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스치앙 살가두, 나의 땅에서 온 지구로
세바스치앙 살가두.이자벨 프랑크 지음, 이세진 옮김 / 솔빛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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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를 느끼게 함. `자이언트거북 앞에서 사진을 먼저 찍기보다는 하루 종일 손바닥과 무릎으로 땅을 짚고 납작하게 엎드려 스스로 거북이 되어 기다`렸다는 사진의 거장이자 인생의 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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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다가 울다가...재미있는 영화다. 너무나 친근한 소재, 이제사 이런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육이오 이후 10년만 빼면 나머지는 내가 살아왔던 시대와 겹치기 때문이다.

 

흥남 부두에서 군함을 타고 피난 나오는 장면은, 수백 번이나 들었던 우리 어머니의 피난 이야기를 그대로 그려내고 있다. 딸만 여섯인 우리 어머니 형제들은 모두 남으로 피난을 나왔지만 유일하게 외할머니만은 남으로 내려오시지 못했다. 팔순이 넘은 막내 이모는 지금도 육이오적 얘기가 나오면 함께 내려오시지 못한 외할머니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신다. 큰 이모는 피난 중에 막내 아들을 전라남도 해남에서 출산했는데 그곳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해남이라는 아명을 붙여 지금도 본명 대신 이 이름으로 불린다.

 

영화의 한 장면. 미군들이 탄 차량을 아이들이 뒤쫓으며 '기브미초코렛'하는 장면은 내가 어렸을 적 모습 그대로이다. 오빠들을 포함한 그 또래의 남자아이들이 흔히 하던 행동이었다. 우리 동네는 멀지 않은 곳에 미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곳이라 미군들을 보는 것은 그냥 일상이었다. 우리는 자칭 국제도시에서 살았다.

 

서독에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 대학 친구의 언니가 파독 간호사였는데 튀니지 남자를 만나서 튀니지로 시집을 갔다...정도.

 

베트남전엔 우리 작은아버지가 군인으로 참전했었다. 동네에도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가 살았는데 우리 부모님과 매우 친하게 지내셨다.

 

세월이 흘러 1983년. 이산가족상봉이 시작되던 해. 아버지와 나는 여의도 KBS 방송국에 갔었다.

부모형제를 북에 두고 남동생과 단둘이 피난나온 아버지는, 그러나 이산가족 만남을 신청하지는 않으셨다. 그 이유를 여쭤봤던가, 는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나는 고작 이 정도의 자식이었구나, 새삼 영화를 보면서 깨달았다. 할머니, 할아버지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한 것만 서운해했지 부모님의 마음을 읽을 줄은 몰랐다.

 

주~욱 나열하다보니.. 나도 나이를 먹긴 먹었나보다. 공감가는 부분도 많고. 그런데 옆에 앉은 딸아이도 영화에 푹 빠져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하는 말, " 나 눈물 흘리면서 봤어."

 

* 부부싸움하다가 국기하강식이 나오자 경건한 모드로 전환되는 장면이 무척 코믹했다. 저런 시절이 있었지 젠장. 그 시대를 말해주는 또 하나의 소재, 야간 통행금지가 빠진 게 좀 서운하다. 밤12시면 거리가 깨끗하게 정리되는 일상의 모습을 한 장면 넣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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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5-01-02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늦기 전에 아이까지 데리고 가서 이 영화 보려고요. 6.25나 베트남전은 저는 들어서만 알고 있지만 nama님 올려주신 글 읽어보니 1983년 이산가족찾기는 저도 기억에 있네요. 저희 집이 그때 방송국 근처에 살아서 버스 타고 학교갈때 매일 지나갔는데 방송국 건물 벽에 다닥다닥 빈틈없이 붙어있던 포스터를 보며 다녔지요. 미군들 나오는 장면은 제 남편도 보면서 감회가 새롭겠는데요? ^^

nama 2015-01-02 10:39   좋아요 0 | URL
세대를 초월해서 공감할 수 있는 영화인 것 같아요. 딸아이가 여간해서 영화 보다가 눈물 흘리는 아이가 아닌데 눈물 흘리며 봤다기에 저도 약간 놀랐어요. 헐리우드영화 못지 않게 심심할 틈이 없어요. 가족영화로는 대만족입니다.
 

며칠 전부터 마음 먹었던 공예트렌드페어에 다녀왔다.(나보다는 남편이 더 관심을 기울였다.) 코엑스에서 열렸다. 많은 작품들이 전시, 판매되고 있었는데 일일이 다 카메라에 담지는 못했다. 특히 도자기류가 상당히 많았는데 처음엔 흥미롭다가 이내 관심이 시들어버렸다. 점점 피곤해졌기 때문이다. 이 분야에서도 살아남기가 만만치 않겠구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 내 앞가림도 힘든데 남의 앞가림까지 걱정하고 있었다. 주제넘게.

 

 

얼굴컵. 부처님 얼굴 못지않은 평화가 가슴속으로 밀려든다.

 

 

귀엽다. 조카들 어렸을 적 얼굴이 떠오른다.

 

 

어디에 쓰이는 지는 모르겠다. 장식용?

 

 

 등. 생각하는 사람이 앉아 있다.

 

 

등을 앞에 놓고 기도하는 사람에게서 간절함이 느껴진다.

 

 

저 위에 뭘 올려놓으면 좋을까.

 

 

고양이 발, 돼지 발 모양의 손잡이가 재밌다.

 

 

기와집 접시 세트.

 

 

나무로 만든 과일 접시. 포크 꽂이가 기발하다.

 

 

저런 발을 쳐보는 게 로망인데 딸내미가 옆에서 하는 말 "우리집과는 안 어울려."

 

 

호두까는 도구. 마침 집에 호두가 있길래 호두 하나 밑에 넣어봤다. 이건 19,000원 주고 구입.

그 돈 준다고 해도 내가 만들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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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12-24 0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웅~ 저도 가보고 싶어요.
호두까는 도구, 그냥 손으로 만지작거려도 촉감이 참 좋을것 같아요. 저는 지금까지 호두깔때 망치로 두드려서 껍질을 깻어요 ㅋㅋ
올리신 사진 속의 작품들, 나 내꺼 했으면...^^

nama 2014-12-24 07:20   좋아요 0 | URL
실물복사기 있으면 모두 복사해서 드리고 싶습니다만...ㅎㅎ
 

 

 

출처: 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665248.html

 

'어떤 유행에도 눈 돌리지 않고, 평생 집에 틀어박혀 건축물 같은 정물만 그렸다'는 조르조 모란디(Giorgio Morandi)에 대한 기사를 신문에서 읽고 꼭 가서 봐야지, 했는데 생각보다 일찍 보게 되었다.

 

동료 결혼식을 빙자해서 영등포-남대문시장-덕수궁-조계사까지 한바퀴 돌고 왔는데, 오늘 제일 잘 한 일은 역시 모란디의 그림을 본 것이다. 기대이상이었다, 내게는.

 

뭐랄까. 처음 인상은 그림으로 빚은 정성 가득한 도자기 같았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 도자기와는 다른 깊이가 묵직하게 전해져왔다. 군더더기 없는 단순함에 화가의 집념, 고뇌, 고독 같은 게 느껴졌다. 정물화의 매력이란 이런 것이었구나, 하는 깨달음. 그간 수없이 보아왔던 정물화는 뭐였지? 이제야 비로소 정물화에 대한 안목이 생긴 느낌이 들었다.

 

전시관에 비치된 화가 소개 브로셔에 실린 모란디의 말.

"가시적인 세계에서 내가 유일하게 흥미를 느끼는 것은 공간, 빛, 색, 형태다."

"현실보다 더 추상적인 것은 없다."

 

'하늘 아래 가을의 작은 나뭇잎 이상 위대한 것은 없다.'라고 했다는 장자의 말씀이 모란디의 그림을 보며 떠올랐다. 정물화 속의 병 하나에 우주가 들어 있고 이 이상 위대한 것은 찾을 필요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장이 심한가? 그림에 빠지면 그렇게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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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11-22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저 내일 여기 갈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보면 김수근 그림 느낌이 나지 않나요? 무채색, 두터운 질감, 복잡하지 않은 구조...

nama 2014-11-23 10:03   좋아요 0 | URL
그다지 두텁지는 않구요. 원조 같은 느낌?
하나의 행성을 발견한 기분이 든다고나 할까요. 그림 그리고 싶다는 한숨 섞인 그리움도 생기고요...

hnine 2014-11-23 20:03   좋아요 0 | URL
제가 ˝박수근˝이라고 쓴다는게 ˝김수근˝이라고 썼네요 ㅠㅠ
김수근도 워낙 유명한 사람이다보니...
저 오늘 모란디 전시회 잘 다녀왔습니다 ^^

nama 2014-11-23 20:47   좋아요 0 | URL
전시회..어떠셨는지요.
허참...저도 당연 박수근으로 읽었는데요.

sabina 2014-11-23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실, 가시적인 세계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것들은 공간을 차지하고 색과 형태가
빛으로 반사되어우리눈에 들어오는 것이므로, 그분은 유일이 아니라 전부에
흥미를 느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흥미를 느끼는 세상 전부를 화가 개인적 고찰(?)에의해, 단순화시킨 공간, 비슷한
톤의 색체, 나름의 의미를 담은 병들이라는 형태로 표현한 그림인것 같아요.
세상, 인생, 혹은 나마님 말대로 우주...이런 어떤 것의 전부에서, 쓸데없는 군더더
기를 배제시킨 본연의 바탕를 표현한 느낌입니다.(아마추어의 미숙한 추측)
인간으로서는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잘 알 수 없어서 아슴프레한 색체와 뭔지
모를 것이 담겨져 있는 병들로 그려놓고,화가는 감상하는 사람들에게 답해보라고
하는게 아닐까요? ^^
...저 병들 속을 들여다 보면 뭐가 보일까요...인생이, 세상이 뭔지 알 수 있을 까요
..........

nama 2014-11-23 20:49   좋아요 0 | URL
전시회장에는 모란디에 관한 동영상을 상영하고 있었는데 그걸 보면 이 화가는 세상사에 그리 관심이 많지 않았던 듯 싶어요. 자기방에 틀어박혀 병들을 모아놓고 골똘히 생각에 잠기거나 병들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세밀하게 관찰했다고 해요. 병이라는 소품에서 자기만의 세계, 즉 우주를 느겼다고 생각돼요. 그런데 그게 왜 하필 병이었을까, 병을 통해서 세계를 본 것인지 세계를 병이라는 물체로 압축시킨 것인지, 아니면 그냥 우연인지 그 과정이 궁금하긴 했어요. 여기에는 서양미술사에 대한 지식도 필요해요.
인상 깊은 그림인 것만은 분명해요.

sabina 2014-11-23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렇군요.
이 화가에 대해 아는바 없이 그림 한 장 보고 나만의 감상에 빠져 봤네요.
나만의 감상으로 한 발 더 나가 보면, 맨 앞에 오른쪽 병이 내인생 모습과 닮
은 듯. ㅎㅎ
그러고 보니 박수근 그림 느낌이 많이 풍깁니다.
 

 

 

 

 

 

 

 

 

 

 

 

 

 

 

사진가 이상엽의 책.

 

이런저런 단상은 여러 생각거리를 준다. 그러나 카메라 얘기가 나오면,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다. 세상에는 다양한 카메라가 존재하며 다양한 사진가들이 있다는 정도만 알 수 있을 뿐.

 

느긋하게 읽으며 주말을 만끽하리라 생각하며 도서관에서 빌려왔지만 책이라고 모두 이해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만 확인할 뿐이다. 머리를 쥐어 뜯는다.

 

그러나 마지막 페이지의 몇 문장 덕에 그래도 끝까지 읽은 보람이 있었다.

 

내게 가장 좋은 카메라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손에 잡았을 때 그것이 손의 연장으로 느껴지며 파인더를 눈에 대는 순간 그것이 내 눈이라고 생각되는 카메라다. 그런 카메라가 무엇이냐고? 어떤 카메라든 꾸준히 3년만 사용하면 그렇게 된다.

 

 

또 하나 기억해야 할 니콘에 대한 얘기를 읽으면서 뜨끔했다. 지금까지 내가 사용한 세 개의 카메라가 모두 니콘이었다.ㅠㅠ

 

니콘은 전범기업이다. 모회사가 바로 제2차세계대전 당시 제로기를 만들던 대표적인 군산복합체 미쓰비시인 것이다. 미쓰비시는 군부를 등에 업고 군수장비를 만들면서 식민지에서 노동자를 강제 동원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강제징용 당해 그곳에서 일한 사람들이 많다. 임금체불과 폭력적인 노동착취로 지금도 법정 소송 중이다. 이들은 우익정치를 후원하고, 극우 매체인 <산케이신문>을 지원하며, 역사왜곡을 일삼는 극우 집단인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을 후원하고 있다. 결국 자회사 니콘은 이사회를 통해 안세홍 사진전(위안부할머니 사진 전시회)을 불허했고 우익들은 여러 방법을 동원해 전시회가 열리지 않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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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blna 2014-11-08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진기하면, 아주 오래전 도둑맞은 캐논 사진기가 생각납니다. (이것도 일본것이네요)
결혼전 친정 아버님의 선물이었는데 신혼초 우리집을 온통 뒤집어 놓은 도둑이
가져갔지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카메라를 잊지 못하는 것은 젊은날의 추억을 담는
눈으로, 3년이상 써왔기 때문인가 보네요. 나쁜 도둑... 나쁜 일본의 우익단체...

nama 2014-11-09 18:48   좋아요 0 | URL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사진을 찍고 계신지요...

sabina 2014-11-09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 뒤로 세 번을 더 샀는데 하나는 또 도둑맞고 하나는 장농 어딘가에 퇴물로
물러나 있고 마지막에 산 디지털 카메라가 요즘 사용하고 있는 것이죠.
그나마도 사용할 일이 많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