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명저번역총서로 조르주 루의 <메소포타미아의 역사>(한국문화사, 2013)은 지난주에 보고서 관심도서에서 제쳐놓았는데, 다시 확인해보니 전문학술서라기보다는 교양 입문서다. 오늘의 이라크 지역이니 생소하긴 하지만, 이집트의 역사를 읽는다면 메소포타미아의 역사라고 해서 제쳐놓을 이유는 없겠다. 저자에 대한 간략한 소개는 이렇다.

 

1914년 프랑스 육군 장교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홉 살 때 가족과 함께 중동으로 건너가 12년 동안 시리아와 레바논에서 살았다. 프랑스로 돌아와 파리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1941년에 졸업한 후 프랑스 고등 연구원에서 동양학을 공부했다.(...) 1964년에는 자신이 썼던 메소포타미아 관련 글을 기초로 <고대 이라크>(Ancient Iraq)란 영문 저서를 출간한다. 이 저서를 개정하여 프랑스어로 출간한 것이 바로 <메소포타미아의 역사>(La Mesopotamie)다. 의사이며 아시리아학 학자였던 조르주 루는 1999년 세상을 떠났다.

그 <고대 이라크>는 펭귄북으로 나와 있다. 그만큼 대중적인 기본서라는 뜻도 된다. <메소포타미의 역사>의 문턱도 그만큼 낮아진다고 할까. 프랑스어판의 서문을 쓴 장 보테로는 일반 독자들뿐 아니라 아시리아학 전문가들에게도 유익한 책이라며 이렇게 평했다.

내 생각엔, 지나치게 전문적이고 현학적이며 딱딱하기 쉬운 학술 출판물의 틈바구니에서 이 책이야말로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관한 초상화를 그리는 작업에 최초로, 그리고 유일하게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이 초상화는 충분히 자세하고 명료하고 매력적이면서 누구든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종합적 정리가 잘 되어 사실적이어서 전문가들에게도 유용하다. 영어권 대중과 권위자들, 즉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고고학자들과 아시리아학 학자들 역시 이 작품에 대해 나처럼 생각했다고 믿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이 책의 초판이 1966년에 유명한 펭귄 총서로 출판되고, 4쇄까지 소진된 1980년에는 개정된 2판이 바로 이어서 출간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쇠유 출판사(Editions du Seuil)가 마침내 이 책을 프랑스어권 대중에게 제공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뻤다. 프랑스어판은 완전히 개정되었고 새로 쓰였기 때문에 사실상 새로운 책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나은 책이다. 이 분야에서 지금까지 프랑스어로 된 책은 너무 짧고 재미없는 짜깁기이거나, 거의 전문적이고 아주 특수한 분야를 다루는 논문들뿐이었다.

그리고 역자 김유기 교수도 대동소이한 견해다.

많은 사람에게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란 표현이 그다지 낯설지 않지만 이 문명에 관해 소개하는 한국어 자료는 비교적 많지 않다. 인류 역사 최초의 문명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 친절한 길잡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번역서를 내놓는다.

 

찾아보니 메소포타미아에 대한 기본서는 장 보테로의 <메소포타미아>(시공사, 1998)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신화를 다룬 <초창기 문명의 서사시>(이레, 2008)와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도시의 흔적을 탐사한 이주형의 <신들의 도시, 왕들의 도시>(보성각, 2012) 등이 소수의 읽을 거리에 속한다. 그런 상황에서 <메소포타미아의 역사>가 나왔으니 나름 파격적이다. 시야가 대폭 확장됐다고 할까. 책을 읽을 만한 여유가 생기면 좋겠다...

 

13.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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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밀어내기인지 두툼한 학술명저가 연이어 출간되고 있다. 흥미로운 타이틀도 여럿 되는데, 오늘 주문해서 받은 건 드니 드 루즈몽(1906-1985)의 <사랑과 서구문명>(한국문화사, 2013)이다. '트리스탕 신화에서 시작된 서구 천 년 정념의 역사'가 부제. 저자는 스위스의 문화사가이자 사상가. 국적은 스위스였지만 유럽 연방주의자로 이름이 높다.

 

 

 

학술명저번역총서의 하나로 출간되긴 했지만 책은 학술서라기보다는 에세이다. 놀라운 건 책이 1939년에 출간됐다는 것. 1938년에 썼으니 32살에 완성한 책이다. 그리고 무려 일곱 번째 책이다. 전 생애에 걸려 수십 권의 책을 쓴 다작의 저자이기도 하다. <사랑과 서구문명>이 국내엔 처음 소개되는 책이지만.

 

 

견줄 만한 책으로 얼른 떠오르는 건 크리스테바의 <사랑의 역사>(민음사, 2009/1995)다. 국내에는 같은 출판사에서 나왔지만 각기 다른 두 종의 번역본이 있다. 기획중인 책과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겨울 독서거리로 삼을 참이다. 간단한 소개는 이렇다.

<사랑과 서구문명>은 중세유럽의 기사도 문학의 걸작인 <트리스탕과 이죄>(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부터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영국 등 사랑을 이야기한 서구 중요 문학작품을 거쳐 20세기 중엽의 헐리우드 영화까지 다룸으로써 사랑과 그 근저에 자리 잡은 정념을 분석한다. 정념의 논리와 변천과정을 풍속사, 전쟁사, 종교사까지 확대하여 전통 가톨릭과 이단의 경계를 넘나들며 위험한 생각으로 간주되던 정념의 본질을 파헤친다. 

 

 

그 <트리스탄과 이죄>(혹은 <트리스탄과 이졸데>)도 요즘 번역본을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예전에 구한 책도 소재를 알기 어려워 다시 구입해야 할 처지인데, 예전 번역본이 <해설이 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와우라이프, 2011)란 제목으로 나와 있다. 원작에 해당하는 고트프리트 폰 슈트라스부르크의 <트리스탄>(지만지, 2011)은 다행히 아직 절판되지 않았다.

 

 

영어본을 구해서 같이 읽어봐야겠다. 어쩌면 바그너의 오페라에도 관심이 뻗어갈지 모르겠다...

 

13.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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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의 <유년기와 사회>(연암서가, 2013)가 출간됐기에 '이주의 고전'으로 꼽는다. 찾아보니 80년대에 <아동기와 사회>란 제목으로 출간된 바 있다. 번역본의 부제 자체가 '유년기의 사회적 의미를 다룬 발달심리학의 고전'이다. 예전에 세계사상전집에 <아이덴티티>가 포함돼 있곤 했는데, 지금 구할 수 있는 건 <청년 루터>(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0), 공저로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학지사, 2000) 등이다. 연구서로는 박아청의 <에릭슨의 인간이해>(교육과학사, 2010)가 있다. <유년기와 사회>는 어떤 책인가.

 

임상적 정신분석의 통찰과 문화인류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법을 결합시킨 <유년기와 사회>는 아동 양육과 문화적 기능의 상호관계를 다루면서, 인간 행동의 동기가 되는 유년기와 성인기의, 그리고 현대와 고대의 요소들을 분석한다. 마거릿 미드로부터 “인문학 분야에서 유럽과 미국의 사고가 결합된 생생하고 보기 드문 수작”이라는 찬사를 받은 이 책은 수많은 외국어로 번역 출간되었으며, 유년기의 사회적 의미를 연구하는 이들에게 고전이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장 제목이 '막심 고리키의 청소년기에 대한 신화'여서 더욱 관심을 갖게 된다('히틀러의 어린 시절에 대한 신화'도 다룬다). 이렇게 되면 관심도서가 아니라 필독서가 되기에.

 

 

현직 고교 교사로서 성장을 주제로 한 저작을 여러 권 번역한 송제훈 교사의 번역인데, 옮긴이 말에 이렇게 적었다.

‘인간 발달 8단계’나 ‘정체성의 위기’ 같은 개념들은 지금도 수많은 심리학 서적과 강의에서 인용되고 있다. 하지만 에릭슨의 발달 이론은 근본적으로 문화인류학과 역사학 그리고 개인의 총체적 삶에 대한 연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의 이론은 대학의 심리학 수업에서 맥락 없이 제시되고 암기되기에는 너무나 깊은 통찰과 넓은 지평을 보여준다. 이 책은 그가 임상을 통해 만난 많은 사람들의 사례와 미국의 두 인디언 부족에 대한 현장연구, 그리고 히틀러와 고리키의 삶을 개인적, 사회적, 역사적 맥락에서 분석한 결과를 아우르고 있다.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에릭슨은 이러한 전체의 그림을 통해 완전하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근년에 책이 많이 나온 비고츠키와 함께 에릭슨도 독서목록에 올려놓는다. 그러고 보니 아동정신분석과 동화에 관한 책들도 최근에 몇 권 구입했다. 유년기로 다시 돌아갈 일은 없건만, 책들이 눈에 띄는 건 왜일까...

 

13.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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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고전'은 에인 랜드의 <아틀라스>(휴머니스트, 2013)다. <파운틴헤드>(휴머니스트, 2011)가 재번역된 데 이어서 대표작 <아틀라스>도 다시 번역돼 나왔다. 5권짜리 민음사판은 절판된 지 오래됐는데, 이번에 나온 건 3권짜리다. 모양새가 더 나아졌다. 미국식 자본주의 이상을 웅변하고 있는 이 소설에 대해선 예전에 다룬 적이 있는데(http://blog.aladin.co.kr/mramor/3405937), 이제 비로소 읽어볼 수 있게 됐다. 어떤 소설인가.

 

1991년 미국 의회 도서관과 '이 달의 책 클럽'이 공동 실시한 조사에서 '미국인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책'으로 <아틀라스>가 성경의 뒤를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미국 객관주의 철학의 창시자인 작가 에인 랜드의 정수를 담은 지성적 소설로, 가상의 '민중 국가'인 미국을 배경으로 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진짜 주역은 누구인가를 되묻는다.

한국인의 '종미주의'를 얘기하곤 하지만, 나는 늘 외견상으로만 그렇게 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미국식 사고방식의 핵심을 보여주는 책들이 국내에서 별로 읽히지 않는다는 게 그 증거다(대신에 우리는 드라마를 본다?). 에인 랜드의 <아틀라스>도 마찬가지다.

 

 

 

러시아 혁명과 현실 사회주의를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소설이 (레닌이 다섯 번이나 읽었다고 술회한) 체르니셰프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1863)라면 미국의 자본주의 정신을 가장 잘 해명하고 있는 책이 바로 <아틀라스>다(이 경우에도 물론 소설적 이상과 미국의 현실 사이의 괴리는 얼마든지 지적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에인 랜드는 1905년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1926년에 미국으로 망명한 유대계 러시아인이었다(본명은 알리사 로젠바움). 

 

 

국내에선 <마천루>(광장, 1988)라고 번역된 적도 있는 <파운틴헤드>(1943)로 처음 명성을 얻고, 이어서 대표작 <아틀라스>(1957)로 미국 자본주의의 대모가 된다. 소설로만 만족하지 않아서 <철학><낭만주의 선언><자본주의의 이상> 등의 철학서도 펴내는데, 국내에도 <철학 누가 그것을 필요로 하는가>(자유기업센터, 1998), <낭만주의 선언>(열림원, 2005), <자본주의의 이상>(자유기업센터, 1998)으로 소개됐었지만 현재는 모두 절판됐다.

 

 

한국의 자본주의자들은 에인 랜드를 읽지 않거나 에인 랜드의 생각에는 무관심하다고 할까. 그러니 <아틀라스>를 읽는 건 사실 한국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저 미국을 이해하는 데, 그리고 자본주의 정신을 이해하는 데 의미가 있을 뿐이다. 슬라보예 지젝도 <공산당 선언>에 견줄 만한 게 자본주의에 있다면 그건 에인 랜드의 책들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편, 정치 이념으로 자유지상주의를 강령하게 옹호하는 머리 로스바드의 <새로운 자유를 찾아서: 자유지선주의 선언>(한국문화사, 2013)도 최근 번역돼 나왔다. 흔히 자유방임주의, 자유지상주의라 번역되는 리버테리어니즘(Libertarianism)을 역자들은 '자유지선주의'라고 새롭게 옮겼다('자유지상주의'와 다른 의미가 아니라면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자유지선주의'는 아직 사전에도 등재돼 있지 않은 용어다). 어떤 책인가.

오늘날 세계에는 매우 다양한 자유지선주의 사상이 있으나 로스바드 주의(Rothbardianism)는, 심지어 그 이름이 언급되지 않더라도, 그 지적인 무게, 주요 사상과 양심, 전략 및 도덕의 핵심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지켜왔고, 논쟁의 초점이 되어왔다. 그 이유는 머리 로스바드(Murray Rothbard)가 현대 자유지선주의의 창시자이기 때문이다. 그가 주창한 현대의 자유지선주의는 좌파와 우파의 이념적 틀은 물론 국가권력의 행사와 관련한 그들의 중앙집권적 계획에서 즉시 벗어날 것을 제안한 하나의 정치적-이념적 체제라는 데 있다. 자유지선주의는 국가권력은 제대로 작동할 수 없고 비도덕적이라고 주장하는 급진적 대안 사상이다.

미국 연방법원의 판결을 보면 최근의 사상적 흐름은 개인의 자유를 국가의 규제나 간섭보다 우위에 두려는 쪽으로 가는 듯싶다(공화주의에서 자유주의 내지 자유지상주의로). 동성 결혼의 합법화가 대표적인 사례인데, 오늘 보도에 따르면 미국 유타주의 연방 지법에서 일부다처제도 허용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당사자들의 자유의사에 따른 결혼이라면 국가가 금지해서는 안된다는 취지다. 연방 대법원의 판결까지 가봐야 알겠지만, 동성 결혼은 허용하고 일부다처제는 금지한다는 건 법리상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이것이 '새로운 자유를 찾아서'일까...

 

13. 12. 15.

 

P.S. 궁금해서 찾아보니 <아틀라스>는 러시아에서도 3권짜리로 출간돼 있다. 영어본은 1168쪽짜리 단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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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고전'으로 김만중의 <구운몽>을 고른다. 문학동네의 '한국고전문학전집'의 하나로 다시 나왔기 때문인데, 개인적으로는 학부 1학년 첫 학기에 쓴 첫 리포트가 <구운몽>에 대한 것이었다(평점도 괜찮았다). 그때 읽은 건 김병국 교수의 번역판이었는데, 그간에 새 번역본이 여러 종 더 출간됐고, 나도 네댓 종을 갖고 있다. 이번에 나온 건 정병설 교수가 옮긴 것이다. 정 교수는 이미 <구운몽도>(문학동네, 2010)를 펴낸 바 있다.

 

 

 

이미 친숙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왜 새로운 번역이 필요한가. 물론 작품에 대한 시각이 문제다. 그리고 고전이 고전으로서 의미를 갖는 건 언제나 다시 읽기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소개는 이렇다.

<구운몽>은 소설이다. 그것도 아주 재미난,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대중소설이다. 불교의 공(空) 사상을 빌려 삶의 덧없음을 극적으로 펼쳐 보인 철학소설도 아니고, 여덟 여인을 거느린 어느 호색한의 문란한 사생활을 다룬 도색소설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적 작품을 대체 어떻게 읽어내야 할까? 여기, 충실하게 오늘의 언어로 되살린 <구운몽> 결정판이 선을 보인다.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정병설 교수는 이번 <구운몽> 번역에서, 작품의 행간까지 읽어낼 수 있도록 매우 충실하게 내용을 복원하고, 오늘의 독자가 이질감 없이 읽어낼 수 있도록 현대적인 문장으로 다듬어냈다.

예전에 읽은 김병국 교수판은 절판되고 새로 두 종이 나왔는데, 일단 <현대역 구운몽>(서울대출판부, 2007)을 주문해서 오늘 받았다. 하드카바에 너부죽한 판형이어서 놀랐다.

 

 

 

원문 교주본이 따로 있고, 현대역과 원문 교주본을 합본한 책도 따로 있다(768쪽 분량의 소프트카바다). 이것까지 구입해야 할지는 아직 미지수라 보류한 상태이고, 다만 김병국 교수의 연구서 <서포 김만중의 생애와 문학>(서울대출판부, 2001) 정도는 구입하려고 한다.

 

 

현재 가장 많이 읽히는 번역본은 송성욱 교수가 옮긴 <구운몽>(민음사, 2003)이다. 역시 세계문학전집판의 위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밖에 설성경 교수가 옮긴 <구운몽>(책세상, 2003)과 정길수 교수의 <구운몽 다시 읽기>(돌베개, 2010)도 갖춰놓을 만하다. 

 

 

 

좀더 전문적인 연구서로는 설성경 교수의 <구운몽의 통시적 연구>(새물사, 2007)와 <구운몽의 비밀>(서울대출판문화원, 2012) 등이 있다. 국문학자들이 쓴 <김만중 연구>(새문사, 1990)도 아직 절판되지 않았다.  

 

한국 고전소설에 대한 관심은 얼마전 <춘향전>을 다시 읽으며 새롭게 갖게 됐는데, '다시 읽기'의 소득이 있으면 나중에 강의에서도 다뤄보고 싶다...

 

13.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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