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가 풀리면 인생도 풀린다, 개정판 틱낫한 스님 대표 컬렉션 1
틱낫한 지음, 최수민 옮김 / 명진출판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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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을 감싼 불편한 감정에서 자유로워지는 법 <화 - 틱낫한>

       

 

 

 

 

   

  당신은 갑자기 화가 나서 참지 못할 때, 스트레스가 마구 쌓여서 이도 저도 못할 때 어떻게 하나요? 갑작스럽게 끓어오르는 화는 순식간에 자신의 몸을 감싸게 됩니다. 사소한 이유가 될 수도 있고 누군가와 얽힌 큰 사건이 될 수도 있겠지요. 쉽게 수그러 들 때도 있지만, 도저히 참지 못해 소리를 지르고 울고 욕을 하기도 합니다. 화를 밖으로 미친 듯이 분출하는 거죠. 참 스트레스도 많고, 화나는 것도 많은 세상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틱낫한 스님도 '눈 돌리면 화나는 것 투성이'라고 말할 정도니까요.

  저자인 틱낫한은 베트남의 승려이자 시인, 평화운동가입니다. 그는 평생을 평화를 위해서 힘써왔고 80년대부터는 명상센터인 '플럼빌리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틱낫한 스님은 명상과 관련된 많은 책을 쓰기도 했는데, 이번에 제가 읽은 책은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올 수 있는 '화(anger)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비슷한 시리즈로 <힘>, <기도> 등이 있습니다.) 이 책은 도대체 '화'는 어디서부터 오는지, 그 '화'를 멈출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화'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해 차분하게 이야기해줍니다.

  스님에 의하면 '화'는 우리 안에 있는 상처이고, 마치 아기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무언가 고통스럽고 불만이 있을 때 아기는 시끄럽게 울지요. 그 아기를 달래기 위해서 '어머니'의 역할을 맡고 있는 우리는 그를 감싸 안고 울음의 근본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화'를 남들에게 무조건 돌리면 안된다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무조건 가만히 참아서는 안됩니다. 화는 그때그때 풀어주어야 합니다. 화를 푸는 방법으로, 스님은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하는데, 만약 혼자만의 '화'라면 자신의 '화'를 자각하고 호흡과 명상으로 긍정의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남들과의 관계로 인해서 '화'가 일어난다면, 그 당사자에게 나의 상태를 차분하게 설명하고, 그의 이야기를 '연민'의 감정으로 듣고 나와 그를 감싸 안을 수 있다는 것이죠.

  마치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 같은 이야기처럼 허황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부분들인 것 같습니다. 바쁘고 시끄러운 세상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 쉽지 않은데다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용기'를 쉽게 내기란 어려우니까요. '화'를 극복하려는 용기, 누군가와 관련된 '화'를 바른 방법으로 풀어내고자 하는 용기말이지요. 이 책은 그러한 용기를 가지도록 격려해주는 것 같습니다. 확실하게 '화'를 푸는 것에 대하여 정확한 해답을 주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음을 평안하게 하고 맑은 정신을 갖게 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책을 다 읽고 난 뒤 뭔가 편안한 마음이 드는 걸 보면요.


 

 

 

   - 화는 우리의 적이 아니라 우리의 아기다. 화는 우리의 위장이나 폐와도 같다. 위장이나 폐에 질환이 있다고 해서 우리는 그것을 떼어버릴 수 없다. 화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그것을 잘 보살필 수 있다는 것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36p)

 

 

  - 화가 치미는 순간에 우리는 대개 그 원인을 타인에게 돌리기가 쉽다. 자신이 당하는 모든 고통이 다 남들 때문에 빚어진 것이라고 믿으려 한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로 자기 안에 들어 있던 어떤 화의 씨앗이 고통을 일으킨 주요 원인이라는 것을 이내 알 수 있다. (...) 우리는 누구나 의식의 깊은 곳에 화의 씨를 갖고 있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서는 화의 씨가 가령 사랑이나 이해 같은 다른 감정의 씨보다 훨씬 더 큰 경우가 있다. 화의 씨가 더 큰 것은 그것을 다스리는 훈련을 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각의 에너지를 길러내기 시작하면, 우리의 고통이나 불행의 원인이 타인들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에 들어 있는 화의 씨앗이라는 사실을 맨 먼저 통찰하게 된다. 타인들은 단지 부차적인 원인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42p)

 

 

  - 비가 내릴 때 우리는 햇빛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비행기를 타고 높이 올라가 구름 속으로 들어가 보면 다시 햇빛을 보게 된다. 햇빛이 늘 거기에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제야 새삼 깨닫는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분노와 절망의 순간에도 우리의 사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대화하고 용서하고 연민의 정을 베풀 능력이 늘 거기에 있다. 우리는 이것을 반드시 믿어야 한다. 우리에겐 분노와 고통이란 감정만이 있는 게 아니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사랑하고 이해하고 연민을 가질 능력이 있다는 것을 늘 깨달아야 한다. 그러한 사실들을 잊지 않고 있으면 비가 내릴 때도 절망하지 않을 수 있다. (101p)

 

 

  - 우리는 삶에서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다. 그러므로 무엇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대학 학위를 얻으려면 6년이나 8년이 걸린다. 참으로 긴 시간이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학위를 얻지 않으면 안 된다는 믿음이 긴 시간을 투자하게 한다. 학위가 행복의 우선 조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삶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서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을 수도 있다. 아버지나 어머니나 배우자와의 관계를 개선시키는 것이 그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거기에 시간을 얼마나 들이는지? 관계를 개선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시간을 우리는 충분히 들이는지? (191p)

 

 


 

 

  

책 뒤에 나와있는 부록들은, 명상에 관련된 것들입니다.

온몸을 자각하기 - 다리를 자각하기 등 반복되는 행동들이지만

왠지 해보면 편안하고 좋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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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있지 말아요 - 당신의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될 특별한 연애담
정여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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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하기 전에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 <잘 있지 말아요 - 정여울>

 

 

After Reading

 

 

 

   세상에는 많은 사랑이 있다. 그리고 세상을 담은 '책'과 '영화', '뮤지컬' 등에도 굉장히 많은 사랑이 있다. 물론 거기에는 약간의 판타지가 덧입혀지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의 본질은 똑같이 살아있다. 당기려 하지만 자꾸만 낯선 사람이 돼버리는 영화 <클로저>의 사랑, 자신의 추한 모습을 감추고 진정한 사랑을 찾으려는 <오페라의 유령>의 사랑, 지독히 개인적인 <달과 6펜스>의 대가도 보답도 바라지 않는 사랑,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영혼에 이끌리는 듯한 <베니스에서의 죽음>의 사랑....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는 위안을 던지는 <잘 있지 말아요>라는 사랑 에세이에는, 이처럼 가지각색의 '사랑'이 등장한다. 작가는 이 사랑의 모습을 사랑, 연애, 이별, 인연이라는 네 개의 타이틀로 분류하여 이야기한다. 이들 사랑의 모습은 때로는 마치 사랑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있지만, 빛깔이 다른 사랑이며 형태가 다른 사랑이다. 그것을 보고 누군가는 '이런 사랑이 어딨어'라고 핀잔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양한 매체 속의 사랑보다도 더 다양한 모습의 사랑을 행하며 살아간다. 평범하게만 보이는 사랑도, 그 사랑을 느끼는 당사자에게는 무척이나 특별한 것이기에..

 

  작가 정여울의 글은 생각보다 더욱 감성적이고 예쁘고, 흡인력 있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책 에세이'나 '인문학 에세이'와 비슷한 면이 있지만, 몇십 개나 되는 사랑을 이야기하는데도 지루함 없이 읽어내려가게 만드는 것은 작가의 글이 무척이나 좋았던 이유도 있었다. 그녀는 책 속에서, 영화 속에서 공감했던 사랑의 아픔을, 우연을, 야속함을 이야기하면서,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사랑의 아픈 모습이 이렇게나 많이 드러나고, 과거의 사랑이 쓰디쓴 추억으로 남는 경우도 많은 것처럼, 사랑을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또다시 사랑에 뛰어들고, 옆에 있는 사람과 행복을 꿈꾸는 많은 이들의 모습은 우리의 삶에서 '사랑'이 결코 작은 부분이 아님을, 사랑에는 상상할 수 없는 특별한 낭만이 있음을 증명해주는 것이 아닐까. <잘 있지 말아요> 같은 책들은 이러한 특별한 낭만을 보다 잘 가꿔나갈 수 있도록 용기를 준다. '사랑하기 전에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 그것은 또 다른 사랑에서 배운다.

 

   

Underline

 

 

 

   -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은 어떤 기계장치로도 지울 수 없는 메모리 같아서,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아주 작은 기억의 촉매만으로도 환하게 되살아난다. 이 사랑 이야기들은 수없이 영화나 연극이나 뮤지컬로 리메이크되었지만, 시대가 변할수록 더욱 새로운 울림으로 되살아난다. 영화에서 본 사랑 이야기들은 소설로 다시 읽을 때 더욱 섬세한 울림으로 되살아난다. 마치 엠피스리로만 듣던 음악을 오래된 카페에서 엘피판으로 들을 때의 반가움처럼. 단순한 기계음보다 더욱 다사롭고, 소리의 질감 하나하나가 되살아나는 느낌이 좋다. (18p)

 

 

  - 만약 인생의 클라이맥스가 사춘기에 이미 끝나버렸다면 어떨까? 우리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미래가 아니라 과거에 있다는 것을 명백히 깨달아버린다면, 과연 '과거보다 결코 아름다울 리가 없는 미래'를 향해 묵묵히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가장 아름다운 세계가 과거에 이미 끝나버렸다면, 우리는 과연 그저 과거를 추억하는 것만으로 만족하며 현실을 인정할 수 있을까. (68p)

 

 

  - 많은 사람들은 '계'를 지키기 위해 '색'을 포기한다. 계율의 그물망을 뚫고 욕망을 택한 사람들은, 욕망의 대가를 철저히 치러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계율의 물샐 틈 없는 수비를 뚫고 기어이 자신만의 색을 이루어낸다. 그 색은 사랑일 수도, 신념일 수도, 공동체일 수도 있다. 계율이 가로막는 모든 금지된 길들 위에 인간의 색이 꿈꾸는 피 묻은 이정표가 세워진다. (204p)

 

 

  - 애당초 '바로 너'를 원하면서도, 왜 '너 아닌 모든 것'을 향해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일까. 너무도 행복한 사랑에 빠져 있을 때, 왜 인간은 대상과의 진정한 결합을 은근히 가로막는 것일까. 불가능한 대상을 추구하는 것, 가장 사랑하는 존재를 파멸시키는 것, 그것 또한 인간의 치명적인 본성일까. 우리가 누군가를 '원한다'는 것은 그를 도저히 손에 넣을 수 없다는 무의식의 판단 때문일까. 욕망을 '계속 생생하게 살아있게' 하려면 욕망의 최종적인 실현을 방해해야만 하는 것일까. (226p)

 

 

 

Add...

 

 

 

얼마 전 읽었던 <가장 좋은 사랑은 아직 오지 않았다>라는 책이 계속 떠올랐어요.

느낌이 비슷한 책인데, 둘 다 좋긴 좋네요,

그나저나 요즘 이상하게 사랑 에세이를 많이 읽게 되네요....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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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여행하다 - 공간을 통해 삶을 읽는 사람 여행 책
전연재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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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공간을 통해 삶을 읽는 사람 여행 책 <집을 여행하다 - 전연재>

 

 

 

 

After Reading

 

 

 

   집은 그곳에서 사는 사람의 고유한 느낌과 향기를 갖고 있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 습관, 취미, 분위기가 집 안에서 배어 나온다. 그래서 항상, 남의 집을 구경하는 것은 재미있다. 다른 사람의 공간을 조심스레 발 디디는 설렘도 있고 나와는 다른 무언가를 관찰하고.. 집 곳곳에 간직해온 추억들, 이를테면 사진 같은 것들이 흥미를 자극한다. 만약 누군가가 여행을 하게 된다면, 여행 중에 이런 경험을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여행을 계획하게 될 땐 보통 숙소부터 생각하지만, 사람냄새나는 집에 머물기보다는 잠시 묵다가는 숙소를 찾기 마련이다. 무언가에 방해받고 싶지 않거나,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이 부담스러워일까, 대부분 그렇다. 그래서, '집을 여행하기'란 생각보다 낯선 것일지도 모른다. 생판 모르는 사람 집에 묵고 그 집의 모든 것을 느끼고 마음 놓고 지내는 일, 그 일은 요즘 시대에 생각보다 너무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특별하고 낯선 여행의 기록인 이 책은 무엇보다 낭만적이고, 신기하고, 재미있어 보인다. 여성 건축가인 저자는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계속해서 새로운 사람 집에 머물고, 그 사람과 정을 나누며 여행한다. 모두가 아는 관광지를 찍으러 뛰어다니는 것은 이미 예전에 질렸다는, 이 부러운 여자는 이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가 만들어주는 뜻밖의 상황과 공간 속을 여행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책 속에는 그녀가 머물렀던 각각의 매력적인 '집'들이 등장한다. 집 안에 절대 문을 찾아볼 수 없는 집, 시원하게 트이는 공간감의 로프트로 개조한 집, 하우스보트, 오두막, 가족들의 침대가 모두 한 방에 있는 집... 그 집들은 모두 개성 있고 편안하다. 또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그 집에 사는 사람을 통해서 비로소 집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집 주인이 있기에 그 집은 두 배 더 특별해진다. 저자는 이처럼 집과 사람을 만나고, 마음으로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는 그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여행을 했다. 그녀가 사랑해 마지않는 '식탁'에서 풍성하게 차려진 식사도 많이 대접받았다. 처음 만난 그들이지만 저자의 글을 통해서 그들이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깊은 마음을 나눴는지 상상이 간다.

 

  이런 여행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축복일까? 그녀가 본 것들은 대부분 유명한 관광지가 아닌 '집'이지만, 그 어떤 여행보다도 즐겁고 편안해 보인다. 그녀가 만난 집과 사람, 모두가 특별하지만, 아마도 저자는 생각보다 더욱더 특별한 사람일지 모르겠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아주아주 다정한 사람. 그런 모습이 글속에 묻어 나오는 것 같아서 참 좋다.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집', 그 '집'을 읽는 것, 결국 책 표지에 새겨진 문구처럼 누군가의 '삶'을 읽는 것이 틀림없다. 삶을 읽는 여행, 내밀한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여행, 그런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Underline

 

 

   - 산의 중턱에는 방 한 칸, 부엌 한 칸이 전부인 데이비드 친구 제니의 작은 오두막이 자리 잡고 있었다. 몇 년 전 땅을 사서지었다는 이 오두막은, 도로도 나지 않은 곳이라 큰 자재들은 헬리콥터로, 나머지 자잘한 것들은 직접 손으로 옮겨야 했다고 한다. 오두막은 아름다웠다. 자연 외에는 주위에 아무것도 없었고, 집 앞에 펼쳐진 바다와 들판은 드넓었다. 곳곳에는 직접 깎아 만든 나무 의자며, 조개 장식들이 추억과 함께 머물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는 말을 잃고 그저 햇살을 느끼고, 바람에 귀 기울인다. (116p)

 

 

  - 어린 시절 우리를 가장 기쁘게 하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그중 하나는 주변의 하늘을, 구름을, 산을, 꽃을, 엄마와 아빠를, 고양이를 그릴 때였을 것이다. 내가 보고 느낀 것을 내 손과 생각을 통해 그림으로 만들어내고, 그것을 다시 다른 이에게 내보일 때 우리의 가슴은 두근거리고 두 눈은 기쁨으로 빛났으리라. 우리 모두는 태생적으로 일상의 예술가이자 몽상가다. 사회의 관념으로 억압되어 있던 그 재능은 눈치 볼 것 없는 자기만의 방에서 비로소 자유롭게 드러난다. (167p)

 

 

  - 여행을 하면서 배우게 되는 것은 다르게 생각하는 법이다. 진리는 하나뿐이라고 배우는 좁은 사회에 갇혀 살다 길을 나서면 모든 사람이 각자 다른 생각을 갖고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조금은 더 많은 선택의 여지를 갖기도 하고, 나에게 맞는 방식을 스스로 만들어갈 힘을 얻기도 한다. 길에서 배운 또 하나의 사실은 옳고 그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좋다 싫다라는 선택이 있을 뿐이며, 진리라는 것이 반드시 단 하나가 아니라 여럿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깨달음은 나의 잣대로 쉽사리 타인을 판단하지 않게 해주었다. 그 역시 분명 그만의 진실을 향해 온 마음을 다해 살고 있는 것일 테니까. (175p)

 

 

  - 거리를 식당으로 삼을 줄 아는 이들의 집은 무한히 크다. 그들의 집은 온 세상이다. 지금 당신이 머물고 있는 집이 좁다면, 그래서 마음이 갑갑하다면 당장 밖으로 뛰쳐나와라. 테라스로, 거리로, 타인의 식탁으로, 그도 성이 차지 않으면 머나먼 타국으로! 밖으로 나와 거리의 사람과 대화하고, 낯선 풍경과 만나며, 그렇게 자신의 집을 무한히 넓혀나가길. (198p)

 

 

  - 자연에 무방비로 노출되거나 홀로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 사람들의 감각은 동물의 그것마냥 예민해진다. 나는 시칠리아의 섬에서 지내는 동안 그곳 사람들이 날씨 변화에 얼마나 민감하지를 지켜보았고, 외딴 시골이나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몸을 지키기 위해 모든 감각을 깨운 채로 살고 있음을 체감했다. 그것은 도시에 사는 우리가 오래전에 잃은 예리한 감각들이다. 온도, 바람, 냄새 등에 예민하다는 것은 생생히 살아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날이 선 감각은 세상의 사물과 현상에 대해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은 것을 흡수하게 만든다. 이는 도시인들이 회복해야 할 감성이기도 했다. (241p)

 

 

Add...

 

 

 

사실 처음에는 건축가의 시선으로 본 집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을 줄 알고선,

책이 생각보다 싱거운가-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여느 여행에세이와 다를 것 없다는 느낌?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남다른 여행 목적을 느끼게 되면서, 그 느낌이 바뀌었던 것 같아요.

글도 생각보다 참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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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여행 - 칼의 노래 100만부 기념 사은본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생각의나무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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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국 산천을 자전거로 누빈, 특별한 여행 에세이 <자전거 여행 - 김훈>

 

 

 

 After Reading 

 

 

 

 

   나는 스무 살이 되서도 자전거를 잘 타지 못했다. 지금은 기적적으로 많이 밉지 않은 키가 되었지만, 내가 다닌 초등학교에서 가장 쬐그만 아이였고 약간 비실거렸던 나는 밖으로 나도는 걸 별로 안좋아했다. 기억이 흐릿하지만 어렸을 때 자전거를 배우긴 했었다. 뜨문뜨문 기억이 나는데, 청소년용 자전거에 보조바퀴를 달아 탄 기억만 있을 뿐 자전거 본래의 두 바퀴로 탄 기억은 없다. 성인이 되고난 후, 샤랄라하게 자전거를 타는 로망이 생겨서 자전거 안장에 올랐지만, 영 무서워서 균형이 안잡히는 것이었다. '나도 어릴 때 좀 남자아이들처럼 뛰놀고, 자전거 타다 크게 좀 넘어져 보고 했다면 지금은 괜찮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 못하는 것도 많다'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른이 되서도 넘어지는 것에 겁은 많아가지고 쉽사리 타지 못했지만, 어쩌다 균형을 잡기 시작한뒤에 마을 근처에 있는 공원 자전거 코스를 혼자 달렸다. 하루살이가 눈앞에 어른어른 거려도, 페달을 돌리며 시원한 봄바람을 맞는 그 순간이 어찌나 시원했던지.

 

  자동차, 기차를 타고 달리는 여행은 물론 '여행'이란 의미 안에서 각자의 낭만이 있지만, 내 온몸의 힘을 다하여 자전거를 끌고 나가는 여행은 더욱더 특별한 낭만일 것이었다. 김훈 작가는 자신의 지인인 사진가들과 함께 '풍륜'이란 자전거를 데리고 전국의 산천 여행길에 올랐다. 자전거 '풍륜'과 함께 태백산맥, 그리고 세 산맥을 넘었다. 그리고 바닷길 또한 굴러갔다. 자전거 여행의 힘든 부분을 조금이나마 걷어내고 작가가 본 아름다운 것들을 담아낸 글들에 왠지 모를 낭만이 스민다.

 

  한국의 수많은 산천을 돌고 돈 여행기이기에, 숲과 산, 물이야기가 많고 한적한 시골마을, 실명을 거론한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다. 그 평범해보이는 여행기가 작가의 연필을 만나 특별한 이야기가 된다. 김중식 시인은 김훈 작가의 글에 대해 "세상에 대해 욕을 할 때도, 그 문장이 너무 아름다워 욕으로 들리지 않는다." 라고 남겼다. 김훈의 에세이들을 보면 그 느낌이 맞다. 왠지 입에 담기 부끄러운 '똥' 이야기를 해도 그 글이 좋고, 좋은 음식을 가리는 평범한 상식이 왠지 좋게 들린다. 어쩔 땐 거친 것 같기도 한데 어쩔땐 너무나 감성적이고 아름답다. 다분히 개인적인 취향일지도 모르지만, 김훈 작가의 글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찬사를 보내니깐. 실제로 <자전거 여행> 속에 나오는 한마디가 있다. '된장과 인간은 치정관계에 있다. (36p)' 도대체 어떻게 이런 생각이 나올 수가 있을까? 이래서, 남다른 눈을 가진 작가들을 존경한다.

 

   언젠가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떠나보고 싶다. 가장 달려보고 싶은 곳은 바다가 쭉 보이는 길, 그리고 울창한 숲길.

 요즘은 하고 싶은 게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아 큰일이다. 하지만 기회가 오면 몸사리지 말도록.

 

 

 Underline

 

 

 

  -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몸은 세상의 길 위로 흘러나간다. 구르는 바퀴 위에서 몸과 길은 순결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연결되는데, 몸과 길 사이에 엔진이 없는 것은 자전거의 축복이다. 그러므로 자전거는 몸이 확인할 수 없는 길을 가지 못하고, 몸이 갈 수 없는 길을 갈 수 없지만 엔진이 갈 수 없는 모든 길을 간다. 구르는 바퀴 위에서, 바퀴를 굴리는 몸은 체인이 매개하는 구동축을 따라서 길 위로 퍼져나간다. 몸 앞의 길이 몸 안의 길로 흘러 들어왔다가 몸 뒤에 길로 빠져나갈 때, 바퀴를 굴려서 가는 사람은 몸이 곧 길임을 안다. 길은 저무는 산맥의 어둠 속으로 풀려서 사라지고, 기진한 몸을 길 위에 누일 때, 몸은 억압 없고 적의 없는 순결한 몸이다. 그 몸이 세상에 갓 태어난 어린 아기처럼 새로운 시간과 새로운 길 앞에서 곤히 잠든다. (17p, 프롤로그) 

 

 

  - 봄 풀들의 싹이 땅 위로 돋아나기 전에, 흙 속에서는 물의 싹이 먼저 땅 위로 돋아난다. 물은 풀이 나아가는 흙 속의 길을 예비한다. 얼고 또 녹는 물의 싹들은 겨울 흙의 그 완강함을 흔들어서, 풀어진 흙 속에서는 솜사탕 속처럼 빛과 물기와 공기의 미로들이 퍼져나간다. 풀의 싹들이 흙덩이의 무게를 치받고 땅 위로 올라오는 것이 아니고, 흙덩이의 무게가 솟아오르는 풀싹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 아니다. 풀싹이 무슨 힘으로 흙덩이를 밀쳐낼 수 있겟는가. 이것은 물리 현상이 아니라 생명 현상이고, 역학이 아니라 리듬이다. 풀싹들은 헐거워진 봄 흙 속의 미로를 따라서 땅 위로 올라온다. 흙이 비켜준 자리를 따라서 풀은 올라온다. 생명은 시간의 리듬에 실려서 흔들리면서 솟아오르는 것이어서, 봄에 땅이 부푸는 사태는 음악에 가깝다. (31p, 흙의 노래를 들어라)

 

 

  - 5월 차나무 밭의 냄새는 풋것의 향기가 습한 육질 속에 녹아 있지만, 5월 찻잔 속의 향기는 이 육질이 제거된 향기다. 시는 인공의 낙원이고 숲은 자연의 낙원이고 청학동은 관념의 낙원이지만, 한 모금의 차는 그 모든 낙원을 다 합친 낙원이다. 5월의 찻잔 속에서는 이 접합부의 이음새가 드러나지 않는다. 꿰맨 자리가 없거나 꿰맨 자리가 말끔한 곳이 낙원이다. 꿰맨 자리가 터지면 지옥인데, 이 세상의 모든 꿰맨 자리는 마침내 터지고, 기어이 터진다. 차는 살아있는 목구멍을 넘어가는 실존의 국물인 동시에 살 속으로 스미는 상징이다. 그래서 찻잔 속의 자유는 오직 개인의 내면에만 살아 있는, 가난하고 외롭고 고요한 스승의 자유다. 찻잔 속에는 세상을 해석하거나 설명하거나 계통을 부여하려는 논리의 허세가 없다. (105p, 찻잔 속의 낙원)

 

 

  - 아파트에는 지붕이 없다. 남의 방바닥이 나의 천장이고 나의 방바닥이 남의 천장이다. 아무리 고층이라 하더라도 아파트는 기복을 포함한 입체가 아니다. 아파트는 평면의 누적일 뿐이다. 천장이고 방바닥이고 부엌 바닥이고 현관이고 간에 그저 동일한 평면을 연장한 민짜일 뿐이다. 얇고 납작하다. 그 민짜 평면은 공간에 대한 인간의 꿈이나 생활의 두께와 깊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한 생애의 수고를 다 바치지 않으면 이런 집에서조차 살 수가 없다. 공간의 의미를 모두 박탈당한 이 밋밋한 평면 위에 누워서 안동 하회 마을이나 예안면 낮은 산자락 아래의 오래된 살림집들을 생각하는 일은 즐겁고 또 서글프다. (147p, 그곳에 가면 퇴계의 마음빛이 있다)

 

 

  - 저무는 날의 마지막 잔광이 사위는 저편 능선으로 그는 하루의 마지막 렌즈를 조준했다. 산맥에 가득 찬 가을 빛 속에서 겨우 한줌의 빛오라기를 추슬러 간직하는 카메라는 가엾은 기계였다. 내일은 또 내일의 빛이 쏟아져내릴 터인데, 그 감당 못할 영원성 속에서 그가 작동하는 셔터의 60분의 1초는 가엾은 시간이었다. 그 60분의 1초에 의해 세상과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의 마음은 힘겹게 화해하고, 그 가엾은 기계의 안쪽으로 세상의 무늬와 질감은 겨우 자리잡는 것인데, 사람들이 영원성을 향하여 지분덕거리는 연장들의 안쓰러움은 대체로 이와 같고 언어 또한 저와 같아서, 가을의 태백산맥은 입을 열어서 말을 주절거리려는 인간을 향하여 입 닥쳐라 입 닥쳐라 한다. (26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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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절판이 되었지만, 동네서점에서 너무나 운좋게 발견해서 데려왔던 책이다.

그래서 이 책만 보면 왠지 뿌듯뿌듯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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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 인문학 소소소 小 少 笑
윤석미 지음 / 포북(for book)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작게, 적게, 웃으며' 생각을 다듬는 소소한 시간 <1분 인문학 소·소·소 - 윤석미>

 

 

 After Reading

 

 

 

  저는 웬만해선 책을, 첫머리부터 끝까지 쭈욱 쉼없이 읽어나가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있습니다. 빠르게 읽거나 딴짓을 안한다는 것이 아니라, 한 권의 책을 집고나면 천천히라도 꼭 끝까지 읽어나가야 된다는 것이지요. 그때문에 책을 중단하는 것을 굉장히 안타깝게 여기고, 여러 책을 같이 읽는 것도 좀 힘들어합니다. (기억력 때문에 ...) 아무튼 이런 '책 한권을 쭉 읽어야 되는 강박이 있는' 제게 부담되는 책은 <365일 매일 긍정의 한줄> 같은 책이에요. 매일 한번씩 오랫동안 읽어야 더 느낌이 좋을텐데, 한번에 다 읽어버리고 싶고, 그런데 이야기는 짧게 끊어져서 흐름은 계속 끊기고. 그런 책들이 굉장히 힘들게 느껴지지요. (음, 부정적인 시작이지만 책의 혹평은 아닙니다....) 그런데 <1분 인문학>은 제게 <...긍정의 한줄>과 같은 느낌의 책이었습니다. '1분'이라는 단어에서 예상하다시피, 이 책은 오랫동안 하나하나씩 읽어나가야 더 빛을 보는 책이었거든요. 

 

 

 

 

  그렇지만 처음에 저를 이 책에 이끈 '소, 소, 소'. 각각 다른 뜻을 가진 한자들의 만남이 너무나 좋아서, 꾹 참고 제 습관대로 쭉 읽게 되었답니다. 이렇게 예쁘고 뜻좋은 한자의 만남이 더 있을까요? '소, 소, 소'라는 발음도 너무 좋고, 왠지 소근소근 아기자기한 느낌의 한자들. 저자는 이 한자들을 하나씩 주제로 하여, 자신이 습득해왔던 인문학적 지식을 짧게 짧게 책에 풀어놓습니다. 딱 1분 안에 읽을 수 있는 분량씩으로 150개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야기들은 식상한 것보다는 새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책, 위인, 전래동화, 과학 상식, 자연현상까지, 우리가 별로 깊게 생각하지 않던 것들에서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의 해답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 정말로 신선했지요.

 

  제목은 '1분 인문학'이지만, 이 책을 읽을 때 '소, 소, 소'에 초점을 맞추어 읽는 것이 더 만족도가 높을 것 같습니다. 짧은 이야기들 속을 파고들어가면 충분히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인문학적 지혜들이 숨겨져 있지만, '인문학에 입문해보겠다!' 하고 혹시 생각하는 독자들에게는 조금 아쉬움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에요. 대신, 처음부터 제 맘에 쏙 들었던 '소, 소, 소'는 작은 이야기들의 주제이기도 하면서 이야기 전체를 망라하고 있어서, 이쪽을 바라보고 이 책을 접한 독자들은 충분히 행복한 기운을 받을 수 있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인생, 뭐 있겠습니까? 마음대로 하시지요!' 그러나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그 사람을 만듭니다'

 원래는 따로 떨어져 있던 저자의 말이지만, 교훈을 주는 이야기들 속에서 이렇게 붙여놔야 더욱 어울릴 것 같은 한마디.

 역시 자신이 원하는 뜻대로 살아가는게 '자신에게는 최고의 삶'이 될지 모르지만, 가끔 흔들리고 이것저것 생각이 뒤엉키는 당신이라면,

 가끔은 이런 지혜도 필요합니다. 소, 소, 소한 지혜 말이지요 :)

 

 

 

Underline

 

 

 

 

  - 탈무드에는 사람을 평가하는 세 가지 기준이 실려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키소'입니다. 키소란 돈을 넣는 주머니를 말합니다. 즉, 그 사람이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쓰며 사는가. 이것이 그 사람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코소'입니다. 코소란 술잔, 즉 '향락'을 의미하는 것으로 지금 그 사람이 무엇을 즐기며 지내는가, 지금 무엇에 빠져 있는가, 지금 그 사람 마음을 빼앗아간 것은 무엇인가를 살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사람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즐겼던 일이 무엇이었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을 평가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세 번째는 '카소'로 카소란 '노여움'을 말합니다. 또한 인내력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따라서 자기의 감정이나 분노를 얼마나 억제할 수 있는가, 고통 가운데서 얼마나 참고 인내할 수 있는가를 보면 그 사람을 평가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33p)

 

 

  - '길'에도 여러 종류의 길이 있습니다. 차나 사람이 많이 다니는 큰길은 한길. 한길이 아닌 뒤꼍으로 난 길로 뒷골목의 좁은 길은 뒤안길. 뒤안길과 비슷한 길로 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뜻하는 고샅길. 꼬불꼬불한 논두렁 위로 난 논틀길. 등처럼 굽은 길이라고 해서 등굽잇길. 빙 둘러서 가는 우회로인 에움길. 원길에서 곁으로 갈라져 나간 골목이란 뜻의 겹 골목길. 드나들 때 반드시 거치게 되는 길목이란 의미의 나들목. (...) 이 밖에도 두렁길, 자갈길, 외길, 굽돌이길, 속길 등등 참으로 많은 길들이 있습니다. 길의 종류가 이렇게 많은 까닭은 돌아가야 할 곳이 많고, 좁은 곳이 많고, 지나가기 어려운 곳이 많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차나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한길만 있었을 것입니다. 인생길 역시 마찬가지. 아니 인생길에는 땅의 길보다 더 많은 길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의 길 위에서 '어디로 가야 하나' 헤매는 것인지 모릅니다. (79p)

 

 

  - 옛사람들은 왜 벗어놓은 신발의 모양이 곧 그 사람의 마음가짐을 말해 준다고 생각했을까? 그 이유를 산사의 절에서 찾아봅니다. 절에서는 법당이나 승방 등 신발을 벗어놓는 자리마다 '조고각하'라는 글귀를 써 놓습니다. 비출 조, 돌아볼 고, 다리 각, 아래 하, 그러니까 조고각하라는 말은 발밑을 잘 살펴보라는 뜻입니다. 신발을 제자리에 잘 벗어놓았는지, 나중에 다시 신을 때 잘 찾아 신을 수 있도록 가지런히 벗어놓았는지를 보면 신발 주인이 어느 정도 반듯한 정신을 지녔는지를 엿볼 수 있다는 것. 신발을 반듯한 모양으로 벗어놓은 사람은 소소한 일상생활일지언정 올바로 행하고,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라고 믿었던 것이죠. 신발을 제자리에 가지런히 벗어놓으려면 잠시 뒤를 돌아보는 마음이 있어야만 합니다. 허둥지둥 나가고 들어오는 사람은 절대로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놓을 수가 없죠. 그러니 나의 몸과 내 마음이 얼마나 가깝게 움직이는지는 벗어놓은 신발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입니다. (218p)

 

 

  - '열 살 때, 여느 때와 전혀 다름없이 눈을 떴다. 아침이었고, 높은 창을 통하여 본 이웃집의 기다란 지붕 너머로 푸른 하늘이 보였다. 막 잠에서 깬 이 순간, 무엇인지 새롭고 훌륭한 것이 생기기나 한 것처럼 비로소 아름다운 생활이 그 가치와 의미를 지니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제의 나도 잊어버리고, 내일의 나도 잊어버린 채 오로지 오늘의 '행복'에만 부드럽게 둘러싸여지는 기분이었다.' 1946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1962년, 여든다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헤르만 헤세. 그가 자신의 온 생애를 통틀어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꼽은 것은 바로 '열 살 때 잠에서 막 깨어나 푸른 하늘을 봤던 순간'이었습니다. (247p)

 

 

  - "인생은 전반적으로 순서가 잘못되어 있다. 인생은 여러 가지 특권과 돈이 확보되어 있는 노년기에 시작되어 그런 이점들을 훌륭하게 누릴 수 있는 청년기에 끝나는 것이 좋다. 사실 청년기에는 약간의 돈만 있어도 그 가치의 백배에 달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지만, 그때는 아쉽게도 돈이 없다. 나이가 많아지면 어느 정도 돈은 모았겠지만 이미 돈으로 살 만한 가치 있는 것들이 거의 없어진다. 인생의 전반부는 즐길 수 있는 능력은 충만한데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며, 인생의 후반부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는 데 반해 능력이 사라진다." <마크 트웨인의 인생 강론> 기회는 많은데 돈이 없는 청년기, 돈은 있는데 기회가 없는 노년기... 어느 쪽이 더 좋아 보입니까? (259p)

 

 

Add...

 

 

한 편의 이야기와 함께 왼편에 그 이야기를 압축해놓은 문장이 하나씩 꼭 있는데,

그 한 문장들이 굉장히 좋았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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