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문화일보의 북리뷰에서 주목한 책은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열린책들, 2006)이었다. 저자의 이름에도 (귀족 출신임을 표시하는) '폰'이 들어가 있고, 제목에도 '우아하게'가 들어 있는지라 '가난해지는' 정도는 가볍게 무시하고 일단을 눈길을 주게 되는 책. 알고 보니 2005년 독일에서 출간되어 30만부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굳이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대열에 합류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독일 사회의 한 트렌드 정도는 읽게 해줄 만한 책이므로 우아한 손길마저 가져가도 무방하겠다. 문화일보와 국민일보의 자세한 리뷰를 옮겨놓는다.    

문화일보(06. 07. 21) '돈' 없이도 가능한 풍요로운 삶

-부자가 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돈이 많다는 건 단순한 풍요를 넘어 여유와 자유와 멋과 아름다움 등을 총체적으로 의미한다. 그러나 문제는 부자 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부자가 되기는커녕, 세계 곳곳에서 중산층이 무너지고 풍요의 시대는 끝났다는 신호가 번쩍인다. 이렇게 물질적인 풍요가 사라지면, 우리는 품위를 잃고 초라해 져야 하는가.



-몰락한 명문 귀족의 후손으로, 독일 유력지의 칼럼니스트로 일하다 구조조정을 당해 현재 프리랜서로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는 저자는 그게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이 겪어본 결과, 여유와 멋과 자유와 만족과 아름다움과 우아함에서 부자보다는 가난한 것이 훨씬 나았다는 것이다(*저자에게 '가난'의 기준이 어느 정도인지 일단 모르겠다. 이 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면 그의 '가난'은 물건너 간 건 아닐까?).

-책에 따르면 인간은 돈이 없어도, 아니면 최소한의 적은 돈으로도 얼마든지 부유한 삶을 누릴 수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생활양식’과 ‘마음가짐’의 변화일 뿐이다. 진실로 부유해지고 싶은 사람은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기보다 황폐하게 만들 뿐인 것들에서 자신을 지켜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일’에 대한 생각이다. 종교개혁 이후 루터와 캘빈에 의해 ‘일’은 도덕적인 지위를 부여받고, 직업과 동의어가 됐지만 실은 여기에 문제가 많다. 사람들은 열심히 일해 돈을 벌고 근사한 주택과 자동차를 마련하나 그게 어쨌다는 것인가. 돈을 위해 일에 묻혀 지내는 사이 아이는 훌쩍 커 버리고, 시간은 사라지며 스트레스와 심근경색으로 건강과 목숨을 잃기까지 하는데….

-집의 가치와 자동차, 휴가 여행 등에 대해서도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아무리 점잖은 사람도 운전대만 잡으면 욕설이 튀어 나오게 되고, 과속을 유발하는 자동차는 실용적인 이유뿐 아니라 비용을 따져도 말이 되지 않는다. 오늘날 관광이라 불리는 것도, 겉보기엔 고상해 보이지만 사실은 기괴했던 속물들의 여행이 발전한 결과일 뿐이다(*이건 마음에 드는 멘트이군).

-외식, 매스미디어, 아이 키우기, 쇼핑 등등에서 가난뱅이가 부자보다 유리할 수 있는 이유를 설득력 있으면서도 재미있게 풀어가던 저자는 마지막 부분에서 자신이 경험한 부자의 사례를 중심으로 돈이 왜 행복의 걸림돌이 되는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우리를 진정 풍요롭게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책을 끝맺는다.

-“삶을 보람있게 해주는 것들은 수중의 돈이 감소한다고 줄어들지 않는다. 우리의 내적인 자주성은 결코 수입의 문제가 아니다. 박식함이나 예의범절도 마찬가지다. …정중함, 친절함, 다정함, 도와주려는 마음, 삶을 쾌적하게 해주는 모든 것은 무한할 수 있으며, 물질적인 여건과는 완전히 무관하다(*요컨대, 그가 말하는 바는 '가난하지만 우아한 귀족이 되는 방법'인 듯싶다). (김종락 기자)


국민일보(06. 07. 22) 가난,두려워 말고 즐겨라...

-열심히 일하고 성실하게 사는데 생활은 좀처럼 안정되지 않는다. 돈이 있으면 좀 자유로워질 줄 알았는데 벌어도 벌어도 돈은 늘 부족하다. 시간도 마찬가지. 더 일찍 일어나고 더 늦게 잠드는데도 도무지 여유가 없다. 그뿐인가. 언제 해고될지 언제 파산할지 모른다. 실수를 하면,혹은 재수가 없으면 바로 추락이다. 풍요의 뒤에 가려진 위태로운 삶. 대량실업과 중산층 붕괴의 긴 그림자. 식은땀이 난다.

-우리는 지금 빈민화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경쟁은 갈수록 치열한데 복지는 거꾸로 후퇴한다. 조만간 20%의 상류층에 들지 못하면 80%의 하류층이 되고 말 거라고 한다. 그래서 성공에 대한 책,부자에 대한 책이 넘쳐난다. 가난은 수치이고 하류층이 되는 건 재앙이다.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은 가난을 견딜만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그리고 가난해진 삶에 깃든 행복을 발견하게 한다(*슈마허의 <자발적 가난>과 같이 묶일 만하다). 책은 200쪽 정도로 얇지만 신선하고 전복적인 관점,소비와 취향에 대한 근본주의적 태도,그리고 우아한 문체가 빛나고 있어 페이지마다 밑줄을 쳐야 하는 책이다.

-“현실을 직시하자. 풍요로운 시대는 이제 완전히 지나갔다… 오늘날 가난해지는 사람은 자신만이 실패자라고 느낄 필요가 없다. 훨씬 더 포괄적인 과정의 일부로 가난해지는 것이며,따라서 그의 운명은 역사적인 차원을 가진다.”

-가난은 수치가 아니며 자신의 잘못도 아니다. 그것은 저자 쇤부르크의 경우만 봐도 명확하다. 쇤부르크는 독일의 권위있는 신문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기자로 일하다가 2002년 정리해고를 당했다. 경제 불황 때문에 베를린에서만 1만명의 언론인이 일자리를 잃은 시절이었다. 중산층이었던 그의 삶은 하루아침에 하류층으로 떨어졌다. 집에 들어앉아 소위 ‘자유 저널리스트’가 된 그는 경제적 고통 앞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그리고 인간의 품위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이 책은 그가 가난에 대해 생각하고 실천한 기록이다.

-그의 결론은 이렇다. “존재의 불안에 억눌리지 않고 굶주림에 시달리지 않고 집세를 지불하고 진정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일들을 할 수 있는 한, 얼마든지 행복하고 우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삶의 목표가 돈이 아니라 행복이나 아름다움, 품위 같은 것이라면 가난은 그 목표를 이루는 데 걸림돌이 아니라 사다리가 된다. 가난이 우리 삶에서 비본질적인 것, 의미없는 것, 저속하고 해로운 것 등을 제거하기 때문이다(*비루하고 저속한 부자들이 많은 동네에선 더욱 그렇겠다).

-예컨대 집 문제를 보자. 크고 좋은 집들은 손님을 불편하게 한다. 작고 소박한 집에서 손님들을 불러놓고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집은 얼마나 멋진가. 엘리베이터 없는 5층 건물의 꼭대기 층에 산다고 기 죽을 것 없다. 계단 오르기는 심장 질환을 예방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자동차는 어떤가. 대도시에서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은 경제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데 사람들은 자동차를 버리지 못한다. 그들은 기차와 지하철, 버스 등을 이용하면 더 많은 세상을 만날 수 있다는 걸 모른다.

-직업을 잃었다고 친구들과 저녁식사를 피할 이유는 없다. 외식 대신 집에서 함께 식사를 하면 된다. 식사는 대화를 나누기 위한 사건이며, 그 사건의 중심은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아닌가. 가난하다고 운동을 즐기지 못하란 법도 없다.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스포츠는 자연 속에서 빠르게 걷는 것이다. 러닝머신에서 두 발을 놀리며 멍청하게 화면을 응시하는 것보단 백 배 낫다.

-이런 질문도 해보자. 왜 휴가때는 반드시 해외여행을 떠나야 하는가? 소문난 영화라고 나도 봐야 하는가? 쇼핑한 물건 중 꼭 필요한 것은 얼마나 되나? 혹시 남들이 하니까 따라하고 있는 건 아닌가? 가난은 이런 습관들과 결별하는 계기가 된다. 이 결별을 두려워하거나 슬퍼할 이유는 없다. 찬찬히 짚어보면 별 의미가 없는 것들이다. 그것들을 치우고 난 빈 자리에서 자기 취향이 살아나고 자기 주도적 생활이 시작된다. 우아하게 가난한 삶은 그렇게 시작된다.



-“있는 그대로의 내 삶이 아름답고 다른 사람들의 삶은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는 마치 해방된 것 같았다. 부는 욕구의 문제이다. 이른바 우리의 욕구라고 하는 것들은 대부분 인위적으로 만들어졌으며, 심지어는 우리 본래의 욕구를 가로막는 경우도 많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 누구나 부를 누릴 수 있다. ”

-이 책이 가난을 무조건 옹호하거나 낭만화하는 건 아니다. 대다수가 가난해지는 빈민화가 현실이라면 가난한 삶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하고, 가난한 생활방식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저자는 가난을 공포와 수치의 상태에서 윤리적인 미학적인 상태로 재규정했다. ‘우아’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가난의 심리학을 발견한 건 도스토예프스키였다. 쇤부르크는 가난의 미학을 개척하고자 하는 것).

-“넘치는 풍요의 시대에서 조금 유행에 뒤떨어졌던 많은 미덕들이 이제 결핍의 시대에서 다시 르네상스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자원 고갈,복지의 후퇴가 꼭 분배의 싸움으로 끝나라는 법이 어디 있겠는가. 아니 한걸음 더 나아가 그것은 오히려 전혀 예상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사회적 존재로서 우리의 재탄생.”

-우리는 과연 가난을 긍정하게 될 수 있을까? 그리고 가난 속에서도 우아하고 품위있는 삶이 가능한 것일까? 나아가 지금의 욕구를 돌아보고 스스로 포기할 수 있을까? 이 사회에 이런 질문들을 던진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 책의 의미는 충분하다.(김남중 기자)

06. 07. 23.

P.S. '자발적 가난' 혹은 '우아한 가난'이 정치적 구매력을 가질 수 있을까? 즉, 그러한 방향으로의 사회개혁을 위한 정치적 지지를 얻을 수 있을까? 가난은 진보의 '역설적인' 화두가 될 수 있을까?(요즘 '진보의 대안'이라는 요구가 많이 제기되므로.) 개인적 차원에서 몇 사람이 우아를 떠는 일은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것이 사회적인 흐름, 혹은 운동이 될 수 있느냐이다. 즉, '가난해지기 경쟁'이 유발될 가능성이 있느냐. 우리가 탐욕이란 제 버릇을 남줄 수 있느냐 하는 것. 손쉽게 '예스'라고 말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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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6-07-24 00:35   좋아요 0 | URL
저도 코멘트를 달긴 했는데, 아무래도 선진국의 '가난'이란 게 중진국, 후진국과는 차이가 좀 나겠죠... 사실은, 저도 조용조용한 성격입니다(^^;)...

가을산 2006-07-24 12:39   좋아요 0 | URL
역시 사회보장이 잘 되어야 우아하게 가난해질 수 있는것 같습니다.

로쟈 2006-07-24 12:58   좋아요 0 | URL
우리에게 가난을 보장하라!..

瑚璉 2006-07-24 14:55   좋아요 0 | URL
로쟈 님, 책은 주문했는데 그래24에서 주문하는 통에 thanks to를 못했습니다. 마음이 아픕니다요(-.-;).

로쟈 2006-07-24 14:58   좋아요 0 | URL
그런 말씀은 안 하시는 게 예의에 맞는 겁니다요(^^)...

瑚璉 2006-07-24 16:46   좋아요 0 | URL
그 대신이라기는 무엇하지만 페이퍼에 추천을 했습니다요(^.^;).

릴케 현상 2006-07-25 11:28   좋아요 0 | URL
선진국의 '가난'이란 게 중진국, 후진국과는 차이가 좀 나겠죠... <---선진국에서 나온 글을 읽으며 늘 느끼는 거예요^^
 

캐나다의 작가 얀 마텔(1963- )은 내게 생소한 작가이지만 저명한 부커상 수상작가(2002년)라고 하니까 '가락'이 없지 않겠다(우리 나이로 마흔에 부커상 작가가 된 셈인데, 앞으로 더 많은 활동이 기대되는 작가이겠다). <파이 이야기>(작가정신, 2004)에 이어서 장편 <셀프>(작가정신, 2006)가 국내에는 두번째로 소개된 모양이다('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이 최근 서구문학의 트렌드인가?). 작가의 이름을 기억해두는 의미에서 신작에 대한 리뷰를 옮겨온다.

동아일보(06. 07. 22) 내 몸이 여자로 변했다…‘셀프’

-작가 얀 마텔의 부커상 수상작 <파이 이야기>가 국내에서 조용한 인기몰이를 하면서 그의 마니아 독자층이 튼튼하게 만들어졌다. 그런 만큼 작가가 쓴 첫 장편소설 <셀프>의 출간 소식에 환호할 사람이 많을 듯싶다(*그러니까 <파이 이야기>보다 먼저 씌어진 작품이며, <파이 이야기>의 힙입어 마저 번역/소개되는 듯싶다) . <셀프>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문장이 까다로운 편이지만 지나치게 어려운 건 아니다. 오히려 한 문장 한 문장 생각하고 고민하게 만든다. 그만큼 의미 있게 짜인 작품이다.

 

 

 

 

-이야기는 한 젊은 소설가가 써 내려간 자서전 형식이다. 언뜻 보기에 소설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좀 황당하다. 외교관 부모를 따라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유년 시절을 보낸 소년 화자가 열여덟 살 때 느닷없이 여자가 된다는 것. 그러잖아도 ‘나’는 사내애인 친구 노아와 결혼할 수 없다는 사실에 일찌감치 절망했고 지렁이가 암수한몸이라는 데 감탄했던 터다.

-하루아침에 성별이 뒤바뀐 대목은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를 떠올리게 한다. 1900년대 초반의 여성 작가 울프가 여성이 된 남성의 목소리를 통해 성 차별을 작품화했던 것과 달리, 21세기 남성 작가인 마텔은 같은 사건을 통해 섹슈얼리티와 사랑의 본질에 대해 탐구한다. 가슴의 털이 다 빠지고 월경을 치르게 된 ‘나’. 남성이었을 때의 습관처럼 여성과 연애했지만 주변에서 보기엔 동성애다. ‘나’는 자연스럽게 신체에 맞는 짝, ‘남성’을 찾아 나서게 된다.

-작가가 말하려는 것은 ‘무엇이 누구를 현재의 그로 만들었는가’에 대해서다. 남성이 여성이 돼 버린 판타지 같은 일로 인해 20대에 가깝도록 지켜왔던 남성이라는 성 정체성이 바뀔 정도로, 인간은 유약한 존재다. 방황 끝에 화자가 안착하게 된 것은 운명 같은 남자를 만나면서다. 사랑의 보금자리를 마련하면서 ‘나’는 행복감에 젖는다. 변한 것은 육체일 뿐이며 자신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또 상대가 어떤 성(性)이든, 중요한 것은 진정한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작가는 전달한다(*메시지 자체도 변한 건 없는 모양이군).

-성 묘사가 포르노에 가까울 정도로 적나라하다. 수음, 동성애, 강간 등 온갖 행위를 노골적으로 그려놓는데, 흥미롭거나 민망한 게 아니라 이상하게 쓸쓸하다. 가까워지기 위해 몸을 섞지만 그럴수록 고독해지는 현대인의 풍경이다. 마텔은 소설 곳곳에 영어와 프랑스어를 동시 배치해 두 언어의 유사성을 보여 주려 했는데, 한국어판에선 그런 맛을 보기 어렵다. 그러나 몇몇 쪽을 두 단으로 만들고 곳곳에 여백을 두는 등 기존 소설에선 보기 어려운 독특한 구성을 도입한 것만으로도 그의 실험정신을 짐작할 수 있다. 원제 ‘Self’(1996년).(김지영 기자)

06. 0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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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황실 지리학회 탐사대원이 쓴 대한제국  견문록 <코레야 1903년 가을>(개마고원, 2006)이 번역돼 나왔다. 개인적으론 번역자들 안면도 있고, 책의 번역/출간 소식은 간간이 접하던 터였다. 관련 리뷰 두 편을 미리 읽어본다.  

 

 

 

 

서울신문(06. 07. 22) 서양인의 눈으로 본 한국의 사회상은 우리를 ‘객관화’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항상 관심을 끌어왔다.1668년에 나온 <하멜 표류기>는 조선의 존재를 처음으로 유럽에 각인시켰던 책으로 지금까지도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구한말 러시아와의 관계가 매우 활발했던 시기 많은 러시아의 탐험가와 군인들이 조선을 소개하는 책자를 선보였는데, 곤차로프의 <전함 팔라다>, 가린 미하일로프스키의 <한국과 만주, 요동반도 기행> 등을 찾아볼 수 있다(*물론 이 분야의 '고전'은 이사벨라 비숍의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이겠다).

-당시 러시아의 속국이던 폴란드 출신의 작자 바츨라프 세로셰프스키가 1903년 조선에 체류하면서 겪은 바를 서술한 <코레야 1903년 가을>은 제국러시아의 마지막 견문록이다. 몽골 계통의 여성과의 결혼한 저자가 조선 방문을 결행하고 이를 글로써 남기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 책은 조선의 사회, 경제, 문화, 대외관계 등 거의 모든 분야를 다루고 있으며, 특히 세로셰프스키의 지리와 풍경에 대한 묘사는 문학가의 기질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조선의 종교인 불교, 유교, 동학 그리고 확산되고 있던 가톨릭, 프로테스탄트 등의 위상과 각 종교의 현재성을 묘사한 부분은 저자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며 사료적으로도 가장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일반 백성들에 대한 그의 시선은 따뜻함이 배어 있으며, 때로 그는 그들의 진취성에 감탄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조선에 대한 저자의 시선은 항상 긍정적이지만 않았다. 때문에 그는 조선의 어두운 모습들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데, 이를 테면 위계화된 신분제도에 대해 실생활과 연관지어 하층민의 비참한 생활상과 상층부의 부패를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그의 눈에 비친 ‘서로의 죄를 은폐해주는’ 관리들의 연대의식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것이었다.

-가부장제하에서 조선여성들이 겪는 숙명적인 삶은 저자에게는 커다란 안타까움으로 다가왔으며, 아마도 그 연장선에서 서술된 기생들의 일상이 그려졌을 터였다. 그가 조선의 기생제도를 자유롭게 다루고 나중에 소설 ‘기생 월선이’를 출간한 것도 저자의 자유분방한 사고방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책에서 껄끄럽게 다가설 수 있는 부분은 일본에 대한 서술이다. 세로셰프스키는 일본에 의한 철도 부설을 일본의 커다란 이익을 가져다 줄 것으로 보면서도 “일본이 진보와 휴머니즘의 정신으로 이 불쌍한 한국 또한 일으켜 세워주리라 기대해 본다.”는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훗날 그는 조선의 식민지화를 조국 폴란드의 현실과 비슷하고도 동정했지만 한일합병 이전에 쓰여진 이 책은 일본에 의한 개화를 긍적적으로 묘사하였다. 대개의 견문록들이 저자들의 조국에 대한 이해관계에 충실한 데 반해 폴란드인으로서 세로셰프스키의 관점은 여기에서 벗어나 있다.

-이 책은 단순한 한 외국인의 조선 견문록을 넘어 다양한 실증자료와 통계수치를 활용한 ‘사회과학적인’ 치밀성이 담겨 있는 것은 저자가 그만큼 조선의 삶에 고민한 흔적으로 볼 수 있다. 훗날 폴란드 저자동맹 의장까지 역임한 저자의 필치는 화려함을 넘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저자의 의도를 잘 살린 번역이 깔끔해 보인다. 역사는 반복된다 했던가. 외세와 얽힌 당시의 한반도 모습과 오늘날의 현실을 비교해보는데도 충분히 도움을 주고 있다.(기광서/ 조선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한국일보(06. 07. 22) 우리를 훑는 외부의 시선을 의식할 때, 기분이 참으로 미묘해진다. 우리를 과하게 긍정하는 것도, 반대로 지나치게 깍아내리는 것도 부담스럽고 불편하다. 그런데도 외부의 시선은 더 궁금해진다.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볼까.

-<코레야 1903년 가을>이 보여주는 것은 100년 전 한국 사회다. 폴란드인 바츨라프 세로셰프스키가 러일전쟁 발발 직전인 1903년, 러시아 황실지리학회 탐사대의 일원으로 부산에 도착한 뒤 뱃길을 이용해 원산으로 갔다가 다시 금강산, 평강, 양담, 안양, 양주, 서울로 이어온 여행의 기록이다. 그러나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여로에서 만난고 본 많은 사람의 증언과 사회 현상, 그리고 자연 모습을 통해 당시 한국을 종합적으로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 눈에 띄는 대목은 남루한 현실, 관료에 대한 원성, 사회 곳곳에 밴 일본의 영향이다. 그가 본 한국 사회는 “모든 것이 억눌려 있어 옆 나라 일본에서 느껴지는 생동감이나 진취성을 찾아볼 수가 없”고, 그가 가본 곳은 “어디나 예의 그 황량한 폐허와 먼지, 혐오스러운 불결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물에 씻겨 내려 진흙에 반쯤 파묻힌 작물과, 폭우가 휩쓸고 가 흙빛으로 변한 논도 자주 보았다. 백성의 삶이 얼마나 피폐했을 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생활이 어려울수록 관료에 대한 원성은 컸다. 사또나 관리, 정부의 파발꾼이 지나갈 때 사람들은 “강도 납신다”고 할 정도였다. 그래서 저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양반과 관리들은 민중을 끝없이 핍박하고 강탈하면서 마치 온 나라가 자기들만을 위한 것 인양 행세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한달 남짓 짧은 여행기간 동안, 관료의 부패와 무능을 목격ㆍ체험하는 데 한계가 있었을 텐데도 이 같은 표현이 책에 가득한 것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그런 원성을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의 영향력은 이미 사회 깊은 곳까지 스며 있었다. 금강산 석왕사의 승려들은 검은 빛의 일본식 기모노를 입고 검은 빛의 일본식 두건을 쓰고 있었다. 일본인은 서울, 부산에 자기들만의 깔끔하고 편리한 주거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들은 산 채로 우리 목에 올가미를 걸고 있어요…우리 모두 곧 그들의 노예가 될 겁니다. 서울 땅의 삼분의 일이 벌써 그들 소유라는 것을 아십니까?” 젊은 관료 신문균은, 현실화하는 일본의 침략상에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한국의 종교, 산, 사찰, 농업, 음식, 기후, 학교, 가축, 공동묘지와 장례의식, 여성의 지위, 상공업과 해외교역, 신분, 심지어 기생사회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을 읽을 수 있다. 호랑이를 잡기 위해 역할을 나누고 깊게 쌓인 눈 더미로 녀석을 유인한 뒤 공격과 도망치기를 반복하면서 힘을 뺀 다음 제대로 걸려들면 창으로 마구 찔러내는 식의 사냥법 등 재미있는 내용이 많다.

-거슬리는 대목도 있다. 우리를 낮춰 보고 일본을 문명국으로 인정한 부분이 특히 그렇다. “일본인들이 유능한 민족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들은 동양 여기저기에 자기 식의 생활방식을 주입하고 중국인과 한국인은 일본인을 형제로 보기 때문에 그들에게 기꺼이 복종한다.” “일본이 진보와 휴머니즘의 정신으로 이 불쌍한 한국 또한 일으켜 세워주리라 기대해본다.”

-민족운동,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한 그의 이력을 볼 때, 이 같은 표현이 등장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러시아 식민지인 조국 폴란드의 독립을 누구보다 갈구했을 그가, 일본의 침략 야욕을 읽지 못한 채 겉모습만 보고 한국과 일본을 대비시킨 것이 아쉽다.(박광희 기자)

06. 07. 22. 

P.S. 저자 바츨라프 레오폴도비치 세로셰프스키(1858-1945)의 모습이다. 아래는 그가 쓴 편지(1922년에 씌어질 걸로 보인다). 러시아어 글씨가 가지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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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프랑스인 눈에 비친 제국의 흔적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5-02 11:55 
    이번주에 내가 관심도서 분류한 인문서는 대담집 두 권이나 아직 언론리뷰가 뜨지 않는다. 내주로 넘어간 모양이다. 덕분이 일이 헐거워졌는데, 가뜩이나 일이 많은 터라 다행이긴 하다. 대담집 대신에 잠시 눈길이 간 책은 프랑스인 고고학자가 쓴 <대한제국 최후의 숨결>(글항아리, 2009). 기사에서 언급된 대로 19세기말과 20세기초에 한국 관련서가 유럽에서 다수 쏟아져나왔는데, 이 책은 내용이 충실해서 당시 베스트셀러
 
 
2010-06-25 2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달의 두툼한 책(은 아니군!) <미국 헌법과 민주주의>(후마니타스, 2004)에 대한 서평을 옮겨온다. 필자는 박찬표 교수이며 타이틀은 '훼손되는 ‘다수지배의 원리’. '21세기, 고전 읽기'로 다루어져 비교적 자세하다(그러니 유익하다).  

 

경향신문(06. 07. 22) 우리에게 헌법은 무엇인가.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권력구조 개편논쟁이 한국 민주주의에서 헌법이 가지는 의미의 전부인가. 문제가 간단치 않음은 약간의 역사적 비교를 통해 확인된다.

 

미국 국회의사당에 걸려 있는 하워드 챈들러 크리스티의 1940년 작품 ‘미합중국 헌법에 서명하는 장면’

-군부세력이 헌정질서를 유린했던 시절에 헌법은 민주주의의 상징이었다. 입헌주의는 민주주의의 기초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와 헌법의 관계는 복잡하게 변하고 있다. 예컨대 보수세력은 민주적으로 구성된 정부나 입법부가 개혁입법을 통해 헌법의 근간을 흔든다고 비판하면서 헌법재판소를 통해 이를 저지하려 한다. 행정수도 이전 위헌결정은 그 단적인 예이다.

-개혁진영에서는 ‘1987년 헌법이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인식 아래 개헌을 통한 민주화의 진전을 주장한다. 보수세력에 있어서는 민주주의가 헌법 질서를 위협한다면, 개혁세력에 있어서는 현행 헌법이 민주주의를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헌법을 둘러싼 이러한 상반된 인식은 장식물에 불과했던 헌법이 민주주의 작동의 실질적 변수로 등장했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헌법과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한 보다 진지한 고민을 요구하고 있다.

 

 

 



-2001년 출간된 이 책은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는 우리 시대의 고전이라 할 수 있다. ‘미국 헌법은 얼마나 민주적인가?’라는 원제에서 알 수 있듯이, 민주주의 관점에서 미국 헌법에 대해, 그리고 헌법과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해 뛰어난 통찰력을 제시해준다. 로버트 달에 의하면 민주주의란 자신이 복종해야 하는 법률을 작성하거나 자신을 통치할 대표를 선출하는 데 있어 시민 대중이 발언하는 체제이다. 이는 현실적으로 다수에 의한 통치를 의미한다.

-미국 헌법은 이 기준에서 볼 때 많은 비민주적 요소를 안고 출범했다. 나아가 달은, 헌법이 미국 민주주의의 기초를 닦았다는 통념과 달리, 헌법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민주공화국으로 발전한 것은 제헌 이후의 ‘민주혁명’을 통해 새로운 민주제도와 관행을 창출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미국의 헌정체제는 여전히 많은 결함을 안고 있다. 그 중에서 특히 강조되는 것은 상원 및 대통령선거에서 나타나는 대표성의 결함이다. 의회가 통과시킨 법률에 대해 9명의 판사들이 위헌 여부를 결정하는 사법부의 법률심사권 역시 심각한 대표의 문제를 야기한다. 이러한 미국 헌법의 결함은, 헌법제정자들이 가졌던 다수 지배에 대한 두려움에 기인하는 것으로서, 민주주의의 기초인 정치적 평등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비판된다.

-달이 제기하는 보다 중요한 문제의식은 헌법에 대한 사고방식을 바꾸자는 것이다. 헌법의 정당성은 ‘헌법이 민주정부의 수단으로 유용한가’라는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하며 헌법이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단언한다. 갈등적 이해가 충돌하는 민주주의 정치과정을 초월하여 공동체의 이익을 표징하는 규범으로 헌법을 신성시하는, 헌법 신화에 대한 날카로운 공박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이 점에서 주목할 것이 최장집 교수의 한국어판 서문이다. 최교수는 달의 문제의식을 보다 확장시켜 헌정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를 전면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그는 민주주의를 인민주권과 다수지배 및 평등한 정치참여의 원리에 기초하는 ‘민중적 민주주의’와 다수지배를 견제하려는 ‘메디슨적 민주주의’의 두 모델로 구분하고, 한국 헌법 역시 메디슨적 민주주의를 원리로 하는 것으로서,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가 본격화되면서 미국이 경험했던 모순에 직면하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분할정부로 인한 정치교착과 정부마비, 사법적 정책결정 및 사법적 입법기능을 수행하는 제왕적 헌법재판소의 등장이 그것이다. 최교수는 특히 후자를 후견주의적 발상에 기초한, 다수지배의 민주주의 원리에 대한 중대한 제약으로 간주한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최교수는 정치의 기능을 바로세우는 ‘민주화’의 경로와 헌법을 바로세우는 ‘헌법화’의 길 중 전자를 제시한다. 한국 민주주의의 한계를 헌법에 기대어 해결하려는 자세는 엘리트 역할의 강화를 가져올 뿐이라는 것이다. 헌정주의는 민주화 초기 민주주의의 기초로 작동했지만, 시민권이 사회경제적 영역으로 확대되고 정치적 민주화가 사회경제적 민주화로 심화되는 시점에서 민주주의와의 갈등적 관계에 직면하게 됨을 각국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이 점에서 이 책이 촉구하는 민주주의와 헌정주의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 재인식은, 한국 민주주의의 현 단계에서 깊이 음미할 필요가 있다.

06. 0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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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ioli 2006-07-23 01:07   좋아요 0 | URL
예전에 읽었는데, 조금 더 급진적이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지만 우리 학계 수준에서는 이만해도 충분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 흔히들 헌재가 오히려 후퇴시키고 있다는 '뉘앙스'로 말을 하는데, 과연 헌재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헌재가 모든 책임을 뒤집어써야 하나,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기인 2006-07-23 01:27   좋아요 0 | URL
퍼 갑니다. <미국 혁명의 이데올로기적 기원>을 꽤나 재미있게 읽었는데, 미국적 '예외성'(미국 애들이 항상 강조하는)의 기원이 어떻게 변화하면서 나아가서 오늘날에 이르렀는지 참 생각할 수록 재미있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평전이 출간됐다. 이 록큰롤의 황제이자 20세기 미국 대중문화의 전설에 관한 책 <엘비스, 끝나지 않는 전설>(이마고, 2006)이 그것이다. 그간에 그에 관한 책이 거의 전무했다는 사실이 놀라운데(마돈나의 경우와 비교해보라), 다행히도 이번에 그러한 놀라움을 얼마간 상쇄시켜줄 만한 책이 출간되었기에 아는 체를 해둔다. 그의 음반을 한번도 사본 적이 없으니 팬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가끔씩 라이브 영상이나 음악을 보노라면 그가 얼마나 걸출한 '연예인'었는가는 실감할 수 있다. 중앙일보의 리뷰를 옮겨온다.  

중앙일보(06. 07. 22) 취재수첩에서 찾아낸 엘비스의 흔적

-그가 죽은 지도 벌써 30년이 다 됐다. 그래도 그의 신화는 여전한가 보다.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도 그를 얼마나 좋아했으면 체면이고 뭐고 없이 미국 부시 대통령 앞에서 그토록 방정 맞게 다리를 떨었을까(*아래 사진이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지난달 30일 테네시주 멤피스에 있는 엘비스 프레슬리 생가를 찾아 조지 W 부시 대통령, 엘비스의 딸과 전 부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엘비스의 선글라스를 낀 채 엘비스가 노래하는 모습을 흉내내고 있는 모습. 그는 엘비스의 광팬이라고).



-엘비스 프레슬리는 록큰롤의 황제이며 미국 대중문화의 아이콘이다. 또한 미끈한 외모와 타이트한 옷차림으로 표현되는 섹스 심볼이자 욕망의 분출구다. 그가 여성 편력이 심하고, 약물을 즐길 것이란 짐작은 익히 했다.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 책은 엘비스의 전기다. '용비어천가'마냥 결국엔 엘비스 찬양을 담지만, 그 과정은 세밀하고 냉철하다. 기자 출신인 저자들이 10년간에 걸쳐 모은 자료와 300명이 넘는 주변 인물들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엘비스의 인생을 새롭게 구성한다. 수시로 문서보관서를 드나들며 그의 흔적들을 되짚었고, 심지어 병원 입원 기록까지 꼼꼼히 챙겼다. 이토록 적나라한 얘기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저자들의 철저한 '취재' 덕분이다.



-책엔 엘비스의 매니저였던 게이브 터커의 이런 말이 그대로 인용된다. "엉덩이를 흔들면 좋겠는데. 그러면 여자애들이 흥분할 거야. 스트립 걸이 남자들을 흥분시키려고 보여주는 쇼에 변화를 준 거지." 기성 세대로부턴 지탄을 받았지만 자유와 젊음의 상징으로까지 부각된 그의 '허리 돌리기 춤'과 '엉덩이춤'이 알고 보면 철저한 매니지먼트사의 작업에 의했다는 것이다. 책엔 심지어 남성성을 강조하기 위해 바지 안에 묵직한 뭔가를 넣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투어를 다닐 때마다 닥치는 대로 낯선 여성과 잠자리를 같이한 그의 여성 편력도 여과 없이 드러난다. 또한 그에게서 빠질 수 없는 건 약물이다. 그런데 약물 중독의 주범 역시 바로 매니지먼트사였다. 무리한 일정을 잡아놓고 공연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약물을 흡입하게 한 뒤 각성제.진정제 등을 든 주치의와 늘 함께 하게끔 했던 것이다.



-약물에는 찌들었으면서도 술.담배는 전혀 안하고, 성적으론 문란하면서도 초현실주의와 사후 세계에 심취한 이중성. 책을 읽고 나면 엘비스로 대표되는 미국 대중 문화가 과연 무엇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겉으론 싸구려 천박함이 넘쳐나지만, '뿌리 없음'에 대한 갈증으로 무언가 새롭게 창조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절박함이 때론 면면히 흐르는 전통의 무게감보다 더 무서울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최민우 기자)

06. 07. 22.

P.S. 엘비스 프레슬리 하면 떠오르는 영화는 니콜라스 케이지가 결말에 'Love me tender'를 부르는 데이빗 린치의 영화 <와일드 앳 하트>(1990)이다. 노래방에서 어쩌다 간혹 듣게 되는 그 노래의 가사를 옮겨놓는다.

Love me tender,
love me sweet,
never let me go.
You have made my life complete,
and I love you so.

Love me tender,
love me true,
all my dreams fulfilled.
For my darlin' I love you,
and I always will.

Love me tender,
love me long,
take me to your heart.
For it's there that I belong,
and we'll never part.

Love me tender,
love me dear,
tell me you are mine.
I'll be yours through all the years,
till the end of time.

(When at last my dreams come true
Darling this I know
Happiness will follow you
Everywhere you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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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6-07-22 10:35   좋아요 0 | URL
고이즈미 바보 같지 않아요....저것도 한신의 지략인가??? 하여간 주책 맞게 추려거든 잘 추든가..저 어정띤 포즈 하고는...옆에서 다들 어이없어 하는 듯..그래도 좋단다ㅎㅎ
즐거운 주말보네세요.

로쟈 2006-07-22 10:47   좋아요 0 | URL
'바보 같은 고이즈미'가 아니라 저는 다른 정치인들도 저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은퇴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총리가 체신머리 없는 '쇼'를 벌이지는 않겠죠. 거꾸로 쇼라면 저 정도는 해야 보는 사람도 즐겁죠). 자신의 쾌락과 타협하지 않는 것. 그게 안되면 결국 그 욕구불만이나 욕망의 좌절이 타인에게 전가되는 것이죠. 자신의 삶을 즐길 줄 모르면 타인의 삶을 덩달아 괴롭게 만드는 것 아닐까요?..

2006-07-22 1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07-22 17:39   좋아요 0 | URL
**님/ 꼼꼼하게 읽어주셔서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