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그렇게 붙였지만 빌라도와 카사노바가 무슨 인연이 있는 건 아니다(혹 그런 인연을 찾아낸다면 흥미로울 법하지만). 점심을 먹으며 신간들을 검색해보다가 다시 나온 책들, 곧 재간본들이 눈에 띄기에(눈에 띄는 게 물론 드문 일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오래된 새책' 카테고리를 채워넣기로 한다.

 

 

 

한권은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의 <빌라도 복음서>(열림원, 2012)다. 알라딘에서는 아직 분류도 안 해놓았지만 "현대 프랑스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가 문화와 철학, 종교를 아우르는 방대한 지식의 해석으로 다섯 번째 복음서를 빚어냈다"고 한 것으로 보아 소설 같다. 그냥 보면 생소한 저자의 신학 쪽 책인 줄 알기 쉬운데, 의외로 많은 책이 번역돼 있는 작가다(눈에 익은 건 <모차르트와 함께 한 내 인생>(문학세계사, 2005) 정도지만). 그리고 <빌라도 복음서>는 최신간처럼 보이지만 <예수를 사랑한 빌라도>(문화마당, 2002)란 제목으로 제일 처음 소개됐던 책이다. '제2의 사르트르'란 별칭이 왜 붙었는지는 소개된 책들의 목록만 봐서는 도저히 알 수 없지만(설마 같은 고등사범 출신이란 이유로?). 소개를 더 읽어보면,   

그의 작품 다수가 영화화되었으며 장 폴 벨몽도, 알랭 들롱, 오마 샤리프 등 당대의 대배우들이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97년부터 발표하기 시작한 <에고이스트 종파>, <빌라도 복음서>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는 ‘비가시非可視 세계 연작’ 소설들이 연달아 대성공을 거두는 가운데 2007년에는 자신의 작품들을 직접 각색, 연출한 영화 <오데트 툴르몽드>가 상영되어 호평을 받았다.

 

위키피디아에서 찾아보니 극작가로서 더 유명한데, 나로선 역시나 빌라도 이야기인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와 비교해보고 싶은 생각에 <빌라도 복음서>도 관심도서로 분류해놓는다.

 

 

빌라도 얘기가 나온 김에 앙투아네트 메이의 <빌라도의 아내>(지식의숲, 2008)에도 손이 갈지 모르겠다.

 

 

 

그리고 카사노바. 그 유명한 회고록 <카사노바 나의 편력>(한길사, 2006)을 얘기하려는 건 아니지만 분명 그의 회고록이 쏠쏠한 참고가 되었을 존 맥스웰 해밀턴의 <카사노바는 책을 더 사랑했다>(열린책들, 2005)가 이번에 <저술 출판 독서의 사회사>(열린책들, 2012)로 제목을 갈고 다시 나왔다.

 

 

 

이전판을 갖고 있는지 확실히 알 수가 없어서 구입을 주저하게 되는데, 여하튼 출판과 독서를 카테고리로 한 책들은 자연스레 관심도서에 들기에 머잖아 손길이 갈 듯싶다. 하여, '빌라도'와 '카사노바' 또한 연말의 독서목록이다. 펭귄의 다른 북커버가 재미있군...

 

 

12.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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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비만을 다룬 책들을 몇권 읽다가 자꾸 눈에 밟히는 책이 있어서 간단히 적는다.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연암서가, 2012)이다. 

 

 

사실 이 책은 <동물해방>(인간사랑, 1999)이라고 나왔었고 아직 절판되지 않았다. 역자가 같은 걸 보면 번역판권만 옮겨간 듯 보인다. '개정완역판'이라고 한 걸로 보아 약간 개정됐을 수도 있고. 1975년에 나온 원저가 개정판이 나온 것 같지는 않다. 여하튼 '피터 싱어'라는 이름을 각인시켜준 그의 출세작이자 대표작이다. 인간사랑판을 이미 갖고 있는 나로선 좀 머뭇거리게 되지만, 아직 갖고 있지 않은 분은 새 번역판을 구입하시면 되겠다. 독서는 나중에 하더라도 소장용으로 의의가 있기에(이런 제목의 책이 서가에 꽂혀 있는 것만으로도 교육효과가 있다).

 

 

'동물해방'에서 한걸음 더 나가면 '동물권'이란 말과 조우하게 된다. 인간해방에서 동물해방으로 가는 여정이 인권에서 동물권으로 넘어가는 여정이다. 지난주에 '아주 특별한 상식' 시리즈의 하나로 나온 <동물권, 인간의 이기심은 어디까지인가?>(이후, 2012)가 유용한 가이드북이다. 고등학생들의 토론용 교재로도 어울리는 책이다. 같이 읽을 만한 책으로 얼른 떠올린 건 마크 베코프의 <동물 권리 선언>(미래의창, 2011)과 피터 싱어가 엮은 <동물과 인간이 공존해야 하는 합당한 이유들>(시대의창, 2012)인데, <동물권>의 부록을 보니 몇권 더 소개돼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존 쿳시의 <동물로 산다는 것>(평사리, 2006), 역시 작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민음사, 2011), 그리고 조슬린 포르세 등이 쓴 <우리 안에 돼지>(숲속여우비, 2010) 등이다. 마지막 책은 청소년 도서다. 오늘 저녁에도 불고기로 끼니를 해결했지만, 동물권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면 식습관도 조금씩 달라질지 모를 일이다. 물론 인권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나라들의 현실이라면(유명무실한 국가인권위원회를 가진 나라를 포함해서) 더 말해서 무엇할까...

 

12. 0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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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좋은 핑계이지만 포스팅을 뜸하게 하게 된다. 지난 학기의 바쁜 일정이 사실 이번주까지도 이어지고 있어서 여유시간을 내지 못하는 게 결정적이지만 의욕도 예전만큼은 못 된다. 책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조만간 책이사를 해야 하는 것도 한 이유다(두 가지 사실에 스스로 놀란다. 정말 많은 책을 갖고 있다는 사실과 책을 찾느라 자주 골탕먹는다는 사실). 정서적인 '난민 모드'라고나 할까. 여하튼 당분간 무얼 집중해서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므로 '휴가 모드'라고 해도 좋겠다.

 

그런 상황이긴 하지만 (자정이 지났으니) '어제' 받은 책 두 권에 대해서는 시간을 쪼개서 아는 체를 해두고자 한다. 요한 하위징아의 <중세의 가을>(연암서가, 2012)과 개릿 매팅리의 <아르마다>(너무북스, 2012)가 그 두 권의 책이다. 둘다 역사서라는 점, 그리고 다시 나온 책이라는 점이 공통분모다. 거기에 대단히 잘 쓰인 역사서로 평판이 높다는 점.

 

 

<중세의 가을>은 문학과지성사판과 동서문화사판까지 갖고 있기에 '콜렉션'이라 불러도 좋겠다. 굳이 또 구입하느냐 의아해 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고전'은 원래 그런 것이다. 뉴욕타임스의 북리뷰에 따르면 "하위징아의 <중세의 가을>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20세기 역사학 고전이고, 그것도 가장 위대하고 매혹적인 저서들 중 하나이다." <호무 루덴스>(연암서가, 2010)가 새로 번역돼 나왔을 때 맘먹고 영역본도 구해놓은 터라, 이번 가을엔 제대로 폼을 잡고 중세에 빠져볼 수 있을 듯싶다. 적어도 기분으론 그렇다.

 

 

<아르마다>는 오래전에 <아르마다>(가지않은 길, 1997-8)로 나왔던 책이다.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두 권으로 분권돼 나왔던 모양이다. 제목이 생소한데, 16세기 스페인(에스파냐)의 무적함대를 가리킨다. 옮긴이 후기에 기대 기억을 더듬어 보니 첫 번역본이 나왔을 때 역자를 만난 적이 있다('가지않은 길'출판사의 대표였던 걸로 기억된다). 미국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이였는데, <아르마다>를 '역사상 가장 잘 쓰인 역사책' 가운데 하나이고 역사학도의 필독서라고 했다. 같이 나온 레이 황의 <1587 - 아무 일도 없었던 해>도 같은 범주에 속하는 책이었다. 물론 당시엔 두 저자와 두 권의 책이 모두 생소했다. 그때 <아무일도 없었던 해>는 읽었지만 <아르마다>는 조금 넘기다 말았던 듯싶다. 이제 다시 책상맡에 놓으니 14년의 시간이 주마등 같다.

 

<중세의 가을>이 중세 후기인 14세기와 15세기를 다루고 <아르마다>는 막바로 이어진 16세기를 다루니 아귀도 잘 맞는다. 바람을 더 적자면 12-13세기를 자세히 다룬 책도 나왔으면 싶다(지금도 몇 권 있긴 하지만). '역사상 가장 잘 쓰인 역사책'에 꼽힐 만하다면 사실 시대는 상관 없기도 하지만...

 

12. 08.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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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뭔가 싶겠지만 두 권의 책 제목이다. 저자는 미국의 여성학자 매릴린 옐롬. <아내>(시공사, 2003)란 제목으로 나왔다 절판됐던 책이 이번주에 원래의 제목대로 다시 출간됐다. <아내의 역사>(책과함께, 2012). 개인적으론 두달쯤 전에 중고도서로 구한 책인데(여성의 삶을 주제로 한 문학작품을 강의할 기회가 잦은 탓에 내겐 요긴한 책이다), 다시 나올 줄 알았다면 좀더 기다렸을 것이다. 역자가 같은 걸로 보아 번역상의 차이는 별로 없을 듯하지만 표지는 훨씬 좋아졌다.

 

 

 

저자가 <아내의 역사>보다 먼저 쓴 책이 <유방의 역사>(자작나무, 1999)다. 이 역시 절판됐는데, <아내의 역사>가 반응을 좀 얻는다면, <유방의 역사>도 다시 나오면 좋겠다. 표지도 좀 업그레이드돼서 말이다. 목차만 훑어봐도 알 수 있지만 '최초의 아내 이브부터 <인형의 집> 노라까지, 역사 속 아내들의 은밀한 내면 읽기'로서 <아내의 역사>는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애초에 이런 주제의 역사를 쓴다는 발상 자체가 놀라운 것이기도 하고. 하긴 <엉덩이의 역사>나 <눈물의 역사> 같은 책들에 견주면 평범해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책의 대략적인 내용에 대해선 지난번 <아내>가 출간됐을 때의 서평기사가 자세하게 소개해주고 있다. 간추려서 옮겨보면 이렇다.

 

아내란 관계의 이름이다. 남편 없는 아내란 있을 수 없으니까. 미국의 원로 여성학자 매릴린 옐롬이 쓴 <아내>(원제:아내의 역사)는 서양의 역사 속에서 아내의 지위 변화를 훑는 책이다. 이 책은 아내의 개념, 지위, 역할이 언제 형성되어 어떻게 변해왔으며, 역사 속에서 아내들은 자신의 위치를 어떻게 보았고 이를 바꾸려고 어떻게 싸워왔는지, 그 순종과 반항의 역사를 보여준다

역사 속에서 아내는 어떤 대접을 받아왔나.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에 아내는 남편이 사용하는 “가재도구” 혹은 재산이었다. 기독교 논리가 사회를 주름잡았던 중세에 아내는 ‘출산의 그릇’이었다. 이 시기 여성들 중 아내의 지위는 처녀·과부 밑이었다. 왜냐하면 이 시기 섹스는 타락이었으므로 여성들 내부의 서열은 금욕을 기준으로 매겨졌으니까.

전통적인 아내상 혹은 아내 관념이 최근 50년 동안 겪은 급격한 변모는 획기적인 것이라고 지은이는 지적한다. 오늘날 아내의 역할을 둘러싼 견해 차이는 성별 간에, 계층 간에 여전히 크고 깊다. 방대한 사료, 자료, 인터뷰가 녹아 있는 이 책이 흥미로운 점은 이런 질문들이다. 아내는 남편의 부양을 받는 자인가 “역사 이래 1950년대에 이르기까지 아내를 먹여 살리는 것은 남편의 의무였다. 아내는 그 대가로 섹스, 아이, 가사노동을 제공했다.” 그러나 맞벌이 아내들의 대거 등장은 이 관념을 급속하게 약화시킨다. 지은이가 보기에, 여성은 피부양자이며 가사의 전담자라는 낡은 생각은 사라졌지만, 가정과 직장에서 평등하게 일을 분담하는 새로운 결혼 유형은 아직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또다른 질문. 그렇다면 아내는 어머니인가. 역사 속에서 아내인 동시에 어머니이지 않았던 여자들은 철저히 박해받았다. 아내인데 어머니가 아닌 여자는 ‘죄인’취급을 받았으며, 거꾸로 아내가 아니면서 어머니인 이들은 심지어 처형당하기까지 했다. 독신모라는 낙인을 피하려고 “갓난아이 살해 등 무슨 짓이든 했”으니까. 그러나 오늘날은 자발적인 독신모의 증가 등 사정은 점점 달라지고 있다. 결혼 50년 문턱에 있는 아내이기도 한 지은이는 말한다. 역사 이래 결혼은 아내가 되기 위한 필수 관문이었지만, “오늘날 미국의 아이들 가운데 40%는 혼외 관계에서 태어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아내는 여성인가 오늘날 캐나다·덴마크·스웨덴·스위스·벨기에· 프랑스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동성간의 결혼이 합법화되는 추세에 있다. 동성 결혼에선 누가 아내일까. 지은이는 묻는 대로 “부부 간에 지위·역할·성별 등 어떤 차이도 없는 결합이라면 아내라는 용어가 의미를 가질 것인가” 아내라는 이름은 ‘멸종’ 위기에 직면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허미경 기자) 

12. 05.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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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미셸 투르니에의 책을 몇권 주문했는데, 그중 하나는 <미셸 투르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예담, 2011)이다. 여러 차례 나왔던 책인데, 역자는 같지만 매번 제목과 표지가 달라지는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기도 하다.

 

 

처음 나온 판본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110가지 개념>(한뜻,1998)이고, 소장본이기도 하다. 하지만 손 닿는 곳에 없기에, 또 다시 읽어볼 마음에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을 주문한 것. '110가지 개념' 같은 말이 제목에 빠져서 다행이지만, 그래도 마음에 드는 제목은 아니다. 같은 책이 <소크라테스와 헤르만 헤세의 점심>(북라인, 2000)으로 한번 탈바꿈했을 때도 너무 분칠한 제목이어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원제는 담백하게 그냥 <생각의 거울>이고, 그렇게 나온 적이 있다. <생각의 거울>(북라인, 2003). 표지도 담백한 게 그중 마음에 든다. 하지만 이 또한 절판되고, 새로 나온 것이 <미셸 투르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 그래서 '오래된 새책'이다. 

 

 

 

아침에 같이 주문한 책은 투르니에의 산문집 <외면일기>(현대문학, 2004)와 독서노트 <흡혈귀의 비상>(현대문학, 2002)이다. 전자는 올해 10쇄를 찍었으니 꾸준히 나가는 책이고, 후자는 아직 1쇄도 빠지지 않았다. <흡혈귀의 비상>은 개인적으론 러시아본도 갖고 있는 책이다. 언젠가는 이런 종류의 '독서노트'도 써보면 좋겠다는 꿈을 갖게 한다. '흡혈귀의 비상'이라고 부르는 투르니에의 독서론은 이렇다(뒷표지에 실린 것으로 <짧은 글 긴 침묵>으로부터의 인용이다).

 

 

작가가 한 권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것은 얼굴도 모르는 남녀 군중들 속으로 종이로 된 수천 마리의 새를, 바삭 마르고 가벼운, 그리고 뜨거운 피에 굶주린 새떼를 날려보내는 것이다. 이 새들은 세상에 흩어진 독자들을 찾아간다. 이 새가 마침내 독자의 가슴에 내려앉으면 그의 체온과 꿈을 빨아들여 부풀어오론다. 이렇게 하여 책은 작가의 의도와 독자의 환상이 분간할 수 없게 뒤섞여서 들끊는 상상의 세계로 꽃피어나는 것이다. 그 다음에 독서가 끝나고 바닥까지 다 해석되어 독자의 손에서 벗어난 책은 또 다른 사람이 또다시 찾아와 그 내용을 가득한 것으로 잉태시켜주기를 기다린다. 이렇게 주어진 사명을 다할 기회를 가진 책이라면 그것은 마치 무한한 수의 암탉을 차례로 도장 찍어주는 수탉처럼 손에서 손으로 전해질 것이다.

12. 0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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