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초라함을 깨닫고 의기소침해지는 순간 인생의 광휘는 사라진다.
뜬금없이 그런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영화 <원스 Once>.
어느 날 부잣집 파출부 일자리를 얻게 된 걸 기뻐하는 여주인공.
낡은 모직 재킷과 질끈 맨 목도리, 꽃무늬 통치마.
음반 기획사와의 면접을 앞두고 양복 한 벌이 필요한 남자에게
자신이 애용하는 헌옷가게로 데려가는 그녀.
악기점 주인의 양해 아래 점심시간에 잠시 빌려 치는 피아노 앞에서
그녀의 얼굴은 놀라우리만큼 덤덤하다.
세속에 찌들려서가 아니라, 자신을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인 자의 평화와 무심.

남자는 감추려 하지만, 뭔가 좀 억울한, 짜증난 얼굴이다.
낮에는 고장난 청소기 수리 기사, 거리에서 부르는 그의 노래를 듣기 위해
발걸음을 멈추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의 발치, 10센트 동전 몇 개가 전부인 기타 케이스를 들고 튀는 놈이 없나.
입만 열면 과장이요 엄살인 사람들도 있지만(나 같은!)
인생, 그 치사함과 막막함과 두려움에 대해 입도 떼지 않고
태연한 얼굴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눈물이 난다.
더욱 사정없이 늙는 일밖에는 남은 게 없을 것 같은 조그만 수리점 주인인 남자의 아버지와,
딸의 어린 딸을 키우는 그 할머니의 둥글고 순한 얼굴이 참 좋았다.
그들도 젊어 한때는 청바지나 판타롱을 질질 끌며 애인의 팔짱을 끼고 
아일랜드와 체코의 최고 번화가를 누볐을 것이다.

"또라이 같은 놈들이 녹음실을 쓰고 있다"고  걸려온 전화에
심드렁하게 대꾸하던 녹음기사가, 녹음실에서 들려오는 그들의 연주를 듣고
자세를 바로잡고, 읽던 신문에서 눈을 뗀다.
가슴이 벅차다.
오디션에서 어느 거대 기획사 사장의 O.K 사인을 받았다고 한들
그렇게 짜릿할 수 있을 것인가.
더구나 아들이 틀어주는 음악을 듣고 아버지의 얼굴에 번지는 흥분과 미소라니!
뭘 좀 기대해도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인생에 바랄 수 있는 최고의 것이라 생각한다.

수첩에서 몇 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진솔한 가사와 심정적인 멜로디도 근사했지만,
더블린의 낡고 허름한 골목과 집들, 빈 술병이 줄을 선 좁아터진 집구석의,
돌아가며 한 사람씩 주절주절 자신의 노래를 부르는 파티,
그리고 저마다의 사연을 희미하게 간직한 듯한 얼굴들이  좋았다.
조금 머뭇거리는 듯한 기색이 느껴지는 소박한 화음이
그들의 음악에 잘 어울렸다.


댓글(16) 먼댓글(1)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 영화 ONCE의 밴드, the Swell Season 라이브 콘서트
    from 둥실둥실 검둥개 헌책방 2008-01-13 10:47 
    영화 ONCE를 봤다. 이웃이 시내에서 길거리 음악가 노릇을 해 번 잔돈을 훔쳐보겠다고 뜀뛰기 실력도 없으면서 잔돈이 든 기타 케이스를 들고 뛰는 한심한 건달이 등장하는 첫 장면도 좋았고, 체코에서 아일랜드로 이민온 여주인공이 고장난 진공청소기 후버를 들고 주인공과 태연하게 시내를 활보하는 장면도 좋았다.   영화에 나온 노래들은 실제로 주연을 한 두 배우, 아일랜드인 글렌 한스라드(Glen Hansard) 와
 
 
2007-10-05 1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05 1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05 1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05 15: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니 2007-10-05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로드무비 2007-10-06 10:57   좋아요 0 | URL
뭐가요? 헤헤.^^

icaru 2007-10-05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오에스티 듣고 싶네요. 머뭇거리는 듯한 기색이 느껴지는 소박한 화음..
음.... 가을이라서 그랬나봐요.
영화가 보고 싶더라고요. 잘 생기지는 않았지만, 멋있는 남자와 이쁘진 않지만 멋있는 여자가 나와서 불같지는 않지만 물같은 사랑을 하는 그런 영화요.

로드무비 2007-10-06 10:55   좋아요 0 | URL
이카루 님, 님과 아드님 맞아요? 우와!
님 서재에 가서 큰 사진으로 구경하고 왔어요.
어여쁘셔라.
뭡니까? 이쁘진 않지만 멋있는 여자가 아니라
무지 이쁜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다니.=3
시간 내서 꼭 보세요.
저런 기대사항이라면 마음에 흡족하실 겁니다.^^

밥헬퍼 2007-10-05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시나요? 알라딘 서재바뀌고 난뒤 몇 번 제 서재에 들러봤는데 괜히 낯설더라구요.그런데 이 서재는 여전하시군요. 자주 들렀으면 하는데 그게 그리 여의치않네요...평안하십시오.

로드무비 2007-10-06 10:51   좋아요 0 | URL
밥헬퍼 님, 안녕하세요?
저도 아직 서재 들어오면 낯선 동네에 온 것 같아요.
많이 바쁘신가 봅니다.
성경강독 올려주시면 참 좋겠는데.
시 이야기도 그렇고요.^^

nada 2007-10-05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녀'의 성숙함, 로드무비님 표현으로 태연함에 넋 놓고 빠져 들었던 영화예요.
음악은 말해 무엇해요..
응석부리지 않는 게 생활이 된 사람, 겉은 태연해 보여도 그 무너지는 속내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어요.

로드무비 2007-10-06 10:49   좋아요 0 | URL
꽃양배추 님, 카모메식당도 그렇고 사람을 잠시 정화시켜 주는 듯한
영화들이 있어요.
어지러운 영화 보고 잠시 방탕해지는 것도 좋고 또 이런 느낌도 괜찮더라고요.
저는 아마 평생을 가도 태연한 얼굴은 못 가질 것 같아요.(할수없죠, 뭐.)

이리스 2007-10-07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소기 끌고 나가고 싶어졌다니깐요.. ㅎㅎ

로드무비 2007-10-08 18:29   좋아요 0 | URL
멀쩡한 청소기 고장 내서라도 말이죠.ㅎㅎ

2007-10-11 16: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13 1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모스크바를 떠나 고향(우즈베키스탄)에 돌아와도 하릴없기는 마찬가지.


그래도 신경 써서 제일 괜찮은 옷으로 골라 입고 고향에 내려오면
엄마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내게 말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 한 지가 얼만데 니는 옷차림이 그게 뭐꼬.
공장 다니는 여기 아아들도 니보다 훨씬 쎄련됐다."

오래 전, 설이나 추석에 집에 가면 엄마의 잔소리를 들으며 전을 굽는데,
마음속으로 친구의 전화가 걸려오기만 기다렸다.
당연히 우리가 만나는 곳은 바닷가의 주점이었다.
(광안리 '연암'이라는 술집이 아직도 있나 몰라.)

민병훈 감독의 영화 <괜찮아, 울지마>의 무하마드처럼,
나도 친구에게, 또 합석한 술집 주인에게 뻥을 쳤는지 모른다.
별볼일없는 연애와 직장 생활을......

 


정체가 들통나자 어느 아침, 빈 바이올린 케이스를 들고 집을 나서지만.......

직장을 그만두고 내려오겠다는 말을 결국 하지 못하고, 새 이불을 한 채 얻어
귀경길에 올랐던 적이 있다.
영등포 역전에서 택시를 잡지 못하여 한 시간을 떨었다.

나야 새 이불이라도 한 채 얻었다지만,
도박빚에 잡힌 무하마드의 바이올린은 언제 제 집(케이스)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이 영화를 볼 때 터키 영화 <우작>이 생각났다.
주인공의 이름도 같지만 화면도 어딘가 닮았다.
그 무하마드가 하는 일마다 잘 안 풀려 심통스러운 낯짝이라면,
<괜찮아, 울지마>의 무하마드는 비굴하고 초조한 빛이 그대로 드러난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7-09-09 17: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09 1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10 0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10 1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로이카 2007-09-10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안녕하셨어요? 영화 장면이며, 표정이며 참 멋지네요. 어제 전어회 먹으면서, 로드무비님 생각했었는데 간만에 들어와 뵈니 반갑네요.. ㅎㅎ

로드무비 2007-09-10 13:06   좋아요 0 | URL
에로이카 님, 반갑습니다. 정말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죠?
그런데 어제 전어회를 드셨다니 집에 오신 거예요?
이 영화는 위의 첫 스틸 사진에 꽂혀서 보러 갔답니다.
중간에 잠깐 졸기도 했는데 만족스러웠습니다.^^

2007-09-10 2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누에 2007-09-30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심영화로 등록~

로드무비 2007-10-05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에 님, 묘한 서재 이미지네요. 구경 갈게요.=3
(전 이 영화가 좋았어요.)
 





지아장커 감독처럼 일관성을 가지고 우직하게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또 있을까.
그는 뿌리를 뽑힌, 혹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떠도는 사람들의 꾀죄죄한 모습에서
도무지 시선을 뗄 줄 모른다.
1998년에 본 <소무>에서 지난해의 <세계>, 그리고 <스틸 라이프>까지
세 편의 영화를 극장에서 만난본 견해로는 그렇다.

인디영화나 조촐한 처녀작으로 독특한 세계관이나 개성을 인정 받고 나면
기다렸다는 듯 흥행성을 겨냥하거나 혹은 블록버스터 영화도 만들 수 있다고
깝치는, 가벼움이 판을 치는 세상에 참으로 소중한 덕목이 아닐 수 없다.

16년 전 딸아이를 데리고 가출한 아내를 찾으러 산샤에 막 도착한 산밍.
배에서 내리기 전 마술쇼를 보라며 납치하다시피 그를 창고로 데리고 간 일당이
지폐를 가지고 오죽잖은 묘기를 보여준 뒤 요금을 내라고 그를 족치지만
그의 가방을 털어도 나오는 게 없다.
그는 두 눈만 꿈벅댈 뿐, 무서워 하지도 미안해 하지도 않는다.
배에서 내리려는 사람을 쇼를 보라고 강제로 데려가 앉힌 것도 그들이고,
묘기를 봤으니 돈을 내야 할 게 아니냐고 윽박지르는 것도 그들이다.

그에게 삶은 늘 이런 식이었다.
육체노동으로 뼈빠지게  모은 돈으로 수수한 여자와 결혼식을 치렀더니
딸을 낳고는 그만 내빼버렸다.
16년 동안 광부일을 하며 홀아비로 지내다가 딸아이 얼굴이나 한 번 보자 하여
집들과 건물이 수몰되고 철거공사가 한창중인 고향을 찾은 것.
양쯔강의 한 유역인 산샤는 중국 지폐에도 찍힐 정도로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하지만 지금은 곳곳에 부서진 건물들로 우중충하다.

또 한 명의 주인공 센홍은 2년째 연락이 끊긴 남편을 만나러 산샤에 왔다.
남편은 이 수몰댐 지역에서 한창 잘 나가는 공사 관리자.
<소무>의 소매치기 주인공 왕홍웨이가 제법 번듯한 사무원의 모습으로
딴 여자와 바람난 친구녀석의 아내(센홍)를 하룻밤 재워주며
부부를 만나게 하는 역할을 맡았다.
센홍은 속을 알 수 없는 덤덤한 얼굴로 물만 들이킨다.
소지하고 있는 조그만 생수병은 가는 곳마다 물 먼저 채우고 보는 주인 덕분에
바닥을 보일 때가 없다.
미지근한 물로 근근이 몇 모금 간신히 목을 축이는 그녀.

이 영화는 담배, 술, 차, 사탕 등의 자막과 함께 화면이 자연스럽게 바뀐다.
소박하기 그지없는 소제목처럼 영화 속의 가난한 인물들이 서로 나눌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이 영화에서 제일 화려한(?) 장면은 반건달인 어린 잡부 '마크'와
중늙은이 산밍이 핸드폰 전화번호를 교환하는 장면.
상대가 불러주는 전화번호를 누르면 저장된 음악이  흘러나온다.
'착하게 살자'가 산밍이 선택한 곡.
젊음이 얼마나 흐뭇한 것인지 주윤발의 왕팬인 마크가 까불까불하는 장면이
신선하고 보기 좋았다. 그들의 우정도......

허물어진 우중충한 건물의 남은 벽엔 누군가 붙여놓은 '노키아'의 회사 벽보나
'努力'이라고 쓰인 종이쪽지가 펄렁이고 있다.
그 속에서 웃고 떠들며 살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담배 술 차 사탕은 중국인들이 권커니잣거니 정을 쌓는 데 꼭 필요한 것들이다.
거기다 나는 '국수'를 슬그머니 끼워넣고 싶다.

산밍이 아내의 행방을 물으려 그녀의 친척을 물어물어 찾았는데
그때 그는 우리 공사판으로 치면 십장쯤 되는지 인부들이 먹을 점심으로
한솥 가득 국수를 끓이고 있었다. 화덕 앞에서.
퉁퉁 불어터진 면발에 양념장을 끼얹어 먹는 게 고작이었는데
글쎄 산밍에게 한 젓가락 먹어보라고 권하지도 않는 거다.
가난과 고된 노역에 지쳤는지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 마음이 전혀 없어 보이던
그 인부들은 하나같이 낯짝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퉁퉁 불어터진 누르끼리한 국수도 인상적이었고......

장률의 <망종>이 그랬던 것처럼 보고 나면 이상하게 차분하고 냉정해지는 영화이다.
산밍과 센홍의 그 덤덤한 얼굴을 닮고 싶다.







여자의 브래지어와 링겔병이 대롱대롱한 너머로 보이는 수몰지구의 모습.




아슬아슬 바닥을 보이기 직전 기적처럼 새 물을 조금 채우게 되는 센홍의 생수병. 가는 곳마다 보이는 중국의 물통과 겨울의 보온병은 무슨 중요한 상징같이 느껴진다.








 



댓글(11) 먼댓글(1)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에로이카 2007-06-18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가 대문 사진인가요? 실제로 가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영화사진의 배경은 꽤 근사하네요.

로드무비 2007-06-18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로이카 님, 이 영화 기다리다 목 빠지는 줄 알았어요.
개봉일을 한달 뒤로 미루는 바람에.
제가 무지 좋아하는 지아장케 감독의 영화예요.
스틸 라이프, 제목도 멋지죠?^^

2007-06-18 14: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06-18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도 포스터도 멋지네요. 개봉되면 얼른 가서 봐야겠어요.^^

waits 2007-06-18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아장커 영화는 한 편도 못봤어요. <망종>이 거론되니 확 궁금해지는데요. 찾아보니 씨네큐브에서도 곧 내린다네요, 연장 혹은 확대 상영하는지 봐야겠어요. 솔직히 전 배우 비쥬얼도 좀 따라줘야 감동도 배가되는데...^^;;

Mephistopheles 2007-06-19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주 전에..장양 감독의 "해바라기"를 봤었는데....
중국(본토)영화들 대단하다는 걸 약간이나마 느꼈습니다.
그 영화에서도 노상 찻물이 가득 담긴 차 보온병을 들고 다니더군요..

2007-06-18 2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7-06-19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레여행 님,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서만은 행동이 재빠른 편입니다.
개봉되자마자 달려가서 봤고요.
리뷰든 페이퍼든 필요가 없는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결국 주절대는군요.
어디로 가시는지 궁금합니다. 긴 여행이군요. 잘 다녀오세요.^^
(영화는 내킬 때 언제든 달려갈 수 있게 혼자 보는 게 최고!
친구들이랑 스케줄 맞추다가 보고 싶은 영화 놓치는 일이 제법 있더군요.)

메피스토 님, 해바라기 저도 조금 봤어요.
끝까지 보고 싶었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았어요.
세피아빛 화면의 서정스러움이라니......
찻물과 보온병.
그 투박한 보온병들이 이상하게 심금을 울립니다.^^

나어릴때 님, 전 꾀죄죄한 비주얼을 선호합니다.
산밍과 센홍 두 주인공 얼마나 매력적인데요.
뚱한 얼굴.
저도 그 과라.=3=3=3
(무리하실 건 없죠, 뭐.)

혜경 님 지난주 목요일인가 개봉했습니다.
부산은 국도에서 상영하겠군요.
할매집 비빔국수 먹고 싶어요.^^







릴케 현상 2007-06-21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서재는 넘 적응이 안 돼서 짱나지만 로드무비님이 버티고 있어서 참 좋네요^^

로드무비 2007-06-21 14:26   좋아요 0 | URL
앗, 그렇게 말씀해 주시다니.
고맙습니다.(_ _)
바뀐 방이 저도 마음에 안 들지만 우짜겠습니까.
함께 마음을 붙여 보아요.^^*

2007-06-22 18: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누도 잇신의 <황색 눈물>.
별 신통할 것도 없는 인연을 내세워, 만화가 에이스케의 단칸방에 한 명 한 명 기어들어와
1963년, 올림픽이 열리던 해 여름을 났던 청년들.
일본의 아이돌 그룹 아라시 멤버들이 더이상 어울릴 수 없는 역들을 맡아
청춘의 얼굴로 표상되는 연기를 펼쳤다.

어쩌다 보니 자신의 손바닥만한 방이 네 청년의 합숙소가 되어 만화 한 컷 그리는 것조차 
여의치 않게 되었지만 에이스케는 친구들을 내치기는커녕
유명 만화가의 밤샘작업을 돕는 아르바이트로 얼마간의 목돈을 마련하여
여름을 함께 날 자금을 마련한다.
자기가 돌아오기만 바라며 친구들이 굶고 있지 않나 달려왔더니
운좋게 케이의 그림 한 점이 팔려 양식집에서 배 터지게 이것저것 시켜 먹고 있는 녀석들.

아마추어 화가 케이, 가수 지망생 쇼이치, 소설을 구상중인 슈조는 꿈만 거창할 뿐이다.
그들은 배가 고프면 동네 전당포에 자신의 미래를 저당잡혀 돈까스 덮밥을 시켜먹는 짓도
마다하지 않는다.
화구 세트, 기타, 만년필.

동네 쌀집 배달부로 또래의 예술가 지망생인 그들에게
군둥내 나는 쌀을 제공하는 등  무조건적인 호의를 베푸는 근로청년 유지.
땀을 뻘뻘 흘리며 배달을 하는 동안, 꼴에 예술을 한답시고 아무 하는 일 없이
몰려 다니며 무위도식하는 녀석들이 눈꼴 시려울 만도 한데
처음부터 끝까지 웃으며 친절을 베푼다.

모처럼 돈이 생겨 조그만 양철 세숫대야를 하나씩 들고 그들이 떼로 목욕 가는 장면.
클래식 카페에서 제목만 거창하게 적힌 원고지 뭉치를 앞에 놓고
작품구상은 고사하고 곁눈질로 웨이트리스만 훔쳐보는 슈조.
꼬질꼬질한 그의 단벌 재킷.

재떨이에서 쓸만한 담배꽁초를 주워 피며 앉은뱅이 책상 앞에서 만화를 그리는 에이스케.
백지 위에 펜촉이 슥슥 지나가는 소리가 듣기 좋다.

케이와 친구들이 에이스케에게 보낸 편지로 소개되는
'인생은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 어쩌고 저쩌고 하는
영화의 마지막 내레이션이 좋았다.
더 기가 막힌 건 집 앞 모퉁이의 담배가게 할머니와 담벼락 밑의 개,
돈까스덮밥집 주방장(겸 주인)까지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엔딩크레딧의 애니메이션에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 따뜻하고 세심한 눈길이 좋아서 극장 계단을 내려올 때 실실 웃음이 났다.













댓글(2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연 2007-06-17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꼭 보고 싶어요^^

로드무비 2007-06-17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 님, 한 번 더 보고 싶어요. 특히 엔딩 크레딧.^^

Mephistopheles 2007-06-17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가 혹시 나무님의 서재이미지로 걸려 있는 그 영화인가요..??
(이누도 잇신 감독이라면 무조건 봐줘야 한다는 생각이..^^)

로드무비 2007-06-17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 님, 맞습니다. 다소 감상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그의 영화가 좋아요.^^

플레져 2007-06-17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개봉했군요.
낼롬 보러가야겠어요!

로드무비 2007-06-17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 님, 어떻게 새 페이퍼 올린 거 알고 찾아들 오시는지 신기합니다.^^
(당장 보러 가세요.)

비로그인 2007-06-17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의 6,70년대와 한국의 8,90년대는 닮았습니다.
소박함, 순수함, 배려, 끈끈한 정, 나눔 ... 훈훈한 공기까지.
하지만 지금은...

로드무비 2007-06-17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L-SHIN 님, 약 20년 정도씩 차이가 나나요?
설마 지금은 그렇지 않겠지요.
전 허름한 풍경과 사람들이 좋아요.
요즘 세상은 너무 휘황하달까.
겉모습만.
40여 년 전의 도쿄 한 골목, 낡은 집들과 식당,
어리숙한 청년들의 꿈과 우정이 눈물겨웠어요.^^

비로그인 2007-06-19 10:37   좋아요 0 | URL
지금은 '상대적 시간 차이'가 난다고 할까요. (웃음)
예를 들어, IT 산업이나 반도체 산업 분야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차이가 거의 없고,
선진적 의식 사고, 친절, 서비스는 아직도 한국이 일본보다 느리니까요.
초.중학생이 교사를 폭행하는 일, 왕따, 청소년 자살, 원조교제 등 나쁜 것들은..
이제 시대의 차이 없이 두 나라가 똑같이 합니다.

재밌는 것은, 한국은 '일본을 싫어해' 라고 입버릇처럼 하면서 가장 많이 문화가
닮아가는 것이 일본입니다. 그만큼 '가까운 나라'로써 문화적 교류,상업적 거래가
많이 이루어지죠.
반면에, 중국은 '싸고 질 나쁜 물건들' '인체에 해를 끼치는 음식'이라는 오점으로
한국인들의 관심을 그다지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밉다던 일본에 대해서는 이거저거 할 이야기가 많은데, 중국에 대해서는
이야기거리가 없어 입을 꾹 다물죠. 그다지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도 미움도 다 관심과 애정에서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나저나, 두 나라가 서로의 좋은 점만 닮아갔으면 좋겠습니다. ^^

로드무비 2007-06-19 10:54   좋아요 0 | URL
아아, 마이크 테스트. L-SHiN 님이 단 댓글처럼 이것도 그렇게 될라나요?

로드무비 2007-06-19 11:05   좋아요 0 | URL
긴 댓글 알라딘이 잡아먹었어요.
모처럼 열변을 토했더만. 김 빠져서.....
님의 생각과 거의 같아요.
그런데 우리에게 좋은 점이 뭐라도 남아 있긴 한 걸까요?

비로그인 2007-06-20 09:53   좋아요 0 | URL
좋은 것..아주 많죠. ^^

로드무비 2007-06-21 14:42   좋아요 0 | URL
그런 대답을 듣고 싶었어요.^^*

blowup 2007-06-17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럴 것 같았어요.
포스터, 스틸 모두 좋더군요.
이걸 보려면 서울 나들이를 해야겠네요.^-^
눅눅한 바람 같은 영화이지 않을까, 싶어요.

chika 2007-06-17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는 영화를 보고 나서 읽을라구요. (과연 이곳에서는 개봉을 할런지! ㅠ.ㅠ)
첨엔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이 영화의 주연, 일본 자니스의 아이돌 중 하나인 아라시멤버가 주연인거잖아요. 니노밍은 연기를 잘한다고 들었었지만 다른 멤버들은 연기를 잘한다는 생각을 안해봤거든요.(마츠모토 준은 여기서 빠져있고)
그래도 영화는 주연이 아니라 감독을 보고 선택하면 실패하지 않는다,는 명언을 기억하면서.... (그치만 전 아라시 팬이니까 감독을 안봤더라도 영화 봤을꺼 같구만요. ㅋㅋㅋ)
- 참, 페이퍼 안읽어도 충분히 추천받을만한 글 쓰신거 맞죠? (아, 뭐라 썼을지 궁금하지만...영화관련글은 영화보기 전엔 읽고싶지 않다는 강박관념이...ㅠ.ㅠ)

향기로운 2007-06-18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보고싶은데..ㅠㅠ;; 시험기간이 얼렁 끝나면 좋겠네요~^^;;

waits 2007-06-18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 토요일날 봤어요, 엔딩크레딧까지 보고 괜히 너무 좋아서 막 가슴이 쿵쾅거렸어요.
분화가 끝난 화산은 한낱(?) 산일 뿐이라는, 자기 세계를 좀더 소중히 하고 싶다는, 우리들은 평범했다는. 그 철부지들의 독백이 아직 마음에 남아있어요. 아라시라는 그룹이 있다는 건 영화 보고나서야 알았다는...^^;;

로드무비 2007-06-18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어릴때 님, 우리의 무능과 어쩌고 하는 독백도 좋았는데.
아라시는 우리나라에도 팬들이 많다네요. 고1인 조카만 해도 아라시 때문에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으로 유학가겠다고 난리를 쳤거든요.^^

향기로운 님, 시험 잘 치시고요, 영화도 꼭 보세요.^^

치카 님, 페이퍼 안 읽고 먼저 추천을 눌러주시다니! 감사.^^
<스틸 라이프> 보기 전날 전초전으로 본 영화인데 정말 좋았어요.
역시 저에겐 아직 소녀의 감수성이.=3=3=3
(치카 님, 반가워유. 영화 꼭 극장에서 보실 수 있길 기도할께용)

namu 님, '이럴 것 같았어요'라는 말이 무지 웃겨요.
서울 아니라 일본 나들이라도 하셔야죠.=3=3=3
눅눅하고 콤콤한데 고소한 영화예요.


네꼬 2007-06-18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나 읽고 싶지만 재빨리 스크롤해서 내려왔어요. 저도 이 영화 보고 싶은데 조심하지 않으면 님께 홀려 버리거든요. 꼭 그러시더라. 내가 보고 싶은 영화 다 보시고, 보기도 님의 의견에 혹하게 하시고. (네꼬, 게으른 주제에 왜 입을 내미냐!)

로드무비 2007-06-19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 님, 제가 딱 하나, 좋아하는 영화 보는 일만큼은 동작이 빠른 편입니다. 보시고 나서 누가 제일 마음에 드는지 알려주세요.=3=3=3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결혼이 꿈이었던 호주의 노처녀 뮤리엘(토니 콜레트)이 올리브의 엄마로 돌아왔다.
<뮤리엘의 웨딩>은 정작 내게 주인공 뮤리엘보다는 고막이 찢어질 듯한 아바의 음악과
그녀의 친구 론다(레이첼 그리피스)가 더 깊은 인상을 남긴 영화다.

또래 친구들에 비해 배가 많이 나오고 동글납작한 얼굴의 소녀 올리브(애비게일 브레슬린)는
가당찮게도 미인대회 출전의 꿈을 품고 있다.
만류는커녕 그 꿈에 불을 지피는 사람은 마약 복용으로 양로원에서 쫓겨난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인생 좌우명은,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많이 하라!", 무엇을?

'입술에 붉은 기운이 남아 있을 때 사랑하고,
시들기 전에 한 송이의 장미를 더 따라'는 어느 시인의 시구와 일맥상통한다.

열다섯 살 난 올리브의 오빠 드웨인은 니체 신봉자로 비행기 조종사가 꿈인데
9개월째 묵언 수행 중이다.
니체의 초대형 얼굴이 벽면 한쪽에 붙어 펄럭이는 방에 어느 날 불청객이 찾아든다.
혼자 놔두면 또 자살을 시도할지 모르니 잘 감시하라는 병원의 당부에
할수없이 자신의 오빠를 집으로 데리고 온 쉐릴(옛 뮤리엘).
그녀는 아들의 침대 옆에 오빠의 침대를 들여놓는다.






니체에 열광하는 소년 드웨인은 필담으로 자칭 "프로스트 연구의 1인자"라는 외삼촌과
이 우라질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뮤리엘의 남편 리차드는 인생을 '성공'과 '실패'의 두 부류로 파악하고
"절대무패 9단계 이론"을 연구하여 책으로 묶어내려는 야심가.
프랭크의 퇴원으로 더더욱이나  물과 기름처럼 절대 섞일 수 없을 것 같은 이 가족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되는데 저녁식탁 자리에 한 통의 전화가 울린다.
이틀 후 멀고 먼 캘리포니아에서 꽤나 유명한 어린이 미인 선발대회가 열린다는......
기쁜 소식에 입에 물고 있던 닭다리를 내팽개치고 당장 짐을 싸러 들어가는 올리브.



















문짝이 떨어져 나가질 않나, 고물 봉고와 함께 한 이 괴상한 가족 구성의 1박 2일 여정.
천신만고 끝에 목적지에 도착, 미스 리틀 선샤인 대회에 참석하는데,
어른을 그대로 축소한 화장과 의상과 미소와 장기를 보여주는 열한 명의 꼬마 참가자들.

다른 아이들과는 너무 다른 모습으로 장기를 보이려고 무대에 오르는
배불뚝이 소녀 올리브를 보고 있자니 갑자기 가슴속에서 둥둥 큰북이 울렸다.

눈물을 흘리며 동시에 낄낄 웃으며 본 올리브의 공연 장면이
이 영화의 라스트씬.
그 장면만 생각하면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인생이라는 이 초라한 무대의 초라한 꽃다발이 그렇게 아름답고 정겨울 수 있다니......







댓글(7)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nada 2006-12-30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 저 노란 수첩의 정체가...

가족의 탄생, 재구성에 대한 영화는 언제나 매력 있어요. 그만큼 우리가 가진 가족 제도가 허술해서 그런 거겠죠... 가슴 속의 큰북 소리.. 왜 공감이 가죠. ㅋ

2006-12-30 2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짱꿀라 2006-12-31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새해에도 복 많이 받으세요.

2006-12-31 1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1-01 18: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7-01-01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굿모닝 나잇 님, 오늘 영화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살짝 한맺힌, 이라는 표현에 깔깔거렸고요.
저도 뭐 별로 마음에 드는 이름이 아니어서,.
(오늘, 컴이 자꾸 꺼져서 댓글 쓰기도 힘들어요.)
그 대사는 사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건데
멋을 부리지 않은 말이 더 어필되는 케이스일까요?^^

못된 마녀처럼 님, 네, 제 생각에도 사진이 좀 마음에 안 들어
아까 페이퍼로 함께 옮겨오지 않았던 거예요.
그나마도 다행이다 싶군요.
님의 깊은 뜻을 모르고.^,.~

2007-01-02 07:3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