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첫날 영화 <밀양>을 보고 주일에 집 근처의 교회를 찾았다.
남편은 조기축구 팀에 빼앗기고  딸아이는 바둑대회에, 그래서 혼자였다.
시장 볼 때 지나가면서 찜해둔 교회가 있었는데 걸어도 걸어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거다. 그 날따라 햇빛은 왜 그렇게 따가웠던지.

전에 살던 동네에서 온 가족이 마지막으로 갔던 교회가
구리에 소재한 모 교회와 유명한 감자탕교회.
구리의 그 교회 목회자는 세간에 '똥퍼' 목사님으로 알려졌는데
오래 전 '체험, 삶의 현장'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달동네의 가파른 골목을 오르내리며
양 어깨에 '바께스' 가득  인분을 퍼나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전에 '활빈당'이라는 이름의 천막교회 활약상을 책으로 읽고 관심을 가졌었고.

그런데 똥퍼 목사님의 설교 내용이 수상했다.
재벌 경영인들의 조찬모임에 가서 기도하고 온 걸 은근히 자랑하지 않나
고관대작들과의 사적인 어울림을 설교 중간중간에 끼워넣는 것이다.
그는 '걸핏하면 데모하고 파업하는 노동자들'에 대해 그렇게 비판적일 수 없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람이 저렇게 달라질 수가 있나!
빈민의 친구를 자처하던 사람이 대놓고 재벌과 기업주 편이 되다니!
우리 부부는 투덜투덜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 현재 그는 '뉴라이트' 운동 단체의 핵심인물로 알려져 있다.)

감자탕교회는 제일 인상적이었던 게 예배 전 싱글벙글 기쁜 얼굴로 주차를 안내하는
남자 성도들의 얼굴이었다.
그렇게 신나고 행복해 보일 수 없었다.
감자탕식당이 1층에 있어 그렇게 불리는 교회는 좁고 허름했고
우리 가족은 5분쯤 늦게 도착하면 건물 맨 꼭대기층의
태권도장으로 직행하기 일쑤였다.
주일마다 그 태권도장은 임시 예배실로 사용되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텔레비전 앞에서 쭈그려 앉아 보는 예배도 좋았다.
딸아이는 그곳의 아이들과 함께 과자를 먹으며
내 수첩에 개발괴발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교인수를 감당 못해
부지를 확보하고 가까운 곳에 교회를 새로 짓기로 한 것이다.

예배를 분위기로 보는가 하겠지만 나 같은 인간은 좀 그런 면이 있다.
이야기를 하려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생략하고.

아무튼 교인들이 그렇게 자발적으로 봉사하고 선교에 앞장서는 교회는 처음 보았는데
목사님의 설교 또한  잔잔한 듯하면서 파워풀했다.
설교 멋지고 교인들 은혜 충만하고, 그런데  무엇이 문제인지......
우리 부부는 옮긴 새 성전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지내다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 오게 되었다.

영화 <밀양>에서 전도연의 연기는 거의 접신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나는 그보다 송강호가 짝사랑하는 여자 전도연을 따라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고
역전 광장에서 교인들과 가스펠송을 부르며 동작까지 그대로 따라하는 모습을 보며
우습고 흐뭇해 시선을 떼지 못했다.
주일 아침 완장을 차고 팔을 휘저으며 교회 앞에서 주차를 인도하는
그 능청스런 모습은 또 어떻고.

"자매님, 자매님같이 불행한 사람은......", 사람의 면전에 대고 이렇게 전도하던
그 약사 같은 무신경한 이들이 교회에는 너무 많다.
가족 이기주의에 필적하는 교회 이기주의.
자신의 신앙에  도취된 건 좋은데 타인에게 서슴없이 막말을 던지는 사람들.

스스로를 나이롱 신자라고 표현하는 사람들 중에서 도리어 미더운 면을
발견할 때도 있다.
역전 광장에서 율동과 함께 찬송을 부르며 전도하다
반건달인 친구들이 찾아오자 팀에서 빠져나와
포장마차 뒤에 숨어 담배를 피며 황홀해 하던 송강호의 그 표정.

<밀양>을 보고 난 주, 어언 몇 달 만에 혼자 교회를 찾은 건
영화 속의 그 얼굴을 다시 만나고 싶어서였을까.

사실은 그날, 키우던 토리가 오늘내일 하는 등 마음속이 복잡해
긴 교회 의자에 앉아 실컷 울고 싶었는데
눈물이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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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da 2007-06-21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 님과 교회는 정말이지, 정말이지, 안 어울려요...ㄷㄷㄷ
서민적인 한국 남자 연기로는 송강호만큼 제격인 배우가 없는 거 같아요~

로드무비 2007-06-21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양배추 님, 그거 엄청 심한 욕인데.=3=3=3
(오랜만에 나타나서 한다는 소리하곤,ㅋㅋ)
전 나름대로 신실합니다.( '')
반가워유. 폴짝=3

로드무비 2007-06-21 17:24   좋아요 0 | URL
송강호 다시 봤습니다.
두 '여우'가 만나 정말 기막힌 연기 펼쳤더군요.
(내 글에 내가 쭈르륵 댓글 달기.=3=3)

nada 2007-06-21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어찌 보면 욕일 수도, 어찌 보면 칭찬일지도 몰라요~ 아무렴 저만큼 안 어울리시기야 할려구요..

로드무비 2007-06-21 18:16   좋아요 0 | URL
전 욕도 칭찬으로 각색해서 듣고 칭찬도 칭찬으로 듣는 사람이니
상관없어요.( '')
헤어졌다 만나니 반갑긴 하지만, 더 애틋한 것 같진 않군요.
(꽃양배추 님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는 듯.=3=3=3)

플레져 2007-06-21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송강호 연기가 전도연 여우주연상에 묻히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알만한 분들은 다 아시겠죠 모...^^
교회에 잠깐 다닌 적 있는데 저랑은 안맞더라구요.

로드무비 2007-06-21 18:13   좋아요 0 | URL
전 어떤 교회와 정말 너무 잘 맞았던 기억이 있어서 그렇게는 말 못하겠어요.
내가 필요한 건 햇볕이나 비를 피할 지붕이고 헌금을 넣을 헌금통이고
뭐 그런 정도로 교회를 마음속에서 축소시킨 적도 있어요.
어쩌다 정말 이상한 설교를 듣고 앉아 있을 때.......

그나저나 플레져 님, 강호 씨(ㅋㅋ) 정말 근사하죠?^^

비로그인 2007-06-21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똥퍼 목사님은 존경하는 목사님이셨지만...
저도 요즘의 행보에 관해서는 그냥 지켜보기만 할뿐이지요...

로드무비 2007-06-22 15:38   좋아요 0 | URL
설교 내용은 거시기한데 그 구수한 말투는 여전하더군요.
체셔고양이 님, 그의 분주한 발걸음이 다시 제자리를 찾기를 빌어볼랍니다.

2007-06-21 19: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6-23 06: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니 2007-06-22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회 뿐 아니라 어느 장소에든지, 믿음이 가는 사람도 있고 물을 흐리는 사람이 있겠지만...다른 것도 아니고 신의 이름을 빌려 물을 흐리는 사람을 대면하는게 너무 싫어서 교회는 절대 가고 싶지가 않은게, 아직은 제 솔직한 심정이야요.

로드무비 2007-06-22 15:32   좋아요 0 | URL
치니 님, 자신이 선택한 종교든 어떤 신념 체계든 혼자서 조용히 감사하고 즐겼으면 좋겠어요. 이 좋은 걸 왜 모르냐고 자꾸 들이대는 것도 성가시고. 더구나 다른 사람의 그것과 다를 때 당신 게 틀렸다고 우기는 건 더 싫고요. 주변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하는 분들이 더러 있었나 봅니다.
 





지아장커 감독처럼 일관성을 가지고 우직하게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또 있을까.
그는 뿌리를 뽑힌, 혹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떠도는 사람들의 꾀죄죄한 모습에서
도무지 시선을 뗄 줄 모른다.
1998년에 본 <소무>에서 지난해의 <세계>, 그리고 <스틸 라이프>까지
세 편의 영화를 극장에서 만난본 견해로는 그렇다.

인디영화나 조촐한 처녀작으로 독특한 세계관이나 개성을 인정 받고 나면
기다렸다는 듯 흥행성을 겨냥하거나 혹은 블록버스터 영화도 만들 수 있다고
깝치는, 가벼움이 판을 치는 세상에 참으로 소중한 덕목이 아닐 수 없다.

16년 전 딸아이를 데리고 가출한 아내를 찾으러 산샤에 막 도착한 산밍.
배에서 내리기 전 마술쇼를 보라며 납치하다시피 그를 창고로 데리고 간 일당이
지폐를 가지고 오죽잖은 묘기를 보여준 뒤 요금을 내라고 그를 족치지만
그의 가방을 털어도 나오는 게 없다.
그는 두 눈만 꿈벅댈 뿐, 무서워 하지도 미안해 하지도 않는다.
배에서 내리려는 사람을 쇼를 보라고 강제로 데려가 앉힌 것도 그들이고,
묘기를 봤으니 돈을 내야 할 게 아니냐고 윽박지르는 것도 그들이다.

그에게 삶은 늘 이런 식이었다.
육체노동으로 뼈빠지게  모은 돈으로 수수한 여자와 결혼식을 치렀더니
딸을 낳고는 그만 내빼버렸다.
16년 동안 광부일을 하며 홀아비로 지내다가 딸아이 얼굴이나 한 번 보자 하여
집들과 건물이 수몰되고 철거공사가 한창중인 고향을 찾은 것.
양쯔강의 한 유역인 산샤는 중국 지폐에도 찍힐 정도로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하지만 지금은 곳곳에 부서진 건물들로 우중충하다.

또 한 명의 주인공 센홍은 2년째 연락이 끊긴 남편을 만나러 산샤에 왔다.
남편은 이 수몰댐 지역에서 한창 잘 나가는 공사 관리자.
<소무>의 소매치기 주인공 왕홍웨이가 제법 번듯한 사무원의 모습으로
딴 여자와 바람난 친구녀석의 아내(센홍)를 하룻밤 재워주며
부부를 만나게 하는 역할을 맡았다.
센홍은 속을 알 수 없는 덤덤한 얼굴로 물만 들이킨다.
소지하고 있는 조그만 생수병은 가는 곳마다 물 먼저 채우고 보는 주인 덕분에
바닥을 보일 때가 없다.
미지근한 물로 근근이 몇 모금 간신히 목을 축이는 그녀.

이 영화는 담배, 술, 차, 사탕 등의 자막과 함께 화면이 자연스럽게 바뀐다.
소박하기 그지없는 소제목처럼 영화 속의 가난한 인물들이 서로 나눌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이 영화에서 제일 화려한(?) 장면은 반건달인 어린 잡부 '마크'와
중늙은이 산밍이 핸드폰 전화번호를 교환하는 장면.
상대가 불러주는 전화번호를 누르면 저장된 음악이  흘러나온다.
'착하게 살자'가 산밍이 선택한 곡.
젊음이 얼마나 흐뭇한 것인지 주윤발의 왕팬인 마크가 까불까불하는 장면이
신선하고 보기 좋았다. 그들의 우정도......

허물어진 우중충한 건물의 남은 벽엔 누군가 붙여놓은 '노키아'의 회사 벽보나
'努力'이라고 쓰인 종이쪽지가 펄렁이고 있다.
그 속에서 웃고 떠들며 살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담배 술 차 사탕은 중국인들이 권커니잣거니 정을 쌓는 데 꼭 필요한 것들이다.
거기다 나는 '국수'를 슬그머니 끼워넣고 싶다.

산밍이 아내의 행방을 물으려 그녀의 친척을 물어물어 찾았는데
그때 그는 우리 공사판으로 치면 십장쯤 되는지 인부들이 먹을 점심으로
한솥 가득 국수를 끓이고 있었다. 화덕 앞에서.
퉁퉁 불어터진 면발에 양념장을 끼얹어 먹는 게 고작이었는데
글쎄 산밍에게 한 젓가락 먹어보라고 권하지도 않는 거다.
가난과 고된 노역에 지쳤는지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 마음이 전혀 없어 보이던
그 인부들은 하나같이 낯짝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퉁퉁 불어터진 누르끼리한 국수도 인상적이었고......

장률의 <망종>이 그랬던 것처럼 보고 나면 이상하게 차분하고 냉정해지는 영화이다.
산밍과 센홍의 그 덤덤한 얼굴을 닮고 싶다.







여자의 브래지어와 링겔병이 대롱대롱한 너머로 보이는 수몰지구의 모습.




아슬아슬 바닥을 보이기 직전 기적처럼 새 물을 조금 채우게 되는 센홍의 생수병. 가는 곳마다 보이는 중국의 물통과 겨울의 보온병은 무슨 중요한 상징같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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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이카 2007-06-18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가 대문 사진인가요? 실제로 가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영화사진의 배경은 꽤 근사하네요.

로드무비 2007-06-18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로이카 님, 이 영화 기다리다 목 빠지는 줄 알았어요.
개봉일을 한달 뒤로 미루는 바람에.
제가 무지 좋아하는 지아장케 감독의 영화예요.
스틸 라이프, 제목도 멋지죠?^^

2007-06-18 14: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06-18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도 포스터도 멋지네요. 개봉되면 얼른 가서 봐야겠어요.^^

waits 2007-06-18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아장커 영화는 한 편도 못봤어요. <망종>이 거론되니 확 궁금해지는데요. 찾아보니 씨네큐브에서도 곧 내린다네요, 연장 혹은 확대 상영하는지 봐야겠어요. 솔직히 전 배우 비쥬얼도 좀 따라줘야 감동도 배가되는데...^^;;

Mephistopheles 2007-06-19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주 전에..장양 감독의 "해바라기"를 봤었는데....
중국(본토)영화들 대단하다는 걸 약간이나마 느꼈습니다.
그 영화에서도 노상 찻물이 가득 담긴 차 보온병을 들고 다니더군요..

2007-06-18 2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7-06-19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레여행 님,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서만은 행동이 재빠른 편입니다.
개봉되자마자 달려가서 봤고요.
리뷰든 페이퍼든 필요가 없는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결국 주절대는군요.
어디로 가시는지 궁금합니다. 긴 여행이군요. 잘 다녀오세요.^^
(영화는 내킬 때 언제든 달려갈 수 있게 혼자 보는 게 최고!
친구들이랑 스케줄 맞추다가 보고 싶은 영화 놓치는 일이 제법 있더군요.)

메피스토 님, 해바라기 저도 조금 봤어요.
끝까지 보고 싶었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았어요.
세피아빛 화면의 서정스러움이라니......
찻물과 보온병.
그 투박한 보온병들이 이상하게 심금을 울립니다.^^

나어릴때 님, 전 꾀죄죄한 비주얼을 선호합니다.
산밍과 센홍 두 주인공 얼마나 매력적인데요.
뚱한 얼굴.
저도 그 과라.=3=3=3
(무리하실 건 없죠, 뭐.)

혜경 님 지난주 목요일인가 개봉했습니다.
부산은 국도에서 상영하겠군요.
할매집 비빔국수 먹고 싶어요.^^







릴케 현상 2007-06-21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서재는 넘 적응이 안 돼서 짱나지만 로드무비님이 버티고 있어서 참 좋네요^^

로드무비 2007-06-21 14:26   좋아요 0 | URL
앗, 그렇게 말씀해 주시다니.
고맙습니다.(_ _)
바뀐 방이 저도 마음에 안 들지만 우짜겠습니까.
함께 마음을 붙여 보아요.^^*

2007-06-22 18: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누도 잇신의 <황색 눈물>.
별 신통할 것도 없는 인연을 내세워, 만화가 에이스케의 단칸방에 한 명 한 명 기어들어와
1963년, 올림픽이 열리던 해 여름을 났던 청년들.
일본의 아이돌 그룹 아라시 멤버들이 더이상 어울릴 수 없는 역들을 맡아
청춘의 얼굴로 표상되는 연기를 펼쳤다.

어쩌다 보니 자신의 손바닥만한 방이 네 청년의 합숙소가 되어 만화 한 컷 그리는 것조차 
여의치 않게 되었지만 에이스케는 친구들을 내치기는커녕
유명 만화가의 밤샘작업을 돕는 아르바이트로 얼마간의 목돈을 마련하여
여름을 함께 날 자금을 마련한다.
자기가 돌아오기만 바라며 친구들이 굶고 있지 않나 달려왔더니
운좋게 케이의 그림 한 점이 팔려 양식집에서 배 터지게 이것저것 시켜 먹고 있는 녀석들.

아마추어 화가 케이, 가수 지망생 쇼이치, 소설을 구상중인 슈조는 꿈만 거창할 뿐이다.
그들은 배가 고프면 동네 전당포에 자신의 미래를 저당잡혀 돈까스 덮밥을 시켜먹는 짓도
마다하지 않는다.
화구 세트, 기타, 만년필.

동네 쌀집 배달부로 또래의 예술가 지망생인 그들에게
군둥내 나는 쌀을 제공하는 등  무조건적인 호의를 베푸는 근로청년 유지.
땀을 뻘뻘 흘리며 배달을 하는 동안, 꼴에 예술을 한답시고 아무 하는 일 없이
몰려 다니며 무위도식하는 녀석들이 눈꼴 시려울 만도 한데
처음부터 끝까지 웃으며 친절을 베푼다.

모처럼 돈이 생겨 조그만 양철 세숫대야를 하나씩 들고 그들이 떼로 목욕 가는 장면.
클래식 카페에서 제목만 거창하게 적힌 원고지 뭉치를 앞에 놓고
작품구상은 고사하고 곁눈질로 웨이트리스만 훔쳐보는 슈조.
꼬질꼬질한 그의 단벌 재킷.

재떨이에서 쓸만한 담배꽁초를 주워 피며 앉은뱅이 책상 앞에서 만화를 그리는 에이스케.
백지 위에 펜촉이 슥슥 지나가는 소리가 듣기 좋다.

케이와 친구들이 에이스케에게 보낸 편지로 소개되는
'인생은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 어쩌고 저쩌고 하는
영화의 마지막 내레이션이 좋았다.
더 기가 막힌 건 집 앞 모퉁이의 담배가게 할머니와 담벼락 밑의 개,
돈까스덮밥집 주방장(겸 주인)까지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엔딩크레딧의 애니메이션에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 따뜻하고 세심한 눈길이 좋아서 극장 계단을 내려올 때 실실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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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7-06-17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꼭 보고 싶어요^^

로드무비 2007-06-17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 님, 한 번 더 보고 싶어요. 특히 엔딩 크레딧.^^

Mephistopheles 2007-06-17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가 혹시 나무님의 서재이미지로 걸려 있는 그 영화인가요..??
(이누도 잇신 감독이라면 무조건 봐줘야 한다는 생각이..^^)

로드무비 2007-06-17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 님, 맞습니다. 다소 감상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그의 영화가 좋아요.^^

플레져 2007-06-17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개봉했군요.
낼롬 보러가야겠어요!

로드무비 2007-06-17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 님, 어떻게 새 페이퍼 올린 거 알고 찾아들 오시는지 신기합니다.^^
(당장 보러 가세요.)

비로그인 2007-06-17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의 6,70년대와 한국의 8,90년대는 닮았습니다.
소박함, 순수함, 배려, 끈끈한 정, 나눔 ... 훈훈한 공기까지.
하지만 지금은...

로드무비 2007-06-17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L-SHIN 님, 약 20년 정도씩 차이가 나나요?
설마 지금은 그렇지 않겠지요.
전 허름한 풍경과 사람들이 좋아요.
요즘 세상은 너무 휘황하달까.
겉모습만.
40여 년 전의 도쿄 한 골목, 낡은 집들과 식당,
어리숙한 청년들의 꿈과 우정이 눈물겨웠어요.^^

비로그인 2007-06-19 10:37   좋아요 0 | URL
지금은 '상대적 시간 차이'가 난다고 할까요. (웃음)
예를 들어, IT 산업이나 반도체 산업 분야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차이가 거의 없고,
선진적 의식 사고, 친절, 서비스는 아직도 한국이 일본보다 느리니까요.
초.중학생이 교사를 폭행하는 일, 왕따, 청소년 자살, 원조교제 등 나쁜 것들은..
이제 시대의 차이 없이 두 나라가 똑같이 합니다.

재밌는 것은, 한국은 '일본을 싫어해' 라고 입버릇처럼 하면서 가장 많이 문화가
닮아가는 것이 일본입니다. 그만큼 '가까운 나라'로써 문화적 교류,상업적 거래가
많이 이루어지죠.
반면에, 중국은 '싸고 질 나쁜 물건들' '인체에 해를 끼치는 음식'이라는 오점으로
한국인들의 관심을 그다지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밉다던 일본에 대해서는 이거저거 할 이야기가 많은데, 중국에 대해서는
이야기거리가 없어 입을 꾹 다물죠. 그다지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도 미움도 다 관심과 애정에서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나저나, 두 나라가 서로의 좋은 점만 닮아갔으면 좋겠습니다. ^^

로드무비 2007-06-19 10:54   좋아요 0 | URL
아아, 마이크 테스트. L-SHiN 님이 단 댓글처럼 이것도 그렇게 될라나요?

로드무비 2007-06-19 11:05   좋아요 0 | URL
긴 댓글 알라딘이 잡아먹었어요.
모처럼 열변을 토했더만. 김 빠져서.....
님의 생각과 거의 같아요.
그런데 우리에게 좋은 점이 뭐라도 남아 있긴 한 걸까요?

비로그인 2007-06-20 09:53   좋아요 0 | URL
좋은 것..아주 많죠. ^^

로드무비 2007-06-21 14:42   좋아요 0 | URL
그런 대답을 듣고 싶었어요.^^*

blowup 2007-06-17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럴 것 같았어요.
포스터, 스틸 모두 좋더군요.
이걸 보려면 서울 나들이를 해야겠네요.^-^
눅눅한 바람 같은 영화이지 않을까, 싶어요.

chika 2007-06-17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는 영화를 보고 나서 읽을라구요. (과연 이곳에서는 개봉을 할런지! ㅠ.ㅠ)
첨엔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이 영화의 주연, 일본 자니스의 아이돌 중 하나인 아라시멤버가 주연인거잖아요. 니노밍은 연기를 잘한다고 들었었지만 다른 멤버들은 연기를 잘한다는 생각을 안해봤거든요.(마츠모토 준은 여기서 빠져있고)
그래도 영화는 주연이 아니라 감독을 보고 선택하면 실패하지 않는다,는 명언을 기억하면서.... (그치만 전 아라시 팬이니까 감독을 안봤더라도 영화 봤을꺼 같구만요. ㅋㅋㅋ)
- 참, 페이퍼 안읽어도 충분히 추천받을만한 글 쓰신거 맞죠? (아, 뭐라 썼을지 궁금하지만...영화관련글은 영화보기 전엔 읽고싶지 않다는 강박관념이...ㅠ.ㅠ)

향기로운 2007-06-18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보고싶은데..ㅠㅠ;; 시험기간이 얼렁 끝나면 좋겠네요~^^;;

waits 2007-06-18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 토요일날 봤어요, 엔딩크레딧까지 보고 괜히 너무 좋아서 막 가슴이 쿵쾅거렸어요.
분화가 끝난 화산은 한낱(?) 산일 뿐이라는, 자기 세계를 좀더 소중히 하고 싶다는, 우리들은 평범했다는. 그 철부지들의 독백이 아직 마음에 남아있어요. 아라시라는 그룹이 있다는 건 영화 보고나서야 알았다는...^^;;

로드무비 2007-06-18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어릴때 님, 우리의 무능과 어쩌고 하는 독백도 좋았는데.
아라시는 우리나라에도 팬들이 많다네요. 고1인 조카만 해도 아라시 때문에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으로 유학가겠다고 난리를 쳤거든요.^^

향기로운 님, 시험 잘 치시고요, 영화도 꼭 보세요.^^

치카 님, 페이퍼 안 읽고 먼저 추천을 눌러주시다니! 감사.^^
<스틸 라이프> 보기 전날 전초전으로 본 영화인데 정말 좋았어요.
역시 저에겐 아직 소녀의 감수성이.=3=3=3
(치카 님, 반가워유. 영화 꼭 극장에서 보실 수 있길 기도할께용)

namu 님, '이럴 것 같았어요'라는 말이 무지 웃겨요.
서울 아니라 일본 나들이라도 하셔야죠.=3=3=3
눅눅하고 콤콤한데 고소한 영화예요.


네꼬 2007-06-18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나 읽고 싶지만 재빨리 스크롤해서 내려왔어요. 저도 이 영화 보고 싶은데 조심하지 않으면 님께 홀려 버리거든요. 꼭 그러시더라. 내가 보고 싶은 영화 다 보시고, 보기도 님의 의견에 혹하게 하시고. (네꼬, 게으른 주제에 왜 입을 내미냐!)

로드무비 2007-06-19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 님, 제가 딱 하나, 좋아하는 영화 보는 일만큼은 동작이 빠른 편입니다. 보시고 나서 누가 제일 마음에 드는지 알려주세요.=3=3=3
 
마음
나쓰메 소세키 지음, 박유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2년 12월
평점 :
품절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늘 헷갈렸다.
일본문학에 매료되어 줄창 일본 소설만 읽어대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게 너무 오래 전이다 보니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이다.
몇 주 전, <마음>과 관련한 오후 님의 글을 읽고 처음이든 몇 번째든 
무조건 주문하여 읽기로 마음을 굳혔다.

이 책에서  '더럽혀진 햇수가 긴 사람을 선배'로,  '자살'을 '부자연스러운 폭력'이라고,
또 '사랑'을 '죄악'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나쓰메 소세키.
한 마디로 인간의 에고이즘과 죄의식을 이렇듯 차분하고 냉정하게
잘 버무려낸 작품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타인을 경멸하기 전에 자신을 경멸했기 때문에 타인의 애틋한 마음에 응하지 않는'(17쪽)
선생님이 있다.
우연히 만나 세상 일에 초연한 듯한 그 모습에 끌려 대학생인 '나'는 그의 집에 드나든다.
서재며 풍기는 분위기로 보아 교수쯤이 아닐까 짐작했는데 그는 세상에 속한 어떠한 직함도 없다.

--선생님은 한때 굉장한 독서가였는데, 그 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전처럼 그 방면에
흥미를 느끼지 않게 되었다는 말을 전에 사모님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음을 떠올렸다. (......)
"선생님은 왜 전처럼 책에 흥미를 갖지 못하시는 겁니까?"
"왜라고 할 것까진 없지만......말하자면 아무리 책을 읽어봐야 그리 훌륭해질 것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또 이유가 있습니까?"(......)
"또 있다고 말할 정도의 이유도 아니지만, 전에는 남 앞에 나서거나 남이 뭘 물어보거나 했을 때
모르면 수치로 느껴져 창피했는데, 요즘은 모른다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수치가 아니라는 걸
알기 시작했습니다.(......)"(67~68쪽)

'책을 읽어봐야 별 수 없다'는 선생님의 진술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는 별다른 취미가 없는 인간이기 때문에 '영화와 책이 시들해지면 무슨 재미로 사나' 하여,
이 부분을 읽을 때 잠시 미간을 찌푸렸던 기억도 나고.

병으로 위독한 고향의 실제 아버지보다, 이 쓸쓸하고 무표정한 선생님에게 더 이끌리는 청년.
예전에는 선생님이 그에게 보낸 자서전 형식의 긴 편지 내용보다
뭐라 표현할 수 없이  고즈넉하고 신비한 선생님 댁의 분위기와
나이 차를 훌쩍 뛰어넘는 그들의 교제에 시선이 머물렀다.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어떤 일을 경험하고 난 후,
'나는 할 수 없이 죽은 목숨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가자'고 결심했다는 선생님.
세상에는 그렇게 쓸쓸한 결심을 하고 말없이 실행하는 인간도 있는 것이다.

<마음>은  또 자연스럽게 다음에 내가 읽을 책을 지정해 주었다.
나쓰메 소세키의  <나의 개인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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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7-06-13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조건 보관함에 넣습니다. 전에 리뷰 쓰신 참선 일기가 너무 좋았거든요. 고맙습니다.

로드무비 2007-06-13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덕화 님, 제가 고맙습니다.^^

2007-06-13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7-06-13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 확인도장을 분명 받았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쓸쓸합니다요.
맞아요, 심연이라 해봤자, 꼴랑 죄이고 어리석음이고 열등감이고
빤하고 빤한 것.
그런데 전 문학이나 영화 속의 그 어두운 부분을
기꺼이 즐기는 편입니다.^^

2007-06-13 16: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7-06-13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도 마시고, 에서.ㅋㅋㅋ

치니 2007-06-13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진짜 좋아했던 책. 다시 리뷰를 읽으며 떠올려봐도 참 좋네요.

2007-06-13 2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로이카 2007-06-13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스스로에게 타이르듯 말하지만, 그 모름으로 화나고 그 모름을 감추려고 했던 제 모습들이 떠올라 참 부끄럽네요. 하지만 저 말씀을 한 소설 속의 선생님과는 달리, 그것과 저의 책읽기는 별개일 것 같아요. 분명 책읽기는 어떤 종류의 지식을 얻게 해주기는 하지만, 그 자체로 내가 뭘 모르는지, 또 내가 지금 아는 것이 거짓일 수도 있다는 것은 가르쳐주지 않는 것 같거든요. 모르는 게 두려워서 책을 읽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겠지요.. 고3이 문제 푸는 것도 아니고..

로드무비 2007-06-14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로이카 님, 독서가 다는 아니지만 인생의 큰 즐거움 중 하나가 아니겠습니까. 독서 행위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고 높이 떠받드는 모습을 보면 가소로운데, 사실 저의 진심은 잘 모르겠어요. 어떤 책을 제대로 읽고 나면 자부심이 생기거든요.^^

바뀐 서재가 어리둥절 님, 댓글 다는 것도 정말 어색하네요.
전의 서재 돌려달라고 조르고 싶을 정도.
두 권 다 좋았다니 저도 즐겁습니다.^^

치니 님, 소설 읽는 즐거움이 이런 것이다, 알려주는 듯하여요.^^


2007-06-14 1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6-15 15: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7-06-17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 때 곧잘 하던 생각 님, 맞아요. 제 앞가림은 해야죠. 너무 많이 알아도 인생이 허무하고, 몰라도 병폐. 우짜면 좋습니까.^^
 
우리들의 스캔들 창비청소년문학 1
이현 지음 / 창비 / 2007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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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타깝게도 올해는 교생들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다들 나이에 비해 늙수그레한 데다 촌스럽기 그지없다.
남자 교생들은 성장기를 냉동인간으로 보낸 것처럼 작달막하고
여자 교생들은 의도를 짐작할 수 없는 옷차림이다.(16쪽)

연두색 바탕에, 전체 금실이 체크무늬로 박힌, '도무지 의도를 짐작할 수 없는' 투피스를 맞춰 입고
교생 실습을 나갔다.
동래에 소재한 남자 중학교였다.
그 나이에 여자 교생이라면 환장을 한다는데 우리반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느 날 퇴근길, 학교 앞에서 우연히 마주친 1번  꼬맹이가 석간신문을 돌리고 있길래
배달 마치기를 기다려 근처 중국집으로 데리고 갔다.
자장면 곱배기를 사먹였더니 다음날부터 눈에 띄게 얌전해졌을 뿐만 아니라
주변의 떠드는 녀석들을 잡도리하려 들었다.
교생실습 기간 동안은 소 닭 보듯 하던 녀석들이
무슨 속셈인지 마치고 났더니 편지를 무더기로 보내왔다.
그것이 한동안 나의 기쁨이 돼 주었다.

<짜장면 불어요>의 작가 이현이 중2 교실을 배경으로 왁자지껄한 장편을 한 편 써냈다.
<우리들의 스캔들>.
보라 이모가 보라네 중학교 2학년 1반에 교생으로 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 이모가 어떤 이모냐, 어른들의 눈으로 보면 문제의 소지가 많은 인물이다.
아이들은 물론 개성이 강하고 제멋대로인 이 교생선생님께 매료된다.
새빛중학교 2학년 1반에는 선생님도 부모님도 모르게 자기들끼리만 알고 몰래 드나드는
비밀의 방이 하나 있다.
그 인터넷의 가상공간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루루공주'니 '바이올라'니 '소주원샷'이니 L(<데스노트>의 L) 등의 닉네임으로 온갖 이야기를 나눈다.

-- 옛날에 나는 늘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싶어하는 아이였다.
학교에서, 집에서 그밖의 모든 것에서.
그래봤자 주변을 빙빙 돌고 있을 뿐이었지만 마음으로는 늘 그랬다.
(......) 고백하자면 어른이 되어도 별수없이 똑같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그게 뭐 어때서?"
얼굴 똑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듯이, 생각이며 행동거지며
사는 모양새도 모두 달랐으면 좋겠다.
제멋대로, 내키는대로, 다 달랐으면 좋겠다.(<짜장면 불어요> 작가 머리말에서)

유쾌하고 미더운 머리말이라 일부러 소개한다.

델리 스파이스의 '챠우챠우'가 배경음악으로 흐른다는 그 비밀의 방에서,
아무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멋진 닉네임으로 함께 수다를 떨고 싶다.

때로 그 방에는 어른들의 세계와 별 다르지 않은 칙칙하고 무서운 이야기가 떠돌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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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12 2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꼬 2007-06-12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저도 작가의 그 말 좋아해요. 이현 작가는 제멋대로인 것 같아도 참 일관성 있어요. 반가운 일이죠. 이번 책도 재미있더군요. : )

로드무비 2007-06-12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 님도 읽으셨군요.
작가의 미더운 모습 참 좋죠?^^

그 옷, 지금 생각해도 웃긴다니까요.
괴상망측한 옷차림으로 나름대로 우쭐우쭐 그 학교 언덕을 오르던
제 모습이 그립네요.
님은 무지 세련되고 화사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전 공부 못하고 선생님께 지지리도 구박받던 몇 녀석들에게만
인기였어요.^^


hanicare 2007-06-13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에 나는 늘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싶어하는 아이였다..
(......) 고백하자면 어른이 되어도 별수없이 똑같다.
엄마가, 그리고 김모씨가 종종 하는 말. 나의 정신연령은 딱 일곱살이다. 니 딸에게 언니라고 해도 시원챦다.(7살짜리들과 이야기할 때 제일 편한 거 보니 맞는 말이네요.)
6.10 때 구호가 독재타도 호헌철폐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벌써 20년이 지났다더군요.
어릴 땐 조숙하다고 하더니 지금은 미숙하다고들 하네요. 난 변한 게 없는데요.후훗.

그런데 최승자시인의 말마따나 기쁘다 철판 깔았네...라서 그런가 요즘은 불뚝 불뚝 반항심이 솟습니다. 그래서 뭐? 나의 이상에 비추면 자신이 한심하지만, 그래두 세금 잘내고 공중도덕 잘 지키쟎아...게으른 게 흠이지 뭐...

*그러고 보니 로드무비님하고 꽤 오랫만이네요.칫.,,


로드무비 2007-06-13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anicare 여사, 반갑습니다.
KBS 6.10 다큐 연이틀 보셨군요.
20년 전의 흑백사진과 지금 모습의 대비가 제 시선을 끌었습니다.
자기 나이 비슷한 사람이 화면에 나오면
"누부야, 나도 저렇게 늙어 비나?"
동생의 물음에 내 대답.
"어, 똑같다!"
ㅋㅋㅋㅋㅋ

전 어릴 때도 미숙했고 지금도 미숙하네요.
이렇게 늙어 죽는 걸까요?( '')

그나저나 짜장면 불어요 머리말이 없었으면
리뷰 마무리를 어떻게 했을지.^^

홍수맘 2007-06-13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탱스 투 *^ ^*

로드무비 2007-06-13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수맘 님, 땡큐!!^^

2007-06-14 0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7-06-17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동이 님, 너무 자주 나오는 건 좀 그렇죠? 동감.
가족여행 준비, 좋으시겠어요. 어머님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