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러시아 인터넷 서점(전공자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서점은 '오존'이다)에 주문했던 책들을 소포로 받았다. 정확히 4주 정도가 소요됐는데, 내심 오늘 책을 받았으면 했는지라 배달된 책들이 반갑고 기특했다(그래서 이런 페이퍼까지 쓰는 것 아니겠는가). 내친 김에 러시아 책들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늘어놓는다(아래 사진은 우리의 교보문고에 해당하는 모스크바의 '돔 끄니기', 직역하면 '책들의 집').
책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러시아책들은 대략 주문 접수 후 발송까지 2-3주의 기간이 소요되고 실제 배송에 8-10일 가량이 소요된다. 이번에 받은 책들은 8월 17일자 소인이 찍혀 있는데, 8일만에 받을 수 있었으니까 상당히 양호한 편이라 할 수 있다. 대신에 발송까지 걸린 기간이 거의 20일이었다. 그건 한꺼번에 책주문을 할 경우 발송대기까지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책들이 한두 권은 있기 마련이어서이다.
아마존 같은 미국서점과의 차이는 배송료를 건수가 아니라 책의 무게로 문다는 것. 그러니까 여러 권을 주문할수록 배송료 부담은 더 줄어든다. 이번에 주문했던 책은 모두 6권인데, 책값은 대략 55,000원이었고 배송료는 13,000원 가량이 들었다. 무거운 책이 없긴 했지만, 건당 9,000원 가량 하는 아마존의 배송료에 비할 바가 아니다.
두 권의 전공관련서를 제외하면 오늘 받은 책들은 지난달에 검색하다가 발견한 데리다의 신간들과 벤야민의 책이다. 간단하게 소개하면, 먼저 <90분에 읽는 데리다>(악트, 2005). '90분에 읽는 철학' 시리즈는 재작년 러시아 체류시절에도 구경할 수 있었는데, 작년에 데리다편이 출간된 것. 호기심에 주문한 것이고 책은 거의 팜플렛 수준이다. 112쪽이고 가격은 1,500원 정도. 참고로, 폴 스트라턴의 원저는 지난 2000년에 출간됐다. 96쪽이고 가격은 7.95달러, 그러니까 7,000원 정도이겠다.
두번째 책은 드디어 러시아어본이 출간된 <마르크스의 유령들>(로고스알테라, 2006). 받아보고 나니까 소프트카바라서 별로 본때가 나는 책은 아니지만(아래의 이미지 그대로이다) 어쨌거나 매우 반가운 책이다. 256쪽이고 가격은 15,000원 가량이니까 상당히 고가의 책이다(우리와는 달리 러시아의 인터넷서점의 책값이 시중에 비해 약간 더 비싼 경우가 많다).
<마르크스의 유령들> 같은 경우는 아마존에서 구할 수 있는 영역본(루틀리지, 1994)이 15달러 정도 하니까 이번에 나온 러시아어본이 얼마나 '고가'의 책인지 짐작할 수 있다.
한편, 현재 품절상태인 국역본 <마르크스의 유령들>(한뜻, 1996)은 당시 9,000원에 출간됐지만, 근간 예정으로 있는 새 번역본은 최소 20,000원 이상의 가격이 붙지 않을까 예상된다(한번에 좋은 번역본이 나오지 않으면 이렇듯 이중으로 돈을 쓰게 된다). 우리의 책값이 싸다는 얘기는 이젠 먹히지 않을 얘기이다.
그리고 세번째 책은 <마르크스의 유령들>과 같이 나온 <마르크스와 아들들>(로고스알테라, 2006). 이 책도 거의 팜플렛 수준인데, 104쪽이고 10,000원이 좀 안되는 가격이다(역시나 저렴하진 않다).
불어본은 2002년에 출간된 걸로 돼 있는데, 이미지가 뜨지 않아서 독역본(2004)을 대신 띄워놓는다.
한편, 이 책의 영어본은 (내가 알기에) 아직 단행본으로 나와 있지 않다. <마르크스의 유령들>에 대한 심포지움 발표논문들을 마이클 스프링커가 묶어서 펴낸 <유령적 경계들(Ghostly Demarcations)>(Verso, 1999)에 실려 있는 데리다의 글 'Marx & Sons'가 원본 노릇을 하는 텍스트가 아닌가 한다.
이제 끝으로 독일의 문예비평가 발터 벤야민의 <독일 비극의 기원>(아그라프, 2002)(러시아어 제목은 <독일 바로크 드라마의 기원>이다). 이 책을 구함으로써 러시아어로 번역된 벤야민의 책들은 대부분 손에 넣게 되었다. 지난 2000년에 출간된 걸로 돼 있지만 내가 러시아에 있을 때는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을 얼마전 오존에서 발견하고 주문했던 것. 288쪽의 하드카바이며 가격은 9,000원 가량.
지난 1998년에 버소(Verso)출판사에서 나온 같은 하드카바의 영역본은 42달러나 하니까 좀 비싼 책이다(중고 소프트카바는 주로 10달러선이다). 나는 영역판의 복사본을 갖고 있다. 듣기에는 벤야민 선집의 한 권으로 조만간 국역본이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아무려나 여기에 띄운 이미지들을 전부 국역본으로 자신있게 대체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고대한다...
06. 08. 25.
P.S. 당장 다음주부터 개강이어서 마음이 바쁘기도 하고 울적하기도 한 며칠이다(이건 마치 리허설도 제대로 못 끝내고 부랴부랴 무대에 올라야 하는 배우의 처지 같다). 이번 가을에 내가 꿈꾸는 것은 미뤄두었던 데리다 읽기를 얼마간 보충하는 것이다. 그게 소위 여가이고 휴식이다. 생각만큼의 여가와 휴식을 가질 수 있을지는 확실히 미지수이지만, 여하튼 서재의 이미지도 며칠전에 데리다로 바꾸었다. 평일엔 지젝을 읽고 휴일엔 데리다를 읽는다? 평일엔 푸슈킨을 읽고 휴일엔 셰익스피어를 읽는다? 물론 그 전에 고래라도 한 마리 잡아야 할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