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호 감독의 영화 <행복>에서 '죽음 직전'을 선고받은 영수(황정민)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건 대단하고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이 세상에서 잠시 더 노닥거릴 자유, 평소 살던 대로 흥청망청거릴
유예된 시간이었다.

아침을 깨우는 제대로 뽑은 원두커피 한잔, 재즈의 선율과 함께 마시는 위스키 온더락,
실크슬립과 함께 감겨오는 이기적이고 냉정한 애인의 낯익은 향수 냄새.
고층, 통유리 창문이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는 새벽과 아침과 정오와 늦은 오후와 저녁,
그리고 깊은 밤 저마다의 불빛으로 반짝이다 스러지는 도시의 스카이라인.
그것이 설령 겉멋이며 나쁜 습관에 속한 것이라 해도......

건강과 일생의 사랑,
그는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이 뻔한 소중한 기회를 발로 뻥 찬다.
자신이 떠나면 곧 세상을 떠날지도 모를 연인을 버려두고.
건강이 좀 회복되자 그가 다시 악착같이 기어드는 건 바로 그 소굴.
그 소굴이 언젠가 자신을 내팽개칠 거라는 사실을 번연히 알면서도......






<행복>의 황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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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8-01-22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가슴아픈 얘기는 못 보는 병이 있어서...병을 고쳐야 할까요^^

로드무비 2008-01-22 13:01   좋아요 0 | URL
가슴 아픈 얘기는 못 본다고 스스로 믿는 게 어쩌면 병.=3=3=3
(산책 님, 반갑슴다.^^)

chika 2008-01-22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오랜만이예요.
지금 '길에서 영화를 만나다'라는 책을 읽는 중인데, 출판사가 '쿠오레'예요. 책을 집어들때부터 로드무비님 생각이 났거든요. 그래서 더 반가워요 ^^

chika 2008-01-22 13:47   좋아요 0 | URL
아, 근데 왜 전 '흥청망청'이라는 로드무비님 페이퍼 제목보면서 주하랑 관련된 얘기일꺼라 생각했을까요? ^^;;; (아마도... 그동안의 페이퍼가...;;;;)

로드무비 2008-01-22 14:48   좋아요 0 | URL
치카 님, 앗, 쿠오레라는 출판사가 있어요?
'길에서 영화를 만나다'라니 바로 저 로드무비를 말하는 것 같고.
그런데, 제 알뜰하고 살뜰한 도러와 '흥청망청'이
무슨 연관이 있다는 말씀인지.=3=3=3
아무튼 반갑습니다요, 치카 님.^^

chika 2008-01-22 15:18   좋아요 0 | URL
헤헤헤~
로드무비님은 항상 그 알뜰하고 살뜰하고 이쁘기까지 한 도러에게 딴엄마들과는 다른 기준으로 잘 해주시잖아요. 전 그런 내용인줄알고요..이번엔 또 어떤 모험담(?)인가, 했거던요. ^^
- 댓글쓰고, 지금 이시간까지 회의자료준비땜에 서있었더니 다리가 막 아파요.. ㅠ.ㅠ

로드무비 2008-01-22 17:29   좋아요 0 | URL
이제 뭉친 다리 좀 풀리셨나요?^^
먹고살기 위해 일하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최대의 존경이 담긴 인사랍니다.)

프레이야 2008-01-22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기 전에 '잘 죽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한 대 담배를 피우던 나이든 남자,
박인환이 제일로 기억에 남아요. 행복은 그런 것인가 봐요.
담배를 피우던 폐암환자 그 남자나 그 소굴로 기어들던 영수처럼요..^^

로드무비 2008-01-22 14:51   좋아요 0 | URL
혜경 님, 마지막 담배 한 모금 맛이 과연 어땠을까요?
박스 하나로 정리되는 그의 삶이 나쁘진 않아 보였습니다.
 
간절하게 참 철없이 - 2009 제11회 백석문학상 수상작 창비시선 283
안도현 지음 / 창비 / 2008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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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밥 한 그릇이
소반 위에 놓여 있다
소반이 적막하여서
무밥도 적막하여서
송송 채를 썬
흰무의 무른 살에 스민
뜨거움도 적막하여서
무밥 옆에 댕그라니 놓인
양념간장 한 종지도
옛적에 젊은 외삼촌이
여자를 만난 것처럼
가난하게 적막하여서
들척지근하고 삼삼한
이 한 저녁을
나는 달그락달그락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무밥' 안도현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


떡잎이 누렇게 진 시든 채소를 다듬어 삶아 나물 한 접시를 무치고,
냉동실에 굴러다니는 꽝꽝 언 생선을 녹여서 굽거나 찌개를 만들어
버젓이 한 끼를 해결하고 나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다.
나의 알뜰살뜰함과, 소박한 찬이 주는 만족감이라니......

'달의 변화 관찰'이라는 딸아이 학교숙제 도움을 받기 위해
몇 달 전 늦은 밤 딸아이 친구의 집을 찾았을 때
열 살, 여덟 살인 두 살 터울의 자매가
소매끝이 나달나달하고 목이 늘어져
어깨가 드러날락 말락 하는 내복 차림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낡은 내복을 입은 보름달 같은 어린 자매의 모습은
김치냉장고 사는 데 보태기 위해 마트 일을 나간다는
그 엄마의 말과 함께 그립고 순정한 풍경으로 다가왔다.

<간절하게 참 철없이>는 평소 그립고 순정한 풍경을 보여주는
안도현의 신작 시집이다.
특히 2부에 묶인 22편의 시는 시인이 밤새도록 끓인 뜨끈한 국밥 같다.
그가 차린 개다리밥상 위에는 찌그러진 알루미늄 냄비나  손때 묻은 막사발에
무밥이나 갱죽(53쪽, "밥알보다 나물이 많아서 슬픈 죽")이 
김을 피워 올리고 있다.
'통영 서호시장 시락국'(73쪽)은 내 언젠가 꼭 가서 먹어보고 말
맛집 명부에 오르고......
"들척지근하고 삼삼한" 무밥이나 시락국은 음식이라기보다 내게는 뭐랄까,
소박하고도 견고한 정신성의 상징 같다.

날씨가 춥다.
정육점에 딸린 동네의 허름한 식당에서,
프라이팬에 파채랑 수북히 얹어서
삼겹살이나 지글지글 구워 먹었으면 좋겠는 저녁이 온다.



 

***창비 서평단으로 받은 시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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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8 20: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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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9 07: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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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8-01-18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오늘 낮에 시락국 먹었어요.^^
어느 샘과 이름도 예쁜 '꽃마을'이란 동네의 할매집이라는 식당에서요.
소박하고 견고한 정신성의 상징.. 마음에 닿는 구절입니다.
뚝배기에 담긴 시락국에 소박한 밑반찬 몇가지와 쭉쭉 찢어먹는 벌건 김치가
어찌 맛나던지요. 무조림이랑 빡빡하게 끓인 된장찌게도요~

로드무비 2008-01-19 00:07   좋아요 0 | URL
시락국이란 이름 참 구수하고 예쁘죠?
맑은 된장국 잘 끓이는 게 힘들까요, 툭한 된장국 잘 끓이는 게 힘들까요?
이상한 의문들이 머리속을 오갑니다.
혜경 님, 저도 오늘 저녁 가자미와 함께 얼큰하게 졸인 무조림 먹었어요.^^

2008-01-18 2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18 2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19 07: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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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다예요 2008-01-19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밤새도록 끓인 뜨끈한 국밥, 같다니... 말만 들어도 속이 뜨끈뜨끈해지는 것 같아요.
예전엔 옆에 끼고 많이 보면서 그의 시가 연탄처럼 너무 뜨끈뜨끈해 좋았더랬는데, 요즘엔 냉랭한 것들에 익숙해져서 인지 최근엔 그의 시를 별로 읽질 않았거든요. 그래도 신작이 나왔다니 궁금하네요. 반가워요^^

로드무비 2008-01-22 13:08   좋아요 0 | URL
이게다예요 님, 그러니까요.
저는 안도현 시인의 시를 언젠가부터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모처럼 읽어보니 참 좋더라고요.
음식 시들은 특히 좋네요.^^


2008-01-20 0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22 1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수일 감독 <검은 땅의 소녀와>
...내 눈에는 어린 보살처럼 보이는 소녀 영림 



'무슨 말을 하지 않기 위해 그는 그토록 많은 말을 지껄여댄 것일까.'
(<검은 사슴> 한강, 61쪽)


세상에는 "무슨 말을 하지 않기 위해 그토록 많은 말을 지껄이는 사람"과
무슨 말을 꼭 하고 싶은데 입을 꾹 다무는 사람들이 있다.

한창 잘 나갈 때는 지나가는 개도 시퍼런 만 원 지폐를 입에 물고 다녔다는
탄광도시 철암.
광부들과 그 가족들도 모두 떠났는데 고집스레 남아 있는 한  민중미술가와의 인터뷰를 위해
그곳을 찾는 잡지사 기자와 그 후배의 여정이 중요한 얼개를 이루는
한강의 장편소설 <검은 사슴>은 저 한 문장으로 마음속에 남았다.




황재형 '식사' 1985 가을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하여 쭈그리고 앉아 먹는 밥


몇 개월 전 소설 <검은 사슴>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화가 황재형을 떠올렸다.
'황지'라는 그림으로 대한민국 화단에 자신을 알린 화가는
1983년 가족과 함께 철암으로 아예 거주지를 옮겼다.
탄광화가로 불리는 그는 몇 년 전 KBS 심야 프로그램 '디지털 미술관'에 나와
'철암'이라는 다소 낯선 지명의 황량한 풍경과 함께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2007년 12월 초부터 2008년 1월 6일까지 가나아트센터에서
16년 만에 그의 전시회가 열렸다는데 아깝게 놓쳤다.

흔히 탄광에서 일하는 걸 갈 데까지 다 갔다고 하여 '막장 인생'이라고 하는데,
화가는 이렇게 말한다.
"닫힌 현실이라는 점에서 서울도 막장이다."

영화 <검은 땅의 소녀와>는 갱 속과 갱 밖 광부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황재형 'In My Heaven' 1997 겨울
...저 골짜기 나부끼는 빨래를 보라. 제목이 특히 인상적인 그림.




황재형  '기다리는 사람들'
...무엇을 기다린다는 것일까.




사택도 곧 헐린다는데, 진폐증으로 해고당한 아버지.
영화 <검은 땅의 소녀와>










'어디로 갈까?  아홉 살 소녀 영림의 시선.



'내 안에 부는 바람'이라든가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 등,
나이브한 제목 때문일까 지나치게 심정적이고 멋을 부린 것 같아서 전수일 감독의 영화에
나는 아예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검은 땅의 소녀와>를 보고 나의 편견과 완고함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한마디 대사나 내레이션 없이,
가장  압도적이고 아름다운 라스트 신으로 기억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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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8-01-18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ㅡ저도 디지털미술관에서 같은 다큐 봤었어요. 그때 진짜 먹먹하고 KBS가 그래도 공영은 공영이구나 막 그랬는데...
이 영화, 저도 볼 생각이 없었는데, 다시 생각하게 되네요.

로드무비 2008-01-18 14:03   좋아요 0 | URL
치니 님, 그 프로에서 '철암 그리기'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죠?
이 영화 이상하게 보고 싶더라고요.
극장을 나올 때 환장할 것 같은 기분과 먹먹함이 교차하더군요.

2008-01-18 2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19 07: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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瑚璉 2008-01-19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 볼 줄은 모르지만 'In My Heaven'이라는 그림은 사고 싶을 정돈네요(문제는 돈 -.-;).

로드무비 2008-01-22 22:10   좋아요 0 | URL
앗, 호련 님, 숨어 계시다니.^^
저도 저 그림이 좋아요.
네, 문제는 돈입죠.

Mephistopheles 2008-01-19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를 읽고 떠오르는 탄광촌의 또 다른 비극 "정선카지노" 생각해부렸어요.

로드무비 2008-01-22 13:18   좋아요 0 | URL
그럼요, 당연한 연상작용이지요, 메피스토 님.^^

사량 2008-01-19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은 사슴>, 꼭 10년 전쯤 스산한 마음으로 읽었던 소설인데 이렇게 그림과 영화와 만나네요. 현실이 황량하고 먹먹한 폐허처럼 느껴지는 요즘에 더욱 저릿해지는 그림들과 스틸샷입니다. 고맙습니다.

로드무비 2008-01-22 13:17   좋아요 0 | URL
사량 님, 반갑습니다.
<검은 사슴>이 10년 전에 나왔군요.
그때 읽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뒤늦게 읽자니 온갖 잡생각이 끼어들더군요.
최근에 열린 화가의 전시회 놓친 것 알고 정말 아까웠습니다.


2008-01-20 0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22 13: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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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9 17: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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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30 16: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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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우타코 씨
다나베 세이코 지음, 권남희.이학선 옮김 / 여성신문사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영감 따윈 필요없어!"라며 노년의 삶을 홀로 만끽하며 살아가는 우타코는
자신의 나이(77세)를 ‘골든 에이지’라고 부른다.
사별 당번, 생이별 당번, 병 당번, 재난 당번 등 '희미한 그림자'(神을 지칭하는 것)가
차례로 걸어주는 인생의 간난신고를 모두 완수한 그녀의 목에는
더이상 걸려 있는 패찰이 없다.

인생의 고난도 당번을 서는 것과 같다니, 이를테면,
학교에 다닐 때 어김없이 차례가 돌아와 화장실 청소를 한다든가
학급 아이들이 마실 물주전자를 낑낑거리며 교실까지 날랐던 것처럼?
병이나 명퇴나 사랑하는 사람의 사별 등 참을 수 없는
인생의 고통도 그렇게 당번을 선다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앙탈을 부려봤자 소용이 없으니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선선히 맞아들이라는데
그렇게 생각하니 우리가 전전긍긍하던 그 모든 일들이 '그까짓것!' 싶어진다.

남편을 앞서 보내고 분연히 일어나 쓰러져가는 집안을 일으켰던 그녀.
자식들이 함께 살자는 걸 마다하고 고급 맨션에서 혼자 사는 우타코는 맛있는 것 챙겨먹고,
철마다 예쁜 옷 맞춰 입고, 이것저것 마음 가는 대로 공부도 하면서
화사하고 유쾌하게 지내는데......
자유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며,
연애나 섹스나 결혼에는 크게 관심이 없지만,
우정이든 연애든 한 인간과의 사이에서 오고가는 '설렘'이야말로
인생 최고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타코 씨는 각자가 마음을 굳게 먹고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자식이라고, 또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하여 호들갑을 떨며
엎어지고 자빠지는 것이 사랑이라 굳게 믿는 사람들의 대열에서 멀리 벗어나 있다.

우타코 씨를 보며 문득 생각나는 일 하나.
혈관이 약해 뭐가 잘못되어 지난달에 다시 수술을 받은 엄마는
마취에서 깬 직후 홍콩에 출장 간 내 남동생과 통화하는 아버지를 보더니
핸드폰을 달라고 했단다.

"니 홍콩 출장 갔다며?  올 때 랑콤 딱분 사온나. 다 떨어졌다."

순간 6인실의 병실에 웃음꽃이 터졌다고.
밤에 전화로 여동생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배꼽을 잡았다.
갑자기 닥친 병마와 두 번의 수술로 기운을 잃으시면 어쩌나 했는데
그것은 기우였던 것이다.

예쁜 옷 좋아하고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면에서 이 책의 주인공을 많이 닮은
우리 엄마.
우타코 씨를 만나고 어떤 표정을 지으실지 자못 궁금하다.


----------------------------


이 책은 1923년생인 '과천의 이야기 할머니'이학선 여사와
최고의 일본문학 번역가로 명성이 자자한 권남희 씨의 공동번역이다.
이학선 여사는 10여 년 전 작가 다나베 세이코(<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원작자)를 만나고
이 책을 읽으며 우타코 씨에 반해 가슴 설레며 번역을 마쳤다고 한다.
권남희 씨는 나이 마흔을 맞으며 우울증이 찾아왔는데 소설 속의 우타코 씨와
그때 일흔몇 살이었던 이학선 여사를 만나면서 우울증이라는 종기가
싹 나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의문이 있다.
공동번역인데 책 뒤에 왜 한 사람의 말만 실었는가?
권남희 씨의 이 책 소개를 읽으며 이학선 여사의 '옮긴이의 변'이 궁금해
급히 책장을 넘겼는데 허무하게도 그게 끝이었다.
내가 정말 궁금했던 건 출판을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기약도 없는 가운데 
10년 전 노트 세 권에 우타코 씨를 한 자 한 자 옮겼다는 이학선 여사의 소회다.
이런 무례무신경함이라니......
이럴 때는 책을 확 집어던지고 거리로 뛰어나가고 싶다.
우라질 세상, 책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여성신문사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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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8-01-11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이섬 입장권은 왜 주는걸까요? 갸웃. ^-^ 로드무비님, 반가운데 딴 소리만 하네요.

로드무비 2008-01-11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치니 님 반가워요.^^
제가 이 책 살 땐 안 줬는데.
뭐 줘봤자 안 갔겠지만 그래도 궁시렁.
심술 모드.=3=3=3

2008-01-11 15: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11 16: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11 16: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11 2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11 2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12 1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12 09: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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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2 10: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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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2 15: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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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4 13: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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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2 15: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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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4 13: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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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2 16: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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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4 1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8-01-12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또 이래~ 비밀댓글들의 행렬ㅎㅎ
어머니 수술 후 몸은 좋아지셨는지요?
우타코 씨는 로드무비 님의 어머니와도 닮았고 울엄마와 시어머님과도 닮았네요. ^^
고희를 한 해 앞둔 용띠 엄마에게 사드려야겠어요.
다나베 세이코의 소설은 개운한 레모네이드 같단 생각을 했드랬어요.
그나저나 이학선 여사의 소회가 저도 궁금해져요.
우라질..(이거 한번 따라해보니까 재밌네요.ㅎㅎ)

로드무비 2008-01-14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 님, 비밀댓글 궁금하세요?ㅎㅎ
그냥 소소한 대화예요.

엄마는 두 번의 수술로 많이 쇠약해지셨는데
몇십 년 간의 아침 등산이 그래도 버티게 해주는 힘인 것 같습니다.
어머님도 많이 좋아지셨지요?
'개운한 레모네이드'라는 표현이 신선하네요.
정말 한 모금 마신 것처럼.

우라질~ 뱉고나니 조금 시원하죠?^^

프레이야 2008-01-14 17:43   좋아요 0 | URL
몇십 년간이나 등산 다니신다니 참 좋으네요.
뭐든 꾸준히 오래도록 하는 건, 남다른 장기라고 생각해요.
울엄마는 6개월간(한달에 다섯번씩) 항암제 투여하고 1월 초, 아무 이상
없는 걸로 결과 나왔어요. 어제 노래방에 함께 갔는데 예전처럼 특유의
고음으로 노래도 잘 부르던걸요. 어머니들, 화이팅!! 입니다.^^

로드무비 2008-01-18 12:09   좋아요 0 | URL
혜경 님 어머니와 우리 엄마가 비슷한 병으로 고생하시는 것 같아요.
아무 이상 없는 걸로 결과가 나왔다니 저도 기쁩니다.
어머니가 무슨 노래 부르셨는지 궁금하네요.
우리 엄마는 이난영의 '목포는 항구다'가 18번인데.
세상의 모든 엄마들 파이팅입니닷!
혜경님과 저도 포함해서요.^^

2008-01-17 2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18 1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로드무비 님이 몇 월 며칠에  **카드로 롯데백화점에서  사용하신
198만 원의 카드 대금이 연체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듣고 싶으시면 *를 누르고,
상담원과 통화하시려면 *번을 눌러주세요.

이런 종류(그러니까 카드 대금 연체)로는 이달 들어 벌써 두 번째의 전화다.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때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혹시나 싶어  근무중인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을 확인해 봤다.
"그거 사기전화야, 무조건 끊어버려."
남편은 놀라지도 않고 경쾌하게 말했다.

좀전에는 전화를 받고 짜증이 발동, 상담원과 통화를 시도해 보았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남자가 전화를 받는다.
사투리를 숨기고 서울 말씨를 처음 쓰려는 사람처럼
조선족 특유의 말투가 그대로 드러난다.

"카드 대금 198만 원이 연체되었다는데 전 백화점에서 카드를 사용한 적이 없는데요?"

"카드를 사용하셨으니까 연체가 되었다는 거겠지요.
구체적인 상담을 원하시면 카드 담당자를 바꿔 드릴까요?"

"카드 담당자가 따로 있다니 지금 저와 얘기하시는 분은 그럼 누구십니까?"

갑자기 전화가 탁 끊어지며 뚜뚜~ 신호음이 울린다.

내가 알기로 예전엔 사기를 쳐도 1 대 1로 직접 만나서 쳤다.
얼굴이라도 직접 보여주면서 시나리오도 직접 짜고 명연기(?)를 펼치는
최소한의 성의가 있었다.
그런데 요즘 사기꾼들은 날로 먹으려고 든다.(물론 나름대로 애환은 있겠지.)
불특정다수에게 무더기로 전화를 걸어 어리숙하게 걸려드는 몇 안 되는 사람을 노린다.
짐작건대 이런저런 정보들로부터 차단된 상태에 있는 순진한 노인이나
주부들이 타깃이 아닐까.

문득 부산의 부모님이 이런 전화를 받으시면 어떨까,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지난달 여동생과 통화를 하는데 가슴이 찡했다.
엄마의 수술을 앞두고 입원을 할 때였던가 퇴원을 할 때였던가,
병원 창구 앞에서 아버지는 외투의 지퍼를 열고 미리 준비한 두툼한 봉투를 꺼내셨다고.
수표도 없고 오로지 1만 원짜리 현금으로만.
우리 부모님은 이때까지 카드를 한 번도 발급받으신 적이 없는 것이다.
(그 봉투를 쓰게 할 동생 부부가  아니다.)

이번 주말 부산에 다녀왔다.
홍삼이니 몇 가지의 반찬들보다 오히려 내가 흐뭇한 마음으로 준비한 건 엉뚱하게도
베이지색의 '앙드레김 담요'였다.
쇼핑몰 측에서 보낸 메일을 받고 특가(29,000원)로 사게 된 것인데 부드럽고 따뜻하고
가볍고 좋아서 한 장을 더 샀다.

자식들이 제발 따뜻하게 지내시라고 당부하며 보일러 기름값을 따로 드리더라도
아버지는 그 기름값을 제대로 사용하신 적이 없다.
엄마는 차가운  안방에서 20년도 더 된 낡은 담요를 어깨에 두르고
내가 보낸 박완서와 장영희의 책들을 밑줄을 그어가며 읽고 계셨다.
서강대 영문과 교수 장영희 씨 산문집의 앞부분에는
살아생전 너무 절약하고 검소하게 사신 부모님 때문에 마음이 아팠던 일화가
소개되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어제 아침 앙드레김 담요는 안방 장롱 속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엄마는 다시 그 낡은 담요를 두르고 책을 읽으실 생각인가 보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내내 가슴이 답답하고 화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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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12-17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왠만하시면 그 퐌따스틱한 담요...쓰시지..어머님도 참...로드무비님 맘도 몰라주시고..^^

로드무비 2007-12-17 14:35   좋아요 0 | URL
메피스토 님, 헤헤, 퐌따스틱하다기보다는 의외로 수수해서
마음에 드는 담욥니다.
어쩌면 자식들이 떠난 후 그 담요를 다시 꺼내지 않으셨을까요?^^
심술이 좀 있는 분이라.=3=3

무스탕 2007-12-17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저런 사기전화가 끊기질 않았군요 --++
저희 부모님도 가끔 그렇게 사드린 물건들 넣어둘 가능성이 있다 싶을때 전 사용하고 계시던것 그냥 홀랑 버려버릴때도 있어요 ^^;

로드무비 2007-12-17 15:06   좋아요 0 | URL
무스탕 님, '아직도'라니, 그런 전화가 아주 일반화된 모양이군요.
우째야 쓰까......
어제 아침, 칠 벗겨져 검댕이 묻어나오는 찻주전자 하나를
몰래 처리하고 왔습니다.
님의 경험에 기대어 다음엔 프라이팬 두 개를 교체하고 오겠습니다.
불끈.=3(그런 상태가 되면 건강에 안 좋은 게 확실한데도
괜찮다고 우기시니 정말.)

2007-12-17 17: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2-18 0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7-12-17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끼고 싶으신 거겠지요.^^
그러나 자식들에게서 받은 물건은 나중에 이웃 분들에게 자랑하실거라 생각합니다.^^

로드무비 2007-12-17 20:48   좋아요 0 | URL
L-SHIN 님, 자랑할 만한 이웃분도 없고 연세도 많으셔서......
예쁜 옷탐은 여전하신 분이 이상한 부분에서 아끼세요.
많이 속상합니다.



라로 2007-12-17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부모님과 똑같으시네요,,,현금박치기,,,,ㅎㅎ
저두 뭐 사드리려면 됐다시고 필요없다시는데 속상해요.....
뭐 자식이 능력이 없으니 보주셔서 그런건지 알지만
가끔, 아니 한번만 "그래 고맙다"라며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로드무비 2007-12-17 23:34   좋아요 0 | URL
nabi 님, 그러게요.
현금 봉투라도 자주 넉넉하게 드릴 수 있으면 좋겠는데.
'노년'에 대해 자주 생각해 보게 됩니다.
먼 후일의 일이 아니어서리.^^
(전 주는 것마다 넙죽넙죽 기쁘게 받는 엄마가 될겁니다.)

2007-12-18 1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2-18 1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로이카 2007-12-18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끔 부모님 댁에 가서 옛날 제 물건들을 갖고 오면서 내가 보기 싫어하는 물건들을 몰래 버리곤 하는데요... 정말 쓰잘데기 없어 보이는 것들을 얼른 제 손에서 뺏아서 딴 데 감추곤 하세요... 저도 깨끗하게 치워놓고 살 부지런함은 없으면서도 버리지는 또 못하기 때문에 그 마음을 이해하지만 깝깝할 때가 참 많은 것 같아요. ^^

로드무비 2007-12-19 23:13   좋아요 0 | URL
에로이카 님, 저도 깔끔이나 정리와는 거리가 먼 주제에. 헤헤.^^
아무튼 부모님과의 그런 숨바꼭질은 재밌기도 하고 깝깝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깝깝하기만 합니다.
한편으로 책장수 님이 확 내다버리고 싶어하는 여러 물건들을
저는 또 애지중지하는지라 '쓰잘데기 없는 것'의 기준도 잘 모르겠고.

아무튼 우리 부모님이 좀더 편안하고 화사하고 쾌적하게 지내셨으면
좋겠어요.
님도 그러시죠?

마노아 2007-12-18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기에도 상도가 있거늘 정말 날로 먹으려 드는 세상이에요. 따땃한 담요 두르시고 자식들 생각 한 번 더 해주시면 좋겠어요. 그러면 서로 포근할 거야요..

로드무비 2007-12-19 23:05   좋아요 0 | URL
마노아 님, 능력도 안 되면서 잔뜩 긴장하여 사기를 치려던 저 무리는
차라리 안쓰럽다는 생각이 드네요.
얼마나 먹고살기 힘들었으면......
'돈'도 모자라서 '권력'까지 장악한 인간도 있잖아요.

2007-12-21 2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2-28 15: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2-29 15: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2-29 17: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2-31 2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03 14: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12 14: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10 16: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11 1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밥헬퍼 2008-01-11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전화 받은 적 있습니다. 처음에 당황했지만, 이내 알아챘지요, 새해 복 많이 누리십시오.

로드무비 2008-01-11 13:47   좋아요 0 | URL
밥헬퍼 님, 이 전화 안 받은 집이 드문가봐요.
아까 님의 새 글들 반갑게 읽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