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 속의 세계사 창비청소년문고 10
이영숙 지음 / 창비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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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청바지라는 이름으로 부르지만, 파란색이라고 다 청바지는 아니야. ‘데님denim’이라고 부르는 특정한 면직물로 만든 옷을 말하지. 목화솜에서 얻은 무명실을 두껍게 만들어서 질기고 해지지 않도록 ‘능직’이라는 특별한 방식으로 짜는 거란다. 하지만 요즘에는 면 말고도 나일론이나 폴리에스테르 같은 합성 섬유를 섞거나 잘 늘어날 수 있게 스판덱스를 넣는 등 다양한 소재를 더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더 이상 면으로만 만든다고 할 수는 없게 되었어. 그래도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튼튼하고 질긴 면직이지. 영어로는 청바지를 jeans 이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 이탈리아의 도시 제노바Genova에서 따온 거야. 이 지역에서 일찍부터 능직으로 짠 질긴 면직물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해. 데님이라는 말 역시 프랑스의 도시 님에서 만든 직물이라는 뜻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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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에서는 청바지가 미국에서 유행하는 제품이라는 이유로 자본주의의 상징처럼 여겨져서 금기시되었어. 하지만 동유럽 사람들도 청바지를 입고 싶어 했지. 그래서 동독에서는 서독에 친척을 둔 사람들이 청바지를 입수해 왔대. 당시 청바지를 향한 사람들의 열망이 어찌나 심했던지, 소련에서는 ‘청바지 범죄’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고 해. 데님 옷을 구하려는 욕구에서 비롯된 위법 행위를 뜻했지. 청바지는 그렇게 기능성과 실용성을 넘어 젊음과 자유, 저항의 패션 아이콘이 되어 전 세계로 퍼져 나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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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4년에 사우스다코타 주의 블랙힐스라는 곳에서 금이 발견되었거든. 불행히도 그 금은 수(Sioux) 족이 지배하는 땅 안에 있었어. 각지에서 금을 캐러 사람들이 몰려들자 폭력 사태가 일어났고, 정부는 수 족에게 인디언 보호 구역을 떠나라는 명령을 내렸어. 원래 그 땅에서 살던 사람들을 척박한 땅으로 내몰면서 ‘보호’ 운운했으니 원주민들이 얼마나 기가 막혔겠니? 수 족은 분개하여 그 명령에 따르기를 단호히 거부했지. 1876년. 조지 커스터 중령이 저항하는 수 족을 몰아내기 위해 한 무리의 군인들을 이끌고 들이닥쳤어. 6월 24일, 리틀빅혼이라는 강가에서 커스터 일행은 원주민들의 천막을 발견했지. 그들은 다음 날 즉각 공격하기로 결정했어. 그는 그 안에 적어도 2,000명의 원주민 전사가 있다는 걸 몰랐던 모양이야. ‘앉아 있는 황소’라고 불리던 타탕카 이요타케와 ‘성난 말’이라고 불리던 타슝케 윗코가 지도자였지. 이 전투에서 원주민 전사들에 의해 커스터 중령과 200명이 넘는 그의 부하들이 모두 죽었어. 이 리특빅혼 싸움은 역사상 몇 되지 않는 원주민의 승리로 기록된 전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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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사우스타코타의 운디드니에서 군대가 원주민들을 무참하게 학살했어. 광란의 학살이 끝났을 때 부족민의 절반 이상이 죽거나 중상을 입었어. 153명이 죽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많은 부상자들이 도망가던 도중에 죽었으니 사망자는 더 많았지. 최종 집계를 보면 인디언 350명 중 300명 가까이가 목숨을 잃었다고 해. 살아남은 수 족 사람들은 가족을 잃은 채 ‘보호 구역’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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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나방의 암컷들은 수백 개의 알을 낳는데, 그것들이 부화되면 애벌레가 되지. 이게 바로 누에야. 누에는 맹렬한 기세로 뽕나무의 잎을 갉아 먹어. 이삼일에 한 번씩 허물을 벗을 정도로 쑥쑥 자란 누에는 허물을 네 번 벗고 나면 번데기가 될 준비를 해. 입에서 실을 토해 내어 제 몸을 보호하는 고치를 만들기 시작하지. 누에고치 안의 번데기는 별탈 없이 시간이 흐른다면 나방이 되어 고치를 뚫고 날아오를 테지만, 상품 가치가 있는 비단을 만들려면 그 전에 열을 가해서 번데기를 죽게 하고 고치만 남겨야 해. 그러기 위해 끓는 물에 담가 끈적한 분비물을 녹여 내고 고치에서 깨끗한 실을 풀어내는 거야. 그 뒤에 염색을 하고 직물로 짜면 비단 옷감이 돼.
- 36쪽

비단을 처음으로 만든 나라는 고대 중국으로 알려져 있어. 무려 신석기 시대 말부터 야생 누에에서 실을 뽑아 비단을 만들기 시작했을 거라고 추정되고, 주나라 때는 누에를 길러 비단을 만드는 기술이 이미 상당히 발전해 있었을 거라고 짐작하고 있거든.
- 36쪽

로마에서는 비단의 인기가 정말 높았다고 해. 카이사르 장군은 극장에 갈 때면 비단옷을 입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는데, 카이사르가 비단옷을 입자 로마의 귀족들이 앞다투어 따라 입으려고 했대. 갈수록 비단을 원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훗날 티베리우스 황제는 남자들이 비단옷을 입지 못하도록 했다지 뭐야. 그랬는데도 오히려 비단의 수요는 더 늘었다나. 결국 1세기 무렵에는 로마에 비단을 가공하는 공장이 지어질 정도였대.
- 39쪽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 결국에는 로마에서 비단을 만들어내게 되었어. 6세기 중반, 유스티니아누스 1세 때 ‘세린다’라는 나라에 몇 년 동안 체류하던 로마의 신부들이 속이 빈 지팡이 속에 누에알을 몰래 넣어서 로마에 들여왔거든. 이렇게 로마가 스스로 비단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은 비단이 전해진 때로부터 60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서였어. ‘세린다’가 어디에 있는 곳인지 정확히 짚어 내기는 어렵지만, 오늘날의 인도 어디쯤으로 추정된다고 해.
- 40쪽

1545년부터 1560년까지 15년 동안 라틴 아메리카에서 스페인으로 해마다 평균 황금 5,500kg과 은 24만 6,000kg이 건너왔지. 그러다 보니 16세기 말, 전 세계의 금과 은 생산량 중 83%를 스페인이 점유할 정도였다고 해. 하지만 펠리페 2세는 늘 돈 걱정을 해야 하는 왕이었어. 네 번이나 파산 선고를 했을 정도였다니 참 의외지?
- 73쪽

펠리페 2세는 1588년 영국과 큰 전투를 벌였어. 아, 그런데 이때는 영국이 많은 나라를 식민지로 삼고 ‘대영 제국’ 노릇을 하기 한참 전이라는 걸 고려해야 해. 오히려 스페인이 강대국이었고, 영국은 떠오르는 신예 강자였지.
- 76쪽

펠리페 2세와 엘리자베스 1세의 악연은 계속되었어. 영국이 스페인에서 독립하려는 네덜란드의 개신교 세력을 지원했거든. 영국은 가톨릭 신자이던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을 반역 혐의로 처형했는데, 가톨릭의 수호자를 자처하던 펠리페 2세로서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 스페인은 무적함대라는 강력한 군사력이 있으니까 승리를 자신했지. 어쨌든 1588년의 이 싸움은 2,000문 이상의 대포로 무장한 130여 척의 스페인 함대가 영국을 향해 도발하면서 시작되었어. 엘리자베스 1세는 스페인의 침공에 대비해서 기동력이 뛰어나고 무장을 갖춘 함대를 준비해 놓았어. 해적 드레이크를 비롯해 항해에 잔뼈가 굵은 선원들이 타고 있었지. 마침내 스페인과 영국의 한판 승부가 벌어졌는데 영국이 압승했어. 변덕스러운 날씨 탓이기도 하지만 워낙 승리를 자신한 스페인이 계획을 부실하게 세웠기 때문이기도 해. 네덜란드에서 출발해 합류하기로 했던 육군과의 약속도 틀어지고 말았지. 영국 해협에서 벌어진 이 전투에서 무적함대는 크게 패하고 스페인으로 후퇴했어. 과정에서 더 많은 배를 잃어 스페인으로 돌아왔을 때는 출발할 때의 절반 정도로 함선이 줄어 있었대- 77쪽

크롬웰은 나이 마흔이 될 때까지는 별다른 기록이 없어.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했다는 게 알려진 전부야. 마흔 넘어 의회에 몸을 담은 후에도 한동안은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었지. 하지만 철저한 청교도였던 그가 보기에 왕이 하는 짓은 참을 수 없는 것이었어. 크롬웰은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되자 군대를 모집했지. 그러고는 ‘철기군’을 편성해서 철저하게 훈련시켰어. 그는 뛰어난 용병술과 지도력을 발휘해 왕당파와 의회파 사이의 전쟁을 의회파의 승리로 이끌었어. 찰스 1세는 스코틀랜드로 도망쳤지만, 장로교를 믿는 스코틀랜드 사람들에게 찰스 1세는 영국 성공회를 믿으라고 압박했던 전적이 있는지라 보호해 주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존재였지. 그래서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40만 파운드를 받고 찰스 1세를 영국 의회파의 손에 넘겨 버렸어. 크롬웰은 단호하게 대처했어. 공화제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국왕이 없어야 하니까 죄를 물어 왕을 처형하자고 했지. 많은 사람들이 그건 좀 심하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크롬웰의 의견대로 국왕은 참수됐어.
- 81쪽

새로운 의회를 구성하기 위한 선거에 의원들이 동의하지 않자, 크롬웰은 의원들을 집으로 보내 버리고는, ‘호국경’(Lord Protector)이라는 자리를 스스로 만들더니 1653년부터는 직접 나라를 지배했어. 왕의 목을 베고 왕정을 끝냈지만 예전의 왕과 다름없는 권력을 행사했던 거지. 찰스1세가 마음대로 의회 문을 닫은 데 분노했던 크롬웰이지만 그 역시 호국경이 되고 나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의석 2/3에 해당하는 의원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자들로 채워 넣었어. 그러고도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의회를 폐쇄하기도 했지.
- 82쪽

청교도들은 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소박한 삶을 본받아 자신들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여겼어. 연극이나 도박, 술, 놀이 등 쾌락을 느끼게 하는 모든 활동을 좋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고, 철저한 금욕주의를 내세웠지. 그들은 밝고 화려한 옷을 벗고 칙칙하고 밋밋한 검은색 위주의 옷을 입었어. 남성들은 검은 모자에 검은 옷을 입고 머리카락을 짧게 깎았지. 여성들은 목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덮는 길고 검은 드레스를 입었어. 그 위에 흰 앞치마를 입고, 머리카락은 하얀 머릿수건 뒤에서 묶어 올려야 했지. 화장도 할 수 없었어. 그뿐만이 아니야. 형형색색 화려한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부수고 그 자리에 평범한 유리를 끼웠어. 아름다운 목공예품과 성상들도 파괴하고, 납으로 만든 장식물은 녹여서 총알로 바꾸었어. 조각상은 물론 촛대나 오르간도 없애고, 더 이상 교회의 종도 울리지 않았지. 눈도 귀도 즐거울 일이 없어진 거야. 대대로 전해 내려오던 영국 왕실의 왕관과 보물도 크롬웰이 호화롭고 사치스럽다며 없애 버렸어.
- 83쪽

청교도들은 죽어서 천국에 가려면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믿었어. 그래서 쾌락을 주는 오락거리들을 철저하게 외면했지. 많은 여인숙과 극장이 문을 닫았고, 운동 경기도 대부분 금지되었어. 찬송가를 제외한 그 어떤 노래도 부르지 못하게 했고, 일요일에 아이들이 공놀이를 하거나 부녀자들이 바느질을 하는 것조차 금지시켰을 정도야. 게다가 즐거운 축제도 없어졌어. 그 대신 청교도들은 한 달에 한 번 ‘fast day'라는 걸 지켰대. 바로 단식일이야. 그날은 아무것도 먹지 않아야 했지. 심지어 크리스마스도 더 이상 예전 같지 않았어. 당시에는 크리스마스 때 붉은 열매가 달린 나뭇가지로 장식했는데, 청교도들은 그런 것조차 죄라고 여겼대. 게다가 런던의 병사들은 크리스마스 만찬을 준비하는 냄새가 나는지 거리를 돌아다니며 감시하도록 명령을 받았지.
- 84쪽

그렇게 엄격한 생활을 강조하던 크롬웰이 정작 자신에게는 전혀 엄격하지 않았어. 평소에 술과 음식을 즐기고, 볼링 비슷한 놀이는 물론 사냥도 했대. 심지어 딸의 결혼식에서는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춤도 추었지. 크롬웰이 죽은 뒤에는 그의 아들 리처드가 2대 호국경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다지 인정받지 못했지. 영국 사람들은 다시 왕을 모셔왔어. 찰스 2세였지. 찰스 2세는 크리스마스를 부활시켜 인기를 얻었다고 해. 왕위에 오른 찰스 2세는 아버지의 원수인 크롬웰에게 복수했어. 크롬웰의 시체를 무덤에서 파내 목을 잘라 그 머리를 의회 바깥에 높이 내걸었다는 거야. 크롬웰의 머리는 비를 맞고 바람에 흔들리며 자그마치 20년을 매달려 있었대.
- 85쪽

트렌치(trench)는 바로 ‘참호’라는 뜻이야. 참호란 전투 중 적의 공격에 대비해서 만드는 방어 시설인데, 구덩이를 죽 이어 파 놓았다고 생각하면 돼. 트렌치코트는 참호 전투를 할 때 입던 옷, 그러니까 군인을 위한 전투용 복장이었던 거야. 이 옷이 만들어진 건 제1차 세계대전 때였어. 하지만 트렌치코트에 사용되는 옷감은 그보다 먼저 만들어졌지. 1856년 영국의 햄프셔에서 포목상을 연 청년 토머스 버버리는 당시 영국 사람들이 입던 고무 비옷을 대체할 새 옷감을 개발하려고 연구를 시작했대. 버버리는 숱한 실패 끝에 1888년 새로운 옷감을 만드는 데 성공해. ‘개버딘’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옷감은 방수 가공된 면실을 촘촘히 짜서 천을 만든 다음 그 위에 다시 방수 가공을 한 것인데, 얇고 가벼운데다 공기는 통하면서도 습기는 배어들지 않아서 크게 인기를 모았어. 1911년 최초로 남극점에 닿은 노르웨이의 탐험가 로알 아문센도 개버딘 소재의 텐트와 방한복을 입고 극지방을 여행했다고 해.
- 91쪽

처음에는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이 전쟁이 4년 동안이나 이어지며 ‘제1차 세계 대전’으로까지 불리게 된 데는 유럽 여러 나라의 야욕이 충돌한 것 외에 참호전이라는 전투 방식도 한몫했어. 지리한 이 싸움 방식은 프랑스의 ‘마른’이라는 지역에서 시작되었지. 독일군과 프랑스 군 양측 무기가 모두 화력이 막강해서 그대로 돌격했다가는 크게 다칠 게 뻔했거든. 그래서 일단 기동성은 포기한 채 적의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땅에 깊은 구덩이를 길게 파고 그 속에 몸을 숨겼어. 그렇게 길게 파 놓은 구덩이가 바로 참호, 트렌치였지. 참호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지저분했어. 땅속에서 물기가 배어 나와 질척했지. 참호 속에서 젖은 양말과 군화를 신고 오래 있다 보면 발이 부르트고 피부병이 생기고 심하면 발이 썩기도 했어. 땀냄새, 피냄새,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했지. 살아남은 병사의 몸에는 이가 들끓었고, 살진 쥐들이 참호 속을 오가며 시체를 파먹기도 했어. 그러한 열악한 환경에 적응하고 버티기 위해 제작되고 지급된 옷이 트렌치코트였던 거야.
- 94쪽

참호전은 서부 전선에서 최고조에 달했어. 서부 전선은 벨기에의 해안에서부터 프랑스의 북동부를 가로질러 스위스까지 뻗은 길디긴 대치선이었지. 그 참호들 속에서 수백만 명의 군인들이 대치한 채 탈출구 없는 지옥을 겪었어. 포격이 멈출라치면 보병이 중간의 무인지대를 지나서 적군 코앞까지 나아가 다시 포격을 하고, 그다음에는 상대편이 참호 밖으로 나와 기관총에서 불을 뿜으며 상대를 쓰러뜨리는 식이었지.
- 97쪽

트랙으로 불리는 2개의 순환 쇠사슬로 움직이는 이 탱크는 울퉁불퉁한 지면을 넘어 철조망까지 뚫고 나갈 수 있었어. 참호에서 퍼붓는 기관총과 소총 세례에도 끄떡없었지. 트랙터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온 탱크는 1915년 7월 영국에서 만들었는데, 넓은 참호를 넘어갈 수 있도록 설계되었어. 참호로 인해 교착 상태에 빠진 전황이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식 무기 탱크를 발명하게 된 원동력이었지.
- 98쪽

독일의 물리학자였던 하버는 카를 보슈와 함께 당시 대표적인 비료였던 암모니아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방법인 하버·보슈법을 고안했어. 하버는 비료 회사와 합작해서 하루 20t 이상의 암모니아를 생산하기에 이르렀지. 그래서 그는 인류의 식량난을 해결한 과학자‘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를 얻게 되었어.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18년 노벨 화학상도 받았는데 당시 이를 반대하는 여론이 거셌다고 해. 하버가 살상용 무기인 독가스 개발에 앞장섰기 때문이야.
- 100쪽

1915년 4월 22일 인류 최초로 독가스가 살포되었어. 독일군은 지금의 벨기에 땅인 예페르라는 곳에서 프랑스군과 캐나다군을 상대로 염소 가스를 살포해 5,000명의 희생자를 낳았어. 역사상 최초로 이루어진 이 대규모 화학 무기의 사용을 감독한 사람이 바로 하버였어. 염소는 독성이 강한 데다 널리 퍼져 나가는 성질이 있지. 하버는 염소 외에도 비소, 청산 등 다양한 유기 화합물을 독가스로 활용했는데, 그는 화학 약품을 이용해서 사람을 죽이는 것이 다른 무기를 써서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나쁘지는 않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그는 화학 무기 사용이 전쟁을 단축시킬 것이라고 보았다고 해.
- 101쪽

독일군이 독가스를 사용한 이후로 더 이상 ‘신사적인 전쟁’은 없다는 것이 자명해졌어. 독가스 덕분에 전세는 독일 쪽으로 기우는 듯 보였어. 하지만 연합군에서도 방독면을 만들어서 공격에 대비하는 한편, 자기들도 급히 독가스를 개발하기 시작했지. 독가스로 목숨을 잃은 병사는 양측에서 10만 명이나 되고, 그 10배가 넘는 수가 전쟁이 끝난 후에도 후유증으로 끔찍한 고통 속에 살아야 했어. 하버의 독가스는 훗날 히틀러 정권이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죽음으로 내모는 데 쓰이기도 했는데, 생전의 하버가 독일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겼지만 사실은 유대인이었던 걸 생각하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지.
- 102쪽

아프리카는 제국주의 시대의 영향으로 대륙 전체가 대부분 유럽 국가의 식민지였어. 그래서 유럽에서 제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자 거의 동시에 아프리카 대륙도 이 전쟁에 휘말렸던 거야. 아프리카 대륙에서 벌어진 전투는 대부분 연합국이 독일의 식민지를 장악하려는 과정에서 일어났는데, 연합국과 독일은 자국의 인력과 자원을 동원하는 대신 식민지의 자원과 인력을 끌어다 썼지. 그러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대륙을 넘어 점차 유럽 전선에 동원되기에 이르렀어. 프랑스가 아프리카 인들을 참호전에도 투입했거든. 1918년 2월 18일, 프랑스의 정치가 클레망소는 상원에서 “프랑스인 1명을 잃을 바에는 흑인 10명을 잃는 쪽이 낫다.”라고 말했는데, 흑인 병사들에 대한 프랑스 인의 생각을 여실히 보여주는 태도였지.
- 104쪽

프랑스는 아프리카 대륙뿐 아니라 인도차이나 반도의 여러 나라들도 식민지로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부 아프리카와 인도차이나 반도에서도 병사들을 모았어. 하지만 대부분은 서아프리카 식민지들인 세네갈, 말리, 기니, 부르키나파소 등에서 온 병사들이었지. 그들을 뭉뚱그려 ‘세네갈 보병들’이라 불렀단다.
- 105쪽

1484년 12월 5일, 교황 인노켄티우스 8세는 로마 교황의 권한으로 마녀들에게 죄를 묻고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을 이단 심문관(종교 재판관)에게 위임한다는 내용의 「마녀 교서」를 발표했어. 이단 심문관이 되기만 하면 사람을 마녀로 몰아서 죽일 수도 살릴 수도, 가둘 수도 고문할 수도 있는 막강한 힘을 갖게 된 거지. 게다가 2년 뒤인 1486년에는 『마녀에게 가하는 망치』라는 책이 출간되어 널리 읽히면서 많은 사람들이 마녀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굳히게 돼.
- 113쪽

백 년 전쟁은 영국과 프랑스가 1337년부터 1453년까지 116년 동안 여러 차례 싸웠던 일을 말해. 물론 지금과 같은 현대식 전시 체제로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대립한 것은 아니야. 실제로는 페스트가 퍼지기도 하고 양국의 농민들이 들고일어나는 일도 있어서 휴전 기간이 꽤 길었거든. 하지만 전쟁은 그칠 듯 하다가도 이내 되풀이되었어. 영토를 놓고, 또 프랑스의 왕 자리를 놓고서 말이야. 우선 영토 문제. 영국은 1066년 노르만 왕조가 성립된 이후부터 프랑스 내부에 영토를 소유하고 있었어. 이것이 영국과 프랑스 양국 사이에 갈등과 분쟁을 일으킨 불씨가 되었지. 그중에서도 특히 플랑드르와 귀엔이라는 지역은 백 년 전쟁에서 분쟁의 중심이 되었어.
- 116쪽

1328년, 프랑스 카페 왕조의 샤를 4세가 후계자를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났어. 그래서 사촌 형제인 발루아가의 필리프 6세가 왕위에 올랐지. 그런데 그때 영국 왕 에드워드 3세가 개입해서는 자기 어머니가 죽은 샤를 4세의 누이이니 자신이 왕위에 올라야 한다고 주장했어. 영국은 프랑스에 보내던 양털 수출을 중단하는 조치를 취했어. 플랑드르는 영국으로부터 공급받은 양털을 가공하는 양모 공업이 발달해 있던 지방이라 양털 공급이 끊기면 경제적으로 파산 상태에 놓일 위험이 있었거든. 분개한 프랑스의 필리프 6세는 프랑스 내의 영국 영토인 귀엔 땅을 몰수하겠다고 선언했어. 귀엔 지역은 보르도 땅을 포함하는 유럽 최대의 포도주 생산지로 그야말로 알짜배기 땅이었기 때문에 역대 프랑스 왕들이 되찾아 오겠다며 늘 벼르던 곳이야. 발끈한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1337년, 필리프 6세에게 공식적인 도전장을 내고 프랑스에 쳐들어왔어. 백 년 전쟁의 시작이었지.
- 117쪽

처음에는 영국군이 우세해서, 파리를 포함한 프랑스 영토의 대부분을 점령했어. 영국군이 초반에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웨일스 사냥꾼들이 쓰던 긴 활을 사용한 덕분이야. 이 신무기는 기존의 활보다 훨씬 멀리서 쏘아도 표적을 맞힐 수 있어서 아주 효과적이었다고 해. 1420년 영국과 프랑스는 트루아 조약을 맺게 되는데, 승전국인 영국에 유리한 조건들로 이루어진 조약이었어. 북부 프랑스의 대부분을 영국 지배 아래에 두게 했거든. 영국 왕 헨리 5세는 프랑스 왕 샤를 6세의 딸인 카트린과 결혼했고 왕위 계승자로 이름을 올렸어. 그런데 2년 뒤인 1422년 영국의 헨리 5세가 죽고, 뒤이어 프랑스의 샤를 6세도 세상을 떠나 버렸거든. 영국에서는 조약에 따라 헨리 5세의 아들인 헨리 6세가 왕위를 물려받아 영국과 프랑스 두 나라의 국왕이 되었다고 자칭했고, 프랑스에서는 샤를 6세의 아들인 샤를 7세가 프랑스의 왕위에 올랐다고 선언했어. 영국군은 1428년 샤를 7세의 거점 도시인 오를레앙을 포위했어. 대관식을 치르기 전이라 아직 왕세자 신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샤를 7세는 큰 위기를 맞았지.
- 118쪽

바로 그때 한 시골 소녀가 신의 부름을 받았다며 등장했어. 이 소녀는 자신이 12살이 되던 해에 영국 군대를 몰아내고 왕세자 샤를을 왕위에 올리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했어. 그녀는 왕세자 앞에서 군대의 지휘권을 달라고 요청했어. 당시 샤를 7세의 세력은 바람 앞의 등불 같던 상황이라 이 시골 소녀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대. 잔 다르크는 영국군을 몰아내기 위해 갑옷을 입고 종교적인 글이 적힌 깃발을 든 채 두려움도 없이 선봉에 섰어. 실제로 얼마만큼 전투에 참여했는지는 훗날 역사가들의 의견이 분분해. 깃발을 든 마스코트 정도였다는 말도 있지만 어쨌든 잔 다르크가 프랑스군의 사기를 되찾아 준 것만은 사실이야.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한 이 소녀 덕분에 마침내 프랑스는 영국군을 몰아낼 수 있었지.
- 119쪽

그런데 1430년, 잔 다르크는 안타깝게도 샤를 7세의 적대 세력인 부르고뉴파 사람들에게 생포되어 영국에 넘겨졌어. 부르고뉴파는 영국과 협조 관계였는데, 잔 다르크를 넘겨준 사람들은 그 대가로 현상금도 받았대. 잔 다르크는 영국에서 종교 재판을 받게 됐어. 영국 법정은 잔 다르크에게 이단 혐의를 물었지. 기록에 따르면 그때 받은 여러 죄목 가운데 ‘여자가 바지를 입고 다녔다.’라는 항목이 있대. 당시 여자들은 치마만 입을 수 있었는데 잔 다르크가 갑옷과 바지를 입었던 것을 두고 남성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는 식으로 몰아붙였던 거야.
- 121쪽

잔 다르크가 죽은 지 25년이 지난 후, 샤를 7세의 요구로 잔 다르크에 대한 재판이 다시 열렸어. 이 재판에서 잔 다르크에게 무죄가 선고되었어. 그리고 1909년, 교황 비오 10세가 잔 다르크를 성녀로 만들기 위한 절차를 밟기 시작했고, 1920년에서야 가톨릭교회는 잔 다르크를 성녀로 선포했어. 마녀라는 누명을 쓰고 화형을 당한 잔 다르크가 500년이 지나서 성인으로 추대된 거야.
- 124쪽

바틱은 디자인뿐 아니라 제품을 만드는 방법도 상당히 독특해. 흔히 초를 만들 때 쓰는 밀랍을 이용하거든. 일단 아름다운 문양을 종이에 그린 뒤, 흰 천을 종이 위에 얹고 다시 아래 그림을 따라 그려. 그런 다음 뜨겁게 녹인 밀랍이 가느다랗게 나오는 펜 같은 도구를 이용해서 선을 따라 꼼꼼히 칠하는 거야. 그렇게 한 뒤에 흰 천을 염색하면 밀랍이 칠해진 부부은 염료가 스며들지 않고 나머지 부분만 염색되거든. 이 천을 나중에 뜨거운 물에 담그면 밀랍은 녹아서 떨어지니까 감쪽같지. 이런 가정을 여러 차례 반복하면 다채로운 색깔과 문양의 바틱을 만들 수 있어. 과거에는 하나하나 손으로 만드느라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들었다고 해. 요즘은 스탬프로 찍거나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하는 추세야.
- 129쪽

인도네시아에서 바틱의 의미는 단순한 직물 이상이야.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인생의 크고 작은 순간마다 늘 바틱과 함께하는 전통이 있거든. 인도네시아는 1년 내내 더운 나라라서 서양식 정장보다 바틱을 즐겨 입어. 결혼식 같은 중요한 의례나 행사에도 빠지지 않지. 인도네시아에는 임신 7개월째에 접어든 임신부를 축하하며 선물과 음식을 나누는 행사가 있는데, ‘투주불란’이라고 부르는 이 의식에서 임신부가 입었던 바틱은 훗날 아기를 감싸는 천으로 쓰인대. 그리고 아기가 태어난 지 210일이 되면 우리나라의 돌잔치처럼 ‘투룬 타나’라는 의식을 해 주는데, 그때도 어머니가 예전에 입었던 바틱 천으로 아이를 감싸 줘. 나중에는 그 천이 임종한 어머니의 수의로도 쓰인다니, 인도네시아 인들에게 바틱이 갖는 의미를 짐작할 만하지?
- 129쪽

인도네시아는 태평양 서남쪽에 자리하고 있어. 자그마치 1만 7,508개나 되는 섬으로 이루어져서 세계 최대의 섬나라로 꼽히지. 수마트라, 자바 같은 커다란 섬의 이름은 너희도 들어 봤지? 그 면적을 다 합치면 한반도의 8배 정도인 190만 제곱킬로미터나 된대. 인구는 2013년 6월 기준으로 2억 5,000만 명에 달해 중국, 인도, 미국에 이어 세계 4위야.
- 131쪽

인도네시아는 중국과 인도를 잇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한 데다 정향이나 육두구 따위의 향신료도 풍부했어. 이런 향신료는 금과 맞먹는 값으로 거래되었으니, 유럽 강대국들이 눈독을 들일만 했지.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이 인도네시아를 차지하려고 치열하게 다투었어. 그 가운데 인도네시아를 가장 오랫동안 점령한 나라는 네덜란드였어.
- 132쪽

인도네시아를 지배했던 네덜란드도 한때는 다른 나라의 식민지였어.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거든. 스페인의 펠리페2세는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가톨릭을 믿을 것을 강요하고 과도한 세금을 거둬 갔어. 신교를 믿던 수천 명의 네덜란드 사람들이 가톨릭교회를 습격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펠리페2세는 군대를 동원해 1만여 명의 네덜란드인을 잔혹하게 살해했지. 결국 네덜란드는 스페인의 세력 확대를 꺼리던 영국, 프랑스와 손잡고 독립 전쟁을 일으켰지. 레판토 해전에서 스페인에게 패배해 이를 갈고 있던 오스만 제국도 네덜란드를 도왔어. 그렇게 하나의 세력이 형성되었고 80년 동안이나 끈질기게 싸운 끝에 네덜란드는 1648년, 마침내 완벽한 도립을 이뤘단다.
- 132쪽

스페인은 네덜란드의 배가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항구에 드나들지 못하게 막으려 했지. 그러자 네덜란드는 낙담하기는커녕 포르투갈의 무역 통로를 빼앗기로 더 독하게 마음먹었어. 전쟁 중에도 꾸준히 해군과 상선을 늘려서 유럽 최대의 해운국으로 자리매김하더니, 전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만들기 시작했지. 부유한 상인들을 비롯한 부르주아들이 힘을 합치고 돈을 모아서 아시아 곳곳에 ‘무역 전진 기지’라는 작은 정착지들을 만들고, 비단과 향료와 차와 커피를 매매하면서 이익금을 나누었어. 그러다 네덜란드 정부는 1602년, 영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동인도 회사를 설립했어. 동인도회사는 왕실로부터 정식 허가를 받아서 군대와 무기까지 갖춘 기관이었어. 일본이 ‘동양 척식 주식회사’라는 것을 세워 우리나라에서 물자를 수탈해 간 것처럼 동인도 회사도 식민지 침략을 위한 수단이었지. 특히 인도네시아 바타비아 지역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주요 근거지였어.
- 134쪽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를 장악하면서 암스테르담과 바타비아 간에는 향신료 무역이 활발해졌어. 암스테르담은 유럽에서 가장 분주한 항구 도시로 성장하고, 인도네시아 자바에서는 플랜테이션 사업이 벌어졌어. 유럽 시장을 겨냥해 사탕수수, 커피, 차, 담배 같은 특정 작물을 대규모로 재배하게 된 거야. 인도네시아 원주민들은 온종일 고된 노동에 시달렸는데, 정작 자신들이 먹고살 곡물의 재배지가 부족해져서 식량난과 기아에 허덕였다지. 17세기 네덜란드는 이처럼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땀과 피를 제물 삼아 강대국이 되었어.
- 135쪽

현재의 남아프리카공화국 지역에 터를 잡고 살던 네덜란드 인들을 일컬어 ‘보어 인’이라고 불렀거든. Boer는 네덜란드 어로 ‘농부’라는 뜻이야. 그런데 그 지역에서 금과 다이아몬드가 발견되는 바람에, 보어 인과 영국인들 사이에 큰 세력 다툼이 벌어지게 돼. 1899년에 아프리카 대륙에서 일어난 백인들끼리의 이 싸움이 바로 ‘보어 전쟁’이야.
인도네시아 섬들 가운데 암본은 특히 인기 높은 향신료인 정향이 많이 생산되는 곳이었는데, 16223년 네덜란드는 그곳에서 ‘암본 사건’을 일으켰어.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사람들이 영국 동인도 회사 사람들을 공격한 거야. 후추보다도 훨씬 비쌌던 육두구와 정향을 독점하려는 욕망 때문이었지. 불꽃 튀던 두 나라의 경쟁은 영국이 산업 혁명을 통해 국력을 한층 강화하면서 결국 네덜란드의 패배로 끝났지. 인도네시아에서 네덜란드에게 밀린 영국이 인도와의 교역에 더욱 힘을 쏟았거든. 인도의 값싸고 질 좋은 면직물이 유럽에 들어오자 면제품의 수요가 엄청나게 급증했어. 이런 엄청난 수요가 면직 공업의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어 산업 혁명으로까지 이어진 거야.
- 136쪽

현재 네덜란드가 이룬 부(富)는 동인도 회사를 세운 뒤 350여 년 동안이나 인도네시아의 자원을 강탈하고 노동력을 탈취한 데 기원한다는 견해도 있어. 스페인의 식민 지배 아래서 고통 받았던 네덜란드가 또 다른 약소국을 침략하여 자신들이 겪었던 일을 고스란히 돌려주다니. 그 시절의 국제 사회는 힘의 논리가 가차 없이 드러나는 무대였던 거야.
- 138쪽

한동안 네덜란드의 지배 아래 있던 암본 섬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일본에 점령되기도 했어. 이후 일본이 항복하자 인도네시아는 독립을 선언했지. 그러나 네덜란드가 다시 돌아왔어. 인도네시아의 민족주의자들은 네덜란드의 통치에 극렬하게 저항했고, 4년에 걸친 참혹한 전쟁이 벌어졌어. 그 결과 수만 명의 인도네시아 인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해. 1949년, 마침내 이 사연 많은 땅은 네덜란드로부터 주권을 돌려받아 인도네시아 공화국으로 독립했어. 그런데 암본 섬의 사람들은 인도네시아에 편입되지 않고 ‘남(南)말루쿠 공화국’이라는 독립된 국가를 세우고 싶어 했지. 인도네시아는 그런 암본 인들에게 군사적 탄압을 가했고, 암본 인들의 저항 운동은 게릴라전의 형태로 10여 년 간이나 지속되었어. 이 과정에서 많은 암본 인들이 네덜란드로 망명했는데, 거기서 ‘암보네제’라는 이름이 붙게 된 거야.
- 140쪽

인도네시아는 독립을 이룬 후에 주변의 섬들을 닥치는 대로 병합하려 들었어. 물론 실패하기도 했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크다는 보르네오 섬 가운데 사바 주와 사라왁 주를 말레이시아에 넘겨야 했고, 브루나이도 독립국으로 남겨 둬야 했어. 그러나 대다수의 섬들은 인도네시아에 병합되었는데, 1975년 인도네시아로 합쳐진 동티모르도 마찬가지야. 제국주의 시절 강대국들의 치열한 세력 싸움 탓에 티모르 섬은 둘로 갈라졌어. 동쪽은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서쪽은 네덜란드의 식민지로 분리되어 살아온 거야. 티모르 섬의 동쪽과 서쪽은 사뭇 다른 지역으로 변했지. 종교도 언어도 달라졌어. 티모르 섬 서쪽은 주로 이슬람교를 믿지만 동쪽 지역은 포르투갈의 영향으로 가톨릭이 전파되었고, 언어도 동티모르에서는 티모르 고유의 언어인 테툼 어 혹은 포르투갈 어를 쓰고 있어.
- 141쪽

심지어 인종도 달라. 동티모르 지역은 인도네시아의 중심부인 수마트라나 보르네오 섬으로부터 동남쪽으로 한참 떨어진 곳에 있지. 그래서 인종도 바로 옆의 뉴기니 섬과 더 유사해. 아프리카 기니 만의 사람들과 생김새가 비슷하다고 해서 ‘뉴기니’라는 이름이 붙은 만큼, 뉴기니 섬 사람들의 피부색은 대부분 어두운 갈색이거든. 그런 인종을 ‘멜라네시아’인이라고 하는데 멜라네시아라는 말도 그리스 어로 ‘검은 섬’이라는 뜻이야. 동티모르의 인종은 뉴기니 섬의 멜라네시아 인과 유사해서 피부색이 검은 경우가 많아.
- 143쪽

동티모르는 이후 2002년 5월 20일, ‘티모르레스테 민주 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공식 독립을 선언하게 돼. 초대 대통령 자리는 독립 운동의 영웅인 샤나나 구스망에게 맡겨졌어.


- 145쪽

오늘날 합성 섬유하면 바로 나일론을 떠올리지만 나일론은 실제로 100가지가 넘는 합성 섬유 가운데 하나에 불과해. 최초의 합성 섬유는 인조 견사인데, 1884년에 특허권을 얻었어. 그 이후 아세테이트나 폴리에스테르 따위가 차례로 개발되었지. 나일론의 정의는 ‘고분자 폴리아미드로 이루어진 합성 플라스틱’이야. 나일론은 석탄, 석유 등을 화학적으로 합성해서 만든 섬유야.
- 149쪽

1929년 미국 대공황으로 소비가 크게 위축되면서 물건을 사는 사람이 기하급수로 줄어들었고 회사의 수익도 감소했지. 순수 과학 연구의 발판을 마련했던 스타인은 다른 부서로 옮겨 가게 되었는데, 그를 대신해 새로 부임한 볼턴은 철저하게 상업적인 자세를 지닌 사람이었어. 듀폰에 입사한 뒤 한동안은 돈 걱정 없이 연구에만 매진할 수 있어서 행복해하던 캐러더스에게 볼턴은 ‘돈 되는 연구’를 하라고 압력을 넣은 거야. 1934년 5월 24일, 캐러더스의 연구팀에 소속된 줄리언 힐이라는 연구원이 실험을 마친 농축액을 버리려는데 그게 잘 되지 않았대. 그래서 녹이면 잘 떨어질까 싶어 불로 가열하면서 막대로 저어 보았지. 그랬더니 이상하게도 가느다란 실 같은 것이 막대에 딸려 나온 거야. 그것에 착안한 캐러더스 팀의 연구로 1935년 2월 28일에는 천여 섬유보다 튼튼하고 탄력이 있는 섬유가 만들어졌어. 석탄의 부산물인 값싼 벤젠을 사용했기 때문에 상업화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지. 듀폰 사는 훗날 이 물질을 상품화하면서 ‘나일론’이라는 신조어를 상표명으로 쓰기 시작했어.
- 155쪽

사실 듀폰 사가 애초에 나일론 섬유를 이용해 내놓은 제품은 칫솔 모와 낚싯줄, 외과 수술용 봉합 실이었어. 어쨌든 1940년에 나일론으로 만든 스타킹이 시판되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이 합성 섬유의 진가가 발휘되었어. 1940년 5월 15일 미국 전역에서 판매되기 시작한 나일론 스타킹의 가격은 1달러 15센트에서 1달러 35센트 정도였어. 실크 스타킹보다 두 배나 비쌌지만 첫날 500만 켤레가 동이 날 정도로 불티나게 팔렸지. 시장에 내놓은 첫해에 듀폰은 6,400만 켤레의 스타킹을 팔았어.
- 157쪽

나일론은 듀폰 사 역사상 가장 많은 이윤을 남겨 준 효자 상품이야. 인조 고무 듀프렌을 개발하기 위해 2,700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연구비를 투자했지만 나일론 스타킹이 개발된 지 단 두 해 만에 연구 개발에 쓰였던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었대.
나일론은 제2차 세계 대전 때 군수품으로 활약하기도 했어. 낙하산과 군용 텐트, 밧줄 따위를 모두 나일론으로 만들었거든. 전쟁에 나일론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 미국 여성들은 자신들의 스타킹을 모아서 군용품으로 쓰라며 기부하기도 했대. 전쟁으로 인해 적국인 일본으로부터 들여오던 비단 옷감과 비단 실의 공급이 완전히 끊긴 상황에서 나일론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소중한 대용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야.

- 1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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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슈 린의 아기
필립 클로델 지음, 정혜승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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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크 씨가 잠시 말을 멈췄다. 눈물이 끝도 없이 흘러내렸다.
"제가 스무 살 되던 해였어요. 스무 살 나이에 뭘 알겠어요. 아무 것도 몰랐죠. 그저 몸만 다 자란 어린애였지요. 난 아직 아이였는데, 아이일 뿐이었는데, 사람들은 제 손에 총을 쥐어줬어요. 지금도 기억납니다. 당신 나라의 그 모든 풍경이요. 마치 어제 떠나온 것처럼 모든 것이 생생하게 내 속에 남아 있어요. 그 향기, 그 색깔, 그 비와 그 숲, 아이들의 웃음과 목소리까지도, 모든 것이 너무도 생생하기만 합니다."-67쪽

무슈 린은 갑자기 서글퍼졌다. 사람들이 그의 배를 갈라 한때 긴요했지만 이제는 쓸모없어져버린 장기를 들어낸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랬다. 무언가가 휑하니 비어버린 느낌. 주체할 수 없는 노곤함이 그의 온몸을 엄습해왔다. 하지만 그는 손녀딸이 그걸 눈치 채기 원치 않았다. 그 아이를 위해 그는 강해야만 하는 ㄱ넛이다. 상디유에겐 그가 필요했다. 아직 너무도 어리고 여린 아이였기에 무슈 린은 약해질 자격도 없었다. 자신의 운명을 탓할 자격도 없었다.-86쪽

무슈 린은 문득 합숙소 생각이 났다. 자신을 놀려대던 여인들도, 카드에 빠져 지내던 남자들도, 시끄럽기 그지없던 아이들까지도 모두 떠올랐다. 같은 나라 말을 쓰는 그들이 없어 아쉬웠다. 사무치게 아쉬웠다. 비록 자신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준 적 없던 그들이지만, 그래도 그들과 함께 합숙소에 있을 때에는 고향의 말을 들으며 콧소리 나고 톡톡 끊어지는 가락 속에서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 모든 것들이 너무 멀기만 했다. 왜, 도대체 왜 그 모든 것들로부터 이렇게 멀리 떨어져 나왔어야만 했을까? 다 산 늙은이 인생 마지막이 왜 이리 온통 사라지고 묻히고 죽고 하는 것들로만 채워져야 하는 것일까?-90쪽

새로 지내게 된 이곳에서 그가 가장 놀란 것은 다름 아닌 사람들의 무관심이었다. 똑같은 옷을 걸치고 같은 공간에 둘러앉아 지내면서 어쩌면 서로가 서로에게 그렇게 무관심할 수 있는 것인지. 마치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를 보듯, 그 누구도 누군가를 진정으로 쳐다보지 않았다. 말도 하지 않았다. 이따금씩 들리는 싸움 소리가 다였다.-91쪽

무슈 린의 머리는 피로와 고통에 절고 환멸로 가득 차 있었다. 너무 많은 혼란과 너무 잦은 떠남으로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산다는 게 무언가? 자신이 살면서 받은 상처들을 목걸이처럼 엮어 차고 다니는 게 인생이 아니면 대체 뭐란 말인가? 점점 약해지고 상처받기만 하는데 날마다, 달마다, 해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지금도 이미 충분히 힘겹건만 어째서 오늘보다 내일이 더 힘들고 쓰라려야 한단 말인가?-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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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 크로마뇽 시리즈 1
정준호 지음 / 후마니타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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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세상은 기생충으로 가득 차 있다. 현재 장내기생충에 감염된 인구는 약 10억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지구 인구 다섯 명 중 한 명 이상이 기생충에 감염되어 있는 셈이다. 회충, 편충, 구충 같은 장내기생충을 포함해 제3세계에 널리 퍼져 있는 열세 가지 감염성-특히 기생충 감염-질환을 소외 열대 질환이라고 부른다. 소외 열대 질환들은 경제적으로 가장 빈곤한 계층, 정치적으로 가장 영향력이 낮은 계층을 중심으로 뿌리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소외 열대 질환은 다른 어떤 질병보다도 많은 사람들을 감염시키고 있지만 정작 연구나 지원은커녕 질병의 이름조차 생소한 경우가 많다. 이제 기생충 질환으로 대표되는 열대 질환은 빈곤과 소외의 상징으로 자리 잡아 버렸다.
-11쪽

주어진 주변 환경에서 모두가 억척스레 살아가던 도중, 발상의 전환을 일으킨 생명체들이 나타났다. 바로 기생충이었다. 기생충들은 주변 환경을 개척하거나 제한된 자원을 둘러싸고 경쟁하기보다는, 아예 다른 경쟁자들의 몸 안에 들어가 그들이 획득하는 물질을 고스란히 가로채기로 했다. 세상은 셀 수 없이 많은 생물들로 뒤덮여 있었고, 기생충들에게는 그만큼의 보금자리와 먹잇감이 널려 있었다. 기생은 혁명이었다. 이제 지구상에 기생충 하나쯤 없는 생물은 없으며, 기생충과 다른 모든 생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세상을 뒤덮은 기생충은 진화를 주도했고, 성을 탄생시켰으며, 사회를 형성했고, 행동을 변화시켰으며, 궁극적으로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해주었다. 기생충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것은 생물 역사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26쪽

우리가 아프다고 느끼는 가정, 즉 고온·설사·기침 같은 감염성 질환의 증상들은 사실 우리 몸이 기생충에 대항하는 방법 중 하나다. 설사 실험에서 보았다시피 약을 통해 방어 기전을 억지로 막게 되면 오히려 질병의 증상이나 회복 기간을 늦추는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감염의 증상을 단순히 피해로 인식할 것이 아니라 기생충과 숙주의 관계로 인식하는 것은 기생충 감염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이 되고 있다.
-113쪽

메디나충을 제거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은 바로 알을 낳기 위해 피부를 뚫고 나오는 성충을 막대기에 감아 물을 부어 가며 천천히 빼내는 것이다. 1미터에 달하는 성충이 다 빠져나오는 데는 1~2주가량의 시간이 걸리며, 그 기간 동안 막대기에 매달린 기생충을 다리에 달고 다녀야 한다. 앞서 인용한 성경 구절(민수기 21장 6~9절)에도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는 내용이 있다. 메디나충의 치료법을 표현한 부분이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성경에 언급된 2천 년 전 치료법이 지금도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메디나충을 억지로 잡아 빼다 끊어질 경우 체내에 남은 나머지 부분이 심한 염증을 일으키거나 2차 감염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 메디나충이 유행하는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정교한 외과 수술을 통해 기생충을 제거할 만한 장비나 인력이 없다는 이유도 있다.
-130쪽

유럽 지역, 흔히 말하는 구세계 사람들은 가축을 많이 길러 동물에서 옮겨오는 전염성 질병들에 자주 노출되었다. 다양한 전염병에 노출될 기회가 많았기 때문에 질병에 대한 저항성도 높았고, 새로운 지역에 진출했을 때는 자신들도 모르게 전염병을 무기로 사용할 수 있었다. 새 대륙에 진출하기 전 이미 여러 번 유럽인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흑사병이나 홍역, 독감이 대표적인 질병이다. 이런 대형 전염병들은 유럽 사회에 커다란 타격을 주었지만, 이후에는 면역력을 가진 유럽인들이 다른 대륙들과의 경쟁에서 앞서 나갈 수 있게 해주었다. 반면 아메리카 원주민들, 신세계 사람들은 유럽인들을 괴롭히던 질병에 노출될 기회가 별로 없었다. 다른 대륙 사람들과 접촉하여 질병을 미리 겪어 볼 기회도 없었고, 가축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동물에서 옮겨오는 전염병도 드물었다. 결국 유럽인들이 진출했을 때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쓰러뜨린 것은 총도 쇠도 아닌 균이었다.
-137쪽

열대 질환과 기생충들로 인해 열대 지역에 진출한 유럽인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제국이 꾸준히 확대될 수 있었던 이유는 열대 질환이 유럽 본토에는 퍼지기 힘든 질병들이었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등지에 옮긴 질병들은 주로 인간 사이에서 전염되는 질환들이어서 환경적 변화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열대 질환들은 말라리아처럼 특수한 매개체가 필요하거나 열대 지역처럼 고온다습한 환경에서만 널리 전파될 수 있다는 한계가 있었다.
-139쪽

식민지 주민들은 더 큰 피해를 입고 있었다. 대단위 집약식 농업이 이루어지면서 인구밀도가 높아졌고, 인구 증가를 뒷받침할 만한 위생 시설은 갖추어지지 않아 질병이 유행하기 좋은 환경이 되었다. 급속도로 성장하던 영국과 유럽의 면직물 산업을 지탱하기 위해 개발된 대규모 목화 농장 지역이 특히 큰 피해를 입었다. 무차별적인 개발은 모기 같은 질병 매개체들이 폭발적으로 번식할 수 있게 해주었으며, 강제 이주는 질병에 면역력이 없는 사람들을 기생충 유행 지역으로 끌어들였다.
-139쪽

말라리아는 전쟁의 양상도 바꿔 놓았다. 식민지 확장 전쟁이 시작되기 전, 유럽에서 군수물자라 하면 흔히 군인을 비롯한 탄약·식량·의복 정도를 의미했다. 식민지 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던 18세기 유럽 열강들은 열대 지역 식민지 확장에는 전혀 다른 개념의 군수물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약’이었다.
-144쪽

이집트에 저수량으로는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아스완 댐이 건설되면서 문제가 된 것은 수몰 위협에 놓인 나일 강 유역의 고대 이집트 신전들뿐이 아니었다. 신전은 엄청난 돈을 들여 더 높은 지역으로 옮겨 수몰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지역 주민들은 그렇지 못했다. 기존 주민들은 수몰지만 간신히 벗어나 저수지 근방에서 계속 생활했으며, 농업용수를 얻기 위해 댐 근방으로 새로 이주해 온 사람도 많았다. 댐 근방에서 주혈흡충 감염자가 늘어나 아이들은 사춘기가 되면 이 섞인 오줌을 누는 것이 당여한 일이 되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피 섞인 오줌을 남자의 월경처럼 보는 지역도 생겨났다. 말라리아나 주혈흡충으로 인한 노동력의 공백으로 산업 전반에 타격을 입었다. 댐으로 인한 환경 변화는 농업 근간을 흔들어 놓는 결과도 낳았다.
-152쪽

농경의 몰락은 말라리아의 추가적인 유행으로 이어졌다. 농경지가 버려졌기 때문이다. 관리되지 않는 물이 고여 모기들이 창궐하기 좋은 환경이 되었다. 질병과 빈곤의 악순환이 물고 물리기 시작했다. 댐이 생기고 전기가 공급되는 혜택을 누리는 것은 도시에 사는 소수뿐이고, 댐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전기 공급은커녕 더욱 극심한 기생충의 공격에 시달리게 되었다.
-152쪽

소득 증대라는 달콤한 약속과는 달리, 담배처럼 먹을 수는 없지만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작물들에는 맹점이 있다. 지역의 식량자급률을 떨어뜨려 오히려 국외 시장에 대한 의존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그 결과 담배 농사가 망하면 단순히 소득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굶주림과 연결된다. 자급자족형 농업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또 하나는 대부분 이런 시장성 작물이 거대 육종 회사나 유통 업체와 연결된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고소득 작물인 것처럼 선전하지만, 고가의 씨앗과 비료를 강매할 뿐만 아니라, 수확할 때가 되면 시장가격보다도 싼 값에 사간다. 사업을 지속하고 식량을 수입할 현금을 얻기 위해 기업이 제시하는 돈에 어쩔 수 없이 작물을 팔아야 하는 농부의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인 셈이다.
-153쪽

데메라라 지역에서 활동하는 말라리아 매개 모기는 주로 고인 물에서 번식하여 가축들의 피를 흡혈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옥수수나 카사바 밭은 물이 많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고인 물이 별로 없어 모기가 번식하기에 적당하지 않았다. 그러나 쌀농사를 위해 개간한 논은 대량의 고인 물을 필요로 했고, 물로 가득 채워진 논은 모기의 서식처가 되었다. 물이 많이 필요한 논농사의 특성상 대규모의 관개수로가 확보되었으며, 이 수로 역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모기의 서식처가 되기에 알맞은 환경이었다. 모기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난 것만으로도 말라리아가 유행할 위험은 충분했지만, 주변 초원을 논으로 개간해 마을 주변에 가축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든 것 또한 악영향으로 작용했다. 가축을 먹이로 삼던 모기들의 숫자는 증가하고 있었지만, 정작 피를 빨 수 있는 가축의 숫자는 줄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모기들은 사람에게로 눈을 돌렸다. 사람들이 논에 심은 종자는 말라리아라는 작물이 되어 되돌아온 셈이다.
-156쪽

생산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광대한 숲을 개간하고 대형 플랜테이션을 농장을 경영한 것은 생태계를 파괴하고 질병을 유행시키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열대 지역의 대형 농장을 일컫는 플랜테이션은 단일 작물만을 키우기 때문에 생태계의 다양성을 해치는 주범이기도 하다. 환경의 변화를 고려하지 않은 개발은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 사람과 환경 간의 접촉을 막아주던 다양한 장벽들을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제거해 파괴적인 결과가 돌아온 경우는 수없이 많다.
-157쪽

제2차 세계대전은 말라리아 관련 연구의 판도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놓았다. 전쟁 당시 추축국과 연합군이 가장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던 이탈리아나 태평양 전선은 말라리아 유행이 극심하던 지역이었다. 따라서 말라리아 치료제인 키니네이 확보는 전쟁의 승패와도 직결되는 문제였다. 일본은 이를 노리고 전쟁 초기부터 세계 최대 기나나무 생산지인 자바 섬을 점령하고 연합군 측으로 키니네가 유출되는 것을 막았다. 필수적인 전쟁 물자 확보에서 밀린 연합군, 특히 미국은 새로운 말라리아 치료제 개발에 막대한 예산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이 가정에서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를 효과적으로 제압할 수 있는 살충제, DDT도 개발되었다.
-161쪽

장내기생충들을 필두로, 이렇게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진 여러 질병들을 ‘소외 열대 질환’이라고 부른다. 세계보건기구에서 규정하고 있는 소외 열대 질환은 총 열세 가지 질병)브루리 궤양, 샤가스 병, 뎅구열, 메디나충증, 간질증, 수면병, 리슈마니아편모충증, 한센병, 사상충증, 강변실명증, 주혈흡충증, 장내기생충증, 독사교상, 트라코마, 요우스)으로 전 세계에서 약 13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 질병들로 고통받고 있다. 현재 지구 인구 가운데 1/5이 감염되어 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대 질환의 위험 지역에서 벗어난 곳에서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이런 질환이 오래전에 사라졌다고 생각하거나 굉장히 드문 질병으로 알고 있다. 이렇게 ‘소외된 질병’들은 여전히 연간 수백만의 인명을 앗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외 열대 질환으로 고통받는 지역이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소외되어 있기 때문에 그 중요성에 비해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치료약의 개발이나 연구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즉 질병들이 가난과 소외의 상징이 되어 버린 셈이다.
-185쪽

개인위생의 향상이나 안전한 상하수도 시설, 간단한 항생제만으로도 몰아낼 수 있는 다양한 질병들, 안전한 치료법이 있지만 경제적 한계로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 부패하고 무너진 정치 때문에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사회 기본 보건 의료 시스템, 이 모든 것이 뒤섞여 세계 인구 다섯 명 중 한 명을 고통에 몰아넣고 있다. 그와 반대로 이 모든 혜택을 누리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질병들이 이제 지구상에서 사라졌다고 믿고 있다. 지속적인 관심만이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단적인 예로 미국에서 감기와 독감에 사용되는 의료비는 아프리카에서 소외 열대 질환 박멸과 치료를 위해 사용되는 전체 금액을 넘는다. 단순히 집의 벽을 진흙에서 합판으로 바꾸는 것, 간단한 식수 펌프를 놔주는 것만으로도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평생을 안고 가야 할 장애에서 해방된다. 감기보다 이런 질병들에 쏠리는 관심이 적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195쪽

2009년 브라질에서 이루어진 연구는 열대우림의 5%가 개발되면, 개발된 지역의 말라리아 감염자가 25%나 증가한다는 결과를 보여 주었다. 농장을 위해 무분별한 확장이 반복되던 20세기 초반 바나나 농장에서 일하던 수많은 노동자들이 기생충에 시달려 죽어 가야 했다.
-198쪽

천연두는 오랜 세월 인간을 위협해 온 무시무시한 질병이다. 특히 16세기 대항해시대 직후 아메리카 대륙으로 유럽인들이 들여온 천연두가 유행했을 때는 원주민 인구의 90%가 사망하기도 했다. 1980년 세계 보건기구가 공식적으로 천연두 박멸을 선포하기 전까지, 천연두는 한 세기 동안 5억여 명의 생명을 앗아간 무서운 질병이었다.
-200쪽

수렵 채취 생활을 벗어나 농경 생활에 접어들자 숙주로서의 매력은 더욱 커졌다. 농경 사회 이전 수렵 채취 생활에서는 주로 동물들을 통해 감염되는 기생충이 많았다. 인구 규모가 작아 인구 전체가 기생충에 면역력을 획득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 사이에서만 유행하는 기생충은 길게 활동하기 어려웠다. 회충이나 촌충처럼 면역력을 획득하기 어려운 기생충이라도 대변을 통해 나오는 기생충 알의 숫자에는 한계가 있어, 주거지역의 오염이 그리 심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수렵 채취를 하는 사람들은 영구적인 마을을 형성하기보다는 사냥감을 따라 이동하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에 기생충과 접촉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하지만 사회가 발달하고 농업혁명이 일어나면서 더 많은 인구가 한데 모여 살기 시작했다. 인구가 늘어나고 출산율이 높아지면서 기생충은 비로소 인간의 풍토병이 될 수 있었다.
-218쪽

구충은 대변을 통해 알이 빠져나오면, 땅에서 부화하여 유충이 된 다음 사람의 피부를 파고 들어가 한 살이를 완성한다. 그러나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과정에서 땅이 메마르면 유충이 말라 죽는다. 인간은 탄광과 터널을 만들었다. 19세기 후반, 유럽 전역에서 갑자기 구충이 들불처럼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잇는 터널에서 온 구충들이었다. (...)인구밀도가 높은 현장 상황은 열악했다. 터널 공사를 진행하는 사람들은 공사장 안에서 생리 현상을 모두 해결해야 했다. (...) 공사가 끝나자, 터널에서 일한 사람들은 구충에 감염된 채 유럽 전역에 흩어져 있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지나간 길에는 구충이 남았다. 19세기 증기기관의 개발과 함께 늘어난 탄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기생충이 새로운 숙주를 찾는데 거쳐야 하는 귀찮고 위험한 작업들을 인간이 대신해 주기 시작했다.
-220쪽

이런 맥락에서 보면, 운송 수단의 발달은 인간뿐만 아니라 기생충에게도 혁명이었다. 먼 거리를 단시간에 이동할 수 있는 인간에 편승해 기생충이 번성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17세기 노예무역이 극에 달한 시기, 서아프리카에서 남아메리카로 넘어간 각종 기생충들이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왔는지 충분히 살펴보았다. 21세기에는 17세기와는 또 다르다. 17세기에는 서아프리카에서 대서양을 건너 남아메리카에 도착하는 데 한 달이 걸렸다. 성질 급한 기생충들은 살아남기 어려울 수 있는 시간이다. 이제 대서양을 넘는 데는 겨우 한나절이 걸린다. 지구 전역이 비행기와 컨테이너 선박이라는 크고 빠른 네트워크로 엮이게 되면서 기생충의 전파가 더욱 손쉬워졌다.
-221쪽

개발된 지역 내 초목은 농경을 위한 화전으로 소모되거나, 가축들의 먹이로 사라졌다. 강변에서 초목이 사라지면서 토양 유실이 가속화되고, 사막화를 촉발시키는 또 하나의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런 현상을 ‘기생충학의 딜레마’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는 삶을 개선하기 위해 기생충을 박멸했지만, 기생충이라는 부담을 제거하자 사망률이 낮아져 인구 폭증이 일어나거나 개발 장벽이 사라져 과도한 개발이 오히려 환경과 삶의 질을 악화시키는 현상을 말한다. 기생충학이 진정한 성과를 이루어 내기 위해서는 기생충의 박멸이 가져올 사회적 변화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박멸은 매우 중요한 문제지만, 기생충이 사라진 세상에 대한 대비 없이 단순히 기생충만 몰아낸다고 해서 더 나은 삶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224쪽

기생충에 대한 답은 기생충에 있었다. 차세대 살충제로 주목받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곤충에 기생하는 곰팡이다. 곤충 병원성 곰팡이라고 불리는 이 균류는 동충하초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곤충을 감염시킨 곰팡이는 몸을 파고 들어가 곤충을 죽이고 그 몸을 영양분 삼아 자라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곤충은 저마다에 기생하는 곰팡이 한 종씩을 가지고 있다. 곰팡이들 중 백강균과 녹강균은 이미 메뚜기나 흰개미 방제용으로 널리 쓰이고 있으며 효과 또한 입증되었다.
-236쪽

덜 위험한 기생충으로 더 위험한 기생충을 치료한다는 발상은 어찌 보면 엽기적이며 비윤리적으로까지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기발한 발상은 이미 한 세기 전에 실용화되었다. 심지어 효과적인 치료법으로 널리 인정받았을 뿐만 아니라, 연구자에게 노벨상이라는 영광까지 안겨 주었다. 기생충을 치료제로 이용해 1927년 노벨상을 받은 사람은 줄리어스 와그너-유렉이었다. 와그너는 말라리아를 이용해 신경매독을 치료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성행위를 통해 전염되는 매독이 중추신경에 침범하는 것이 신경매독인데, 방치할 경우 중추신경에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입힌다. 항생제가 없던 과거, 신경매독은 치명적인 질병이었다. 치료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245쪽

알레르기나 천식, 아토피성 피부염 같은 자가면역질환들은 우리 몸의 면역계가 주변의 무해한 물질에도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면서 염증이 일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지난 수십 년 사이에 이런 질병들이, 장내기생충을 찾아보기 힘든 선진국이나 도심지에서 특히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학자들은 생각했다. 자가면역질환들이 증가하기 시작한 시점은 장내기생충 박멸이 완료된 시점과 겹친다. (...)이렇게 탄생한 이론이 바로 위생 가설이다. 인간이 지나치게 위생적인 환경에 살게 되면서 면역계를 조절해 주던 장내기생충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면서 어느 정도 노출되어야 하는 기생충과 미생물들에 충분히 노출되지 않기 때문에 면역계가 모든 것에 과민 반응을 한다는 내용이다. 위생 가설에 기초한 다양한 시도들은 지금까지 불치, 혹은 난치성으로 분류되던 자가면역질환에 상당한 효과를 보이고 있다.
-248쪽

기생충을 통해 인류 이동의 역사를 살펴볼 수도 있다. 인류의 역사는 기생충과 시작부터 함께해 왔고, 기생충과 인류는 더불어 진화해 왔다. 인류에 특화된 기생충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인류의 역사를 함께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것이 최근 기생충학의 또 다른 가능성으로 조명되고 있는 고기생충학이다.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기원하여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는 것은 이제 정설로 굳어졌지만, 정확히 언제 어느 경로로 어느 지역을 향해 육로를 통해 움직였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256쪽

기생충과 관련된 가장 큰 문제는 북한이다. 기생충 질환 같은 소외 열대 질환은 먼 열대 국가들의 문제만이 아니다. 최근 10여 년간 경제 및 식량 사정이 급격히 나빠진 북한에서는 주민들이 지속적인 굶주림과 영양 결핍으로 인해 면역력이 약해져 각종 기생충의 감염에 더욱 취약해졌다. 의약품이나 기존의 의료 보건 체계마저 무너진 지금 북한은 심각한 기생충 감염의 위협을 맞이하고 있다. 3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북한과 남한의 기생충 감염률은 비슷했다. 하지만 부단히 노력한 결과 남한에서 기생충은 거의 박멸 단계에 이르렀고, 일부 흡충이나 북한과의 경계 지역에서 유행 중인 말라리아를 제외하면 기생충의 위협에서 크게 벗어난 상태다. 반면 북한의 경우, 의료 인력은 둘째치더라도 약품 생산 시설이나 원료를 확보할 수 없어, 간단한 항생제나 기생충 약도 구하기 어려워졌다.
-2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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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의미 민음의 시 169
김행숙 지음 / 민음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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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

볼 수 없는 것이 될 때까지 가까이. 나는 검정입니까?
너는 검정에 매우 가깝습니다.

너를 볼 수 없을 때까지 가까이. 파도를 덮는 파도처럼
부서지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서 우리는 무슨 사이입니까?

영영 볼 수 없는 연인이 될 때까지

교차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침묵을 이루는 두 개의 입술처럼. 곧 벌어질 시간의 아가리처럼.-13쪽

화분의 둘레

이 작은 화분 한 개는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감상할 수 있습니다. 꽃을? 꽃과 잎을? 꽃과 잎과 벌레를? 나는 화분의 세계를 망칠 수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아시겠습니까.

플러그를 뽑듯이 나는 화초를 뽑아 던질 수 있습니다. 더 이상 물이 끓지 않고, 이제부터 조용해져야 하는 것들을 생각했습니다. 전화선을 자르듯 너의 줄기를 자르고, 이전과 이후과 각각인 것들을 생각했습니다.

이후에 나는 가장 가난한 삶을 생각했습니다. 지금부터, 라고 생각했습니다.

발자국이 없고, 물이 없고, 짹짹짹 새소리가 없고, 엄마가 없고 엄마가 없는. 엄마 없이 떠 있는 별의 지표면에서. 한 명의 아기도 울지 않는 별에서 살아가는 어떤 삶, 열렬하고 고독하고 게으른 삶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나는 가장 넓은 화분의 둘레를 생각했습니다. 나는 걷다가 걷다가 지구에는 골목길이 참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호주머니 속에서 동전 몇 개를 내내 만지작거렸습니다. 할 수 없는 일이 참 많습니다. 그중에서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도 많았습니다. 내일도, 라고 생각했습니다.
-44쪽

보호자

비 때문에 실내외 실외가 분명하게 구분되었습니다. 폭풍우의 효과 속에서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찻잔 속의 검은 물은 고요합니다. 아름다운 찻잔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깨지기 쉬운 도자기입니다. 값비싼 것이긴 하지만 쩗, 도자기 하나쯤이야. 당신의 아버지는 부유한 상인입니다. 소란 피우지 말고 검은 물처럼 내 안에 머무르시길. 내 안에서 마침내 임종하시길.

바닷가의 소나무들이 한쪽으로 휘어졌듯이 나는 당신을 향해 긴 팔을 드리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주위를 둘러보며 혼자라는 걸 확인하려고 합니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 그것 때문에 당신은 괴로워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당신을 위해 존재하는 눈동자, 당신을 위해 쉬지 않고 테이프를 감는 녹음기, 당신을 보여 주고 당신을 들려주는 나는 당신과 거의 동일한데도 말이죠. 마음속을 한없이 파고드는 것은 나쁜 성향입니다. 나를 따돌리지 마세요. 거지말이라도 좋으니, 좋습니다, 계속, 계속 속이세요. 나는 믿는 척하다가 믿겠습니다. 입술이 마음을 불러내지 않으면 끝없이 타오르는 마음은 입술을 태울 겁니다. 나는 -84쪽

그것을 악마라고 부릅니다. 나는 당신의 미래에 먼저 가 있고 싶습니다.

당신의 미래에서 당신을 끌고 가겠습니다. 당신은 악마를 본 것 같군요. 나는 그것을 꿈이라고 부릅니다. 당신은 달아났나요? 헐떡거리는 내 사랑, 내 아기, 누구의 반대편에서 깨어났나요? 꿈의 유리 조각은 내가 치우겠습니다. 잘못 만지면, 만지면...... 그러니까 아, 이 핏방울은 나의 것입니다. 이것은 진짜 피입니다. 개의치 마세요. 우리는 한 몸이니까. 이제 당신에게 당신은 보이지 않고 나만 보여요. 그렇죠? 그렇죠?-85쪽



눈을 감았다는 것

발가락이 꼬물거리며 허공으로 피어오른다는 것

발바닥이 무게를 잊었다는 것

감은 눈처럼

발은 다른 기억을 가지기 시작한다

어디에도 닿지 않은 채

그곳에 속하는-88쪽

이 책

낭독을 하겠습니다. 나는 이 책의 저자를 알지 못하지만, 킁킁 짐승의 냄새를 맡듯이 이 책의 숨소리, 문체의 숨결을 느낄 때.
내가 이 책을 쓰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 책 뒤에 숨겨진 사랑을 내가 은신시켰다고 생각해요.
아아, 나는 사랑 없이는 단 한 문장도 쓰지 못해요. 바람에 맡겨진 나뭇잎 같은 마음으로 낭독을 하겠습니다.
익사하려는 사람이 서서히 잠수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고개를 숙이며 낭독하겠습니다. 익사하려는 사람이 갑자기 허우적거리는 마음으로, 그렇게 머리를 쳐들며 낭독하겠습니다.
이 책을 부정하고, 강하게 부정하는 마음으로 낭독하겠습니다. 나는 한 글자 한 글자 녹일 듯이 뜨거운 목소리를 냅니다.
목소리에게 허공은 펄럭이는 종이입니까. 내 목소리도 하얗고 허공도 하얗습니까.
목소리는 허공을 만지고 허공은 목소리를 만집니다. 이 책이 낭독되고 있습니다. 내 목소리도 만질 수 없고 허공도 만질 수 없습니까. 지금도.
지금도 이 책은 이 책입니까.
-1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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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독서 - 욕망에 솔직해지는 고전읽기
이현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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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권태에 빠지는 이유는 시골에 살아서만은 아니고, 무능한 남편 때문만도 아닙니다. 사회적 지위 탓도 있습니다. 권태는 중산층 부르주아의 정서입니다. 그보다 상류층이거나 빈곤층이라면 권태롭지 않아요. 빈곤층은 먹고살기 바쁘니까 권태로울 여유가 없고, 상류층은 정치 활동이나 사교 활동이 많아서 일상생활을 관조해볼 여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중간층이 문제입니다. 중산층은 대개 먹고살 만은 하지만 아주 풍족하지만은 않은 상인 집단입니다. 권태라는 건 이렇듯 특정한 사회적·시대적 조건 아래 발생한 것입니다.
-25쪽

출산은 엠마에게도 현실에 만족하면서 주저앉을 수 있는 두 번째 기회입니다. 육아를 하며 아이 뒤치다꺼리를 하다 보면 다른 일은 잊을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엠마는 아이를 직접 보지 않고 유모에게 맡기는 바람에, 주저앉을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더 놓칩니다. 하층민은 직접 아이를 돌보지만, 중산층 이상은 보통 유모가 대신 돌보죠. 어머니는 아이를 가끔 보러 갈 뿐이에요. 육아도 하지 않고, 노동도 하지 않으니 남은 시간은 권태로 채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남편이 변변찮다면 더더욱 그렇게 됩니다.
-27쪽

톨스토이 작품에서는 ‘적게 먹고, 가급적이면 육식을 자제해야 된다’는 생각을 읽을 수 있어요. 채식주의를 주장한다기보다 육식에 반대하는 것인데, 이유는 육식을 통해서 많은 열량을 얻으면 에너지가 남아도니까 욕정을 품게 되고, 도덕적으로 타락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절식을 해야 하고, 그래도 에너지가 남으면 노동으로 소진해야 합니다. 톨스토이에게 도덕적 삶이란 그런 구체적인 삶입니다. 로렌스는 도덕에 대한 관점이 조금 다릅니다. 건강한 욕정을 억압하는 게 오히려 부도덕하다고 생각해요. 자연적인 본성을 해방시키는 것이 건강이라고 봅니다. 로렌스가 쓴 편지를 보면 톨스토이를 꽤나 탐독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로렌스는 《안나 카레니나》같은 작품의 결론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두 작가가 모두 성을 중요한 문학적 화두로 다루지만 결론은 서로 다릅니다.
-97쪽

《햄릿》은 행수로 따지면 약 4000행 정도 되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이런 평도 가능했을 겁니다. 존 판던의 인용입니다.

마음이 어지러운 젊은이에 관한 멋진 희곡이다. 그런데 이 젊은이의 지독한 우유부단함 때문에 한 시간 남짓이면 충분할 연극이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나 4시간을 넘겨버렸다. 거의 관객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수준이었다. 연극이 절반 정도 지났을 때 나는 이렇게 소리칠 뻔했다. 빨리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인다!
-138쪽

이 작품이 길어지는 건 복수가 ‘지연’되기 때문입니다. 흔히 《햄릿》을 복수극이라고 하지만 한마디 덧붙여야 합니다. 복수 ‘지연’극이라고요. 이 작품은 부왕에 대한 복수가 왜 지연되는가에 대한 드라마입니다. 마지막에 가면 정작 복수는 금방 끝나는데, 5막까지 가는 모든 내용이 복수 지연입니다. “왜 복수는 지연되는가?” 이게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풀어야 할 수수께끼입니다.
-139쪽

우리는 흔히 ‘곱게 미치라’고 충고하지만 돈키호테는 ‘숭고하게 미친’ 사례라고 할 수 있을까요. 돈키호테의 모험담을 마주하게 되면 광기 없는 삶이란 무난한 공허에 불과한 게 아닌가도 싶습니다. 일상의 안락에 파묻혀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이 문득 ‘불쌍한 몰골’로 비칠 때 우리는 다시금 《돈키호테》를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풍차를 향해 돌진해가는 이 방랑기사의 피가 우리에게도 흐르고 있다면요.
-193쪽

《마담 보바리》에서 권태의 원산지는 프랑스라고 했었죠. 덧붙이자면 우울증은 영국산, 광기는 러시아산이라고 하고요. 이런 감정들도 일종의 문화 상품들로, 장신구를 수입하듯이 수입해오는 겁니다. 보통 그걸 전파하는 것이 문학작품인데, 푸슈킨도 독서 경험을 통해서 권태로운 주인공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냅니다.
-204쪽

파우스트의 비극은 악마에게 영혼을 팔게 된다는 건데, 사실 요즘은 비극의 내용이 달라졌다고도 합니다. 현대인의 비극은 내 영혼을 사줄 악마가 없다는 거라나요. 영혼을 팔아서라도 취직하고 싶다고 하잖습니까. 단, 계약 조건이 좀 특이하죠. 일도 해주고, 영혼도 파는 거니까요.
-209쪽

《돈 후안》의 원산지는 스페인입니다. 스페인에서는 ‘돈 후안’, 프랑스와 영미권에서는 ‘돈 주앙’이고, 이탈리아에서는 ‘돈 조반니’입니다. 한편 푸슈킨 작품에서 돈 후안은 ‘돈 구안’이라고 불립니다. ‘돈 후안’을 러시아 식으로 읽은 발음인데 ‘돈 주안’이라고 부르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에 시인의 의도가 가미돼 있습니다. ‘구’라는 발음이 러시아어 뉘앙스로는 ‘죽음’과 연관됩니다. 돈 후안의 파멸로 끝나는 작품의 결말을 미리 암시한다고 할까요.
-230쪽

헤어지면서 돈 구안은 돈나 안나에게 키스를 해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돈나 안나가 키스를 해주며 “자, 여기 이렇게”라고 말하는데, 러시아어로 키스는 남성명사라서 원문에서는 “여기 키스가 있어요”란 문장이 “여기 그가 있어요”로 표현됩니다(영어로 옮기면 “Here he is"입니다). 교묘한 이 중의적 의미 역시 푸슈킨의 의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그’가 옵니다. 기사단장의 석상이죠.
-250쪽

돈 구안이 손을 내밀며 “자, 여기……”라고 말하는데, 이 말은 돈나 안나의 “자, 여기 이렇게”와 대구를 이룹니다. 러시아어로 손은 여성명사라서 “여기 손이 있네”라는 돈 구안의 말은 “여기 그녀가 있네”라고 표현됩니다(영어로는 “Here she is"입니다). 여기서도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죠. 결국 돈 구안은 돈나 안나를 남겨두고 죽음을 맞습니다.
-2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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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3-08-30 0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로쟈의 팬입니다. 지금까지 나온 책은 거의 다 구해보았는데, 철학에 관한 책 두 권은 조금 어려워서 못 시작하고 있네요.

마노아 2013-08-30 08:50   좋아요 0 | URL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아주 쉽고 재밌게 설명해 주셨어요. 로쟈님이 은근 유머 감각도 있으시다는 게 어색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답니다. 다른 책들도 도전해야겠어요. 일단 쉬운 것부터요~ ^^