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훔친 미술 - 그림으로 보는 세계사의 결정적 순간
이진숙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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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만감에 저자의 다른 책에 관심 증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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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레 도미에(1808. 2. 26 ~ 1879. 2. 10 ) 프랑스 화가.  이 화가를 알게 된 오늘 하루는 '보람찬' 날이라고나 할까..

 

참고가 될 멋진 블로그도 이미 있다.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elmut_lang&logNo=220851307244

 

 

위의 그림<가르강튀아(1831)>에 대한 설명은 다음의 책에 있다.

 

 

 

 

 

 

 

 

 

 

 

 

 

 

가르강튀아는 볼살이 늘어져 서양배처럼 생겼다고 '배의 왕'이라고 놀림을 받은 루이 필리프를 닮았다. 가르강튀아의 특징은 많이 먹고 많이 싼다는 것. 그는 '세금 흡입가'로 등장해서 가난한 자들의 세금을 꿀꺽꿀꺽 끝도 없이 삼킨다. 세금이 빨려 올라가는 벨트 아래에는 그 아래 떨어진 떡고물을 줍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 정도 부패는 아무것도 아니다. 왕좌라는 거대한 변기로 그는 문서들을 배설하고 있는데, 이 문서들을 든 사람들이 문이 닫혀 어두운 국회로 뛰어간다.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세금을 거둬들여 흡입한 그가 생산한 것은 무수한 측근들에게 보장된 대단한 특권들이었다. 결국 늙고 무능력한 왕, 루이 필리프의 실정은 파리를 또 한 번 혁명의 소용돌이에 빠뜨린다. 도미에는 (중략) 이 한 편의 그림 때문에 6개월 간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1846년과 1847년에는 흉작과 경제 불황이 연이어 닥쳐왔고, 가난한 하층민의 허리는 더욱 휘었다. 빈곤층 문제에 대해 다양한 방식의 대안이 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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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bina 2016-12-07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와~~친절한 미술관, 나마님 말대로 정말 멋진 블로그 입니다.
200년 전 상황이 현재 우리 나라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니...
이 엄청난 퇴보의 역사를 어쩌면 좋을까요...


nama 2016-12-08 07:33   좋아요 0 | URL
이런 역사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게 기가 막힐 뿐입니다.
이래저래 골병드는 계절이네요.
 

 

 

 

 

 

 

 

 

 

 

 

 

 

 

역사와 미술을 아우르는 이 책을 '대작'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기껏 이런 구절만 눈에 들어온다.

 

로렌초는 첫째 아들에게는 정치 쪽을, 둘째 아들에게는 교회쪽을 맡길 심산이었다. 바보에게 정치를 맡겼으니 실패가, 똘똘이에게 교회를 맡겼으니 성공이 뒤따르는 것은 당연했다. 로렌초가 여러 방면으로 손쓴 결과 조반니는 일찌감치 교회의 성직자가 된다. 여덟 살밖에 되지 않은 꼬마 조반니는 프랑스 푸아티에 근처 르 팽 수도원의 주교가 되고 열세 살에는 추기경이 된다. 이 말도 안 되는 일은 메디치 가문과 교회가 쌓아 온 오랜 인맥과 돈줄이 어우러져 만든 기괴한 작품이었다. 손해를 입는 거래를 마다하지 않고 정성을 들인 선물 공세로 로렌초는 교황으로 하여금 추기경 나이 제한을 철페시키고, 열세 살 아들을 추기경으로 만든다. 1513년 서른일곱이었던 조반니는 마침내 217대 교황 레오 10세(재위1513~1521)가 된다.

 

언제쯤 이 블랙홀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요즘은 책을 읽어도 읽는 게 아니다.

 

 

2016.12.10 기록 추가

 

세라 바트만은 남아프리카 코이코이족의 딸로 태어나 유아세례를 받았으니 백인들과 똑같은 하느님의 딸이다. 그러나 그녀는 1810년 21세의 나이로 돈을 벌게 해 준다는 꾐에 넘어가 영국으로 오게 된다. 남다른 신체적 특성을 지녔던 그녀는 당시 유행하던 프리크쇼에서 전시되어 구경거리가 되고 말았다. 여성으로서의 수치심 따위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1815년 영국에서 노예해방운동이 일자 그녀는 이번에는 파리로 팔려 갔다. 그곳에서 26세의 나이로 죽기까지 그녀는 구경거리로 살아야 했다. 그녀가 죽은 후의 이야기는 더 기막히다. 나폴레옹의 전담의 쿠르비에는 그녀의 사체를 해부했다. 그리고 그녀가 '인간'이라는 결론을 내려 줬다. 이 일은 서구인들이 아프리카 사람들을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다. 죽어서도 그녀는 박제되어 파리의 인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었다. 2002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넬슨 만델가라 프랑스 대통령 미테랑과 칠 년가 협의한 끝에 시신을 거두는데 성공해서 그녀는 192년간의 치욕적인 여정을 마치고 비로소 고국으로 돌아왔다. 제국주의가 만들어 낸 여러 상처는 아직도 충분히 해소되지 않았다.

 

 

출처;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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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쓸쓸해지겠네....

 

 

http://blog.aladin.co.kr/nama/6175742

 

 

http://www.bbc.com/news/entertainment-arts-1281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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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어디를 갔다가 돌아오는 중,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곡을 가만히 듣고 있자니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 이 음악은...발리 음악이네." 갑자기 내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잠시 후 디제이 전기현의 차분한 목소리, 그래 발리 음악이었다.

 

발리 음악을 알아본 나 자신이 신기하긴 했지만, 발리를 다니다보면 늘 듣게 되는 음악이 Gus Teja 의 연주라는 것을 이제야 알아본 나 자신이 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는 발리를 가기 전에 알았어야 했다. 온갖 넘치는 정보에 치일세라 여행안내서나 인터넷검색 따위를 일부러 멀리했더니 기본적인 정보조차 얻지 못했지 싶다. 그 유명한 Gus Teja 공연을 한번쯤 볼 수도 있었을 텐데...

 

거리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이 내 몸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다는 건, 그래도 흥미롭긴 하다. 비좁아터진 발리 우붓의 거리를 하릴없이 매일 수 킬로미터씩 거닐었던 덕일 것이다. 그리고 다음의 악기.

 

 

 

 

 

딩동딩동 두들겨본 소리가 저 깊은 기억이라는 창고에 남아 있다가 제 곡조를 알아보지 않았을까. 몸으로 하는 것은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다. 몸이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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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크 2016-11-05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들어보는데.. 음악이 좋군요... sg 워너비의 내사람이 덩달아 생각나기도 하구요..

nama 2016-11-05 15:45   좋아요 1 | URL
찾아서 들어보니 워너비의 `내사람`이 심금을 진하게 울리네요. 인간의 목소리가 최고의 악기라는 말이 이해가 되네요.

sabina 2016-11-19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덕분에 음악 감상 잘했습니다.^^
막 해가 진 저녁시간, 텅 빈 집에서 혼자 들으니, 분위기까지 어울어져 참 좋았네요.
악기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청아하고 애상적인소리가
지난 날을 회상이라도 해야 할 것 처럼 마음을 어루만집니다.^^

nama 2016-11-20 14:21   좋아요 0 | URL
음반을 사왔어야 했는데...다음에 혹여 다시 기회가 된다면 꼭 음반을 사와서 친구에게 선물로 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