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이 책장에 꽂히지를 못하고 책상 위에 계속 쌓여만 간다.(게 중에는 읽지 못한 책이 너무 많다.  일단 읽은 책은 쌓여 있어도 별로 안쓰럽지 않은데, 읽히지도 못한 채 그렇게 제 자리를 못 찾는 책들은 불쌍하다.  그리고 그러다가 잊혀질까 두렵다..;;;;;)

그래서 이 참에 책장을 살까 생각했다.  마일리지도 좀 쌓였고..;;;;

책상 위에 올릴 수 있는 놈으로, 공간 적게 차지하는 걸로...

위 책장으로 원목 색깔이면 좋지 싶다. 


책상 색깔도 있으니까. 두 세트 사서 나란히 놓고, 그 위에 선반형 책장 하나 더 쌓고...;;;(시각적으로 흉하겠지만 쌓여있는 책보다는 덜 흉할 거다.)

안내되어 있기를 문짝을 추가 구매할 수 있다고 해서 비용을 문의했더니, 해당 샵이 토요일 휴무라 월요일에 알려준다고 알라딘지기님이 답변을 주셨다. 쿨럭..;;;;

문짝이 굳이 필요하지는 않은데 사진 보니까 문짝 있는 게 이쁘더라는... 빨강 노랑 초록 흰색 정도면 아주 이쁘지 않을까?(애들 방 같은 분위기가 날 테지..)



서재질을 한 이후로 식구들이 종종 책 사달란 요청을 한다.  리뷰 마일리지는 좀 센 편이니까 선물하고 싶은 사람에게 필요한 책 있냐고 물어보면, 공부하는데 필요한 책 사라고 마다하는데, 식구들은 이거 사줘 저거 사줘 한다. 푸핫!

지금도 저 책장을 사겠다고 하니까 책 사는 게 낫지 않아? 한다.  물론 책 사는 건 늘 즐거운 일이지만, 쌓인 책이 너무 많아 플래티넘을 포기하더라도 이젠 좀 자제하려고 한다.  플래티넘의 만료일은 11월 2일이고, 그 다음부터는 골드로 유지될 테지.

그렇지만 역시나 내 장바구니에 담겨 있는 책들은 나의 결심(?)을 무색케 한다.  이런 것이 카드사가 노리는 점이겠지만 신한 맥스카드로 알라딘에서 4만원 이상 구매하면 적립금이 4천원이다.  거기에 알라딘 마일리지가 2천원 붙고 추가 마일리지 등등을 생각하면 꽤 이득을 보는 기분이어서, 적어도 최소한 한달에 4만원 이상은 쓰게 된다. (그렇게 구입한 MP3플레이어가 오늘 수상하다.  중간에 지지직 거리며 다운됐다..;;;; 몇 번 쓰지도 않았는데..ㅡ.ㅡ;;;)

그래서 지금 눈독 들이는 아이리버 CDP를 망설이고 있다. 보스의 컴백 전에 갖춰야 하는데 말이다.
정말 고장이라면 알라딘에서 전자제품 사는 것은 좀 생각해볼 문제다....;;;;;
싼 맛에 사면 꼭 후회하게 되더라는.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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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10-21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비싸군요 ㅡㅡ;;;

마노아 2006-10-21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비싼 건가요? 마일리지로 지를 셈이었기 때문에 가격은 그냥 무시했어요. 적립금이 없는 것만 마일리지로 지르는 중..^^;;;;

비로그인 2006-10-21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아이리버 mp3 1기가 20%할인받아서 20만원대에 샀는데 요즘은 2기가 10만원대라고 해서...한숨이 나오네요..

마노아 2006-10-21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이리버 256을 18만원에 샀어요. 재작년에. 친구 여친이 경품에 당첨된 걸 내가 샀더라는.ㅡ.ㅡ;; 오래 잘 썼는데, 어저께 이어폰 한짝의 고무마개를 잃었어요ㅠ.ㅠ 이어폰만 다시 사면 3만원이드만... ;;;;

물만두 2006-10-21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제 수준에서요. 저는 MDF 만얼마짜리 6단 쓰거든요. 이건 원목이네요. 제가 쓰는 건 부실하다는 고객들도 있습니다.

달콤한책 2006-10-21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짝은 비추에요. 애들 방도 아니고 애기 방 같아져요...

마노아 2006-10-21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조립식은 24.000원짜리도 있는데 제가 써보니까 금방 갈라지고 벌어지더라구요. MDF도 역시 오래 안 가던지라, 원목이라는데에 만족하기로 했어요.(아직 주문도 안하고서..;;;) 이사를 안 간다면 모를까, 이동할 게 예상이 되면 MDF는 힘들겠더라구요.
달콤한책님, 문은 좀 아닌가요? 일단 가격 들어보고 비싸다 싶으면 역시 말아야겠어요. 문은 사실 필요한 것은 아니거든요. ^^;; 정보 고마워요~

Mephistopheles 2006-10-21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요즘 책주문 자제하는 중이랍니다.
읽지 않고 쌓여 있는 책이 제법 많더라구요...

마노아 2006-10-21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작에 그랬어야 했는데 이 결심이 어찌나 잘 무너지는지..ㅡ.ㅜ

짱꿀라 2006-10-22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갖고 싶네요. 구경잘하고 갑니다.

마노아 2006-10-22 0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사이트를 돌아보았는데 가격은 싼 데가 많지만, 튼튼한 걸 감안하면 그냥 이게 나을 것 같아요^^

마노아 2006-10-23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짝은 1개당 8천원이라고 하네요. 오늘 받은 정보^^
 


운명처럼 언젠가 써야했던 소설 『리심』, 소설가 김탁환

- 김탁환
게재일 : 2006-10-19 조회수 : 331
글 / 김정희candy@yes24.com
원고지 삼천 매 분량의 장편 소설 『리심』을 출간한 김탁환을 만났다. 작가의 말에서 그가 밝힌 것처럼 『리심』은 그가 20년 동안 배우고 익힌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작품이며, 작가 김탁환에게 있어서 하나의 장이 끝남을 의미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리심』은 스케일이 크다는 점, 역사에서 잊혀진 비범한 여인의 삶을 다룬다는 점에서 시선을 사로잡는다. 누구보다도 넓은 세상을 만났고, 많은 것을 보고 들었지만 조선을 벗어날 수 없었던 ‘리심’을 되살리려고 김탁환은 중세와 근대, 계몽과 신비, 동양과 서양, 제국과 식민지를 꼼꼼히 살폈고, 그녀의 발자취를 좇아 일본, 프랑스, 모로코로 답사를 떠났다.

운명처럼 언젠가 써야했던 소설 『리심』

『리심』을 출간한 김탁환
김탁환에게 『리심』은 언젠가 써야했던 소설이었다. “십 년 전부터 쓰고 싶었던 소설인데, 그때는 돈도 없고 공부할 양도 많기 때문에 능력이 안됐어요. 그래서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다가 3년 전쯤 이제는 써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7~8년 역사를 배경으로 한 장편 소설들을 쓰면서 소설 쓰기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다. 리심과 빅토르 콜랭이 갔던 장소들을 답사할 수 있을만한 시간과 돈도 준비되었다.

불어로 씌어진 리심과 빅토르 콜랭에 대한 자료는 찾는 데에는 20년 지기 정지용 박사의 도움이 컸다. 그밖에도 많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리심』은 태어났다. “역사 소설 작가는 여러 전문가들과 산학 협동을 해야 합니다. 제가 산이고 여러 전문가들이 학이 되는 셈이죠. 서로 co-work를 하지 않았으면 작품 하나를 쓰는 데 엄청나게 시간을 많이 걸렸을 겁니다. 『방각본 살인사건』과 같은 ‘백탑파’ 시리즈도 안대회 선생과 정민 선생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면 2~3년에 한 권씩 쓰는 것이 힘들었을 거예요.”

고전문학을 전공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소설을 쓰기 위해 필요한 답사는 예전에 대학원에 있을 때 했던 답사가 도움이 됐습니다.” 학교 다닐 때 같이 공부하던 동기들이 지금 연구자들과 교수가 되었다.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계속 찌르는 거죠. 예를 들어, 어떤 한문구절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잘 모르겠다, 친구들에게는 물어보면 단번에 대답이 나와요. 누구에게 물어보면 그것을 안다, 나의 노하우는 그것이죠.”

역사소설에 대해 독자들이 가지는 편견. 자료만 찾으면 쓰는 것은 쉬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리심』의 이야기는 작가의 상상력이라는 바람이 없다면 단 1밀리미터도 나아가지 못한다. 자료와 답사는 이야기의 튼튼한 바탕을 마련하는 기초공사일 뿐이다.

리심에 대해 씌어진 자료, 그녀가 남긴 글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얼마 안 되는 기록들이 그녀가 빅토르 콜랭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일본과 프랑스와 모로코에 있었다는, 단편적인 사실만을 알려줄 뿐이다. 그녀가 왜 궁궐에 들어와 무희가 되었는지, 빅토르 콜랭과 왜 파리로 떠났는지, 떠나고 나서 그녀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녀가 무엇을 느꼈는지, 무엇에 절망했는지, 왜 조선으로 다시 돌아왔는지, 그리고 결국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 모든 이야기의 빈 곳들은 그가 상상력으로 촘촘히 직조한 것들이다.

김탁환이라는 소설가 만들기

그는 해방 이후 고전문학을 전공한 사람 중 유일한 소설가이다. 어렸을 때부터 소설이라는 장르를 좋아했지만 소설가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그가 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군복무였다. “스물여덟 살까지 나는 고전문학 연구자, 그 중에서도 대하소설 연구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소설 읽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그건 취미였죠.” 그가 즐겨 읽었던 소설가들은 스티븐 킹, 존 그리샴, 무라카미 하루키. 스토리가 강한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었다.

그는 소설보다 평론으로 먼저 데뷔를 했다. “그때 나는 한국 소설의 미래가 암담한 것이 몇 가지 측면이 있는데, 스토리가 너무 약하다는 점이 그 중 한가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때까지 문학성이라는 것이 문체에만 있고 스토리에는 없다, 스토리는 누구나 만들 수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그는 스토리가 강한 소설, 20대들의 문학청년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른들의 세계를 다룬 소설, 삼십 대, 사십 대, 오십 대들의 이야기를 썼으면 좋겠다고 평론을 썼다. “그런데 아무도 안 써요.(웃음)”

그러다 고향 진해에서 장교로 군 생활을 시작했다. “학교와 멀어지니까 아무도 공부하라는 사람도 없고, 시간은 많고. 대학원에 있을 때는 하루가 11시쯤 시작되어서 대충 있다가 저녁이면 술 마시다가 끝나는데 군대는 아침 일곱 시에 하루가 시작되거든요. 일곱 시 반에 출근해서 저녁 여섯 시에 퇴근. 해군 교관으로 생도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는데 수업이 일주일에 아홉 시간밖에 안 돼요. 그 나머지 시간은 근무지 이탈을 하면 안 되니까 계속 연구실에 가만히 앉아 있어야 했어요. 그때 연구실에서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소설을 많이 읽었어요. 아마, 제 인생에서 가장 많이, 열심히 책을 읽던 때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소설 읽기가 지겨워 쓰기 시작했다. 습작으로 쓴 단편들이 책 한 권 분량 정도가 되자 지도교수였던 양귀자 선생님께 보여드렸다. 그 때, 양귀자 선생님은 그에게 ‘소설가가 되라’고 했다.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제가 쓴 비평도 소설적이었대요. 분석은 별로 안하고, 몽상을 많이 하고, 문장은 계속 우기고. 감동 잘하는 영혼이니까 소설이 더 맞겠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고향인 진해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쓰게 된다. 그 작품이 바로 첫 장편소설 『열두 마리 고래의 사랑이야기』다.

써도 써도 끝나지 않았던 『불멸의 이순신』

첫 작품을 쓰고 난 후, 역사소설가 김탁환의 이름을 독자들에게 확실히 인식시킨 『불멸의 이순신』을 썼다. 『불멸의 이순신』은 그에게 ‘소설가’로서의 기본 훈련을 확실히 시켜준 작품이기도 하다.

『불멸의 이순신』은 분량이 무려 원고지 사천오백 매이다. 처음부터 이렇게 길어질 것을 예상했던 것은 아니었다. 쓰다보니 사천오백 매라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장편소설이 된 것이다. “2년 정도 습작을 했는데, 써도 써도 이야기가 끝이 안 나는 거예요. 이순신의 이야기니까 이순신이 죽어야 이야기가 끝나잖아요. 그런데 계절이 몇 번이나 바뀌었는데도 이순신이 죽으려면 한참이 남았죠.(웃음)”

제대 말 『불멸의 이순신』을 위해 답사를 다니면서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계획은 일주일이었지만 답사지에 가면 새로운 정보를 듣고, 좀더 많이 보고 싶다는, 제대로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 답사 기간과 비용은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답사를 하는데, 저 섬에 이순신이 배를 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당연히 들어가 보고 싶잖아요. 그런 데 하루에 배가 두 번 밖에 안 들어가고 오늘 배는 이미 다 떠났다. 그럼 하룻밤 자고 내일 들어가는 거죠. 숙박비에 배 빌리는 것에 돈이 들어가죠. 고생은 많이 했지만 답사를 제대로 배웠어요.”

『불멸의 이순신』이 한참 잘 써질 때는, 새벽 다섯 시까지 밤을 꼬박 새워 글을 썼다. 그렇게 밤을 새운 밤 한숨도 자지 못한 채 새벽 바닷가를 산책하면서 지금까지 써 온 이야기를 고민했다. “그렇게 이야기 때문에 혼자 새벽을 앓았던 때, 그 때가 제가 소설가가 된 지점이 아닐까 합니다.”

김옥균, 홍종우, 리심과의 만남

1998년『불멸의 이순신』이 출간된 후, 그는 리심을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조선왕조 오백년’ 사극을 쓴 신봉승 선생이 『불멸의 이순신』을 읽고 그를 작업실로 초대했다. 신봉승 선생은 꼼꼼하게 답사를 다닌 흔적이 역력한 그의 작품을 칭찬했다. “그것은 굉장히 가치 있는 작업이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하는 것을 보니 너는 이 길을 계속 가라, 그렇게 말씀해 주셨어요.”

그리고 그에게 ‘개화기’를 꼭 소설로 써볼 것을 권했다. “김옥균, 홍종우, 리심, 이런 애들 이야기가 재밌다, 나중에 꼭 써봐라, 그러셨어요. 당신은 1981년에 벌써 ‘리심의 비련기’라는 사극을 쓰셨죠.” 처음 들었을 때부터 욕심이 나는 소재였다. 그렇지만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다. 일단, 개화기를 알아야 하고, 리심이 갔던 일본과 프랑스, 모로코에도 직접 가봐야 한다. 그는 ‘리심’에 대해, ‘개화기’에 대해 글을 쓰기엔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자신이 잘 아는 조선시대부터 시작해 개화기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 황진이』를 시작으로 ‘백탑파’ 시리즈까지, 16세기에서 19세기까지 내려오는 작업을 한 거죠. 그렇게 코스대로 밟아오니까 한 십 년이 걸렸네요.” 『리심』으로 개화기까지 내려온 그가 지금 작업하는 것은 해방공간의 이야기다. “나는 단군부터 현재까지 다 쓸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고, 그렇게 하고 있는 거죠. 『리심』은 나에게 필연이었어요.”

자기 삶의 근거를 스스로 만들어 간 여자, 리심

『리심』은 대부분의 조선 여성들이 규방만을 삶의 공간으로 받아들이던 시절, 최초로 일본, 프랑스, 아프리카까지 나아간 궁중 무희 리심과 그를 사랑한 프랑스 외교관 빅토르 콜랭의 이야기이다. 시대를 앞서나간 비운의 여성과 그를 사랑한 외국인. 얼마든지 달콤하고 화려하게, 낭만적으로 포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의도적으로 낭만을 걷어냈다.

“파리가 멋있긴 했지만, 황인종들은 밖으로 나다니지도 못하고 원숭이 취급을 받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었어요. 그런 환경 속에서 살았던 리심의 삶이 낭만적이지만은 않았을 거예요. 그 당시 황인종인 조선 여자가 일본과 프랑스, 모로코에 갔을 때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리얼하게 드러내고 싶었어요. 콜랭과 리심의 관계에서도 약간의 낭만은 어쩔 수 없었지만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리심은 파리에서 외로웠고 조선에 돌아와서는 더 외로웠다. 파리에서는 단 한 명의 조선 여인이었고 조선에서는 일본과 프랑스, 모로코를 두루 돌아다니며 신문물을 보고 새로운 지식을 가진 단 한 명의 여성이었다. “리심은 자기와 같은 식으로 살아본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사람입니다. 전범이 없는 거예요. 리심은 철저하게 혼자였다는 거죠.”

자기 삶의 근거를 스스로 만들어갔던 여자, 고독하면서도 자긍심이 높은 여자가 바로 리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삶은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삶에는 스스로 쟁취할 수 있는 게 있고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것이 있어요. 리심은 아무리 불어를 잘해도 프랑스 시민이 될 수 없고, 개화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어도 조선에서는 성공할 수 없어요. 그게 리심의 비극이죠.” 시대는 그녀를 극한으로 내몬다. 전 세계를 돌아보고,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의 공기를 맛본 그녀를 다시 궁궐이라는 새장에 가두어 버리는 것이다. 그 극한에서 비극의 주인공이 그렇듯, 그녀는 영웅적인 죽음을 선택한다.

쓸 수 있는 것과 쓰고 싶은 것

『리심』 중에서 두 번째 권이 가장 쓰기 힘들었다. 3인칭으로 서술하던 1권, 3권과 달리 2권은 리심의 눈과 목소리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중간에 서술방식을 바꾼다는 건은 대단한 모험이다. 그렇지만 거기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소설가는 항상 쓸 수 있는 것을 쓰다가 갑자기 쓰고 싶은 것을 쓰게 돼요.” 쓸 수 있는 것과 쓰고 싶은 것은 다르다. 대부분의 사람들을 쓸 수 있는 것을 쓰지만 예술가는 쓰고 싶은 것을 쓰려고 하는 상승욕망이 있다. 쉽게 말하면 욕심을 낸다는 뜻이다.

“기록을 보면 리심이 파리와 마르세이유, 사하라 사막에 있을 때 뭔가를 썼다고 하거든요. 그것을 살리고 싶었어요. 리심의 한계와 리심의 편견과 리심의 선입견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을 깨닫고, 후회하고 이런 것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최고의 경지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여성의 목소리로 1인칭 소설을 쓰는 것은 이미 『나, 황진이』에서 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렇기 힘들지 않았다. 문제는 리심이 간 곳에 그도 가야 한다는 것. 그래서 그는 『리심』을 영화화하기로 한 영화사를 찾아갔다.

“이건 규장각에서 자료 찾고 유학생들에게 부탁해서 책을 사와서 상상력으로 쓸 수 있는 소설이 아니다. 내가 가서 리심이 걸었던 길을 걷고, 리심이 앉았던 벤치에 가서 앉고 리심이 살았던 집에 가서 그 벽을 만져보고 이래야 쓸 수 있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영화사에서 취재경비를 대서 한 달 동안 일본, 파리, 마르세이유, 모로코, 사하라 사막을 돌았어요.”

답사의 과정에서 그가 가장 고민했던 것은 리심의 깨달음의 지점을 체크하는 것이라고 했다. 리심이 이걸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조선에 있는 무엇과 닮았다고 생각했을까 그런 것을 유추해야 했다. “중세적인 것과 근대적인 것 사이에 낀 존재가 양쪽을 비교하는 감각, 그런 것을 만드는 것이 골치 아팠어요.”

스토리텔러에서 스토리디자이너를 꿈꾼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역사 소설가’로 기억하지만 그는 ‘역사 소설’이라는 장르에 묶일 생각이 없다. 지금까지 그는 인물과 그 인물의 삶에 관심이 있어 그것을 소설로 써왔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인물이 있어요. 그 인물들을 이해하기 위해 자료들을 읽고 글을 쓰는 것, 그것이 나의 소설인 것 같습니다.”

또, 소설이라는 장르에도, 조선 시대라는 배경에도 묶일 생각이 없다. “저는 스토리텔러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쓴 것들을 역사 소설이라고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각각 다른 장르를 실험한 소설들입니다. 『나, 황진이』는 고백록이고 『리심』은 약간의 멜로, 『불멸의 이순신』은 정통 전쟁물이고 ‘백탑파’ 시리즈는 추리소설이고, 『부여현감 귀신 체포기』는 동양적인 환상을 포스트모던하게 그려냈죠.”

예술가로 그는 형식 실험을 좋아하고, 앞으로도 계속 형식 실험을 할 생각이다.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나 『농담』 같은 작품은 형식 실험을 한 소설이지만 그것을 몰라도 재미있고, 알면 더 재밌죠. 저도 그렇게 하고 싶어요. 미적인 체험을 주기 위해 계속 노력하는 것, 이것이 예술가의 운명이니까 형식 실험은 포기할 수 없는 거죠.”

이야기 창작자인 스토리텔러에서 한발 더 나아가 그는 이야기를 기획하는 스토리디자이너를 꿈꾼다. “스토리디자이너는 단순히 작품을 창작하는 것뿐만 아니라 전체를 관장하는 사람이에요. 이야기가 어떻게 기획되어서 독자에게 가는가, 그것을 연구하고 집행하는 하는 사람이죠. 이전의 소설가들이 창작자로서 스토리텔러에 충실했다면 앞으로는 기획력이 중요시되는 스토리디자이너로서의 자질이 더 필요할 겁니다.”

스토리 기획자로 가장 필요한 자질은 세상의 고민과 자신의 고민이 맞닿는 접점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스토리디자이너에 가장 걸 맞는 작가로 마이클 클라이튼이 있습니다. 마이클 클라이튼은 작품을 쓰기도 하지만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로 'ER'도 만들죠. 나는 소설가고 시나리오도 쓰고, 내 작품으로 지금 ‘황진이’라는 드라마를 만들고 있지만 그런 스토리 제공자로서 기여하는 것뿐만 아니라 스토리 디자이너, 기획자로서 일하고 싶습니다.”

******

그래 24에서 퍼왔어요. 김탁환씨는 수염을 기르고 좀 더 중후한 이미지가 느껴지네요. 더 젊었을 때는 좀 기름져 보였는데...;;;;;

리심, 읽을까 말까 고민했는데, 이 글을 보니 또 궁금해집니다.

매번 궁금해서 읽고, 그리고 2% 부족해!를 외쳤지만 이번에도 역시 궁금해집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일단 자신의 작업에 대한 자신감은 좋아 보여요. 그게 지나치면 자만심이 되지만, 그만큼 노력했다는 거니까 그 노력엔 박수를 보내야죠. 그런데 리심도 영화로 만드나 보군요. 오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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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0-20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으로 인사 드립니다. 김탁환씨의 소설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아래 주소의 페이퍼 일독을 권하고 싶습니다.
http://www.aladdin.co.kr/blog/mypaper/654530

치유 2006-10-20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hanks to 서재  more
 
 
비우고 채우기
- 마노아 (mail)

버릴 것은 버리자. 채울 것은 채우자.

마노아 2006-10-20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그림자님. 반갑습니다. 김탁환씨에게는 늘 일정량 정도의 관심은 있어왔지요. 소개해준 페이퍼 저도 읽어볼게요~
배꽃님, 하핫, 감사해용^^
 

 

 

 

 

제목이 참 운치 있다.  데일리안의 기사가 더 자세하게 나와 있어서 옮겨 본다.

***

[데일리안 이준]

우리는 종종 역사를 시간성의 영역에만 묶어둔다. 그렇게 추상의 영역으로 들어선 역사는 연대순으로 조직된 사건의 나열로만 구체화될 뿐, 이미 현실에는 자리하지 않는 존재로 탈색된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러하듯 역사 역시 시·공간의 영역에 존재한다.

특히 공간으로서의 역사는 시간과 직접 맞부딪친 상흔을 두려움 없이 드러낸다. 파괴되고 낡은 모습으로, 때론 ‘부재不在’ 그 자체로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있는 것이다.

《조선의 집, 동궐에 들다》는 관념의 영역에 머물던 역사를 ‘동궐(東闕, 창덕궁과 창경궁을 모두 이르는 말로, 정궁正宮인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해 붙은 이름이다)’이란 현장으로 불러낸 책이다.

조선 왕조사 연구의 권위자 한영우 교수와 우리 문화재 촬영에 일생을 바친 사진가 고故 김대벽 선생이 함께했으며, 열화당과 효형출판이공동 제작했다. 일반인이 쉽게 닿을 수 없는 공간까지 카메라로 담아내고, 사라진 건물은 〈동궐도(東闕圖, 국보 제249호)〉를 통해 되살렸으며, 〈동궐도〉 전경을 덧붙여 옛 지도를 들고 직접 궁궐을 찾을 수 있게 했다.

창덕궁과 창경궁 그리고 최근 일반에 공개된 후원後苑을 누비는 이 역사 기행은 결국 이곳에 “수많은 생령들이 우리처럼 먹고 자면서 살고 갔음”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많은 사람이 조선을 대표하는 궁궐로 경복궁을 꼽지만, 정작 국왕들이 가장 오랫동안 머문 장소는 바로 창덕궁과 창경궁이다. 경복궁이 정궁正宮이기는 했으나, 태종의 ‘왕자의 난’이 일어난 비극의 무대였으므로, 후대 왕들은 그곳을 기피했다.

또 북쪽의 백악산白岳山과 서쪽의 인왕산仁王山에 노출된 경복궁과 달리, 창덕궁과 창경궁은 깊은 숲에 가려 쉽게 드러나지 않을 뿐 아니라, 아름다운 후원 덕분에 왕족의 집으로 더 사랑받았다.

이렇게 조선 왕조의 중심지였던 동궐에서는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다. 우선 창덕궁의 돈화문敦化門을 지나 인정문仁政門으로 향해보자. 이곳은 임금의 즉위식이 치러진 공간으로, 연산군을 비롯하여 효종, 현종, 숙종, 영조, 순조, 철종, 고종 여덟 임금이 왕이 되었다.

즉위한 공간은 같았으나, 그 뒷모습은 사뭇 달랐다. 반정反正으로 쫓겨난 이가 있는가 하면, 역대 왕 가운데 가장 오래 재위한 이도 있고, 망국의 과정을 직접 지켜봐야 했던 이도 있다.

지금은 사라져 <동궐도〉로만 확인할 수 있는 궁도 있다. 바로 중희당重熙堂으로 창덕궁의 건물 가운데 가장 크고 멋들어졌으며, 넓은 마당에는 풍기風旗, 해시계, 측우기까지 놓여있었다. 정조가 편전으로 사용하기도 한 중희당에는 과학을 중시하고 조선의 문예 부흥을 이끈 그의 면모가 그대로 드러난다.

다음은 성종의 효심이 탄생시킨 궁궐, 창경궁으로 가보자.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弘化門은 출입을 위한 공간이었을 뿐 아니라, 임금이 일반 백성과 만나는 장소이기도 했다. 영조는 1750년 균역법을 시행하기 전, 이곳에서 몸소 백성의 의견을 물었고,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의 회갑을 기념해 가난한 백성에게 쌀을 직접 나누어주었다.

또 창경궁의 정전인 명정전明政殿 옆에 자리한 문정전文政殿은 사도세자의 목숨이 스러진 장소다. 이곳 앞뜰에서 스물여덟의 세자는 뒤주에 갇혀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한편 창덕궁과 창경궁의 경계선에 자리했던 낙선재樂善齋에는 조선의 마지막 왕족이 머물렀다.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순종純宗이 통한의 세월을 보냈고, 영친왕英親王의 부인 이방자李方子 여사가 세상을 떠나기 전인 1989년까지 살았으며, 2006년 8월 작고한 마지막 황세손 이구李玖의 빈청殯廳이 이곳에 세워졌다. 본래 국상國喪을 당한 왕후와 후궁의 처소로 사용되며 단청조차 하지 않은 이 검박한 집은, 망국의 슬픔에 찬 왕족의 마지막을 함께한 동반자였던 셈이다.

이제 동궐의 속살, 후원으로 향해보자. 북한산과 응봉鷹峯에서 뻗은 9만여 평의 이 왕실 정원에는 한때 100여 개 이상의 누각과 정자가 자리했으나, 현재는 누樓 열여덟 채, 정자 스물두 채만이 남아있다.

유독 정자의 규모가 작고, 시골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초가草家와 농막農幕 형태가 많은 까닭은 자연 경관을 위압하지 않으면서 자연에 포근하게 안기려는 소박한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특히 후원의 북쪽 끝에 자리한 옥류천 일대는 널찍한 바위와 폭포, 정자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선경仙境을 연출한다. 그래서 이곳의 취한정에 머물던 숙종은 아름다운 봄밤에 취해 “온 뜨락의 꽃그림자는 봄밤에 머문 달이요, 정원 가득한 솔 소리는 밤에 듣는 파도라네.”라고 노래하기도 했다.

그러나 주인 떠난 옛집에 따스한 입김을 불어넣는 이 기행이 책으로 묶이기 직전, 동궐 곳곳을 프레임 속에 담아내던 김대벽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2006년 9월 18일). 사라지는 모든 것들은 우리를 슬픔으로 이끌지만, 그의 마지막 사진들은 여전히 말하고 있지 않은가. 소멸의 숙명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추억하는 이가 있는 한 영원을 기약할 수 있다고.

이제 역사의 시·공간 속에 진정한 ‘조선의 집’으로 되살아난 동궐에 들면,자식을 기르고 부모를 공양하며 필부필부匹夫匹婦의 삶을 살아가던 왕족 일가뿐 아니라, 투병 중에도 카메라를 놓지 않던 그의 혼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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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황금도깨비상 그림책 부문 수상작. 어처구니는 잡상이라고도 불리는 작은 조형물로, 귀신을 쫓기 위해 병사를 지붕 위에 올린 데서 유래되었다. 지금도 경복궁에는 추녀마루 끝에 익살스럽게 생긴 인형 조각이 올려져 있다. 눈에 잘 띄지도 않고 흔하지 않은 소재인 어처구니를 가지고 작가는 오랜 시간 자료 조사 끝에 재미난 이야기로 꾸몄다.

말썽꾸러기 어처구니들 때문에 하늘나라는 언제나 어수선하다. 이들에게 하늘나라의 임금은 못된 귀신 '손'을 데려오면 용서해주겠다 하고, 어처구니들은 묘안을 짜낸다. 여러 가지 수로 손을 유인하는 것에 성공하지만, 꾀를 부린 어처구니들이 두릅나무로 만든 부실한 밧줄 때문에 다 잡은 손을 놓치고 만다. 노한 임금은 어처구니를 모두 잡아다가 궁궐 추녀마루 끝에 올리고 손으로부터 사람들을 지키게 한다.

어처구니들의 장난스럽고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몸동작들을 재치 있게 표현해 읽는 즐거움을 준다. 다섯 방위를 상징하는 색인 우리 고유의 청, 백, 적, 흑, 황으로 각각 캐릭터를 표현한 것도 전통문화에 대한 많은 고려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또 배경으로 고구려 벽화 문양이 인용되거나, 단청의 무늬, 임금님 옷의 문양 등 전통적 요소를 살리면서도 컴퓨터 그래픽, 꼴라주 등 현대적인 기법과 보기 좋은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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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0-17 0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겠다. 비룡소 좋아^^

하늘바람 2006-10-17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어처구니없다가 그래서 유래된 건가요?
아주 궁금하네요

마노아 2007-01-30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처구니는 궁궐에만 사용 가능한데 평민들 집 짓는데만 익숙한 장인들이 어처구니 올리는 것을 깜박하고 짓곤 했다고.. 그래서 어처구니 없다라고 말한다네요. 전 궁궐 전각 위에 그 잡상들이 서유기의 삼장법사, 손오공 기타 등등인 것만 알았지 유래까진 몰랐어요^^ 책 재밌을 것 같아용^^

미라클 2006-10-20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애들에게 사주면... 지금 다섯살이니까 오래 볼 수 있는 책이네요.

마노아 2006-10-20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럴 거예요. 두고두고 또 보는 거죠^^
 

김종서, 뮤지컬 '지저스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유다 캐스팅
[마이데일리 2006-10-16 13:52]    

[마이데일리 = 이규림 기자] 가수 김종서가 뮤지컬 '지저스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서 유다역을 맡아 뮤지컬 무대에 오른다.

김종서는 12월 20일부터 2007년 2월 4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공연하는 '지저스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 프라나(구 내귀에 도청장치)의 보컬 이혁과 유다역으로 더블캐스팅됐다.

'지저스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감독을 맡은 오세정감독은 "예수는 정형화된 인물인데 반해 유다는 정해진 캐릭터가 없는 인물"이라며 "김종서씨가 특색있는 목소리로 유다를 연기한다면 색다른 느낌의 유다가 탄생할 것 같아 김종서씨를 캐스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종서가 출연하게 되는 '지저스크라이스트 슈퍼스타'는 락보컬로 역대 최연소로 예수 역을 맡게 된 장필석과 팝 크로스테너 임태경, 뮤지컬 배우 김재희가 예수역을 맡아 3색의 예수를 연기하게 된다.

오세정 감독은 "김종서는 팝크로스테너 임태경과 뮤지컬배우 김재희와 함께 공연하게 될 것 같다"며 "김종서씨가 평소 다른 뮤지컬의 음악까지도 모두 외울정도로 뮤지컬에 깊은 관심을 갖고있어 좋은 작품이 나오게 될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종서는 지난 주부터 스태프들과 미팅을 갖고 노래연습을 시작한 상태. 김종서의 한 측근은 "김종서씨가 90년대 중반 경 뮤지컬을 한 번 한 적이 있지만 당시 금방 종영되는 바람에 아쉬워했던 적이 있다"며 "뮤지컬은 아무래도 연기이기 때문에 처음으로 시도하는 것이라서 스스로 많은 긴장을 하고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김종서는 20일부터 22일까지 3회에 걸쳐 '명작'이라는 제목으로 성균관대학교 새천년홀에서 데뷔 20주년 기념 콘서트를 개최하며 이효리의 '텐미닛'을 리메이크한 곡을 비롯해 후배들과 함께 '교실이데아'를 부르는 등 다양한 볼거리를 선보일 예정이다.

[사진=유진형기자zolong@mydaily.co.kr]

(이규림 기자 tako@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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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0-16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임태경 사진도 같이 올려주지... 그의 '예수'역이 사뭇 기대된다. 그나저나 코엑스 오디토리움은 굉장히 안 좋은데..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