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살에 부딪쳐
다쳤다는 말은 모두 거짓말

쇠살만큼
착하고 여린 것도 없다
자르면 자르는 대로
댕강댕강 잘려나가
작아진다
구부려 놓으면
그게 저인 줄 알고
갈면 가는 대로 저를 덜어낸다
강철이건 잡철이건
금세 녹아 한 덩이 된다
1센티미터도
저를 속이지 않는다

억지로 미니까 후려친다
강제로 자르니 무너진다

          -'쇠살' 송경동, 시집 <꿀잠> 중



몇 주 전 방영된 KBS스페셜 '두 도시 이야기, 부산과 볼로냐'를
오늘 오전 뒤늦게 챙겨 보았다.
1970년대 제조업의 메카에다가 대표적인 경제도시로 명성을 떨쳤던 부산과,
그 당시 가장 가난한 도시였던 이탈리아의 볼로냐를 소개하는 다큐였다.
부산은 공장을 비롯한 지역자본이 외지로 빠져나가면서
실업률 전국 최고, 경제자립도도 전국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겠지만 거기엔 아마도 대형마트에서 쇼핑할 때
지역의 대표 브랜드인 부산우유를 외면하고 1 플러스 1 우유를
장바구니에 넣었던 소비자들의 무심한 행태와도 관계 있을 것이다.

이와 달리 볼로냐는 협동조합 체제를 구축,
철저하게 조합원과 지역경제를 보호하여 오늘의 번영에 이르렀다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볼로냐의 살라미햄은
볼로냐 지역에서 생산된 고기만 사용하여 그 지역의 생산자들을
보호하고 있었다.(다국적 기업은 발도 붙이지 못하는 풍토.)
협동조합의 수익금은 고스란히 더 좋은 제품의 개발과
출자자인 농민에게 돌아갔다.

그런데 이렇게도 비교될 수가 있나!
주인인 농민들을 무시하고 수익금의 대부분을 높은 급여 등
자신들 몫으로 빼돌려 물의를 일으킨 경북 상주 함창농협.
그 농협 간부의 뻔뻔하기 짝이 없는 인터뷰를 보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농협도 엄연히 금융기관인 것이고 금융기관이라면
어느 정도 레벨의 급여가 있는데 농민들 수준하고 같이 갈 순 없잖아요?"

내가 이래서 얼마 전 '개새끼들'이라는 페이퍼 카테고리를 만들었던 거다.
입으로도 발설하지 못하는 말을 차마 글로 할 수 없어서 그냥 비워 두었지만.
(<개새끼들>은 정을병의 사회비판 소설로  입학한 후 얼마 안 되어
대학 도서관에서 처음 대출하여 읽은 책이다. 제목에 끌려...)


꼬막 껍질 하나에 옴싹 들어갈
짜디짠 말 한마디 갖고 싶다(<꿀잠> 104쪽 '詩' 전문)


'짜디짠 말 한 마디'가 그토록  갖고 싶은 송경동 시인은
최근 옮겨간 기륭의 새 사옥 앞에서 농성중인 해고노동자들과
함께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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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shot 2008-11-05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볼로냐의 경우는 우석훈이 근작에서 말한 '제3부분'과 겹치네요. 헌데 이놈의 나라는 어째 막걸리도 '서울'막걸리가 베스트셀러니...(미안하다 서울막걸리...니가 맛은 있는데)
그리고 '개쉐이덜'이라는 카테고리 이름, 맘에 듭니다~~^^

로드무비 2008-11-05 21:53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막걸리조차 서울막걸리가 제일 맛나니......
볼로냐는 공방 골목의 작은 가게들을 보호하여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를 여럿 탄생시킨 건 물론
관광객들도 엄청 몰려들고 있더군요.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피맛골도 북아현동도 모두 싹
밀어버리는 분위기니 생각만 해도 화가 납니다.

그나저나 twoshot 님이 맘에 드신다니
저 카테고리를 살려볼까요?ㅎㅎ

2008-11-06 1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1-06 1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da 2008-11-06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분, 정말 '개새끼'시네요.
근처에 대형마트가 있는데, 조금이라도 농민들한테 이익이 돌아갈까 싶어서 조금 멀리 있는 농협 하나로마트를 이용해요.
대형마트에 산더미처럼 쌓인 물건들을 보면 소름이 끼치기도 하구요.
근데 농협이란 조직도 관료제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을 생각하면,, 이런 짓이 소용있을까 하는 생각도 종종 들더라구요.
저런 간부가 그런 회의에 불을 지르네요. --;;;

로드무비 2008-11-07 09:46   좋아요 0 | URL
꽃양배추님, 님이 그리 장단을 맞춰주시니 속이 시원합니다.
뻥 뚫렸어요.ㅎㅎ
맞아요, 이런 짓이 소용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허튼 곳에 마음과 시간을 쓰고 싶지 않은데
순간순간 분기탱천하네요.
헤헤, 그래도 '저분' 덕분에 페이퍼도 쓰고 꽃양배추님과
이야기도 나누고.^^

2008-11-09 1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1-09 1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디서 오셨나요?"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여기 사람 같지 않아요."
술잔을 비우고 스탠드의 여자를 향해
어설프게 미소 짓는다
서울이라고 말하기 싫다
아무데면 어떤가
나는 나머지 술을 비우고
일어나야 한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건
때가 되면 집으로 돌아가고
때가 되면 지나온 생에
미소를 지어야 한다.
지금 나는 그저 술 마시는 남자
어떤 여자 앞에서도
다르게 보이고 싶지 않다.
취해서 떠드는
이 숱한 남자들 속에서.
              -'구미시 이번 도로1', 우영창 詩



몇 개월째 나란히 동네 스포츠센터에 함께 다니는 책장수님과 주하.
어제는 좀 멀리 운동을 하러 간다기에 그 시간에 나는 영화를 한 편
보기로 했다. 마침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극장에서
다키타 요지로 감독의 <굿'바이>를 상영하고 있었다.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어렵게 들어간 다이고는
거액의 빚을 얻어 첼로를 장만하는데 재정난으로 오케스트라가 해체된다.
아내와 상의, 작은 카페를 운영하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고향집(그 카페)으로
내려오는데, 여행 도우미를 구한다는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갔더니
사장왈, 그 신문광고에 실수로 중요한 단어가 빠졌다고 시치미를 뗀다.
알고보니 시신을 염하고 납관하는 영원한 여행(죽음) 도우미였던 것이다.

<씨네21>에 의하면 이 영화에 등장하는, 시체 역할 배우 오디션장이
미어터졌단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배우들은 전혀 미동이 없어야 하는
어려운 연기
를 잘도 해냈다고.

'하고많은 연기 중에 시체 연기를 그렇게 하고 싶었을까?' 궁금했는데
영화를 보면서 스르르 의문이 풀렸다.
매일매일 장작불로 자신이 직접 끓여낸 물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졌던
목욕탕집 할머니는, 곱게 단장을 끝낸 관 속에서 초절정의 미를 보여준다.

카페('和'라는 이름의 문패도 떼지 않았다)를 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30대 주인공 부부의 낡은 집도 좋았고,
어린 시절에 사용했던 작은 첼로로 어른이 된 다이고가 연주하는 곡들도
묵직하면서 따뜻했고, 곧 허물어질 것 같은 그 대중목욕탕의
김이 서린 내부 풍경도 좋았다.
첼로 연주자에서 납관사 도우미가 된 다이고(모토키 마사히로)는
첼로 연주는 물론 납관의 절차까지 직접 거의 완벽하게 해냈다고.
(음악은 히사이시 조)

'죽음'을 너무 심각하게 다룬다거나 또 희화화하지 않은 점이 좋았다.
납득이 갈 만한 선에서 이렇게 따뜻하고 진솔하게 펼쳐보이다니......

오늘 아침, 책꽂이에서 문득 눈에 띈 <현대시세계>(1989년 겨울호)를
펼쳤더니 우영창의 시가 나왔다.
영화 이야기와 매치가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냥 페이퍼로 올린다.


장마가 시작되던 날
그는 사직권고를 받았다
이유를 알 수 없었고
차라리 이유 없는 편이 낫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빗속을 걷고 또 걸어
생전 다시는 들르지 않을 술집에서
못 마시는 술을 마셨다
머리 속에서 콸콸
빗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면서 갑자기
모든 기억이 흐려져 갔다

잠이 깼을 때
그는 변두리 여관의
처마 밑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었다
질척거리는 시장의 식당에서
국밥을 뜨며
국밥 속에 전혀 낯선 얼굴이
떠오르는 것도 보았다
               - 우영창 詩 '왜 이렇게 늦은 시간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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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8-11-03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굿 바이 보고 싶어졌어요.
요새 일본 영화 중 좋은 작품이 많이 들어와 기쁘답니다. *^^*

로드무비 2008-11-03 13:44   좋아요 0 | URL
조선인 님, 이 영화 좋더군요.
첼로의 선율과 함께 겨울 정취도 최고.^^

무해한모리군 2008-11-03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오늘 보고 싶었는데, 원래 회사노는날인데 사장이 비상근무 운운하며 오전근무만 하자더니 오후 4시까지 퇴근을 안시켜주네요. 볼 수 있을라나 ㅠ.ㅠ

로드무비 2008-11-03 22:31   좋아요 0 | URL
휘모리 님, 12일까지 한답니다.
꼭 챙겨보세요.^^

무해한모리군 2008-11-04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보았답니다.
미안하게도 맛있단 말이야 라는 문장이 기억에 남네요.
먹는 행위와 죽음을 밀접하게 그린 점이 인상깊었습니다. ^^

로드무비 2008-11-04 10:17   좋아요 0 | URL
크리스마스에 사무실에서 치킨 먹는 장면 나오잖아요.
그날 밤 바로 시켜 먹었습니다.^^

Arch 2008-11-04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둠의 경로(이거 아니면 볼 수가)로 봐야겠어요. 맛있고, 좋고 귀가 즐겁고 가볍지 않은 묵직함. 많은 형용사 대신 찬찬히 시간을 두고 보려구요. 로드무비님 영화 얘기 참 좋아요.

로드무비 2008-11-04 14:19   좋아요 0 | URL
시니에 님, 아이고 그렇군요. 아쉽지만 어둠의 경로로라도...
몇 마디 주절거림 정도에 불과한데,
제 영화 얘기 좋다고 해주시니 고맙습니다요.^^


2008-11-09 1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삶이 힘들고 고단할 때 하늘에서 돌이 비처럼 쏟아지는 것 같다.
오직 내게만......'(영화 <레이닝 스톤>에서, 켄 로치))


켄 로치 감독은 영화 <자유로운 세계>의 개봉을 앞두고 한 영화잡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 세상에) 희망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짧게는 낙관적이라고 보기 힘들겠지만 길게 보면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논현동 고시원 묻지마 방화살인사건 소식을 들었다.
경제적인 사정이든 개인적인 문제이든 뭐든 갈 데까지 간, 더이상 버틸 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기와 아무 상관이 없는, 불특정다수를 향해 분노를 폭발시키고 있다.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자꾸 늘어간다는 것이다.
고시원 사건의 희생자들은 대부분이 중국에서 온 여성 이주노동자들이었다.
<자유로운 세계>에서 한달치 임금을 떼이고 별로 미안한 기색도 없는 인력알선업체의
고용주 앤지에게, 양 같이 순하던 이주노동자들은 분노를 폭발시킨다.
그러고 보면 현실과 영화가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앤지는 30대의 싱글맘으로 말썽꾸러기 아들을 부모님께 맡기고 있다.
인력알선업체의 계약직 사원이었는데 직장내 성희롱 사건에 엮이며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호구지책으로 친구 로즈와 함께 차린 것이 인력알선업체.
그런데 이주노동자들을 일터와 연결시켜 주는 이 일도 쉽지 않다.
여권이 없는 상태로 불법체류중인 이주노동자들에게서는
알선 수수료를 더 받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카메라는 이주노동자들의 시선과 입장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계약직 사원에서 고용주로 변신한 앤지의 뒤를 따라다닌다.
그런데 악덕고용주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제 코가 석자라지만,
앤지는 자신보다 더 딱한 처지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착취하고 등쳐먹는다.
이른바 '먹고살려고 보니 어쩔 수 없다'는 논리다.
층층의 먹이사슬 구조.
앤지를 통해 값싼 노동력을 제공받은 거래처 사람은 부도가 나자
앤지에게 지급해야 할 노동자들의 임금을 떼먹고 나자빠진다.
피해자가 자기도 모르게 가해자로 변한다.
나라고 예외일 수 없다는 사실, 그것이 무섭다.

그의 전작들 중 <빵과 장미>나 <레이닝 스톤>만 해도 
희망이라든가 삶의 의욕을 느낄 수 있었다. 
청소인부들의 노조 결성과 노동쟁의 과정(<빵과 장미>)이나,
성찬식에 입을 딸의 드레스를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실직가장의
이야기(<레이닝 스톤)가 뭐 그리 신통할 리가 없는데,
이상하게 화면 밖으로 유머와 여유가 배어나왔다.
그런데 <자유로운 세계>를 보고 오는 길은 발걸음이 너무 무거웠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나 영국이나 가릴 것 없이
이주노동자들이 이렇게 많아진 것도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여파가 아닌가.
우리의 어깨 위에는 언제부턴지 세상 시름이 천근 같은 무게로 얹혀졌다.

켄 로치의 영화는 살얼음판 같은 세상을 보여준다.
얼음장은 너무 얇고 여기저기 금이 가 있다. 
조마조마해서 외면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뜰 수는 없으니,
70대의 노감독이 저렇게 긴 막대기를 들고 지켜보고 있는데 어쩌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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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머리김 2008-10-31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흐~~ 사랑합니다. 누님~~
내가 원하는 자유로운 세계는
어여 한국으로 돌아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노는 것인데~~
그럴 수 있을거야~~ 라고 꿈꾸며 지낸답니다.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걷는다마는
환율은 계속오르고 있어
이곳 교민들은 정처없는 이 발길이로세~~
같은 심정이네요......

잘지내시죠~~~~ 책장수와 동동이 역시~~~

저도 열심히 버티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요새는 버티는 것이 잘 사는 거라네요.

지아장커와 장률의 영화는 이전에도 이야기하셔서
찾아봤는데 잘 없더라고요~~
이곳 저곳 다시 한 번 찾아보께요.

다른 것도 있으면 언제든 콜하세요.

건강조심하시고요~~^-^

로드무비 2008-11-01 08:29   좋아요 0 | URL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겄소. 성실하기까지 한 나를.=3=3=3
이제 또 바쁠 때지?
건강 조심하고, 올 겨울 울 동네 사께집서 한잔할 수 있을라나?^^

Mephistopheles 2008-10-31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캔 로치 감독은..정통파 복서에서 기교파 복서로 전향(?)했다고 보여질 수 밖에 없는 요즘 그의 영화들입니다.^^

로드무비 2008-11-01 08:33   좋아요 0 | URL
메피스토펠레스 님, 연속으로 치는 스트레이트 훅이 장난이 아니던뎁쇼.ㅎㅎ
켄 로치 감독은 늙어도 변질되거나 망가지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보여줍니다.

2008-11-01 1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1-02 1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흰머리김 2008-11-01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네~~ 알았어용~~^-^ 10월의 마지막 밤을 반주와 함께 님과 함께 보내셨는지~~

지아장커가 감독한 영화를 묶어 놓은 것이 있어 구입해 놨어요. 단 자막이 없다는거~~

장률의 경계라는 DVD가 자막이 있는 것이 있어 샀는데..

고이고이 모셔서 다른 것 요청하면 같이 사서 한국갈 때 드리께요.

사께집을 그리면서~~

2008-11-01 1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1-02 0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1-02 1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영혼의 식사 - 위화 산문집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휴머니스트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몇 달 전, <닥쳐라, 세계화!>를 읽다가 위화의 소설 같은 제목을 만나고,
하마터면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다.

'웅크리고 앉아 다음 재난을 기다린다'.(141쪽 '슬럼과 성채도시' 중)

웅크리고 앉아 다음 재난을 기다린다니,
빈민촌이 성벽처럼 펼쳐져 있다는 필리핀이나 나이로비까지 갈 것도 없다.
지금 내 눈에 비친 이 세상과 인간 군상의 모습이다.
나 또한 그 대열의 중간 혹은 말미에 끼여 있다.

소설가 이문구는 오래 전 그의 소설 뒤에
'허름해서 좋은 위화의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해설을 달았다.
<허삼관 매혈기>를 읽고 백만원군을 얻은 것 같다고 했던가?
<가랑비 속의 외침>이나 <살아간다는 것>,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를 읽고 나서 내게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구차하고 신산하고 갑갑한 생의 어느 대목에서는
'이건 꼭 위화의 소설 장면 같잖아!'하며 마음을 눙치는 것.
웬만한 마음공부 책보다, 마인드컨트롤보다 더 좋은 것이 그의 글들이다.

위화의 산문집 <영혼의 식사>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아들 로우로우의 탄생과 성장에 관한 기록과 자신의 어린 시절 회상(제1장),
제2장은 한국 방문기(연극 '지하철 1호선'과 전인권 공연 관람기,
시인 김정환과의 술집 기행 등 무척 흥미롭다)를 포함한  작가의 삶과 문학,
제3장은 자신의 책에 쓴 서문(혹은 발문)을 모은 것이다. 
예를 들어 <허삼관 매혈기>의 독일어판 서문이나 한국어판 서문,
중국어판 재판 서문 들이 제각각 어찌나 다른지,
서문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는 작가의 성실성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작가는) 일체의 사물을 이해한 후의 초연과,
선과 악을 차별없이 보는 사해동포주의,
동정의 눈길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271쪽)'고.

'영혼의 식사'는 옛날부터 전해오는 흑인노예들의 전통 메뉴로,
아나카스티야 지역에 갔을 때 그 이름의 식당을 물어물어 찾아갔다고 한다.
삶아 으깬 고구마와 소금에 절인 이파리가 전부라는데
위화는 이 소박한 음식과 함께, '흑인노예 무역의 괴수'였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그리고 흑인들과 인디언들을 마음껏 유린했던
아메리카의 활약상(?)을 자세히 펼쳐 보이고 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쓰나미처럼 온 세상을 덮친 세계화의 물결은,
아프리카 흑인들을 잡아와 노예선에 태우던
500년 전에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왕푸징 거리에서 마주친, 맞은편에서 눈물을 쏟으며 걸어오던
노인 이야기로 시작되는
죽음의 성찰('삶의 마지막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꽤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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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8-10-30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생각보다는 젊은 분이었군요, 허삼관매혈기를 읽을 때는 왠지 20세기 초 정도가 배경이라고 느꼈던 것 같은데, 전인권 공연도 보실만큼 젊다니! 신선한 충격. ^-^

로드무비 2008-10-30 21:25   좋아요 0 | URL
치니 님, 1960년생이니 젊고 말고요.^-^


2008-10-31 0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31 1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10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09 0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셀 공드리, 레오 꺄락스, 봉준호 감독의 옴니버스 영화
<도쿄>를 조조로 보고 오는 길에 버스 안에서 씨네21을 읽었다.
제2회 가족영화제(10.22~28) 상영 프로그램 중
<빈병들Empties>이라는 체코 영화와 <이글 대 샤크Eagle vs Shark>라는
뉴질랜드 영화가 눈에 띈다.

"아무리 진지한 척해도, 인간이란 미숙하고 희극적 동물일 뿐"이라는
<이글 대 샤크>의 타이카 코언 감독의 전언에
갑자기 어젯밤 일이 생각났다.

늦은 저녁을 먹으며 텔레비전 프로야구 경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남동생.

"주하야, 삼촌이 고등학교 때 야구선수로 맹활약했거든."
"진짜?"
"응, 그런데 마구를 던지다 어깨를 다치는 바람에
야구선수의 꿈을 접어야 했지."

지난번에는 입을 쩍 벌리고 임플란트 이를 보여주며
사람이 아니고 자신은 인조인간이라고 뻥을 치더니...
듣고 있던 남편이 한마디한다.

"'마구'가 아니고 공을 마구마구 던지다 그랬겠지."

책장수 님의 재치에 나도 가만 있을 수 없다.

"님 좀 짱인 듯!!"

그렇게도 한 번 사용해 보고 싶었던 인터넷 댓글이 내 입으로 튀어 나오고,
모처럼 그가 엄청나게 웃었다. 덩달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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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비 2008-10-24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요즘도 영화 많이 보시나 봐요. 전 언젠가부터 극장 가는 게 귀찮아졌지 뭐여요. 참, 오랜만이에요. 무탈...하시죠?

로드무비 2008-10-24 22:48   좋아요 0 | URL
아아, 반갑습니다.^^

twoshot 2008-10-24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도 그말 한번 써먹어 보고 싶었는데 쓸 타이밍을 못찾고 있습니다-_-;;

로드무비 2008-10-24 22:42   좋아요 0 | URL
twoshot 님, 혹시 다음 타자는 '뭥미?' 아닙니까?=3=3=3

Mephistopheles 2008-10-24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봤을 땐 로드무비님 부부는 울트라 캡숑 킹왕짱 입니다.

로드무비 2008-10-24 22:36   좋아요 0 | URL
메피스토 님, 오늘 죽어도(아니, 취소!) 여한이 없습네다.^^

바람돌이 2008-10-24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남동생분이 울트라 짱입니다. ^^

로드무비 2008-10-25 11:16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 님, 님의 댓글 보여줘야겠습니다.^^

2008-10-25 1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25 1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28 0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30 14:4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