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택배 보낼 일이 있어 단골 아저씨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추석 여파인가 물량이 너무 많아 저녁 늦게나 오겠다더니
밤 열 시가 넘어 도착할 예정이란다.

'가을맞이'의 일환으로 지난주부터 다시 동네 두 바퀴 돌기를 시작했으므로
건네줄 상자를 마당 앞에 내다놓고 아예 운동화를 신고
냉동실에 사각사각 반쯤 얼려둔 커피우유 포리를 얌전하게 들고 차량을 기다렸다.
옆동에 먼저 도착한 차량의 움직임을 지켜보자니 아내인 듯한 중년여인이 먼저 내려
차량 뒤에서 상자를 확인, 그에게 건네자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털을 휘날리며
아파트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정신없는 틈을 타 택배 차량을 터는 인간들이 있다던데 그래서일까? 아니면 추석 연휴
하루 열네 시간이 넘는 최강도의 노동을 지켜보기 안쓰러워 조수를 자처한 것일까?
아무튼 그 늦은 시간 누군가와 둘이 함께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보기 좋았다.

커피우유를 건네니 아저씨 깜짝 놀란다.
"차가운 물 한 잔 드릴까요?"라는 말은 몇 번 해봤지만 음료는 처음인 것이다.
거기다 지난번 주고 간 빈 전표에 주소까지 달필로 미리 다 적어놨으니
비록 말로 표현은 안했지만 내가 얼마나 어여쁜 고객이었겠는가.

며칠 전, 인터넷으로 주문한 아이들의 내복상자를 그 아저씨에게서 전해받았다.
그런데 내게 상자를 건네고 난 아저씨, 다른 때와 달리 머뭇머뭇하며 서있다.
"읽지 않는 책, 다 읽고 난 책 저 좀 주시면 안 됩니까?"
"직접 읽으실 책 말입니까?"
"예, 제가 읽을 책."
너무 갑작스러운 말이라 어리둥절했지만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알라딘 책을 배달하는 택배사 기사님도 아닌데 어째서 내게 책을? 그건 좀 의문이다.)

어제 저녁 알뜰장터에서 반찬거리를 몇 가지 사들고 오는데
그 아저씨의 택배차량이 눈에 띄었다.
책을 좀 골라놓겠다고 한 말이 생각나자 나도 모르게 벽 쪽으로 슬금슬금
몸을 숨기게 되더니 급기야 '걸음아 나 살려라'가 되었다.

오늘 혹은 내일, 모레, 언제 아저씨가 들이닥치더라도 당황하지 않게
조금 전 책을 몇 권 골랐다.

홍성사 '믿음의 글' 중 김진홍 목사의 <새벽을 깨우리로다>.
이문열의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솎아내었다'는 표현이 적절하리라.

솎아낸 책을 주는 게  미안해서 고른 게 15년 전 재미있게 읽은 김하기의 장편소설
<항로 없는 비행> 상하권.
공선옥 등 필진이 꽤 화려한 '나를 움직인 한마디' <머뭇거리지 말고 시작해>.
지난해 무슨 일로 자료조사차 구입했던 <한국의 젊은 부자들>.
베텔스만에서 내게 책구입을 강요하며 제멋대로 보냈던 <성공하려면 적과도 화해하라>.
성석제의 '맛 산문집' <소풍>과, '만두처럼'이 들어 있는 허영만의 <식객 13권>.

그리고 최근 꽤 재밌게 읽은 스티브 도나휴의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을
마지막으로 넣었다.
아마도 소풍과 식객과 사막 세 권은 그 아저씨도 무척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까?

그날 그 피곤했던 밤, 냉면집 육수처럼 사각사각 얼렸다가 건넨 커피우유 때문에
그 아저씨는 내게 책을 좀 나눠 달라고 얘기를 꺼냈는지도 모른다.
사실을 말하면, 모르는 사람이 나를 믿고 내게 뭘 좀 나눠달라고 얘기해줘서 기뻤던 것인데,
그건 그렇고 아저씨의 독서취향을 언제 슬쩍 지나가는 말로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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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8-09-26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있어요~

로드무비 2008-09-26 14:58   좋아요 0 | URL
BRINY님, 반갑습니다.^^

조선인 2008-09-26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택배 아저씨가 눈이 높네요. ^^

로드무비 2008-09-26 15:00   좋아요 0 | URL
조선인 님, 그러게 말입니다.=3=3=3

마노아 2008-09-26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에피소드에요. 나눔의 따스함이 이 자리에 있네요^^

로드무비 2008-09-27 13:27   좋아요 0 | URL
마노아 님 내심 좀 귀찮기도 하더라고요.=3=3=3
몇 권을, 어떤 책을, 이모저모 생각하는 게......

울보 2008-09-26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시네요,
잘 지내시고 계시지요,,
저만 오랜만인가요,ㅎㅎ

로드무비 2008-09-27 13:22   좋아요 0 | URL
울보 님, 오랜만입니다.
울보님만 그런 게 아니고요.
반갑습니다.
류 얼굴 보러 가볼게요.^^

치니 2008-09-27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취향을 모르고 책을 나눈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 같아요.
일단 이번에 드린 책들 중 무엇이 가장 재미났는지 나중에 여쭈면, 답이 나오겠군요. ^-^
좋은 책 친구가 생기신 듯.

로드무비 2008-09-27 13:20   좋아요 0 | URL
치니 님, 안 그래도 어제 저녁 책상자를 건네며 물어봤는데요,
'도'에 관심이 있으시답니다. 허거걱.
'도'에 관한 책은 자기가 직접 사서 봐야 하지 않나,
하는 편견을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검둥개 2008-09-30 0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커피우유에 무료 도서까지!!
아무래도 구직에 실패하면 로드무비님 동네 택배업으로 직종을 바꿀까봐요 :-)

로드무비 2008-09-30 11:25   좋아요 0 | URL
검둥개 님이 오시면 막걸리에 파전도 쏘겠습니다.
직종 바꾸세요. 네에? 검둥개 님.=3=3=3
 


이틀 전 광화문의 한 극장에서 영화 두 편을 연달아 보았다.
이승영 감독의 하릴없는 청춘영화 <여기보다 어딘가에>와
정병길 감독의 다큐멘터리 <우린 액션배우다>.
아이들 학교 보내놓고 미친 듯이 외출했다.
마지막 상영일이기도 했고, 20분에 한 대 오는 버스 놓칠까봐.....


<여기보다 어딘가에>





<우린 액션배우다>


영화는 딱 기대했던 그대로.
막막하면서도 슬프고  무지하게 웃겼다.
그렇게 보고 싶었던 영화 두 편을 한 자리에 앉아 허리를 비틀며 보고 난 후
극장문을 나서니 오후 두 시 반.
교보에 잠시 들렀다가 피맛골 열차집에 들렀다.

대낮부터 술을 퍼고 계신 아자씨 할아버지 손님이 두 테이블.
빈대떡을 1인분 싸달라고 주문하고 서있다보니 목이 말랐다.
막 부쳐낸 뜨끈뜨끈한 빈대떡을 먹고 싶기도 했고.

빈대떡 한장을 먹고 가겠다고 말하고 자리에 앉아  막걸리도 한 통 시켰다.
두 잔 마시고 남은 막걸리 반 통을 세상에나, 두고 왔다.

퇴근한 책장수님 저녁상에 한 장,
뒤이어 남동생 저녁상에 한 장 데워서 내었다.

남은 막걸리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고 두 남자에게 얼마나 야단맞았는지.
남동생은 한 통 다 마시고 오지 않았다고 입맛을 다시며 아쉬워했다.




피맛골이 곧 헐린다고 하여 아쉬운 마음에 들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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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9-04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통나무집의 홍합탕과 불로주점의 떡볶음도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군요..
정말 부담없는 술동네였는데 둘이서 2만원에 딱 필림 끊기고 나오기 좋은...

로드무비 2008-09-06 12:42   좋아요 0 | URL
불로주점은 또 어딥니까?ㅎㅎ
사라졌음 싶은 건 안 사라지고 그나마 몇 안 남은
옛길과 동네들이 자꾸 엉뚱한 모습으로 바뀌네요.
2만 원, 필름...그런 말도 그립네요.

Mephistopheles 2008-09-07 21:11   좋아요 0 | URL
통나무집 옆에 있습니다만...가래떡으로 만드는 떡볶기인 떡볶음이 참 맛있던 집이였다죠...

로드무비 2008-09-08 11:24   좋아요 0 | URL
과거완료형인 걸 보니 이미 없어졌나봐요.
가래떡으로 만든 떡볶이는 부산에만 있는 줄 알았더니.
아참, 떡볶음은 떡볶이와 좀 다르겠죠?^^

nada 2008-09-04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수막걸리였나요? 막걸리는 장수막걸리죠.^^

낙원상가에 이어 피맛골까지.. 종로에 불어닥치는 개발 바람이 심상치 않나 봐요.
서울이 점점 꼴보기 싫어집니다.

로드무비님 글 자주 보고 싶어요.^-^

로드무비 2008-09-06 12:33   좋아요 0 | URL
꽃양배추 님, 아이고 오랜만입니다.
아무렴요. 막걸리는 누가 뭐라 해도 장수막걸립죠.
(몇 달 전 설악산 초입에서 먹어본 더덕막걸리도 환상적이었습니다.)
재건축 재개발로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발상, 얼마나 얼토당토 않은지.

그동안 컴이 고장나 쇼핑도 서재활동도 못했는데요.
오늘 드디어 새 컴퓨터가 들어왔습니다.
글 자주 올릴테니 님도 자주 놀러와 주세요.^^

twoshot 2008-09-04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동생이 진정 대인배이십니다.다음에는 꼭 막걸리 한통 다 마시고 오세요^^

로드무비 2008-09-06 12:27   좋아요 0 | URL
twoshot 님, 다음엔 기필코 그리하겠습니다.
대인배(?)는 결코 아닌 것 같고, 술이라면 환장을 하는 위인이라서요.ㅎㅎ

Kitty 2008-09-04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 저도 오늘 두 시 반에 교보에 있었는데!!!
로드무비님이랑 스쳤을지도 모르겠군요! ㅎㅎㅎ

로드무비 2008-09-06 12:24   좋아요 0 | URL
키티 님, 제가 간 건 이 페이퍼 쓰기 이틀 전이었을 거예요.
아무튼 무지 반갑습니다.^^

Arch 2008-09-04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인배^^* 저도 각종 혼탁한 술과 낮술 애호가로서(잘 먹지도 못하면서)마구마구 기분이 좋아지는데요. 냄새만 맡아도 좋다 이거예요. 전, 꽃양배추님 글도 자주자주 보고싶어요.

로드무비 2008-09-06 12:23   좋아요 0 | URL
시니에 님, 서재 이미지 구경가야겠네요.
낮술 애호가라니 괜히 반갑군요.^^
(냄새만 맡아도 좋다 이거예요, 라는 말에 웃음이 나옵니다.)

바람돌이 2008-09-05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랴부랴든 어쨌든 영화 두편을 뚝딱 보고 올 수 있는 시간과 뚝심이 부러워요. ^^

로드무비 2008-09-06 12:21   좋아요 0 | URL
하하, 바람돌이 님, 그렇습니다. 뚝심하면 또 저죠.=3=3
하루에 영화 두 편 보는 건 아주 드문 일인데
그날 어떻게 시간도 그렇고 상황이 딱 맞아떨어지더라고요.
허리 아파 죽는 줄 알았습니다.^^;

치니 2008-09-05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여기보다 어딘가에>를 봤는데, 뭐랄까 이건 아닌데 라는 심정이었어요.
홍상수 식 영화 (이런 일반화의 오류는 잠시 용서해주시고) 비슷한 영화들이 많아졌는데,
가끔은 그래서 홍상수가 대단하다 싶은 생각도 들고...
아무튼 한 마디로 저는 별루 재미가 없었다는 야그. ㅋㅋ
결정적으로, 전 이 영화를 방준석 때문에 봤는데, 방준석이 너무 영 아니게 나와서...ㅠㅠ(연기하지 말라고 도시락 싸들고 말리고 싶었어요)

피맛골, 없어지는군요. 흠. 갈 때마다 꼭 취하고 나오게 하는 술집이었는데.
아, 근데 빈대떡도 먹고 싶다아. (막걸리는 저에겐 쥐약인 술이라, 먹기만 하면 토하드라구요)

로드무비 2008-09-06 12:17   좋아요 0 | URL
치니 님, 전 꽤 재밌게 봤습니다.
그녀의 무기력과 망연자실까지도 이해할 수 있겠던데요?
방준석은 자세히 처음 봤는데 묘한 인물이었습니다.
연기를 떠나서 그 역할엔 참 잘 어울렸어요.ㅎㅎ

돼지기름 냄새 물씬한 빈대떡은 앞으로 어디 가서 먹을 수 있을까요?
텔레비전에서 보니 광장시장 먹자골목 게 맛있어 보이던데.^^
막걸리 마시면 토한다고요?
전 와인 종류가 거시기하던데.
참, 조금 전 새 컴퓨터 설치했습니다.
얼매나 좋은지, 덩실덩실~~
(님 방에도 좀 있다 가볼게요.)






검둥개 2008-09-07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냐 음냐, 저두 막걸리에 빈대떡 먹구 싶어요. 저렇게 영화장면으로 보니 한강이며 남산이 은근슬쩍 멋지게 보이기도 하고. ^^

로드무비 2008-09-08 11:28   좋아요 0 | URL
음냐음냐, 전 아직 잠이 덜 깬 듯.^^
올 가을엔 한강에도 좀 나가보고 남산에도 오르고 싶습니다.
<여기보다 어딘가에>의 여주인공을 보면 검둥개님은 뭐라 하실지
그거이 갑자기 궁금합니다.^^

2008-09-10 2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11 1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11 16: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11 1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12 1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12 1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13 1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16 1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얀마녀 2008-09-13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린 액션배우다> 를 공짜로 볼 기회가 있었는데 상영관이 멀다는 이유로 그 기회를 날려먹었습니다. 좀 아쉽기도 했는데 사실 가까워도 안 봤을 지도 모를 일이었기에 아쉬워하지 않기로 했는데요. 로드무비님 평을 읽고나니 또 후회가 되기도 하네요.
한가위인데 어찌 보내실 지... 보나마나 쉴 틈도 없이 고생하시겠지만 아줌마들에게 명절이 짧다는 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잠시 생각해봅니다.

로드무비 2008-09-16 12:22   좋아요 0 | URL
하얀마녀 님, 잘은 모르지만 어쩐지 마녀님이 보셨으면
아주 좋아하셨을 것 같은 영화예요.
추석에는 서울 큰집에서 1박 2일 잘 보내고 왔습니다.
늦게 갔더니 전 부치는 일이 끝났더라고요.
앞으로도 그 시간에 맞춰 가려고요.ㅎㅎ
(아줌마도 각양각색이라...)

추석 잘 보내셨지요?^^

2008-09-17 1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몇 주 전 확인할 메일이 있어 피씨방에 들렀더니 이상한 제목의 메일이 한 통 눈에 띄었다.

'이제 난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알아서 하십시오!'

어, 낯이 익은 말인데 어디서 봤더라?
확인해 보니 예전에 내가 다니던 영등포의 작은 민중교회 목사님이 보내신 것으로
지난주 설교문의 제목을 파일로 동봉하며 제목으로 띄운 것이었다.
(낯이 익었던 건 한겨레신문에 연재중인 문동환 목사님의 그 무렵 글 중
가장 인상적인 독백이었기 때문.)
백골단을 다시 만들어 촛불집회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공공연하게 언론장악을 획책하고,
복지예산을 대거 삭감하고, 그 와중에 60일 넘게 단식중인 기륭전자 김소연 노조분회장이
급기야 소금과 효소마저 끊겠다고 선언하자 파렴치하고 딱한 이 현실을 개탄하는 내용이었다.

--하나님, 이제 난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알아서 하십시오.

뻔뻔스럽게 한 일이 뭐가 있다고, 나도 이 말을 입속으로 읊조려봤다.

여름 휴가 중에 이청준 선생님의 부음과 서울시교육감 선거결과를
라디오방송으로 전해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제일 먼저 손에 든 책이, 이청준 선생의 소설집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
'부처님은 어찌하시렵니까?'는 선생의 절친한 벗 김선두 화백의 가족과 관련된 이야기를
쓴 빼어난 단편이다.
스님과 불자들의 대규모 집회 소식이 연일 들려온다.
"부처님은 어찌하시렵니까?"
아침에 신문을 펼치면 나도 모르게 이 말이 입속을 맴돈다.

'최악의 악인'이 버젓이 활개치는 세상인데, 답답한 현실은 더 답답한 소설로
푸는 것도 괜찮다.
내친김에 오쿠다 히데오의 <최악>과 요시다 슈이치의 <악인>을 연달아 읽어댔다.
주인공들이 처한 곤경과 기막힌 현실이 목을 죄어왔고
희미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이것이 바로 일본소설이다!)

'최악의 악인'이라는 제목으로 근사한 리뷰를 쓰고 싶었는데
다행히 컴퓨터가 고장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를 다 읽고 부랴부랴 임권택 감독의 <천년학>을 찾아봤다.
장흥시외버스정류소. 영화의 첫 장면, 이청준 선생님이 주인공(조재현)의 뒤를 따라
무심하고 태연한 얼굴로 버스에서 내리셨다.
그 장면을 몇 번이나 되감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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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9-04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께는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저희로써는 굉장히 아쉬운데요-

최악의 악인, 그놈을 다시 잊어야 천년이 화평하다,
뭐 이런 제목의 리뷰 써주세요 ^_^ (여기까지 와서 말장난이라니~)

로드무비 2008-09-04 15:02   좋아요 0 | URL
웬디양 님, 아아 눈부십니다.
님의 재치, 젊음, 고소한 방귀냄새.^^

치니 2008-09-04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아쉬워요.
다시 써주세요.

로드무비 2008-09-04 15:01   좋아요 0 | URL
치니 님, '근사한 리뷰'라고 큰소리부터 쳐놓은 게 주효했네요.=3=3=3

라주미힌 2008-09-04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어쩌란 말이냐.. 흩어진 이 마음을...
아... 어쩌란 말이냐.. 이 아픈 가슴을...

세상을 긍정하기 참 힘들게 하네요..

로드무비 2008-09-04 14:59   좋아요 0 | URL
~~안녕하며 돌아선 뛰어가는 네 뒷모습
동그랗게 내버려진 나의 사랑이여

아 어쩌란 말이냐 흩어진 이 마음을...
저도 따라부릅니다. 라주미힌 님.^^

마노아 2008-09-04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이미 추천했다고 나오다니, 제가 추천 두번 하고 싶었나봐요. 로드무비님의 리뷰를 기다리는 마음일 거예요^^
라주미힌 덕에 노래도 따라부르고, 제목 생각 안 나서 검색하고 돌아와 추천 버튼 또 누른 마노아였습니다^^

로드무비 2008-09-06 12:52   좋아요 0 | URL
마노아 님, 저 컴퓨터 새로 샀어요. (오늘 설치!)
리뷰 기다리시라요.^^
(전 가사가 잘 생각이 안 나서 검색해서 찾아보고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불러봤습니다. 물론 오리지널 버전으로요.)

에로이카 2008-09-05 0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로드무비님 글 읽으니 무지 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에 연재되는 문동환의 '길을 찾아서'를 보시는군요. 저도 다른 기사는 안 읽어도 그 꼭지는 꼭 봐요. 고집스런 어른의 글을 읽는 것이 주는 독특한 즐거움이 있는 것 같아요. 나중에 로드무비님도 그 연세가 되시면 그런 재미있는 이바구를 쓸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로드무비 2008-09-06 12:50   좋아요 0 | URL
에로이카 님, 아이고 오랜만입니다.
전 요즘 신문이고 뉴스고 보기가 싫어요.
혈압이 올라서......
말씀처럼 고집스런 어른의 글이 참 좋습니다.^^
그런데, 전 그 연세까지 못 살 것 같아요.=3=3=3

샤론 2008-09-06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도 넘~~ '화' 듣고 싶어~~
오늘 가면 틀어줄거지?

로드무비 2008-09-06 12:46   좋아요 0 | URL
'화' 틀어줄게.
열 번이라도.^^

2008-09-30 1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장난우주선 2009-04-18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목숨을 버리긴 쉽지만, 조용히 뜻을 이루기는 어렵다고 하더군요.
 

BABAC
명랑+'제멋대로' 삼매경 타입

▷ 성격
인생을 즐겁게 살아간다는 점에서는 손가락 안에 꼽히는 타입입니다. 그런 삶이라면 절대 질리는 일도 없겠죠. 높은 이상이나 책임감을 가졌고 이해타산이 바르지만 합리주의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닙니다. 천진난만하고 안하무인이라 분별이 부족하지만 남을 생각하는 배려와 동정심이 많아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남에게 미움을 사지 않는다는 것이 타고난 복입니다. 이를테면 너무 계산된 세계는 좋아하지 않는 타입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는 엉뚱함을 보이는 것이 이 타입의 생활방식입니다. 매우 좋은 성격으로 약간의 실수로 낙담하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속이 깊고 적응력이 빠르기 때문에 다소의 충격은 금세 흡수해 버립니다.


▷ 대인관계 (상대방이 이 타입일 경우 어떻게 하연 좋을까?)

연인, 배우자 - 결혼상대의 성격으로는 80점에서 90점 정도 줄 수 있는 타입입니다. 자상하고 밝은 천성의 좋은 사람입니다.

거래처고객 - 숨김없이 진심으로 이야기를 나누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특히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 더욱 그렇게 대해야하는 상대입니다.

상사 - 이런 상사가하는 말이라면 대부분 진심으로 받아들여도 좋습니다. 절대로 모순은 말하지 않는 성격입니다. 상대방이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면 당신도 더욱 열심히 덤벼드십시오. 반드시 그 보람이 있을 것입니다.

동료, 부하직원 - 잘 키우면 상당한 수완가가 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입니다. 약간의 실수는 눈감아주고 더욱 일을 맡기도록.

 

모처럼 알라딘에 들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알라딘 서재에 뜬 글 중 이런 테스트가 있어 한번 참여해 봤습니다.
재밌네요
.(뭐라고 길게 덧붙이다 삭제.)



***낡은구두 님이 모과넷에서 가져온 '지피지기 테스트'.
http://byule.com/board/?mid=ego_st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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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shot 2008-08-30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반갑습니다. 잘 지내시죠?
늦더위가 지나면 글 좀 많이 올려주세요^^

로드무비 2008-08-30 23:30   좋아요 0 | URL
twoshot 님, 반갑습니다.
늦더위가 지날 때까지 못 기다립니다.^^

Mephistopheles 2008-08-30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바그다드 까페..처분하셨나요??

로드무비 2008-08-30 23:31   좋아요 0 | URL
메피스토 님, 사겠다고 나서는 작자가 없어서요.^^

혜덕화 2008-08-30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정말 오랫만입니다.
저도 뜸했지만 로드무비님의 통통 살아있는 글이 그리울 때가 많았답니다.
잘 지내시죠?

로드무비 2008-08-30 23:35   좋아요 0 | URL
혜덕화 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얼마나 고마운지요.
잘 지내셨죠?
혜덕화 님 방에 좀 있다 가보겠습니다.^^

2008-09-01 0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웽스북스 2008-08-30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꽤 괜찮아보이는 결과인데요?
(정말 오랫만에 뵙는 것 같은, 눈팅팬~)

로드무비 2008-08-30 23:38   좋아요 0 | URL
웬디양 님, 썩 괜찮죠?(으쓱!)
그런데, 아무래도 수상쩍어 좀 전 다시 해보니
'의리파에 인정이 넘치는 아저씨' 타입이 나오더라고요.=3=3=3
웬디양 님도 꼭 해보시라요.^^

마늘빵 2008-08-30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다 좋은것만 나오잖아욧!!!!

로드무비 2008-08-31 11:20   좋아요 0 | URL
좋기는 뭐가 다 좋다고 그래욧!!ㅎㅎ
아프락사스 님, 반갑습니다.
님 페이퍼에 링크해 놓으신 몇 분 것 몰래 훔쳐보고 왔습니다.

치니 2008-08-31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해봤는데 너무 안습으로 나와서 올리지도 않았어요. -_-;
로드무비님 거는 제가 생각하는 로드무비님이랑 꼭 닮았는걸요.
그나저나 요즘 너무 뜸하십니당.

로드무비 2008-08-31 11:17   좋아요 0 | URL
치니 님,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 '안습'결과 무지 궁금하네요.ㅎㅎ
제게만 살짝 보여주시면 안 될까요?=3=3=3
에또, '명랑 제멋대로 삼매경' 타입이 마음에 드는 눈치십니다요.

waits 2008-08-31 0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로드무비님. 반가워요! ^^
서재브리핑에 뜬 님의 이름을 보고 잠적했던 친구가 아무렇잖은 얼굴로 나타난 것처럼 뜻밖이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그렇답니다. 잘 지내시지요? ㅎㅎ
간신히 이제 가을인가 싶었는데, 다시 내리는 뙤약볕이 따가운 며칠이예요. 오늘은 정말이지 다 지나갔다고 금세 잊어버리는 간사한 마음에 일격을 당한 느낌이었답니다.
늦더위에 지치지 마시고, 가끔 이렇게 능청스럽게^^ 나타나주셔요. ㅎㅎ
(치니님도 안녕요...^^;;)

로드무비 2008-08-31 11:13   좋아요 0 | URL
나어릴때 님, 잘 지내셨지요?
님 방에도 못 가본 지 한참 됐습니다.
컴의 사정이 허락되면(조마조마~) 좀 있다 들러보겠습니다.
(궁금한 것도 있고...)
책 읽다보면 꼭 쓰고 싶은 리뷰가 더러 있었는데
그마저 못했네요.
아이 참, 님을 만나니 왜 이렇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죠?^^

조선인 2008-08-31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쿠하하하 역시 로드무비님, 부비부비.

로드무비 2008-08-31 10:59   좋아요 0 | URL
조선인 님, 반가워요. 부비부비.^^

2008-08-31 2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01 1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리스 2008-09-01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왕, 반가워요. 이 테스트 로드무비님도 가져가셨군요. ㅋ
저 낡은구두에서 오늘부로 닉 바꿨습니당!

로드무비 2008-09-04 12:22   좋아요 0 | URL
낡은구두님, 전 계속 이렇게 부를랍니다.=3
반갑습니다.
덕분에 재밌는 시간 가졌답니다.^^

검둥개 2008-09-10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은 일에 결코 낙담하지 않는 성격! 너무 멋져부린당게요!!! :-)

로드무비 2008-09-11 11:46   좋아요 0 | URL
검둥개 님, 항상 낙담 상태라 작은 일이고 큰일이고 간에
새삼 낙담할 일이 없다고나 할까요.=3=3=3
(그래도 멋져부립니까?ㅋㅋ)

Forgettable. 2008-10-24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재미있네요! 주소 가져가겠습니다^^
 

날이 더워져 거실 창을 아예 열어놓고 지낸다.
다른 아파트로 치면 2층 같은 높이의 1층이라 방충망만 제대로 닫는다면
창을 열어놓아도 무방하다.
주말에는 치킨집이며 중국집이며 음식들을 많이 시켜먹는지
사람들이 쉴새없이 벨을 누르고
인터폰을 향해 "음식 배달 왔습니다!" 고함 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런데 지난주 토요일엔 "엇!" 혹은 "꺅!" 하는 괴성과 함께
이상한 소리가 수시로 귀에 잡혔다.
"이, 이거 똥 아니야?  개똥인가?"
"개똥 맞는 것 같네. 그런데 주인이 누구야, 왜 안 치웠지?"
내려다보니 색깔이며 모양이며 정말 그 물건으로 추정되는 것이
아파트 입구 바닥에 널부러져 있다.
어떤 사람은 개주인에 대해 불평을 터뜨리며 관리실에 연락해야겠다고
언성을 높였다.
아빠와 함께 그 앞을 지나던 어린 소녀는 비명을 지르며 멀찌감치 달아났다.

나는 소동이 일어날 때마다 창쪽으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점점 마음이 불편해졌다.
'개똥, 나도 싫은데......'
그것에 자꾸 신경이 가 텔레비전을 틀어놓아도 화면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날이 조금씩 어두워 오고 있었다.
개똥은 얼핏 보면 오래 된 바나나 껍질처럼 보였다.

문득, 모르고 지나던 사람이 그것을 밟고 미끄러져
뇌진탕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러고 보니 우리집 부녀도 아직 외출중이다.
나는 벌떡 일어나 검은 비닐봉지와 신문을 주섬주섬 챙겼다.

망설인 시간이 꽤 긴 것에 비해 나의 행동은 재빨랐다.
신문을 크게 두세 겹 접어 구기는 순간 숨을 멈추고 재빨리 손으로 그것을 끌어모았다.
흔적이 최대한 남지 않게.
그런데 미끄덩~ 감촉이 이상하다.
약간의 물기만 남고 바닥에 아무 흔적이 없다.
비닐봉지 속에 집어넣기 전에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가지였다.
보라색 껍질을 벗겨낸 시든 생가지 두어 토막.
굵기며 색상이며 정말 똑같았다.
가까이에서 살펴본 사람들도 감쪽같이 속았을 정도로.

비로소 나는 콧구멍을 열고, 만세를 부르며 집으로 들어왔다.
검은 비닐봉지를 덜렁이며......








'콧구멍을 벌렁이며 만세삼창' --'개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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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2 1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6-02 1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08-06-02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세 삼창에는 참 잘했어요 도장 3번 찍어드려야 겠습니다..^^

로드무비 2008-06-02 12:33   좋아요 0 | URL
메피스토 님, 여기요, 팔뚝.( '')
운동회날 달리기 잘하여 팔뚝에 도장받던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웠던지.=3=3=3

마노아 2008-06-02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펙트에요~ 로드무비님 승! ^^

로드무비 2008-06-02 14:24   좋아요 0 | URL
마노아 님, 우쭐우쭐...ㅎㅎ 퍼펙트승이라니!
영문도 모르고.^^

울보 2008-06-02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로드무비님 다우시다,,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멋져요,,

로드무비 2008-06-02 13:50   좋아요 0 | URL
울보 님, 그거이 아니고, 저를 배려한 거예요.
그나저나 류가 많이 컸네요.^^

하얀마녀 2008-06-02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꽤나 큰 개가 생산한 것처럼 보였겠네요? 흐흐흐.

로드무비 2008-06-03 12:15   좋아요 0 | URL
하얀마녀 님, 멋진 이미테이션이었습니다.^^

2008-08-04 0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