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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있습니다

 

 

영화 <고령화 가족>을 보고 나와서는 삼겹살 한 근과 소주를, <우아한 거짓말>을 보고 나와 우리 가족은 집에 와 짜장면을 시켜 먹었다. 내 눈에 영화 속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 나누는 음식만큼 이 세상에 맛있어 보이는 건 없다.

 

그런데 신기하다. 존 웰스 감독의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에는 분명 만찬 장면이 있으나 내 눈에는 어떤 음식도 보이지 않았다.

영화는 T. S. 엘리엇의 시집과 한 줄의 시구와 함께 시작된다.

- 인생이 너무 길다.

 

바이올렛(메릴 스트립)의 남편 베벌리(샘 쉐퍼드)는 구강암에 걸린 아내의 시중을 위해 인디언 원주민 가정부를 구해놓곤 그 길로 집을 나가버리는데...

아버지의 실종소식에 그동안 코빼기도 비치지 않던 장녀와 막내딸이 각자 가족과 애인을 대동하고 한여름 무더위에 비지땀을 흘리며 나타난다.

장녀 바바라(줄리아 로버츠)와 이혼 직전인 남편(이완 맥그리거) 사이에 난 14세 소녀 진은 낯이 익다 했더니 영화 <리틀 미스 선샤인>(2006년)의 막내였던 올리브, 아비게일 브레슬린이다. 

<리틀 미스 선샤인>이 대표적인 '콩가루 집안' 영화 중 하나였다면,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은 한술 더 떠 "싸이코 소굴"(바바라 남편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자매 중 혼자 고향에 남아 부모 집 가까이 살던 미혼의 둘째 딸 아이비(줄리엔  니콜슨)는 이모의 아들 '백수' 찰스(베네딕트 컴버베치)와 사랑에 빠졌다며 집을 떠나겠다고 선언하는데, 곧이어 더 놀라운 출생의 비밀이 밝혀진다.

꼬일 대로 꼬인 모녀간 자매간 부부간의 갈등과 악다구니의 대폭발을 보여주는데, 우울이나 센티멘털도 하루이틀이지, 사실은 각자 자신의 문제에 골몰하여 가족에게 관심과 애정을 줄 여건이 안 되는 것이다.

 

아버지의 장례식날 밤, 만찬에서 가족은 격돌한다.

간신히 버티며 살고 있는 각자의 비밀이 까발겨지고, 그것은 장례식의 주인공인 아버지도 예외는 아니다. 술에 억병으로 취해 바지에 실례를 하는 바람에 다시는 동창회에 초대받지 못한 그의 수치스러운 과거가 약물에 취한 아내의 입을 통해 드러난다.

"살다보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지. 코너에 몰리다보면..."

누군가 이렇게 중얼거리지만 공허하기 짝이 없는 독백이다.

 

장례식 만찬 기도를 제부(크리스 쿠퍼: 영화 <아메리칸 뷰티>의 옆집 그 싸이코)에게 시켜놓고 심술궂은 얼굴로 한 명 한 명 살펴보는 노년의 엄마를 맡은 메릴 스트립의 연기는 압권이다. 젊음이 딱 한 가닥 남아 있는 듯 뭔가 위태롭고 아슬아슬해 보이는 장녀 역 줄리아 로버츠의 얼굴에서도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다. 

 

'늙으면 여잔 추해진다. 너희들만 봐도 딱 알겠구만!"

"네 남편이 어린 여자랑 바람났다고? 젊은 년은 절대 못 당해!"

남편의 장례식 만찬에서 딸들에게 쏟아붓는 엄마의 선전포고다.

이 영화는 가족의 문제 외에도 점점 더 늙어가는, 혹은 자신에게서 젊음이 달아나는 것을 속절없이 지켜보는  여성들의 초조와 공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밤중에 집 안에서 일어난 있을 수 없는 일을 목격하고 몽둥이를 들고 뛰쳐나오는 건 다름 아닌 인디언 원주민 가정부다.

 

막장이나 콩가루 가족 드라마와 영화에 익숙해져 웬만한 사건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편인데도  이 영화는 정말 압도적이었다. 서로 잡아먹지 못해 으르렁대는, 영화 속 메릴 스트립과 줄리아 로버츠 모녀는 깜짝 놀랄 정도로 늙었지만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했다. 오랜만에 보는 막내딸 역 줄리엣 루이스도 반가웠다.

알람을 제대로 못 맞춰 이모부의 장례식에도 참석 못하고 변명을 늘어놓는 청년 찰스(베네딕트 컴버베치)와 14세 소녀 역 아비게일 브레슬린도 뭐 젊다고 해서 눈부시거나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다.

극장 문을 나서는데 무엇인가 내 속의 꽉 막혀 있던 것이 빠져나가는 기분을 느꼈다. 지독하게 삭힌 홍어에 막힌 코가 뻥 뚫리듯...

 

'지긋지긋한 집구석'이라는 황지우의 시구가 생각나 부리나케 책상 앞에 앉았다.

 

 

치열하게 싸운 자는

적(敵)이 내 속에 있다는 것을 안다.

지긋지긋한 집구석

 

    - 황지우 <나는 너다> 시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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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10 0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4-10 1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정은 2014-04-10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언니 서재 오랜만이네요^^
화욜 얘기듣고 꼭 극장에서 보고싶어 수욜 오전에 열일 제치고 가서 봤어요.
역시나 명품 배우들의 연기는 명불허전입니다.
특히 메릴 스트립이 아니었다면 누가 이 엄마역을 이렇게 잘 연기할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늘 좋은 책과 영화 소개해 주는 언니 덕분에 간신히 교양의 실 줄기를 이어갑니다.
행복하시고 짧은 봄날 가기전에 꽃단장한 안산에도 산책겸 놀러오세요

로드무비 2014-04-10 23:24   좋아요 0 | URL
무의도 정말 좋았어.
거기 안 갔으면 이 봄이 허무할 뻔했지.

책과 영화라도 있어서 다행이야.
비로소 그런 생각이 드네.
안산이라면 이대 후문 쪽 거기를 말하는 거야?
(서재 없는 거지? 댓글 오픈해야겠네. 하나 만들어.)

2014-04-14 14: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4-14 16: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밤섬 2014-04-15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인터파크 이용하다 언니 생각나서 오늘은 알라딘에서 3년만에 책주문해보네요^___^
언니 덕분에 고객이 한명 늘었다는걸 알라딘이 알아줘야 하는데 아쉽네요. ㅋㅋ
행복한 하루 되세염~~!

로드무비 2014-04-15 16:03   좋아요 0 | URL
봉원사도 하루 가고 싶은데...
서재 만들었네? 반가워라.
자주 글 올릴게.^^

2014-05-27 1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김소영 감독의 장편영화 <나무 없는 산>은  국내 개봉 전 <민둥산>이라는 제목으로
인구에 회자됐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 손에 이끌려 시골에 내려와
고모에게 맡겨진 진과 빈, 어린 자매 이야기.
<여행자>는 그 자신 프랑스에 입양된 우니 르콩드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1970년대 중반 아빠 손에 이끌려 서울 변두리 보육원에 맡겨진 9세 소녀의 성장기다.
그런데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이 두 영화에서 내 눈에 들어온 건
고모(김미향)와 보모(박명신) 역의 연극배우 출신 두 중견배우였다.


 




 

 

 

 

 

 

 

 

 

 





  

 

 

 

 

 

 

 

동생 빈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번쩍번쩍하고 치렁치렁한 하늘빛 드레스만 입기를 고집한다.

 



 

 

 

  





 

 

 

 


 “산으로 올라가고 싶어. 산 뒤로 내려오고 싶어.
강에서 헤엄치고 햇볕 쬐고 모두에게 잘하고 싶어.”

고모가 그나마 아이들 돌보기를 포기하고 산골 오지 외가에 그들을 맡기러 갈 때
자매가 부르는 노래
(영화 <나무 없는 산>)

 






 

 




아이들에 둘러싸여 밤마다 화투 패를 떠보는...보육원에서 대장 노릇을 하는 처녀 역, 고아성.
영화 '괴물'의 그 매점 소녀가  몰라보게 성장한 모습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다.






 




몸빼 바지 차림의 보모, 손으로 바느질 한 광목이불...  창밖으로 보이는 슬레이트 지붕. 
배경은 1970년대 중반이다.
 

 



주인공 진희 역의 김새론 양은 한마디로 매서운 연기를 펼친다.



  

 



 

 

 

 

 

 

 

 






보육원에 맡겨지기 전 아빠와 함께 한 시장통 식당에서의 마지막 만찬.
진희는 아빠(설경구)가 마시는 소주를 한잔 달래 꿀꺽 한 모금 맛보고
자청해서 노래를 부른다.
혜은이의 '당신은 모르실 거야'.

당신은 모르실 거야 얼마나 사랑했는지
세월이 흘러가면은 그때사 뉘우칠 거야~


두 영화에는 각각 보기만 해도 신산스럽기 짝이 없는 여인들이 나오는데
어느 날 갑자기 두 조카를 떠맡게 된 시골 고모('나무 없는 산, 김미향)와
아이들을 지켜보는 보육원의 보모(여행자, 박명신)가 그들이다.

'어디서 봤는데!' 했더니 고모 역의 김미향은 영화 <밀양>에서
끈질기게 신애(전도연)를 전도하던 약국 여자였다.(박명신은 영화 <우리 동네>에서...)
<밀양>을 관람할 때 나는 그녀가 현장에서 캐스팅된 동네 약사인 줄 알았다.
<나무 없는 산>의 혼자 사는 고모 역도 마찬가지.
시장통의 허름한 식당에서 배고프다는 아이들을 구석에서 맨입으로 기다리게 해놓고
혼자 소주잔을 기울이는 심통스런 얼굴이라니!
조카의 얼굴에 조그만 상처를 낸 아이의 엄마를 찾아가 악다구니 끝에
두어 장의 지폐를 타내어 그 돈으로 술을 사 마시는 장면은 정말이지 잊을 수가 없다.
(혹, 내가 우리 동주에게 저런 고모는 아닌지, 하는 생각도 잠시 해봤다.)






<나무 없는 산>의 고모 역, 김미향. 김 약사, 고모, 딱 그 사람.
이 연기자에게 매료되어 한동안 그녀의 블로그를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몰래 들락거렸다.


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며 진과 빈은 산이라고 오른 시커먼 흙 위에서 썩은 나뭇가지를 심는다.
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리던 진희는 입양을 받아들이고,  혼자 비행기에 오른다.
고모와 보모는?...나는?

 

***두 중견 연기자와 함께 아이들이 부르는 청아한 노래가 인상적이었던 이 영화들은
다르면서도 무척 닮아서 몇 장의 사진과 짧은 글로라도 한자리에 정리해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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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shot 2009-11-13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장례식의 멤버]보셨나요?
거기서도 박명신의 연기가 아주 인상적이었습죠.

로드무비 2009-11-13 22:18   좋아요 0 | URL
장례식의 멤버와 제불찰 씨는 못 봤습니다.
압구정동이 너무너무 멀더라고요.

twoshot 님은 영화란 영화는 전부 보시나 봐요.^^

2009-11-13 2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13 2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16 1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17 2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중국의 도시 중경과 한국의 이리(익산으로 지명이 바뀜)에서
장률 감독이 만든 영화 두 편(<중경>, <이리>)이 연달아 개봉되었다.
폭발 직전의, 무언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듯한 느낌의 도시 중경과
30여 년 전 이미 대폭발을 경험한 도시 이리는 영화 속에서 놀랍게 닮아 있다.
만약 장률 감독이 서울의 가리봉동이나 노고산동에서 영화를 찍었대도
적막하고 황폐한 분위기는 비슷하지 않을까. 
전작 <망종>의 여주인공 순이나, <중경>의 쑤이, <이리>의 진서가
닮아 있는 것처럼.
그녀들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치통을 견디듯 하루하루 간신히
버텨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고통을 잠시 잊게 해줄 싸구려 진통제조차도 그녀들은 가지고 있지 않다.

쓰레기통을 뒤져 얻은 몇 푼의 돈으로 거리의 여자를 집으로 끌어들였다가
공안에게 발각, 경을 치게 된 쑤이의 아버지는 부끄러운 기색도 없다.
아버지를 훈방해준 공안은 욕망도 없이 쑤이를 안는다.
사랑은커녕 최소한의 교감도 없는 남녀의 잠자리는 삭막하고
그로테스크하기 짝이 없다.

동네의 중국어학원과 경로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택시운전사인 오빠와 사는 진서는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
30여 년 전 이리역 폭발사고 때 엄마의 뱃속에 있었던 것이 원인.
사과 몇 알을 살 때도 계산을 못해 주인에게 지갑을 통째 맡기는 그녀다.
경로당의 꺼칠한 노인들 속에서 그녀의 말간 얼굴과 통통한 종아리는
눈부시다.
중국어어학원 원장은 몇푼 되지 않는 그녀의 수고비를 자꾸 미루고
주변의 놈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니, 그녀는 자주 하혈을 하며 쓰러진다.






장률 감독은 오래 전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 그들을 바라볼 뿐 내게 다른 권리는 없다.

호들갑과 과장된 탄식 속엔 되려 타인의 불행을 즐기는 듯한 기미가
농후한 법인데, 장률 감독의 시선은 그럴 수 없이 드라이하다.
관객인 나의 시선도 마찬가지다. 그들을 그저 바라볼 뿐.

"엄마, 아버지는 또 부끄러운 짓을 저질렀고 저는 자꾸만 더러워져 가요."

엄마의 묘소를 찾은 쑤이의 독백이다.
그런데 꼴도 보기 싫은 아버지의 밥숟가락 위에 거친 손길로
반찬을 올려주는 장면과 함께 쑤이의 북경어 수업시간이 좋았다.
강사의 선창에 이어 수강생들 목소리로 초여름 창 밖으로 흘러나오는
이백의 시와 주자청의 수필 <背影> 한 구절.
(중국의 시인들 중에서 이백을 특히 좋아한다는 장률 감독은
몇 년 전 <당시唐詩>라는 영화를 만든 바 있다.)

--그해 겨울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마저 실직했으니
설상가상의 날들이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먼저 주자청의 산문집을 펼쳐보았다.

--그해 겨울,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마저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힘겨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아버지의 뒷모습> 82쪽, 박하정 譯, 태학사 刊)

이리에 사는 진서와 중경의 쑤이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이리역 열차사고 당시 근처 극장에서 리사이틀을 하고 있다가
무명 코미디언인 사회자 이주일의 등에 업혀 구출되었다는 가수 하춘화.
바로 그녀의 노래를 즐겨 부르고 가끔 듣는다는 것이다.
사랑이 어쩌고 이별이 저쩌고 하는 아주 구성진 가락의 유행간데
이리역 폭발사고로 다리를 잃은 한국인 수강생 김씨의 선물이다.

하춘화의 노래 외에 두 영화에 또 나오는 게 있으니
동네 모퉁이에 어색하게 자라잡은 성인용품 가게.
살아갈 의욕은커녕 식욕조차 없어 모래알을 씹는 것 같은
영화 속 인물들은 그래도 그 성인용품 가게에 들러 콘돔도 사고
대형 고무인형도 산다.
시무룩한 낯짝으로.

"당신의 영화에는 왜 희망이 없느냐?"고 한 평론가가 물었다.
장률 감독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희망을 삶에서 찾아야지 왜 영화에서 찾냐고.

그의 대답이 마음에 든다.


영화 <중경>을 찍고 나서 얼마 안 되어 중경의 쓰촨 지역에서는
대지진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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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말 2008-11-30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정성일이다. 우선 댓글 먼저 쓰고 읽기 시작~ 고맙습니다!

로드무비 2008-11-30 13:21   좋아요 0 | URL
이 얼룩말 님이 그 얼룩말 님이시군요.^^

twoshot 2008-11-30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들을 그저 바라보는 것만도 버거워서 장률의 영화는 피하게 되네요-.-;;
그보다는 어째 주자청의 산문이 떠 끌립니다.^^

로드무비 2008-11-30 18:20   좋아요 0 | URL
영화 속에서 만나는 주자청의 산문이 더 매력적이더군요.^^

치니 2008-11-30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 <망종> 하나도 참으로 버거웠던 기억인데, 정말 2개를 주루루 볼 수 있을지...저도 걱정이 앞서기는 하지만, 찜 해둡니다.

로드무비 2008-11-30 18:25   좋아요 0 | URL
영화 두 편을 개봉일에 맞춰 사흘인가 나흘에 걸쳐 보고 나니
아닌 게 아니라 기진맥진한 기분이었습니다.

2008-12-01 0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01 1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로이카 2008-12-01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아버지의 뒷모습'이 옛날 국어 교과서에 나오던 그건가요? 제겐 꽤 감동적인 작품이었는데... 저는 장률의 영화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그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은 다 로드무비님 덕분이지요... 언제고 볼 기회가 오겠지요..

로드무비 2008-12-01 15:37   좋아요 0 | URL
옛날 교과서에 나왔습니까?
그것이 아무리 좋은 작품이어도 교과서를 읽고 감동하긴
쉽지 않은 일인데......
장률 감독 영화가 제 입에 잘 맞습니다.
에로이카 님껜 어떠실지.

nada 2008-12-02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밥상.
밥상은 한 가족의 역사와 개인의 역사를 말해주는 거 같아요.
황량하고 푸석푸석해 보이는데, 그래도 또 따듯한 느낌도 있네요.
참내 애비란 인물들은...


로드무비님이 소개해주시는 장률 영화들이 좋아요. 영화 읽어주는 언니 같아요.^^

로드무비 2008-12-02 12:16   좋아요 0 | URL
쑤이와 아버지가 마주한 밥상과
진서와 태웅이 마주한 밥상이 같습니다.
아무 말 없이 화난 사람들처럼 밥만 먹는데
정말 맛없이 먹습니다.
제가 웬만하면 밥상위의 반찬들을 아주 유심히 관찰하거등요.
뭘 먹나 해서......
그런데 그들이 먹은 게 뭔지 전혀 기억이 안 납니다.
<누들>을 보고 와선 한동안 국수를 그렇게 먹었고
<굿'바이>를 보고 와선 당장 치킨을 시켜먹었던 제가 말이죠.
복어정자를 구할 수 없으니 치킨이라도 먹어야지요.^^

무해한모리군 2008-12-02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양배추님의 영화 읽어주는 언니라는 표현이 참 잘 어울리시네요.
왠일인지 점점 잔인하거나 충격이 클 것 같은 영화들을 잘 못보게 되요.
참 좋을거 같은데, 너무 마음이 아플거 같아서 또 볼 엄두가 안나네요..
소심쟁이 ㅠ.ㅠ

로드무비 2008-12-02 16:58   좋아요 0 | URL
잘 모르는 사람이 언니라고 하면 그렇게 부르지 말라며
정색했는데 요즘은 언니 소리 들으면 반갑더라고요.ㅎㅎ

'생선 한 마리 못 잡으면서 뭐라고 토를 다는 인간' 여깄습니다.^^
님이 말씀하시는 소심과 연결이 되어서요.

2008-12-19 1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19 18: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삶이 힘들고 고단할 때 하늘에서 돌이 비처럼 쏟아지는 것 같다.
오직 내게만......'(영화 <레이닝 스톤>에서, 켄 로치))


켄 로치 감독은 영화 <자유로운 세계>의 개봉을 앞두고 한 영화잡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 세상에) 희망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짧게는 낙관적이라고 보기 힘들겠지만 길게 보면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논현동 고시원 묻지마 방화살인사건 소식을 들었다.
경제적인 사정이든 개인적인 문제이든 뭐든 갈 데까지 간, 더이상 버틸 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기와 아무 상관이 없는, 불특정다수를 향해 분노를 폭발시키고 있다.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자꾸 늘어간다는 것이다.
고시원 사건의 희생자들은 대부분이 중국에서 온 여성 이주노동자들이었다.
<자유로운 세계>에서 한달치 임금을 떼이고 별로 미안한 기색도 없는 인력알선업체의
고용주 앤지에게, 양 같이 순하던 이주노동자들은 분노를 폭발시킨다.
그러고 보면 현실과 영화가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앤지는 30대의 싱글맘으로 말썽꾸러기 아들을 부모님께 맡기고 있다.
인력알선업체의 계약직 사원이었는데 직장내 성희롱 사건에 엮이며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호구지책으로 친구 로즈와 함께 차린 것이 인력알선업체.
그런데 이주노동자들을 일터와 연결시켜 주는 이 일도 쉽지 않다.
여권이 없는 상태로 불법체류중인 이주노동자들에게서는
알선 수수료를 더 받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카메라는 이주노동자들의 시선과 입장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계약직 사원에서 고용주로 변신한 앤지의 뒤를 따라다닌다.
그런데 악덕고용주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제 코가 석자라지만,
앤지는 자신보다 더 딱한 처지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착취하고 등쳐먹는다.
이른바 '먹고살려고 보니 어쩔 수 없다'는 논리다.
층층의 먹이사슬 구조.
앤지를 통해 값싼 노동력을 제공받은 거래처 사람은 부도가 나자
앤지에게 지급해야 할 노동자들의 임금을 떼먹고 나자빠진다.
피해자가 자기도 모르게 가해자로 변한다.
나라고 예외일 수 없다는 사실, 그것이 무섭다.

그의 전작들 중 <빵과 장미>나 <레이닝 스톤>만 해도 
희망이라든가 삶의 의욕을 느낄 수 있었다. 
청소인부들의 노조 결성과 노동쟁의 과정(<빵과 장미>)이나,
성찬식에 입을 딸의 드레스를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실직가장의
이야기(<레이닝 스톤)가 뭐 그리 신통할 리가 없는데,
이상하게 화면 밖으로 유머와 여유가 배어나왔다.
그런데 <자유로운 세계>를 보고 오는 길은 발걸음이 너무 무거웠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나 영국이나 가릴 것 없이
이주노동자들이 이렇게 많아진 것도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여파가 아닌가.
우리의 어깨 위에는 언제부턴지 세상 시름이 천근 같은 무게로 얹혀졌다.

켄 로치의 영화는 살얼음판 같은 세상을 보여준다.
얼음장은 너무 얇고 여기저기 금이 가 있다. 
조마조마해서 외면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뜰 수는 없으니,
70대의 노감독이 저렇게 긴 막대기를 들고 지켜보고 있는데 어쩌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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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머리김 2008-10-31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흐~~ 사랑합니다. 누님~~
내가 원하는 자유로운 세계는
어여 한국으로 돌아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노는 것인데~~
그럴 수 있을거야~~ 라고 꿈꾸며 지낸답니다.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걷는다마는
환율은 계속오르고 있어
이곳 교민들은 정처없는 이 발길이로세~~
같은 심정이네요......

잘지내시죠~~~~ 책장수와 동동이 역시~~~

저도 열심히 버티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요새는 버티는 것이 잘 사는 거라네요.

지아장커와 장률의 영화는 이전에도 이야기하셔서
찾아봤는데 잘 없더라고요~~
이곳 저곳 다시 한 번 찾아보께요.

다른 것도 있으면 언제든 콜하세요.

건강조심하시고요~~^-^

로드무비 2008-11-01 08:29   좋아요 0 | URL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겄소. 성실하기까지 한 나를.=3=3=3
이제 또 바쁠 때지?
건강 조심하고, 올 겨울 울 동네 사께집서 한잔할 수 있을라나?^^

Mephistopheles 2008-10-31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캔 로치 감독은..정통파 복서에서 기교파 복서로 전향(?)했다고 보여질 수 밖에 없는 요즘 그의 영화들입니다.^^

로드무비 2008-11-01 08:33   좋아요 0 | URL
메피스토펠레스 님, 연속으로 치는 스트레이트 훅이 장난이 아니던뎁쇼.ㅎㅎ
켄 로치 감독은 늙어도 변질되거나 망가지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보여줍니다.

2008-11-01 1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1-02 1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흰머리김 2008-11-01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네~~ 알았어용~~^-^ 10월의 마지막 밤을 반주와 함께 님과 함께 보내셨는지~~

지아장커가 감독한 영화를 묶어 놓은 것이 있어 구입해 놨어요. 단 자막이 없다는거~~

장률의 경계라는 DVD가 자막이 있는 것이 있어 샀는데..

고이고이 모셔서 다른 것 요청하면 같이 사서 한국갈 때 드리께요.

사께집을 그리면서~~

2008-11-01 1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1-02 0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1-02 1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조조 4천 원에 영화를 보려고 아침부터 너무 서둘러서 그랬는지,
매표소 앞에서 잠시 영화 제목이 생각나지 않았다.
"<어떤 하루> 한 장이요." 했더니 담당 여직원은  "'멋진 하루' 말씀이시죠?" 하면서
표를  내민다.
<여자 정혜>의 이윤기 감독이 연출했으며 전도연 하정우가 헤어진 연인으로,
1년 전에 빌려간 돈을 당장 내놓으라며 여자가 남자를 하루종일 따라다닌다는
정도로만 이 영화를 알고 있었으니,  영화 제목을 바꿔 말한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병운(하정우)이 죽치고 있는 스크린 경마장에 불쑥 찾아온 희수(전도연)가
처음으로 내뱉는 말이 "돈 갚아!"이다.
몰골을 보아하니 삼만오천 원도 없을 것 같은 병운에게 삼백오십만 원이 있을 리 없다.
영화 포스터의 '이렇게 만나고 싶지 않았다'라는 헤드카피가 절묘하다.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며 이별을 통보했는데 그 결혼도 깨지고 직장은 구하기 어렵고
쪽팔리는 일이지만 빌려주고 못 받은 돈 350만을 받으러 온 참이다.
채권자와 채무자가 되어 1년 만에 만나는 연인 관계처럼 어색한 게 또 있을까.

독 잔뜩 오른 얼굴로 나타나 오늘중으로 빌린 돈을 모두 받아내고 말겠다니
병운은 그녀를 대동하고 돈을 꾸러 나선다.
그날 아침부터 해질 무렵까지...강남에서 강북, 서울의 이 구석 저 구석,
돈을 구하러 떠도는 구차한 로드무비인 셈이다.

<여자, 정혜>에서 변두리 우편취급소에 근무하며 혼자 사는 미혼여성의 삶을
가타부타 아무 말 없이  흑백 다큐멘터리처럼 펼쳐 보였던 이윤기 감독은
정혜와는 또 다르게 제법 앙칼지고 야무진 희수를 새 영화에 등장시켰지만
두 여성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화장을 거의 안한 듯한 투명한 얼굴의 정혜(김지수 분)가 식물성이라면,
스모키 화장으로 제법 세상에 대해 적의를 나타내는 것 같지만
뾰족한 수가 없는 건 희수(전도연)도 마찬가지이다.
반죽이 좋달까 요령이 뛰어나달까 거의 처세술의 달인으로 보이는 병운이지만
그도 맹탕.





살아가는 일은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같다.
술판에도 못 끼고 늙다리 오토바이족 틈에 끼어앉아 기주봉이 권하는 담배를 피우는 희수.



그것은 몇 푼의 돈을 빌리기 위해 만나는 병운의 지인들도 다르지 않다.
사촌형을 만났더니 마침 옥상에서 오토바이 동호회원들의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허름한 옥상의 계단 밑에는 하릴없이 하늘바라기를 하고 있는
중년의 오토바이족이 있다.
가죽점퍼를 입고 선글래스를 멋지게 쓰고 폼을 잡고 앉아서도 막막한 그 표정들이라니......

그런데 신기한 건 연상의 여성 사업가, 어쩌다 알고 지내는 호스티스, 대학 시절 승마부 후배,
스키 강사로 잠시 일할 때 만난 제자,  이혼 뒤 싱글맘이 된 초등학교 여자 동창까지
갑자기 찾아와 손을 벌리는 병운을 귀찮아 하거나 따돌리는 기색이 없다는 것.
그들은 병운의 손에 백만 원부터 십만 원까지 다문 얼마라도 쥐어서 보내거나 하다못해
술이라도 한잔 먹여 보낸다.
어떻게 보면 돈을 빌려주는 입장의 그들보다 , 또 병운을 사정없이 족치는 희수보다,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병운이  유리한 위치를 점한 것처럼 보이는데.

옥신각신하던 그들이 밥 한끼 먹으러 찾아간 단골집 제주식당은 문을 닫았고
종로의 단성사는 며칠 전 부도를 맞았다.
그 낡은 식당에서 이모님이 해주는 생선찌개백반을 먹고 싶었는데
징거버거를 베물어야 하고, 나는 아직도 멀티플렉스 극장이 거북하기 짝이 없다.

지리멸렬한 남녀의 삶을 보여주는 이 영화, 희수와 병운 역에
<여자, 정혜>의 김지수와 황정민을 떠올려보았다.
사실성은 좀더 획득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속은 더 메슥메슥했겠지만.

아무리 영화 속이라지만 돈을 좇는 두 사람의 뒤를 따라다니는 일은 피곤하고 피곤했다.
'이제 도합 이백십만 원 받았으니 남은 돈이 얼마...' 
어쩌자고 나는 병운의 남은 빚을 어두운 객석에서 함께 세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극장문을 나서는 사람들의 입가에는 대부분 왜 희미한 웃음이 맴돌았던 걸까?























계단 이 장면 괜찮지? 파일로는 사진을 분간할 수 없어 뒤늦게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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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8-09-30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포일러 있습니다' 이 말 때문에 사진만 보고 죽 내려버렸어요. ^-^;;
모두들 이야기 하시니, 안 그래도 끌렸던 이 영화 , 보러가야겠어요.

로드무비 2008-09-30 16:51   좋아요 0 | URL
치니 님,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나면 왠지 보러 가기 싫어지지 않나요?ㅎㅎ
엄청나게 끌리진 않았는데 보러 갔고, 꽤 재밌었습니다.
'누들'이나 '캐러멜'보다 좋았습니다요.^^


2008-09-30 17: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01 0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08-09-30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이 영화 보고 왔어요. 모두 다 좋았는데 러닝타임이 좀 길었던 것 같아요. 10분만 잘랐으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했어요^^;;;;

로드무비 2008-10-01 00:50   좋아요 0 | URL
마노아 님, 전 길다는 생각은 못했는데.
아닌게 아니라 허리가 좀 아프더구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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