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푸른 사다리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0월
구판절판


수도자는 순명(順命)해야 하고 수도자는 겸손해야 합니다. 인간(humanitas), 흙(humus), 겸손(humilitas)은 모두 같은 라틴 어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24쪽

안젤로는 초콜릿을 노수사님들의 입에 넣어주고는 노수사님들의 식판에 담긴 밥을 자신의 입에도 넣었다.
"예수님이 당신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고통을 받았다고 해서 우리가 꼭 같이 고통받기를 정말 바라실까요? 토마스 수사님,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예요? 우리 엄마는 병실에서 자기는 아파서 물도 삼키지 못하면서 제가 친척들이 사 온 주스며 빵을 먹고 있는 걸 보기를 그리 좋아하셨는데요."
-37쪽

할머니는 나를 사랑했고 아버지도 나를 사랑했으며 어머니도 나를 사랑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행복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제각기 떨어져 불화했으며, 나는 그들이 나에 대해 퍼붓는 사랑에서보다 그들의 불화에서 나오는, 그들끼리의 관계 속에서 흘러나오는 불행에 더 깊이 영향받았다.
-47쪽

"가난한 자들을 돌보라 역설하면서 가난한 자들이 왜 가난하게 되었는지 도무지 살펴보려고 하지 않는 교회, 낙태하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왜 젊은 엄마들이 배 속에 든 자신의 아이를 죽일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조금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교회, 수백 명의 인명을 살상하려는 강대국의 무기 판매에 아무 경고도 하지 못하는 교회! 이혼은 죄라고 하면서 이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만큼 불행하게 사는지 보이는데도 모른 척하는 교회! 동성애가 무슨 취향인 줄 아는 교회! 그 교회가 나를, 여자들과 성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수도원의 형제들이 노동한 대가인 그 돈을 떼어먹고 도망간 수사들과 같은 수위로 처벌하려 하는군. ‘부자가 재산을 자랑할 때 약탈과 착취가 묵인되고, 군지휘관이 승전보를 알릴 때 대량 학살이 묵인되고, 고관대작이 권력을 뽐낼 때 폭력이 묵인되어 있는 것이 분명함에도 이것들이 그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자신도 그 부류 속에 있음을 의심하라!’하고 톨스토이가 말했던가......"
-67쪽

"긴 인생에서 겨우 한 해 늦추어졌을 뿐 아무것도 달라진 건 없잖아요. 우리 수련수사 때 수련장 신부님 말씀하신 거 전 가끔 생각해요. 나가는 것도 좋다. 길을 바꾸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중요한 결정은 반드시 평화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69쪽

"미카엘이 제일 걱정이에요. 단식을 하고 계명을 지키고 계율을 지키는 거 너무 중요하지요. 중요하지만 가끔 미카엘은 매사에 너무 열심히라서 나는 그게 걱정이에요. 하느님 나라는 공부하듯 승진하듯 고시 보듯 내 힘으로 가는 데가 아니거든요. 속세에서 1등 하듯 여기서 단식 지키고 속세에서 근무 열심히 하듯이 여기서 기도 많이 하는 건 속세의 방식이지요. 하느님 나라는 그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기쁘게 살아내는 거예요. 복음은 지키는 것이 아니고 사는 거거든요."
-107쪽

"힘들지요. 하느님, 이 늙은이를 빨리 데려가시지 않고 이렇게 내버려두어서 무얼 얻으시려는 건지 궁금하지요. 그러나 내가 물어도 늘 그렇듯 대답이 없으세요. 80년이 넘도록 물어도 대답 없는 양반이니 말이지요. 다만 내가 알게 된 게 있다면 내가 평화 가운데 있다는 거예요. 젊었을 때 나는 평화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인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이제 겨우 하나 알게 되었어요. 평화는 고통 가운데서, 혼란 가운데서, 병과 늙음 그리고 죽음 한가운데서 하느님을 붙들고 있는 거라는 걸."
-108쪽

"미카엘 수사님, 요한 수사님. 서품을 받고 신부가 된다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물론 그렇게 되지 않는 것도 또 좋은 일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지어내고 좋아하셨지 뭐가 되고 나서 좋아하시지는 않았지요. 그런데 너무 혼자 힘으로 모든 걸 하려고 하면 넘어집니다. 우리는 작고 가난합니다. 우리는 그저 그분께 모든 걸 맡기고 겸손하게 기다릴 뿐이지요. 우리가 해야 하고 오직 하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우리의 먹을 것, 우리의 입을 것, 우리의 시간과 선의를 그것이 모자라는 이웃과 나누는 거지요. 예수님은 교회 건물을 세우지도 않았고 시위를 주동하지도 않았으며 학교를 창립하지도 않았으며 한 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전쟁터에 가시지도 않았잖아요."
-108쪽

"나는 사랑에 대해 말하려고 했던 거야. 작고 가난한 형제에 대한 사랑...... 나는 예수가 승천하기 전에 주고 갔던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던 거야. 그런데 내 말투에는 사랑이 없었고 내 편지의 내용에는 평화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어. 왜 토마스 수사님을 간호하는데, 그 터무니없이 눈이 맑고 명랑한, 지금은 어린아이보다 못하게 되어 대소변조차 혼자 보지 못하고 넣어주는 음식의 반을 흘리는 늙은 수사님을 보면서 나는 그걸 깨닫게 되었을까? 그분이 하도 잔잔하셔서 내 얼굴이 비추어졌는데, 나는 거기서 사랑을 빙자한 증오로 가득하고 평화를 빙자하여 전쟁을 불사하는 가증스러운 한 영혼을 보게 된 거라구."
-113쪽

태어나기 전에 인간에게 최소한 열 달을 준비하게 하는 신은 죽을 때는 아무 준비도 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삶 전체가 죽음에 대한 준비라고 성인들이 일찍이 말했던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생각하는 인간은 분명 어떻게 살 것인가를 안다. 죽음이 삶을 결정하고 거꾸로 삶의 과정이 죽음을 평가하게 한다면 내 삶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하는 수 없이 그런 질문에도 직면하게 되었는데, 그때는 그저 이 모든 것을 신에 대한 원망으로 돌리고 싶었다. 그것이 훨씬 수월한 일이니까. 문제는 그렇게 책임을 신에게 돌려버림으로써 실은 나는 성장할 기회를 놓치고 있었다. 아빠스님이 이야기했던 "이 고통 속에서 신이 내게 물으시는 것"을 나는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인간은 고통을 겪을 때 실은 내가 이 고통 때문에 뜻밖에도 잃어버리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165쪽

"안젤로 수사님은 정말 친척이 아무도 없었어요. ‘전 여기서 나가면 아무도 없어요’ 그러기에 농담인 줄 알았는데 정말이었나 봐요. 이 세상에 사고무친인 사람이 그렇게 날마다 방실방실 웃고 다녔다는 걸 믿을 수가 없어요. 언제나 내게도 상냥하고 친절했지요. ‘문지기 수사님이 문을 지켜주시니 저는 정말 좋아요. 날마다 오갈 때마다 여기서 뵐 수 있으니 참 기뻐요.’ 아무것도 아닌 제게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은 이 세상에 그 사람 하나밖에 없었어요. 순간 내가 뭐 예쁜 여자도 아니고 저게 정말일까 의심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정말 안젤로 수사님이 ‘수사님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에요’ 하고 이 문을 오갈 때면 저는 제가 누군가에게 참 기쁜 사람이 된다는 생각에 저절로 환해졌답니다. 가끔 그 젊은 수사님이 햇빛 속에 서 있을 때는 같은 남자가 보아도 얼굴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꼭 늠름한 해바라기 같았고, 그냥 지상에 뚝 떨어진, 정말 안젤로라는 이름 그대로 천사였나 싶었어요."
-166쪽

여자는 내가 내미는 포도주를 한잔 마시고 겨우 입을 열다가 다시 울었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어깨로 손이 갔다. 그렇게 위로의 손길을 뻗으면서 나는 내가 가진 지극한 슬픔도 그보다 더 지극히 슬픈 사람을 위로하면 덜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짧은 순간 나는 나의 고통을 잠시 잊었고 그녀의 고통에 깊이 감화되었다. 뭐랄까, 아래로만 치닫던 슬픔이 나의 아픔에만 집중되던 고통이 다른 이를 향해만 가던 분노가 평화와 위로와 나눔으로 반전되는 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후에도 나는 마음이 아플 때는 다른 이들을 위해 나를 쏟는 것으로 나의 고통을 달래곤 했다. 어쩌면 치유는 위로받는 자에게가 아니라 위로하는 자에게 일어나는지 모르니까. 아니, 위로받는 자와 위로하는 자 두 사람 모두에게 새로운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는지도 모른다. 고통받는다고 느낄 때야말로 우리는 어쩌면 가장 이기적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168쪽

이상하다. 이 지상을 떠난 사람의 자취는 그가 남긴 사물에서가 아니라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발견된다. 죽어서 삶이 더 선명해지는 사람이 있다. 죽어서야 비로소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살아나는 사람이 있다. 살아 있었으면 그저 그렇게 내 곁을 스쳐 지나갔을 평범하고 시시한 한 사람의 생이 죽어서야 모든 이의 삶 속에 선명해지는 것. 아마 대표적인 이가 예수였겠지. 죽은 몸이 벌떡 일어나지 않아도 그것이 어쩌면 부활이 아닐까.
-170쪽

"우리 안젤로가...... 우리 안젤로 수사가......"
그는 눈물로 범벅이 된 주름진 얼굴로 겨우 그렇게 말했다. 그의 거무튀튀한 입술에서 나오는 우리, 라는 말이 나를 무너뜨리고 말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눈물을 터뜨렸다. 노수사님이 다가와 나를 안았다. 나는 그의 품에 안겨 어린아이처럼 큰 소리로 그리고 오래 울었다.
-175쪽

"하느님, 참 늙고 병들어 쓸모없는 나를 데려가시지, 왜 그들을...... 왜 그들을."
나는 그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닦으면서 내가 왜 그를 사랑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것도 하느님의 뜻"이라거나 "여기서 뜻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면 마음속에서 일어났을 폭풍 같은 냉소가 그에게는 일지 않았다. 그는 약한 우리의 믿음으로 인한 고통을 이해했고 공감해주었다. 나는 그 후로도 가끔 생각했는데, 결국 진정하고 강한 믿음을 가진 이만이 약하고 흔들리는 이들을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211쪽

"요한 수사님, 악은 수많은 얼굴로 다가옵니다. 사실 사람인 우리가 그것을 식별하는 것은 은총에 의지할 뿐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도 있어요. 우리가 사랑하려고 할 때 그 모든 사랑을 무의미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모든 폭력, 모든 설득, 모든 수사는 악입니다. 너 한 사람이 무슨 소용이야, 네가 좀 애쓴다고 누가 바뀌겠어, 네가 사랑한들 아는 사람 하나도 없어...... 속삭이는 모든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어쩌면 옥사덕이나 남미 로메로의 피살이나 유신 혹은 광주 학살 같은 것은 아직 난이도가 높은 것은 아닐지도 모르죠. 이제 악은 다른 얼굴로 우리에게 달려듭니다. 소리 없는 풀 모기처럼 우리를 각개격파하러 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무의미입니다."
-239쪽

"그런데 요한 수사 그거 아나? 이 세상에 참나무란 건 없다는 거 말이야. 참나무란 참나무 속에 속하는 여러 나무들의 공통 명칭이라는 것을. 자료를 좀 찾아보니까 수피를 잘라내어서 굴피집의 지붕으로 썼다는 굴참나무-우리 수도원에서 순교자를 여럿 냈던 옥사덕의 지붕 자재도 아마 이 굴참나무였을 거야-, 떡을 상하지 않게 감싸주었다는 떡갈나무, 예전에 신발 깔창으로 대기 좋았다는 신갈나무, 묵을 쑤어 먹으면 제일 맛있는 열매를 맺는다는 졸참나무, 거기서 열린 도토리로 임금님 수라상에 올릴 도토리묵을 쑤었다는 상수리나무...... 한마디로 도토리가 열리는 나무가 다 참나무라는 거야."
-313쪽

"참나무는 20년은 되어야 비로소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고 하네. 물론 그 전에 그 수많은 도토리 중에서 싹을 틔우는 것도 몇 개 되지 않고 말이야. 그렇게 싹이 났다고 해도 열매를 맺지 못할 뿐 아니라 죽는 일도 비일비재. 여러 해충에 약하고...... 요즘 같은 세상에 20년이 지나야 열매를 맺다니...... 그때 생각했어. 이렇게 약하고 어찌 보면 느린 나무에게 참이라는 이름을 붙인 우리 조상들을 말이야. 심지어 평균 수명도 짧았을 그 시기에 자신이 심었다 해도 살아서는 그 혜택을 보지 못할 그 나무에게 세상에서 가장 좋은 참이라는 말을 붙여주다니......
나는 어쩌면 우리 수도자들이 참나무 등속과 닮은 건 아닌가 생각해보았네...... 우리도 참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 속에 다 모여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우리를 모두 수도자라고 부르지만, 모양도 다 다르고 쓰임새도 다 다르고 심지어 제복들도 다르고....... 그렇지만 우리는 수도자,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거...... 닮았다고....... 그렇게 20년을 잘 참아내면 참나무는 수백 년을 살기도 하네. 풍성한 그늘과 열매를 주고 퇴비가 되는 잎을 주기도 하며 숯을 만들게 하고-통일신라 시대에 경주에서 피웠다는 연기 안 나는 사치스러운 숯이 이것이라네-표고버섯의 토양이 되기도 하지."
-314쪽

‘압니다. 할 수 없는 이유 9999가지를요. 그러나 합시다. 이건 생명의 문제입니다. 이건 흥정의 대상도 고려의 대상도 아닙니다.’
-334쪽

영하 20도의 눈보라 치는 항구를 떠나 사흘 만에 도착한 그 나라의 남쪽 항구는 영상 1도. 생명과도 같이 보드라운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거제도의 주민들이 우리 배가 도착한다는 소식을 듣고 일제히 주먹밥을 준비해 부두에 나와 있었다는 것입니다. 맑고 신선한 이 나라의 물도 함께 말입니다. 우리 선원들은 그 광경을 보았습니다. 저는 생각했지요. 예수라는 이름도 없고 교회도 없고 심지어 십자가도 없는 이곳에서 진정한 크리스마스가 펼쳐지고 있다고 말이지요.
-341쪽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여러분’
-342쪽

두 사람이 죽었다는 말과 동시에 마리너스 수사님의 입에서 강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는 마치 죽음의 소식이라고는 세상에서 처음 들은 사람처럼 깊게 탄식했다. 순간 그보다 내가 더 놀라고 있었다. 나는 그가 전쟁을 겪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가 본 죽음은 내가 살아서 본 사람의 수보다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스쳐갔다. 그런데 그는 나보다 더 깊이 탄식하고 있었다. 문득 그가 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어떤 죽음도 상투적이지 않다. 수십 억의 사람이 태어난다 해도 어떤 태어남도 진부하지 않듯이 말이다. 나는 그에게 온전히 나의 슬픔을 이해받고 있는 듯했다.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나는 미카엘과 안젤로가 죽은 후 처음으로 위로받고 치유받는 것 같았다.
-354쪽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더 깊이 절망하겠습니다. 더 높이 희망하기 위해서.
-3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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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사랑 문학과지성 시인선 16
최승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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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가을이 / 최승자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온다
매독 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 쪽 다리에 찾아온다.

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
모든 길들의 경계선이 문드러진다.
레코드에 담긴 옛 가수의 목소리가 시들고
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선이지 죽선아
전화선이 허공에서 수신인을 잃고
한번 떠나간 애인들은 꿈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고 괴어 있는 기억의 廢水가
한없이 말 오줌 냄새를 풍기는 세월의 봉놋방에서
나는 부시시 죽었다 깨어난 목소리로 묻는다.
어디만큼 왔나 어디까지 가야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14쪽

올 여름의 인생 공부

모두가 바캉스를 떠난 파리에서
나는 묘비처럼 외로웠다.
고양이 한 마리가 발이 푹푹 빠지는 나의
습한 낮잠 주위를 어슬렁거리다 사라졌다.
시간이 뚝뚝 수돗물 새는 소리로
내 잠 속에 떨어져내렸다.
그리고서 흘러가지 않았다.

엘튼 죤은 자신의 예술성이 한물갔음을 입증했고
돈 맥글린은 아예 뽕짝으로 나셨다.
송X식은 더욱 원숙해졌지만
자칫하면 서XX처럼 될지도 몰랐고
그건 이제 썩을 일밖에 남지 않은 무르익은 참외라는 뜻일지도 몰랐다.

그러므로, 썩지 않으려면
다르게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했다.
다르게 사랑하는 법
감추는 법 건너뛰는 법 부정하는 법.
그러면서 모든 사물의 배후를

손가락으로 후벼 팔 것
절대로 달관하지 말 것
절대로 도통하지 말 것
언제나 아이처럼 울 것
아이처럼 배고파 울 것
그리고 가능한 한 아이처럼 웃을 것
한 아이와 재미있게 노는 다른 한 아이처럼 웃을 것.
-28쪽

삼십 세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시큰거리는 치통 같은 흰 손수건을 내저으며
놀라 부릅뜬 흰자위로 애원하며.

내 꿈은 말이야, 위장에서 암세포가 싹 트고
장가가는 거야, 간장에서 독이 반짝 눈뜬다.
두 눈구멍에 죽음의 붉은 신호등이 켜지고
피는 젤리 손톱은 톱밥 머리칼은 철사
끝없는 광물질의 안개를 뚫고
몸뚱어리 없는 그림자가 나아가고
이제 새로 꿀 꿈이 없는 새들은
추억의 골고다로 날아가 뼈를 묻고
흰 손수건이 떨어뜨려지고
부릅뜬 흰자위가 감긴다.

오 행복행복행복한 항복
기쁘다 우리 철판깔았네
-30쪽

시인 이성복에게

현기증 꼭대기에서 어질머리 춤추누나,
아름다운 꼽추 찬란한 맹인.
환상이 네 눈을 갉아먹었다.
현실이 네 눈에 개눈을 박았다.
(그래서 네겐 바람의 빛깔도 보이지)

가장 낮은 들판을 장난질하며
흐르는 물, 물의 난장이
가장 높은 산맥을 뛰어넘는
키 큰 바람, 바람의 거인

행복이 없어 행복한 너
절망이 모자라 절망하는 너
무엇이나 되고 싶은 너
아무 것도 되고 싶지 않은 너

영원히 펄럭이고저!
눈알도 아니 달고
척추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
바다의 날개......
하늘의 지느러미......)
-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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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부의 서재 - 어느 외주 교정자의 독서일기
임호부 지음 / 산과글 / 2013년 9월
절판


이런 구조에서는 골목 끝 고루거각에 사는 부자 나리가 같은 골목 안에서 굶주리는 이웃에 자선을 베풀지 않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도덕적 의무감이라기보다는 일상적 관계가 만들어내는 연대의식이었다. (서울은 깊다, 57쪽)
-28쪽

어디 골목뿐이겠는가. 마당도 그랬다. 마당을 중심으로 대청마루 딸린 안방에는 주인이 살고 나머지 방들에는 세입자들이 살며 일상적인 관계를 형성했다. 주인집에 잔치가 있을 때는 일손을 돕는 대신 잔치음식을 얻어먹을 수 있었고, 급전이 필요할 때는 주인집이 세입자들의 은행 노릇을 했다. 주인집의 티브이와 전화는 거의 공용이다시피 했음은 물론이다(그 대가로 주인집 아이에게 늘 져줘야 했지만). 빈자들과 함께 산다는 것 자체가 부자들에게는 베푸는 삶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는 바로 그 골목과 마당에서 자랐다. 그러나 서울에서 이제 그런 골목과 마당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아파트 때문이다.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부자들은 부자들끼리 모여 살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들 사이에도 주공이니 임대니 하며 차별의식을 조장한다고 하니, 옛날 부자들이 권위의식과 함께 책임의식 또한 부여받았던 것에 비해 요즘 부자들에게는 풍요로울 부(富)자를 붙여주기도 민망할 지경이다. 부자와 빈자가 모여 살 때보다 따로따로 군락을 이루며 살 때 빈부격차가 더욱 심화돼 보인다는 것도 아이러니다. (2009.8.2.)-29쪽

어머니 간병 때문에 병원에 있을 때, 같은 병실에서 구순의 노모를 간병하던 일흔 가까이 되어 보이는 아들이 이렇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나이 아흔이나 돼서 병원에 누워 남의 손에 의탁하고 있으려니까 사는 게 참 치사하다. 그치, 엄마?" 치사하다는 말의 의미를 나는 그때 알았다. 마흔이든 아흔이든 삶은 단지 육체적 견딤만으로는 의미를 얻지 못한다. 말이 그 견딤을 정당화해줘야 한다. 이를테면 "아들을 봐서라도 좀 더 사셔야 할 텐데......"가 될 수도 있고, "아흔이면 이제 돌아가시는 게 당신을 위해서나 가족들을 위해서나 좋을 텐데......"가 될 수도 있다. 산다는 것은 육체가 버텨주는 것만으로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이 그리고 그 의미가 버텨주어야 한다. 따라서 "넌 도대체 사는 의미가 뭐야?"라는 물음에 답하는 것은 참으로 치사한 일이나. 아니 때로, 사는 것 자체가 참으로 치사한 일이다. (2009.8.13.)
-32쪽

거리엔 가로등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사거리를 지나는 차량들이 느릿느릿 움직였다. 건물도 느긋하게 서 있는 것만 같았다. 어쩐지 내가 외국의 소도시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일요일이었다.
담배를 천천히 피웠다. 담배를 급하게 피우는 것이 죄가 될 것만 같은 도시의 저녁이었다. 다시 돌아가기 위해 역사로 들어서는데, 전철이 이곳을 출발하면 나를 곧장 낯선 도시로 데려갈 것만 같았다. 월요일이라는 이름의 도시. 역사 중간에 가만히 서 있었다. 시계를 보고 역사 바깥의 광장을 보고 다시 시계를 보았다. 역사를 나가 횡단보도를 건넜다. 건너편 대각선 방향에 환하게 불을 밝힌 중국집이 보였다. 손님은 나뿐이었다. 나는 짬뽕을 시켜 천천히 먹었다. 아직은, 일요일이었다. (2012.1.16.)-245쪽

부사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우리의 삶이 징검다리를 건널 때처럼 허방과 마주할 때마다 부사는 마치 누군가가 던져준 징검돌처럼 우리의 바닥을 든든히 받쳐준다. 힘차게, 안전하게 혹은 짜릿하게. 그중에서도 삶의 허방을 채워주는 정도에 머물지 않고 삶 그 자체를 규정해줄 만큼 중요한 부사도 있다. 그 자체로 징검다리인 부사. 접속부사다. 그리고, 그래서,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그런데도 불구하고).
모든 이야기는 접속부사로 이어진다. 드러내든 감추든 ‘그리고, 그래서, 그런데’ 같은 접속부사 없이는 어떤 이야기도 이어질 수 없다. 하지만 삶은 이야기와 달라서 ‘그리고, 그래서, 그런데’ 만으로는 안전하게 다음 돌로 건너갈 수 없다. 삶이 필요로 하는 접속부사는 ‘그런데’가 아니라 ‘그런데도 불구하고’이다. 누구나 ‘불구하고’의 힘으로 사는 것이지, ‘그런데’가 안내하는 끝을 향해 달려가는 것은 아니니까. 반명 이야기는 ‘불구하고’를 거부한다. 아니, ‘불구하고’를 포용할 수 없다. 누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한단 말이며, 어떤 이야기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어질 수 있단 말인가. -247쪽

오직 삶만이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어질 뿐이다. 이야기와 삶의 이 괴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문학은 그저 삶의 이야기에 불과해진다. 이른바 ‘핍진성’에 매몰되어 척박한 리얼리즘에 머물고 마는 것.
이야기와 삶은 다르다. 둘 사이에는 ‘그런데’와 ‘그런데도 불구하고’가 드러내는 것만큼의 차이가 있다. ‘그런데’로 이어지는 이야기에는 희망이 없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로 이어지는 삶에는 희망이 있다는 것도 그중 하나다. 이야기는 그저 헤겔이 말한 ‘악무한’처럼 끊임없이 이어질 뿐이지만, 삶은 그런 식으로 이어질 수 없다. -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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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자크 보세 지음, 기욤 드 로비에 사진, 이섬민 옮김 / 다빈치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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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향한 열정을 다룬 두 권의 빛나는 작품(<점잖은 광기>와 <인내와 강인>)을 쓴 니컬러스 배스베인스의 일화는 우리가 오랜 세월 동안 도서관에 대해 느껴왔던 신비한 매력을-이 책에서 앞으로 더 자세히 소개되겠지만-잘 보여준다. 1995년에 배스베인스는 1914년 발견된 새뮤얼 피프스의 장서 목록에 등장한 세 권짜리 책을 찾고 있었다. 우연히 보스턴 애서니엄에 갔던 그는 지하 서고에서 잠자고 있던 책들을 발견했다. 전혀 펼쳐진 적도 없고 페이지가 잘려 나가지도 않은 책들이었다. 대출 카드를 보면 대출된 적도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큰 소리로 그는 물었다. "85년이나 되었군요. 누구 때문에 구입한 책입니까?"이에 사서는 대답했다. "배스베인스 선생님 당신을 위해 구입했습니다."-11쪽

(아드몬트 베네딕트회 대수도원 도서관)
‘책 사랑’이 오프너 대수도원장만의 별난 취미는 아니었다. 책 읽기는 베네딕트회를 창설한 누르시아의 성 베네딕투스가 만든 계율에도 규정되어 있었다. 계몽과 건강을 위해 수도사들에게는 성전을 읽고 주석을 덧붙이는 의무가 주어졌다. 베네딕트회 수사들에게 있어서 도서관 없는 수도원은 ‘무기 없는 요새’와 같았다. 따라서 1074년 설립 당시부터 아드몬트는 잘츠부르크에서 들여온 몇 권의 책을 보유하고 있었고, 작품의 필사, 채식, 주석첨부를 위한 필사실을 설치했다. 몇몇 조예 깊은 대수도원장들의 주해와 해설들은 이 도서관의 명성을 오스트리아 전역으로 확산시켰다.-24쪽

(안나 아말리아 공작부인 도서관)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2세의 조카 브라운 슈바이크 볼펜뷔테 공주로 태어난 안나 아말리아는 열일곱 살이던 1756년에 어리고 병약한 작센 바이마르 아이제나흐 공작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2세와 결혼한다. 이들의 결합은 프로이센 왕에게 병력을 팔아넘기는 것이 최대 수입원이던 피폐한 공국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2년 뒤, 7년 전쟁 기간 중에 공작은 사망한다. 안나 아말리아는 "열여덟이 된 해는 내 황금기의 시작이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과부가 되었다가 후견자, 그리고 섭정이 되었다"고 술회했다. 다행히 상당히 지적이며 정력적이던 그녀는 유능한 재상을 임명하여 단기간에 공국의 재정을 강화하는 데 성공했다. 부모와 삼촌들의 품격 높은 궁정에 향수를 느끼고 있던 안나 아말리아의 대사업은 독일의 변방에 가까운 바이마르를 학문의 중심지로 만드는 일이었다. -54쪽

안나 아말리아는 사업에 착수했고, 1775년에 아들 카를 아우구스트에게 권력을 이양한 후에는 이에 더욱 깊게 관여했다. 그녀는 연극, 음악, 문학을 사랑했고 화가, 음악가, 시인들을 초대해 파격적으로 배려하며 동근 탁자에 함께 둘러앉아 자유정신을 만끽하게 했다. 또한 바이마르를 근대화하고자 남아 있던 외양간들을 폐쇄하고 공공 조명 시설을 설치했으며, 1761년에는 16세기에 지어진 ‘초록색 작은 성’을 개조하여 공작 관저의 장서들을 보관할 도서관으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도서들은 1766년에 모두 옮겨졌다.
(...)
도서관 곳곳에는 그림, 액자에 넣은 도면, 유럽 전역에 명성을 떨친 이 도서관을 방문한 유명 인사들의 흰색 대리석 흉상 등이 자리 잡고 있다. 흉상의 주인공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 바이마르 생활과 젊은 공작, 그리고 그의 모친인 공작부인과의 교류를 즐긴 이는 바로 괴테였다. -54쪽

1775년, 열여덟 살 카를 아우구스트의 초청으로 바이마르에 온 괴테는 1832년 사망할 때까지 이곳에 살았다. 청년 작가 괴테는 서간체 형식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엄청난 명성을 얻었다. 두 청년은 남부 독일의 궁정에서 고수되던 엄격한 예절에 아랑곳하지 않고 화통하게 지냈다. 두 사람은 떨어질 수 없는 사이였으며 즐겁게 지내는 것뿐 아니라 바이마르의 근대화를 위해서도 함께 노력했다. 공작은 괴테를 개인 고문으로 임명했고, 1782년에는 황제 요제프 2세에게 주청해 괴테에게 작위를 수여하게 했다. 공작부인과도 교류했던 괴테는 이를 계기로 군주와 한 테이블에 앉을 수 있게 되었으며, 이는 당대의 궁정 예법에 의하면 작위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바이마르는 독일 문화의 수도가 되어 특히 연극 분야를 선도했고, 낭만주의의 가장 빛나는 대표자를 손님으로 환대했다.-54쪽

괴테는 바이마르 공작 도서관의 관장으로도 임명돼, 1797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재직했다. 그는 도서관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재조직했고 5만 권의 장서를 13만 2천 권으로 늘려 독일 최대 규모의 도서관 가운데 하나로 키웠다. 교단들이 세속화되고 지역 수도원들의 필사본과 초기 활판 인쇄술 시기의 인쇄본이 수시로 바이마르에 보내지던 시기의 일이다. 괴테는 도서관 책임자로서 적어도 이따금씩은 대단히 적극적으로 활동하곤 했다. 그는 책 반납이 늦은 대출자들에게 엄중한 연체료를 부과했는데, 그가 직접 작성한 통지서들이 지금도 남아 있다.
-55쪽

(아일랜드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을 방문하는 매년 50만 명의 여행자들 대다수는 그 유명한 <켈즈 복음서>를 보러 온다. "중세 중기 유럽에서 우리를 찾아온 가장 찬란한 책"(피터 브라운의 표현)으로 여겨지는 이 복음서는 이미 오래 전에 웨일스 출신의 박식한 성직자이며 연대기작가인 기랄두스는 "이는 사람의 작품이 아니라 천사의 작품이라고 믿어도 좋을 것"이라고 썼다. 사실, 방문자들이 볼 수 있는 것은 스위스에서 제작되고 1990년에 아일랜드계 캐나다인들이 도서관에 기증한, 극상의 상태를 보여주는 모조품이다. 훼손되기 쉬운 원본은 연구자들에게만 공개된다. 온도와 습도가 조절되는 금고는 인류의 걸작 미술품을 위한 최후의 안식처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170쪽

도서관은 1601년에 세워졌다. 인쇄 서적 30점과 필사본 10점으로 소박하게 출발했지만, 여러 차례 자료 확대 사업을 통해 곧 크게 확장된다. 하지만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은 아일랜드 대주교이며 학자이자 애서가이던 제임스 어셔 사후 그의 장서를 사들인 뒤에야 비로소 어느 정도 명성을 얻게 된다. <켈즈 복음서>를 발견한 것도 그였다. 그러나 한 세기 뒤, 어셔의 장서는 아무렇게나 쌓여 보관되고 있었고 열람실은 너무도 불편해(사실 열람을 위한 방도 아니었다) 도서관 이용 빈도는 매우 낮아졌다. 1709년에 대학 당국은 건물을 새로 짓기로 결정했지만, 새 서가에 책을 배열하는 작업의 대가로 허드슨이라는 사람에게 70파운드를 지급했다는 기록은 1733년에나 등장한다. 당시에는 사업에 으레 이렇게 긴 세월이 소요되곤 했다. 옥스퍼트와 케임브리지(특히 렌 도서관)의 이런저런 도서관들이 깊이 있게 비교 연구되었고, 지금 문제 같은 것들도 면밀하게 분석되었다. 아일랜드에 사는 건축가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돋보이던 토머스 버그가 주저 없이 임명되었다.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은 그의 단 하나의 걸작이다.
-170쪽

공공건물들이 난방이 되지 않는 시기에 습기의 영향으로부터 책을 보호하기 위해 크리스토퍼 렌이 케임브리지에서 시도했던 대로, 버그 역시 긴 직사각형 건물을 세웠다. 특별히 우아한 점은 없고, 지주 역할을 하는 튼튼한 이중 아케이드 위에 얹힌 건물이었다.
-170쪽

(포르투갈 마프라의 마프라 수도원 도서관)
18세기에 마프라에 지어진 왕립 도서관의 운명은 포르투갈이 역사적 성쇠를 거치는 내내 이 도서관을 품고 있던 기이한 수도원-궁전의 운명과 밀접하게 엮여 있다. 사실 집권 브라간사 왕조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겠지만, 도서관을 짓고 있는 동안 포르투갈은 이미 쇠퇴의 길로 들어선 상태였다. 주앙 5세가 메수엔 조약에 따라 자신의 사업을 포기하며 영국과 교역을 하려던 때, 네덜란드가 그를 아시아에서 몰아내려던 때, 국경에서의 전쟁 위험을 감수하면서 오스트리아를 편들어 인접 에스파냐와 맞서던 때에 막대한 돈을 들여 베르사유 궁전 같은 수도원을 짓는 것은 해괴한 일이었다. -200쪽

(...)1730년 완공 무렵, 리스본에서 북쪽으로 5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공사장은 5만 2천 명이 일을 하던, 마치 하나의 임시 도시와도 같았다. 공사가 끝나자 축제가 한 주일 동안 진행되었다. 족히 6만 5천 명의 하객이 참석했으나, 왕실 재정은 위협을 받고 있었다. 마프라의 건축을 결정한 바로 그 시점에 주앙 5세는 코임브라 대학 재건에도 착수했다. 대학 도서관을 유럽 최대의 도서관으로 만들려는 계획이었다. 낙천가였는지 과대망상가였는지 몰라도, 왕은 두 개의 거대한 도서관을 세우기로 했다. 보유한 장서를 감안하면 이런 엄청난 지출에 타당성이 있을 리 없었고 특히 왕국의 미래도 암울한 상황이었지만, 그는 빈의 호프부르크와 규모가 비슷한 도서관 두 개를 서로 30km 거리 안에 세우고자 했다.
왕이 마프라 건축을 결정한 것은 공약의 이행이었다는 설명도 있다. 왕은 왕비가 왕위를 이을 후계자를 낳으면 수도원을 짓겠다고 맹세한 적이 있었다. 왕비가 소임을 다하자 왕은 약속을 지켰다. 신은 이때다 싶게 후한 은총을 베풀어, 왕 자신은 극구 부인하는 수많은 서자들은 제외하고도 다섯 자녀가 더 태어났다. -200쪽

프란체스코 아라비도스 형제회는 아마도 군주의 웅대한 건축적 야심에 대한 핑곗거리를 제공하고자 이러한 이야기를 퍼뜨렸을 것이라는 혐의를 샀다.
주앙 5세는 자신이 사냥을 즐기던 황무지 한가운데에 수도사 13명을 위한 수도원과 교회를 짓겠다는 결정을 내린 1716년에 이미 재위 10년을 넘긴 상황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사업은 규모가 불어났다. 일단 수도사 80명을 수용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던 것이 다음에는 3백 명, 그리고 마침내는 왕가의 식구들 전부와 궁전까지 수용하는 계획으로 일이 커졌다. 잇따른 변경 끝에 수도원-궁전은 결국 면적 37,720제곱미터에 방과 침실 880개, 수도사들을 위한 독방 3백 개, 4천5백 개의 문과 창문, 154개의 계단, 29개의 중정을 갖추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
-200쪽

서가에 책이 비치된 것은 1797년이 되어서였다. 1809년에 마프라 최초의 대사서인 주앙 두 산타 안나 수사가 도서 목록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오늘날까지도 공표되지 않은 필사 목록이다. 책들은 18세기 말에 꽂힌 그 자리에 지금도 그대로 꽂혀 있다. 포르투갈은 국가 최대의 지주들이 되어버린 교단에 대해 1834년에 탄압 조치를 내리는 등 복잡한 시기에 돌입했다. 마프라는 비워지고 국유 재산으로 선포되었으며, 병영으로 전환될 가능성마저 제기되었다.
주앙 5세의 꿈은 그저 텅 빈 수도원, 거의 살아본 적 없는 궁전, 거의 누구도 책을 읽을 수 없게 되 도서관이 되어버렸다. 도서관은 초기 활판 인쇄 시기의 인쇄본 22점, 신학, 교회법, 교회사, 문학, 지리, 철학, 법 등에 걸쳐 주로 16-18세기 자료로 이루어진 4만 권의 장서가 있었다. 하지만 프란체스코회의 청빈 서원은 예상치 못했던 장식을 낳았다. -201쪽

양피지 색이 된 나무 서가에 꽂혀 있는 책들의 가죽 장정에 찍힌 금칠 문장과 제목들은 너무도 애지중지한 나머지 책등을 벽 쪽으로 돌려 꽂은 책들의 반짝이는 반대쪽 단면만큼이나 돋보인다. 그 빛은, 귀족 지배계급이 그토록 오랫동안 비현실적인 꿈을 꾸며 살던 나라에 걸맞게 황홀하고, 현실 같지 않으며, 시적이다. 해가 지면, 갤러리의 어느 구석에 숨은 채 이곳에서 영원토록 살아왔음직한 박쥐들이 나타난다. 박쥐는 마프라의 수호자가 되었다. 이들은 조용히 날아올라 자신들의 바로크 영지를 누비면서, 이 잊힌 보물들을 감히 공격하는 벌레들을 사냥한다.-201쪽

(미국 워싱턴 D.C의 국회 도서관)
"세계에서 가장 크고 비싸고 가장 믿을 수 있는 도서관" "온 미국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공공 도서관" 1897년 11월 1일에 문을 연 미국 국회 도서관에는 그런 찬사들이 쏟아졌다. 낙관과 자신감이 넘친 미국은 신흥 강국의 힘을 과시할 특단의 상징물을 만들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감수했다. 하지만 세계 최대 도서관의 설립은 미국의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의 지적 소산이다. ‘건국의 시조’ 가운데 한 사람이자 대단한 교양인이던 제퍼슨은 계몽 철학의 후계자였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뒤를 이어 프랑스 주재 미국 공사로 파리에 머무르는 동안 정통하게 된 것이 계몽사상이었다. 백과사전적 지성인인 제퍼슨은 "국회의원이 참조하지 못할 정보는 없다"며 모든 분야의 지식을 망라하는 도서관이 수도 워싱턴에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는 민주주의와 지식 사이에는 직접적인 연관 관계가 있다는 소신을 지니고 있었고, 국회 도서관을 국가 정치 발전에 불가결한 도구로 보았다. -218쪽

(뉴욕 공공 도서관)
뉴욕은 세계에서 가장 발전한 도시였으면서도 문화 시설 투자 필요성에 대한 각성이 부족해 도시 위상에 걸맞은 도서관이 없었다. 그때 전 뉴욕 주 주지사이자 대통령 후보이기도 했던 새뮤얼 틸던이 구원자로 등장했다. 틸던은 훌륭한 도서관의 건립을 맡은 재단에 자기 재산의 상당 부분을 기부했다. 긴 토론과 복잡한 법률 협상 끝에 틸던 트러스트와 애스터 도서관, 레넉스 도서관이 마침내 뉴욕 공공 도서관이라는 이름으로 통합되었다. 시의 운영 보조금을 받는 대신 시의원들을 이사진에 포함시킨 비영리 민간 단체였다.-228쪽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국립 도서관)
공산주의의 몰락에 이은 교육 기관들의 혼란상은 1만 5천 곳에 이르는 러시아 도서관망에도 영향을 미쳤다. 많은 수가 다시 재편되기는 했지만 일부는 민영화되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이 도서관은 1992년까지는 "노동자 붉은 깃발의 명령에 의한 살티코프 셰드린 국립 공공 도서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러시아 국립 도서관으로 개칭되었고, 1998년에는 모스코프스키 대로에 새로운 건물을 개관했다. 그러나 정부 지원금이 대폭적으로 감축되어 그 시설은 그저 그런, 아니 사실상 쓸모가 없을 정도로 좋지 않다. 그럼에도 자료는 계속 증가하고 있어, 예카테리나 대제와 그 후계자들-차르이건 공산당 서기장이건-은 대중에게 지식을 전파한다는 목표를 분명 달성했다. 그들의 도서관은 세계 5대 도서관의 하나가 되었다.-2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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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엔 숲으로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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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무 좀 봐.
-그냥 마른 나무잖아.
-새싹이 돋았어.
-정말?
-나무의 ‘싹이 돋는’ 계절이야. 가지 끝에 작은 연두색 싹이 나와 있어.
-와, 정말이네.
-잘 보이진 않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거야.-11쪽

-왜 이렇게 걸음이 빨라?
-시간이 아깝잖아.
-하지만~
-인간은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만 걷는 건 아니다. 요즘 이런 생각이 들어.-12쪽

-너도밤나무는 추위에 강해서 잘 부러지거나 하지 않는대.
-강한 나무라서?
-그게 말이지, 그 반대라서 그래. 너도밤나무는 부드러운 나무야. 부드러운 나무라서 건축재로는 사용할 수 없대.
-호오~
-그렇지만 너도밤나무는 추위에 무척 강해. 부드러운 나무는 눈이 쌓여도 휘어질 뿐, 부러지지 않는 거지.-29쪽

-아이쿠! 위험했어!!
-세스코~ 헤드라이트는 2~3미터 앞을 비추는 거야. 숲에는 돌이나 나무뿌리가 있어서 어두울 때는 발밑보다는 조금 더 멀리 보면서 가야 해.-32쪽

-그런데 배가 제대로 나아가지를 않아. 가려고 하는 방향에서 틀어져버려... 노젓는 방법이 틀린 건가?
-마유미~~ 손끝만 보지 말고 가고 싶은 곳을 보면서 저으면, 그곳에 다가갈 수 있어~-49쪽

-멋지지 않아? 하늘을 나는 모든 새의 이름을 알고 있다니! 두부집 아저씨에게 그냥 ‘새’는 없어. 새에게도 모두가 그런 것처럼 이름이 있으니까. 우리도 마찬가지겠지. 그냥 ‘인간’이라는 사람은 한 명도 없는 거야. 그저 ‘인간’이라고만 여기니까 생명이 가벼워진다, 라는 말이지.-67쪽

-밤이 이렇게 조용한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정말. 우리집 근처는 한밤중에도 매미가 우는데.
-가끔은 까마귀도 울잖아.
-맞아 맞아.
-밝아서 낮인 줄 알고 우는 거래.
-도시의 밤은 그렇지~
-이곳에 와서 밤하늘에 별이 너무 많아 깜짝 놀랐지만, 도쿄의 하늘에도 별은 똑같이 있는 거잖아. 보이지 않아도 사실은 빛나고 있는 거였어.-82쪽

-이곳에 오면 흙 위를 걷는 게 참 기분 좋은 거구나 느껴.
-도시에 있으면 몇 개월이고 흙을 밟지 않을 때도 있지.
-응, 맞아.
-하지만 하이힐을 신고 아스팔트 위를 걷는 것도 좋아. 또각또각 하고.
-그 소리, 성인의 소리지.
-성인이란 좋은 거지.
-그렇지. 싫은 것도 많긴 하지. 싫은 일이나 귀찮은 일은 전부 사라지면 좋을 텐데.-100쪽

-날다람쥐라고 날기만 하는 것은 아니야.
-호오~
-날다람쥐는 위에서 아래를 향해 날지만, 아래에서 위로는 날지 못해.
-그래?
-아래로 내려오면 다시 나무를 오르지 않으면 안 돼.
-날다람쥐도 힘들겠네.
-편하기만 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정말... 내일부터는 다시 출근이군~
-날다람쥐여~ 오르라! 다시 하늘을 날기 위해!-105쪽

-쌍안경으로 새를 찾는 건 어려워. 먼저 자신의 눈으로 숲 전체를 보는 거야. 새소리가 들리면, 나뭇가지의 흔들림을 보거나 나뭇잎 소리에 귀를 기울여. 그리고 그것들을 잘 관찰해서 추측을 하는 거야. 쌍안경으로 보는 건 그 다음.
-119쪽

-어른이 되면 뭐든지 알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그렇지만 모르는 게 산더미처럼 많아. 뭔가, 모르는 세계가 가득하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어른이 된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어.
-122쪽

-발밑의 잡초들은 참 재미가 없네.
-그래도 대단하지 않아? 이런 숲속의 잡초들은 커다란 나무에 가려 햇빛도 못 보는데 살아 있잖아. 조금의 빛으로도 살아갈 수 있는 강인함이 있는 거지.-135쪽

하야카와, 저 새는 뭐야?
-세스코, 저건 참새야.
-아, 네-
-아는 새가 처음 본 새처럼 보이는 건 새의 아름다움이 보였다는 거야, 분명.-1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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