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초라함을 깨닫고 의기소침해지는 순간 인생의 광휘는 사라진다.
뜬금없이 그런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영화 <원스 Once>.
어느 날 부잣집 파출부 일자리를 얻게 된 걸 기뻐하는 여주인공.
낡은 모직 재킷과 질끈 맨 목도리, 꽃무늬 통치마.
음반 기획사와의 면접을 앞두고 양복 한 벌이 필요한 남자에게
자신이 애용하는 헌옷가게로 데려가는 그녀.
악기점 주인의 양해 아래 점심시간에 잠시 빌려 치는 피아노 앞에서
그녀의 얼굴은 놀라우리만큼 덤덤하다.
세속에 찌들려서가 아니라, 자신을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인 자의 평화와 무심.

남자는 감추려 하지만, 뭔가 좀 억울한, 짜증난 얼굴이다.
낮에는 고장난 청소기 수리 기사, 거리에서 부르는 그의 노래를 듣기 위해
발걸음을 멈추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의 발치, 10센트 동전 몇 개가 전부인 기타 케이스를 들고 튀는 놈이 없나.
입만 열면 과장이요 엄살인 사람들도 있지만(나 같은!)
인생, 그 치사함과 막막함과 두려움에 대해 입도 떼지 않고
태연한 얼굴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눈물이 난다.
더욱 사정없이 늙는 일밖에는 남은 게 없을 것 같은 조그만 수리점 주인인 남자의 아버지와,
딸의 어린 딸을 키우는 그 할머니의 둥글고 순한 얼굴이 참 좋았다.
그들도 젊어 한때는 청바지나 판타롱을 질질 끌며 애인의 팔짱을 끼고 
아일랜드와 체코의 최고 번화가를 누볐을 것이다.

"또라이 같은 놈들이 녹음실을 쓰고 있다"고  걸려온 전화에
심드렁하게 대꾸하던 녹음기사가, 녹음실에서 들려오는 그들의 연주를 듣고
자세를 바로잡고, 읽던 신문에서 눈을 뗀다.
가슴이 벅차다.
오디션에서 어느 거대 기획사 사장의 O.K 사인을 받았다고 한들
그렇게 짜릿할 수 있을 것인가.
더구나 아들이 틀어주는 음악을 듣고 아버지의 얼굴에 번지는 흥분과 미소라니!
뭘 좀 기대해도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인생에 바랄 수 있는 최고의 것이라 생각한다.

수첩에서 몇 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진솔한 가사와 심정적인 멜로디도 근사했지만,
더블린의 낡고 허름한 골목과 집들, 빈 술병이 줄을 선 좁아터진 집구석의,
돌아가며 한 사람씩 주절주절 자신의 노래를 부르는 파티,
그리고 저마다의 사연을 희미하게 간직한 듯한 얼굴들이  좋았다.
조금 머뭇거리는 듯한 기색이 느껴지는 소박한 화음이
그들의 음악에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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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화 ONCE의 밴드, the Swell Season 라이브 콘서트
    from 둥실둥실 검둥개 헌책방 2008-01-13 10:47 
    영화 ONCE를 봤다. 이웃이 시내에서 길거리 음악가 노릇을 해 번 잔돈을 훔쳐보겠다고 뜀뛰기 실력도 없으면서 잔돈이 든 기타 케이스를 들고 뛰는 한심한 건달이 등장하는 첫 장면도 좋았고, 체코에서 아일랜드로 이민온 여주인공이 고장난 진공청소기 후버를 들고 주인공과 태연하게 시내를 활보하는 장면도 좋았다.   영화에 나온 노래들은 실제로 주연을 한 두 배우, 아일랜드인 글렌 한스라드(Glen Hansard) 와
 
 
2007-10-05 1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05 1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05 1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05 15: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니 2007-10-05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로드무비 2007-10-06 10:57   좋아요 0 | URL
뭐가요? 헤헤.^^

icaru 2007-10-05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오에스티 듣고 싶네요. 머뭇거리는 듯한 기색이 느껴지는 소박한 화음..
음.... 가을이라서 그랬나봐요.
영화가 보고 싶더라고요. 잘 생기지는 않았지만, 멋있는 남자와 이쁘진 않지만 멋있는 여자가 나와서 불같지는 않지만 물같은 사랑을 하는 그런 영화요.

로드무비 2007-10-06 10:55   좋아요 0 | URL
이카루 님, 님과 아드님 맞아요? 우와!
님 서재에 가서 큰 사진으로 구경하고 왔어요.
어여쁘셔라.
뭡니까? 이쁘진 않지만 멋있는 여자가 아니라
무지 이쁜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다니.=3
시간 내서 꼭 보세요.
저런 기대사항이라면 마음에 흡족하실 겁니다.^^

밥헬퍼 2007-10-05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시나요? 알라딘 서재바뀌고 난뒤 몇 번 제 서재에 들러봤는데 괜히 낯설더라구요.그런데 이 서재는 여전하시군요. 자주 들렀으면 하는데 그게 그리 여의치않네요...평안하십시오.

로드무비 2007-10-06 10:51   좋아요 0 | URL
밥헬퍼 님, 안녕하세요?
저도 아직 서재 들어오면 낯선 동네에 온 것 같아요.
많이 바쁘신가 봅니다.
성경강독 올려주시면 참 좋겠는데.
시 이야기도 그렇고요.^^

nada 2007-10-05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녀'의 성숙함, 로드무비님 표현으로 태연함에 넋 놓고 빠져 들었던 영화예요.
음악은 말해 무엇해요..
응석부리지 않는 게 생활이 된 사람, 겉은 태연해 보여도 그 무너지는 속내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어요.

로드무비 2007-10-06 10:49   좋아요 0 | URL
꽃양배추 님, 카모메식당도 그렇고 사람을 잠시 정화시켜 주는 듯한
영화들이 있어요.
어지러운 영화 보고 잠시 방탕해지는 것도 좋고 또 이런 느낌도 괜찮더라고요.
저는 아마 평생을 가도 태연한 얼굴은 못 가질 것 같아요.(할수없죠, 뭐.)

이리스 2007-10-07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소기 끌고 나가고 싶어졌다니깐요.. ㅎㅎ

로드무비 2007-10-08 18:29   좋아요 0 | URL
멀쩡한 청소기 고장 내서라도 말이죠.ㅎㅎ

2007-10-11 16: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13 1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게 되기를 바라지 말고 가끔 저녁에
술이나 한잔해라
            
정호승 詩 '개에게 인생을 이야기하다' 중에서(<포옹> 창비 시집, 2007)


며칠 전에 나온 정호승의 시집 <포옹>을 읽었다.
너무 유창하고 시 한 편 한 편이 딱딱 맞아떨어져서
시인의 진정성이 의심될 지경이었다.

예를 들어 '감자를 씻으며'라는 시는 이런 내용이다.

"감자의 몸끼리 서로 아프게 부딪히면서 흙이 씻겨 나간다
우리가 서로 미워하면서 서로 사랑하는 것도
흙 묻은 감자가 서로 부딪히면서
서로를 깨끗하게 씻어주는 것과 같다"(부분 인용, 46쪽)

아직도 저런 시를 쓸 수 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조금 전 딸아이와 나눈 대화.
학교에서 보내준 영어캠프 안내지를 보고 참가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엄마도 없고 친한 친구도 없으니 누가 자기를 보호해 주느냐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내 입에서 나온 말,
"너 스스로 너를 보호해야 하는 거야."

입 밖으로 말이 되어 나오자 그 내용이 그렇게 공허할 수 없다.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요즘들어 부쩍 이런 일이 잦다.
기껏 입을 뗐더니 하나마나한 말.

정호승의 이번 시집에 실린 시들은 신경림 시인의 극찬대로 한 편 한 편이 근사한데
이상하게 마음에 스며드는 구절이 별로 없다.
새삼스럽게 반항이라도 하겠다는 건지......

'개에게 인생을 이야기하다'라는 제목의 시,  저 심상한 구절은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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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우와 연우 2007-09-14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움이 못내 사그라들지 않는 저녁, 술이나 한잔하며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박자 맞춰주는 이가 그리운걸 보니 늙나봅니다.
언젠가 충청도를 지나갈때엔 한잔 하지 않으시려는지요?

로드무비 2007-09-14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충청도를 지나갈 때, 건우와 연우님과 꼭 한잔했으면......^^
(입밖으로 내뱉어도 공허하지 않은 걸 보니 진심인가 봅니다.)

비로그인 2007-09-14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시군요.
그리고 로드님의 대사도 멋지구요.^^
오랜만입니다~

로드무비 2007-09-19 12:02   좋아요 0 | URL
L-SHIN 님, 아이고, 오랜만입니다.
--저 시집을 읽던 날 혹 내 심사가 사나웠나?
님의 댓글을 보고 문득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ㅎㅎ

프레이야 2007-09-14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이래서 님의 글이 좋아요.
내뱉는 글과 내뱉는 말을 생각하게 합니다. 찔끔~
아,오늘도 공허한 소리 하고나 산 건 아닌지..

로드무비 2007-09-19 12:00   좋아요 0 | URL
혜경 님, 그러면서도 이렇게 페이퍼로 내뱉는데요, 뭐.ㅋ
저는 촉새랍니다.=3=3=3
항상 감사.^^



라로 2007-09-14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의 글은 넘 좋은데,,
넘 찔끔 써주시니,,,,찔끔~ㅎㅎㅎ

프레이야 2007-09-14 22:40   좋아요 0 | URL
팔랑나비님, 그 찔끔~이 아니라구용.
뜨끔~ 이라고 친다는게 찔끔~이라고 쳤네요.
완전 따로 노는 손가락이에요. 로드무비님 죄송^^

라로 2007-09-14 22:44   좋아요 0 | URL
전 찔끔으로 친거에요~~ㅎㅎㅎ
너무 자주 안써주시니까 하는 말이에용~~~호호호


근데 혜경님 뭐하세용????
보고싶네~~~~ㅎㅎ
우리 오늘밤 자주 붙어다니죵????ㅎㅎ

로드무비 2007-09-19 12:05   좋아요 0 | URL
찔끔이든 뜨끔이든 두 분 얘기 나누는 모습 보기 좋습니다. 헤벌쭉~

그라고 nabi 니임, 저도 매일 페이퍼 쓰고 싶은데
컴이 협조를 안해줍니다.
다정한 말씀 감사하여요.^^

치니 2007-09-15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이번 시집이 마음에 스며들지 않았는지, 너무 잘 알 거 같아요.
그리고 따님에게 뱉은 말에 얼굴이 붉어지는 이유도.
로드무비님의 내공은 가늠이 안되지만, 그걸 글로 표현하는 솜씨는 정말 일품이세요.

로드무비 2007-09-19 11:55   좋아요 0 | URL
치니 님, 시를 좋아하지 않게 될까봐 걱정입니다.
그런데 참, 그런 걱정은 안해도 되겠어요. 히히~
10년 전에도 그런 생각을 한 것 같은데 아직 끄떡없거든요.^^

balmas 2007-09-16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허, 로드무비님 글은 여전하시네요. 넘 좋다 ㅎㅎㅎ

로드무비 2007-09-19 13:23   좋아요 0 | URL
FTA반대 발마스 님, 호호, 님의 높은 안목은 바래지도 않는군요.=3=3=3
반갑습니다.^^

릴케 현상 2007-09-21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좋네요.

로드무비 2007-09-22 11:31   좋아요 0 | URL
헤헤, 산책님이 좋으시다니 저도.^^
 


모스크바를 떠나 고향(우즈베키스탄)에 돌아와도 하릴없기는 마찬가지.


그래도 신경 써서 제일 괜찮은 옷으로 골라 입고 고향에 내려오면
엄마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내게 말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 한 지가 얼만데 니는 옷차림이 그게 뭐꼬.
공장 다니는 여기 아아들도 니보다 훨씬 쎄련됐다."

오래 전, 설이나 추석에 집에 가면 엄마의 잔소리를 들으며 전을 굽는데,
마음속으로 친구의 전화가 걸려오기만 기다렸다.
당연히 우리가 만나는 곳은 바닷가의 주점이었다.
(광안리 '연암'이라는 술집이 아직도 있나 몰라.)

민병훈 감독의 영화 <괜찮아, 울지마>의 무하마드처럼,
나도 친구에게, 또 합석한 술집 주인에게 뻥을 쳤는지 모른다.
별볼일없는 연애와 직장 생활을......

 


정체가 들통나자 어느 아침, 빈 바이올린 케이스를 들고 집을 나서지만.......

직장을 그만두고 내려오겠다는 말을 결국 하지 못하고, 새 이불을 한 채 얻어
귀경길에 올랐던 적이 있다.
영등포 역전에서 택시를 잡지 못하여 한 시간을 떨었다.

나야 새 이불이라도 한 채 얻었다지만,
도박빚에 잡힌 무하마드의 바이올린은 언제 제 집(케이스)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이 영화를 볼 때 터키 영화 <우작>이 생각났다.
주인공의 이름도 같지만 화면도 어딘가 닮았다.
그 무하마드가 하는 일마다 잘 안 풀려 심통스러운 낯짝이라면,
<괜찮아, 울지마>의 무하마드는 비굴하고 초조한 빛이 그대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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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09 17: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09 1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10 0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10 1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로이카 2007-09-10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안녕하셨어요? 영화 장면이며, 표정이며 참 멋지네요. 어제 전어회 먹으면서, 로드무비님 생각했었는데 간만에 들어와 뵈니 반갑네요.. ㅎㅎ

로드무비 2007-09-10 13:06   좋아요 0 | URL
에로이카 님, 반갑습니다. 정말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죠?
그런데 어제 전어회를 드셨다니 집에 오신 거예요?
이 영화는 위의 첫 스틸 사진에 꽂혀서 보러 갔답니다.
중간에 잠깐 졸기도 했는데 만족스러웠습니다.^^

2007-09-10 2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누에 2007-09-30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심영화로 등록~

로드무비 2007-10-05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에 님, 묘한 서재 이미지네요. 구경 갈게요.=3
(전 이 영화가 좋았어요.)
 
나라 없는 사람
커트 보니것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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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감사합니다! 다시는 책을 내지 않겠다던 보네거트가
약속을 깨뜨리게 해주셔서
.(스터즈 터클, 방송인)

이 책 커버 뒤에 실린 홍보용 문구.
1997년 <타임 퀘이크> 이후 은퇴를 선언했던 커트 보네거트는
열혈독자들에게 이 회고록 한 권을 던져주고 올 봄 세상을 떠났다.
며칠 전 그의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고 마음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회고록 따위는 쓰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인데?'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그의 생각과 사적인 이야기를 좀 들어볼 수 있겠다 싶어 반가웠다.

--기업은 뇌물을 줘도 괜찮고, 환경을 조금 파괴해도 괜찮고,
가격을 담합하거나 멍청한 소비자들을 우롱하거나 공정거래를 위반해도 괜찮고,
파산시 국고를 낭비해도 괜찮다.
맞는 이야기다. 그것이 자유시장 체제다.
맞는 이야기다. 빈민들이 가난한 것은 과거에 큰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자식들이 대가를 치러야 한다.
맞는 이야기다. 자유시장 체제면 충분하다. 자유시장은 자율적인 사법체계다
.(86쪽)

제목이 왜 '나라 없는 사람'인가 했더니 부시 같은 얼간이나 자신만 아는 못된 기업가,
그리고 권력 주변부의 인간말종들과 한 편이기 싫다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유들유들 한쪽 다리를 흔들면서 한다.
전쟁을 반대하고 지구의 내일을 걱정한다. 휘파람을 불면서......
그의 그런 자세가 좋다.

--만일 부모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고 싶은데 게이가 될 배짱이 없다면
예술을 하는 게 좋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예술은 생계수단이 아니다.
예술은 삶을 보다 견딜 만하게 만드는 아주 인간적인 방법이다.
잘하건 못하건 예술을 한다는 것은 진짜로 영혼을 성장하게 만드는 길이다.
샤워를 하면서 노래를 하라. 라디오에 맞춰 춤을 추라.  이야기를 들려주라
.(32쪽)

자신이 좋아하는 앨버트 아인슈타인과 마크 트웨인은 생애 말년에
인류에 대한 희망을 버렸다고 하면서 자기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고 한다.
인간에 대해 두 손 두 발 다 들은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
나에겐 어쩜 그리 꿀처럼 단지......

사람들은 그를 '러다이트'라 불렀다 한다.
최신식 기계를 증오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란다.
다른 도시에 사는 타이피스트에게 자신의 원고 타이핑을 부탁하기 위해
봉투를 파는 가판대에 줄을 서고, 집에 와서 풀로 봉해 다시 그걸 부치러 우체국에 가는
그의 뒤를 따라다녀 보았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고 대문을 나서서 뭔가 한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우리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것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냄새를 피우기 위해서다.
누군가 다른 이유를 대면 콧방귀를 뀌어라
.(66쪽)

커트 보네거트 씨, 당신의 글이 있어 이 삶이 조금 견딜 만합니다.
골초인 당신에게서 풍기는 냄새도 제법 구수했습니다.
한나절 뒤를 따라다녀 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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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첨..인사올립니다.
    from 2007-10-31 20:38 
    님의 댓글 보고 한번 사서 볼려고 합니다. 책을 참 더디 보는 사람중 한명이라..언제 다 읽을 지는 모르지만..함 읽어보고 다시 올리겠습니다.
 
 
mong 2007-09-03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떨까나 하고 벼르던 책인데
로드무비님이 이렇게 리뷰를 써주시니
얇은귀가 팔랑팔랑 합니다 ^^

로드무비 2007-09-03 13:42   좋아요 0 | URL
사실 기대했던 사적인 이야기는 거의 없는데도 재밌게 읽었습니다. 그의 친필 글이 꼭지마다 한 개씩 액자 형식으로 실려 있는데 독특합니다.^^

twoshot 2007-09-03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만 나중에 올리셨으면 땡스투를 드릴 수 있었는데...이미 주문한 상태라..그저 추천 한번 꾹 누르고 갑니다.^^

로드무비 2007-09-09 16:05   좋아요 0 | URL
아아, 아깝습니다아.
그나저나 지금쯤은 모두 읽어치우셨겠네요.^^

2007-09-04 0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09 15: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니 2007-09-04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결국엔 보관함에 담게 하는 로드무비님의 글솜씨.
짧은 글들 모아져 있는 책을 별루 안 좋아해서, 망설이다가도...^-^

로드무비 2007-09-09 15:34   좋아요 0 | URL
장바구니로 바로 담는 힘을 길러야 할 거인디.=3=3=3
그의 팬이라면 좋아할 테지만 워낙 짧은 글들 모음이라 어떨지 모르겠네요.^^

perky 2007-09-04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나왔다고 하길래 어떤 내용일까 궁금했었는데, 덕분에 감상 잘 감상하고 갑니다. ^^

로드무비 2007-09-09 15:32   좋아요 0 | URL
차우차우 님, 그곳에서 나온 책도 이 비슷하겠죠?
보네거트의 자화상이 표지에 실리지 않았을까요.^^

다락방 2007-09-04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잘 읽었습니다. 저도 슬며시 보관함에 넣겠습니다 :)

로드무비 2007-09-09 15:30   좋아요 0 | URL
다락방 님, 지금쯤은 님의 수중에 책이 들어왔나요?^^
(땡스투 몇 푼이 들어왔길래.ㅎㅎ)

2007-09-04 1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히포 2007-09-06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접하지 못했지만..리뷰가 더 맛깔스운 느낌이 나는건..왜일까요? ㅎㅎ...저도 보관함에~~

로드무비 2007-09-09 15:29   좋아요 0 | URL
히포 님, 리뷰가 좀 맛깔스럽죠?=3=3=3
장바구니로 빨리 이동시키셔요.^^

2007-09-06 16: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08 0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11 1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14 1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20 0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21 19: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22 14: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28 16: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01 18: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12 2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17 0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15 1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19 1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별의별 책들과 정신을 소개받는 즐거움
일본 小출판사 순례기 - 출판정신으로 무장한
고지마 기요타카 지음, 박지현 옮김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7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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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있는지 없는지 몰랐던 책들이라도 책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먼 나라에서 나온 책들은 내가 읽을 가능성이
0.0001%도 안 된다고 할지라도 제목만 들어도 애틋한 마음이 든다.
어떤 책의 탄생 비화는 스릴러 영화보다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언제부턴가 내가 책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책이 나를 선택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을 고르고 그 값을 지불하는 사람은 나이지만 어떤 책을 읽다보면
바로 그 순간이 내 인생에서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 필수 코스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깨달음이 좀처럼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 게 문제이지만......

<일본 小출판사 순례기>에서 만난 책 만드는 사람들은 자신이 만들고 있는 책을 통하여
다양한 삶의 모습과 정신을 보여주었다.
소수의 독자에 대한 믿음으로 밀고 나가든, 무명의 필자 발굴에 안테나를 세우든,
인문적 관점에서 세상을 읽든, 환경문제를 붙들고 늘어지든, 운동으로서의 그것이든,
하나같이 흥미로웠다.

--특히 독자의 반응이 좋았던 책은 오카 나미키의 <도로 포장과 하수도 문화>였다.
론쇼사(論創社)는 내가 인문서고를 맡고 나서 알게 된 개성 있는 출판사다
.(168쪽, 론쇼사 편)

일본의 작은 출판사들은 몇 대째 가업을 잇는 동네 길모퉁이의 작은 식당과도 같은 느낌이다.
포렴을 걷고 들어가 구석자리의 작은 식탁 앞에 앉는 것이다.
벽에 붙은 손글씨의 메뉴판을 보며 음식을 고를 때만큼 흡족한 시간이 있을까?
책을 고를 때의 기분과도 흡사하리라.
발행인이나 편집인들의 믿음 위에서 제각각의 출판정신으로 무장한
다양하고 세부적인 내용을 다룬 책들의 제목만 듣고도 오금이 저렸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던 중에 선생님은 무심코 "오늘날 일본의 번영은
아시아 민중들의 인간 이하의 삶 위에 성립된 것"이라고 하셨다.
나는 숨이 멎는 듯했다.(...)
나의 얄팍한 지식, 인간관계 속에서도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자본주의와 식민지 관계에 대해 읽거나 들은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언제나 이론일 뿐이었다.
이렇게 인간에 근거하여, 생활에 근거하여, 따뜻한 시선으로 어떤 슬픔마저 감도는
어투로 말하는 이가 있었던가.
이론이 아닌 인간의 진심을 담은 그 말에 나는 감동했다
.(261쪽, 도메스출판사 편)

"오늘날 일본의 번영은 아시아 민중들의 인간 이하의 삶 위에 성립된 것"이라고 말한
곤 와지로는 '고현학(考現學)'이라는 독창적 학문의 창시자라는데 이 책에서 처음 만났다.
그 외에도 얼마나 매력적이고 독특한 책과 저자들이 많은지
백지에 제목과 이름만 한 번씩 적어보는데도(호감의 구체적인 표시로!)  종이가 꽉 찼다.


**출판 관련 소책자에 실렸던 연재물이라지만
내용을 조금 더 보완하고 다듬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오자도 여러 개 눈에 띄고, 한마디로  감칠맛이 부족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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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31 16: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31 16: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31 16: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03 1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01 0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09-01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현학, 처음 들어봅니다. 오늘날 일본의 번영은 아시아민중들의 인간이하의
삶 위에 성립된 것, 곤 와지로. 늘 생각거리 던져주시고 훌훌 가볍게 서재방 걸어나가시는 로드무비님, 글 멋진 거 아시죠! 로드무비님^^

로드무비 2007-09-03 13:45   좋아요 0 | URL
헤경 님, 가볍게 서재방을 걸어나가는 게 아니고 걸음이 무겁습니다.
컴이 자주 다운되어 짧은 글 하나 쓰기 어렵거든요.
고현학, 책 읽고 잠시 검색해 봤답니다.
곤 와지로라는 학자를 알게 되어 즐겁더군요.^^

프레이야 2007-09-03 23:02   좋아요 0 | URL
'가볍게'는 님의 글쓰시는 방식에서 제가 받은 호감이에요, 님^^
제가 부러운 방식이라서요. 내용은 묵직하게 방식은 가볍게..
이게 참 쉽지 않아서요^^ 오늘 하루 잘 보내셨지요^^

누에 2007-09-01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저도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되었네요. ^^

로드무비 2007-09-03 13:33   좋아요 0 | URL
누에 님, 그럴 때 참 기쁘죠? 잠시나마.^^

2007-09-01 2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03 1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7-09-18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님 리뷰를 읽으니 이 책에 관심이 가네요. 읽어봐야 겠어요.^^

로드무비 2007-09-19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과 흑 님, 안녕하세요? 이 책 전 재밌게 읽었답니다.^^

릴케 현상 2007-09-21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사 다닐 때 비슷한 책을 읽은 듯한데...같은 책이 새로 나온 건지 다른 책인지 모르겠네요^^

로드무비 2007-09-22 11:33   좋아요 0 | URL
<송인소식>에 연재가 되었다더군요. 그때 읽으셨나 보다.^^

2007-10-05 14:0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