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쌀쌀해졌다. 하긴 겨울도 두 주밖에 안 남았고, 이번주에 첫눈이 내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몸도 계절을 따라가는지 조금만 움직여도 피로하다. 겨울에는 동면이라도 해야 할 모양이다. 돌이켜보니 훨씬 더 젊은 시절에도 11월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달이다. 마치 월요일 출근을 앞둔 일요일 저녁을 떠올려주는 달이라고 할까.

 

 

 

잠시 감상을 접어두고, '이주의 고전'을 고른다(이건 그때그때 고른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 작가 엘리자베스 개스켈(풀네임으론 엘리자베스 클래그헌 개스켈)의 사회소설 <남과 북>(문학과지성사, 2013)이 출간됐다. 제목이 <남과 북>이어서 미국소설인 줄 알았더니 19세기 중반 영국사회의 그늘을 조명한 사회소설로 디킨스의 <어려운 시절>(1854)과 같은 해에 디킨스가 주관하던 주간 문예지에 발표됐다. 단행본 출간은 1855년으로 <메리 바턴>에 이은 작가의 두번째 '사회소설'이다(국내에 먼저 소개된 <크랜포드>는 1853년에 출판한 소설. 이건 사회소설로는 분류되지 않는 모양이다). 원래는 주인공의 이름을 따 제목을 <마거릿 헤일>이라고 지으려고 했지만 편집자 디킨스의 의견을 좇아 <남과 북>이 됐다고 한다. 어떤 소설인가.   

빅토리아 시대의 제인 오스틴이라 불리는 엘리자베스 개스켈의 소설. 개스켈은 작품 속 인물의 관찰에 유머와 도덕적 판단을 혼합시킨다는 점에서 한 세대 앞선 영국의 대표적 여성 작가 제인 오스틴과 자주 비교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산업화의 어두운 그늘을 조명하는 사회적 시각에서 차별성을 가진다. < 남과 북>은 19세기 영국 산업혁명 시기를 배경으로 남부의 전통적인 토지 귀족과 북부의 신흥 공장지대 사람들, 그리고 자본가와 임금노동자들 사이에서 빚어지던 정신적이고 물리적인 갈등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개스켈은 로맨스의 갈등구조를 통해 신흥 자본가와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의 대조적인 삶을 보여주고 산업화가 만들어낸 노동문제를 고발한다. 뿐만 아니라 진취적인 마거릿을 내세워 여성의 권익 문제, 사랑과 종교적 신념, 대립 구도를 초월하는 인간애 등 우리가 살아가며 피할 수 없는 삶의 모습들을 포괄적으로 보여준다.

내년에 디킨스의 소설들을 강의차 읽을 계획을 갖고 있는데, 그때 같이 읽어봐도 좋겠다 싶다. '빅토리아 시대의 제인 오스틴'으로 불린다지만, 개스켈은 '샬럿 브론테의 친구'로도 알려져 있고, 실제로 <샬럿 브론테의 전기>를 쓴 걸로 유명하다.

 

 

 

그밖에 <실비아의 연인들>, <사촌 필리스> 등의 장편소설과 수십 편의 중단편을 갖고 있으니 당대의 대표적 작가였겠다.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만 개스켈의 소설들은 다수가 영화화됐다. 영화 <남과 북>도 구해봐야겠다...

 

 

13.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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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고전'은 사회과학서에서 고른다. 한길그레이트북스로 나온 진 코헨과 앤드루 아라토의 <시민사회와 정치이론>(한길사, 2013). 분량이 방대해 두 권으로 분권돼 나왔다.

 

 

저자나 책 모두 내겐 생소한데, 이전에 소개된 적이 없으니 당연해 보인다. 사회학자 박형신 교수가 공역하고 그레이트북스 시리즈에 포함된 걸로 보아 '고전'으로 짐작할 따름이다. 원서는 '현대 독일사회사상 연구' 총서의 하나로, 하버마스의 책들이 포함돼 있던 시리즈다(<현대성의 철학적 담론>이나 <탈형이상학적 사유> 등의 원서를 이 시리즈에서 구한 기억이 난다). 책소개도 간단하게만 올라와 있다.

시민사회 이론가 진 L. 코헨과 앤드루 아라토는 이 책에서 서구의 민주주의가 더 민주화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서구의 복지국가 이념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국가의 역기능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자본주의화되고 있는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이 과거 실패한 서구 자본주의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으면서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이것이 바로 코헨과 아라토가 말하는 ‘복지국가와 자유민주주의의 성찰적 지속’이라는 관념의 바탕에 깔린 질문이며, 이 책에서 그들은 ‘자기제한적 급진주의’의 실천적 장으로서의 시민사회에서 그 해답을 찾고 있다.

 

앤드루 아라토의 다른 저작을 찾아보니 <프랑크푸르트학파 독본>, <네오마르크스주의에서 민주주의 이론으로>, <시민사회, 헌법, 정당성> 등이 있다. 어떤 이론적 배경과 관심사를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하버마스에 관한 연구서도 갖고 있다).

 

 

아무려나 "서구의 복지국가 이념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국가의 역기능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란 물음 자체는 우리에게도 매우 유효한 물음이므로, 시간이 남으면 읽어볼 만한 '고전'으로 치부할 수는 없겠다. 당장의 사유의 길을 모색하는 데에도 도움을 얻어볼 만하다...

 

13.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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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고전'은 학술고전이다. 일본의 중국학자 히하라 도시쿠니의 <국가와 백성 사이의 漢>(글항아리, 2013). 원제가 <한대(漢代)사상의 연구>로 "한대 사상사 연구의 필독서이자 최고의 연구서"로 인정받는 책이라 한다. 역자는 <동양을 만든 13권의 고전>(글항아리, 2011) 등을 공역한 김동민 교수. 책의 의의에 대해서는 이렇게 소개된다.

 

히하라의 <국가와 백성 사이의 漢>(원제는 漢代思想の硏究)은 한대 사상사 연구의 필독서이자 최고의 연구서로 인정받고 있다. 일반적으로 한대 사상은 선진 유학의 변질이나 왜곡, 또는 신비주의적이고 미신적인 요소로 가득 찬 종교 신학으로 여겨졌고, 심지어 중국사상사의 암흑기라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리쩌허우李澤厚는 진한秦漢 사상을 유학의 몰락으로 폄하하는 현재 학계의 풍토를 강하게 비판했는데(<중국고대사상사론>), 그것은 역으로 한대 사상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는지를 반증한다. 이 책은 그러한 부정적 평가에 대해 반박하거나 또는 긍정적으로 옹호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다만 저자는 기존의 선입견을 배제한 채 당시의 지배권력과 지식인들의 인식과 그들의 사상이 도출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특수성에 주목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삼아 시대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논쟁했던 그들의 노력과 진지함을 매우 역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전문적이긴 하나 한대사상 연구의 기념비적 고전이라는 책을 읽어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호강하는 기분이다. 찾아보니 진례가 엮은 <한대사상사전>(그물, 2013)도 최근에 나왔다. 소개에 따르면, "<하늘과 땅과 사람>, <유가의 학술>, <한대 유가의 성명 이론>, <유가의 인륜 질서>, <유가의 통과의례>, <유자들의 생활 규범>, <통치의 근간>, 이렇게 7개의 큰 주제 밑에 67개의 편목을 설정하고, 그 안에서 1,014개 조목을 서술하였다." 약속이라도 한듯이 한대사상을 살펴보는 데 요긴한 책 두 권이 나란히 출간된 것.

 

 

역자 이연승 교수는 한대 지식인 양웅 전공으로 <양웅: 어느 한대 지식인의 고민>(태학사, 2007)을 쓰고, 양웅의 <법언>(지만지, 2010), <방언소증1,2,3>(소명출판, 2012), 거자오광의 <사상사를 어떻게 쓸 것인가>(영남대출판부, 2008)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성실히 학문에 매진하는 연구자들 덕분에 읽을 거리가 많아졌다...

 

13. 11.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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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고전'은 스노리 스툴루손의 <에다 이야기>(을유문화사, 2013)이다. "게르만 신화의 원형에 가장 가까운 게르만 신화집". 이전에 <에다>(서울대출판부, 2004)라고 나온 적이 있어서(책은 절판됐다) 찾아보니 <에다>는 <운문 에다>를 옮긴 것이고 <에다 이야기>는 <산문 에다>를 옮긴 것이다. 달리 <고 에다>와 <신 에다>라고도 불린다고. 어떻게 다른가.

 

 

먼저 <에다>의 책소개를 따라가보면 이렇다.

북유럽 신화집 <에다>는 기록된 유럽신화 가운데 그리스·로마 신화 다음으로 높은 완성도를 지녔고, 여기에 담긴 창세신화와 신들의 이야기는 게르만족 공통의 신화를 대변하는 것으로 인정된다. <에다>는 800~1200년 사이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운문체 <고(古) 에다>와, 이를 토대로 1220년경 스노리 스투를루손이 저술한 산문본 <신(新) 에다>(일명 ‘스노리 에다’)로 나뉜다.

 

현존하는 필사본 <고 에다>가 이전의 필사본(들)을 토대로 종합 및 기록된 시기는 1270년경이었음이 밝혀졌다. 그러니까 <에다>의 진정한 원본은 서사시 <고 에다>이고, 이것은 다시금 <신들의 노래>와 <영웅들의 노래>로 구성되어 있다. 두 부분은 주제 면에서 밀접하게 연관되어 일체를 이룬다. 후반부 영웅시가의 핵심을 이루는 시구르드(독어: 지크프리트) 전설은 독일 중세 영웅서사시의 금자탑인 <니벨룽엔의 노래>의 소재로서도 중요하다. 그 동안 한국에서 몇 차례 출판된 <에다> 번역본은 대체로 스투를루손 산문 해설본(<신 에다>)을 독서용으로 재구성한 구미의 번안 원문들에 기초하였다. 이에 역자들은 이 신화집의 본모습을 가급적 정확히 재현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고 에다>를 번역키로 하였다.

 

 

독일 중세문학의 말 그대로 '고전'인 셈. 번안작 번역본이 있었다고는 하나 <에다>라는 이름으로 나온 건 이 두 권이 전부다. <에다 이야기>의 소개는 이렇다.

대중이 읽기 쉽게 신화 이야기를 다듬어 펴낸 다른 도서와 달리 게르만 신화의 원전이라고 할 수 있는 스노리 스툴루손의 <산문 에다>를 그대로 번역하였다. 아이슬란드의 시인이자 정치가인 스노리가 1220년에서 1225년 사이에 기록한 <산문 에다>는 근대 이전까지 ‘에다(Edda)’라고 불렸으나 1643년 운문으로 기록된 게르만 신화집이 발견되면서 스노리가 산문으로 기록한 책을 ‘산문 에다’, ‘스노리 에다’, ‘신(新)에다’라 부르고, 이 책보다 이전에 익명의 사람들에 의해 운문으로 기록된 게르만 신화집을 ‘운문 에다’, ‘구(舊)에다’라고 부르게 되었다.

<에다 이야기>는 스노리가 음유 시인들에게 시를 짓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전체 3부로 구성하여 집필한 <산문 에다> 중에서 게르만 신화와 관련된 부분인 1, 2부만을 소개하였다. 1부에서는 창세기에서 종말까지 게르만 신화의 전모를 본격적으로 소개하고, 2부에서는 난쟁이의 마법 반지에 얽힌 탐욕과 저주 이야기, 영웅 시구르드(지크프리트)의 비극적인 전설 등 1부에서 소개하지 못한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에다>라거나 게르만 신화라고 하면 좀 낯설게 여겨지지만, 딱 그렇지도 않다.

게르만 신화는 그리스 신화와 더불어 유럽 양대 신화를 이루며 전 세계적으로 문화 예술 영역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하나의 대중적 신화로 자리매김하지 못했다. 하지만 북유럽 신화, 북구 신화라고도 불리는 게르만 신화라는 명칭 자체는 생소할지 몰라도 신화 속 이야기나 요소들은 그리스 신화만큼이나 우리에게 친숙하다. 그 예로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 영화 「마스크」와 「토르」, 게임 「라그나로크」, 만화 <진격의 거인> 등은 모두 게르만 신화와 관련이 있다. 신화의 서사 구조를 따르거나 신, 거인, 엘프, 드워프 등 신화적 요소를 차용하는 이들 작품에서부터 게르만 신화의 주신(主神) 오딘의 이름에서 유래한 영어 단어 Wednesday(수요일)에 이르기까지 게르만 신화는 우리 문화 이곳저곳에 편재되어 있다.

신화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유익한 독서거리가 될 듯하다. 좀 전문적이긴 하나 절판된 <에다>도 다시 출간되길 바란다...

 

13. 11.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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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사회학자 게오르크 짐멜의 주저 <돈의 철학>(길,2013)이 드디어 다시 번역돼 나왔다. 예전에 한길사에서 번역돼 나왔다 절판된 책이다. 학부시절엔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책이지만 정작 당시엔 그다지 흥미를 갖지 못했었다(돈에 관심이 없었던 것일까?). 그리고 한참 지나고 나서 관심을 갖게 되자 책은 이미 절판된 지 오래된 상황. 김덕영 교수의 번역으로 다시 나온다는 예고에 영역판도 진작에 구해놓고 있던 터이다.

 

 

김덕영 교수는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길, 2010)에 이어서 이번에 짐멜의 주저를 우리말로 옮김으로써 독일의 이 걸출한 사회학자 (재)수용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책인가.

돈의 문제를 사회학적, 심리학적, 철학적 영역으로 확장하여 논구한 게오르그 짐멜의 대표작. 그는 다양한 경험과학 및 철학의 틀로 인간, 사회, 문화, 역사의 문제를 담아냄으로써 다차원적 모더니티 담론과 포스트모더니티 담론을 구축했는데, 이번에 펴낸 그의 책에서는 경험적 현실세계로 임하는 철학을 제시하면서 인간의 삶과 문화의 심층에 철학적 측연을 던지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문자, 증여와 함께 장기적인 공부 테마로 삼고 있어서 화폐에 관한 책은 주섬주섬 모으고 있는 처지인데, 이마무라 히토시의 <화폐 인문학>(자음과모음, 2010) 같은 책이 내겐 유익한 자극이다. '괴테에서 데리다까지'를 부제로 한 이 <화폐 인문학>에서 저자가 다루고 있는 책이 바로 짐멜의 <돈의 철학>(<화폐의 철학>)과 괴테의 <친화력>, 그리고 앙드레 지드의 <위폐범들> 등이다(거기에 루소의 <언어의 기원>과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 등이 더해진다).

 

 

 

모두 복수의 번역본이 나와 있는 터에 <돈의 철학>이 추가됨으로써 독서에 깊이를 부여할 수 있게 됐다. 나름대로 '열공'하면 1-2년 후에는 이 주제로 강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나의 지론이지만 우리는 가르침으로써 더 잘 배우게 된다).

 

여하튼 반가운 마음을 적는다. 두께가 두께인 만큼 책값이 꽤 센 편이지만, 없는 돈을 털어서라도 <돈의 철학>은 서가에 꽂아둘 만하다. 그런 게 사실 '돈의 철학' 아닌가...

 

13.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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