 먹이는구나! 했는데...  

이 글을 쓰며 끝장면을 한 번 더 읽어보니 천지는 가족품에 안기고 친구하고 화해 할 그런 세상을 꿈꾸면서 이 세상에게 작별을 고하고 있나 보다. (헷갈려~) 

천지가 고민스러운 친구 관계로 엄마와 언니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 사는 것이 고단한 엄마와 자기 앞길이 바쁜 언니가 진심어린 마음으로 상처 받은 영혼을 이해해 주었더라면 결과는 어떻게 변하였을까? 우울한 마음을 잘 이겨내면서 친구로부터 독립하는 법을 익힐 수 있었을까?

4학년 어린 나이에 대응할 수 없었던 어떤 힘(아마도 성격적인 문제가 크게 좌우하겠지만) 앞에서, 끝까지 이겨내지 못한 어린 영혼에게 삼가 조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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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1-02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봐야 되는데 아직 주문도 안 했어요. 많은 분들이 칭찬하던데...김려령 작가라면 기대해도 될 듯.

희망찬샘 2010-01-06 05:40   좋아요 0 | URL
자살을 다룬 이야기라 읽기 그렇다는 분도 있던데요. 하지만, 제게는 작가를 한층 높게 보게 한 책이며 여운이 많이 남는 책이었어요. 꼭 읽어 보세요.
 
경찰 오토바이가 오지 않던 날 사계절 중학년문고 5
고정욱 지음, 윤정주 그림 / 사계절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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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가졌지만, 언제나 자신에게 당당했던 동수를 상처 받게 한 세상의 이야기다.  

소아마비 장애를 가진 동수는 친구들이 놀려도 장애는 단지 불편한 것 뿐이므로 그 친구에게 맞설 수 있었다. 꿀릴 것이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 등을 의지해서 등교하는 것은 늘 죄송스럽다.  

어느 날, 전학 간 학교에 경찰 아저씨가 오토바이를 타고 도움을 줄 친구를 찾아 나타났고 그 주인공으로 동수가 뽑혔다. 멋진 오토바이 탄다고 모두들 부러워 하고 경찰 아저씨의 미담 사례는 신문에 텔레비전에 소개되기까지 한다. 친구들은 주인공이 된 동수를 부러워 하지만, 동수는 자신이 주인공이 아니라 들러리임을 알고 서운하면서 묘한 기분을 떨칠 수 없다. 그 일이 알려지면서 경찰 아저씨는 특진을 하고, 졸업 때까지 동수를 태워 주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채 더 이상 학교에 오지 않게 된다. 선물 하나를 들고 동수에게 나타난 날은 친구들이 경찰청 홈페이지에 남긴 안 좋은 글을 막아 낼 동수의 응원이 필요했기 때문. 씁쓸한 이야기지만, 그 덕에 동수는 세상을 조금 덜 믿게 되었으나 그래도 더 많은 자기 편을 얻을 수 있었다. 언제나 동수에게 애자라고 놀려대던 창진이도 동수의 친구가 될 준비를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 이야기가 고정욱 선생님과 어느 경찰관 사이에서 있었던 실제 이야기라는 사실이 가슴 아프다. 아니, 동화였다 할지라도 얼마든지 일어날 법한 이야기다. 우리는 장애인을 위하는 척 하지만, 사실은 자신이 좀 더 너그럽고 괜찮은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고 싶어 가식적인 친절을 베풀 때도 있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어쩜 나도 공범이 아닌가 싶다.  

고정욱 선생님의 <<가방 들어 주는 아이>>를 읽으면서 나는 중 1 때 친구의 얼굴이 떠올라 사실 맘이 조금 불편했다. 그 친구는 어머니가 아이를 가졌을 때 약을 잘못 먹었던 관계로 기형으로 태어났다고 했다. 키가 무척 작은 대신 살이 무척 많이 쪄서 뒤뚱뒤뚱 걸어야 했던 친구는 무거운 가방을 들고 경사 가파른 학교 길을 오고 가기가 힘들었다. 오는 길이야 집이 다르니 할 수 없었고 그 당시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빠져 있던 나는 친구의 하교길에 가방을 들어 주면서 집에 데려다 주곤 했다. 우리 집에 가는 시간이 많이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하는 것이 참 좋은 일이라 믿었기에 기쁜 맘으로 일을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런데, 잠시가 아닌 계속 그 일을 하려고 하니 슬슬 안 좋은 맘들이 들고 일어났다. 내가 그 일을 끝까지 했는지 중도에 그만 두었는지는 지금 기억 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반 아이들 모두는 그 친구랑 큰 문제 없이 잘 지냈던 것으로 기억이 남아 있으니 나의 마음이 어쩜 친구에게 들통 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알고도 모른 척 했으려나?)  

항상 말은 그럴 듯하게 하면서 더불어 살자고 하지만, 우리는 아직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사실 장애를 입어 힘든 이웃을 위해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으니 말이다. 소극적이긴 하지만 아이들에게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일이라도 열심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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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09-12-30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기억나는 친구가 있네요. 중학교때 친구인데, 대학교에 가서 같은 과에서 또다시 만났죠...
생각해보면, 저 역시 진심으로 그 친구를 대했는지, 착한아이콤플렉스였는지....잘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