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가겠다 - 우리가 젊음이라 부르는 책들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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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가겠다』 김탁환 / 다산책방

읽었었고, 읽고 있고, 역시나 읽어가겠죠

 

 

  '읽어가겠다'라는 제목이 참 흥미롭습니다. "우리가 젊음이라 부르는 책들"이라는 부제가 붙어있고, 과거에 읽었던 책들을 소개하고 있으면서도, '읽어가겠다'하는 미래적 포부를 강조하는 제목을 사용하고 있으니 말이지요. 마치 과거에 책과 함께 했고, 지금도 책을 읽고 있으며, 언제까지나 좋은 책을 만나리라는 생각을 비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 특이하고도 공감이 팍팍 가는 이 책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혹은 너무나 많이) 만나봤을 법한 책 에세이입니다. 이런 책들을 읽는 데에 장점과 단점이 혼재하고 있지요. 먼저, 장점은 제목만 들어봤거나 관심도 안 가던 책에 갑자기 확- 매력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겠고, 단점은 책 위시리스트가 늘어나 지갑이 온통 털리는 것이지요!

 

  특히나 작가가 읽는 책이라면, 작가의 젊음을 지배하고 있었던 책이라면, 더욱더 관심이 가기 마련입니다. 책을 읽는 누구나 오래전에 읽었던 책들은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경우가 많은데, 김탁환 작가에게도 이런 책들이 역시 있었겠죠. "세월과 함께 몇 개의 장면과 몇 토막의 문장만 남았지요. (...) 이토록 멋진 소설을 왜 까맣게 잊었던 걸까?"라는 말에 격하게 공감이 갑니다. 인간의 기억력은 너무나 한정적이어서, 너무나 멋진 책을 읽어도, 책을 읽고 서평을 남겨도 전체적으로보다는 부분적으로 기억할 수밖에 없게 되잖아요. 나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저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토록 멋진 소설을 왜 까맣게 잊었던 걸까?"라는 말에, 오래전에 읽었던 『상실의 시대』와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마음도 들고요.

  

  『읽어가겠다』를 읽다 보면 마치 라디오를 듣는 듯한 다정한 말투가 눈에 띄는데, 역시나 이 책은 김탁환 작가가 《책하고 놀자》라는 라디오 코너에서 소개되었던 작품들을 골라 엮어놓은 책이었습니다. 150권이 넘는 책들 중에서 작가의 사심으로 뽑은 책들이기에, 어떤 책들이 걸렸을까 참으로 궁금해졌는데요. 역시나 세계문학 고전들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제가 너무나도 사랑해 마지않는 헤르만 헤세의 책 『크눌프』가 처음으로 등장해 소리 없는 환호를 질렀고, 너무나 유명한『자기 앞의 생』을 다른 식으로 읽어낼 수 있음에 놀랐고, 간단하게 설명한『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라는 소설에 완전히 압도되어 위시리스트에 넣어두었고, 아직 읽지 않았지만 제목 그 자체에 매력을 느껴 책장에 고이 꽂아둔 『아름다운 애너벨 리 ...』가 나와서 조만간 꼭 읽어보리라는 작은 다짐을 했답니다.

 

 

 이미 넘쳐나는 책 위시리스트에 또 한 번 넘치게 담아버렸지만, 작가가 읽은 책들에서 받은 감동이 전해지고 그 감동이 새로운 책에 대한 큰 기대로 바뀌니, 이런 책 에세이는 보고 또 봐도 너무나 만족스럽습니다. 책 설명, 느낌으로 구성되는 공통적인 형식이지만, 항상 좋은 책들을 채워주고 그보다 높은 가치를 선물해주니 계속해서 책 에세이를 읽을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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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는 두 가지 측면에서 흥미롭습니다. 먼저 그는 계속 비행 이야기만 합니다. 『어린 왕자』든 『사람들의 땅』이든 『야간비행』이든 비행하는 이야기만 줄기차게 반복하는 것이죠. 언젠가 사석에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불문학 전공자인 성균관대 정지용 교수는 이렇게 설명을 덧붙이더군요.

대부분의 작가들은 차이를 계속 만들고자 하지만 비슷한 작품 세계를 반복하는데, 생텍쥐페리는 반복을 계속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차이를 꾸준히 만들어내는 작가다. 맞는 것 같은가요? 이런 경향 때문에 생텍쥐페리의 작품들에서는 늘 비행기가 나오고 사막으로 대표되는 사람들이 살지 않는 땅이 나오고 별이 나오고 조종사가 나옵니다. (51p, 남방우편기)

아니 에르노는 학교에서 할 법한 것들을 어머니와 공모하여 즐겼으며 아버지는 이 즐김에서 제외되었다고 지적합니다. 아니 에르노는 자신과 너무 다른 아버지, 자신과 닮으려고 노력하는 어머니를 보며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요. 이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니 에르노의 삶과 글쓰기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한 여자』에는 두 가지 시공간이 존재합니다. 하나는 어머니가 살아온 삶의 시공간, 또 하나는 죽은 어머니를 추억하며 작가가 보내는 시공간이겠지요. 작가가 일부러 알리지 않는 이상, 독자들은 그 작가가 출간 전에 어떤 작품을 쓰고 있는지 모릅니다. (104p, 한 여자)

수용소에선 가스실로 가는 죄수의 마지막 저녁엔 죽을 두 그릇 줍니다. 배 불리 먹고 죽으러 가란 뜻이겠죠. 그런데 배급하는 죄수가 한 그릇만 줬고, 치글러는 이것 때문에 심하게 싸웁니다. 그리고 끝내 두 그릇을 받아내지요. 그렇게 치글러를 비롯한 내일 죽을 죄수들이 마지막 죽을 먹는데 쿤이라는 늙은이는 자신의 서류가 오른쪽으로 던져진 것에 감사하는 기도를 올립니다. 내일 죽을 죄수 옆에서 어떻게 자신이 살아난 것에 감사하는 기도를 신에게 올릴 수 있단 말입니까. 그것이 과연 인간으로서 할 짓일까요. 프리모 레비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내가 신이라면 쿤의 기도를 땅에 내동댕이쳤을 것이다." (168p, 이것이 인간인가)

세상에는 두 종류의 소설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칼 같은 소설입니다. 갈등을 계속 증폭시켜 어느 순간 폭발하는 소설이지요. 쿤데라의 소설은 김밥 같은 소설입니다. 끊임없이 인물과 사건을 둘둘 말지요. 말다보면 어디가 처음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불멸』도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것이지요. 시작점을 어디로 잡느냐에 따라 『불멸』은 A로도 해석될 수 있고 B로도 해석될 수 있고 C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소설가들은 종종 방에 누워 빈둥거리면서 이런 구상을 하지만 정말 쓰는 건 어렵습니다. 시작도 끝도 없이 마는 것 같지만, 소설가는 적어도 이렇게 말려들어가는 이야기의 효과와 의미를 알아야 하니까요. (216p, 불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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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 영혼이 향기로웠던 날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으로 안내하는 마법
필립 클로델 지음, 심하은 옮김 / 샘터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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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필립 클로델 / 샘터

 냄새로 추억과 순간을 회상하다

 

 

 

   누구에게나 후각으로 기억하는 장면들과 사물들이 있게 마련이다. 향기 (혹은 냄새)와 추억을 연결해 생각한다면, 아마도 각자 나름의 그림이 그려지겠지. 나는 엄마가 보글보글 김치찌개를 끓이던 날에 현관 앞에까지 고소하고 짭조름한 냄새가 풍겨왔던 기억을, 무더운 여름에 먼지 풀풀 날리는 에어컨을 부모님이 청소하고 나서 전원을 켜면 바람이 나오는 그 앞에서 얼굴을 들이밀고 바람 냄새를 맡았던 기억을, 캠핑을 자주 가던 아주 어렸을 때에 산속의 계곡에서 끓여먹던 라면 냄새와 물 냄새가 섞여 후각을 북돋았던 잊을 수 없는 기억을 회상한다. 생각해보면 아주 사소하고 별것 아닌 장면들이지만, 그 냄새와 이미지가 무척이나 강렬하여 절대로 잊히진 않을 것만 같다.

 

  영화감독이자 많은 소설을 펴낸 프랑스의 작가 '필립 클로델'이 새롭게 선보인 이번 책, 『향기 자신이 기억하는 향기와 추억의 이미지를 듬뿍 담아낸 공감각적 산문집이다. 지금은 돌아갈 수 없고, 후각으로만 기억하는 추억들을 하나하나 나열하고 있는데, 자신이 선택한 '추억'과 '향기'의 키워드를 토대로 짧은 이야기들을 적어내고 있다. 조금 별난 점은, '향기'라고 언급했을 때의 우리가 생각하는 이미지를 깨뜨린다는 점이다. '향기'라고 한다면, 보통은 '특히 좋은 냄새'를 표방하고 있는데, 필립 클로델은 그러한 사전적 의미를 넘어 절대 '향기'라고 부를 수 없을 것만 같은 사물들과 공간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면, 사체, 집, 오토바이 엔진, 타르, 그리고 죽음까지, 다소 충격적이고 독특한 향연을 펼쳐내고 있는 셈이다.

 

  지금은 절대로 돌아갈 수 없는 그때의 추억을 상기시키도록 '향기'가 도와주고 있고, 어디에나 있을법한 공간들도 향기를 통해 그 틀을 만든다. '영화감독'이란 특별한 직업이 주는 이점일까, 『향기』를 표현하는 필립 클로델의 글은 마치 영상을 보는 듯 풍부하고 묘사적이다. 사용한 어휘들이나 구체적으로 표현해낸 사물들도 어찌나 다양한지. 향기로 기억하는 순간들을 이렇듯 멋지게 표현해냈다는 점에서는 정말 경탄할 만하다. 하지만 작가의 특성인지, 문득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리는 듯한 서술 때문인지, 조금은 간단하고 건조하게 표현되는 글들에 특별히 공감할 수 없는 부분들도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다양한 소재들을 통하여 세상의 공기에 섞이고 있는 '향기'​들을 상상하면서 읽다가도, 그만의 넘치는 감성을 뒤따를 수 없었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다채로운 '향기'에 관한 이야기는 또한, 독자들의 기억 속에 존재하고 있는 특별한 '향기'들을 펼쳐놓게 만든다. "내가 좋아했던 향기는 뭐였지", "그때 풍겨 나오던 향기는 어떤 향기였지." 하고 말이다. 그리고 추억을 상기시키며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던 이 책은 작가에게도 무척 의미가 깊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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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런한 푸른 풀, 적갈색 대지, 노래하는 무수한 것들.

그리고 갑자기 죽음에 부딪힌다. 머리 아픈 죽음. 달콤한 죽음. 동물의 죽음. 끔찍한 죽음.

끔찍함, 아마도 실상은 그렇게 끔찍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실패한 죽음이랄까. 잘못 저어 냄비 바닥에 고기 한 점이 가라앉아 익힌 스튜 요리 같다. 종종 냄새로만 그친다. 짐승의 사체는 찾을 수가 없다. 냄새가 나는 건 환영일까, 아니면 우리의 두려움일까? (62p, 사체)

내가 들이마시는 것은 깨끗이 빤 천 냄새만이 아니다. 야생적이고 광대한, 대지와 바람의 지형도, 내가 읽고 보았던 이야기와 우화와 노래와 이미지의 무한한 연장의 냄새, 지붕 아래, 할머니들과 이모할머니들이 옛날에 참을성 있는 바느질로 꽃과 곡선과 아라베스크로 장식했던새 시트가 팽팽히 당겨져 씌워진 이 침대, 잠의 첫걸음 속에서 안심하고 쉬는 천상의 여행자. 적어도 한순간은 보호받고 행복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상처받기 쉬운 존재로 만들어주는 냄새다. (100p, 새 시트)

일용잡화점은 일종의 잔재다. 잡화상은 그 시대의 생존자다. 그곳은 특히 피부, 나무, 철, 가죽, 놋쇠, 타일, 유리창 같이 더러워질 수 있는 모든 것을 씻어낼 도구 혹은 수도 배관, 하수구, 화장실같이 막힐 수 있는 모든 것을 뚫을 도구를 찾을 수 있는 안성맞춤의 장소다. 분말, 페인트, 용매, 용제, 연마제, 비누나 액체 비누, 독극물, 비료, 제초제, 고엽제, 쥐약, 질산염, 황산염, 염소산염, 가성소다, 생석회, 니스, 유약, 타르, 유향등 여기 있는 건 그 무엇도 먹을 수 없다. 게임을 뜨고자 하는 절망한 노름꾼들을 제외하고는. (103p, 잡화점)

현재의 우리 또는 과거의 우리에 대해, 깊이 잠든 어린아이의 살냄새만큼 더 잘 이야기해줄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침대 속에서 입을 반쯤 벌린 채 두려움도 공포도 전율도 없이 쉬고 있는 어린아이는 우리가 늘 가까이 붙어 어둠을 쫓고, 흩뜨리고 필요하다면 그 어둠을 부정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108p, 잠든 아이)

글자 하나가 하나의 냄새를, 동사 하나가 하나의 향기를 품고 있다. 단어 하나가 기억 속에 어떤 장소와 그곳의 향기를 퍼뜨린다. 그리고 알파벳과 추억이 우연히 결합하여 조금씩 직조되는 텍스트는, 꿈꾸는 삶과 지나온 삶과 다가올 삼으로 우리를 차례로 안내하는 경이로운 강물이 되어 흘러간다. 수천 갈래로 갈라지며 향기를 뿜으며. (271p,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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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속도 - 사유하는 건축학자, 여행과 인생을 생각하다
리칭즈 글.사진, 강은영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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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속도』 리칭즈 / 아달로그 (글담)

사유하는 건축학자, 여행과 인생을 생각하다

 

 

 

 

  여행에 '속도'를 붙인 이 책의 제목에 공감한다. 속도에 따라 각기 다른 기분과 경험을 만날 수 있다면, 아마도 난 그런 경험을 하나씩은 해본 것 같다.『여행의 속도』에서도 열거된 고속철도 여행, 도보 여행, 도로 위의 자동차 여행, 여객선 여행 ... 어떤 것이 더 좋았냐 물어본다면 역시나 각기 다른 장점이 있다 하겠다. 기차여행은 창밖에 펼쳐지는 빠른 풍경과 왠지 모를 낭만이 있고, 도보 여행은 약간 힘들지 몰라도 목적지에서의 기쁨은 더욱 배가 되고 '히치하이킹'이라는 예외적인 스릴이 있다. 직접 운전해서 하는 여행은 자유로움과 시원함이 있다. 가장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나눌 수는 없다. 모두 '여행'이란 말이 붙기 때문일까.

  속도가 여행의 재미를 좌우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속도의 여행은 어찌 됐든 풍부한 경험과 추억을 제공한다. "살아가면서 어떤 속도로 이동하는가에 따라 인생의 풍경이 달라진다."라는 멋진 말로 시작하는『여행의 속도』는 이처럼 다양한 속도의 여행으로 만난 작가의 인생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읽다 보니, 여행보다는 다양한 건축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목차와 제목, 뒤 페이지의 소개까지 속도에 따른 여행 에세이 느낌을 확 풍기고 있는데, 내용은 세계의 멋진 건축물을 바라보는 건축학자의 시선이 대부분인 듯하다. 여행 장소와 코스는 여행자의 성향에 완벽하게 따르니, 그의 인생이 담긴 이 책에도 화려하고 독특한 건축물의 향연이다. 책 속에는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장소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은 건축물들이 가득하다. (특히 저 사진 속에 있는 곳들은 정말 가보고 싶다.)

 

  예상 밖의 가장 좋았던 부분은 '죽음과 욕망의 안식'이라는 시속 0km의 묘지 여행이다. 죽음이 모여있는 묘지 여행을 시속 0km라고 표현하다니 정말 멋지다! 이 묘지 여행을 끝으로『여행의 속도』는 막을 내린다. 시속 350km에 육박하는 뜨거운 고속 열차에서 기차, 자동차, 배를 거쳐 죽음이 있는 묘지 여행까지 점점 느려지는 속도로 늘어놓은 구성은 인생과 여행이 맞닿아 있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하지만 정말로 아쉬웠던 점이 있다. 이렇게 완벽한 구성과 멋진 제목인데도 불구하고 책 속에는 여행보다 건축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는 사실이다. 여행과 건축, 물론 매력적이지만, 인생과 여행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가 조금 더 듣고 싶었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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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의 철학 퇴근길의 명상 -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실존의 문제 40가지에 답하다
김용전 지음 / 샘터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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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의 철학 퇴근길의 명상』 김용전 / 샘터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실존의 문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직장생활에 안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직장생활이 맞는 사람이란 거의 없다'라는 생각으로 변했다. 직장에서 겪는 모든 일을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니라고 본다. 이런저런 고충이 한 가지씩은 있게 마련이고, 그렇게 수월하게 해내는 일들이 가끔은 심적으로 스트레스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각기 다른 성향의 사람이 유사한 일을 하고, 직급이 나눠지고, 하루 종일 일과 씨름하는데 날카로운 긴장감이란 오죽할까. 나는 어쩌다 보니 그 전쟁터에 들어가 본 적은 없으나, 직장생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항상 가지고 있다.

 

  직장에서 하루를 보내는 우리 시대의 수많은 사회인들은 출근길과 퇴근길에서 무슨 생각을 할까. "오늘은 어떻게 살아남을까"라는 질문, 혹은 그런 질문을 하는 시간조차 아까워 쪽잠으로 피로를 해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직장의 고충을 짧은 시간을 통해 해결할 기회를 찾는다면 이 책을 보기를 권한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실존의 문제'에 대한 『출근길의 철학 퇴근길의 명상』. 실존과 철학, 명상이라는 다소 무거워 보이는 소재로 제목을 이루었지만, 생각과는 달리 무거운 문제들에 대하여 누구나 적용시킬 수 있게끔 가볍고 재미있게 전하고 있다.

 

  '출근길의 철학'과 '퇴근길의 명상', 이 두 가지 파트가 반복되어 다양한 직장 문제에 관한 해답을 전해주고 있는데, 첫 번째는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답과 문제에 대한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이야기와 함께 이해할 수 있는 해답을 에둘러 말해주는 것이다. 문제의 대상은 이제 갓 회사에 입사한 신입사원, 회사에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인 직장인들, 점점 더 많은 후배들을 봐야 하는 임원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 노릇을 하는 직장인 등 다양하다. 아마도 정말 있을 법한 직장 내의 문제들을 저자는 의외로 신통하게 해결해주고 있는데,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르게 약간 틀어서 생각하는 지혜를 갖추고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책 속에서 등장하는 문제들은 모두 실제 저자에게 문의한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고, 라디오에서 '직장인 성공학' 상담을 맡고 있는 저자는 수백 건이 되는 질문이 반복되고 닮아 있기에 카테고리를 묶어 직장인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했다.

 

  '퇴근길의 명상'편을 살펴보면 꽤 유명해서 조금은 식상한 옛날이야기들도 등장하는데, 남다르다 싶었던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들을 직장에 국한된 문제에 자연스럽게 녹여낸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오, 이 이야기가 이렇게도 쓰일 수 있었어?"하는 생각도 들고, '명상'이란 그리 대단한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번 조용히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것이라고 깨닫게 된다.

 

 

 

Copyright ⓒ 2014. by Rinny. All Rights Reserved.
출판사에서 지원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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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길이 아니라고 포기할 때 `과연 내가 이 길을 얼마나 가보았는가`를 다시 한 번 물어야 한다. 잘못 든 길을 무작정 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제대로 잡은 길을 잘못된 길이라고 오해해서 돌아서는 건 치명적인 실수다.

물은 100도에서 끓는다. 아무리 99도를 오래 유지해도 끓지 않는다. 99도에서 100도까지의 차이는 불과 1도다. 오늘 내가 돌아서는 이 길이 99까지 올라가고도 1을 더하지 못해서 포기하는 길은 아닌가? (27p)

지금 아주 힘든데도 그것을 단순히 생각만 바꿔서 무조건 긍정적으로만 보는 것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 상황이 아주 힘들더라도 조금씩 나아지고 잇는 중인지 아닌지를 보아야 한다. 앞이 아주 캄캄하더라도 조금씩 희미하게나마 빛이 비치기 시작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보아야 한다. 인생을 살다 보면 과연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싶을 정도로 미미한 것들이 있다. 최초로 시작하는 작은 액수의 적금 통장, 커다란 항아리를 채워야 하는데 겨우 바닥에 물기만 바르는 한 양동이의 물, 어린아이가 막 배우기 시작하는 피아노의 첫 건반 두드림. 수십 층의 건물을 지어야 하는데 이제 막 공사를 시작하는 첫 삽질, 거대한 기업의 유능한 경영자가 되고 싶은데 이제 막 들어서는 직장인의 연수원 입소 첫날, 아주 사소해 보여도 이런 것들이 조금씩 자라고 쌓여서 결국에는 큰일을 해내는 것이다. (44p)


`라도나 인생`이란 어떤 일을 할 때 `~라도` 또는 `~나`로 생각하고 시작하는 인생을 말한다. 이거 하다 안 되면 저거라도 하자거나, 아니면 이것도 저것도 안 되면 그거나 해볼까 하는 식인데 이렇게 어떤 일을 한 가지에 목숨 거는 식이 아니라 대충 `One of Them` 으로 선택해서는 성공할 확률이 아주 낮다. (82p)


우리가 어떤 일을 계속하다 보면 문득 `과연 이 길이 나에게 맞는 길인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특히 목표 달성에 대한 압박으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인간관계의 갈등으로 사람이 싫어지거나 지나친 경쟁으로 인해 삶이 피폐해진다고 느낄 때 `과연 내가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고개를 든다.

더구나 그 일이 본인이 평소에 하고 싶어 하던 일이라면 모르는데 그렇지 않고 그냥저냥 특별한 의미없이 생계를 위해서 매일 기계적으로 반복해서 하는 일이라면 회의는 더욱 깊어진다. 그럴 때 그 회의의 긑에는 대부분 `이럴 게 아니라 못 먹고 못 살아도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면 어떨까`라는 주체성의 자각 증상이 불같이 밀려오게 된다.

어찌 보면 이 `잘 먹고 잘 산다`는 생계의 문제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꿈의 문제는 영원한 숙제 같은 것인지도 모르지만 반드시 상반되는 문제는 아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함으로써 더 큰 성공을 가져오고 더 행복하게 잘 살 수도 있다. 다만 그 일에 전문가로 인정받을 때까지의 그 시간이 힘든 것이다. 왜 나는 당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없는 것인가? (22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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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
미셸 투르니에 지음, 에두아르 부바 사진,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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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 미셸 투르니에 글, 에두아르 부바 사진

아름답고 정직한, 그저 그렇게 존재하는 세계

 

 

 

 

 

 

 뒷모습은 아무런 말이 없다. 밋밋한 그 모습, 표정과 손짓이 없는 뒷모습. 그러나 그 속에 진실이 있다. "생략과 은연중의 말, 빗대어하는 말, 암시의 세계"인 뒷모습은 수많은 의미를 품고 있다. 그러나 주시하기 전엔 그 진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 아마도 우리들은, 뒷모습이 아닌 앞모습의 얼굴만이 진정한 존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품고 있는 의미를, '뒤'에 감춰진 이야기를 『뒷모습』에서 풀어내었다. 어떤 사진 작품이 있다면 - 아니 사진이 아닌, 다른 장르의 작품일지라도 - 그 이야기 옆에 구구절절 이야기를 붙이는 것이 어색할 때가 있지만, 미셸 투르니에의 산문과 에두아르 부바의 사진이 꼭 동시에 만들어진 것처럼 서로와 맞아떨어진다. 안간힘을 쓰는 뒷모습, 기도하는 뒷모습, 아이를 안고 있는 뒷모습, 젊은 여자와 중년 여자의 뒷모습, 발레리나의 뒷모습...... 흑백 사진의 명암 속에서 도드라져 보이는 그들의 모습.

  꼭 뭐라고 설명하지 않더라도 그 풍경 속의 뒷모습을 추측할 수 있는 사진들도 있다. 단순히 볼 때는 그냥 서 있는 어린아이가 응시하는 저 먼 곳을 바라볼 때 사진은 이야기가 된다. 바짓단을 걷고 바닷물에 들어가 서로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있는 두 연인의 모습에서 약간은 초라하지만 행복한 사랑이 느껴진다. 사진을 찍고 감상하는 맛이 바로 이런 것 아닐까. 물론 사진가의 기교와 의미를 부여함이 뛰어나야 할 테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옆에 붙은 미셸 투르니에의 글은 사진과 같이 풍부하다.)

  이렇게 수많은 뒷모습에, 앞으로 돌아보기 전에는 아무런 표정조차 없어 보이는 뒷모습에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은 이 책 때문이다. 세상의 다양한 뒷모습이 아름답고, 처연하고, 쓸쓸하고, 애수 깊기도 하다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뒷모습』 속의 많은 사진들이 오랫동안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만 같다.

 "뒷모습은 정직하다. 눈과 입이 달려 있는 얼굴처럼 표정을 억지로 만들어 보이지 않는다. 마음과 의지에 따라 꾸미거나 속이거나 감추지 않는다. 뒷모습은 나타내 보이려는 의도의 세계가 아니라 그저 그렇게 존재하는 세계다. 벌거벗은 엉덩이는 그 멍청할 정도의 순진함 때문에 아름답다." - 역자 후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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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고 말고, 사람의 몸은 / 본래 그렇게 생겨 있어서 / 누군가를 `품에 안는다`고 / 할 때 그것은 반드시 그의 등 뒤로 두 손을 / 마주 잡는 것일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이 / 얼굴을 서로 맞대고 그 들어가고 나온 곳이 / 맞물리도록 꼭 붙게 되면 / 저 뒤쪽 - 목덜미, 등, 허리, 엉덩이 - 은 / 탐험하고 소유하는 지역으로 변한다. 그렇기에 / 두 손이 그 지역에서 / 획책하는 일을 사진으로 / 찍는 것은 실례가 될지도 모른다. / 그러나 여기서는 치렁치렁 흘러내린 머리채가 / 포옹을 분리시키고 한 다발 카네이션 꽃이 / 그 포옹을 장식하며 고정시킨다. (머리털 中)

구내 식당에서 식사를 끝내고 다시 공장의 / 일터로 돌아가기 전, 공원에서 잠시 쉬는 짬을 / 메울 셈으로 책을 한 권 들고 나오긴 / 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될 성싶지 않다. / 돋아나는 어린 싹에 비치는 햇살, / 살며시 움트는 은방울꽃의 새순, 먼지 속에서 / 폴짝거리는 참새들, 축복을 내리는 손처럼 / 바람에 흔들리는 마로니에 가지, 정오의 하늘에서 / 흘러내리는 나른한 무기력, 삼라만상 속의 / 약간 쓸쓸하면서도 낙관적인 행복감, 그런 / 모든 것을 두고 어찌 한동안 짧은 명상에 잠기지 / 않을 수 있겠는가. 멀리서 들리는 자동차 소리, / 지나가는 행인들, 사진 찍는 사람, 그리고 심지어 / 이 페이지를 읽는 우리 독자들, / 그 모든 것들에 등을 돌린 채. 책은 물론, / 그 모든 방해꾼들에 대해서 당장은 /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는 세상의 생명들이 나직이 / 고동치는 소리에 까무루 홀려 있는 것이다. (세상의 노래 中)

해 저물녘에 찾아와 미래의 행복을 / 꿈꾸는 - 혹은 외로이 마음속의 / 슬픔을 털어놓는 - 사랑에 빠진 처녀와 / 원통 모자를 쓰고 자갈밭에 앉아 있어도 / 그 완강한 안락함이 든든한 중년 여인, 그 둘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 어쩌면 그저 삼십 년의 나이 차이? / 어쩌면 삼십 년 후에는 처녀도 / 지금은 모자란 자신감과 / 안정감을 갖추어 자갈밭과 / 부서지는 썰물과 눈부신 석양을 / 제압할 수 있을까? / 이것은 한갖 정신의 관점. / 그러나 한낱 추측만이 아닌 것이 있다면 / 그건 풍경. 그 무슨 조화의 기적이 있어 / 중년 부인의 발 아래에는 / 고즈넉하고 빛나는 공허뿐인데/ 처녀의 주위에는 바위 많은 내포 / 굴곡이 심한 암초, 폐허와 / 소나무를 머리에 인 가파른 벼랑이던가? / 두 가지 마음 자리와 두 가지 풍경/ (바닷가의 두 여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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