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게 자유롭게 뻥! - 황선미 인권 동화, 중학년 베틀북 오름책방 6
황선미 지음, 정진희 그림 / 베틀북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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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상 서랍, 내 지갑, 내 일기장, 내 메일, 내 컴퓨터 검색창 같은 것 좀 마음대로 뒤지지 말라고 나는 대들지 않는다. 다른 엄마들처럼 엄마도 직장에 다니면 좋겠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어떤 잔소리가 쏟아질지 뻔히 아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반항이란 고작해야 음식 깨작거리기, 뭉그적거리기, 말 안 하기, 멍하니 있기 정도. 덕분에 엄마는 나를 좀 게으르고, 느리고, 입이 짧고, 숫기가 없는 애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착하다고.-18쪽

"너 요즘 수상해. 그깟 축구공 같은 것에나 정신 뺏기고 말야."
잔소리를 처음 듣는 것도 아닌데 이번만큼은 가슴이 쿡 찔린 것처럼 아프다. 제발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지. 엄마를 미워하기는 싫은데.-28쪽

그때까지 나는 잘 몰랐다. 내 심장이 어떤 건지. 터질 듯 벌렁거리고 아프기도 한 심장이 나한테도 있었던 것이다. 진짜 살아 있는 내 심장. 바보처럼 그걸 처음 깨달은 날이었다. 내가 나라는 걸 알게 해 준 짧은 시간. 심장은 누구한테나 있는 거지만 진짜 내 심장은 그날 다시 태어났다. 그게 그 축구공을 내가 가져야만 하는 이유다.-36쪽

내 통장은 제법 묵직하다. 저금통이 다 차거나 돈이 생길 때마다 은행에 저금했으니까. 그러나 손도 못 대는 돈. 대학 입학금으로 써야 된다나. 엄마는 늘 그랬다. 미래를 위해 오늘은 다 참아야 된다고. 놀고 싶은 것도, 사고 싶은 것도, 친구도, 졸린 것도 다. 나에게는 미래만 있고, 오늘은 없는 것이다.-37쪽

"필요한 건 엄마가 알아서 다 사 주잖아."
아, 이제 알았다. 나는 바로 이게 싫었다. 나한테 필요한 걸 왜 엄마가 알아서 사 주느냔 말이다. 갓난애도 아닌데. 뭘 고르고 선택할 권리 정도는 내게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47쪽

"어리구나. 넌 공부해야 할 어린애야."
라힘은 바느질하며 생각했어요. 일 대신 공부를 하면 누가 돈을 벌까요.
"공부해야 삶이 바뀐단다."
지금 일하지 않으면 가족이 굶어 죽을 거예요.
"너에게도 보호받고 공부하고 놀 권리가 있단다."
권리.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논다는 말은 알아들었어요.
일거리가 줄어들면 형들이랑 가끔 놀기도 합니다. 바느질이 잘못돼서 망친 공을 차지요. 그나마도 너덜너덜해졌지만 어린 일꾼들에게 그건 아이처럼 뛰어놀 수 있는 시간을 줍니다. 하지만 시간을 그렇게만 보내면 누가 가족의 끼니를 책임질까요.-1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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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마스다 미리 여자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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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사람에게 '젊음'의 우월함을 안겨주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젊었을 때 그렇게 대해주면 기뻤으니까.
누군가 젊음을 부러워해주는 건 기쁘다.
자신에게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니까.
그래서 사실은 특별히 부럽지도 않지만 젊은 사람에 대한 서비스.
나는, 젊은 나로 돌아가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의 내가 좋다. -68쪽

이런 때에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는 안 된다.
수다 떨면서 기분을 풀기에는 이르다.
상처받은 자신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지금은 나를 가만히 내 버려두자.
상처받는 건 올바른 것이라고 생각하니까.-95쪽

나, 꼴불견?
아니야. 싫은 부분도 있지만 좋은 점도 있어.
꼴불견인 인간으로 변한 게 아니라 '나'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 거야.
여러 가지가 있어서, 그것이 나라는 인간.
질투도 하고 부러워도 하고 비뚤어지기도 하고
마이코라는 좋은 친구가 있기도 하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기도 하는
그런 나는, 세상에 한 명밖에 없어.

자신 찾기 따위가 뭐야.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진짜 자신을
자신이 찾아 헤매면 어쩌자는 거냐고.
그러면 자신이 불쌍하잖아.-104쪽

자신의 마음이 보이지 않을 때는 그 고민을 다른 사람에게 상담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이 옅어지기 때문이다.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할 것이다.
계속 그렇게 해왔으니까.
그리고 계속 그렇게 해왔던 것을 옳다고 생각하는 내가 있다.
여러 모습의 내가 모여서 하나의 내 모습을 만들고 있다.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나'를 늘려간다.
그 정도로 괜찮을지도.
합체해서 강해져 가는 나-1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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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패밀리
고종석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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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게 일이다보니, 저자들과 자주 어울리게 된다. 그러면서 글과 사람의 차이에 대해 자주 놀란다. 아니 처음에 자주 놀랐다. 이젠 그런 일을 하도 많이 겪어, 으레 그러려니 한다. '글이 사람'이라는 말은 확실히 과장된 격언이다. 글쓰기는 그 주체를 미화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심지어 자학적 글에서도 마찬가지다. 자학적 글의 저자는 그 자학으로서 자신을 미화한다. 자기혐오르 제 윤리성의 증거로 내세우는 것이다. 글을 보고 반한 사람은 많지만, 만나본 뒤에도 여전히 매혹적인 사람은 좀처럼 없었다. 거의 예외 없이 실망하게 된다. -11쪽

민형 형에게는 세상에 대한 연민이 있다. 꼭 사람들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꼭 어려운 사람들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숨탄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그는 고양이에게도, 염소에게도, 비둘기에게도 연민을 느끼는 것 같다. 물어보진 않았으나, 그는 아마 어려서도 벌레 한 마리 죽이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과 숨탄것들에 대한 그의 연민을 돋보이게 만드는 것은 그에게 자기 연민이 거의 없는 듯하다는 점이다. 때때로 그는 자신을 학대하는 것 같다. 그의 연민은 오로지 그의 몸 바깥으로만 향한다. 그 연민이 늘 연대로까지 이어지는 것 같지는 않다. 마음의 연대는 몰라도 몸의 연대로까지 이어지는 것 같지는 않다. 그의 순수이성이나 판단력은 그의 실천이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아니, 그의 실천이성은 그의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적어도 격렬한 실천으로까지는 말이다. 그는 늘 자신을 우익이라 말한다. 그건 무슨 겸손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그는 실제로 자신을 우익이라 여기는 것 같다.-1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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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20 - 망국 - 오백 년 왕조가 저물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20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13년 7월
구판절판


청과의 전쟁 명분을 얻기 위해 경복궁을 습격한 일본군은 이로 인해 거세질 조선 내 반일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두 가지 카드를 썼다. 그 하나는 대원군과의 결탁이다. 임오군란 때 군인들도 대원군에게 의지했고 갑신정변 때의 김옥균 일파도 대원군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이때의 전봉준도 홍계훈에게 보낸 글을 통해 대원군의 국정 보좌를 요구하고 있다. 그만큼 그에 대한 백성의 신망은 드높았지만 청국에서의 억류 생활 4년을 보내고 그리던 고국에 돌아왔건만 내내 가택연금 상태로 보내야 했다. 권력에 대한 열망 못지않게 울분이 컸을 대원군. 그런 그의 울분을 일본 측이 파고든 것이다. 대원군은 우선 민씨 척족 중에서 평판이 안 좋은 이들을 제거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대원군에게 허용된 권력은 그리 크지 않았다. 김홍집을 영의정으로 삼고 김윤식, 어윤중, 박정양 등을 위시한 온건개화파와 유길준, 조희연, 김가진 등의 급진개화파들을 망라해 내각이 짜였는데, 일본의 입김이 강하게 반영된 구성이다. 일본이 꺼내든 또 하나의 카드는 내정개혁이었다. 이를 위해 군국기무처가 꾸려졌다.
-73쪽

가장 참혹한 최후를 맞고 말았다. 향년 45세. 죽고 나서 두 달 가까이 지나서야 죽음이 공식 확인되었고 2년 넘게 지난 고종 34년(1897년) 11월에야 장례가 치러졌다. 대한제국을 선포한 직후다. 그녀를 만났던 외국인들은 한결같이 그녀를 세련되고 지적이며 총명한 여인으로 기억한다. 초대 미국 공사 루셔스 풋의 부인은 이렇게 쓰고 있다. “강력하면서도 상대를 압도하는 성격에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어요. 동양 전체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여성입니다.” 왕비 시해에 참여했던 한 일본인은 이렇게 평한다. “그녀는 당대 최고의 정치력을 지녔지. 멍청했으면 우리가 죽일 이유도 없잖아.” 실제 그녀는 정세에 대한 빼어난 이해와 판단력을 지녔고 위기 상황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인아거일을 주도했을 만큼 외교적 안목과 수완도 빼어났다. 그러나 당대 조선인들의 평가는 매우 인색하다. 유길준은 이런 말까지 했다. “그녀는 세계 역사상 가장 극악한 여인!”
-156쪽

이런 부정적 평가의 이면에는 전통적인 편견이 자리하지만(암탉~) 그러나 현실적인 근거들도 충분히 있다. 일단 그녀는 권력의 중핵이었고 그녀에게 기댄 민씨들의 전횡이 있었다. 갑신정변 때 칼을 맞은 민영익은 당시만 해도 선교사 자격으로 와 있던 앨런에게 치료받았다. 완쾌되자 민영익은 치료비 외에 사례로 10만 냥을 더 주었다 한다.(당시 3천냥 정도 유동 자산을 보유하면 서울에서 부자로 통했다.) 갑오개혁 때 탐오 혐의로 유배된 민형식이 끌어모은 돈은 70만 냥에 이르렀다.(1895년 국가 세입이 480만 냥) 그럴 정도로 민씨 정권의 유력자들은 매관매직, 뇌물수수 등을 통해 치부했고 벼슬을 산 이들은 투자비를 뽑기 위해 백성을 쥐어짰다. 삼정은 다시 문란해졌다. 이에 모든 원성은 왕비와 민씨 척족을 향했다.
-159쪽

민씨 정권이 취했던 정책들은 또 어떤가? 개화라는 큰 방향을 잡기는 했으나 장기적 비전을 갖지 못한 채 우왕좌왕했다. 내정 개혁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잦은 궐내 잔치와 굿판. 누구 못지않게 서양 세계의 실상을 많이 알았고, 그런 만큼 개화된 모습을 보일 법했지만, 굿이나 무당에 의지하는 전근대성을 끝내 버리지 못했다.
-160쪽

이런 일들로 그녀의 정치는 많은 비판을 불렀다. 그런데 이 모든 비판, 즉 민씨 척족의 전횡과 삼정의 문란, 일관성 없는 개화정책, 굿판 등의 구태...... 이 모든 책임은 왕과 왕비 공동의 것이다. 왕비의 조언에 힘입어 친정하게 된 이래 왕은 줄곧 왕비와 정치적 행보를 함께해왔다. 왕에게 가장 두려운 상대는 다름 아닌 아비 대원군. 임오군란은 이를 선명히 확인시켜주었다. 그 뒤로도 세상을 뒤집으려는 이들은 민씨 정권의 타도를 내걸었고 한결같이 대원군과의 연대를 꾀했다. 그 무서운 아비를 상대하려면 왕비의 지혜와 왕비의 일가 사람들이 필요했다. 왕비는 왕의 요구에 충실히 응답했다. 그렇게 왕비는 최대 정적인 대원군과 맞서 싸우는 동맹군이었을 뿐만 아니라 왕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요 후원자였다. 말하자면 둘은 정치적 일심동체였다. 때문에 공도 과도 공동의 것이라 하겠다.
-162쪽

을사조약 체결 과정에 보인 황제의 태도는 이중적이다. 반대의사를 분명히 하는가 하면 현실론을 펴는 이완용의 주장에 동조하는 모습도 보인다. 돌이켜보면 중요한 고비마다 강단 있는 태도를 보인 적이 한 번도 없다. 황제를 만났던 적잖은 외국인은 이런 평을 내놓았다. “황제는 죽음을 많이 두려워하는 인상.” 확실히 황제에게는 위기의 시대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단호함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타고난 성품이 그렇기도 하려니와 지나온 경험으로 볼 때 이해되는 면도 있다. 숱하게 찾아왔던 위기, 그때마다 황제는 몸을 낮추고 입을 다물었는데 시간이 지나면 반전이 이루어지고는 했다. 왕비 시해 후 숨막혔던 감금생활도 흥분하지 않고 조심스레 가능한 방법을 동원해 극적으로 벗어났다. 그랬던 것처럼 황제는 조약에 반대하고 그 심각성을 충분히 느끼면서도 목숨 걸고 반대하지 않았다. 또 한 번의 반전을 기대하면서.
-270쪽

일본은 귀족령을 만들어 왕실의 혈족과 병합에 공이 큰 이들, 포섭할 필요가 있는 이들 등 모두 75명에게 작위와 은사금을 내렸다. 을사조약의 반대자였던 민영기와 5적에 들지 않았던 이하영도 받았다. 이중 김석진은 작위를 받은 걸 수치로 여겨 자결했고, 자결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조정구(대원군 둘째 사위)를 비롯해 윤용구, 한규설, 민영달, 홍순형, 조경호는 작위를 반납했다. 김가진은 비밀 독립운동 단체의 일을 맡아보다 상하이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김윤식, 이용직, 김사준은 뒷날 반일운동을 했다가 작위를 박탈당했다. -305쪽

계속 논의되어온 일이 현실이 된 탓일까? 이미 조정이 친일 일색이었던 때문일까? 재야 사학자 황현이 절명시를 남긴 채 목숨을 끊고 전 러시아 주재 공사 이범진은 전보로 고종에게 유서를 보낸 뒤 거실에서 목을 맸다. 그 밖에도 지방 군수로 있던 벽초 홍명희의 아비를 비롯해 자결하는 이가 더러 있었지만 을사년 같은 격렬한 반응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지배가 10년, 20년 이어지면서 사람들은 어느덧 식민 지배를 당연하게 받아들여 갔다. 작위를 받은 이들 말고도 나라의 자주독립과 근대화를 열망했던 이들도 상당수는 점차 일제와 타협해갔다. -307쪽

일본과 맞서 싸운다는 건 너무도 무모해 보였다. 그런데 그토록 무모해 보이는, 승산이 1%도 안 되어 보이는 독립을 위한 투쟁이 35년 동안 줄기차게 이어졌다. 가산을 정리하고 국경을 넘어가 독립운동의 근거지를 꾸리는가 하면, 직접 무장투쟁을 벌였다. 국내에서는 엄중한 감시를 뚫고 지하조직을 구축하며 저항활동을 벌였다. 일제의 탄압은 지독히도 악랄했다. 독립투쟁의 길은 추위와 배고픔, 고문과 투옥, 총살과 교수대, 그리고 가족의 고난과 곤궁이 예정된 길이었다. 그 모든 걸 감당하며 역사 앞에 이름 없이 사라지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선조들이 있어 오늘의 우리가 있다. -3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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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아 : 돈과 마음의 전쟁
우석훈 지음 / 김영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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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나라는 선진국이 되면서 자국의 통화가 강해졌다. 전후 일본의 복구 과정과 엔화 가치의 끝없는 상승 국면만 봐도 알 수 있다. 일본 사람들은 외국에서 더 많은 물건을 살 수 있게 되었다. 마르크화 시절 독일이 그랬고, 프랑화 시절 프랑스가 그랬다. 그리고 지금 스위스의 프랑이 그렇다. 국민소득은 늘어났지만, 자국 화폐가 그에 반비례해서 약해진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누군가는 손해를 보고 누군가는 이득을 본다. 중앙은행, 그곳은 바로 자국의 돈을 지키는 곳이 아닌가! 어떻게 그곳에서 자국의 화폐 가치를 떨어뜨리는 조치를 그것도 경기회복이라는 명분으로 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오래된 사기극을 새로운 정부에서, 시민의 정부라고 이름 붙인 그곳에서 할 수 있는가?
-22쪽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그러나 권력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향한다. 그렇다면 돈은? 더러운 곳에서 더 더러운 곳으로 향한다. 그리고 없는 사람들의 작은 돈이 모여 강한 사람들의 큰돈이 된다. 가장 더러운 사람은 감옥에 가는 것이 맞겠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벌어진 후, 누구 한 명 잘못했다고 나섰던 사람이 있고, 누구 한 명 감옥에 간 사람이 있는가? 1997년, 한국에서 외환위기가 터진 후, 감옥에 간 사람은 물론이고, 사과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던가? 돈이 관여된 전쟁에서는 자기 돈이 어디로 가게 되는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어디로 가는지는 물론이고, 자신들이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게 된다. 글로벌 금융위기나 IMF 사태 때, 실업으로 자신의 경제적 삶이 붕괴된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이유로 자기가 그렇게 거리로 내몰리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을까? 착하디착한 대한민국 국민들은 실제로 그 상황을 만든 사람들이나 자신들을 그렇게 방치한 사람 대신, 자신을 원망하면서 오늘도 힘겨운 삶을 버텨낸다.
-55쪽

그는 지금 청와대에서 왕따다. 그러나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청와대 주변의 경제학자들이 지나치게 레토릭 즉, 수사 가득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럴 필요까지 있나 하고 스스로 반문할 만큼 그들의 말은 너무 어렵고 권위적이었다. 수치가 어렵고, 수치에 대한 해석이 어려운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말 자체를 일반인들이 전혀 알아들을 수 없게 하는 것은 쉽게 수긍하기 어려웠다. 전문가로서의 권위를 위해 일반인들에게 장벽을 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자신들과 같이 일을 하고 있는 대통령이나 비서실장에게도 그럴 필요가 있는가?
-73쪽

전 세계 어디에서도 한국 대통령을 위해 급전을 빌려줄 곳은 없었다. 이제 IMF와 같이 정부가 급하면 돈을 가져다 쓰라고 만들어놓은 공식적인 기관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 자체가 파산을 공식화하는 선언이었다. 세상에 공짜 돈은 없다. 모든 돈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고, 한국에서 국가부도의 정치적 대가는 혹독했다. 모두가 고생을 하는 것 같지만 대통령이 치러야 할 대가가 가장 컸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IMF 경제위기로 돈을 번 사람들을 통칭해서 강남이라고 부른다. 그들이 그 위기 한가운데에서 “이대로!”라고 외치며 건배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왜곡이나 과장 없이, 정말로 그래TEk. 새로운 정권이 경제적으로 숨통을 조여오자 은근히 IMF 같은 경제위기가 한 번 더 와서, 정치적 문제도 풀고 새로운 비즈니스의 기회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기업인이 많았다.
-116쪽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아프리카를 만난 사람들은 원시림 등 정글이 울창한 지형을 연상할 것이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 숲이 무성한 정글은 국가가 보호하는 자연공원뿐이다. 아프리카는 거의 사막에 가깝고 가끔 키가 작은 관목들이 서 있는 지역이 대부분이다. 그 속에서 바오밥나무는 아주 가끔씩만 볼 수 있는 나무이다. 이런 관목지대 특히 사막화로 점점 더 관목지대가 넓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형 수종 중 우점종인 나무는 바로 아카시아이다. 아카시아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아프리카의 건기에도 능히 버틸 수 있는 나무이다. 인류는 바로 그 바오밥과 아카시아가 있는 곳에서 첫 출발을 하였다.
-147쪽

그곳에서 출발한 사람들이 유럽 평원을 거쳐 마침내 도착한 곳이 바로 만주 벌판이다. 이곳 역시 인류의 발상지인 아프리카만큼 황량한 지역이다. 이곳에 버티고 있는 또 다른 대형 수종이 바로 버드나무이다. 물만 있으면 어느 곳에서든 살 수 있고, 줄기만 꽂아도 번식할 수 있는 버드나무는 만주에서 한반도 남쪽은 물론 심지어 일본 본토까지. 이 드넓은 땅의 진정한 지배자였다. 평양의 옛 이름 ‘류경柳京’은 바로 버드나무들의 서울, 버드나무의 도시라는 의미이다. 북한이 김일성 80회 생일 기념으로 1987년부터 공사를 시작한 류경호텔도 버드나무에서 온 이름이다.
-148쪽

버드나무. 그것은 남한과 북한의 지도자들이 경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상징이다. 박정희는 특히 버드나무를 싫어했다. 그는 이 나무를 어린 시절 고향 마을에서 흔히 보던 가난의 상징으로 여겼다. 박정희는 버드나무 대신에 아프리카에서 아카시아를 들여왔다. 그렇게 해서 대한민국은 결국 아카시아의 나라가 되었다. 한강에 있던 버드나무들은 더 이상 서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반면 대동강 강변과 그 상류인 보통강에는 여전히 버드나무가 중요한 존재로 여겨진다. 북한 천연기념물 2호인 옥류능수버들은, 평양냉면 전문 체인점으로 유명해진 옥류관과 옥류교 사이에서 주로 자란다. 버드나무와 아키사아나무가 바로 우리 미래에 대한 질문이 아니겠는가?
-148쪽

김철용은 공손하기는 했지만, 예전의 북한지도자들처럼 경직된 모습은 아니었다. 버드나무는 부드러움으로 태풍을 이겨낸다. 과연 북한은 그런 부드러움으로 미래를 헤쳐 나갈 수 있을까?
-164쪽

지금 대통령은 조선조의 왕들이 수렴청정으로 인해 정치적으로 유폐된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상황이다. 극심한 견제 속에서 그는 한 발만 잘못 벗어나면 언제든지 이 나라가 지급불능 상태로 빠져들 수 있다는 위협을 받아 상당히 위축된 상태였다. 집권 첫해에 의미 있는 정책을 하나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상실감이 그를 위축시켰다. 그러나 컨베이어 벨트와 조립용 기계가 끊임없는 파열음을 내고 있는 공장 안으로 들어가면서 자신이 이 모든 것에 대해 결정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는 어쨌든 노동자들의 대통령이고, 시민들의 대통령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지지해서 대통령이 된 것이 아닌가? 그는 대한민국 돈들의 대통령이 아니다. 아니, 큰돈들의 대통령이 아니다. 덩치가 큰돈들은 대통령을 지지한 적이 없었고, 지금도 지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푼돈들이 모여 큰돈이 된 것 아닌가? 큰돈들이 왜 그렇게 큰돈이 되었겠는가? 큰돈은 뭉치기 쉬운 습성을 가지고 있다. 마치 조각조각 모인 돈들이 자본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반면에 작은 돈들은 부수어지기 쉽다. 그게 작은 돈의 속성이자, 약점이다.
-172쪽

사람들 사이로 ‘비정규직 문제, 해결해주세요’라고 쓰인 피켓들이 보였다. 보통은 ‘해결하라’ 혹은 ‘철폐하라’ 같은 명령조의 반말투로 적은 플래카드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해라체가 글자 수가 적어 팻말이나 플래카드처럼 많은 글자를 적기 어려운 상황에서 더 유리한 이유도 있지만,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늘 외치는 사람과 들어줘야 하는 사람의 적대적 관계가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영어나 불어는 존대어가 발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집회나 시위에서 사용되는 명령형의 문구가 반드시 하대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집회에서 종종 존재어로 된 피켓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새로운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도 있지만, 자신들이 직접 만든 정부라는 열망감도 반영된 것이었다. 말이라는 것은 누가 시킨다고 해서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민의 정부가 출범하면서 자연스럽게 존칭과 존대가 피켓에서 공공의 언어로 돌아오고 있었다. 누가 누구에게 명령하는 것이 아닌 사회, 그런 것들에 대한 열망이 사람들 속에 잠재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174쪽

몇 달간 수면 아래에서 잠자고 있던 대통령이 움직임을 보이자, 총리실 밑에서 자신들만의 왕국을 구축하고 있던 경제 부처 관료들은 심하게 요동쳤다. 그들의 임명권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시민들이 만든 권력이 어떤 것인지, 이제야 힘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지환이 준비한 카드는 이게 다가 아니었다. 그는 큰 카드 옆으로 작은 카드들을 몇 개 더 마련해놓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퇴직 공무원들의 로펌 취직을 10년간 금지하는 법안을 포함한 법률회사 관리에 관한 제도와 국회 등 로비에 관한 제도 정비였다.
-231쪽

오지환이 무장한 국정원 요원들과 외환은행 본사 딜링룸으로 들어감과 동시에 ‘저녁이 있는 삶’ 작전이 시작되었다.
-304쪽

한 국가의 돈의 운명은 그 나라의 경제적 운명과 일치한다. 그 나라의 경제가 강해지면 당연히 그 나라의 돈도 강해진다. 그리고 그 돈의 힘은 구매력 즉, 환율로 표시된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딱 한 나라, 그러한 돈의 법칙과 거꾸로 간 나라가 있다. 박정희가 쿠데타로 집권하던 시절 250원이던 달러화와 대비한 원화 환율이 그가 죽을 때에는 600원이 되었다. IMF 때는 평균 환율이 1,400원까지 치솟았다. 그리고 980원 수준까지 내려갔다가, 이명박 정권으로 바뀌면서 다시 1,200원 이상으로 올라갔다. 그동안 한국의 GNP는 1인당 2만 달러를 넘어서게 되었지만, 몇 백 달러 시절보다 원화는 몇 배로 약해졌다. 원화가 약해지면 약해질수록 국민들의 구매력도 약해진다. 그 대신 대기업 특히, 수출을 하는 기업들의 힘은 더욱 강해진다. 대한민국은 경제가 강해져도 원화는 더욱 약해지는 이상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3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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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3-07-26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구는 무척 덥습니다.ㅠㅠ
너무 더워서 나가기가 싫네요...
더위조심하시고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마노아 2013-07-26 23:40   좋아요 0 | URL
아, 오늘 서울도 불타올랐어요. 33도였는데 후끈후끈하더라구요.
그러다가 또 비가 온다고 하네요. 변덕스런 여름 날씨입니다.
우리는 평상심을 유지하며 이 여름을 잘 견디어 보자구요. 후애님도 주말 즐겁게 보내셔요~

saint236 2013-07-26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랄까요? 예전에도 리뷰에서 썼지만 우석훈이 쓴 소설은....

마노아 2013-07-26 23:46   좋아요 0 | URL
소설은 소설가에게~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욕심이 앞섰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