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 마다가스카2
딸아이와 그녀의 절친한 친구 둘을 데리고 가까운 극장에 갔다.
가깝다고는 하지만 버스로 30분 거리.
날씨가 몹시 추워서 택시를 불러 타고 갔다.
춥기도 하고 오전 시간대여서 요금을 천 원씩이나 더 지불해가며 콜을 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택시는 15분 후에야 도착했다.
아이들과 미리 나가서 벌벌 떨며 서 있는데
차는 보이지 않고 한 초로의 노인이 엉뚱한 동 앞에서 내게 고함을 질렀다.
택시 불렀냐고.
이제 오시면 어떡하냐고 영화 시간 늦겠다고 한마디 했다.
60대 중반의 기사님은 노련하게 영화 이야기로 내 입을 막았다.
살면서 이때까지 본 영화가 총 서너 개.
용팔이 어쩌고 하는 제목의 영화 두세 편과,
<저 강은 알고 있다>라는 영화는 너무 감동적이어서 제목까지 기억한다는 것이다.
수 - 후배와의 점심
영화를 보고 온 다음날, 약속대로 후배가 딸아이와 함께 우리 집을 찾았다.
1990년대 초, 내 발로 찾아든 한 직장인 단체에서 그녀를 만났다.
신입회원 교육을 마친 어느 날 강당에 삥 둘러앉아 막걸리를 앞에 놓고
자기 소개를 하는데 어쩐지 세련이 철철 흘러넘치더라니,
외국계 은행에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간단한 자기 소개 후 열창하는 노래가 '가슴이 빠개지도록~'으로 시작하는
<의연한 산하>였다.
가슴이 빠개지도록 사무치는 강산이여
머리끝까지 발끝까지 거부한다며
복종을 달게 받지 않겠다며
굳게 서 있으라 의연한 산하
쉬지 않고 흘러라 강물아
내가 불렀던 노래는 <서울 야곡>.
봄비를 맞으면서 충무로 걸어갈 때
쇼윈도 글라스엔 눈물이 흘렀다~
그녀는 내 노래가 좋았다고 했고
나는 반대로 그녀의 씩씩한 노래가 좋았다.
그렇게 만나온 지 어언 20년.
내가 준비한 점심 메뉴는 소고기불고기와 찐양배추 막장 쌈,
달걀물을 씌워 부친 새우버섯전이었고
이번주 중 꽤 중요한 수술을 앞두고 있는 후배는 천만다행히 맛있게 접시들을 비웠다.
주말 - 송어낚시
주말에는 1박 2일로 강원도 '눈꽃축제'에 갔다.
'송어축제'에서 잡아들인 송어로 점심을 배불리 먹고
오대산 월정사나 상원사에 오른 후,
밤에는 한우를 구워 먹는다는 원대한 계획이었다.
그런데 송어낚시에서부터 일이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네, 다섯 시간을 달려 현장에 도착했더니
세상에나, 기껏 해봐야 학교 교실 두 개를 합친 것 같은 얼음판 위에
오륙십 명의 사람들이 흩어져 각기 자기 앞의 조그만 구멍을 들여다보며
낚싯대를 들었다 놨다......
'송어축제'라는 플랭카드가 없었으면 모르고 그냥 지나칠 뻔했을 정도였다.
어른 1인 입장료는 1만 원,가짜 플라스틱 고기 미끼가 달린 허술한 낚싯대가 3천 원.
조그만 얼음구멍을 하나 차지하고 추위에 떨며 무려 한 시간 반을 기다리는 동안
송어를 한 마리라도 잡은 사람은 달랑 세 명이었다.
우리 일행은 전부 맨손.
이게 무슨 축제냐고 출입증을 반납하며 투덜거렸더니 주최측에서는
간이천막에서 송어 세 마리를 얻어 먹을 수 있는 티켓을 선심쓰듯 주었다.
그런데 송어 한 마리를 굽거나 회 뜨는 데 드는 비용이 한 마리당 5천 원.
우리는 대낮부터 소주병을 몇 병이나 깠다.
새벽부터 일어나 눈곱을 떼고 먼 길을 달려온 것이 그렇게 무안할 수 없었다.
다음날은 눈꽃축제고 뭣이고 간에 폭설 때문에 아침부터 부랴부랴 올라오는데
며칠 전에 만난 택시 기사분의 '내 인생 베스트 무비' 제목이 문득 떠올랐다.
<저 강은 알고 있다>.
얼음판에게, 또 강에게 묻고 싶다.
그날, 그 얼음장 밑에서 송어들이 몇 마리나 헤엄치고 있었는지?
이 땅에서 벌어지는 무슨무슨 축제들이며 거창한 일들이
내 눈에는 왜 모두 야바위판으로만 보이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