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나 영화의 경우 그 제목이 판매량이나 관객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제목 하나로 사람의 마음을 사정없이 끄는 책들이 있다.
그 리스트를 공개한다.


1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따귀 맞은 영혼- 마음의 상처에서 벗어나는 방법
배르벨 바르데츠키 지음, 장현숙 옮김 / 궁리 / 2002년 7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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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부제: 마음의 상처에서 벗어나는 방법. 제목에 이끌려 당장 산 책이다.
'그녀는 이미 사십대 중반입니다만, 인생의 아름다운 면을 알기가 점점 더
힘들어졌습니다....우울증도 커져만 갔지요....그 결과 그녀는 지금 자신의
발랄함과는 완전히 절연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길모퉁이의 중국식당
허수경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2월
9,000원 → 8,100원(10%할인) / 마일리지 450원(5% 적립)
2004년 07월 17일에 저장
구판절판
나는 허수경의 시도 좋아하고 길 모퉁이라는 말도 좋아하고 중국식당도
좋아한다. 그러니 어찌 이 책을 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디를 가려고 길을 나섰던가. 어디 그 사무친 것이 있다고 믿었기에 길을
나서서는 오래 집으로 가지 않는가...나의 여행은 집으로 돌아가려는 여행인가.'
요절- 왜 죽음은 그들을 유혹했을까
조용훈 지음 / 효형출판 / 2002년 10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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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절한 예술인들. 최욱경, 오윤, 구본웅, 손상기 등.
이 책 중 특히 류인(柳仁. 1956~1999)이라는 조각가에 대한 소개가 마음에 든다.
45kg의 삐쩍 마르고 야윈 몸, 대상의 이면을 나꿔챌 듯한 커다란 눈망울의 소유자인
류인. ...약속시간은 깨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담당한 강의는 결강에서 그 의미를
찾았으며, 동인들의 모임을 이익집단으로 매도한 것 등...
요컨대 그는 악동이며 사회적 지진아였다.
화가의 우연한 시선- 최영미의 서양미술 감상
최영미 지음 / 돌베개 / 2002년 11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2004년 07월 17일에 저장
구판절판
시인 최영미의 서양미술 감상기. 다음은 들라크루아의 '제니의 초상'에 대한 설명.
'고지식한 제니를 위해 화가는 색채를 포기하고 낭만을 포기하고, 그리하여 자신을
포기한 거죠. 그를 향한 제니의 무한한 헌신에 비하면 그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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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07-02-12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곽말약,,,,,이름도 죽이네요~.
 

일주일 전 화개장터에서 사온 매실이 누르죽죽하길래
더이상 미룰 수 없어 큰 유리병을 사러 아이들을 데리고 집 근처의 대형마트에 갔다.
딸아이는 이번 나흘간의 연휴를 아주 즐겁게 보냈다.
예전 살던 동네의 남자친구가 우리 집에서 사흘 밤을 자고  간 것이다.
3학년이나 된 녀석들이 함께 목욕을 하지 않나, 잘 때도 한 침대에서 꼭 붙어 잤다.
모쪼록 내년에도 변하지 말아야 할 텐데......
옥수수 수염차를 1000원이 안 되는 가격으로 팔길래 계산대에 이르기 직전 카트에 집어넣었다.
옥수수 수염차라니 무슨 맛일까?

어제 아침 딸아이는 난생 처음 바둑대회에 참가하느라 아침부터 바둑학원으로 가고,
남자친구 부모는 딱 그 시간에 맞추어 녀석을 데리러 왔다.
성민이 녀석 처갓집에 갔다는 소문이 그 동네에 자자하대나?
전날 밤 치킨을 시켜먹었으니 씨암탉을 잡아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아이의 도시락을 싸는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너스레를 떨었다.

그 전날  마트에서 나는 해바라기씨 봉지를 들었다 놓았다 했다.
예감이라고 해야 하나?
집에 있는 것만으로도 보름치는 되는데 우리 토리가 이 새 해바라기씨를 먹을 수 있을까?

한 달 전 갑자기 한쪽 눈이 돌출되어 우리 모녀를 기절 시킨 토리.
학교에서 돌아와 그 모습을 발견하고 딸아이는 30분 동안 울었다.
피아노 학원도 빼먹고 울면서 동물병원에 달려갔더니 안약을 처방해 주었다.
딸아이는 자기 지갑 속의 돈(칠만 원)을 다 써도 된다며 들고 갔는데
병원비는 13,000원이었다.
하루아침에 한쪽 눈을 실명, 애꾸눈이 된 토리는 순식간에 몸이 반쪽이 되었지만 잘 먹고 잘 놀았다.
그런데 지난 주 금요일 아침, 나머지 한쪽 눈마저 그런 증상을 보이는 게 아닌가.
딸아이와 성민이는 토리의 눈에 안약을 넣어주는 등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오늘 아침  마루의 블라인드를 걷다가 보니 토리가 노란 플라스틱 물통 속에 몸을 반쯤 걸치고
죽어 있었다.
딸아이는 토리를 다시 데려다 달라며 울부짖었고,
나는 속으로 울음을 삼켰다.
책장수 님은 퇴근하고 돌아와 함께 토리를 묻어주자고 아이를 달래었다.

조금 전 토리를 화단에 묻었다.
딸아이의 제일 친한 여자친구가 그 의식을 함께 집행하러 집으로 왔다.
토리의 집을 물로 씻고 나면 그 집을 닦던 예쁜 손수건에 토리를 쌌다.
나는 나무젓가락을 잘라 스카치테이프로 꽁꽁 묶어 작은 나무 십자가를 만들어 들고 나갔다.

토리를 묻고 돌아와 우리는 함께 수박을 먹었다.
수박으로 갈증이 해결이 안 되어 냉장고 속의 옥수수 수염차 마개를 땄다.
세상에나, 얼마나 시원하고 맛있는지!
요구르트 병에 옥수수 수염차를 가득 담았다.
쇠약해진 몸으로 간신히 내려와 물을 마시다 새벽에 숨이 끊긴 토리.

영어공부를 하러 가기 전 아이들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토리를 묻은 화단 위에
옥수수 수염차를 뿌려주었다.

토리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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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7-05-28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약하고 수명이 짧은 애들이라..너무 안타깝고 슬퍼요....
토리야, 우리 햄돌이랑 새앙쥐들 만나면 잘 놀아라.

하지만, 또 다른 토리들에게도 사랑을 계속 나눠주시겠죠?

비로그인 2007-05-28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리가 왜 갑자기 죽어서 주하를 슬프게 했을까요...
어린 마음엔 집에서 키우는 식구들 죽어서 나가면 상처가 제법인데.
주하가 씩씩하게 이겨내길 바랍니다.
로드무비님도 상심 마시고요.

사마천 2007-05-28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음을 알게 되면서 인간은 성숙해가죠. 그래도 아이들에게는 너무 이른 것 아닌가요. 그래서 저도 애완동물 키우는 것 반대였는데 갑자기 영화 하나가 생각납니다. <우리 개 이야기>라는 일본 영화입니다....

paviana 2007-05-28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테고리 이름이 너무 맘에 와 닿아요...
주하가 너무 슬퍼하지 않고, 토리가 좋은곳으로 갔으면 좋겠네요..

마노아 2007-05-28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가 토리와의 이별로 슬픔을 하나 더 배웠겠어요. 같이 마음이 아픕니다. 어여 씩씩해지기를 바랄게요. 토리야 안녕.

로드무비 2007-05-28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 님, 아이는 이미 씩씩합니다.
'토리야 안녕' 해주시니 새삼 눈물이 왈칵.

파비아나 님,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게 이 카테고리인가 봅니다.
토리는 분명 좋은 곳으로 갔을 거예요.

FTA반대 사마천 님, 사실 저조차 감당이 안 되던걸요.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라는 유행가 가사가 가슴에 콕 와박히더라고요.
딸아이는 아기 햄스터들을 새로 데려와 키우겠다고 합니다.

체셔고양2 님, 물통 속에 코를 빠트리고 죽든, 술독에 빠져 죽든
고독(혹은 죽음)은 개별적인 거예요.
좀더 의연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브리니 님, 한 달 전, 님 방에 달려가 하소연하고 싶었어요.
우리 토리 사는 동안 행복했겠죠?



네꼬 2007-05-28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가 훌쩍 자랐겠네요. 그 과정을 성심껏 지켜주신 엄마의 도움으로요.

비로그인 2007-05-28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쇠약해진 몸으로 간신히 내려와 물을 마시다 새벽에 숨이 끊긴 토리.'

아욱...이 부분에서 눈물이 핑- 돌고 말았습니다.
아끼던 개를 보는 눈 앞에서 멀리 떠나보내야 했던 마음도 아팠는데.
혼자서 물 한 모금 마시려 애를 쓰다가 간 그 작은 생물이 눈 앞에 보이는 것 같아.
이런이런. 목이 메여요. 저는 동물에 관해서라면 무조건적으로 약해져서...

홍수맘 2007-05-28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게 두려워 햄토리와 토끼를 키우자는 홍/수의 고집을 매일 꺾고 있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이런일이 아이들에게 큰 경험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구...
에구구, 갑자기 생각이 많아지네요.
토리는 분명 좋은 곳으로 갔을 거예요.

Mephistopheles 2007-05-28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저것 때문에 10년전부터 애완동물 안키워요...

2007-05-28 18: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INY 2007-05-28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래도 키워요. 애완동물가게에 있느니, 나쁜 사람 만나느니, 나랑 살자~라고 하면서요.

2007-05-29 0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eylontea 2007-05-29 0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궁... --;

밥헬퍼 2007-05-29 0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는 것도 중요하고, 잘 떠나보내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가 많이 슬픈 모양입니다.

로드무비 2007-05-29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헬퍼 님, 토리가 갑자기 그렇게 되면서 계속 마음이 묵직했어요.
차라리 죽음은 받아들이기가 쉽더군요.
사는 건 정말 보통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는 괜찮아졌습니다.

실론티 님, 흑흑.

방울이 꼬박 일주일 님, 저도 어제 하루종일 울었어요.
정든 것과의 이별이 이런 거군요.
아이를 위로해준 말이 바로 그거였답니다.
토리만큼 행복한 햄스터는 없었을 거라는.
나중에 나중에 하늘에서 만나자.
방울이랑 같이 우리 모두......

브리니 님, 전 이제 그만 키우고 싶은데 딸아이는
새끼 햄스터 두 마리 데려올 거라고 꿈에 부풀어 있습니다.
또다시 그런 일을 겪는다고 하더라도
토리들 사랑하는 일 멈추면 안되겠지요?

마이걸의 주인공 님, 정이 많은 아이는 아닌데
햄스터를 돌보는 모습을 보니 저보다 낫더군요.
전 그 튀어나와 굳은 눈을 보는 게 안쓰러워서
안을 때도 멈칫멈칫했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무서워하던 아이가 그 모습까지 귀엽다고
쓰다듬어 주고......
아이들의 영혼이 맑은 것 맞아요.
옥수수수염차는 그러고 보니 그런 효능에 대해 들어본 것도 같아요.
사는 게 소태처럼 씁니다.

메피스토 님, 그 심정 이해하겠습니다.

홍수맘 님, 그러게 말입니다.
어차피 살다보면 겪을 일 다 겪게 돼 있는데
너무 어릴 때 경험하는 게 어떨지 염려도 되지만
사랑하여 함께 안고 뒹구는 그 순간은 또 좋더라고요.
홍/수가 간절히 원하면 그 소원 들어주세요.^^

L-SHIN 님, 엉엉.
사랑하는 대상이 아픈 것, 쇠약해지는 모습 정말 못 보겠더군요.
식구나 자식이 많이 아픈 사람은 그 심정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들더이다.
아무튼 어제는 마음이 약하고 순해져서 이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리라
생각했답니다. 하루만의 결심.^^

네꼬 님, 정말 그랬으면 좋았겠는데.
침착하지 못하고 아이보다 더 호들갑을 떨어서요.
사는 일이 자신이 없습니다.


2007-05-29 1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05-30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나무젓가락으로 십자가를 만들어 주신 님의 손길이 사랑스러워요.
아이는 생각보다 의연하지요. 옥수수 수염차, 저도 좋아하는데요, 구수하지요.
아, 그걸 화단에 뿌려주셨군요. 의식을 치르는 과정이 하나하나 눈에 보이는 듯
해요. 옥수수 수염차...

2007-05-31 1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7-05-31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 님, 아이가 틀어줘서 토리 동영상을 몇 번 봤는데요.
세상에 있을 수 없는 방정맞고 간드러진 목소리가
중간에 끼어들더군요.
제 목소리였습니다.
토리는 제게도 그런 목소리가 있다는 걸 가르쳐주고 갔습니다.
저런 의식 또한 생각도 못할 일인데, 태연한 얼굴로 하게 되던데요?^^

아키타이프 2007-06-08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하가 강하네요. 다시 키우겠다고 하는것 보면......
주하보고 배워야겠어요.

로드무비 2007-06-11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키타이프 님, 지지난주 말, 아기 햄스터 두 마리 데리고 왔는데
사흘 만에 하늘나라로 갔네요.
너무 어린 걸 데리고 온 걸까요?
다음주엔 조금 더 큰 놈으로 다시 데리고 올 예정입니다.
햄스터를 꼭 건강하게 키우고 말겠다고 하니, 제법이죠?^^
 
선방일기
지허 스님 지음 / 여시아문 / 200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어제 부처님 오신 날, 우리 집 마루에도 보라색의 예쁜 등이 하나 걸렸다.
지난 주말 지리산의 한 암자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돌아오는 날 스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이다.
지지난 해 가을에 갔을 때 언덕의 사랑방에  종이 로봇을 열두 갠가 조립하여
통유리 창틀에 나란히 세워두고 왔는데 없어졌다.
누구의 짓일까.
부처님 오신 날이 코앞으로 다가와서인지 우리 일행을 비롯하여 신도들이 떼로 몰려들었는데
공양주 보살 할머니는 느긋했다.
된장국을 한 솥 가득 끓여 놓았고, 쑤어논 묵에 간장을 끼얹어 내면 되고,
입에 넣으면 녹아버리는 깻잎 장아찌에  김치가 맛있는데 뭐가 문제냐는 것이다.

사랑방의 그 묵직한 책꽂이도 여전했다.
이번에는 박종철출판사에서 나온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여섯 권과
<우키요에의 미>,  일본 강담사에서 출간된 Zen  Painting이라는 책이 유독 눈에 띄었다.
눈가에 장난기가 자글자글한 스님께 버릇없이 여쭈었다.

"이 책들 스님이 읽으시는 겁니까?"

한 번 오면 며칠이고 틀어박혀 책만 읽고 가는 친구가 있다고 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그리고 불교미술을 함께 읽는 스님이라니, 그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이번주  지허 스님의 <선방일기>를 꺼내어 곶감 빼먹듯 아껴가며 읽었다.
1970년대 초, 상원사에서 동안거를 결심하고 시월 초하루 그곳을 찾아 김장을 돕고
10월 15일 결제부터 1월 15일 해제일까지 함께 한 스님들의  생활을 기록했다.
1973년 신동아 논픽션 공모전에 당선된 글이라고 한다.

수행자로서의 진솔한 독백이 마음을 흔드는가 하면,
긴긴 겨울밤 곳간에서 몰래 빼돌려 구워먹는 감자구이 동호회를 결성하질 않나,
또 별식으로 만두를 만들어 먹는 날의 소동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어느 날 밤에는 또 정신이 우위냐 육체가 우위냐 하는 질문으로부터 촉발된
유물唯物 유심唯心 논쟁이 뜨겁게 벌어지기도 하며, 용맹정진 중 수마에 함락당하는
치열한 현장이 생중계된다.
세모의 고독은 또 어떻고......

내일이면 동안거가 끝나는 날, 빨래터에서 나란히 내의를 빨아 널고 
지객과 지허 두 스님이 나누는 대화를 엿듣는 재미는 각별한 것이었다.

지허 스님의 <선방일기>는 가볍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다.
재미있어서 단번에 읽히는데(일부러 며칠간에 걸쳐 나눠 읽었다) 여운이 길다.

--(뒷방 조실 스님을 보고 있으면) 때로는 파라독스하고 때로는 페이소스하다.
때로는 도인의 경계에서 노는 것 같고 때로는 마구니의 경계에서 노니는 것 같다.(47쪽)

문고리를 잡고 있는 손들이랄까, 댓돌 위의 고무신 몇 켤레의 흑백 영상으로 다가오는 책이다.
35년 전 지허 스님과 함께 상원사에서  겨울을 나신 스님들,
견성의 문턱을 지나 모두 성불하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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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우와 연우 2007-05-25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은 경박하고도 경박하고, 사람들은 자꾸만 우로우로만 가는데, 마르크스와 엥겔스 그리고 불교미술을 함께 읽는 스님이라니요...
저도 궁금합니다.
담아갑니다.^^

2007-05-25 15: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7-05-25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도원/ 수녀원 님, 오래 전 사둔 책인데 절에 다녀오니 문득 생각나서
찾아 읽었어요.
감상이나 과장 없이 '딱 그만큼'의 이야기를 적어나간 작은 책자입니다.
좋아하실 듯.^^

건우와 연우 님, 전 <우키요에의 미>를 꺼내어 잠시 읽었어요.
흥미로운 책이더군요.
그러게요, 저도 그 스님이 누군지 모르면서 묘한 호감이 뭉게뭉게......^^

플레져 2007-05-25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을 보는 순간부터... 폭풍같던 마음이 고요히 가라앉아요.
그 절에 다녀오셨던 이야기, 언젠가 읽은 기억이 나네요 ^^

로드무비 2007-05-25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절 사진 페이퍼 다시 퍼올까요?
플레져 님은 정말 머리가 좋아요. 감탄.^^

2007-05-25 18: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5-25 1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5-25 1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waits 2007-05-25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지리산의 암자... 전 잠시 둘러보는 것 말고는 절에 머무른 적이 없어요. 인간이 너무 소란해서 그런지 한 번 생각도 못해봤네요. 영혼이 좀 진정되면 언젠가 그런 날이 오려나... 뜬금없이 부석사라도 가보고 싶네요. ^^

로드무비 2007-05-26 0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어릴때 님, 플레져 님, 곱게 늙은 비구니 님,
연두색 포스트잇 맨 첫 페이퍼로 그 절 사진 글 옮겨놨습니다.
반갑게 봐주시길.^^

나어릴때 님, 아는 분이 스님 친구라 묻어서 갔습니다.
2년 전 그 방에 처음 들어선 순간 이상한 기분을 느꼈답니다.
있어야 할 곳에 당도한 느낌.
헤헤, 너무 멋을 부렸나요?^^


2007-05-25 2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검둥개 2007-05-26 0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단번에 읽히는 책을 그렇게 아껴두고 조금씩 나눠 읽으셨어요? ^^
정말 존경입니다.
전 서점에 서서 반 넘게 읽을 책을 사가지고 와가지고
집에 온지 삼십분만에 끝낸 적도 있어요.
얼마나 허망하던지... ㅠ.ㅠ

로드무비 2007-05-26 0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그런 책이 있어요.
<회송전차>도 그렇게 읽었고.
검둥개 님, 먹는 것도 그렇게 자제가 되면 을매나 좋을까요?^^
(아이고, 그 책은 마저 서서 읽고 오시지!)

혜덕화 2007-06-04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소개로 이 책을 만났습니다. 고맙습니다.

로드무비 2007-06-05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에 혜덕화 님 리뷰 읽고 기분좋게 하루를 엽니다.^^
 

두 달 전인가? 난생 처음 '코스코'라는 데 갔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자못 충격적이었다.

디스플레이라고 할 것도 없이 어마어마하게 쌓인 온갖 종류의 상품들을 보니
어안이 벙벙해서 감히 무얼 선택하고 집어들어 나의 수레에 넣을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 날 산 것이라야 코코넛으로 만들었다는 친환경 주방세제 한 통과 식품 몇 종.
이 기회에 실컷 먹어보자고 하여 노르웨이산 연어를 덩어리(약 5만 원)로 샀다.
그리고 그토록 갖고 싶었던 삼천얼마짜리 코스코의 빨간색 비닐대형 쇼핑가방.

내가 들었다 놨다 한 것은 어이없게도 세 개가 한 세트인 8천 원짜리 걸레.
도톰한 면과 체크 무늬가 예뻐서였다.

--걸레가 이렇게 예쁘면 왠지 청소도 부담없이 자주 하게 될 것 같지 않아?

내 안의 악마가 속삭였다.

-- 걸레를 돈 주고 사는 건 미안하지만 그 효과를 생각해 보라고.
한 1년은 바닥이 반들반들한 집에서 살 수 있을 텐데......
걸레가 너무 좋아서 책꽂이도 가끔 닦고 싶을지 몰라.

남편은 두 번이나 걸레 세트를 수레에 집어넣었다가 다시 매대에 갖다놓으러 가는
나의 모습을 어리둥절한 얼굴로 지켜보았다.

"안 쓰는 수건도 집에 많은데 걸레를 비싼 돈 주고 사면 벌 받을 것 같아서.
그런데 왜 이렇게 자꾸 눈이 가지? 누가 나에게 저걸 선물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변명이랍시고 지껄였지만 그 말은 진심이었다.
좀 센스 있는 남편이었다면 몰래 챙겨놨다가 따로 계산하여 아내를 기쁘게 했을 텐데......

모처럼 들어온 알라딘, 어느  님의 리뷰를 읽다가 컴퓨러 우측 상단 모 포털 지붕의
'****5월 반짝세일 최고 70%'라는 광고문구가 눈에 들어와 나도 모르게 잽싸게 클릭했다.
읽던 리뷰는 중단하고.

청소를 생각하니 걸레가 먼저 눈에 들어오고,
운동이랍시고 동네라도 몇 바퀴 돌려고 생각하니 선캡과 여름 '추리닝'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참, 연어는 구워서도 먹고 샐러드로도 먹고 샌드위치에도 끼워서 먹고 한 2주 잘 먹었는데
기대했던 것과 달리 질리지 않았다.
아쉽기도 하지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코스코를 나오며 든 생각.
이렇게 살다가는 지구가 곧 멸망할 것 같다는......

'사는'(?) 게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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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 2007-05-22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쁜 걸레에 흔들리시는 로드무비님은
'여전히' 귀여우셔요 ^^

울보 2007-05-22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그 마음 저도 알것같아요,
저도 아직 코스코는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데,,,궁금하네 ?

2007-05-22 1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7-05-22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가워서 땡깡부터 님, 넙치 님 리뷰였습니다.ㅋㅋ
잠깐 지둘리시라요.^^

울보 님, 저 그곳 스넥코너에서 사람들 먹는 피자 보고
기절하는 줄 알았어요.
엄청나게 큰 사이즈, 싼 가격.
피자 별로 안 좋아하는데 한쪽 먹어보고 싶을 정도로 맛나게 생겼더군요.
언제 한 번 우황청심환 드시고 가보시길.^^

mong 님, 정말 귀엽죠?=3=3=3
전 제가 징글징글합니다.
이 나이에 걸레 같은 것이나 생각하면서.........

홍수맘 2007-05-22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야말로 절대 공감입니다. 전 문구류에 약해요. 애들과 문방구엘 가면 제가 더 흥분해 만져보고 고르고 적어도 인형달린 연필 하나라도 꼭 사고 나온다는... ^ ^;;;;;

비로그인 2007-05-22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면서, '아, 제목의 '사는'은 Life가 아니고 Buy의 뜻이었구나' 라고 생각하다가..
마지막 문구에서는 또 헷갈려버렸습니다. (웃음)
저도, 요즘 왜 그렇게 캐쥬얼화 츄리닝을 사고 싶은지...운동도 안하면서. (긁적)

Mephistopheles 2007-05-22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다른 의미로 코스트코(카스코)에 가면...1층에 진열되어있는 각종 가구들...그러니까 전원주택마냥 넓은 뜰이 있는 집에 비치하면 근사할 그네, 등, 혹은 바베큐 그릴을 보면 멍하니 바라보는걸요...나도 뜰있는 집만 있다면...!!! 하면서요...
(거기 도서와 음반 DVD도 제법 많아요...^^)

로드무비 2007-05-22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L-SHIN 님, 'Live'와 'Buy' 두 가지 다죠, 뭐.ㅎㅎ
옷은 잘 안 사는데 사이즈 때문에요.ㅠ ,. ㅜ

홍수맘 님, 전 안 약한 품목이 없습니다.ㅎㅎ
문구류라면 또 환장하죠.
우짜겠습니까. 생긴 대로 살아야죠.^^
(인형 달린 연필들 나중에 페이퍼로 좀 보여주세요.)

메피스토 님, 주하 영어사전과 책 몇 권도 샀답니다.
할인폭이 꽤 크던데요?
마트에 안 가는 것이 돈을 버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적도 있는데.
집에서는 뭐 얌전히 책만 읽고 있나요? 님이나 나나...=3=3=3

2007-05-22 1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5-22 1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꼬 2007-05-22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어떤 신부님이 강론 시간에 하신 말씀. 고백성사 하러 들어오는 신자들의 죄고백 중 제일 어려운 것이 할머니들의 고백이랍니다. "(한숨) 그저 사는 게 죄죠." 저, 그런 얘긴 줄 알고 클릭했다는... -_-a

2007-05-22 14: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7-05-22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왕자 컬렉션 님, 그건 아는데 둘리는 또 멉니까?
안 그래도 스노우볼이냐 오르골이냐 양철 도시락 통이냐
고민하느라 머리가 뽀개집니다.^^*

네꼬 님, 할머니들은 거의 道의 경지에 이르신 분들이고.
제 말 뜻은 좀 다르다는 것 아셨죠?^^

인형 달린 연필 한 자루 님, 목 빠지게 기다리겠습니다.^^


2007-05-22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7-05-22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여운 고민 님, 그 세트가 신통치 않았나 봅니다.
아님 자신에 대해 너무 엄격하신 건 아닌지요.
전 아까 재밌게 읽던 리뷰를 중단하고 무심코 세일광고를 클릭하는
자신의 행동에 놀랐어요.
그래서 이런 페이퍼가 나왔지만.
문제는, 반성의 포즈만 취하고 진짜 반성(실천)은 잘 하지 않는다는 거죠.^^;

비로그인 2007-05-22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아잇 참, 좀 이쁘장한 걸레때문에 내안의 악마가 속삭인다니 ㅋㅋ
아- 주부에게 이쁘장한 걸레는 고작 이쁘장한 걸레가 아닌걸까요?
전 아직 개념정립이 잘 안되어요 ㅎㅎ

진달래 2007-05-22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친구 하나가 늘 예쁜 티셔츠를 보면 꼭 하는 말이, "집에서 입으면 예쁘겠다." 그럼 전, "넌 집에서 입는 옷도 사냐?" 그렇게 외출복으로 입던 옷이 흉해지면 집에서 입곤 했는데, 이젠 저도 텔레비전에 나오는 여배우들처럼 예쁜 추리닝 집에서 입고 싶어지더라구요. 참고 참고 참다 '사는 거'니, 죄 정도는 아니겠죠? ^^;; 근데 참 궁금하네요, 그 걸레가 을매나 예쁜지... ^^;;

2007-05-22 18: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건우와 연우 2007-05-22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도 거기서 걸레를 들었다 놨다 했었지요.^^
우린 결국 술(와인)만 사들고 왔습니다.^^

날개 2007-05-23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쁜 걸레라면 저도 고민했을것 같은데요?^^

검둥개 2007-05-23 0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창고형 할인점에 가보면 정말 구매 행위가 역겹게 느껴져요. ㅠㅠ
코스코만 생각하면 한숨이 나와요...
그건 그렇고 제 안의 악마는 이렇게 말하곤 해요.
--청소기, 청소용품, 세제가 이렇게 강력하면 왠지 청소도 쉽게 할 수 있지 않을 것 같지 않아?
근데 청소는 역시 힘과 시간의 문제이지 도구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프레이야 2007-05-23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청소도구 실컷 사다놓고 한 번 쓰고 나면 그후론 안 쓰는게 문제에요.
그나마 그 도구도 제가 사는 일은 거의 없고 옆지기가 사지요.
연어 잘 드셨다니 그래도 잘 사셨어요.

로드무비 2007-05-25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 님, 연어는 언제 먹어도 맛있어요.
스팀걸레도 사셨는지 궁금해요.^^

검둥개 님, 그날 속이 메슥메슥하더군요.
전 새 기계에 대한 호기심은 거의 없는 인간입니다.
걸레 따위나 들었다 놨다 하면서.......헤헤......

날개 님, 예뻐서라기보다 사이즈가 맞춤한 것이
손에 들면 청소가 저절로 될 것 같았어요.^^

건우와 연우 님, 안주도 좀 사오지 그러셨어요.
동지를 만나서 기뻐요.^^

진달래 님, 처음부터 집에서 입을 옷을 사는 사람도 있군요.
신기해요.
추리닝을 요즘은 외출복으로도 입더군요.
예쁜 놈으로 사서 입으시길.^^

체셔고양이 님, 하하, 청소 못(안)하는 자신에게
얼마나 포한이 졌으면 그러겠습니까.
그런 차원입니다.^^

2007-05-25 17: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키타이프 2007-05-25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청소에 관련된 물품은 딱 질색이라서.
아마 엄청 예쁜 청소도구를 보게 되더라도 속으로 그럴겁니다.
'용쓰고 있네, 그런다고 살줄 아냐'
 

-- 시는 사용되어야 한다,
단순히 처먹혀서는 안 된다

----------------------------


모든 생산품들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사용되어진 것들이다
찌그러지고 가장자리가 다 닳아빠진 구리그릇
여러 사람들이 사용해 나무 손잡이가
다 닳아버린 칼과 포크, 이러한 형태가
내겐 가장 고귀하게 여겨진다. 또 많은 사람들이
밟고 다녀 반질반질해지고 사이사이 잡초들이 자라난
오래된 집가에 깔려 있는 포석(鋪石)들, 이러한 것들이
복받은 생산품들이다

여러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면서 또한 자주 겉모습을
바꾸면서 이 생산품들은 자신의 형상을 개선하고 또한 고귀해진다
이유는 이것들이 자주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손이 떨어져 나간 조각들의
부서진 파편들조차도 나는 좋아한다, 이것들도 역시
살아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지금은 무너져내렸더라도
전에는 이리저리 운반되며 사용되었다
비록 무너지고 그 위로 많은 것이 밟고 지나갔다 하더라도
그 전에도 이 조각들은 그렇게 높이 서 있지는 않았다
반쯤 부서진 건축물은
거대하게 계획된 것이 아직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건축물들의 아름다운 크기는
벌써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우리의
이해를 필요로 한다. 한편으로
이들은 벌써 이용되었다. 정말 이들은 극복되었다. 이 모든 것이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 詩  '인간에 의해 생산된 모든 것에 대해' 전문
                             브레히트 시론 <시의 꽃잎을 뜯어내다>(이승진 편역, 한마당 刊, 1997년)






<두이노의 비가>를 읽다가 브레히트 시론을 읽다가, 책꽂이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마구잡이 독서를 하고 있다.
두서없는 듯하지만 서정적이고 뭔가 심오한 릴케의 시구에 질질 끌려들어가는 중인데
브레히트가 눈을 흘긴다.
"시는 사용되어야 하며 단순히 처먹혀서는 안 된다"고.
통쾌한 표현이긴 하지만, 사실 그 "처먹히는 즐거움"이야말로 얼마나 큰 즐거움인데......

나는 앞으로도 계속 시에 처먹히기도 하면서, 또 구체적으로 사용도 할 생각이다.
브레히트는 이 책에서 시인 릴케를 이렇게 표현했다.
"릴케는 민중적이지 않다."
글쎄, 현실의 토대 위에서 사람들의 삶에 구체적으로 소용이 되는 그런 시를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생이랄까 향수랄까 사랑이랄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읊으며 빠져들어
좀 흐느적거려도 무방하지 않을까.
예전엔 시고 산문이고 희곡이고 그가 한 말이라면 무조건 경도되었는데,
지금은 브레히트가 좀 빡빡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건 그렇고,  위 시의 시구처럼 찌그러지고 가장자리가 다 닳아빠진 구리그릇 같은 게 나도 좋다.
요즘 세상은 왜 그렇게 으리으리한지......
동네에 새로 생긴 미장원이나 식당엘 가면 인테리어라든가 그 규모에 깜짝 놀라게 된다.
짐작건대, 땡빚을 내서라도 이웃 가게 코를 납작하게 하고 시작해야 직성이 풀리나 보다.
그렇게 기세등등하게 시작한 가게가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닫는 광경을 종종 본다.
좀 작게 시작해서 당장은 힘들더라도 느긋하게 이어가면 좀 좋아?
형편에 맞게 아담하게 시작하면 초기비용도 유지비도 적을 테니.

오래 전 내가 다니던 영등포의 한 교회는 예배를 마친 후 두세 명의 교인이 짝을 지어
돌아가면서 식사를 준비했는데 나는 교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플라스틱 면기 대신
어디서 굴러들어온 것인지도 모르는 때묻고 찌그러진 낡은 코펠 뚜껑이나
휴대용 양은 대접을 악착같이 찾아내어 밥과 국을 담아 먹었다.
그러다 결국은 어느 날 그 코펠 뚜껑과 대접을 몰래 집에 가져오기에 이르렀으니.

그 그릇이야말로 오랜 세월 그곳을 드나들던 많은 사람들이 밥과 국을 떠 먹던 것이었다.
하나님도 나의 그 절도행각은 모른척 눈감아 주셨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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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5-16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쌩뚱맞긴 하지만 "이퀄리브리엄"이라는 영화에서 예이츠의 시가
멋지게 사용되었어요..인간적인 소양이 말살된 미래에서 감성적인
문학이나 자료는 모두 금지가 되어 있는데..주인공 동료가 예이츠의
시를 읽으면서 감성에 눈을 떠요..그걸 주인공 앞에서 읽어주지만 결국
주인공에게 사살되는 장면이 있는데..^^
"But I, being poor, have only my dreams. I have spread my dreams under your feet. Tread softly because you tread on my dreams." I assume you dream, Preston.
"나는 가난하여 가진 것이 꿈뿐이라. 내 꿈을 그대 발 밑에 깔았습니다. 사뿐히 밟으소서, 그대 밟는 것 내 꿈이오니."

영화는 썩 좋진 않았지만...이 장면만큼은 정말 멋졌습니다.^^

2007-05-16 16: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7-05-16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단과 댓글 쓰기 사이 님,
아무 뜻 없습니다. 죄민수 표정. ( '')
여백이 많은 건 순전히 실수예요.
다른 시인들에 대한 브레히트의 독설이 예전엔 통쾌했는데
오늘 다시 읽다보니 좀 아닌 부분도 있더군요.
이렇게 저는 점점 성숙하고 무르익어 가는가 봅니다.=3=3=3
(구리주전자 좋은 놈 보면 우리 정보 나누기로 해요. 헤헤~)

메피스토 님, 이퀄리브리엄이요?
제목은 들어봤는디유.
예이츠의 시 좋지요.
그리고 보면 '사랑'이라는 말은 입에 올리는 것이 금지된
가상도시의 영화 <알파빌>도 있었잖아요.
책이든 영화든 아무튼 흥미로워요.^^

mong 2007-05-16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당췌 시라고는 알라딘에서 주워 읽는 것 뿐입니다
비도 오는데 또 한편 잘 읽고 갑니다
로드무비님, 거기도 아카시아 내음 나요? ^^

로드무비 2007-05-16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킁킁, 안 나요.
mong 님, 창을 열어 볼까요?
저도 알라딘에서 주워 읽는 것 많아요.
너무 유식해질까봐 걱정.^^
(이런 날 황해집 이야기나 한 편 풀어놓으시면 좋겄는디.)

비로그인 2007-05-16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래된 것을 좋아합니다.
수년에서 수백년의 시간과 역사와 희로애락을 가지고 있는 사물이나 건축물일수록 더욱-
그래서 30년 이상의 나이을 먹었을 것 같은 물려받은 목걸이나 옷, 물건 등을 아끼고
최첨단 휴대폰보다 아날로그 (번호판을 돌려 전화를 거는) 전화를 더 좋아하죠.
좋은 글 담아가겠습니다.

영화 [이퀼리브리엄] 한번 보십시오. 괜찮은 영화입니다.
인간에게 진정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 느끼게 해주는 영화입니다.

푸하 2007-05-16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다른 얘기지만, 마지막의 자기고백에 아주 조금 망설이셨겠어요? ㅎㅎ

2007-05-16 2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5-17 0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5-17 08: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7-05-17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논란의 여지가 매우 많은 척도 님, 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움과 쓸모, 내용과 형식 등 이 시론집에서 브레히트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두부모 자르듯 잘라지는 것도 아닌데.
하지만 대부분 저는 그의 이야기에 공감합니다.
브레히트의 균형감각을 믿거든요.^^

두 가지 명언 님, 우하하~~
이왕이면 우리말로 옮겨주시잖고.( '')
초라한 몰골로 시립도서관을 드나들던 때가 가장 좋은 때였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지요.
지금은 독서라고 할 것도 없고, 껄렁껄렁한 자세로 책을 대한달까.
보르헤스와 올콧이 눈을 흘길 것 같아서 이만.=3=3=3

다른 옷이랑 매치하면 확 살아나는 빛깔 님,
식당 이름조차 으리으리하군요.
표현이 참 멋집니다.
그나저나 그 편지 빨리 받아보고 싶네요.
생전에 안 읽던 릴케가 문득 눈에 들어와 읽기 시작했는데,
이런 교감(너무 과장했나요?)이 즐겁습니다.^^

푸하 님, 하하, 고백이라 할 것도 없는 가벼운 것인데.
저의 모랄은 좀 자기중심적이거든요.^^

L- SHIN 님, '이퀄리브리엄' 메모합니다.
인간의 손때 묻은 것에는 어떤 것도 못 당합니다.
남대문 시장 유명한 갈치조림 식당에서 제일 소중하게 다루는 게
그을리고 찌그러진 양은냄비라고 하더군요.
새 냄비에 갈치조림을 내가면 단골들은 난리가 난답니다.
또 하나의 유행이 돼버린, 거들먹거리는 앤티크 말고요.
소박하고 순한 그 무엇.
님의 말씀을 그대로 알아듣습니다.^^




2007-05-17 1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7-05-17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총칼부림 영화요? 그렇군요.
제 취향까지 짐작해 주시고.
감읍하는 중입니다.( _ _ )

진달래 2007-05-17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용한다는 것과 처먹힌다는 것의 정의가 제겐 뭘까... 생각해봐야겠어요. ^^
이름만 들은 브레이트를 저도 읽고 싶습니다. ^^;;

건우와 연우 2007-05-17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의 리뷰를 읽으면 도통 관심이 없던 브레히트조차 사고싶어진다니까요...

oldhand 2007-05-17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에겐 시인들과 그들의 시가 그저 경외스럽게만 느껴집니다. 시인들의 감수성은 제겐 범접하기 어려운 영역인것 같아요. 엊그제 열 여덟 소녀가 썼다는 5월 광주에 대한 아주 대단한 시 하나를 봤는데요. 김지하의 <오적>이나 김남주의 <나의칼 나의 피>를 읽었을때 만큼 큰 임팩트를 주던걸요. 저의 시적 감수성은 아마도 이 동네가 그나마 공감이 좀 가나 봐요. :)

비로그인 2007-05-17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사물에는 그만의 정령이 있거든요.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는 시간과 함께 -
물건을 버리면, 그와 함께 했던 시간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마늘빵 2007-05-18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님 엘신님 / 이퀼리브리엄 저도 최고의 영화라 생각해요. 로드무비님 글보고 저도 이퀼리브리엄 생각났습니다. 예이츠의 시. 아... 이 영화의 예이츠 시 때문에 예이츠 시만 따로 나와있는 책이 없나 찾아봤던 적이 있습니다. 없더군요. 게다가 시는 원어로 읽어야할거같은. 원어는 또 약하고 해서 포기. 이럴 때 취약한 영어가 원망스럽더군요.

마늘빵 2007-05-18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엘신님 마지막 댓글... 간직합니다.

로드무비 2007-05-22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 님, 저에게도 뭐라 한 마디 걸어주시잖고.=3=3=3

L-SHIN 님, 멋진 말씀입니다.
그런데 옷도 그렇고 안 버릴 수 없는 게 딜레마.^^

올드핸드 님, 브레히트 시랑 콩주 아빠랑 잘 어울려요.
그 시는 저도 읽었는데 어리둥절하더군요.
천재시인의 탄생도 좋지만 시가 너무 구성져서
그의 나이를 도저히 믿을 수가......
그만큼 시가 좋았다는 말이 되겠지요.^^

건우와 연우 님, 에잇, 책을 못 올리는 것이 유감.
툴바가 안 보여 사진이든 책이든 못 올립니다.
땡스투 몇십 원이 아쉽군요. 히히.=3=3=3

진달래 님, 브레히트와 노신이 좋아요.
브레히트 선집이 열 권 정도 나와 있어요.
시부터 읽어보시길.^^

아키타이프 2007-05-22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가고 일그러진 걸 사랑할 줄 모르는 이는 친구가 아니다
상한 살을 헤집고 입 맞출줄 모르는 이는 친구가 아니다

로드무비 2007-05-23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키타이프 님, 이를 말씀이겠습니까.
그런데 상한 살 헤집고 입 맞추는 건 무서워요.=3=3=3

밥헬퍼 2007-05-24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이 서재는 써놓은 글보다도 덧달린 글들이 더 많을까요? 모름지기 깔끔과 투박함 속에서 저는 가끔 마음과 행동이 따로 논다는 느낌이 들때가 있습니다. 투박한 듯한 것을 그려보다가, 이내 깔끔한 것으로 움직여지니 말입니다. 오랫만에 들렀는데 여전하시군요.

로드무비 2007-05-25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헬퍼 님, 깔끔과 투박함이라든가 마음과 행동이 따로 논다는 느낌을
제 방에서 받으셨나요?
냉정과 다정, 세심과 무심, 그 외에도 다양한 것들이 혼재합니다.
하지만 마음과 행동은 함께 가는 편인데......
그렇게 보셨대도 할 말이 없지요.
서재 다시 여신다는 소식 접하고 무척 반가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