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거. 인간의 동력으로 움직이는 탈 것. 예전에는 인도에 인력거가 많았다. 초기 인도여행기를 보면 인력거를 타고 가다가 너무나 안쓰러워 인력거꾼과 자리를 바꾸어 인력거꾼을 손님 자리에 앉히고 손님인 자신이 직접 페달을 밟았노라는 얘기를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특히나 인력거꾼이 나이 많은 노인이거나 깡마르고 몰골이 초췌한 사내일 때 동정심을 자아내게 마련이다.

 

인도에서는 대부분 오토바이를 개조해 만든 오토릭샤가 여행자들의 발이 되어주고 있다. 인도여행의 좋은 점 중의 하나는 이 오토릭샤의 편리함이다. 언제 어디서나 저렴한 가격으로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는 교통수단으로 이만한 게 없다. 다만 릭샤왈라(릭샤 운전사)와 흥정을 해야하는데 그게 그리 쉽지 않고 매우 피곤할 때도 있다는 점이다. 특히나 바라나시와 같은 도시에서는 릭샤왈라의 밀당이 고난이도의 생존기술에 버금간다고나 할까. 인생 전부를 걸고 덤벼드는 듯한 지독한 릭샤왈라를 만나는 날에는 인생공부를 제대로 하게 된다.

 

마두라이. 내가 본 힌두교 사원 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미낙시사원이 있는 곳이다. 이 동네에는 아직도 사람이 밟는 페달로 움직이는 자전거를 개조한 릭샤가 남아 있었다. 마음 아파하며 타고 싶지 않은 것이 릭샤인데 우리 과일킬러여사께서 굳이 이 릭샤를 타고 가신단다. 흠, 인도는 처음이니까 그럴 수 있지. 그런데 이 릭샤왈라 할아버지는 영어를 한마디도 모르신다. 그러나 그건 중요하지 않다. 일단 손님이 있으면 태우고 보고 모르는 길이야 중간중간 행인에게 물어서 가면 되니까. 과일킬러여사와 다른 친구들이 릭샤에 오르는 것을 보고 남편과 나도 호객행위하는 릭샤에 이끌려 릭샤가 있는 곳으로 갔다. 엉? 오토릭샤인줄 알았는데 우리를 기다리는 건 그냥 릭샤였다. 여기까지 와서 거절할 수도 없고 그냥 가기로 한다. 80루피로 흥정했다.

 

얼마 가지 않아서 릭샤아저씨의 셔츠에 땀이 배기 시작했다. 다행이라면 이 릭샤왈라는 젊은 사람이어서 덜 안쓰럽고 덜 미안했다는 점이다. 과일킬러여사가 탄 릭샤는 나이 많은 노인이었는데...

 

호텔에 도착. 흥정은 80루피였지만 20루피를 얹어 100루피를 주었더니 이 젊은 릭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진다. 20루피라야 우리돈으로 400원 정도. 오토릭샤왈라였다면 이 정도의 돈에 그렇게 환한 미소를 짓지는 않는다. 그래서 조금은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제일 먼저 출발한 과일킬러여사는 한참 후 마지막으로 도착했다.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고행길이었으리라. 영어 못하는 할아버지는 길도 모르지, 각종 차량에 무시당하지...힘겹게 왔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통 큰 과일킬러여사께서 드디어 큰 일을 해내었다. 이 가련한 노인에게 500루피를 지불했다는 것이다. 돈을 제대로 쓸 줄 아는 멋진 친구구나, 새삼 감탄스런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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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ma

 

 

우리나라 할머니들 머리모양은 뽀글이 파마머리, 내 친구들 여행차림은 스카프에 선글라스, 아니면 모자에 선글라스. 나는 끝내 이 대열에 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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뭄바이 타지마할호텔 앞. 예전이나 지금이나 타지마할호텔은 당당하고 아름답다. 예전과 다른 점이라면 출입할 때 공항 검색대와 같은 곳을 통과해서 테러를 일으키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 큰 호텔에 출입문도 하나여서 매우 폐쇄적인 곳이 되어버렸다. 1층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나 한 잔 마실까했더니 그마저도 없애버려서 결국은 화장실만 들락거렸다. 90년대 중반, 가난한 여행자들에게 타지마할호텔의 화장실은 꼭 가봐야하는 장소였다. 그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품격 높은 고급 화장실이었으니까.

 

많은 인파와 장사꾼으로 가득한 넓은 타지마할호텔 앞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물건이 하나 있었다. 내 키만한 대형풍선이었다. 이 풍선은 그 크기만으로도 눈길을 끌었다. 바람이 빵빵하게 들어간 이 풍선은 밋밋하던 상상력에도 가득 바람을 불어넣었는데.....

 

상상의 나래를 펴기 시작한 건 남편이 먼저였다. 학교축제 때 이 풍선을 걸어놓으면 멋질 거라며 입맛을 다시기 시작했다. 나 역시 학교 체육대회 때 이 풍선에 학급을 나타내는 숫자를 크게 써놓고 플래카드 대신 사용한다면 매우 그럴듯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뭄바이의 유명한 빨래터인 도비가트를 가서도 머릿속에는 온통 이 알록달록한 대형풍선이 꽉 들어차 있었다. 드디어 어둑어둑해질 무렵 다시 타지마할호텔 주변에 가게되자 이번이 마지막 기회이다싶어 더이상 미룰것도 없이 어떤 풍선장수와 흥정에 들어갔다.풍선 10개가 담겨있는 한 봉지 가격은 500루피. 좀 비싸다싶어 400루피로 깎았더니 한 봉지를 더 내밀며 모두 600루피에 가져가라고 한다. 머리를 흔들었더니 순간 500루피로 떨어졌다. 같은 가격에 처음의 한 봉지가 두 봉지가 된 셈이다. 뭔가 이상했으나 가격이 절반으로 떨어지니 흐뭇한 기분이 들어 얼른 가격을 지불했다. 신이 난 남편과 나. 10미터나 갔을까. 또 다른 풍선장수가 눈앞에 등장한다.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풍선보다 자그만치 10배쯤은 큰 풍선을 우리에게 내민다. 우리가 구입한 풍선이 한 뼘 크기라면 이 풍선장수의 풍선은 덩친 큰 사내의 팔뚝만한 크기였다. 우리가 산 풍선을 보여주었더니 미처 우리가 말리기도 전에 봉지에서 한 개를 꺼내더니 입에 대고 불기 시작한다. 아뿔사, 속았구나! 우리 풍선은 아무리 바람을 빵빵하게 불어넣어도 뱀장어만한 크기도 되지 않는 작은 풍선에 불과했다. 그것도 함량미달의 병든 뱀장어같은 몰골이라니!

 

두 번째 풍선장수의 풍선에 눈길이 아주 잠시 머물렀으나 이내 거두고 말았다. 마음이 아파서였다. 순간 화가 치밀어 우리를 속인 풍선장수를 찾기 시작했다. 저쪽에서 또 한 명의 풍선장수가 다가왔다. 혹시 당신이 우리를 속였소?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더니 이 세 번째 풍선장수 얼른 자기 턱을 들어올리며 '나요?' 하는 묘한 표정을 짓는다. 자세히 보니 이 아저씨는 이마에 혹이 불거져있는 것이 우리에게 풍선을 판 그 아저씨는 아닌 것 같다. 아, 헷갈려! 이 사랄미 그 사람같고 그 사람이 이 사람같은데 아닌것 같고 긴것 같고...모르겠다. 확실한 건 우리가 속았다는 사실 뿐이다.

 

찻집에 들어가 친구들에게 얘기하니 배꼽을 잡는다. 누군가 풍선 하나를 불어보았다. 다 불기도 전에 피식 터져버리는 바람에 다시 배꼽을 잡는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한낱 쓰레기에 불과한 비닐조각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렇게 속고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풍선의 압도적인 크기에 부풀대로 부풀었던 남편과 나의 상상력은 풍선과 같은 것이었다. 우리가 사람을 잘 믿는 어리숙한 사람일지도, 여행자의 기분에 들떴는지도, 늙은 선생으로서 학생들의 애정을 받고 싶다는 처절한 희망을 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쨌건 우리는 짜고 치는 고스톱같은 풍선장수들의 조직적인 고단수의 사기행각에 쉽게 넘어갔다. 그들의 사기수법은 단순하여 뻔히 눈에 보이는 것이었는데 우리가 눈치채지 못한 것은 이미 우리 마음속에 바람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풍선을 사기 전까지는, 속임수에 넘어갔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에는, 우리는 그 풍선 때문에 행복한 기분이 들어 싱글벙글할 수 있었다. 그 부푼 꿈에 행복했다. 그 황홀한 꿈은 또 다른 풍선장수들의 등장으로 5분도 안 되어 깨지고 말았지만.

 

남편은 끝내 아쉬운지 그 섭섭함과 민망함을 이렇게 달랬다.

"집에 갈 때까지 속은 걸 몰랐다면 차라리 기분이나 좋았을 텐데..."

 

그런데 만약 풍선을 사지 않았다면? 아마 한동안 몇 푼도 안 되는 풍선조차 사지 못하게 했다고 남편한테 지청구를 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500루피는 한화로 약 1만원쯤 된다. 그 풍선장수에게는 작은 횡재가 되어 좋고, 우리 친구들에게는 웃음이 되어 좋고, 나에게는 이야깃거리가 되어 좋으니 이 아니 기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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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7-01-24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안타깝지만 그래도 즐거운 추억하나 얻으셨다는 말씀에 백번공감합니다~~^^

nama 2017-01-24 21:40   좋아요 1 | URL
즐거운 상상이 금방 끝나버린 게 좀 아쉬울 따름이지요.^^
 

구충제를 먹었다. 해외여행을 다녀와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구충제 복용이라고 한다. 새로운 것에 늘 눈을 반짝이는 습성이다보니, 한번도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던지라, 배낭을 메고 집에 들어오기도 전에 약국에 들러 구충제를 구입했다. 몰랐으면 모를까 새로운 지식을 얻었으니 당장 실천에 옮겼다. 다른 곳도 아닌 인도에 다녀왔으니 두 번 생각할 것도 없는 일이다. 헐, 이게 여섯 번째 인도여행인데 그러면 그전까지는?

 

'여행'하면 이 단어가 떠오른다. 객창감. <여행자의 독서>에서 작가 이희인은 이렇게 말했다.

객창감(客窓感). 그렇다. 이 단어다. 내가 여행에서 즐기는 감정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객창감, 그 쓸쓸함의 즐거움이다. 별 까닭도 없이 이끌려 젊은 날 많은 시간을 외딴 시골길이나 장터, 비 오는 처마 밑에 서게 했던 감정의 실체.....객창감 속에 떠다닌 여행은 쓸쓸했지만 그 쓸쓸함으로 여행의 시간들은 아름다울 수 있었다. 희망이라는 거짓 행복이 더러 사람을 배신하는 일은 있어도, 쓸쓸함과 외로움이 사람을 배신하는 일은 드물다.

 

'그 쓸쓸함의 즐거움'이었던 첫 번째 인도여행이 늘 그리웠다. 어떤 곳을 가도 어떤 것을 보아도 그 쓸쓸함의 즐거움은 인도 같지 않았기에 기회가 되면 인도로 떠나곤 했었다. 이렇게 인도에 빠져 허구헌날 인도타령을 해댔더니 드디어 인도에 함께 가자는 친구들이 생겼다. 중학교 때 친구와 짝꿍이었던 친구, 그 친구의 친구들, 따지고보면 이들 모두 초중고 시절의 어느 한 시기를 함께 했던 친구들이다. 거기에 짝꿍 친구의 남편과 내 남편, 이렇게 8명과 생면부지의 여행동지 10명이 16일 동안 남인도 일대를 휩쓸고 다녔다. 내 친구들을 잠시 소개해보면 이렇다.

 

* 과일킬러(중학교 때 짝꿍): 끼니 때마다 과일을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친구. 존재의 의미를 과일에서 찾는다.

*오카리나여사(고등학교 동창): 나는 이 친구를 보고 두 번 놀랐다. 고등학교 때는 너무나 예쁘게 생긴 친구라서 감히 옆에 가지도 못했다. 어쩜 저렇게 예쁠 수 있나, 했던 예쁘고 날씬했던 친구였는데, 지금은 한물간 여배우처럼 펑퍼짐해져서 놀랐고, 눈물을 찔끔찔끔 흘릴만큼 오카리나 연주 솜씨가 뛰어나서 놀랐다.

*토이여사(초중학교 동창): 손녀가 쓰던 장난감을 한가방 들고와서 곳곳에서 장남감 잔치를 벌였다. 손녀까지 돌보고 있으니 우리 중 제일 어른인 셈이다.

*포토여사(고등학교 동창): 사진 찍을 때 그녀가 1,2,3을 외치면 포즈가 요란해진다. 1. 점잖은 포즈, 2. 귀여운 포즈, 3. 발광 포즈 혹은 요사스런 포즈

*아가씨여사(중고 동창): 모태 솔로. 여사가 되기에는 아까운 아가씨. 장미에는 가시가 있는 법.

* 두 남정네: 울며 겨자 먹기를 작정한 두 기사.

 

 

일정:  인천-델리-뭄바이-고아-함피-마이소르-스라바나벨라골라-할레비-벨로르-뱅갈로르-코친-알레피-떼까디-마두라이-마말라푸람-첸나이-델리-인천

 

 

 

(앞으로 얼마나 이야기를 이어나갈지 모르겠다. 오늘 병원에 가서 피검사를 확인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다. 당분간 손가락 사용을 자제해야 하는데 이것마저 하지 않으면 할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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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암 이현보. 배운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얼마전 수능을 끝낸 딸은 이 이름을 대자마자 입에서 고시를 읊조린다. 

 

농암종택을 찾아가는 길은 멀다. 일단 안동까지 가서 유명하다는 '정도너츠'와 '풍기인삼갈비'에서 배를 채우고 네비게이션이 지시하는대로 따라간다. 낙동강을 따라 산속으로 이어지는 길은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오지에 대한 기록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강 저쪽으로는 기암괴석이 장엄하게 펼쳐지고 종택을 찾아가는 이쪽 길은 구비구비 강을 따라 이어진다. 마침내 도착한 농암종택은 예상보다 넓은 대지 위에 장엄하게 자리잡고 있다. 멋지다.

 

농암종택에 대한 것은 다음 사이트를 보면 된다.

http://www.nongam.com/

 

우선 사진 몇 장.

 

 

 

 

 

왼쪽에 보이는 곳이 사랑채,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농암종택의 일부

 

 

 

안채에 있는 장독대

 

 

 

방은 작고 춥지만 깔끔한 이부자리와 몇 권의 책, 다기, 앙증맞은 청소도구 등이 정갈하다.

 

 

 

17대손 주인내외와 다른 손님들과 함께 안채에서 아침상을 받았다. 일인분에 7천 원. 팔순이 넘은 부모님을 모시고 오면 식사는 공짜로 제공된다고 한다. 충효사상이 강하게 남아 있다.

 

 

방 하나에 컴퓨터, 텔레비전, 냉장고, 정수기, 화장대, 침대, 탁자, 충전기, 에어컨, 드라이어, 심지어 두 개의 샤워실을 갖춘, 그야말로 완벽한 작은 호텔인 '모텔' 에 비하면 이곳 고택은 시설이  열악하기 그지없다. 춥기는 또 얼마나 추운지 샤워는 엄두도 못낼 일이다. 게다가 방 값은 모텔의 두 배인 10만 원이다. 그러나 이 고택에는 돈으로는 따질 수 없는 것들이 많다. 다양한 스토리와 분위기, 역사와 문화가 있다. 잊지 못할 추억도 남는다.

 

 

 

 

 

 

 

 

 

 

 

 

 

 

 

농암 이현보의 17대손이 쓴 책이다. 행간에 있는 개인적인 단상을 재밌게 읽을 수 있다.

 

기타...언젠가는 인연이 닿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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