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장을 짓는 사람은 사원을 짓는 것이다.(캘빈 쿨리지)








비행기 공장이 거대한 눈이라면
노동은 가장 깊은 동공.(지아장커 <24시티> 중)




내 몸의 반은 근심~








공장을(남의 삶터를)  허무는 사람은 사원을 허무는 것이다.








지아장커 <동>






내가 그리는 그림을 통해 모든 사람은 소중하다는,
하찮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만 바랄 뿐......(<동>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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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0 15: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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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0 15: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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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shot 2009-02-10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4시티에 대한 로드무비님의 글이 올라 올줄 알았습니다^^.
얼렁 봐야하는데 계속 미루게 되네요.
지난번 씨네21에 실린 허문영의 24시티평은 보셨나요? 안보셨으면 강추합니다~~

로드무비 2009-02-10 20:48   좋아요 0 | URL
예, 읽어봤습니다.
24시티 참 묘한 영화더구만요.
놓치지 말고 꼭 보세요.^^

무해한모리군 2009-02-10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어떤 영화일까요. 호기심이 이네요.

로드무비 2009-02-13 06:44   좋아요 0 | URL
어떤 영화인지 말로 설명하긴 어렵네요.
그의 초기작 <소무>도 요 며칠 다시 틀어주던데
챙겨보세요, 시간 되면.
'소무' 씨의 몰골, 그 표정 죽입니다.^^

2009-02-11 19: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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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3 06: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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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3 04: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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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3 06: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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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3 04: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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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3 06: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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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까지 나가 영화 한 편 보고 돌아오는 길에 1단지 앞의 할아버지 노점을 유심히 봤더니
오며가며 지나가는 버스 속에서 한달 전부터 점찍어 놓은 '스텐' 주전자가 그대로 있다.
집에 가서 늦은 점심을 먹고 추리닝으로 갈아입은 후 산책 겸 그 노점을 찾았다.

깨끗하게 손질된 헌옷가지며 가방이며 전기다리미며 전자계산기며
한마디로 없는 것이 없는 할아버지의 노점은 '만물상'이라는 간판(손글씨로 쓴)을 내걸고 있다.

스텐주전자는 몇 년은 족히 쓴 것 같은 투박한 모양인데
자세히 살펴보니 웬만한 초강력세제로도 지울 수 없는 세월의 더께가
덕지덕지 앉았다.
얼마냐 물으니 5천 원이라는 대답.
4천 원에 안 되느냐고 물으니 단칼에 거절이다.
당장 로맨스그레이 영화를 찍어도 될 정도로 준수한 외모의 할아버지는
자신의 얼굴에 자신이 있는지 짬만 나면 거울을 들여다 보신다.
그 단호하고 자신만만한 모습에 매료되어 군말없이 5천 원 지폐를 내밀었다.

막걸리 심부름을 하는 소녀처럼 나는 자랑스레 주전자를 흔들며 집으로 돌아왔다.
왠지 모르지만, 딱 둥굴레차를 끓여 먹기 좋게 생긴 주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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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shot 2009-02-06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침 주전자가 필요하던 참인데^^...쓸만한 거 있으면 하나 추천해 주세요~~
그리고 늦었지만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그만 로드무비님께 새해인사 타이밍을 놓쳤서 이제야 인사드리네요.*^^*
건강하시고 올해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릴께요~~

로드무비 2009-02-07 02:50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twoshot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쓸만한 주전자 눈에 불을 켜고 보겠습니다.

Mephistopheles 2009-02-06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고 많은 차 중에서 하필 둥굴레차인 이유가 뭘까요? 주전자 생김새가 무지 궁금해지네요^^

로드무비 2009-02-10 23:06   좋아요 0 | URL
왠지, 그냥요.ㅎㅎ
모양이 넓적하고 둥글둥글해서 그렇겠지요.
아, 저도 꼭 보여드리고 싶네요.^^

2009-02-06 20: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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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7 02: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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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6 19: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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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7 02: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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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9-02-06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지네요.
저희 집 주전자도 스텐 주전자인데 자그마치 2L 짜리랍니다.

로드무비 2009-02-07 02:39   좋아요 0 | URL
1리터가 사실 얼마 안되잖아요.
1.2리터 용량 정도로 보입니다.
hninn 님네 주전자도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합니다.^^

BRINY 2009-02-06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생겼는지 저도 궁금해요.

로드무비 2009-02-10 23:06   좋아요 0 | URL
핸드폰으로 찍어 전송할까요?=3=3=3
(둥글넓적 투박하게 생겼습니다.)

balmas 2009-02-06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주전자를 보고 싶어요. 주하도 ;;;

로드무비 2009-02-07 02:36   좋아요 0 | URL
저도 발마스님께 꼭 보여드리고 싶은데...^^;

무해한모리군 2009-02-07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스텐 곰솥에다 끓여먹습니다.. 냄비는 만능 ^^ 가끔 설겆이거리가 싾이면 후라이팬에 라면도 끓여먹고 ㅎㅎㅎ

로드무비 2009-02-07 15:32   좋아요 0 | URL
휘모리 님, 그러고 보니 이 주전자가
곰솥을 닮았네요.
곰솥 미니어처예요.ㅎㅎ
주둥이가 커서 물이 콸콸 나오는 것이 정말 통쾌합니다.
후라이팬에 라면을 끓여 먹는다?
저는 코팅 벗겨질까봐 아까워서 못 그래봤는데요.^^

건우와 연우 2009-02-07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둥굴레와 함께 세월도 끓고 있겠지요, 아마도...
안녕하시지요?^^

로드무비 2009-02-08 00:23   좋아요 0 | URL
건우와 연우 님 반갑습니다.^^
이름 모를 약초를 늘 끓이고 있습니다.
그날 텔레비전 아침 프로에 소개된 걸로요.ㅎㅎ

2009-03-11 21: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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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초롬너구리 2009-02-09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안녕하세요~~ 숭늉차도 구수해요~~ ^^ 근데, 티백이라... 티백이 아닌 끓어서 마셔보고 싶어요 (티백은 그리 좋지않다면서요?)

전 오미자차를 한번 여름에 먹고는 홀딱 반해서 몇주전에 사뒀어요. 근데 그건 쇠로 된데 넣으면 안된데요 (어렵군요 ㅜ.ㅜ).

로드무비 2009-02-10 11:32   좋아요 0 | URL
오미자차를 좋아하시는 새초롬너구리 님,
오미자는 유리주전자가 제격일 것 같아요.
색이 정말 예쁘게 우러나거든요.
티백이 별로라는 이야기는 저도 들었는데,
아무튼 전 동네 알뜰장터에서 산 생짜의 결명자며 보리차며
구기자며 오미자를 끓여 마십니다.^^



2009-02-09 2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10 11: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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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 2009-10-27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ㅋㅋ
저희 집 주전자는 엄청나게 커요.로드무비님의 주전자 한번 보고 싶습니다.
로드무비님은 차를 굉장히 좋아하시가봐요?
저는 주스를 좋아하는데....(
 

화 - 마다가스카2
딸아이와 그녀의 절친한 친구 둘을 데리고 가까운 극장에 갔다.
가깝다고는 하지만 버스로 30분 거리.
날씨가 몹시 추워서 택시를 불러 타고 갔다.

춥기도 하고 오전 시간대여서 요금을 천 원씩이나 더 지불해가며 콜을 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택시는 15분 후에야 도착했다.
아이들과 미리 나가서 벌벌 떨며 서 있는데
차는 보이지 않고 한 초로의 노인이 엉뚱한 동 앞에서 내게 고함을 질렀다.
택시 불렀냐고.

이제 오시면 어떡하냐고 영화 시간 늦겠다고 한마디 했다.
60대 중반의 기사님은 노련하게 영화 이야기로 내 입을 막았다.
살면서 이때까지 본 영화가 총 서너 개.
용팔이 어쩌고 하는 제목의 영화 두세 편과, 
<저 강은 알고 있다>라는 영화는 너무 감동적이어서 제목까지 기억한다는 것이다.



수 - 후배와의 점심
영화를 보고 온 다음날, 약속대로  후배가 딸아이와 함께 우리 집을 찾았다.
1990년대 초,
내 발로 찾아든 한 직장인 단체에서 그녀를 만났다.
신입회원 교육을 마친 어느 날 강당에 삥 둘러앉아 막걸리를 앞에 놓고
자기 소개를 하는데 어쩐지 세련이 철철 흘러넘치더라니,
외국 은행에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간단한 자기 소개 후 열창하는 노래가 '가슴이 빠개지도록~'으로 시작하는
<의연한 산하>였다.

가슴이 빠개지도록 사무치는 강산이여
머리끝까지 발끝까지 거부한다며
복종을 달게 받지 않겠다며
굳게 서 있으라 의연한 산하
쉬지 않고 흘러라 강물아

내가 불렀던 노래는 <서울 야곡>.

봄비를 맞으면서 충무로 걸어갈 때
쇼윈도 글라스엔 눈물이 흘렀다~ 

그녀는 내 노래가 좋았다고 했고
나는 반대로 그녀의 씩씩한 노래가 좋았다.
그렇게 만나온 지 어언 20년.

내가 준비한 점심 메뉴는 소고기불고기와 찐양배추 막장 쌈,
달걀물을 씌워 부친 새우버섯전이었고
이번주 중  꽤 중요한 수술을 앞두고 있는 후배는 천만다행히 맛있게 접시들을 비웠다.


주말 - 송어낚시
주말에는 1박 2일로 강원도 '눈꽃축제'에 갔다.
'송어축제'에서 잡아들인 송어로 점심을 배불리 먹고
오대산 월정사나 상원사에 오른 후,
밤에는 한우를 구워 먹는다는 원대한 계획이었다.
그런데 송어낚시에서부터 일이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네, 다섯 시간을 달려 현장에 도착했더니
세상에나, 기껏 해봐야 학교 교실 두 개를 합친 것 같은 얼음판 위에
오륙십 명의 사람들이 흩어져 각기 자기 앞의 조그만 구멍을 들여다보며
낚싯대를 들었다 놨다......
'송어축제'라는 플랭카드가 없었으면 모르고 그냥 지나칠 뻔했을 정도였다.
어른 1인 입장료는 1만 원,가짜 플라스틱 고기 미끼가 달린 허술한 낚싯대가 3천 원.
조그만 얼음구멍을 하나 차지하고 추위에 떨며 무려 한 시간 반을 기다리는 동안
송어를 한 마리라도 잡은 사람은 달랑 세 명이었다.
우리 일행은 전부 맨손.

이게 무슨 축제냐고 출입증을 반납하며 투덜거렸더니 주최측에서는
간이천막에서 송어 세 마리를 얻어 먹을 수 있는 티켓을 선심쓰듯 주었다.
그런데 송어 한 마리를 굽거나 회 뜨는 데 드는 비용이 한 마리당 5천 원.
우리는 대낮부터 소주병을 몇 병이나 깠다.
새벽부터 일어나 눈곱을 떼고 먼 길을 달려온 것이 그렇게 무안할 수 없었다.

다음날은 눈꽃축제고 뭣이고 간에 폭설 때문에 아침부터 부랴부랴 올라오는데
며칠 전에 만난 택시 기사분의 '내 인생 베스트 무비' 제목이 문득 떠올랐다.
<저 강은 알고 있다>.

얼음판에게, 또 강에게 묻고 싶다.
그날, 그 얼음장 밑에서 송어들이 몇 마리나 헤엄치고 있었는지?
이 땅에서 벌어지는 무슨무슨 축제들이며 거창한 일들이 
내 눈에는  왜 모두 야바위판으로만 보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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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01-19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슬처럼(러러러엄)~~ 꺼진~~ 꿈 속에는(느느느는)~~ 잊지못할 그대 눈동자(자자자자자)~~
괄호 안의 추임새는 현인선생풍입니다. 저도 이 노래 댑따 좋아한다죠.

로드무비 2009-01-19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신각 골목길을 돌아서 나올 때에
찢어버린 편지에는 한숨이 흘렀다
마로니에 잎이 나부끼는 이 거리에 버린 담배는
내 맘같이 그대 맘같이 꺼지지 않더라~~

저는 이은하풍으로.ㅎㅎ
(메피스토 님, 오랜만에 불러보니 가사 댑따 좋지요?)





2009-01-20 00: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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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9-01-20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의연한 산하 - 지금도 가끔 듣는데 들을때마다 눈물이 나요. ㅎㅎ(서울야곡은 앞부분 밖에 모름..ㅎㅎ) 요즘 눈이 엄청 쌓인 오대산 월정사 가고 싶어 죽겠는데 도대체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아이들 데리고 버스 타고 가자니 그 시간과 고생이 장난 아니고, 차끌고 가자니 눈길운전 도저히 자신없고..(이놈의 동네는 체인도 안팔아요.ㅠ.ㅠ)
근데 서울에서는 콜 부르면 천원을 더줘야 하나요? 워매 징한거.... ㅠ.ㅠ

로드무비 2009-01-20 11:22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 님, 신기한 게 노래로 맺어지는 관계도 있더라니까요.ㅎㅎ

그나저나 그 놈의 체인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차가 막혀서 국도로 달렸는데요
기껏 사서 끼운 체인을 풀었다 다시 끼웠다...
차창 밖으로 지나는 겨울산 겨울 마을 정경은 참 좋았습니다.

오대산 월정사 참 좋지요?
봄방학 때 아이들 데리고 가시면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저 서울 시민 아닙니다요.^^

2009-01-20 03: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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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0 11: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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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1 06: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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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4 03: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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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7 02: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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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7 12: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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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와본 적 없는
광주시 북구 우산초등학교 교정에서
접시만한 별들을 올려다 본다
풀벌레 소리도 자고 동네는 불켠 집이
몇 집뿐

왜 별들은 밤마다 불을 켜고
제 몸을 사르는 것일까
빈 운동장에서 나는
어떤 불을 켜고
밤하늘을 바라보는 것일까
나는 한걸음도 걷지 못했다

낯선 운동장까지 온 것은 산책이 아니었다
실은 그것은 밤도 아니었고
별나라 장난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떻게 살아가자는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나를 사랑해야겠다는
연민이 쏟아졌다 그 중에서
내가 아는 별은 하나도 없었지만
이제부터라도 나는 별이 되고자 했다

빈 운동장 같은 별은 비록 쓸쓸하겠지만
시원해서 좋을 것이다
모든 시야가 별처럼 총총거리고
이제부터라도 나는 아직 문을 닫지 않은
대폿집을 찾아갈 것이다
첫 잔은 빈 운동장을 위하여 그러고는
이 낯선 서성거림을 위하여
목을 축일 것이다

다시 올려다보니
하늘에는 더 많은 별들이
나를 굽어보고 있었다
바람이 싸늘하게 등을 밀었다


         - 정철훈 시집 <살고 싶은 아침>, 詩 '말할 수 없는 그리움' 全文




12월 말에 제주도에 다녀왔다.
그동안은 아무리 가족여행이라 하더라도 1박 2~ 3만 원 정도의 민박만 고집하다가
이번에는 유명 펜션에서 두 밤을 내리 묵는 호화판 여행이었다.

참 좋았던 곳은 외돌개와 쇠소깍.
인상적이었던 곳은 울울창창한 비자림과 심야의 용머리해안이었다.
해가 슬슬 질 무렵 비자림은 혼자 걸어 들어갔다.
아이가 너무나 곤한 잠을 자는 바람에 남편이 주차장에 남은 것이다.
그날, 평일 저녁의 비자나무숲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었다.
점점 어둠이 밀려오는 비자나무숲에서 한 시간여
나는 느긋하게 노닐다 왔다.
혼자인 것이 그렇게 만족스러울 수 없었고
한편으로 나를 기다리는 가족이 저 바깥에 있다는 사실에 또 안도했다.

용머리해안은 돌아오는 날 비행기 시간이 남아 표지판을 보고 잠시 들른 곳이다.
아무 생각 없이 멈춘 곳에서 일생의 풍경을 만날 때가 있다.
눈바람 끝에 갑자기 찾아든 추위와 사나운 파도와
저멀리 인간들의 기척인 불빛이 자아내는 풍경 앞에서
나는 할 말을 잊었다.

서귀포 항구 제주할망뚝배기집의 오분자기뚝배기 맛도 기가 막혔다.
가수 양희은이 들러 맛있게 식사를 하고 사인을 한 장 남길까요 했더니
그런 것 필요없다고 단칼에 거절했다는 무뚝뚝한 주인 할머니다.
장염 때문에 여행 이틀 전 링거까지 맞은 아이의 사연을 말하고
맑은국이 없냐고 했더니 5분도 안되어 맑은 된장국을 끓여내 왔다.
주하는 오랜만에 정말 맛있게 밥 한 그릇을 국에 말아 뚝딱 비웠다.

바로 세 밑이었지만 어떻게 살아가자는 결심 따위는 하지 않았다.
무엇무엇을 달라는 기도도 하지 않았다.
어깨를 살짝 치고 지나가는 생각은 더러 있었다.



(......)

세상을 다 바라볼 필요는 없으리
다만 그때 상처 하나 입을 열어
오늘을 오늘답게
오늘을 오늘로써 중얼거리기라도 한다면
우리는 모두 썩은 얼굴을 하고서도
그것을 받아먹을 것이요
말귀 알아듣는 몇몇은
눈물이라도 글썽거릴 것이니
그런 날은 세상이
하나도 불쌍하지 않겠네(정철훈 詩 '오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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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8 15: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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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8 16: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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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9-01-08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제주도 여행 참 좋으셨던 듯.
한 때 제주도에서 살아야겠다 오부지게 마음을 먹었는데, 5년 내 간다간다 해놓고 아직 이러구있어요.
양희은씨 , 계면쩍었겠는데요. 후후.

로드무비 2009-01-08 16:22   좋아요 0 | URL
양희은 씨가 계면쩍기나 했을라고요.
되려 (할머니의 그런 반응을) 좋아했겠죠.ㅎㅎ

제주도, 정말 좋더라고요. 말할 수 없이...^^

조선인 2009-01-08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비자림이 제일 기억 나요. 그 앞 초등학교에서는 애들처럼 흙놀이하며 놀기도 했고.

로드무비 2009-01-08 16:13   좋아요 0 | URL
비자림 주변이 어땠는가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성읍 민속마을을 지나다 우연히 발견하고 들렀는데...
알라딘 비자림 님이 생각나더라고요.

무해한모리군 2009-01-08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족과 함께 하는 여행은 이런 느낌이군요. 저는 혼자 걷고 밥먹고 걷고 책보다 또걷고 숙소는 이장님민박이나, 카톨릭피안처 등등을 다녔는데요. 오분자뚝배기 정말 맛있지요 호호..

로드무비 2009-01-08 16:08   좋아요 0 | URL
그 '면형의 집' 표지판은 오며가며 유심히 봤습니다.
혼자만의 여행이나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 다른 것 같지만 사실은 같아요.
그걸 깨달았습니다.^^



2009-01-08 17: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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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8 23: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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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1-08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질 무렵 혼자 독차지하신 비자림,
비자림은 또 님을 독차지했겠죠.^^
전 5년전 여름 한낮이었죠. 엄마랑 옆지기랑 셋이서..
제주할망뚝배기집은 기억해둬야겠어요.

로드무비 2009-01-08 23:31   좋아요 0 | URL
몇 달 전 읽은 놀멍쉬멍 책을 가지고 갔는데
가본 곳은 저 식당과 이중섭미술관뿐이었습니다.
여름 한낮의 비자림도 환상일 것 같아요.^^

2009-01-08 1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08 2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9-01-08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돌개, 쇠소깍, 비자림... 너무나 좋은 곳 갔다오셨네요!!! 부러워요.

로드무비 2009-01-08 23:39   좋아요 0 | URL
사라진 님, 님의 서재 이미지 사진이 이 페이퍼와 님의 댓글과
잘 어울립니다.^^

바람돌이 2009-01-09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랑쉬오름.
바다도 좋지만 바다는 늘 보고 살아서 그런지 산쪽이나 오름쪽이 더 좋더라구요.
겨울 제주도 아 가고 싶어요. ^^

로드무비 2009-01-09 14:53   좋아요 0 | URL
- 가출하게 되면 제주도로 날라야지.
하는 생각을 몰래 했습니다.ㅎㅎ

오름을 중심으로 한 제주올레 코스도 터덜터덜 모두 걸어보고 싶더라고요.
그나저나 바다는 바단데 모두 왜 그렇게 다를까요?^^

인터라겐 2009-01-09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주도는 모든게 쉬엄쉬엄가는 도시 같아요... 서울의 꽉막힌 도로도 없고.... 모든게 평화롭게 느리게 가는 도시요...

가족여행이 너무 즐거우셨겠어요..

로드무비 2009-01-09 14:49   좋아요 0 | URL
인터라겐 님, 그러니까요.
신호등도 있으나 마나 태연한 얼굴로 휙휙 다니는 차들, 사람들.

아픈 끝이라 주하가 골골거려서
실컷 못 마신 게 아쉬움으로 남습니다.ㅎㅎ

니르바나 2009-01-09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제주도 다녀오셨군요.
결심과 기도가 없는 여행길, 무명무실무감한 무목여행이셨네요.
저도 붙잡는 사람만 없으면 또 가고 싶어요.

한라산은 잘 있던가요.
전철안 애물단지인 휴대폰으로 백록담이 주는 감동을
실시간으로 나눌 수 있어서 좋았어요.
작년에 백록담에서 드린 전화 아직 못 받으셨죠. ㅎㅎ



로드무비 2009-01-09 14:55   좋아요 0 | URL
니르바나 님, 한라산이 포근한 눈이불을 덮고 있더군요.
극세사라나 뭐라나. 새로 장만했다고요.ㅎㅎ
친구 니르바나 님께 꼭 안부 전해달라고 했는데
제가 그만 깜빡했습니다.

작년에 백록담에서 주신 전화는 받아서 잘 저장해 뒀습니다.
핸드폰치고 화질이 얼마나 좋던지...
백만 년 동안 간직할게요.^,.~


니르바나 2009-01-09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托宿
못 보던 한자가 택호앞에 붙어 있네요.
뭔 말씀인가요?

로드무비 2009-01-09 14:56   좋아요 0 | URL
<술몽쇄언>을 옆구리에 끼고 자기 전 몇 장씩 읽었습니다.
어제 결국 다 읽었는데요.

가설라무네 '托宿'은 알라딘 방에 잠시 몸을 의탁한다는
심오한 뜻을 담고 있습니다.=3=3=3


rainy 2009-01-09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뜨끈한 점심 잘 먹고
지인과 한바탕 전화수다 잘 떨고
맛있는 커피까지 앞에 놓고 있는데
문득 눈물이 주루룩 (왜) 흐르게 만들어버린 로드무비님 글..

로드무비 2009-01-09 14:36   좋아요 0 | URL
rainy 님, 저도 친구가 편지에 옮겨 적어준 '오늘'을 읽고
울컥했습니다.
그 당장 시집 두 권을 주문했었지요.
'말귀 알아듣는 몇몇은 눈물이라도 글썽거릴 것이니'에
바로 우리 둘이 포함되는 걸까요.=3=3=3

oldhand 2009-01-09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 님, 참 오랜만에 뵙습니다. 잘 지내시죠? 새해에도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광주 우산 초등학교는 예전 부모님 사시던 동네 바로 옆에 있는 학교라서 시의 첫머리가 아주반갑네요. 자주 보던 그 운동장의 풍경이 시인의 눈에는 달리 보였을까요.
게다가 저도 지난 10월에 뒤늦게 얻은 휴가에 가족여행을 제주도로 다녀왔답니다. 이번에 처음 가본 쇠소깍이랑 비자림 저도 정말 좋았어요. 오후에 찾았던 비자림은 어찌나 한적한지, 우리 가족들 밖에 없었답니다. 아, 지금까지 사무실에서 궁싯거리고 있자니 그때 그 시간이 너무나 그리워 질라고 하네요.

로드무비 2009-01-10 12:26   좋아요 0 | URL
oldhand 님, 좀 전 님 방에 가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놀란 가슴은 진정시키고.ㅎㅎ
맞아요. 그쪽이 고향이라 하셨죠.
몇 년 전 제주도 여행길에는 우도 마라도 테디베어박물관
뭐 이런 식으로 들렀는데
올해는 얼핏 들은 풍월로만 갔는데 되려 아주 풍성했습니다.
비자림은 혼자라서 더욱 좋았던 것 같아요.
가끔 정말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거등요.

돈 많이 벌고 여유있게 일하셔서
어여쁜 콩주 자매와 함께 더 좋은 시간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2009-01-11 0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1 1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6 1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웅성거리는 삶 헤매고 떠도는 삶 술에 취해 주정도 하
고 실수도 하는 삶이 세계입니다 고상한 영혼 따윈 없죠
형이상학도 없습니다 모두가 언어죠 후회도 언어 기쁨도
언어 모래도 언어 지금 저리는 팔도 언어 어제 들른 카페
도 언어 당신도 언어입니다 언어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이
고 당신의 한계죠 당신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입니다 당신
은 당신의 눈을 볼 수 없고 당신은 지금 추운 들판, 거리,
마른 나무를 보는 게 아니라 당신의 시야 속에 있습니다
당신의 시야가 세계이고 세계의 한계죠 사유는 결국 미친
짓이죠 무슨 영혼, 진리, 본질 따윈 버리세요 잊으세요 망
각하세요 세계와 거리를 두지 마세요 그저 사세요 영혼
따위에 속지 마세요 진리를 찾지 마세요 삶이 그대로 진
리입니다 당신의 진리가 있는 게 아니라 당신이 진리죠
오전엔 눈이 오고 오후엔 해가 납니다
         
 - 이승훈 詩 <우리가 할 일은 웃는 것이다> 全文




좀전 달걀을 꺼내려 냉장고 문을 여는데 냉동실 앞에 붙은 이상한 글이 눈에 들어왔다.

삶.은.  나.물.

인생은(삶=나물) 나물이라고?
이게 뭔 소리여?
깜짝 놀라서 잠시 냉장고 문을 여는 것도 잊었다.
뒤이어 나의 메모가 속속 눈에 들어왔다.

분홍새우살
밥 한 공기
매생이 
...

며칠 전 나물을 삶고 보니 양이 너무 많아 밀폐용기에 반 덜어 얼려두었다.
텔레비전 모 프로그램에서 본 살림의 달인인지 여왕인지가 문득 생각나
냉동실에 보관된 식품과 식재료 목록을 적어 붙여두었던 것.

시인은 아무것도 묻지 말고 그저 살라는데, 
나는 '삶'자만 봐도 가슴이 철렁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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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12-29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이 나물이면 오히려 편안하지 않을까..잡생각 좀 해봅니다.
삶은 수육이나 삶은 머릿고기는 너무 헤비한 삶일 것 같고...
차라리 가볍고 건강에 좋은 나물이.....(역시 잡생각.)

로드무비 2008-12-29 15:30   좋아요 0 | URL
긍께요.
생각은 삶이 나물 같으면 좋겠는디
입맛은 역시 수육 쪽입니다.=3=3=3

balmas 2008-12-29 16:26   좋아요 0 | URL
나는 삶은 고구마 ... 3=3=3

로드무비 2008-12-29 21:58   좋아요 0 | URL
삶은 달걀.=3=3=3

(발마스 님, 반가워요.^^)

poptrash 2008-12-29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인사 드리네요. 잘 지내고 계시죠? 어쩜 이승훈 선생님 시 답네요. (말장난이 훨씬 더 줄었긴 하지만) 벌써 연말이에요... 행복한 새해 되세요!

2008-12-29 15: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30 17: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30 2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시장미 2008-12-29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뵈어요~~ ㅋㅋ
아궁. 나물하니깐 생각나네요. 고사리를 사두었는데, 어제 무쳐야지 했는데..안 했거든요.
오늘도 하기 싫은데.. 어쩌죠.-_ㅠ

많이 웃으시고 행복한 연말 보내시길 바랄께요! :)

로드무비 2008-12-29 21:55   좋아요 0 | URL
가시장미 님, 제 기억이 맞다면 전 고사리를 한 번도 안 사봤습니다.
(아, 글고 보니 몇 년 전 대보름에 한 번 샀던 것 같기도 하고.)
오늘 저녁 상엔 고사리나물이 오르는 건가요?ㅎㅎ

가시장미 님도 행복한 연말 보내시길.^^

치니 2008-12-29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시에 이런 뒷글이라니, 정말 로드무비님은 천재에요. 하하. 덕분에 유쾌하고 기분이 좋아졌어요.

로드무비 2008-12-29 21:51   좋아요 0 | URL
이 페이퍼 때문에 치니 님이 유쾌하시다니 덩달아 기분이 좋습니다.
제가 하는 짓이 하도 띨해서 책장수님께 반푼이 취급을 받고 있는데
님의 댓글이 크게 위로가 되었습니다.=3=3=3


2008-12-30 1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30 2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니르바나 2009-01-01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사랑하시는 로드무비님의
로망이 될 만한 서재그림을 보았습니다.
한번 보세요. 벌써 보셨는가 모르겠습니다.
http://book.naver.com/bookshelf/story.nhn?startmonth=200901

로드무비 2009-01-01 22:28   좋아요 0 | URL
니르바나 님 덕분에 멋진 서재를 구경했습니다.
오오래 전 신경숙 작가가 독신일 때 자취방에서 찍은 사진 중
뒷배경의 책 무더기에서 <죽비소리>라는 책을 발견하고
샀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상하게 그 책은 끌렸어요.

서재가 크고 훌륭하니, 책이 자세히 안 보이는 단점은 있네요.^^









roadmovie 2009-01-02 12:55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곰곰 생각해 보니 죽비소리가 아니고 장군죽비네요.ㅎㅎ
갑자기 생각나 달려왔습니다.=3=3=3

2009-01-01 2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01 2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