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유령일 뿐 - Nothing But Ghost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지난해 말, 드디어 아파트 복도와 계단에 함부로 버려진 담배꽁초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보는 족족 그냥 줍기로 한 것이다.
주워서 내 집 쓰레기통, 외출중이라면 집 밖에서 처음 만나는 쓰레기통에 버리기로...
깔끔한 것과는 거리가 먼 인간에게 어느 날 난데없이 담배꽁초가
거의 강박 수준으로 들러붙었다.
특히 집 앞 복도, 계단의 것은 그냥 보아넘기지 못했다.

멋진 달필(!)로 몇 마디 써서 여기도 붙이고 저기도 붙이고 별 짓을 다 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꽁초들을 주워 계단 창틀에 쭈루룩 전시해 놓기도 했다. 보고 찔끔!하라고.
그런데 그런 나의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복도에는 늘 매한 연기와 함께
질겅질겅 씹다버린 듯한 담배꽁초가 몇 개씩이나 나뒹굴었다. 

-- 담배꽁초에 스트레스를 받는 건 좀 거시기하구나!

어느 날 슬며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찮은 것에 계속 신경을 쓰기엔 내 시간이 아깝잖은가!(별로 하는 일은 없다만.)

이제는 담배꽁초가 몇 개 뒹굴든 암시랑토 않다.
허리를 구부린 김에 뚱뚱한 허리를 의식하고 스트레칭을 하기도 한다.
짧은 팔을 최대한 길게 뻗고 궁둥이를 높이 들어올리는 동작이 유쾌하기까지 하다.






호퍼의 그림 같은 영화 스틸컷



<단지 유령일 뿐 Nothing But Ghosts>은 제목이 주는 모호한 울림과 함께,
'미국 서부, 아이슬란드, 자메이카, 이탈리아 베니스, 독일 베를린을
저마다의 이유로 각각 찾은 다섯(쌍 혹은 혼자) 여행객'이라는 문구에 끌려
보러 갔다.
심란한 얼굴로 찾은 각각의 여행지는 쌍수를 들어 그들을 환영한다든가
멋진 로맨스를 선사하지도 않는다.
언제나 그렇듯 그냥 무심한 풍경으로 흐리게 펼쳐져 있다.
이들 중 나는 아이슬란드와 자메이카가 특히 좋았다.
픙광도, 에피소드도 썩 마음에 와닿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잡지를 읽는데 재미있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그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제대로 된 대통령을 만들어보고 싶었다"면서
내가 정치를 안한 한풀이를 하고 싶었고, 그래서 이 대통령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가 '이명박'을 선택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여기에는 여러 설이 있지만 우연한 기회의 여행이 계기가 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앙코르와트를 방문한 그는 화려한 문명을 자랑했던 캄보디아가 폐허가 된 모습을 보고
'이명박 같은 사람이 국가지도자가 되어야 국운이 편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주간경향>2009년 4월 7일자, '방통대군 최시중' 특집기사)


-- 앙코르와트 앞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유령도 다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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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2009-04-09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오랜만이에요.
도대체 어떤 인간이 저런 생각을 하는지 하고 봤더니 역시 최시중이군요.
조용한 사무실에서 소리내어 크게 웃어봅니다(실은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기 힘들었어요).

로드무비 2009-04-09 14:43   좋아요 0 | URL
로자님, 반갑습니다.
버스 안에서 저도 혼자 킥킥댔답니다.^^

2009-04-09 15: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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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9 15: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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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9 22: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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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0 11: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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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4-09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반갑습니다.
터벅터벅 걷듯이 담담한 영화가 좋은데 보고 싶네요.

로드무비 2009-04-09 15:41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FTA반대휘모리 님.
담담하다 못해 좀 지루한 듯한데(살짝 졸기도 했어요)
끝나고 나서 왠지 자리를 뜨기 싫은 영화.^^

치니 2009-04-09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은 어쩜 이렇게 영화도 착착 잘 고르시는지.
담배꽁초를 줍는 이야기에서 성찰의 여유가 느껴집니다.

로드무비 2009-04-09 17:29   좋아요 0 | URL
치니 님, 제가 좀 지혜롭죠?=3=3=3
귀찮아서 관심을 꺼버리는 건 별로 바람직하진 않습니다만,
우짜겠습니까.


2009-04-09 18: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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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9 22: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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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9 22: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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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0 11: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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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이카 2009-04-10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예전부터 생각했던 바이지만, 님께서 바로 중생 중의 부처이십니다.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똑똑똑...똑........똑..........똑........

근데 담배 피고 거기다 버리는 그 나쁜 놈은 좀 버릇을 고쳐줬으면 좋겠다는 게 저 같은 중생의 생각일 겁니다.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똑똑똑...똑........똑..........똑........

로드무비 2009-04-10 14:46   좋아요 0 | URL
에로이카 님, 쪽지를 몇 번 써붙였더니 더하던데요?
더구나 한 놈이 아니라 몇 놈인 것 같습니다.
숨어 있다가 현장을 덮쳐봤자 제가 또 한마디도 제대로 못할 위인이라...

그런데 최근에 방영한 '입산 그후 10년'이라는 MBC스페셜 다큐 보셨어요?
전 거기 걸핏하면 우는 50대의 스님이 특히 좋던디.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똑똑똑...똑......똑......똑.....




릴케 현상 2009-04-14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얼마 전에 수계받았어요. 3대 종교는 다 섭렵했으니 이제 인디 종교에도 귀의해얄 듯^^

로드무비 2009-04-14 13:25   좋아요 0 | URL
계를 받으면 조심해야 할 것도 많을 것인디...
산책님은 신도보다는 교주에 잘 어울립니다.^^


릴케 현상 2009-04-14 15:28   좋아요 0 | URL
술담배 안하고 살생 금하고 욕 안하고... 별로 조심할 것 없더라구요=3=3=3

로드무비 2009-04-14 17:27   좋아요 0 | URL
저야말로 하늘을 우러러.=3=3=3

uly.. 2009-04-14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미치겠구만...앙코르와트에서 저런 미친 생각을?
저 미친 생각을 보고 미친!이라 같은 단어로 싸잡히는 것조차 기분 나쁘이...
친구야..같이 여행 떠나는 것마냥 볼 수 있었던 영환데 놓쳐서....흐흐흑~
담 번에 제주라도 꼭! 같이 가자....

로드무비 2009-04-14 13:01   좋아요 0 | URL
사실을 말하면, 앙코르와트가 너무 좋아서 몇 번이나 갔다는
자기 말도 거시기했어.
난 한 번도 못 갔거등.=3=3=3
어느 오후에 자기랑 외돌개 바로 앞 간이매점에서 좁쌀주에 해물파전이나
실컷 먹었으면 좋겠다.^^





율리 2009-04-14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성격이 좀 많이 편협하잖냐....ㅠ.ㅠ;;
그랬다, 어떤 면에선...
나, 그렇게 좋았다라는...그 실체라는 게
그냥 그렇게 맨발로 허물어진 돌무더기에 쭈그리고 앉아 놀다가, 졸다가
배고프면 딱 窮氣 해결할만큼만 동냥질(ㅎㅎㅎ)해서 먹고 살고프다는 거..그렇게 살 수
있겠다라는 마음과 느낌이 드는 곳이 앙코르와트였다는...


2009-04-14 17: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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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5 10: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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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2 15: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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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2 21: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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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3 11: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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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3 22: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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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3 14: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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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뽀스 2009-04-29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여름의 조각들 보러갔다가 이 영화 포스터 보고 꼭 보고싶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로드무비님 별점을 보니 놓치면 안되겠다! 생각이 드네요. ^^

로드무비 2009-05-03 14:08   좋아요 0 | URL
제 별점은 너무 믿지 마시고요.
전 책이든 영화든 '내가 무엇이관대...'하는 마음으로
별점을 넉넉하게 매깁니다.ㅎㅎ
DJ뽀스 님, <여름의 조각들>은 좋았습니까?
전 못 봤어요.^^
 
도쿄 소나타 - Tokyo Sonata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내가 사람이라는 게 싫을 때가 있다
나는 양복점에도 들어가보고 영화관에도 들어가본다

이발관 냄새는 나로 하여금 쉰소리로 흐느껴 울게 한다.
내가 오직 바라는 건 돌이나 羊毛처럼 가만히 놓여있는 것.

그렇게도 많은 일을 겪은 뒤에, 그다지도 머나먼 거리를 지나온 뒤에,
어떤 왕국인지도 모르고 어떤 땅인지도 모르는 채
가련한 희망을 갖고 돌아다니고

내 식구인 거미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파괴들 속에서
나는 내 잃어버린 자아를 사랑하고, 내 흠 있는 성격,
내 능변의 상처, 그리고 영원한 내 상실을 사랑한다.

내가 땅에 붙인 이름, 내 꿈들의 가치,
내 쓸쓸한 눈으로 분배한 끝없는 풍부함,
이 세계가 이어가는 나날들

물고기 뼈처럼 버려진 식당; 나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강이 돌들을 끌고 지나가는 황량한 방
끝의 박살난 컵, 그리고 커튼을. 그건
비(雨)의 토대 위에 세워진 집이고,
필요한 수만큼 창이 있는 이층짜리 집이며
모든 점에서 충실한 덩굴포도가 있는 집이다.

그건 단지 황폐한 식당,
나는 슬프고 또 나는 여행을 하고,
그리고 나는 땅을 알고, 그리고 나는 슬프기 때문에

나더러 어디 있었냐고 묻는다면
"어쩌다보니 그렇게 돼서......"라고 말할밖에 없다. 

 




'산보' '소나타와 파괴들'  '가족 안의 우울' 등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읽는데
얼마 전 본 영화 <도쿄 소나타>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어쩌자고, 네다섯 편의 시를 마음대로 엮어설랑 영화 리뷰라고 올려본다.
(정현종 옮김, 민음사 刊, <스무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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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4 15: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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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4 17: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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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4 22: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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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5 00: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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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9-04-05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뜨끔하네요.
시도 영화도 다 찾아서 보고 싶어집니다.

로드무비 2009-04-05 15:48   좋아요 0 | URL
치니 님, 시 제법 그럴듯하죠?ㅎㅎ
자화자찬.

이 영화 저는 좋았어요.

2009-04-05 21: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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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6 12: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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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6 13: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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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8 18: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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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전 어느 가게에서 보낸 피규어 세트 재입고 알림 메일을 보고
미친듯이 달려가 혁명가 다섯 분을 모셨다.
과학자, 작가, 혁명가, 화가 이렇게 네 파트로 나뉘어 각 분야의 대가 5인으로 엄선된 피규어.
구색을 맞추는 건지 여성들도 한 명씩(퀴리 부인, 버지니아 울프,  프리다 칼로)
포함되었는데 아쉽게도 혁명가 분야엔 없다.

아인슈타인과 마크 트웨인은 놀랍도록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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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4-02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정말 닮았네요 ㅎㅎ

로드무비 2009-04-02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FTA반대휘모리 님, 혁명가들이 제일 인기 있나 봐요.
지난번에 보니 혁명가들만 품절이더라고요.
며칠 후 가보니 전부 품절.

앤디 워홀이 제일 웃겨요.^^

드팀전 2009-04-02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사고 싶어요. 책장에 세워놓으면 재미있겠네..어디서 팔아요.

로드무비 2009-04-02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팀전 님, 펀숍(funshop)입니다.^^

드팀전 2009-04-02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고맙습니다. 누굴까요의 안경잡이는 말콤X 같군요...레닌도 귀엽구..엉덩이만 보이는 피카소도...

로드무비 2009-04-02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엽기로는 간디가 제일.^^

무해한모리군 2009-04-02 13:51   좋아요 0 | URL
간디 정말 귀엽네요.. 찡그린 표정하며 ㅎㅎㅎ

로드무비 2009-04-02 14:26   좋아요 0 | URL
앗, 댓글 이렇게 다는 걸 까먹고 있었네요.ㅎㅎ

2009-04-02 13: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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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2 14: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09-04-02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가....거의 산적으로 묘사되다니...저 잘생긴 미남을..

로드무비 2009-04-03 08:44   좋아요 0 | URL
강렬한 눈빛도 그렇고 제 눈엔 엄청난 미남으로 보이는디요.^^

새초롬너구리 2009-04-02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지니아 울프가 아니라 오스카 와일드인 줄 알았네요.
마크 트웨인과 피카소는 귀여운 맛보다 왜 이리 화나있는지, 안타깝다.
테슬러가 아니라 프로이드가 들어갔어야 하는것은 아닌가...싶어요 ^^ (이렇게 다 아는건, 펀샵에 가봤기 때문이죵~)

로드무비 2009-04-03 08:42   좋아요 0 | URL
새초롬너구리 님,
인기투표를 하면 누가 제일 많은 표를 얻을까요?
그러고 보니 환히 웃고 있는 분은 한 분도 없네요.
뚱한 피카소도 매력적이긴 혀요.^^

2009-04-02 1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03 08: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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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9-04-02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대단하군요! 이건 아 정말 갖고 싶어요. 철학자 셋트는 없나요? ㅋㅋ

로드무비 2009-04-03 08:37   좋아요 0 | URL
철학자 세트도 괜찮겠습니다.^^

마늘빵 2009-04-02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다 살 수는 없고 골라서 사야겠는데 셋트로만 파네요.

로드무비 2009-04-03 08:37   좋아요 0 | URL
세기의 미녀 세트도 괜찮을 것 같은디요.
그런 게 있다면.^^

바람돌이 2009-04-02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거 맞추는 재미가 정말 쏠쏠하네요. 근데 이런 피규어 보면 아 갖고싶다 생각은 들지만 제가 워낙에 이런거 보관에 젬병이라.. 나중에 결국은 뒹굴다가 어딘가로 모두 가출해버리고 없어질게 너무 뻔해요. ㅠ.ㅠ

로드무비 2009-04-03 16:54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 님, 투명 피규어 보관진열 상자가 있더라니깐요.
그런 것만 눈에 띕니다.^^
 
드링킹
캐럴라인 냅 지음, 고정아 옮김 / 나무처럼(알펍)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눈비가 뿌리는데 저녁은 하기 싫고 남편은 늦게 온다고 하고
아이들과 간단히 먹으려고 동네 국수집으로 갔다.
한쪽 구석에서 성경을 베껴 쓰고 있던 주인 여자가 반갑게 우리를 맞았다.
잔치국수와 만두를 시키고 나서 미련이 남아 가게 안쪽의 냉장고 속을 들여다 봤다.
맨 아래칸에 맥주병들이 보이고 그 위칸에 초록색 소주병들이 일렬로 서 있다.
날씨도 그렇고 술생각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닌데
좀전까지 여자가 성경을 사경하고 있어서 그랬던지
술을 시키기가 어색했다.

지난해 <알코올과 예술가>라는 책을 읽고 윌리엄 스타이런(<소피의 선택> 작가)에게
관심이 생겨 그의 책들을 찾아 읽었다.
(우울증에 관한 보고서 <보이는 어둠>과 오래 전 절판된  <어둠 속에 눕다>.)
아니나 다를까, 캐롤라인 냅도 이 책 속에서 그의 이름을 언급하고 있다.

-윌리엄 스타이런도 술을 마셨지만, 글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각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술은 그의 정신이 "술 깬 상태에서는 다다를 수 없는 비전을 품게" 해주는
수단이었다.(30쪽)

그의 비전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세상을 살다보면 분명 맨정신으로는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있고, 술을 마시는 게 부끄러워 술을 마시는 이상한 경지도 있는 법이다.

1959년생인 캐롤라인 냅은 저명한 정신분석가인 아버지와 화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그 자신 브라운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하고 여러 잡지의 편집자 겸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드링킹>은 자신의 알코올 중독과 탈출 이력을 소상히 밝힌 책이다.
지성이 철철 넘치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아름답고 총명한 여성이
왜 하루라도 술을 마시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는지 궁금해서 이 책을 집어들었다.

- 자신의 거죽을 쓰고 살아가는 것이 너무도 힘겨울 때 우리는 혼자서 술을 마신다.(132쪽)

- 이들은 모두 30대였고 좋은 직장에 나무랄 데 없는 가정이 있었다.
리처드는 도시설계사였고, 트로이는 영어교수였으며, 지니는 변호사였다.
만약 오다가다 그들을 보았다면 , 설령 그들이 술 마시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해도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바닥을 치는 일은 개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바깥에서는 그것을 알 수 없다.(255쪽)

캐롤라인의 친구 지니는 한밤중 미친듯이 차를 몰다가 차가 길을 벗어나면서
앞유리에 머리를 찧다가 운전대를 놓으면서 항복했다고 한다.
술에, 인생에 백기를!

너무 깊이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 건강을 해칠 정도만 아니라면 술이 참 좋은데,
나 또한 그 적당한 선을 지금도 알 수 없어라.

'오늘 꼭 하루.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할 필요는 없다.
그냥 오늘 하루, 오늘 하루만 참아라.'(298쪽)

AA(단주 단체)의 지침이란다.
귀에 쏙 들어온다.
그러고 보니 요즘 읽는 대부분의 책들은 '오늘 하루'를 말하고 있다.
약속이나 한 듯, 지금 이 순간을......




In vino veritas(라틴어 표현: 와인 안에 진실이 있도다)
책 속에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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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2-19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닥을 치는 일은 개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읽어보고 싶네요. 안녕히 주무세요.

로드무비 2009-02-19 23:26   좋아요 0 | URL
휘모리 님, 리뷰를 좀 고쳐 썼어요.
이게 쪼매 낫지요?ㅎㅎ
안녕히 주무세요.^^

무해한모리군 2009-02-20 08:33   좋아요 0 | URL
무덤으로향하다라는 소설의 매튜스커터라는 탐정 주인공이 알콜중독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거든요. 거기서도 그런 말을 해요. 하루가 전부라고..
(이 소설 작가도 알콜중독에서 탈출했데요)

저도 혼자서 가끔 술을 먹는터라 이런걸 보면 막 찔린다는 ㅎㅎ

프레이야 2009-02-19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하루를 또 못 참고 마셔버렸네요.
132쪽의 글귀가 흐흑...
여긴 오늘 눈 대신 비가 많이 내렸어요.^^

로드무비 2009-02-19 23:34   좋아요 0 | URL
혜경 님, 전 지금부터 마시려고요.
퇴근하는 책장수님께 한 병 사오라고 부탁.
두 병은 사와야 할 터인디.^^

2009-02-20 0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20 0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니 2009-02-20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의 <남자보다 개가 더 좋아>를 읽고 있어요. 알콜중독에서 벗어나 개를 키우게 된 사연으로 스토리가 시작 되는 책이니, 순서 상 <드링킹> 이후 책인가봐요.
<남자보다...>란 제목은 분명 한국 출판사의 만행적 마케팅이고 내용은 개 키우는 사람 입장에선 완전 대공감, 일반인들에게는 관계에 대한 성찰을 안겨주는 좋은 책이라, 이 작가의 다른 책도 읽고 싶었었는데 잘 됐네요. <드링킹>도 보관함에 ~

로드무비 2009-02-20 12:02   좋아요 0 | URL
<남자보다 개가~>...하하, 제목하고는.
술도 술이지만 이 작가의 통찰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관계에 대한 성찰도 당연 포함되고요.
자신의 알코홀릭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냉정한 시선도 좋았습니다.^^

2009-02-24 0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27 1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26 1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27 1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28 0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04 15: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31 18: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02 1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제 저녁, 전화벨이 울려 전화를 받고보니 책읽기를 좋아하신다는 택배 아저씨다.

"저 좀 있다 도착합니다."

"아, 예!"

- 그런데 그냥 오면 되지 왜 전화를 하셨으까나?

전화까지 했는데 물건만 받고 달랑 빈손으로 보낼 수도 없고,
급하게 책장을 훑었더니 책 두 권이 눈에 띈다.

이현주 목사의 <지금도 쓸쓸하냐>와 <1분 후의 삶>.

3, 4분 후 우리는 현관 앞에서 택배 상자와 책 두 권을  정중히 교환했다.

작년 말 내게서 처음 책들을 받아간 이후 그 속에 딱히 읽을 책이 없었는지
다음에 왔을 때 '도(道)에 관심 있다고 의사를 표명해 왔다.
그가 생각하는 도가 뭔진 모르겠지만, '삶'을 묻는 책들이겠지.

참, 장일순 선생에 대한 글 모음집 <좁쌀 한 알>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는데
외면했다.
밑줄을 너무 많이 쳤다는 훌륭한 구실을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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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2-19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 참 곤란하겠는데요..
장일순 선생 책이라면.. 흠.. 흠.. 내어놓기 쉽지 않겠는데요 ㅎ

로드무비 2009-02-19 17:03   좋아요 0 | URL
또 사면 되지요.=3=3=3

무해한모리군 2009-02-19 17:34   좋아요 0 | URL
저는 회사 다녀서 경비 아저씨가 받아주시거든요..
저희 경비아저씨도 저한테 그래요..
'나 책좋아한다. 인물 역사 이런거..'
그런데 한번도 가져다 드릴 생각은 못했네요..

로드무비 2009-02-19 19:15   좋아요 0 | URL
휘모리 님, 저 같은 경우 그분이 책 좀 달라고 하니 드리는 거죠.
경비 아저씨는 꼭 필요하면 사서 보시지 않을까요?^^

플레져 2009-02-19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 분이라도 아낄려고 버둥대가다 오히려 게을러지고 있는 요즘이랍니다.
날이 흐리네요. 로드무비님 계신 곳도 그런가요? ^^

로드무비 2009-02-19 17:01   좋아요 0 | URL
플레져 님, 오후부터 비 온다더니 비가 안 와 아쉽네요.

2009-02-19 14: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19 16: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19 14: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19 16: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09-02-19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저 메피스토입니다. 왠지 이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로드무비 2009-02-19 17:06   좋아요 0 | URL
메피스토 님, 좀 있다 도착하신다고라?ㅎㅎ

瑚璉 2009-02-19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책을 몇 번 다른 사람들에게 주었다가 마음이 아팠던 이후로 야박하게 책은 안 주는 1人이 왔습니다.

로드무비 2009-02-19 16:29   좋아요 0 | URL
전 마음이 아플 만한 책은 아예 안 내어줍니다.
그런 경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3=3=3

2009-02-24 0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27 1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