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비즈니스 산책 - 인종의 용광로, 비즈니스의 용광로 비즈니스 산책 시리즈
엄성필 지음 / 한빛비즈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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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에 관한 책들은 넘쳐난다. 관광지의 정보를 세세하게 담은 여행 정보 서적부터, 여행에서의 감정을 그대로 담은 여행 에세이까지. 그러나 '비즈니스 산책' 시리즈는 그중에서도 특별하다. 앞표지에 크게 자리 잡은 뉴욕의 풍경이 '여행'과 관련된 책임을 알려주는 듯하지만, 이 책은 단순한 여행보다는 비즈니스 관점으로 뉴욕을 조명한 책이다.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뉴욕에서 인기 있는 것들, 그리고 고객을 유치하는 마케팅과 뉴욕만의 특별한 비즈니스 원칙들을 다루고 있다.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도시 뉴욕은 이제 관광지보다는 그 자체가 브랜드인 비즈니스의 천국이다. (물론 지옥의 비즈니스를 경험할 수도 있는 곳이다.) 언젠가는 뉴욕이 파산하고 몰락할 거라는 예상이 있었던 적이 있었지만, 뉴욕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고 한 번쯤 발을 디뎌보고 싶은 도시가 되었다. Big Apple 그리고 I♥NY의 도시 뉴욕은 엄청난 임대료를 자랑하고 있는 길거리 점포부터 다양한 음식의 맛집이 있고, 건물을 허가 없이 높이 올릴 수 없다. 말 그대로 '하늘 값'을 지불해야 하는 독특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모여들고 다양한 직업으로 진출한다. 뉴욕은 패션의 중심지기도 하다. 백화점에서는 상품을 직접 고르고 직접 판매하는, 배짱 좋은 운영방식을 택하고 있다. 럭셔리 아이템들이 넘쳐나고 신예 디자이너들이 자생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고 있다.
  "잘 나가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이 책의 사례가 있는데 그중 한 가지는 신예 디자이너들의 자생 시스템이다. 맨해튼에 위치하고 있는 '가먼트 디스트릭트'에서는 패션이 만들어지는 과정, 그 모든 것이 존재하고 있다. 원부자재뿐만 아니라 샘플 제작을 할 수 있는 환경, 바이어와의 연결, 주문까지 연결된다. 기존 명품에만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디자인을 창출해내는 이러한 시스템은 우리나라의 '오즈세컨'이라는 브랜드를 백화점에 입점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세계 패션위크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는 뉴욕의 패션을 더욱더 활발하게 지켜내고 발달시켜나가고 있다.
 
 

 
 
​  우리에게 이 책 속에 있는 정보들이 더욱 절실해진 것은 이제 뉴욕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세계로 진출하기 위해 뉴욕에 입점하려는 기업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우리와는 다른 문화에 맞춘 비즈니스적 관점이 절실히 필요하다. KOTRA의 북미지역 총괄본부장이자 오랜 시간 한국의 브랜드를 세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애쓴 저자의 조언은 실전에서 얻은 소중한 노하우다. 우리나라의 제품들은 세계에서 예전보다 많은 인정을 받고 있지만, 서비스적인 문제나 비즈니스맨들의 기본 매너는 아직 부족하다고 한다. 뉴욕에는 독창적인 한국의 맛으로 세계인의 입맛을 유혹하고 있는 인기 한식당이 있고 뉴욕에 브랜드를 유치한 한국 기업들도 있다. Dr.Jart라는 비비크림, 아모레 퍼시픽, 교촌치킨, 카페베네 등이 많은 관심을 끌고 있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고객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꽤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다.
  뉴욕은 미국의 도시지만, 이제는 축소된 세계인들의 공간이다. '미국 우월주의'적인 발언일지도 모르겠지만, 다양한 국가에서 모여드는 사람들과 기업들이 이것을 증명하고 있다. 한국의 브랜드도 이제는 세계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이 많지만, 그들이 모두 '그것이 한국 제품이다'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세계 속의 뉴욕, 뉴욕 속의 세계에서 우리의 존재감을 적극 발휘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언어와 서비스, 기본 매너, 문화적 다양성을 중시하는 태도 등을 사례로 제시한다. 이러한 팁들은 뉴욕 뿐만 아니라 우리의 경영시장, 또다른 해외시장에서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점차 멋진 모습으로 세계를 활보하는 우리의 문화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면 좋겠다.
 

 

   ​세렌디피티3가 북적이는 것을 보면, 꼭 음식의 맛이 성공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유명세 자체가 소비자의 구매 포인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명세는 그야말로 컨택 포인트다. 유명한 가게일수록 고객의 기대감은 더 크다. 만약 일부러 찾아간 가게가 실망스럽다면, 고객은 더 크게 낙담할 수밖에 없다. 지속적으로 찾게 만들기 위해서는 유명세만으로는 부족하다. 내 입맛이 보편적이지 않아, 세렌디피티3의 음식과 가격에 불만이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소비자가 만족하는 지점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77p)

  과거에 비해 패션 제조업으로서의 명성은 쇠락해가고 있지만 뉴욕은 여전히 신예 디자이너들이 자생할 수 있는 생태계 역할을 해내고 있다. 디자이너 브랜드가 탄생하려면 이처럼 잘 갖추어진 서식지와 소비시장이 필요하다. 즉 디자이너 스케치가 현지에서 구입한 원부자재를 사용하여 샘플로 만들어지고, 쇼룸을 통해 판매자로부터 주문을 받아 현지의 봉제공장에서 생산되고 공급되며, 현지 백화점 등에서 판매되는 생태계가 형성돼 있어야 한다. (155p)

  한국인에게는 인간의 3대 욕구가 아닌 4대 욕구가 있다고 한다. 식욕, 성욕, 수면욕, 그리고 치욕. 단번에 알아들은 분들은 역시 치욕이 왕성한 분들이다! 치욕은 일명 치킨에 대한 욕구다. 웃자고 나온 말이지만 그만큼 한국인에게 치킨은 빼놓을 수 없는 먹을거리다. 그리고 한국식 치킨은 이제 뉴욕의 주류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그 선두에는 바로 본촌과 교촌이 있다. (179p)

  내가 하는 일은 한국 기업의 미국시장 진출을 돕고, 미국 기업의 투자를 한국으로 유치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는 많은 미국 기업 측 사람들과 수시로 접촉하고 만난다. 나는 맨해튼에서 미국인들과 비즈니스를 하면서 느낀 바가 하나 있는데 그들은 자신의 이익이 없으면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맨해튼에서 시간은 곧 돈이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누군가가 만남을 청한다는 것은 곧 그 사람의 돈을 빼앗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그들과 만날때는 동기부여, 즉 뭔가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주어야 한다. 그래야 만날 수 있다. (301p) ​

 
* '세계를 걸으며 배우는 비즈니스 산책 시리즈' 중의 뉴욕 편이구요.
런던은 이미 출간되있고, 상하이와 이스라엘 편이 나올 예정이네요. 개인적으로 이스라엘이 정말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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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 - 태어남의 불행에 대해
에밀 시오랑 지음, 전성자 옮김 / 챕터하우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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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절에 의해 끊임없이 변하는 인생" 그리고 "모든 것이 덧없다는 느낌." '태어나는 것'이 불행이라는 인식은 이 책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인간소외'나 '허무주의'를 다루는 작품들은 많다. 그러나 탄생 자체를 불행으로 보는 관점은 굉장히 낯설다. '삶의 시작'을 설레는 '시작'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철학이 작가의 생각 속에 자리 잡혀 있는지, 세상에 있는 소수의 생각을 엿보는 느낌이라 매우 궁금했다.

 

  작가는 루마니아 출신의 '허무주의 철학자'이자 수필가다. <해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라는 제목의 책으로 이전에 한번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한 바가 있다. '사르트르 이후 프랑스 최고의 지성, 절망의 팡세'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제목에서 풍기는 느낌처럼 삶과 죽음에 대한 고뇌와 파괴 등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이번 책도 그와 같은 맥락을 하고 있는 듯하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삶은 - 즉 깨어있는 상태-는 숨 막히는 공간이다. 그리고 "죽음은 태어나기 이전의 공간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가 오는 것"이며, 태어나지 않았던 그 시간을 무한한 공간과 행복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죽음을 생각하라'라는 말은 많은 책들을 보면서 깨닫고 나의 생각 속에 지니게 된 명언이다. 나는 그를 통해 현재를 충실하게 살 수 있는 원동력으로써 '죽음'을 생각해왔지만, 작가의 남다른 생각은 다소 충격적이다. "불행 속에 먼저 몸을 던져야 하고, 시간은 나를 크게 희생시키면서 존재에서 떨어져 나가게 한다."라는 작가의 부정적이고 허무적인 시선을 보다 보면 의문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럼, 오로지 죽는 것만이 해답인 것인가?" 작가가 말하기를 '불행하다고 죽음을 앞당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책을 읽다 보면 극단적인 말이 나오기도 하지만, 살아가는 것을 견딜 만하게 만들기 위한 남다른 관점이 제시된다. 그는 삶을 견딜만한 것으로 만들어 준 것은 '내가 어떻게 그 시간을 넘길 수 있을까?'를 구경하고픈 호기심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많은 것에 초연하고 낯설게 만들어, 무관심에 빠진다고 한다. 그런 자신에 대한 연민은, 결국 사색으로 그를 이끈다고 말한다. 사색과 무관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삶을 견디는 것이 작가의 해답인 듯하다.

 

  순간순간을 지나쳐가지만 그것에서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는 의식은, 모든 순간을 긍정적으로 보고 싶어 하는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이다. 아마 이 책을 읽는 많은 독자들이 철학자의 생각을 존중할지라도,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책의 많은 부분에서 자신의 남다른 철학을 인정하고 있는 듯, 다른 모든 사람들을 대신해서 불안 속에서 살아가고 깊은 사유를 행하고 있다며 이야기를 계속한다. 책 속에서는 삶에 대한 인식과 함께, (글 또는 시를 ) 표현하는 것에 대한 욕망, 불안에 대한 정의, 사회와 혁명에 대한 생각들이 함께 한다. 글은 짧은 문단 문단으로 편집되어 있어, 작가의 순간순간 생각을 그대로 옮겨온 것처럼 (에세이 보다는, 아포리즘이다) 흐름이 살짝 뚝뚝 끊어진 감이 있어서, 그에 대한 연결점을 찾기 위해서 그리고 읽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한다. 물론 쉽사리 읽어내기 어려운 철학적 생각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접해보지 못 했던 낯선 생각이기에 읽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세상엔 참 희망을 주는 책들이 많지 않은가? 불행도 행복으로 생각하고, 아직 다가오지 않은 행복을 희망으로 견디고 바라보는 것. 그런 많은 책들에 지친 독자들은 반대로, 이쪽의 책을 바라봐도 괜찮을 것 같다. 나에겐 맞지 않았지만, 자신의 존재를 부단히 느끼고자 하는 사람들, 계속해서 오는 불행에 삶에 대한 희망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무게와 깊이를 앗아가는 어떤 깨달음이 있다. 순간, 그 깨달음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아무 근거가 없다. 그 깨달음이란 어떤 행위를 하건 하지 않건 종국에는 둘 사이에 별 차이가 없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이다. 그런 자각의 상태는 깨달음의 대상이 되는 개념까지도 혐오할 만큼 순수하다. 그것은 지극한 만족감이 따르는 깨달음이다. 우리의 어떤 몸짓도 인정할 수 있는 것이라곤 없음을, '현실'이란 정신 나간 자의 발판이고 원동력일 뿐임을 일상의 어떤 만남에서건 확인할 수 있는, 그러한 깨달음은 비로소 죽음 이후에야 오는 것이라고 해야 하리라. (10p)

 

 

  내면 깊은 곳의 탐구를 지향하는 사람의 특징은, 그가 어떤 성공보다도 실패를 우위에 두고, 무의식중에 그것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실패는 언제나 본질적인 까닭에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 보여 주기 때문이다. 실패는 신이 우리를 보듯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볼 수 있게끔 해 준다. 반면에 성공은 우리 자신 속에, 모든 것 속에 있는 가장 내밀한 것으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한다. (29p)

 

 

  인간은 시간에 의해 치명상을 입을수록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흠 없는 한 페이지의 글을 쓴다는 것은, 아니 한 문장이라도 쓴다는 것은 생성과 부패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언어를 통하여, 노쇠의 상징 그 자체를 통하여, 파괴될 수 없는 것을 추구함으로써 인간은 죽음을 초월한다. (51p)

 

 

  '행복'하기 위해선 자신이 용케 모면한 불행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늘 떠올리고 있어야 할 일이다. 그것은 기억이 스스로를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이다. 기억은 실제로 닥쳐왔던 불행만을 간직하고 있어서 행복을 파괴하는 데 주력하고, 또 그 일을 기가 막히게 잘하기 때문이다. (79p) 

 

 

  사물을 어두운 쪽으로 보는 것은 그것들을 어둠 속에서 저울질해 보기 때문이고, 사념이란 일반적으로 잠 못 이루는 밤, 요컨대 암흑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생은 보이지 않는데서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생에는 적용될 수가 없다. 그것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에 대해선 우리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우리는 그때 모든 인간적인 사념, 구원 혹은 파멸, 존재 혹은 비존재의 경계를 벗어나, 공허의 극단적 형태인 어떤 침묵 속으로 빠져든다. (162p)

 

  "...... 자신이 모든 것이라는 느낌과 아무것도 아니라는 자명함." 젊은 시절 우연히 나는, 이 한 마디 문장과 부딪쳤다. 나는 흥분했다. 당시 내가 느끼고 있던 모든 것, 그 후 느끼게 되었던 모든 것이, 확장과 좌절, 황홀과 낭패감의 종합인 이 기묘하고도 평범한 표현 속에 집약되어 있었다. 흔히, 계시와 같은 깨달음이 떠오르는 것은 역설로부터가 아니라, 단순하고 자명한 사실로부터이다. (23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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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집짓기 - 마흔 넘은 딸과 예순 넘은 엄마의 난생처음 인문학적 집짓기
한귀은 지음 / 한빛비즈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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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건축·인테리어에 관한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유럽에서 자신만의 집을 짓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작은 공간이든 큰 공간이든 오밀조밀하게 '그곳에 사는 사람'이 원하는 것들을 모두 충족시킨 집들을 보았다. 땅덩어리도 좁고 집을 만들어 살기보다는 만들어진 집, 이를테면 아파트를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어지간히 부러워했으리라.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집을 만들고 싶어 하지만, 그것은 꿈에 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도 그 꿈은 현현된다. 이 에세이의 첫머리를 장식했던 영화 <건축학개론> 속의 멋진 집, 그리고 영화 <내 머리속의 지우개>에서 남자 주인공이 벽돌 한 장 한 장 올려 만든 집. <엄마와 집짓기>는 이런 꿈을, 영상이 아닌 이미지도 아닌, 실제로 실현한 이야기이다.

 

  자신이 바라는 대로 '집짓기', 누구나 꿈꿀법한 이 일이 더욱이나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엄마'라는 존재가 함께 했기 때문이다. 왠지 모르게 부르기만 하면 애정이 샘솟는 '엄마', 미안할 걸 알면서도 굳이 투정 부리고 짜증을 부리게 되는 '엄마', 저자가 '모녀 사이의 특별한 우정'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들. 엄마가 나, 그리고 형제들을 키우면서 많은 것을 포기해왔음을 알기에, 정말로 편한 가정(집), 엄마에게 맞는 집을 선물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아마 지금 엄마를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이미 여러번 '감성 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지식과 감동, 여운을 함께 주었던 저자는 엄마와 함께 '인문학적 집짓기'를 실행한다. 그곳에 사는 사람의 '삶의 스타일'에 꼭 맞게, 즐겁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집을 짓는 것이다. '비로소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60대, 인생의 절정기를 맞이한 엄마를 위해, 많은 것을 고려하여 집을 짓는다. 방에 들어오는 빛, 창의 크기, 바닥재, 돌담과 주차장, 물길, 창고... 저자가 건축을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생활세계'를 중심으로 신중하게 만들어나간다. 그렇게 만들어진 집은 욕심이 가득 찬 으리으리한 집이 아니라, 정말로 꼭 필요한 것들이 채워진 따뜻한 삶의 공간이 된다.

 

 

  <엄마와 집짓기>에는 엄마를 위한 집짓기와, 자식을 위한 집 만들기가 함께 있다. 집의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를 만들어나가는 이야기도 같이 있다. 이제 마흔이 넘은 저자가 자식을 위해서 꾸며나가는 공간에 대한 것들이 후반부에 펼쳐지는 것이다. 딸로서의 삶, 엄마로서의 삶을 모두 겪고 있는 그 시점은 내가 언젠가 맞이할 때이기 때문에 묘하게 와 닿는다. 아마도 여자들이라면 책 속의 감성을 더욱 진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인문학적 사색들이 담겨있는 이 책은, 누군가를 아끼는 마음과 깊은 생각들이 꾹꾹 담겨있어 더없이 소중한 느낌이다.

 

 


 

 

  집짓기는 엄마의 서러웠던 과거가 흙부스러기처럼 조금씩 부서져 내려 평평한 바닥에 고요히 얹히는 일이기도 하고, 그 엄마의 딸인 내 과거가 함께 햇빛을 받는 일이기도 하다. 두 과거의 반석 위에 미래를 짓는다. 집짓기는 늙으신 엄마와 늙어가는 딸의 새로운 스토리텔링이며, 어쩌면 후에, 그 후에,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엄마와의 추억을 조금이라도 더 남기기 위한 딸의 기획이기도 하다. 엄마는 차츰 집을 당신의 존재 자체로 여기신다. 엄마는 이제 엄마 자신, 아니면 당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을 한 집을 지으려 한다. (20p)

 

 

  하이데거의 관점을 거칠게 요약하면 불안이 생기는 이유는 우리가 '시간 내 존재'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의식하기 시작하면 우리가 결국 죽을 것이라는 사실에서 불안이 생긴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불안의 감지와 자신의 무(無)에 대한 자각을 같은 것으로 보았다. '지금의 나'는 '염려적 현존재'라고도 했다.

 엄마의 불안도 궁극에는 시간에 닿아 있다. 새집 앞에서 당신은 낡아간다고 여기시는 것이다. 그 부조화가 안타까우신 것이다. 그리고 이 불안은 나 또한 비껴가지 않는다. 엄마의 집을 지으면서 나는 자꾸만 엄마의 노년을 떠올리게 된다. 이 불안을 완전히 극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불안이 좀 덜 잦게 찾아오게 만드는 것만이 최선일 것이다. (107p)

 

 

  어두운 방으로 들어온 태양광뿐만 아니라, 밤의 어둠에 하나씩 켜진 조명도 빛을 만들고 그 빛은 공간에 깊이를 부여한다. 작은 공간도 빛과 어둠의 무수한 결 때문에 더 깊어지고 아늑해진다. 그래서 '감성조명'이란 말이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깊은 공간에서 더 감성적이 되는 법이다. 감성이란, 자극에 대해 반응하는 능력이다. 빛과 어둠이 교차하기 시작하는 어스름 무렵이나 한밤의 간접조명 아래에서 감성적이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단지 그것은 '빛' 때문만도 아니다. 빛과 어둠, 그 사이에 있는 켜켜이 다른 빛의 자질들 때문이다. 우리는 이 빛과 어둠이 만드는 깊이 속에서 세상과 관계에 대해 더 아름다운 생각, 더 깊은 사색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169p)

 

 

  사랑하는 이들에게만 어둠이 메타포일까. 사랑하지 않아도 어둠은 많은 것을 변질시킨다. 가령, 어둠 속에서 우리는 어떤 비밀을 누설하고 싶어진다. 밤 10시가 넘어가고 취기가 돌고 '내일'이라는 시간이 의식되지 않고 다만 '지금 여기'만이 팽창할 때, 그때 우리는 감춰두었던 어떤 '사실'을 들키기 위해 애쓴다. 그때 진실게임 같은 것을 한다. 상대의 비밀을 알고 싶어서가 아니다. 자신의 마음을 들키고 싶어서이다. 그런 점에서 진실게임은 비밀을 이야기하는 게임이 아니다. 비밀이 될 수 없는 이야기를 해소하는 장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하는 그 진실이란 것은, 결코 비밀이 될 수 없는 부분에 한정된다. 비밀은 그냥 비밀로 묻혀 잇는 것이다. 앎이, 알고 있다는 것을 아는 앎과, 알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앎으로 나누어져 있다면, 진짜 비밀은 알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앎에 포함된다. 혹은 알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척해야 하는 앎에 해당된다. (176p)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서 빌리의 엄마는 빌리에게 "항상 너 자신이길......(Always be yourself)"이라는 말을 남긴다. 엄마가 아들을 믿는 것이 아니라 아들이 자기 자신을 믿기를 바라는 것이다. 믿음은 서로 주고받는 것이 아니다. 한쪽이 한쪽에게 일방적으로 선사하는 것도 아니다. 믿음은 자기 자신을 믿는 또 다른 존재와의 만남 사이에서 증폭되는 에너지이다. (28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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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내가 있었네 (반양장)
김영갑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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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열정과 영혼이 여전히 살아 숨쉬는 곳 <그 섬에 내가 있었네 - 김영갑>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면, 물에 빠져 죽는 것과 같다'고 말한 <달과 6펜스>의 '찰스 스트릭랜드'. 이 책을 보면서 그가 떠올랐다. 정체모를 이끌림을 통해 자신의 길을 찾아나가고, 홀린듯이 찾아온 예술혼을 무작정 따를 수밖에 없었던 인물. '찰스 스트릭랜드'에 화가 '고갱'의 삶이 투영되었고, '고갱' 뿐만 아니라 수많은 예술가들의 얼굴이 새겨진 것이라면, 거기에는 우리나라의 '김영갑' 작가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밥은 못 먹어도 필름은 사야 했고, 따뜻한 집은 없어도 사진을 인화할 암실은 있어야 했다. 가족들을 뒤로 한채 멀리, 섬의 오지로 떠났다. 자연 속의 생명과 영혼을 느끼고, 그것을 담아내기 위한 찰나를 얻기 위해 자연에 묻혀 지냈다. 밥벌이도 못하는 일들에 많은 지인들이 만류하고 한마디씩 던졌지만, 그들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묵묵히 자신의 삶에 열중하고, 혼자의 길이라며 다독였다.

 


 

 
  그가 그렇게나 몰두했던 사진을 잠깐이나마 잊혀버리게 만드는 것은 자연의 풍광이었다. '대지의 호흡을 느끼고, 모든 걱정이 사라지고, 가슴이 뛰는 오르가슴을 느끼는' 자연 속에 묻혀사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놀라움. 그는 자연의 소리를 듣고, 황홀함을 느꼈다. 그 황홀함을 사진 속에 담기 위해, 자연 속에 살았고 숨막히는 멋진 풍경을 느낄 수 있는 많은 섬을 거쳐갔다. 그는 마치 산속의 신선 같았다.
 
  자연의 움직임을 그대로 담은 그의 사진은 정말로 생생하다. 그의 눈을 통해 렌즈에 담기는 풍경을 그대로 잡는다. '이렇게 봐주세요'와 같은 기교가 없지만, 그의 사진 속에서는 스쳐가는 바람, 싸늘함과 따뜻함, 소리, 눈부심... 마치 그곳에 서있는 듯한 신비로움이 느껴진다.
 
 


 
 
  그를 그렇게나 몰두하게 만들었던 사진, 그러나 카메라의 셔터조차 누르지 못하게 만드는 '루게릭 병'이 어느날 그에게 찾아온다. 병의 고통 속에서 그는 아무도 초대하지 않는 '갤러리'를 만든다. 그동안 찍어둔 사진과 필름들이 잊혀지지 않고, 누군가가 사랑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이리저리 광고하지 않았지만 그의 사진을 보러 오는 사람들을 위해 작가는 갤러리를 완성했다. 관람객들과 지인들이 말릴 정도로 건강은 악화되었지만, 어딘가에 몰두하는 것만이 병을 잊을 수 있는 평화를 주었다.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던 자연의 깊은 곳과 황홀한 순간을 담고자 노력했던 김영갑 작가는 지금 이 세상에 없지만, 그가 바라본 신성한 풍경은 책 속에, 자연 속에, 제주에 남아있다. 사진을 할 수밖에 없었던 숙명과, 사진을 통해 느끼는 기쁨, 그리고 사진을 할 수 없게 되는 슬픔까지 작가 스스로 써낸 참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애달프다. 그렇게까지 살아야 했었느냐고 많은 사람들이 물을 것이다. 지금의 나처럼 슬퍼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그 섬에는 작가의 열정과 영혼이 숨 쉴 거라고 위안한다. 그리고 당신이 간 곳, 그곳의 모습은 이곳보다 더욱 찬란하고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아직 다하지 못한 셔터를 쉼없이 눌러볼 수 있도록.

 

 

  산다는 것이 싱겁다, 간이 맞지 않는다, 살맛이 나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는 것은 마음의 장난이다. 살다보면 때때로 죽고 싶다는 말이 습관처럼 튀어나온다. 현실이 고달플수록 도피처를 찾는다. 그 최종 도피처는 죽음이다. 원치 않는 상황에서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나는 당황했다.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음을 잊기로 했다. 죽음을 인식하지 않으면서 늘 평상심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25p)

 

 

  나는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궁금해 사진가가 되었다. 그리고 사진을 찍으며 아름다운 세상을 보았다. 대자연의 신비를 느끼고 하늘과 땅의 오묘한 조화를 깨달았다. 지금은 사라진 제주의 평화와 고요가 내 사진 안에 있다. 더 이상 사진을 찍을 수 없는 나는 그 사진들 속에서 마음의 평화와 안식을 얻는다. 아름다운 세상을, 아름다운 삶을 여한 없이 보고 느꼈다. 이제 그 아름다움이 내 영혼을 평화롭게 해줄 거라고 믿는다. 아름다움을 통해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간직한 지금, 나의 하루는 평화롭다. (29p)

 

 

  척박한 섬에서 바람과 싸우면서 씨 뿌려 거두고, 성깔 사나운 바다에서 물질을 해도 늘 배고픔에 시달린다. 허리띠 졸라매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막다른 상황에서 변방의 불모지를 일구며 살아온 섬 토박이들의 가슴앓이는 옥토를 가꾸며 살아온 뭍의 것들과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섬을 선택했다. 섬에서 무엇을 작업할 것인가. 그 문제는 살아보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었다. 세상이 변해 오늘날 뭍의 사람들은 섬으로 몰려와 바람 많은 척박한 땅에 뿌리내리려 한다. 사람 살 곳이 못 된다며 변방이라 부르던 시절, 토박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피눈물을 흘렸었다. 인내와 희생만을 요구하던 시절을 살다간 그들의 땀과 눈물의 흔적이 이 땅에는 아직 남아있다. 그렇게 살다 떠난 토박이들의 흔적들을 한곳에 모아야 한다고 결심했다. (129p)

 

 

  사진은 이미지의 미라이다. 내가 원하는 사진은 박제된 동물이나 새가 아니다. 새의 생김새나 크기를 설명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다. 새가 숲에서 즐겁게 노래하는 모습, 무리끼리 지저귀는 소리에 숲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그런 분위기에 빠져들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나는 그런 숲의 분위기를 사진으로 표현하려 한다. (136p)

 

 

  내가 사진에 붙잡아두려는 것은 우리 눈에 보이는 있는 그대로의 풍경이 아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들판의 빛과 바람, 구름, 비 안개이다. 최고로 황홀한 순간은 순간에 사라지고 만다. 삽시간의 황홀이다. 셔터를 누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강렬한 그 순간을 위해 같은 장소를 헤아릴 수 없이 찾아가고 또 기다렸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그런 풍경이 아니라 대자연이 조화를 부려 내 눈앞에 삽시간에 펼쳐지는 풍경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림의 연속이다. 그 한순간을 위해 보고 느끼고, 찾고 깨닫고, 기다리기를 헤아릴 수 없이 되풀이했다. (180p)

 

 

  카메라를 잡을 수 없는 사진가의 삶은 날개 잃은 새의 운명처럼 시련의 연속이다. 폭풍 치는 바다에서 날지 못하는 새는 내일을 기약하기 힘들다. 새는 더 이상 짙푸른 하늘을 꿈꾸지 않는다.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 없는 사진가는 고민하지 않는다. 눈, 비, 바람, 구름, 안개에 마음이 달아오르지 않는다. 편안하게 바라보며 잃어버린 것보다는 얻은 것을 생각하며 미소지을 뿐이다. 이제 마음으로만 숱한 사진을 찍는다. 절망하자면 한없이 절망스런 상황이지만 그것을 뛰어넘어야 한다. (234p)

 


 

 

 

 

 
 
병의 고통과 싸우면서도 일궈냈던 작가의 갤러리가 바로, 제주도에 있는 '두모악 갤러리'랍니다.
정말로 꼭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아마도 현재로선 1순위로 가고 싶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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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바람도 그릴 수 있다면 - 만화와 사진으로 풀어낸 인도여행 이야기, 인도 여행법
박혜경 지음 / 에디터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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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 아름다운 인도, 만화로 보는 그 나라의 여행법 

[인도, 바람도 그릴 수 있다면 - 박혜경]

 

 

 

 

 

 

 

 

  인도라는 나라는 나에게 더없이 많은 환상이 깃든 곳이었다. 영화에서 보았던 화려함과 소박함이 공존하던 마을의 모습, 온통 새파란 빛으로 칠해져 신비스러움이 가득하던 블루시티 '조드푸르'. 그리고 우연히 가게 되었던 '스티븐 맥커리 사진전'에서 본 오묘한 느낌의 사진들, 호수에 비치던 타지마할의 그림자. 한 번도 가지 못했던 어떤 곳에 대한 조그만 환상이 모여, 나는 언젠가부터 상상속의 여행을 하고 있었다.

 

  내가 본 인도에 대한 풍경들이 어쩌면 정말로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는 있다. 그리고 그것은 지극히 일부분, 과장돼서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부푼 마음으로 그 넓은 땅 중 한 곳을 밟았을 때, 설레는 기대가 두려움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험해보지 못한 모든 것이 설렘을 안겨주듯, 아직도 '인도'는 나에게 '아름다운 나라'다.

 

  이런 설렘을 더욱 크게 만들어준 이 책은, 만화로 그린 '인도 여행 가이드북'이다. 그러나 읽다 보면 지루한 나열로 되어있는 가이드북, 그리고 그냥 가벼운 만화라기보다는 여행자의 감성을 담아낸 에세이 같다. 귀여운 캐릭터와 그림체 때문에 다소 가볍기만한 책이 아닐까 처음에는 우려했지만, 짧은 글들에서 저자가 직접 체험하고 느낀 섬세하고 깊은 감정이 묻어 나왔다. 처음부터 '인도'라는 나라에 매혹되어 그 나라의 땅을 밟게 되었고, 가끔은 혼란스럽기도 하고 오해도 많이 했지만 결국 '인도'의 다양한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게 되었었다는 저자. 여행자들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는 친근한 인도인들, 굉장히 다양한 음식들, 땀 흘리는 노동의 풍경 같은 아름다운 상상의 모습도 있지만, 반대로 터질듯한 더위와 약이 들은 음료를 권하여 돈을 훔치려는 사람들, 상식과 기준에 어긋나는 많은 상황들이 그곳에 존재한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인도는 지극히 위험한 나라도 아니지만, 여행자가 지녀야 할 판단력과 융통성이 그 어느 곳보다 절실하다'고.

 

  물론 어느 여행지에서나 예상치 못한 상황이 존재하고, 단호한 선택이 필요할 때가 많다. 하지만 이 책을 다 보고 나니, '인도'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재미있는 곳이기도 하고 아직 나에게 감당 못할 여행지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언젠가 꼭 가볼 생각이다. 겁난다고 망설이기엔 너무나 아쉬울, '더럽게 아름다운 나라'가 바로 인도라는 곳이니까.


 

 

 

 

 

 

 

 

(만화형식으로 되어있지만, 좋은 글들이 많아 텍스트만 발췌했습니다.)

 

 

  - "넌 네 의견이 없어?" 그가 그런 말을 했던 이유는 내가 식당이랄지, 어떤 도시에 가고 싶은지, 기차를 탈 건지 버스를 탈 건지 등의 선택권을 종종 다른 일행에게 양보했기 때문이었다. "원하는 게 있으면 너도 A처럼 고집 좀 피워!"라는 게 요지였다. 하지만 그가 모르는 게 있었다. 처음부터 나는 반드시 인도여야만 하는 여행이었고, A는 인도가 아니라도 상관없는 여행이었다. 선택의 범위란 이토록 무섭다. 인도를 선택한 나는 아무래도 좋았으니까. 그 안에서 무엇을 먹든 무엇을 보든 무엇을 타든 난 이미 그 모든 것에 속해있는데, 소소한 선택으로 내 취향을 고집 피우는 것 따위. 그쯤이야 백 번이라도 양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도에서 만족을 찾을 수 없었던 A는 다른 부수적인 요소에서 그것을 얻으려 했지만 녹록지 않았다. 제 취향을 다른 이에게 절대 양보하지 않던 그는 끝내 인도를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프롤로그)

 

  - 여행자에게 있어서 배낭이란 자신의 정체성이나 마찬가지인지도 모르겠다. 필요한 물품이 배낭 하나에 깔끔하게 정리되는 걸 보면 놀랍기도 하고 떠나기 전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나름대로 철저히 예측하고 준비하면서 꿈꾸던 것에서 벗어난 실질적인 성취를 향한 의지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61p)

 

 

  - 나는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이 시간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육교 밑에는 서너 명의 남자아이들이 물구나무를 서며 놀고 있었는데 내가 낭만에 빠진 동안 친구는 내내 그 아이들을 신경 쓰고 있었던 것이다. 기차를 기다리는 몇 시간 동안 우리는 같은 공간 속에서 각자 수많은 생각들을 했다. 그때 내가 느꼈던 건, 일행으로서 공간과 시간을 함께 공유하면서도 각자 사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220p)

 

 

  - 지나가던 한 인도인이 내 카메라에 환한 웃음을 보여줬다고 해서 내가 그 사람을 행복 또는 불행하다고 섣불리 해석할 수 있을까. 가끔 그런 여행자를 만날 때면 그가 관심 있는 건 오직 인도에서의 경험을 자신만의 가치관으로 풀어내 친구들에게 공감 받고 싶어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질주의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은 어딘가 비세속적으로 보이는 인도인의 생활을 소박한 평온이라 칭송하면서도 결코 그들의 삶을 닮으려 풍덩 뛰어들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나 자신은 어떤 여행자일까. (238p)


 


 

 

만반의 준비를 하고 언젠가 꼭 갈 거예요 -!!

 

http://saturn0117.blog.me/

저자님의 블로그 go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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