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롭다고 아무나 만나지 않는다 - 사랑은 하고 싶지만 상처는 받기 싫은 당신을 위한, 까칠한 연애심리학
양창순 지음 / 센추리원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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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는 외롭다고 아무나 만나지 않는다』 양창순 / 센추리원

상처받는 사람들을 위한 진지한 연애 심리학

 

 

 

    '사랑은 쉽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나와 오랜 시간 함께 한 친구들, 그리고 가족들까지도 간혹 트러블이 생기는데, 생판 모르는 남남이 만나 자신의 속 깊은 곳까지 꺼내 보이면서 맞춰나가기는 얼마나 어려울 것일까.  그러나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사랑을 필요로 하고, '사랑'은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배워야 할 것'이다. 사랑을 필요로 하는 이유에는 물론 수만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단언컨대 '외로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보통 '외로움'은 보통 사랑이 (있었다가) 지나간 자리에 '결핍'이 발생함으로부터 생겨난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지나간 사람을 잊기 위해서나 실연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만난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가장 위험한 사랑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만약 '내 연애는 항상 왜 이렇지?'라는 의구심이 든다면, 지금까지 지나간 사랑을 한번 곱씹어 보라. 분명 일정한 패턴이 있을 것이다." 

  『나는 외롭다고 아무나 만나지 않는다』에서는 외로움으로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항상 비슷한 패턴으로 사랑에 상처받고 실패하는 사람들에 대한 조언이 담겨있다.  더 나은 상대가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착각하며 지금의 사랑을 놓쳐버리는 사람들, 사랑을 시험하는 사람들, 집착과 사랑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 어장관리와 사랑의 Give & Take 원칙까지 다룬다. 사랑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서로 원하는 것이 다른 상태에서 이루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정말로 어려운 것이다. 인간관계의 한 종류인 '사랑'에 현명하고 싶어도 현명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저지르곤 하는 실수를, 저자는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라는 책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조금 익숙할 저자의 조언 방식. 사랑에 실패하고 잘못된 방식으로 그것을 극복하려는 사람들에게 진지하게, 그리고 근본적인 이유를 찾아내면서 조언한다. 상대방의 심리에 초점을 맞추어, 지금 이 사랑이 왜 잘못되었는지 왜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만 있는지, 그 이유를 알려준다. 사랑에 대한 사람들의 대응 방식은 결국 살아온 환경과 지나간 사랑 등이 만들어낸 습관일지도 모른다. 또 한번 상처를 받고, 눈물을 참으면서 "바뀔 수 있을까?"하고 묻는 사람들에게, 진지하고 상냥한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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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절규대로 그토록 절실하고 강렬했던 사랑의 감정은 정말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왜 우린 때로 그토록 참혹한 상실의 고통을 겪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결국 해답은 사랑이 지닌 유한성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지 않나 싶다. 인간은 세상에서 유한한 존재다. 그런데도 사랑에서만은 영원성을 바란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상실의 고통이 더욱 힘겨운 것은 자신의 존재 의미까지 잃어버리게 만들어서다. 그것이 무엇이든 사랑하는 대상을 잃어버리고 나면 인생은 갑자기 '무'로 변한다. 더불어 그 어디에서도 생의 의미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추락을 경험하게 된다. (41p)

지금 만나는 사람보다 더 나은 상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환상을 품고 있는 한 그 연애는 잘될리가 없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방황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무의식 속에서 그들은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을 믿지 못하니 자신이 선택한 사람에 대해서도 확신을 갖지 못한다.

그와 같은 두려움과 불안 때문에 그들은 계속해서 더 나은 상대를 찾아 헤맨다. 그러면서 자신이 지지리도 이성에 대한 운이 없다고 불평한다. 진짜 문제는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모르면서, 이러한 진실을 깨닫기 전에는 방황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111p)

​일반적으로 연애를 할 때는 솔직한 모습을 보이기가 쉽지 않다. (...) 왜 그럴까? 그 이유를 알고 싶다면 '지금까지 내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왔는가'를 살펴봐야 한다. 여기에는 내가 살아온 환경,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등이 포함된다.

그러한 환경과 관계 속에서 우리는 어떤 이유로든 크고 작은 상처를 받는다. 더는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솔직함에 제동을 거는 것이다. 나에게 상처를 줄 것 같은 대상이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말하자면 무의식적으로 '수비'를 하는 셈이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방어기제'라고 한다. 특히 과거에 사람에게 받았던 상처가 컸거나 그 일이 머릿속에 박혀 있으면 이 '수비군단'은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누군가에게 내 진짜 모습을 드러낸다는 건 상대에게 많은 것을 허락한다는 뜻이다. 그만큼 내 삶에서 상대방이 차지하는 자리가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사람이 나를 배신했다고 생각해보라. 상상 이상으로 힘들고 아플 것이다. 따라서 이 수비군간든 내가 의도하지 않더라도 내 마음속에서 스스로 힘을 발휘해 무의식적으로 상대에 대한 호감을 숨긴다. 의도적으로 그 사람이 내 삶에서 크지 않은 위상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13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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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와 레몽의 집 - 알자스 작은 마을에서 맛본 조금 더 특별한 프랑스
신이현 지음 / 이야기가있는집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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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루시와 레몽의 집』 신이현 / 이야기가 있는 집

세상에서 겨울이 가장 아름다운 알자스의 '맛있는 이야기'

 

 

 

  프랑스 북동부 한쪽에 긴 모양으로 자리 잡은 '알자스'라는 도시는 우리에게 익숙하지는 않은 곳이다. 독일과 가까이 붙어 있는 알자스는 몇차례 전쟁으로 인해 독일의 지배를 받기도 했던, 아픈 기억이 있는 도시인데, 우리나라와는 거의 지구 반대편에 있으며 저자 '신이현'의 시댁이기도 하다. '시댁'이라고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그곳은 저자에게 조금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다. 자주는 방문할 수 없고, 간혹 먼 거리를 이동해 방문해도 '여행'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 '루시와 레몽의 집'. 그 집이 있는 알자스는 항상 맛있는 냄새가 폴폴 풍기고, 따뜻한 이야기와 미소가 있고, 세상에서 겨울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 

  

  원래 이 책은 『알자스』라는 이름으로 7년 전, 세상에 나왔던 책이었다고 한다. 에필로그를 읽어보니 『루시와 레몽의 집』이었던 그곳이 '레몽의 집'만이 되어버린 것을 슬퍼하고 위안하며, 이 책을 새로이 낸 것도 같다. 그리고 사실, 『알자스』라는 제목보다는 『루시와 레몽의 집』이라는 제목이 더 잘 어울리기도 하다. 예쁜 제목을 가진 이 책에는 친구처럼 살아가며, 딱 하루의 차이를 두고 함께 삶을 마감하고자 하는 꿈을 꾸는 루시와 레몽 (저자의 시부모)의 이야기,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알자스'의 음식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단순히 '알자스'의 이야기가 아닌, 루시와 레몽과 가족들의 이야기다.

  루시는 이것저것 레몽에게 심부름을 시키고, 레몽은 자꾸 부르는 그 말에 "예, 대장님."하고 장난치며 달려간다. 그들은 티격태격하면서도 손을 꼭 붙잡고 살아간다. 도미 (저자의 남편)가 먹고 싶다는 '엄마 음식'을 말하자마자 꽤 복잡한 음식에도 불구하고 루시는 당장 요리를 준비한다. 가끔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는 레몽의 행동에, 나머지 가족들은 짜증 내지 않고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식사마다 격식을 차리는 가족의 특성상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설거지에도 도미의 형제들은 투덜대면서도 오순도순 그것을 마친다. 알자스에서 맛볼 수 있는 따뜻한 포도주, 그들이 심고 기르는 채소들이 있는 그 집. 소박하지만 행복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그 집에 가본다면, 저자가 아닌 누구라도 그 곳의 이야기를 다른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을 것 같다.

  루시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 레몽은 오랜 시간 슬픔에 잠겼다가, 다시 일어나 루시가 남긴 레시피 책을 펴고 요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녀의 맛있는 요리가 레몽의 상처를 치유했듯,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나는 이 책을 보는 우리에게도 따스한 기운이 스미는 듯하다. 항상 꾸는 꿈이지만, 이렇게 소박하게 오순도순, 맛있고 건강한 요리를 직접 해 먹으면서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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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을 넘으면 파리에서와는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더구나 겨울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알자스에 와야 한다. 이 세상에서 겨울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기 때문이다. 추울수록 더욱 싱싱해 보이는 거대한 전나무와 그것을 푹 뒤집어씌울 정도의 많은 눈, 겨울에 먹어야만 제맛인 부드럽고 따뜻한 음식들은 이곳을 겨울에만 존재하는 땅처럼 여겨지게 한다. 어쩌면 알자스 첫 조상은 첫눈 내리기 시작할 때 생명을 얻어 보주 산 깊은 자락에서 한 생을 살다 그 눈이 다 녹을 때 땅속으로 사라져 버린 사람들이었는지도 모른다는 동화적인 생각도 든다. (17p)

나는 독한 버찌 술을 넣은 치즈를 먹으며 웃는다. 이 치즈는 꼭 순두부처럼 부드럽다. 치즈에 독주를 뿌려 먹을 생각을 했다니 농부가 아니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요일 날 편안하게 실컷 포식을 하고 난 뒤 몸이 무거워졌을 때 디저트에 독한 술이라도 넣어 먹지 않으면 다시 농장을 둘러볼 힘이 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 또한 치즈 속에 든 독주를 마시니 갑자기 음식 먹는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움직일 기운이 생긴다. 레몽과 루시가 이번에는 식당 주인과 한참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우리는 현관 벽에 붙은 식당 주변 산책로 지도를 보면서 기다린다. 밖에는 오후 햇살이 눈부시다.

"우리는 저쪽으로 가자꾸나."

식당에서 나온 레몽이 햇빛이 사라질세라 바쁘게 우리를 재촉한다. 햇살이 더없이 따뜻한 날이다 바람도 없다. 두 노인네는 우리 앞에서 손을 꼭 잡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간다. 꼭 의좋은 남매같다. (132p)

오늘도 그녀는 나를 커다란 잡초 앞으로 데리고 가 기대에 찬 질문을 던진다. 넓적하다고 다 호박잎처럼 먹을 수 있는 게 아닌데 말이다. 한 평의 텃밭이 있다면 한국 사람들은 무엇을 심을까. 틀림없이 상추와 고추, 깻잎을 심을 것이다. 이곳 사람들이라면 무엇을 심을까. 상추와 토마토, 껍질째 먹을 수 있는 완두콩, 파를 심는다. 어느 동네 어디를 가도 똑같다. 정원 옆 조그맣게 가꾼 텃밭을 보면 어김없이 상추, 완두콩, 토마토, 파 이렇게 줄지어 서있다. 루시의 두 딸, 친구들, 낯모르는 저 산위의 사람들 할 것 없이 모두 똑같다. (21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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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사물들 - 시인의 마음에 비친 내밀한 이야기들
강정 외 지음, 허정 사진 / 한겨레출판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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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인의 사물들』 강정, 권혁웅 외 / 한겨레출판

이야기를 만드는 특별하고 내밀한 사물들

 

 

  

  누구나 그렇듯이 내 장래희망도 어릴 때부터 참 많이 바뀌었다. 학교에서 나눠준 종이에 별 의미 없이 적은 것들도 있었고, 그리 많은 주목을 받지 못한 활동에도 큰 뿌듯함을 얻어 바로 장래희망으로 직결시킨 것들도 있었다. 내가 유난히 더 되짚어 기억하는 것은 지금 내가 읽고 쓰는데 동기 부여를 해주는 (종이에 아무렇지도 않게 썼던) '작가'라는 꿈과 초등학교 때 한 번인가 종이에 썼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꿈이다. 후자는 아마, 평생 이루지 못하고 사라질 꿈이기 때문에 (물론 굳이 피 나는 노력을 하여 이루고 싶지는 않은 꿈이기 때문에) 왠지 아련하고 잊지 못할 추억이기도 하다.

  악기 하나는 꼭 배우게 했던 엄마들의 노력 탓에, 울며 겨자 먹기로 피아노를 배웠던 기억이 난다. 연습을 안 하고 실수 연발에 다그치던 과외 선생님은 너무나 싫었다. 글쎄, 피아노에 대한 흥미가 별로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남들과는 다른 것을 배우고 싶었다. 남들 다 치는 피아노 말고, 뭔가 특별한 것.

 그 바람이 초등학교 고학년 때쯤 이루어졌던 것 같다. '특기 적성'시간에 내 손에 들어오게 된 싸구려 바이올린. 작은 몸에 맞춰 나온 연습용 바이올린이었지만 내 눈에 그 특이한 악기는 번쩍번쩍 윤이 났다. 말꼬리로 만든 활에 송진을 마구 비벼서 바이올린 줄에 그으면 야릇한 소리가 났다. 손가락에 힘을 주어 줄의 다른 곳을 누르고, 활을 그으면 소리가 달라졌다. 줄에 누른 손가락을 떨어 음을 더욱 멋지게 내는 선생님의 음악과는 다르게, 나와 내 친구들의 소리는 굉장히 밋밋했지만, 간단한 음으로 이루어진 음악들을 - 아마도 미뉴에트일 것을 - 신나게 연주했다. 그리고 어찌 된 이유인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2년도 채 되지 않게 연주하고 그만두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특별한 추억을 상기시키는 사물들이 있다. 지금은 사라진 시대의 사물들, 그리고 조금씩 변형되어 다른 이름으로 자리 잡게 된 사물들....... 그리고 나의 사물들 중 하나는 아직도 우리 집 창고 속에 줄이 끊어진 채로 있는 '바이올린'이다. 그 사물들을 보고 이야기를 끄집어내며 '옛날 생각'을 하는 건 언제나 정겹다. 심지어 남의 이야기까지도 정겹다. 시인들의 특별하고 내밀한 추억들이 담긴 『시인의 사물들』이 유독 내 마음에 다가온 것은 '시인'들의 멋진 문장들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감성을 투영한 '사물들'이 내게도 정겹게 다가왔기 때문이기도 했다.

  언젠가 그 독특함에 굳이 구매하고 싶어 안달을 했던 '타자기', 그리고 내게도 특별한 물건인 '카메라',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 '카세트테이프' 같은 사물들이 다양한 주제 안에서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담은채 이야기된다. '살다, 삶', '보다, 시선', '열다, 세계', '쌓다, 축적', '원하다, 욕망'의 주제로 묶인 이 사물들이, 내가 항상 부러워 하던 시인의 '우월한' 시선을 만났다. 이 책을 읽고 나의 사물들과 다른 사람들의 사물들을 엮어보고 싶어졌다. 시인들의 독특한 시선으로 능수능란한 글이 나오지는 못하겠지만, 누구에게나 특별한 추억을 담은 것들은 있을 것이기에 나는 묻고 싶다. "당신의 사물들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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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수다한 흔적과 파편과 그로 인한 미세한 파문들의 반향을 꼼꼼히 관찰하는 일. 그건 결국 내가 대하는 세계와 인간의 심리적, 정신적 점막들을 살펴 헤아리는 일이 된다. 그때 돋보기는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익히 알다시피 돋보기로 빛을 흑점에 모아 열기를 투과시키면 뭔가를 불태울 수도 있다. 나는 어쩌면 태양을 정면으로 받으며 서서 뭔가를 태우고 싶어 하는 건지도 모른다. 살면서 놓쳐버린 것들, 저질렀던 과오들, 화를 돋우고 심신을 절망케 하는 그 모든 허구의 뒷담화 따위를.

돋보기가 돌연 무섭다. (17p, 돋보기 - 강정)

찌는 수직으로 솟고 그 자세 그대로 가라앉는다. 흐트러짐이 없다. 선방 수좌처럼 늘 꼿꼿한 허리를 세우고 있는 찌 위에 꿈과 후회와 웬수 같은 기억들을 올리고 되잖은 양심 같은 것들도 올려본다. 그래도 선명한 빨강의 찌 끝, 찌톱을 수면에 살짝 드러낸 직립의 자세는 무너지는 법이 없다. 때로 그 무겁다는 연애와 돈 따위를 올려도 마찬가지다.밤이 왔다. 찌톱에 케미라이트를 꽂아 불을 밝힌다. 파란 찌불은 수면에 별처럼 떠서 깜빡거린다. 이제 머잖아 어신이 올 것이다. 아니 어쩌면 밤새도록 한 번도 오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쁜 애인을 보듯 찌를 본다. 어, 그런데 어쩐 일인가? 거기 유체 이탈이래도 한 듯 내가, 당신이, 세상을 살아가는 온갖 것들이 서 있는 게 아닌가? 나날이 힘겨워지는 밥벌이며 보살펴야 할 가족이며 의무들을 추처럼 달고서는, 훨훨 어디 다른 곳으로 다른 것이 되어 날아가고 싶은 욕망을 팽팽히 견디면서는, 깊디깊은 제각기의 삶 속에, 줄이 끊어지기 전까지는 결코 무너질 수 없는 직립의 자세로. (48p, 찌 - 전동균)

무엇이든, 마지막 하나만 남았을 때의 불안감을 나는 알고 있다. 빨래를 하지 않아 옷장 속에 한 장만 남아 있는 속옷이라든가, 정류장까지 죽도록 뛰어야 탈 수 있는 한 대 뿐인 막차라든가. 이제야 배가 좀 채워지는구나 싶은데 딱 한 숟갈만 남은 뜨끈한 밥이라든가, 하나만 더 있었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 테고 하나가 더 필요하므로 불만인 무엇들.둘이 남았을 때는 모르다가 하나만 사라졌는데도 보이는 다른 하나의 커다란 공백. 이 '마지막'과 '하나' 사이에 놓인 긴장감이 싫어서, 또 긴장감이 불러오는 상상이 귀찮아서 우리는 늘 미래를 준비한다. 그러나 길을 물어보기 위해 뒤에서 어깨를 두드리는 타인의 차가운 손처럼, 모든 '마지막 하나'는 불현듯 찾아오는 법이다. (84p, 성냥 - 정영효)

바깥에서 밥을 먹으면 식후 커피까지 합하여 거의 만 원 가까운 돈이 빠져나간다. 사랑 때문이 아니라, 돈 때문에 싸는 도시락인가? 농담도 걸어보지만, 도시락에는 농담이 별로 없다. 거기에는 삶의 무게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대체로 슬픔의 맛이다. 도시락에는 만 원에 비할 수 없는 누군가의 손가락이 묻어 있을 것이다. 역시, 열심히 살아야 하는가. 그냥, 도시락처럼 얌전히만 살고 싶은데. 내일도 도시락처럼 담겨 우리는 출근을 하겠지만, 되도록 슬프지는 않기로 한다. 입에 넣어 오래 씹으면 찬 반찬도 결국 고유한 맛을 낸다. 모든 맛에는 슬플 틈이 없다. 도시락은 그런 것이다. (175p, 도시락 - 서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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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고 사랑하고 고양이하라 - 6개국 30여 곳 80일간의 고양이 여행
이용한 지음 / 북폴리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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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고 사랑하고 고양이하라』 이용한 / 북폴리오

고양이와 함께, 놀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관심 밖의 일들은 생각보다 우리 눈에 잘 들어오지 않은 채, 그렇게 흘러간다. 우리 곁에 항상 있었을법한 모든 것들이 그렇다. 이전엔 그리 마음을 쓰지 않았던 동물들도 요즘은 참 잘 보인다. 고양이도 그중 하난데, 얼마 전엔 운전 연습을 핑계로 엄마 차를 몰다가 드넓은 차도에 갑자기 튀어나온 고양이를 거의 칠뻔했다. 같이 타고 있던 언니는 얼마 전 로드킬 당한 고양이 시체를 봤던 기억을 이야기했다. 사람인 우리에게 아늑한 보금자리인 아파트 단지는 그들에게 잠시라도 죽게 만들 수 있는 위험한 곳이었다. 차가운 보도블록과 더러운 쓰레기통이 있는 이곳, 고양이들도 자신들에게 적합하지 않은 서식지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그들이 애처롭게 느껴졌다. 관심이 생기니 그들의 뒷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양이에게 지극한 관심 (이경우엔 관심의 정도보다는 중독이라 볼 수도 있겠다)이 있는 저자는 그들의 사소한 모습까지 기가 막히게 잘 포착해낸다. 어느 날 같은 곳을 여행한 친구와 그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고양이랑 잘 놀다 왔다."라는 저자의 말에 친구는 "고양이 못 봤는데"라고 답했다. 저자의 책을 꽉 채워버린 수많은 고양이들은 그의 큰 '관심'으로 특화된 넓은 레이더망에 당연히 걸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고양이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걸려들 수 없었던 곳이고.

 

 

  『여행하고 사랑하고 고양이하라』는 모로코, 터키 이스탄불, 일본, 인도, 라오스의 고양이들을 만난 기록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편안한 모습이었다. 사람들이 챙겨주는 먹이를 먹으며, 상냥하게 발라당 - 애교를 떨고, 또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닌다. 국가의 특색과 문화가 고이 배인 마을 속에서 거기 사는 사람들과 천천히 어우러지며 살아간다. 우리나라와는 다른 현실에 저자는 감탄하고 또 감동한다. 길냥이의 현실에 안타까워하면서도 나서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모르던 '애묘인'의 고충이 있었을 것이다. 고양이만을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는 활동의 특성상 많은 불만을 들었을지 모른다. 그가 다른 나라의 편안한 '고양이 세상'을 보고 남긴 글들의 이면에는, 고양이들이 천대받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시선도 담겼다.


  그가 중독된 '고양이'에 관한 많은 책들은,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애묘인들에게 더없이 고마운 선물인듯하다. (고양이 책을 사 모으는 이웃님이 생각이 난다.) 페이지를 가득 채우는 고양이 사진들의 향연이 절로 미소를 짓게 만든다. 그리고 단순한 말장난으로 시작됐을지 모를 '고양이하라'라는 제목의 한 구절에 묘하게 호감이 간다. 고양이하라 - 고양이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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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노래하고 고양이하라. 이곳에서만이라도 고양이를 누려라. 여기서는 그 누구도 고양이에게 먹을 것을 준다고 타박하는 사람이 없다. 먹을 것을 주면 고양이 꼬인다고 욕설을 퍼붓는 사람도 없다. 당연하게도 사람들이 먹을 것을 주니 고양이들은 쓰레기를 뒤지지 않는다. 이스탄불에서는 고양이에게 해코지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학대가 없으니 고양이들은 사람들에게 상냥하고 애교를 부린다. 사람들은 어디서나 고양이를 쓰다듬고 껴안고 장난을 친다.

그러니 이곳에서는 맘 놓고 길거리에서 고양이를 사랑해도 된다. (128p)



해변의 고양이들이 사는 방식은 방파제 고양이들이 사는 방식과 똑같다. 바닷가에서 파도에 떠밀려온 물고기 사체나 음식 쓰레기를 먹고 사는 것이다. 녀석들은 소라와 조개류는 물론 해초까지 닥치는 대로 먹어치운다. 실제로 이곳에 사는 고양이 배설물에서 우뭇가사리 같은 해초가 발견되기도 한다. 해변에 생선 비빔밥을 내놓은 사람은 아마도 이런 고양이들에게 측은지심을 느꼈으리라.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도 그것을 느꼈다. 측은하지만 갸륵한 그들의 묘생을. (202p)



인도에 가면 보게 될 터이지만, 거리에는 개나 염소, 닭과 소는 물론 고양이까지 온갖 동물이 함께 살아간다. 고양이에게 인도는 결코 살기 좋은 곳이 아니다. 무엇보다 길거리 생태계를 지배하는 개들 때문이다. 고양이는 개에게 밀려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의 고양이는 느긋하고 평화롭기까지 하다. 인도에서는 고양이를 학대하거나 고양이를 못살게 구는 행위가 거의 없다. 이건 고양이라서가 아니라 모든 동물이 공평하다. 인도에서는 골목마다 길거리 동물을 위해 밥을 내놓곤 한다. 내가 감동을 받은 것은 바로 그것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동물에게 나누고 베푼다는 것.

사실 경제적으로는 우리가 인도 사람들보다 훨씬 풍족한 편이다. 그러나 우리는 대체로 '있는' 사람들일수록 더 베풀 줄 모른다. 손에 꼭 쥔 것들을 요만큼도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없이 사는 사람들이 없이 사는 동물들의 처지를 이해하기 때문일까. 인도에 가면 이 지구가 인간만이 사는 별이 아니라 모든 동물과 식물과 사람이 함께 사는 곳이란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인도의 고양이는 한국의 고양이보다 훨씬 행복해 보인다. (32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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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여행법 - 세상의 모든 길들
미셸 옹프레 지음, 강현주 옮김 / 세상의모든길들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철학자의 여행법> 미셸 옹프레 / 세상의 모든 길들 (2013.3.15)

정해진 장소를 따라, 사이를 가로지르며, 찬란한 순간을 맛보는

 

 

 

 

  ​'여행'이라는 말 한마디로 가슴 떨리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누군가는 가족들과 오랜만에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누군가는 일상의 지루함을 탈피하기 위해서, 누군가는 목표했던 곳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곤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여행은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여행자의 상황, 기분, 준비과정에 따라서 가지각색이겠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부터 '기쁨'과 '만족'을 얻는다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혹여 그 기쁨에 더하여 큰 만족을 얻고 싶다면, 그 답은 '여행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철학자의 여행법'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의 내용을 한줄로 함축해보면, 여행이란 '소크라테스의 다이모니아가 이끄는 대로 니체의 원근법으로 세상을 보고 바슐라르의 상상력으로 세상을 해석하며 사이(entre-deux)의 시공간을 꿈처럼 떠다니다가 현실 속 이타카로 귀환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해놓으니 굉장히 어려운 철학서인듯하지만, 읽는데 어렵지는 않다. 대부분의 철학적 상식들은 주석이 포함되어 있으며, 본문은 주옥같은 문장들과 함께 물 흐르듯 읽을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자아에 대한 탐험'이라 말할 수 있다. 이 책에서의 여행은 자신을 돌아보고 또 다른 상황에서의 자신을 직면하고, 자아가 이끄는 대로 나아가는 것이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나'를 잊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고 말한다. 그런 경우 자신을 잊지 못함은 물론이고, 가장 두려웠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유목민의 기질을 타고났기 때문에 여행을 갈망하고 또 갈망한다. 여행의 장소를 정할 때부터 우리는 흥미로운 경험을 시작하게 되는데, 우리가 여행할 지점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장소들에 의해 우리가 선택된다는 것이다. 우리 기억 속에 뿌리 깊이 존재하는 무언가가 갑자기 어떤 감정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여행의 시작, 그것은 딱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다. 그리고 여행자는 그때부터 '사이'의 상황에 돌입하게 된다. '사이'의 상황이란, "더 이상 떠나온 장소에 있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우리가 갈망하던 장소에 아직 도착하지도 않은" 공간이다. 그곳은 사람들이 오가며 무가치한 말을 주고받는 곳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목적지가 다른 누군가의 출발지가 되는 새로운 공간, 새로운 공동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교차의 장소일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꿈꾸던 장소에 도착한다. 이후 수많은 감정들이 뒤섞이는 여행, 그 순간들은 "세공해야 할 원석과 같은 기억"이다. 그래서 어떤 것으로든 가장 편한 방법으로 기록해야 한다. 냄새와 향, 소리, 맛, 시각과 같은 모든 감정들을 사진이나 그림, 시, 녹음 등으로 기록한다. 그것에 대한 기록은 "여행을 어느 정도 불멸시키고, 강렬한 순간들을 고정시킨다."

  <철학자의 여행법>​은 여행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 그리고 여행의 기억을 빛바래게 하는 위험한 행동들 몇몇을 언급하면서, 철학적 맥락에서의 '참 여행'을 말하고 있다. 떠나고자 하는 용기는 있지만 시간이 잘 나지 않아서 쉽게 떠나진 못하는 오늘 우리의 '여행'. 그러나 갑자기 뭔가에 끌린 듯이 떠나게 되는 여행에서의 빛나는 순간을 재창조하기 위한 생각을 제공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선, 여행의 모든 순간이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여행을 하는 도중, 어떤 책을 읽어야만 한다면 난 이 책을 고를 것이다. 이 책에 담긴 생각들은, 다른 많은 물품들을 제외한 오로지 내 마음을 위한 '준비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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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하고 있는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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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일종의 시작 의식과도 같다. 독서는 이교도의 신비를 밝혀 준다. 욕구가 점점 더 커질수록 한층 정제되고 세련되고 독창적인 기쁨을 맛볼 수 있다. 인위적이거나 문화적인 환희를 경험할 수 있으려면 자연스러운 욕구가 넘쳐흘러야 하고, 그럴 수 있을 때 비로소 관능적인 여행이 가능해진다.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는 장소에 도착하게 되면, 우리는 존재론적인 공허함을 느낄 수도 있다. 여행지에서 우리는 단지 이미 가지고 있던 것만을 발견할 수 있다. 여행자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을 때 여행은 공허해진다. 따라서 풍부한 준비는 뛰어난 여행을 만든다. (33p)

고장나 있던 모든 감각들을 여행을 통해 다시 살아나게 하고 그것을 글로 정리할 때 이 모든 훈련이 가능하다. 거대한 강 하구의 반짝거리는 물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서, 트란실바니아 상공을 날고 있는 비행기의 둥근 유리창 옆에서, 수천 헥타르에 달하는 아프리카 평야 한복판에 외롭게 자리 잡은 어느 카페에서, 피곤한 육체 위로 공기를 낮게 보내 주는 선풍기가 달린 이집트의 호텔 방이나 공항 대기실에서 시를 쓰거나 구겨진 종이에 글을 써 보는 것은 단어에 대한 연금술적인 능력을 요구한다. 백열하는 여행의 소재를 경험이라는 도가니 속에 쏟아부어서 한 줌의 이미지라는 황금을 얻는 것이다. (39p)

​온갖 정보들이 끝없이 밀려들기 때문에 우리는 절대로 모든 정보들을 다 붙잡을 수는 없다. 여행은 사실 우리의 오감을 확대시키는 기회를 제공한다. 더 생생하게 느끼거나 듣게 되고, 더 강력하게 쳐다보거나 지켜보게 되고, 더 주의 깊게 맛보거나 만져 보게 된다. 새로운 경험들을 준비하느라 불안하기도 하고 긴장하기도 한 몸은 평소보다 더 많은 것들을 기록하게 된다. 매일의 사소한 일과보다는 현상학적 시련을 더 많이 경험하게 된다. 일상 속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의지와 의식의 작용에 의해서 자신이 제한된 존재임을 깨닫고, 결정하지 못한 자질구레한 일들 속에서 허무함을 경험한다. 그러나 여행을 하는 동안 우리의 감각은 완전히 기능하게 된다. 감동, 애정, 열정, 놀람, 의문, 감탄, 기쁨, 경악, 이 모든 감정들이 아름답고 숭고하고 낯설고 색다른 경험과 뒤섞인다. (67p)

우리가 우리 자신과의 동행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길을 나설 때 우리의 영혼 속에 담겨 있던 것들은 여행에서 돌아올 때쯤이면 열 배 정도 더 커져 있게 된다. 우리 안에 있던 고통과 상처, 권태와 번민, 아픔과 불행, 슬픔과 우울은 여행을 하는 도중에 점점 더 확대된다. 세계일주 여행을 한다고 해도 이런 것들은 치유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정점에 달하게 되고, 우리는 그 깊은 구렁텅이 속으로 점점 더 빠져들게 된다. 여행은 우리에게 치료제로 작용하기보다는 우리 존재에 대해서 정의해주고,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해준다. 단지 자신을 잊기 위해서 떠난다면 자신, 그것도 가장 직면하기 두려웠던 자신을 직면하게 될 위험이 더욱 크다. (10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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