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는 아직 숨어 있는 땅이다. 오랜 군사독재와 쇄국정책으로 때묻지 않은 인심과 자연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인도차이나반도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미얀마를 개별적으로 여행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우선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아서 의사소통이 힘들고 대중교통 시설이 열악하여 도시간 이동이 만만치 않다. 낯선 여행자가 겁없이 자유롭게 다니기에는 제약이 많다. 그렇다고 안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대부분 친절하고 속임수를 쓰거나 바가지가 극성을 부리는 것도 아니다. 대도시의 택시도 요금이 1,000이라면 기껏 500정도 더 부를 정도로 아직은 순박한 사람들이 많다.

  아직은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닿지않아 미얀마 본래의 분위기를 접할 수 있는 시점에 여행을 하게 된 것을 참으로 다행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머지않아 이곳도 여느 다른 곳처럼 변할 것이다. 물가는 오르고(지금도 빠르게 오르는 중이지만) 사람들이 영악해지고(이들이라고 옛모습 그대로 있기를 바라서는 안되겠지.) 돈을 좇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미얀마인들의 순박한 미소에도 계산이 숨어 들 것이다. 지금 그대로의 모습이 얼마나 유지될까? 한 5년 정도? 이들도 신자유주의 거센 물결 앞에서 자기들만의 세계를 지켜나갈 수 있을까?

  오래된 미래의 땅, 라다크가 서서히 무너져갔듯이 이들도 서서히 무너져 갈 것이다. 이런 붕괴에 가속도를 붙이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 중에 여행자도 한 몫 할 것이다. 내가 내디딘 발자국이 결국은 이런 붕괴에 일조를 한 셈이다.

  내가 지금까지 포스팅한 허접한 여행기가 행여 미얀마 여행을 꿈꾸는 데 일조하지 않기를 그저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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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달레이에서 국내선으로 헤호에 도착. 이어서 승용차로 낭쉐를 거쳐 작은 보트를 타고 인레 호수 안쪽에 있는 리조트로 이동. 이십 여 년 넘게 여행을 다녔지만 4성급의 폼나는 리조트에서 머무는 건 난생 처음이다. 역시 여행사 상품은 때로 이런 호사를 누리게 해준다. 들뜬 딸아이도 언제 이런 곳에 와 보겠냐며 동영상까지 찍는다. 인도 여행 때 험한 잠자리에 길이 든 아이라 조금만 좋은 숙소에도 감탄을 금치 못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밤새 추위에 시달린 딸아이는 결국 새벽녘에 따뜻한 품을 찾아 내 옆으로 베개를 들고 파집고 들어왔다. 리조트답게 소품 하나 하나에 정성이 깃들여 있지만 난방이 부실하고, 아침식사로 나온 메뉴도 별로 신통치 못했다. 화려한 겉모습에 비해 내실은 좀 떨어지는, 썩 만족스런 곳은 아니었다.

  이곳의 구경거리는 수상마을인데, 수경재배농장, 각종 공예품 전시장 등 소소한 볼거리가 많지만 일방적으로 쇼핑순회를 강요하는 면이 없지 않았다. 공예제품 가격도 선뜻 주머니를 열게 만들지 않을 정도로 비싼 편이어서 나중에는 공예전시장 구경에 흥미를 잃었다.

 

이곳의 명물 풍경인 한 발로 고기 잡는 어부 모습.

 

 객실 내부. 세면대 2개에 우리는 매우 감동 받았으니..

 

수경재배농장

 

수상가옥

 

억새를 배경으로. 갈대인가?

 

대부분 사원에는 입장료가 따로 없지만 카메라를 지참할 경우에는 카메라 사용료 1,000Kyat을 받는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고 몰래 찍은 사진이다. 저기 눈사람 같은 형상이 원래는 부처님이었는데 하도 사람들이 금박을 붙이는 바람에 통통한 눈사람이 되어 버렸다. 너무나 두터운 신심에 감탄이 절로 나오지만,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기원하고 있을까?

 

동양의 베니스라고 해도 어울릴 만한 풍경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일몰에 넋을 놓는다.

 

황홀한 리조트

 

 

 

 

 

리조트

 

객실 창문으로 보이는 물안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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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5-01-28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환상적인 사진들이 많네요. 한 발로 고기 잡는 방법이라니 이렇게 저렇게 상상만 해봅니다.
에필로그까지 마치셨는데 다음엔 어느 나라엘 가고 싶으세요?? ^^

nama 2015-01-28 19:25   좋아요 0 | URL
미얀마가 생각보다 볼 것도 많고, 사람들도 좋고, 음식도 입에 맞지만 전체적으로 싱거운 맛이 있어요. 뭔가 자극적이고 짜릿하고 가슴을 울리는 게 적어요. 자극적이고 짜릿하고 가슴을 울리는 건, 결국 인도의 맛이지요. 미얀마의 순한 맛보다 독기를 품은 인도가 그래서 그리워지네요. 다음엔, 그리고 언제나처럼 인도에 가고 싶어져요.
 

  미얀마의 수도는 어디일까? 흔히들 잘못 알고 있는 양곤은 경제 수도고, 네삐더는 행정 수도, 그리고 만달레이는 문화 수도라고 한다. 미얀마 제 2의 도시다. 바간에서 버스로 5시간 걸린다.

  이곳 또한 무식하게(?) 하루만에 소화하느라고 뼈빠지게 돌아다녀야 했다. '괴로움은 즐거움과 만난다.' 이 말은 여행에서나 가능한 말이고, 배 불렀을 때나 할 수 있는 말이다. 하여튼 몸은 피곤했지만 눈 만은 호사를 누렸다.

  일정이 빡빡했다. 오전 7시 40분에 시작된 투어는 우베인 다리에서 일몰을 보는 것으로 마감했다. 여행 내내 일몰과 일출을 거의 매일 접했다. 지평선이 퍼져 있는 지역이라 가능했을 터이고 여행 중 딱히 그 시간대에 할 일도 없었으니 여행지에서 하나라도 더 보고 느끼기 위해서 매일 일충과 일몰을 바라보는 의식을 치르는데 전력을 다했다. 평소의 일상에서 사라져버린 일출과 일출의 위대함을 여행지에 와서야 한번쯤 진지하게 대하는 것이 좀 생뚱맞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해를 향해 열심히 발길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만달레이에서의 일정은 이랬다. 

택시 타고 선착장에 감→보트 타고 밍군에 감→택시로 만달레이 왕궁→택시로 산다마니 파고다, 꾸토도 파고다→택시로 쉐나도 승원→택시로 마하무니 파고다→택시로 사가잉 언덕→택시로 우베인 다리→택시로 숙소(9인승 승합차를 7~8명이서 60,000Kyat(약 6만원 조금 넘는다.)에 하루종일 빌려 탔다.) 이틀 정도 걸리는 일정을 하루에 다니느라 숨이 찼다. 사진을 보면서 천천히 음미해본다.

 

바간에서 만달레이로 가는 도중 휴게소에서 잠깐. 아마도 한국어를 배우자는 포스터일 듯.

 

우리나라 드라마가 미얀마 TV를 장악했다는 증거. 김수현 대단해.

 

만달레이 언덕.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만달레이 언덕

 

만달레이 시내

 

밍군을 향해

 

밍군 파야

 

밍군 벨.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종이란다.

 

신뷰미 파야. 출산 중에 사망한 공주를 기억하기 위해 세운 파고다. 양파껍질 처럼 몇 겹의 물결로 둘러싸여 있는 매우 독특한 사원이다.

 

만달레이 궁. 겉모습은 뭔가 있어 보이나 그냥 영화세트장 같은 분위기.

 

불경 석판이 있는 산다마니 파야

 

쿠토퍼 파야. 돌에 새겨진 세계에서 가장 큰 책이다. 이 불경을 하루 8시간씩 읽는다면 이것을 다 읽는데 450일이 소요된다고 한다. 그런데 저 가운데 있는 아낙은 아랑곳하지 않고 설거지를 하고 있다.

 

이런 대리석판이 729개라고 한다.

 

쉐난도 짜웅. 목조 건물이라 시간이 흐르면 훼손될 운명인데 관람객들을 제한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머지않아 관람객수를 제한해야 할 듯. 앞으로 몇 년 후에는 이곳을 자유롭게 드나들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래야 한다.

 

목공예가 매우 섬세하다.

 

마하무니 파야. 미얀마를 대표하는 성지 중 한 곳이라서 늘 사람들로 붐빈다. 불상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금박종이를 입히는 남자들이다. 여자들은 출입금지. 부처님이 금박 때문에 뚱뚱하다. 나중엔 형체가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사가잉

 

내용은 모르겠지만 미얀마어로 만든 예쁜 창살.

 

우베인 다리의 일몰. 각국의 여행자들이 이 일몰을 보기 위해 이곳으로 몰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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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는 바간을 이렇게 소개한다.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와 더불어 미얀마의 바간을 세계 3대 불교유적지라고 한다. 바간은 이들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며, 미얀마 속담에는 바간에 400만 개의 탑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실제는 약 5천 개의 탑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한 프랑스 건축가에 따르면 2,834개에 이른다고 한다.(<아름다운 인연으로 만나다 미얀마>차장섭)

 

이런 대단한 곳을 하룻만에 섭렵했다. 단체여행의 허와 실 중에 '허'에 해당하는 부분을 경험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이곳은 적어도 삼 일 정도 머물면서 천천히 둘러보아야 할 곳이다. 지평선은 사방에 펼쳐져 있고 그 너른 들판은 나무로 울창한데 온갖 탑들이 이곳저곳에 점점이 박혀 있는 광경은 입을 쩍 벌리게 만든다. 거칠게 비유하자면 초록 벌판에 키세스 초코렛을 점점이 박아놓은 형상이다. 감히 단언하는데 내가 평생 보아왔던 불상의 숫자보다 훨씬 많은 불상을 단 하룻만에 보았다고 할 수 있다. 불상의 숫자에 관한 한 상위 1%에 해당하는 고농축 경험을 했노라는 인솔자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내 전생에 무슨 덕을 쌓았기에 이런 영광을 누리게 되었나, 싶지만 사실은 고행의 연속이었다. 무릎이 나가는 줄 알았다. 절을 올려서가 아니라 신발과 양말을 벗고 다시 신고 다시 벗고 다시 신으며 하루종일 오르락내리락하느라고 고달펐기 때문이다.

 

 

바간으로 가는 국내선. 74인승 정도 되는 작은 비행기는 이미 내 마음을 읽고 있었으니 'you're safe with us'로 내 신뢰를 얻고자 애를 쓰고 있다. 비행기 사고로 한 순간 비명에 사라지는 게 내가 원하는 죽음의 방식이지만 아직은, 아직은 아니란 말이다! 왼쪽으로 보이는 빨간 테두리는 비상구로 비상시 잘라내라고 쓰여 있다. 잘라내기도 전에 비행기는 소멸할 지도 모르겠다.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같이 올라간 쉐산도 탑 계단. 인파에 가린 일출 감상은 경건함과는 거리가 멀었고 이 계단을 내려오다가 카메라가 어딘가에 부딪혀 카메라렌즈 보호경으로 쓰이는 필터가 깨지고 말았다. 그저 내 짧은 기럭지를 원망하는 수 밖에.

 

투덜대며 마침내 전망대에 올라갔을 때 끝내 못마땅하다는 듯 딸이 한마디 던진다. "아휴, 수능보다 싫어! 이런 데 올라오는 거."

 

 

 

 

 

 

 

 

 

 

 

 미얀마 모든 탑의 모델이라고 불리는 쉐지곤 탑

 

 

 

 

 

 

 

 

 

 

 

 

 

 

 

 

 

 

 

 

 

 

 

 

 

 

드디어 일몰. 해 지는 광경보다 일몰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더 장관을 이루고 있다. 태양은 매일 뜨고 지건만 왜 여행지에 와서야 유독 일몰과 일출에 열을 올리는 것인지, 알 수 없어요.

 

해 떨어지기 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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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5-01-28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처님 머리 형태와 (뭐라고 용어가 있었는데 잊어버렸어요 ㅠㅠ) 탑 꼭대기 모양이 닮았어요.

해가 뜨고 지는 모습에서 우리는 해 이상의 어떤 것의 시작과 마지막을 연상하나봐요. 그래서 그렇게 열을 올리는지도.

저 쉐산도 탑 계단이 까마득해보이네요. 가파르기도 하고요. 저길 다 올라가셨다는 말씀이지요? 와...

nama 2015-01-28 09:31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에서는 부처님 머리 형태를 보통 육계(불두화모양)라고 하고, 곱슬머리 형태는 나발형이라고 하네요. 그러나 소승불교인 미얀마의 뾰족한 머리형태에 대해서는 무엇이라 하는지 모르겠어요. hnine님 덕분에 일어나자마자 찾아보아서 겨우 알아낸 게 이 정도입니다. 덕분에 부처님 머리형태에 관심을 갖게 되네요.~~
저 쉐산도 탑에 오르내리느라고 단번에 근육이 뭉쳐서 며칠간 고생했지요ㅠㅠ
 

이번 여행이 여행사 상품을 이용한 단체배낭임을 말했었다. 그런데, 그런데....

지난 2010년 라다크 여행 때 (그때도 단체배낭이었다.) 일행이었던 분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나보다 두어 살 아래로 진주에 사시는 분이다. 5년 만에 해후하였으니 어찌 반갑지 않으랴.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부류를 알아보는 법이다. 긴 얘기를 나누지 않아도 서로 통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착각을 하게 하는 사람을 간혹 만나게 되는데 바로 이 분이 그랬다. 라다크도 그렇고 미얀마도 그렇고 보통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여행지가 아니다, 몇 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그 '몇 몇 사람들'이 바로 나와 그 분이었으니 우리는 서로 비슷한 부류임에는 틀림 없을 터이다.

 

그런데 이 분은 그간 큰 병치레를 했던 모양이다. 2012년에 위암수술을 받았다는 것이다. 위암은 만 5년이 지나봐야 안심할 수 있다는 말에 순간 가슴이 울컥했다. 이 큰 고통을 혼자서 어떻게 감당하고 있을까...이럴 때 미혼이라는 건 위안일까, 더 큰 외로움일까...겪어보지 않은 일은 알 수 없다. 여행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이번 미얀마 여행에서 내가 아무리 좋은 경치, 좋은 음식, 좋은 호텔을 경험했다 해도 역시 가장 크게 마음을 울리는 것은 사람이었다. 특히 5년 만에 해후한 이 분을 떼놓고 이번 여행을 돌이켜볼 수 있을까 싶다.

 

일정을 모두 마치고 일행이 공항으로 가는 택시에 오르기 전, 라오스여행을 위해 홀로 남게 된 이 분과 가벼운 포옹을 나누며 서로 이별의 말을 나누었는데...손마디에 전해져오는 딱딱한 기운...앙상하게 드러난 뼈에 대한 감촉 때문에 순간 울컥해졌다.

 

전국단위로 모집하는 교사연수 때 만나서 연수 함께 받자며 연락처를 서로 주고 받았다. 정갈한 손글씨에 인품이 그대로 드러난 듯하여 글씨를 몇 번이나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 속으로 간절히 기원했다. 부디 건강하시라고. 다음 여행도 함께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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