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만드는 옷에서 인간의 역사와 본질을 추구하는 마커.
'무용(無用)이라는 역설적인 제목은 그녀가 개발한 아트(art)급 옷 브랜드.



바지 수선료 2위안.
직업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초라한 몰골의 이 손님은 1위안을 더 줄까 어쩔까
양장점 여주인에게 호기를 부린다. 그녀는 단호히 거절한다.


계속되는 불경기로 중소기업이나 식당, 재래시장의 매출액은 격감했는데
외제차를 비롯하여 백화점의 최고급 브랜드라든지 유기농 식품과 화장품 브랜드는 
매출이 급증했다는 소식을 어제 오후 접했다.

자나깨나 친환경을 얘기하는 한 유명 한복 디자이너가 얼마 전 모 숍에 납품한
무명 들꽃무늬 행주 한 세트가 5만 원, 또 역시 같은 천으로 만든 퐁퐁 겉싸개가 얼마였더라?
퐁퐁을 무슨 신주단지 모시듯이 멋지게 천으로 싼 그 꼴을 보고 코웃음밖에 안 나오던데.
이 세상은, 건강과 환경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에 착안하여 웰빙과 에코~로 비싸게 포장한
상품들을 속속 내놓는다.
(퐁퐁을 몇 만 원짜리 비단주머니, 아니 무명보자기로 싸면 뭐하냐고요.)
그 한복 디자이너가 하는 짓은, 산골 오지 부락민들이 사는 모습을 관찰하여
자신의 패션 디자인에 접목하기 위해 먼길을 떠나는 마커의 모습과 겹치고.

선풍기와 미싱이 하루종일 시끄럽게 돌아가는 중국 광동 한 의류공장의 무표정한 노동자들과,
우리나라로 치면 앙 선생님 혹은 퐁퐁 싸개 무명보자기를 몇만 원대 가격의 신상으로 출시한
그 한복디자이너급 젊은 디자이너,
그리고 산시 펀양의 탄광촌 변두리, 의상실의 기능은 거의 없어 보이는 이 수선집을
새로 산 바지 밑단을 줄이려 찾는 사람들을 담담한 화면으로 보여주는 3부작.
자신의 월급으로는 결코 사 입을 수 없는 옷을 하루종일 만드는 노동자들과,
마커가 머리로 찾아 헤매는 '켜켜이 쌓인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옷'과,
탄광촌 광부들 몸에 묻은 검은 탄을 씻어주는 걸레 같은 수건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또 극명하게 대비되는 영화.
형식 면에서도 이제껏 보지 못한 독특한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지아장커는 정말 최고다!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woshot 2008-05-31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부지런하시네요.
스틸 라이프에 감동했지만 이번엔 망설이고 있습니다^^

로드무비 2008-05-31 12:32   좋아요 0 | URL
twoshot 님, 하마터면 놓칠 뻔했지 뭡니까.(<씨네21>을 안 사봤더라면...)
지아장커 감독 영화라면 앞으로도 얼마든지 부지런할 생각입니다.^^


니르바나 2008-05-31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 그랬다지요.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본다고요.
로드무비님 안목이 높으신 이유를 이제야 알았습니다.
<아임 낫 데어> 영화평을 보고 동한 마음을 여기에 한자락 풀어보았습니다.
* * * * *

로드무비 2008-06-01 07:51   좋아요 0 | URL
니르바나 님,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만 마음으로 봅니다.
이 시선을 좀 확장시켜야 하는데 말입니다.
영화 안목은, 헤헤, 지가 좀 높은 편이지유.=3=3=3
<아임 낫 데어> 저도 보고 싶어요.^^

2008-05-31 2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6-01 07: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08-06-01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코웃음밖에 안나오네요.
네가 언젠가 그 디자이너(?)의 책을 샀다 펼쳐보구 코웃음한번 쳐주고 반품했다지요...
그나저나 영화 보고 싶네요, 이 영화.
영화에서 보이는 색도 기대되는 걸요~.

로드무비 2008-06-01 08:06   좋아요 0 | URL
nabi 님, 그나저나 그 단아하고 맑은 얼굴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이 영화는 다큐 형식인데 이렇다할 내러티브가 없어요.
그냥 화면을 보는 거죠.
마커의 작업실이 볼 만합니다.
공장과, 수선집이 있는 탄광마을은 우중충한데 가운데 적절한 배치죠.^^

치니 2008-06-01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신 같은 게 막 느껴집니다 , 지금.
몇일 전 비행기에서 로드무비님이 왜 요즘 글을 안 올릴까 궁금해 했어요.
그리고나서 영화 무용을 봐야 했었는데, 못 보고 왔네 그런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이 포스팅을 보니, 참... :) 반갑기 이를데 없습니다.

로드무비 2008-06-02 10:11   좋아요 0 | URL
치니 님이 출장 가는 비행기 안에서 절 떠올리셨다니
반갑기 이를데 없습니다.ㅎㅎ
집의 컴이 두어 달간 고장났었고요.
접속을 거의 못했어요.
잘 지내셨죠?^^

치니 2008-06-01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까 호텔에서 나가기 전 급히 위 댓글을 달았는데, 지금 보니, 이미 아래에도 페이퍼가 5/23에 올라왔었군요. -_-; 전 왜 못봤을까요., 역시 미신인 미신일 뿐.

로드무비 2008-06-02 10:14   좋아요 0 | URL
헤헤, 미신이든 아니든 저는 다 좋습니다.
아직 출장중이시군요.
잘 다녀오시길.
(서재 바뀐 후로 님들 방 찾아가는 게 무지 어려워졌어요.
페이퍼 올리면 다들 어떻게 알고 찾아들 오시는지.^^;)

죄디 2008-07-11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그 이면이 존재합니다
그런 시선들을 아무렇지 않은 듯 잡아내는
사람들, 제 눈에는 천재로 보입니다;
그런 분들이 있어서 우리는 편협해지지 않는 걸거에요
 












오늘 아침, 출근 준비를 마친 책장수님이 왠지 뻐기는 표정으로 나를 불렀다.
"돈 3만 원만 줘봐."
"왜? 뭐하려고?"
그러면서도 나는 자동반사적으로 지갑을 꺼냈다.
"2만 원뿐인데......"
"에잇, 너무 손해잖아!"
짐짓 투덜거리며 책장수님이 내게 건넨 건 1만 원짜리, 5천 원짜리 도서상품권 몇 장.
합쳐 보니 무려 5만 원이다.
"야호, 수지 맞았다!"
나는 출근하는 그의 궁둥짝을 요란하게 두들겨 주었다.

며칠 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결혼생활은 멋진 알리바이라고.
밑도 끝도 없이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설거지를 하면서 어제 오후 알라딘 상자로 전해 받은 '사월과 오월'의 음반을 틀었다.
'화'를 두 번 연이어 들었다.
이 노래가 왜 그렇게 좋은지 이유를 몰랐는데
거짓말처럼 반짝, 머릿속 전구에 불이 들어왔다.
대학 1학년 때 마음속으로 좋아했던 남자아이가
'톱니바퀴'라는 학교 그룹사운드의 리더싱어였다.
그는 베이스기타도 함께 연주했는데 언젠가 과의 회식자리에서 기타를 치며
이 노래를 부른 적이 있었던 거디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이 아침, 혼자만의 쾌적한 시간.
사월과 오월을 꺼내고 어제 함께 도착한 백현진의 CD를 넣었다.
기묘하지만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와 멜로디가 흘러 나온다.
"에잇, 아침부터 녹작지근해지네..." 구시렁거리며 이동도서관에서 빌려온
황병승의 시집을 딱 펼치는데,
'멀고 춥고 무섭다'라는 제목의 시(74쪽)가 눈에 들어오는 거다.

(...)어딘가 몹시 불안해 보이는, 꼬일 대로 꼬여서, 도무지 내 인생 왜 이래? 하는 표정의,
지저분한 턱수염, 충혈된 눈알의 시인 아무개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갑자기 문짝을 걷어차며, 다 대가리 박어! 그러는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음악가들인데, 지지리 궁상의 끝에서 도무지 쓸쓸하게 취해버렸는데
왜 갑자기 난데없이 나타난 시인 나부랭이가 우리에게 대가리 어쩌고 하는 것일까.(...)
(황병승 시집, <트랙과 들판의 별>, 문학과 지성사 刊)

알고보니, '멀고 춥고 무섭다'는 어어부 밴드의 노래 제목이었다.

"나는 엉망으로 늙어간다"라는 황병승 시인의 시구에 움찔해서
오늘아침의 불로소득 3만 원을 고스란히 모 단체('버마' 관련)에 후원금으로 보내고 말았다.
(새벽에, <닥쳐라, 세계화!> 버마 부문을 읽었다.)



2층 사는 남자가 창문을 부서져라 닫는다, 그것이
잘 만들어졌는지 보려고

여자가 다시 창문을 소리나게 열어젖힌다, 그것이
잘 만들어졌다는 걸 알았으니까

서로를 밀쳐내지 못해 안달을 하면서도 왜 악착같이
붙어사는 걸까, 더 큰 집으로 이사하려고

바퀴벌레 시궁쥐 사마귀 뱀 지렁이 이 친구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미움받고 있는지 알기나 할까, 파티에 초대받은 적이 없어서

아줌마 아저씨들은 '야 야 됐어' 그런다, 조금 더 살았다고

그러면 다리에 난간은 뭐 하러 있나 입을 꾹 다물고
죽은 노인네에게 밥상은 왜 차려주나

그런 게 위안이 되지

두리번 두리번거리며, 빵 주세요 빵 먹고 싶습니다
배고픈 개들이 주춤 주춤 늙어가는 저녁

춤추는 언니들, 추는 수밖에

(황병승 詩  '춤추는 언니들, 추는 수밖에' 全文)

























댓글(29)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로이카 2008-05-23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그 알리바이 참 좋네요... ^^ 오랜만에 보는 로드무비님 페이퍼 읽고 기분 좋아졌어요... 이 맛입니다...

로드무비 2008-05-23 15:54   좋아요 0 | URL
에로이카 님, 이 맛이라니, 기분좋은데요?^^

라주미힌 2008-05-23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뭔가를 얻고 갑니다.
로드무비님 페이퍼 보면 나이 한 살 더 먹는거 같고.. ㅎㅎㅎ
자주 오셔용.

로드무비 2008-05-23 15:59   좋아요 0 | URL
라주미힌 님, 나이를 매일 열 살씩 먹는 기분입니다.
자주 오라니 말씀은 고마운데 기운이 영 딸리는군요.^^

twoshot 2008-05-23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간만에 오셨네요! 반갑습니다. 팬관리 차원에서 좀 자주 오셔요~~

로드무비 2008-05-23 15:58   좋아요 0 | URL
twoshot 님, 반갑습니다.
저에게도 팬이 있다니, 황홀합니다.^^

2008-05-23 17: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24 09: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23 1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24 08: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L.SHIN 2008-05-23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입니다, 로드님. 좋은 글 읽고 갑니다.^^

로드무비 2008-05-24 08:51   좋아요 0 | URL
Lud-S 님, 반갑습니다.^^

2008-05-24 0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24 08: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08-05-24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요즘 엉망으로 늙어가고 있는 중이 아닌가 싶습니다..^^

로드무비 2008-05-24 10:12   좋아요 0 | URL
메피스토 님, 표정!ㅋㅋ
좀 곱게 늙고 싶은데 그게 쉽지가 않네요.^^


2008-05-24 14: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25 2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26 0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26 2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25 1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25 2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27 2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29 1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31 0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얀마녀 2008-06-02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경스럽습니다. 저같이 쪼잔한 넘은 흉내도 못 낼 거에요.

로드무비 2008-06-03 12:17   좋아요 0 | URL
하얀마녀 님, 쪼잔....뜨끔.=3=3
저야말로.^^

2008-07-03 1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장난우주선 2009-04-18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커튼 뒤의 그만이 이미 모든걸 안다네~
 

--주하야, 니 그 반짝이던 아이디어, 그림 실력, 창의력 다 어디 갔노?

--굳게 닫혀 있는 비밀의 방에 있지!

--문을 열어! 활짝.  너무 오래 닫아놨어.

--열쇠를 잃어버렸어.

--그 열쇠는 어떡하면 찾을 수 있는데?

--엄마가 지금 나를 10분의 1밖에 사랑 안하거든.
나머지 10분의 9도 사랑해줘. 꽉 채워서......그러면.




조금 전, 학교에서 내준 포스터 숙제를 앞에 놓고 한참을 끙끙거리다가
아이디어도 개성도 성의도 없이 엉망으로 그려놓은 걸 보고
한숨이 나와서 한마디 했다.
독서감상문도 요즘은 엉망진창이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10분의 1과 10분의 9는 순서가 바뀐 게 아닐까?
......무서워서 차마 확인을 할 수 없다.)




댓글(25)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라주미힌 2008-03-25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는 깊이 반성해야겠네요... ㅋㅋㅋ
주하의 명석함에 또 한번 놀람..

로드무비 2008-03-25 18:54   좋아요 0 | URL
라주미힌 님, 저 대답에서 일말의 희망을 느꼈다고 할까요.( '')

Mephistopheles 2008-03-25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하 윈...로드무비님 넉다운..
통산전적도 월등히 주하가 앞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로드무비 2008-03-25 18:53   좋아요 0 | URL
메피스토 님, 넉다운 지경까지는 이르지 않았습니다요.
저를 뭘로 보시고.=3=3=3

twoshot 2008-03-25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한번 주하의 명석함에 감탄!!하게 되는군요. 본전은 못 찾으셨어도 은근히 주하 자랑하고 싶으신거죠?^^

로드무비 2008-03-25 22:50   좋아요 0 | URL
모정은 좀 음험한 데가 있답니다, twoshot 님.^^

플레져 2008-03-25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하 여전하네~~~ ^^!

로드무비 2008-03-28 09:47   좋아요 0 | URL
플레져 님, 안 여전합니다.=3=3=3
갈수록 제 나쁜 점만 닮아가요.^^;

조선인 2008-03-26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음험한 모정에 추천이요. ㅋㅋ

로드무비 2008-03-28 09:45   좋아요 0 | URL
조선인 님, 모정이 음험한 거라는 데 공감하시죠?
어찌나 편파적이고 자가당착이 심한지.^^
(추천 감사!^^*)

릴케 현상 2008-03-26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와 아내의 대화랑 비슷하네요 ㅋㅋ

로드무비 2008-03-28 09:55   좋아요 0 | URL
산책 님 - 로드무비
아내 - 주하

이런 구돈가요?ㅎㅎ
아님 거꾸론가?( '')

니르바나 2008-03-26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대화가 로드무비님 페이퍼계의 블루칩 아닌가요?

로드무비 2008-03-28 09:48   좋아요 0 | URL
니르바나 님, 저한테만 블루칩이지요.ㅋㅋ
아무튼 나중에 나중에 주하 보여주려고 조금 신통한 대답만 나오면
달려와 기록하고 있습니다.^^

칼리 2008-03-26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하의 대답이 독특하고 재치있네요. 일상에서의 대화를 적어두었다가 "대화집"으로 펴내셔도 좋을듯 합니다. ^_____^

로드무비 2008-03-28 09:41   좋아요 0 | URL
칼리 님 한 1년 만인가, 그렇지요.
제법 신통한 대답도.ㅎㅎ
예전엔 '마이 도러'라는 페이퍼 카테고리가 있었는데
총명하고 귀엽던 시절의 이야기지요.^_ _~

2008-03-26 17: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28 09: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28 0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28 0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릴케 현상 2008-03-28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거꾸로일 걸요 ㅋ

2008-04-03 2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08 1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얀마녀 2008-06-02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 주하 말솜씨가 참...
당혹스움과 뿌듯함을 동시에 느끼시겠는데요? 크크.

로드무비 2008-06-03 12:21   좋아요 0 | URL
당혹과 뿌듯, 딱 그거예요. 하얀마녀 님. 크크.
 

나카무라 다카유키 감독의 <요코하마 메리>를 한 달 전 극장을 혼자 전세 내어(?) 보았다.
낙원동 악기상가 건물에 있는 필름포럼만큼 이 그로테스크한 다큐와
잘 어울리는 극장이 또 있을까.
조조 상영시간이 임박하여 바쁜 걸음으로 극장 로비에 들어서자
막 잠에서 깬 듯한 극장 대표(아마도)가 까치둥지 머리에 부스스한 얼굴로 나를 맞았다.
이 시간대는 눈치를 보아하니, 관객이 한 명도 없어 아예 영사기를 돌리지도 않는  경우가
태반인 것 같았다.
지금 당장 난방을 틀겠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더니 영사실 기사를 부르러 갔다.

영화의 주인공은 1995년 가을 요코하마 거리에서 사라진 메리라는 이름의 노파.
종전 후의 요코하마 거리에서 장교들만을 상대하던 콧대 높은 창부였다.
횟가루를 뒤집어 쓴 것처럼 허옇게 분칠한 얼굴과 두껍고 검은 아이라인,
레이스가 주렁주렁 달린 옷, 하이힐과 자신의 전재산을 몽땅 쑤셔넣은 뚱뚱한 가방은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
그 가방을 질질 끌고 지린내와 향수가 섞인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50년간
요코하마 거리를 누비던(혹은 죽치던)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나카무라 다카유키 감독은 자신이 중학생일 때 등하굣길에 그녀와 몇 번 마주쳤다고 했다.
카메라를 들고, 메리를 아는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찾아내어 그녀의 행적을 좇는데......

옷을 갈아입을 수 있게 메리에게 가게 골방을 빌려주었던 세탁소의 안주인이나,
장사에 분명 지장이 있었을 텐데도 홀린 듯한 눈으로 매일 진열장 안의 보석을 바라보는
메리의 지정석을 끝까지 치우지 않았던 숍의 주인,
그리고 메리에게 자신의 공연 티켓을 선물했던 지금은 늙고 병든 게이 샹송 가수 나가토 간지로.
어떻게 가수로 살아남았는지 어리둥절할 정도로 노래 실력이 영 신통치 않은 그가
늙고 병든 몸으로 메리를 위해 정성껏 부르는 '마이 웨이'는
그 어느 가수가 부른 노래보다도 감동적이었다.
진심을 담아 부르는 노래는  빼어난 기교를 능가한다. 그리고 그만의 음색으로 살아남는다.
나가토의 노래를 좋아하여 구석진 자리에 위치한  라이브 카페를
찾아오는 늙수그레한 팬들.

메리의 자부심(근거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끝까지 그것을 놓지 않았다)은
그녀를 지켜본  요코하마의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나는 그보다는 냄새가 진동하는 옷을 번번이 빨아준 세탁소의 안주인과,
의자와 화장실을 빌려준 보석가게 주인과, 끝까지 메리의 친구를 자처했던 나가토와,
그의 팬들이 인상적이었다.
아참, 양복을 쫙 빼입고 종전 후의 요코하마 거리를 활보하던 야쿠자들이
하릴없는 늙은이가 되어 메리가 다니던 곳을 안내해 주는 모습도 재밌었다.

그런데 영화의 마지막에 호호백발의 메리는 단발을 하고 얌전한 얼굴로 고향에 돌아가 있었다.
'왜, 무슨 일 있었수?' 하는 표정으로......시치미를 딱 떼고.
그 얼굴이 내게는 더 생뚱하고 낯설었다.
(감독은 10여 년간 카메라를 들고 그녀의 행적을 좇았는데
이렇게 그녀를 실제로 만나게 될진 몰랐다고 한다.
그는 당황한 기색이었다. 귀신이라도 만난 것처럼......)


















댓글(3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Mephistopheles 2008-03-21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제작기간 기본 10년인 다큐군요..^^
극장 무섭지 않던가요??

로드무비 2008-03-21 15:18   좋아요 0 | URL
아, 제가 사랑해 마지않는 분위기입니다.
무섭기는커녕.^^
(10년 넘게 한 여자의 자취를 좇아 카메라를 들고 헤맸다니
이 영화 꼭 봐야 할 것 같았어요.)

Mephistopheles 2008-03-21 15:36   좋아요 0 | URL
스토커가 생각나버렸다는..

2008-03-21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21 1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22 0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21 1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21 1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twoshot 2008-03-21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일전에 홍상수의 [밤과 낮]을 혼자 봤었습니다. 영화는 좋았는데 그 썰렁한 분위기라니..

로드무비 2008-03-21 15:14   좋아요 0 | URL
twoshot 님, 얼마 전, 영화 <주노>도 저 혼자 봤습니다.
조조도 아닌데 그렇더군요.
<밤과 낮>은 혼자 보면 무지 을씨년스러울 것 같아요.^^
(전 그런데 그런 분위기를 즐기는 편이라...
일요일에 관객 많은 틈에서 보는데 어리둥절하더군요.)

치니 2008-03-21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지런하세요!

로드무비 2008-03-21 15:10   좋아요 0 | URL
치니 님, 부지런하단 말 세상에 태어나 세 번째 듣습니다.^^

니르바나 2008-03-21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번째 말 듣겠습니다.
로드무비님, 참, 부지런하십니다!^^

로드무비 2008-03-21 15:22   좋아요 0 | URL
여차하면 다섯 번도 채우겠는데요?^^

2008-03-21 15: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21 15: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칼리 2008-03-21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독이 10여년간 그녀의 행적을 따라간 것도, 그녀를 아는 모든이들이 팬과 같은 열성으로 살피는 것도 모두 메리의 특별한 자부심에 매료된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세월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어서 야쿠자를 하릴없는 늙은이로 만들기도 하네요.
참!다섯번 채워드리겠습니다. 정말 부지런하십니다! ^____^

로드무비 2008-03-21 16:06   좋아요 0 | URL
우와, 오므렸다 활짝 피는 붉은 장미 이미지가 현란하네요.
반갑습니다.^^
'세월은 참으로 무서워서'라는 칼리 님의 표현에 공감합니다.
심지어는 그들이 귀엽기까지 하더라고요.
아, 오늘 하루에 듣는 '부지런하다'는 칭찬이
지난 몇십 년의 실적을 가볍게 뛰어넘네요.ㅎㅎ

하이드 2008-03-21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스터가 너무 멋져요! 로드무비님 글 자주 올라와서 좋네요. 아직 찬찬히 읽을 마음의 여유는 없음을 고백하지만, 글 볼 때마다 자꾸자꾸 반갑습니다.

로드무비 2008-03-22 00:01   좋아요 0 | URL
하이드 님, 오랜만입니다.
요즘 뭘 자꾸 끄적이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제 글 보고 반갑다니 기분이 좋은데요?!
많이 바쁘신가 봐요.^^

죄디 2008-03-22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리제인.
우리는 요코하마에 가본 적 없지
누구보다 요코하마를 잘 알기 때문에

메리제인. 가슴은 어딨니

우리는 뱃속에서부터 블루스를 배웠고
누구보다 빨리 블루스를 익혔지
요코하마의 거지들처럼.
다른 사람들 다른 산책로

메리제인. 너는 걸었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도시.
항구의 불빛이 너의 머리색을
다르게 바꾸어놓을 때까지

우리는 어느 해보다 자주 웃었고
누구보다 불행에 관한 한 열성적이었다고

메리제인. 말했지

빨고 만지고 핥아도
우리를 기억하는 건 우리겠니?

슬픔이 지나간 얼굴로
다른 사람들 다른 산책로

메리제인. 요코하마


황병승





로드무비 2008-03-22 13:34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요코하마 블루스'로 제목을 잡을까 잠시 망설였는데......
황병승 시인의 시 잘 읽었습니다.
시 읽고 문득 궁금해서 님 방에 가 잠시 기웃거리다 왔습니다.^^

2008-03-22 1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22 1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22 1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24 1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23 0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24 1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23 0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24 1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23 16: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24 1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8.
책 속에 묻혀 사니 마음은 봄날이고
온 들에서 들려오는 농부가도 장관이네
분수대로 살아가니 나의 생계 족하여
털끝만 한 세상사도 관여하지 않는다


13.
초동은 풀을 베러 산속으로 들어가고
어미새는 새끼 데리고 낮은 담장에 모인다
검은 옷에 관을 쓰고 괭이를 잡으니
선비와 농부는 옛부터 같았다네


- <성호 이익 시선> 閒居雜詠二十首 중에서, 예문서원 刊




지난달, 강명관의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를 읽다가 조선 시대의 학자 성호 이익에 꽂혀
그의 책들을 몇 권 주문했다.
요즘은 대부분의 책들을 이동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있는데(2주에 여섯 권)
사서 읽는 것보다 좋은 점도 더러 있다.
시간에 쫓긴다거나 여차저차하여 평소 거들떠보지도 않는 작가나 어떤 부류의 책들을
고르게 되기도 하는데 생각지도 않은 재미와 감동을 선사받기도 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의 접점도 그렇게 이루어지고 새로운 물꼬를 튼다.
(문학평론가 방민호가 묶은 <모던 수필>을 주문해 읽다가
김기림 시인의 재기발랄한 글에 꽂혀 그의 평전과 시집을 사들여 읽어댄 것이 시초였다.)

지난 달,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를 읽고 조선 시대와 성호 이익에
관심이 생기는 바람에 조선 시대 역사책과 이익의 저작을 꼼꼼히 챙겨 읽게 되었다.
듣자하니 조선의 관리나 양반, 선비들은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를 반기지 않았다는데
그 이유가 가관이었다. 어리석고 간악한 백성들이 글자를 알면 이것저것 따지고
기어오를 것이라나?!
그들이 이룬 학문의 성취가 어떠하든 그 우월감과 독점욕에는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저자 강명관 씨에 의하면 이익의 <성호사설>은 조선의 지식인이 접근할 수 있는
지식의 극한치까지 도달한 책이란다.
성리학이 판치는 지적 풍토에서 당대의 사회를 치열하게 고민한 그였다.
'대저 재물이란 하늘이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백성의 노동으로 생산되는 것이다.
백성이 부유하면 나라도 흥성한다.'
이 구절을 읽고 그에게 반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성호 이익의 시선집도 재미나게 읽힌다.
'분수대로 살아가니 나의 생계 족하여 털끝만 한 세상사도 관여하지 않는다'고 그는 쓰고,
선비와 농부는 뿌리가 같다고 말한다.
선비와 농부는 뿌리가 같단다.

<선조실록> 32년 5월 25일의 기록에 의하면 허균은
'오직 문장의 재주로 세상에 용납되었다'고 적혀 있다는데,
내게 있어서는 문장의 재주도 재주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랄까
그런 데 제일 먼저 시선이 가는 것 같다.
엊그제, 전경린의 산문집 <붉은 리본>을 아주 재미있게 읽고 나서,
나의 그런 생각에 도장을 찍었다.

전경린의 글을 통해 <수단 항구>라는 소설을 구하게 된 것도 조그만 수확이라면 수확.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8-03-19 2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20 0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20 0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20 0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23 08: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24 1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07 1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얀마녀 2008-06-02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 무식함이 새삼스레 다가오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