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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디벨로퍼들 - 부동산 개발로 대박 신화를 쓰는 사람들
조성근 지음 / 이다미디어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무엇이 디벨로퍼를 화제에 오르게 만들까? 곰곰히 생각하던 중 이 책을 읽게되면서 실마리가 잡히는 것 같다. 부동산 개발업자라고 풀어내려가면서 이해할 수 있는 이 단어에는 대박, 간교함, 비리 등 온갖 이미지가 중첩되는 것 같다.
어쨌든 큰 돈을 벌 수 있는 신종 직업이 부상하려면 몇가지 조건이 맞아야 한다.
하나는 인적 조건이다. 디벨로퍼들의 출신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건설업체다. IMF를 맞아 건설업체들이 대거 분양사업을 포기하면서 기존에 해당 업무를 담당하던 사람들이 자의반 타의반 자생의 길을 가게 되었다. 같은 일을 오랫동안 해왔기에 노하우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고 건설업이란 분야의 특성상 인맥의 두터움도 꽤 있었던 것이 좋은 조건이었다.
다른 하나는 기존에 분양대행업과 같이 건설업체들이 궂은 일이라고 직접 하지않으려던 부분을 맡아오면서 실력을 키웠던 사람들이다. 통산 건설에는 땅매입, 인허가 등 과정이 불투명하고 지저분하게 진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어느 정도 활동해왔다.
이들이 시류에 맞추어 삼삼오오 모이면서 소집단을 이루었는데 기존의 조직과는 다르게 규모가 작아서 의사결정이 빠르고 전문성이 뛰어나며 나아가 리스크를 안고라도 적극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려는 의욕 또한 강했다고 보여진다.
다음으로는 물적조건이다. 앞서 건설사들이 시행기능을 대거 포기하면서 나온 공백은 누군가가 메워줘야 할 상황이 되었다. 당시 건설업에 큰 변화를 준 것은 김대중이 시행한 분양가 자율화였다. 이는 바닥에 이른 건설업을 살리기 위해 수익성을 높여주자 바꾸어 말하면 좀 바가지를 씌워도 뭐라고 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정책이었다. 노태우가 대량공급과 부동산 가격 통제를 통해 당시 거품을 꺼트렸던 것에 정 반대 방향의 정책이다. 어쨌든 분양가의 자율화는 고가격을 가능하게 하면서 소비자들에게 그만큼 기대심리를 높였다. 가격 상승이라는 금전적 기대도 있겠지만 소비의 질을 높이고 싶다는 기대도 있다.
대형사 중 앞선 회사들은 먼저 브랜드를 만들고 광고를 통해 이를 소비자에게 각인시켜 자산으로 키워나갔다. 래미안, 롯데캐슬과 같은 브랜드는 이와 같이 상품의 질에 대한 개념을 소비자에게 팔아먹은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디벨로퍼들은 컨셉을 창조하게 된다.
테크노마트, 밀리오레 등은 전통적 상가가 보여주는 단조로움을 극복하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만들어내었다. 그동안 물질이 없이 살던 사회에서는 주는대로 먹을 수 밖에 없고 아무렇게나 거주하게 된다. 하지만 물질이 풍요롭게 되면 질을 따지게 되고 브랜드가 그만큼 중시된다. 똑 같은 현상이 아파트의 브랜드, 상가의 컨셉에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잘 나가는 디벨로퍼들은 스스로를 업자로 규정하지 않고 주거문화의 혁신가로 자리 매김한다고 한다.
좋은 개념을 만들면 소비자들이 모이고 이들의 돈을 모으고 다시 이를 기반으로 은행에서 차입하면 멋지게 성공할 수 있게 된다. 바야흐로 제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고객의 마음을 누가 잡을 수 있느냐가 훨씬 중요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나이키와 같은 기업이 브랜드와 제품 개발에 치중하고 노가다 성인 제조는 임금이 싼 아시아권에 맡기는 것처럼 고객을 잡을 수 있다면 제조는 일반 시공사들이 떠 맡을 수 있도록 사업환경이 바뀌어 버렸다.
특히 저금리 속에서 대기업들의 저투자로 빌려줄 곳을 찾지 못한 금융권이 돈의 방향을 부동산으로 틀면서 더 힘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런 조건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부동산 업계로 끌어들였는데 모두가 성공한 것은 아니다. 80:20 법칙처럼 성공은 더 용감하고 더 지혜로운 소수에게 몰리게 되어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사장님들의 면면을 보면 솔직히 대기업의 임원들과는 무척 다른 인상을 받게 된다. 가장 강한 부분은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끈기 있게 매달릴 것 같은 존재라는 점이다.
땅을 팔지 않는 지주를 끌고 술먹다가 차로 동반자살 시도한 경우나 알박기 하고 끊임없이 돈 요구하기에 살인의 충동을 느꼈다는 경우 등 다양한 어려움이 나타난다. 읽어나가다 보면 그래 당신들은 그만큼 돈 벌 자격이 있구나 하는 끄덕임도 가지게 한다.
최근의 부동산 경기를 보면서 아예 1년간 사업을 쉬기도 하면서 많은 이들은 해외로 눈을 돌렸다고 한다. 가끔씩 뜨는 중국 부동산 광고들이 새로운 먹거리라고 한다. 과연 도날드 트럼프 만한 명성을 가진 한국형 디벨로퍼가 나올지는 더 두고 볼 일이겠지만 한편으로 기대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